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선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안애영(安愛英)
갱신일 2018-10-22

정의

발을 보호하고, 보온을 위해 옷감으로 만들어 발에 신는 복식.

내용

버선은 한자어로 ‘말襪’, ‘족의足衣’라고 하며, 궁중에서는 왕위와 관련된 이들(왕이나 왕비, 세자와 세자빈)의 버선을 ‘족건足巾’이라고 했다. 버선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에는 ‘말’이라는 목이 긴 버선이 있었다. 특히 여자의 버선은 버선목이 따로 있는 ‘말요襪袎’라고 하며 버선목에 끈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옷감은 옷과 같은 고급직물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계급의 차별 없이 흰색의 포布로 버선을 만들었으며, 조선시대에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계급에 상관없이 흰색 포의 버선을 신었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영친왕 일가의 복식 가운데에도 흰 무명으로 된 왕의 백말白襪과 영친왕비의 백말이 있다. 그러나 조선 왕실복식을 기록한 『상방정례尙方定例』에는 왕(대전)과 왕비(중궁전)의 법복法服과 세자와 세자빈의 법복에는 법복의 색과 같은 비단으로 된 적말[赤襪次大紅廣的]과 흑말[黑襪次冒緞]이 있다. 법복에 신는 말은 목 부분이 통으로 재단된 것과 따로 재단된 두 종류의 도식이 있으며 회목 옆이나 부리 뒤쪽에는 바지 위로 묶을 수 있도록 끈을 달았다. 영친왕비(1901~1989)의 유물 가운데에도 적의를 착용할 때 청석靑舃과 함께 신었던 목 부분이 통으로 재단된 청말靑襪이 있다. 이러한 말들은 족건인 버선을 신고, 그 위에 말을 신은 것으로 이해된다.
1819년 이후 궁녀들에 의해서 작성된 「궁중발기宮中撥記」에는 기록이 많지는 않지만 족건이 있고, 유년기 관계 발기에 오목이가 있으며, 버선은 세는 단위를 ‘켤레’라 하였다.

특징 및 의의

버선은 좌우를 구분하여 짝을 만들어 한 켤레로 되어 있다. 버선의 부위에서 버선등(발등)에 이음솔기를 수눅이라고 하며, 뒤꿈치에 들어간 곳에서부터 수평으로 앞목에 이르는 부분을 회목이라고 한다. 수눅의 솔기처리는 버선의 좌우를 구별하여 짝을 이루는 기준이 된다. 수눅의 시접이 왼쪽으로 꺾여서 왼쪽이 두꺼우면 왼쪽 버선, 시접이 오른쪽으로 꺾여서 오른쪽이 두꺼우면 오른쪽 버선이다. 이렇게 좌우의 버선이 짝을 이루어 한 켤레가 된다. 회목은 넓이가 넓을수록 버선 신기가 쉬워지며, 회목의 넓이에 따라 버선의 착용감이 달라진다. 버선에는 수눅이 곧은 ‘곧은목 버선’과 수눅이 누은 ‘뉘인목버선’이 있으며, 구성방법에 따라 홑·겹·솜·누비버선이 있다. 특히 어린이용으로 오목이(타래버선)가 있다. 곧은목버선은 신어서 회목의 여유가 있으며, 뉘인목버선은 신어서 회목이 끼게 되어 있다. 출토 유물 버선은 대부분 ‘뉘인목버선’으로 소재는 겉감은 세목細木이나 광목이며 안감은 광목, 거친 면, 또는 삼베로 되었다. 대부분 전래유물은 흰색으로 20세기 초 버선들로 ‘곧은목버선’이다. 소재는 신분의 상하 없이 다 같이 흰색이며, 소재는 주로 목면木棉이다. 서양목이 들어오면서 「발기」의 기록에서도 족건의 의차衣次(옷감)에 서양목·옥양목·세목 등이 있다.
타래버선은 어린이용 버선으로 돌옷의 일습一襲으로 착용하며, 솜을 두어 누빈 뒤에 색실로 수를 놓아 장식하였다. 발목 뒤에 남아는 남색 끈, 여아는 홍색 끈을 달아 앞으로 돌려 매어 벗겨지는 것을 방지하였다.

참고문헌

古文書集成, 尙方定例, 명선-하(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2005), 영친왕 일가 복식(국립고궁박물관, 2010), 한국복식문화사(유희경·김문자, 교문사, 1981), 조선조 궁중복식연구(김용숙, 일지사, 1987).

버선

버선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안애영(安愛英)
갱신일 2018-10-22

정의

발을 보호하고, 보온을 위해 옷감으로 만들어 발에 신는 복식.

내용

버선은 한자어로 ‘말襪’, ‘족의足衣’라고 하며, 궁중에서는 왕위와 관련된 이들(왕이나 왕비, 세자와 세자빈)의 버선을 ‘족건足巾’이라고 했다. 버선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에는 ‘말’이라는 목이 긴 버선이 있었다. 특히 여자의 버선은 버선목이 따로 있는 ‘말요襪袎’라고 하며 버선목에 끈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옷감은 옷과 같은 고급직물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계급의 차별 없이 흰색의 포布로 버선을 만들었으며, 조선시대에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계급에 상관없이 흰색 포의 버선을 신었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영친왕 일가의 복식 가운데에도 흰 무명으로 된 왕의 백말白襪과 영친왕비의 백말이 있다. 그러나 조선 왕실복식을 기록한 『상방정례尙方定例』에는 왕(대전)과 왕비(중궁전)의 법복法服과 세자와 세자빈의 법복에는 법복의 색과 같은 비단으로 된 적말[赤襪次大紅廣的]과 흑말[黑襪次冒緞]이 있다. 법복에 신는 말은 목 부분이 통으로 재단된 것과 따로 재단된 두 종류의 도식이 있으며 회목 옆이나 부리 뒤쪽에는 바지 위로 묶을 수 있도록 끈을 달았다. 영친왕비(1901~1989)의 유물 가운데에도 적의를 착용할 때 청석靑舃과 함께 신었던 목 부분이 통으로 재단된 청말靑襪이 있다. 이러한 말들은 족건인 버선을 신고, 그 위에 말을 신은 것으로 이해된다.1819년 이후 궁녀들에 의해서 작성된 「궁중발기宮中撥記」에는 기록이 많지는 않지만 족건이 있고, 유년기 관계 발기에 오목이가 있으며, 버선은 세는 단위를 ‘켤레’라 하였다.

특징 및 의의

버선은 좌우를 구분하여 짝을 만들어 한 켤레로 되어 있다. 버선의 부위에서 버선등(발등)에 이음솔기를 수눅이라고 하며, 뒤꿈치에 들어간 곳에서부터 수평으로 앞목에 이르는 부분을 회목이라고 한다. 수눅의 솔기처리는 버선의 좌우를 구별하여 짝을 이루는 기준이 된다. 수눅의 시접이 왼쪽으로 꺾여서 왼쪽이 두꺼우면 왼쪽 버선, 시접이 오른쪽으로 꺾여서 오른쪽이 두꺼우면 오른쪽 버선이다. 이렇게 좌우의 버선이 짝을 이루어 한 켤레가 된다. 회목은 넓이가 넓을수록 버선 신기가 쉬워지며, 회목의 넓이에 따라 버선의 착용감이 달라진다. 버선에는 수눅이 곧은 ‘곧은목 버선’과 수눅이 누은 ‘뉘인목버선’이 있으며, 구성방법에 따라 홑·겹·솜·누비버선이 있다. 특히 어린이용으로 오목이(타래버선)가 있다. 곧은목버선은 신어서 회목의 여유가 있으며, 뉘인목버선은 신어서 회목이 끼게 되어 있다. 출토 유물 버선은 대부분 ‘뉘인목버선’으로 소재는 겉감은 세목細木이나 광목이며 안감은 광목, 거친 면, 또는 삼베로 되었다. 대부분 전래유물은 흰색으로 20세기 초 버선들로 ‘곧은목버선’이다. 소재는 신분의 상하 없이 다 같이 흰색이며, 소재는 주로 목면木棉이다. 서양목이 들어오면서 「발기」의 기록에서도 족건의 의차衣次(옷감)에 서양목·옥양목·세목 등이 있다.타래버선은 어린이용 버선으로 돌옷의 일습一襲으로 착용하며, 솜을 두어 누빈 뒤에 색실로 수를 놓아 장식하였다. 발목 뒤에 남아는 남색 끈, 여아는 홍색 끈을 달아 앞으로 돌려 매어 벗겨지는 것을 방지하였다.

참고문헌

古文書集成, 尙方定例, 명선-하(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2005), 영친왕 일가 복식(국립고궁박물관, 2010), 한국복식문화사(유희경·김문자, 교문사, 1981), 조선조 궁중복식연구(김용숙, 일지사,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