벙거지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염정하(廉貞夏)
갱신일 2018-10-22

정의

조선시대 신분이 낮은 무인 등이 쓰는 전립을 속칭하여 이르는 말.

내용

‘벙거지’나 ‘벙테기’라는 명칭은 북방 호족胡族으로부터 온 외래어이며,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정확한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벙거지의 재료는 짐승의 털을 다져서 만들었으므로 전립氈笠이라고도 하였다. 전립은 동물의 털에 습기와 열을 가한 후 다져서 펠트처럼 만들고, 그것을 복발형覆鉢形의 둥근 모옥帽屋에 양태를 단 입자형笠子形으로 만든 것이다. 전립은 전형적인 우리의 입자笠子와는 계열을 달리한다.
중국 명나라 『삼재도회三才圖會』의 전립도氈笠圖에는 정자 장식을 한 전립이 호인胡人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전氈으로 모자를 만들어 쓰는 습속은 수隋·당대唐代에도 있었고, 송대宋代에는 북방 여러 민족의 영향, 특히 거란의 영향으로 전립을 쓰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전으로 만든 쓰개에 관한 기록은 『고려사高麗史』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1387년(우왕 13)에 “동반과 서반의 7품 이하는 전모氈帽와 사대絲帶를 착용하게 하고 …… ”라는 기록을 통해 모 소재의 쓰개를 공식적으로 사용한 시초는 고려 말경으로 볼 수 있다.
조선의 전립과 관련 기록은 다음과 같다.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는 “우리나라의 전립은 옛날에는 군사들만 썼으므로 전립이라고도 하며 평민들은 다만 평량자平涼子를 썼는데,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 후부터 군민통용軍民通用의 입모가 되었다.”라고 하였다. 『청성잡기靑城雜記』에는 “우리나라 풍속에 양반은 모두 흑립을 쓰고 일반 백성은 대체로 전립을 쓰므로 흑립은 양반을 지칭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임하필기林下筆記』에는 “평안도와 함경도 사람들은 대부분 모毛전립을 쓰는데, 대개 오랑캐의 습속을 가깝게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오년(1618)에 명나라의 요청으로 요동遼東으로 출병한 뒤로는 나라에 모전립을 쓰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서로 보고 본뜨다가 마침내 온 나라 안에 두루 퍼지게 되었다. 정묘호란 이후로는 사대부 가운데도 이를 쓰는 사람이 있었고, 무인武人은 비록 대관大官이라도 다 그렇게 하였다. 모전립은 전립이라고도 하니, 이는 곧 전쟁의 징조였던가.”라는 기록이 있다. 즉 전립은 우리 고유의 풍습이 아닌 호풍胡風이며, 군인들이 쓰던 것이라 ‛전립’이라 명명되었다. 17세기 초반 여러 전쟁을 거치면서 군인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에게도 유행하게 되었다.
전립 중에서 고급 무관이 쓰는 것은 ‘안올림벙거지’라 하고, 병사처럼 낮은 무인들이 쓰는 것은 ‘벙거지’라 하였다. 고급 무관의 안올림벙거지는 품질이 좋은 모毛로 만든 것으로 양태 안쪽에는 남색藍色 운문단雲紋緞으로 안을 올린 형태이다. 정수리에는 직급에 따라 모정帽頂에 도금한 것, 금·은·말총·나무 같은 재료에 구분을 둔 정자를 장식하고, 여기에 공작미孔雀尾, 상모象毛, 槊毛를 달고 끈으로 밀화영蜜花纓을 달았다. 이에 반해 조선조 궁중 또는 반가의 군노軍奴, 전령, 사대부가의 하인 등이 착용한 벙거지는 돼지털을 모아 다져서 거칠게 만들었다. 모정은 높고 둥글며 장식이 없고 끈을 매달았다.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소장된 홍색벙거지는 조선 말 아전이나 광대용으로 입의 틀은 모전과 홍저모紅猪毛에 만들고, 모정과 입 사이에는 오색실과 색종이로 장식하였다. 턱의 끈은 검은색이 달려 있고, 상모를 달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특징 및 의의

벙거지는 대부분 흑의와 병용해 사용되었다. 지역에 따라 황해도에서는 벙터지, 제주도에서는 털벌립, 털벙것이라 불린다. 농악패의 잽이들이 쓰는 모자도 벙거지 또는 상모라 부른다. 농악에서는 공작미를 달지 않고, 종이나 깃털로 상모를 길게 만들어 단다. 혼례식신행에 뒤따르는 짐꾼들도 벙거지를 쓰며, 무당굿에서도 전복을 입고 벙거지를 쓰고 굿을 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高麗史, 三才圖會, 林下筆記, 靑城雜記, 靑莊館全書, 군복 관모에 관한 연구(강순제, 학예지4,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1995), 명선-중(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2004), 조선상식문답(최남선, 동명사, 1948), 한국군복의 변천사 연구(김정자, 민속원, 199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1991), 한민족역사문화도감-의생활(국립민속박물관, 2005), 한국복식사전(강순제 외, 민속원, 2015), 문화재청(cha.go.kr).

벙거지

벙거지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염정하(廉貞夏)
갱신일 2018-10-22

정의

조선시대 신분이 낮은 무인 등이 쓰는 전립을 속칭하여 이르는 말.

내용

‘벙거지’나 ‘벙테기’라는 명칭은 북방 호족胡族으로부터 온 외래어이며,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정확한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벙거지의 재료는 짐승의 털을 다져서 만들었으므로 전립氈笠이라고도 하였다. 전립은 동물의 털에 습기와 열을 가한 후 다져서 펠트처럼 만들고, 그것을 복발형覆鉢形의 둥근 모옥帽屋에 양태를 단 입자형笠子形으로 만든 것이다. 전립은 전형적인 우리의 입자笠子와는 계열을 달리한다.중국 명나라 『삼재도회三才圖會』의 전립도氈笠圖에는 정자 장식을 한 전립이 호인胡人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전氈으로 모자를 만들어 쓰는 습속은 수隋·당대唐代에도 있었고, 송대宋代에는 북방 여러 민족의 영향, 특히 거란의 영향으로 전립을 쓰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전으로 만든 쓰개에 관한 기록은 『고려사高麗史』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1387년(우왕 13)에 “동반과 서반의 7품 이하는 전모氈帽와 사대絲帶를 착용하게 하고 …… ”라는 기록을 통해 모 소재의 쓰개를 공식적으로 사용한 시초는 고려 말경으로 볼 수 있다.조선의 전립과 관련 기록은 다음과 같다.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는 “우리나라의 전립은 옛날에는 군사들만 썼으므로 전립이라고도 하며 평민들은 다만 평량자平涼子를 썼는데,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 후부터 군민통용軍民通用의 입모가 되었다.”라고 하였다. 『청성잡기靑城雜記』에는 “우리나라 풍속에 양반은 모두 흑립을 쓰고 일반 백성은 대체로 전립을 쓰므로 흑립은 양반을 지칭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임하필기林下筆記』에는 “평안도와 함경도 사람들은 대부분 모毛전립을 쓰는데, 대개 오랑캐의 습속을 가깝게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오년(1618)에 명나라의 요청으로 요동遼東으로 출병한 뒤로는 나라에 모전립을 쓰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서로 보고 본뜨다가 마침내 온 나라 안에 두루 퍼지게 되었다. 정묘호란 이후로는 사대부 가운데도 이를 쓰는 사람이 있었고, 무인武人은 비록 대관大官이라도 다 그렇게 하였다. 모전립은 전립이라고도 하니, 이는 곧 전쟁의 징조였던가.”라는 기록이 있다. 즉 전립은 우리 고유의 풍습이 아닌 호풍胡風이며, 군인들이 쓰던 것이라 ‛전립’이라 명명되었다. 17세기 초반 여러 전쟁을 거치면서 군인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에게도 유행하게 되었다.전립 중에서 고급 무관이 쓰는 것은 ‘안올림벙거지’라 하고, 병사처럼 낮은 무인들이 쓰는 것은 ‘벙거지’라 하였다. 고급 무관의 안올림벙거지는 품질이 좋은 모毛로 만든 것으로 양태 안쪽에는 남색藍色 운문단雲紋緞으로 안을 올린 형태이다. 정수리에는 직급에 따라 모정帽頂에 도금한 것, 금·은·말총·나무 같은 재료에 구분을 둔 정자를 장식하고, 여기에 공작미孔雀尾, 상모象毛, 槊毛를 달고 끈으로 밀화영蜜花纓을 달았다. 이에 반해 조선조 궁중 또는 반가의 군노軍奴, 전령, 사대부가의 하인 등이 착용한 벙거지는 돼지털을 모아 다져서 거칠게 만들었다. 모정은 높고 둥글며 장식이 없고 끈을 매달았다.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소장된 홍색벙거지는 조선 말 아전이나 광대용으로 입의 틀은 모전과 홍저모紅猪毛에 만들고, 모정과 입 사이에는 오색실과 색종이로 장식하였다. 턱의 끈은 검은색이 달려 있고, 상모를 달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특징 및 의의

벙거지는 대부분 흑의와 병용해 사용되었다. 지역에 따라 황해도에서는 벙터지, 제주도에서는 털벌립, 털벙것이라 불린다. 농악패의 잽이들이 쓰는 모자도 벙거지 또는 상모라 부른다. 농악에서는 공작미를 달지 않고, 종이나 깃털로 상모를 길게 만들어 단다. 혼례식 때 신행에 뒤따르는 짐꾼들도 벙거지를 쓰며, 무당굿에서도 전복을 입고 벙거지를 쓰고 굿을 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高麗史, 三才圖會, 林下筆記, 靑城雜記, 靑莊館全書, 군복 관모에 관한 연구(강순제, 학예지4,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1995), 명선-중(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2004), 조선상식문답(최남선, 동명사, 1948), 한국군복의 변천사 연구(김정자, 민속원, 199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1991), 한민족역사문화도감-의생활(국립민속박물관, 2005), 한국복식사전(강순제 외, 민속원, 2015), 문화재청(ch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