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복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김은정(金垠呈)
갱신일 2018-10-05

정의

굿을 연행할 때 무속인이 굿거리에 따라 착용하는 일종의 종교복식.

내용

무복巫服은 굿을 행하는 지역과 굿의 종류에 따라 그 양상을 달리하는데 강신무降神巫와 세습무世襲巫, 강신무와 세습무 혼용으로 나뉜다. 강신무복은 서울·중부지역 강신무가 착용하는 무복이고, 세습무복은 호남·남부 지역 세습무가 착용하는 무복이며, 강신무복과 세습무복의 혼용을 나타내는 제주와 경상·충청 지역으로 분류된다. 강신무는 굿거리마다 모시는 신을 달리 표현하려고 굿거리마다 다양한 무복을 갈아입는다. 서울 지역의 강신무가 착용하는 무복 종류나 구성의 근거는 굿거리를 그린 『무당내력巫堂來歷』(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을 통해서 확인된다.
자료에 따르면 무복은 제차를 12거리로 나누고, 굿거리에 해당하는 무복을 구체적으로 나타낸다. 부정거리不淨巨里에서 강신무는 평상복 차림을 하는데, 저고리의 수구와 깃에는 홍색 회장을 댄 반회장 황색 저고리에 남색 치마를 착용하였다. 제석거리帝釋巨里에서 강신무는 고깔을 쓰고 백색 장삼을 착용했으며, 어깨와 가슴에 붉은색 대를 맨다. 불교를 상징하는 승복을 착용하여 불법승을 상징하였다. 대거리大巨里에서는 주립을 쓰고 남색 철릭을 입었으며, 홍색의 광대廣帶를 가슴 부위에 맸다. 호구거리戶口巨里에서 강신무는 면사를 쓰고 홍색 삼회장의 황색 저고리에 홍색 치마를 착용하였다. 별성거리別星巨里에서 강신무는 전립을 쓰고 홍색 소매가 달린 동다리를 입었으며 그 위에 흑색의 전복을 착용하고 가슴에는 청색의 대를 하였다. 감응청배感應請陪에서 강신무는 얹은머리에 녹색 장의長衣를 입고, 그 밑에 백색 속바지와 남색 치마를 입었다.
조상거리祖上巨里에서 강신무는 소매가 좁은 녹색의 포袍를 착용하고, 포 밑에는 백색의 속바지를 입는다. 남색치마 위에 백색의 대가 늘어져 있다. 만신말명에서 강신무는 수구가 넓은 황색의 몽두리를 입는다. 어깨 부위에는 홍색의 잣 무늬가 있고, 가슴 부위에 붉은색 대帶를 맸다. 구릉거리에서 강신무는 홍색 철릭을 입고, 청색 전대靑戰帶를 맸다. 성조거리成造巨里에서 강신무는 소매가 넓은 색동 원삼을 입었다. 창부거리唱婦巨里에서 강신무는 홍색 저고리에 녹색 치마를 입으며 흑색 쾌자를 입었다. 뒷전에서 강신무는 홍색 저고리에 녹색 치마를 입었다. 중부 지역인 서울 강신무의 경우에는 경쾌한 음악과 함께 춤이 추어지고 신이 내려 공수하는 과정에서 무속인은 거리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포를 갈아입는다. 각 지역에서 착용하는 무복의 종류와 형태는 다양한데, 그중 무복의 종류가 가장 많은 지역은 서울이다. 굿거리에서 무속인이 평상복을 입고 있다는 것은 굿의 집행자로서 예비상태를 알리는 것이다. 무속인이 거리마다 해당 신의 의복을 입어 신이 내려왔다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다. 이때 무녀가 착용하는 외의에는 무복 장삼·무복 원삼·무복 철릭·무복 동다리·무복 몽두리로 전통복식의 포袍이며, 이러한 무복을 갖추어 관모나 장신구를 착용한다. 무속인이 신을 모셔 놓고 연행하는 거리는 시기나 목적, 규모에 따라 다르다. 모시는 제신에 따라 무복의 유형이 다르고, 명칭 또한 다를 수는 있으나 착용하는 방식에는 기본형이 있다.
강신무가 굿거리에 따라 착용하는 무복은 무속인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무복 철릭은 조선시대 융복으로 정착되어 전쟁 중에는 공복으로 착용하였다. 이는 굿거리에서 최영 장군이나 억울하게 죽은 문무백관의 신을 상징한다. 무복 장삼은 불교복식으로 출산을 관장하는 신이나 불법승을 상징하는 거리에서 착용한다. 무복 원삼은 궁중에서 왕비나 공주가 착용했던 궁중 여성의 복식으로 굿거리에서 가옥을 관장하고 가정을 지키는 신을 상징한다. 무복 몽두리는 무업을 하다가 죽은 무속인의 조상신을 상징한다. 무복 동다리는 조선시대 구군복으로 높은 벼슬을 했던 무관의 혼령을 상징한다. 이처럼 강신무가 무복으로 착용하는 외의에는 굿거리의 의미를 전달하고 주신을 대변한다. 무속인이 착용한 무복원삼에는 화관을 쓰고, 무복 장삼에는 종이 고깔이나 천고깔을 쓴다. 무복 철릭에는 흑립을, 동다리에는 벙거지를 착용한다. 이는 조선시대 궁중복식을 착용함으로써 무녀를 신격화하며, 무녀를 통해서 신의 행위를 설명하는 상징이 된다.
반면 강신무와 대조를 이루는 세습무는 호남지역에서 연행하는 굿으로 신을 상징하는 무복을 착용하기보다는 무가와 춤사위로 굿거리 성격을 나타낸다. 호남 지역 굿의 종류는 명칭이 다양한데, 대부분 죽은 사람의 혼을 위로하는 씻김굿이다. 남부 지역에서 세습무가 착용하는 무복은 서울이나 중부 지역과 달리 각 거리에서 무복의 종류가 단순하다. 호남 지역 무복에 대한 문헌상 기록이 <제석굿무가> 외에는 남아 있지 않은데, 점과 굿이 진행되는 동안 무복 장삼 외에는 서민들이 평상시에 착용했던 전통복식인 무복 바지·무복 저고리·무복 치마만을 무복으로 단순하게 착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습무 지역도 굿의 종류나 무속인의 성향에 따라 강신무와 세습무가 함께 참여하면서 세습무복도 종류가 다양해졌다. 일반적으로 무복이 전통복식인 무복 바지, 무복 저고리 외에도 다양한 외의外衣인 포와 관모를 착용한다.
강신무와 세습무가 혼용된 제주도나 경상·충청 지역에서는 현재 굿의 종류에 따라 무복 바지·무복 저고리·무복 장삼·무복 쾌자·무복 동다리·무복 두루마기· 무복 철릭 등에 외의인 포에 해당하는 관모나 대를 착용한다. 이러한 무복은 현재 신복神服으로 간주되지만, 굿거리 현장에서만 입는 고유한 특수 복식이 아닌 과거 전통복식에서 차용한 것이다. 하지만, 현행 굿거리에서 착용하는 무복은 무속 문화의 환경적 변화로 구매나 관리 방법이 간편해졌다. 현대인의 감성을 중요시 여기면서 현대 한복 형태나 색상 등 유행에 민감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1. 서울 진적굿: 서울 인왕산 입구에 위치한 굿당인 국사당에서 진적굿을 연행하였다. 진적굿에서는 주무를 포함하여 여섯 명이 참여하였는데, 무속인들이 착용하는 무복의 종류는 다양하였다. 굿거리마다 무속인이 착용하는 다양한 포는 황색 무복 몽두리, 색동 무복 원삼, 백색 무복 장삼, 남색 무복 철릭·홍색 무복 철릭·자주색 무복 철릭, 황색동이 달린 무복 동다리, 남색 무복 쾌자로 갖추어 입어 무속인을 신격화하였다. 다양한 무복인 포를 착용할 때는 머리에 쓰는 관모나 장신구도 굿거리에 따라 무복과 일습을 이루었다. 진적굿에서 무복의 기능은 크게 세 가지이다. 굿을 준비하는 초반부인 부정청배에서 무속인은 무복 저고리와 무복 치마를 입었다. 중반부에서는 굿거리의 신을 상징하는 신격의 무복을 다양하게 갈아입었다. 후반부 뒷전에서는 무복 저고리와 치마만을 착용한다.
2. 경상도 오구굿: 경북 영덕에서 연행되었던 병곡 오구굿은 굿거리 과정에서 무속인들은 무복 치마와 무복 저고리를 기본 복식으로 착용하였다. 하지만 여느 굿과 달리 무속인들이 많이 참여하여 무복 저고리와 무복 치마는 다양한 형태와 색상으로 변화를 주어 착용하였다. 특히 병곡 오구굿에서 무속인들이 착용한 무복 저고리와 무복 치마는 색상과 소재가 다양하여 전체 굿거리에서 무녀가 착용하는 무복 저고리와 무복 치마는 크게 여덟 가지 유형으로 나타났다. 그 외에 무복으로 무복 남자저고리·무복 바지·무복 조끼·무복 두루마기·무복 쾌자·고깔·대를 착용하였다. 대는 가슴에 두르는 넓은 대와 머리에 두르는 좁은 머리띠를 함께 착용하였다.
3. 호남 저승혼사굿: 전남 목포 가정집에서 연행되었던 저승혼사굿은 고인이 된 남편과 생전에 혼례식을 올리지 못한 부인이 저승혼사굿을 하기 위해 의뢰한 굿이다. 주무인 세습무가 굿거리 중에 하늘색 옷고름이 있는 백색 무복 저고리와 백색 치마를 착용하였다. 굿거리 연행과정 중에 제석거리에서만 무복 장삼을 착용하였는데, 무복 장삼은 소매가 없는 반비 형태로 반소매를 두 겹 접어 착용하였다. 머리에는 창호지로 접은 고깔을 썼다. 굿의 성격에 따라 저승혼사굿에서는 허재비를 만들어 망자를 형상화하였다. 무속인이 짚으로 만든 허재비에 전통 혼례식에 착용하는 남자 혼례복단령·사모·마고자·저고리·바지·저고리를 입혀 굿을 연행하였다. 종장인 중천에서 무속인은 백색 무복 저고리와 무복 치마만을 착용하였다.
4. 제주도 성주굿: 제주의 성주굿은 집을 지어가는 과정을 재현하면서 무속인이 복을 기원하는 퍼포먼스를 겸한 굿으로 무복을 착용하는 과정이 다른 지역과 차이가 있었다. 성주굿에서 착용하는 무복은 중부 지역의 강신무처럼 다양한 무복을 착용하거나 남부 지역 세습무처럼 백색 한복을 착용하지 않았다. 주무만이 무복을 소지하였고 거리에 따라 달리 착용하였으나 무복은 다양하지 않았다. 굿거리 과정에서는 백색 무복 저고리와 무복 바지를 기본으로 백색 두루마기, 무복 쾌자만을 입었다. 그 외 색동대대인 흉대(가슴띠)를 하였고, 목에는 노란 끈으로 목 띠를 둘렀다. 머리에는 탕건을 쓰고 그 위에 흑색 갓을 썼다. 그 외 굿 연행에 참여한 다른 무속인은 무복으로 진분홍색 무복 두루마기나 평상복만을 착용하였다.

특징 및 의의

현재 굿거리에서 착용하는 무복은 권위와 위엄의 상징체계로 활용되어 전통복식의 형태가 지속될 수 있는 근간이 된다. 다양한 포를 착용하는 강신무는 무복 장삼, 무복 철릭, 무복 몽두리, 무복 원삼, 무복 단령, 무복 당의, 무복 도포 등을 착용하여 신을 형상화하고 있다. 세습무의 경우에는 무복을 화려하게 착용하지 않고 무복 치마, 무복 저고리, 무복 장삼만을 착용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호남이나 충청 지역에서도 세습무와 강신무가 함께 굿을 연행하고 있어 화려한 무복을 입기도 한다. 이러한 무복은 최근 무형문화재 지정에 따른 무속인의 인식변화에 따라 조선시대 착용했던 고유한 전통복식의 형태가 유지되고 있다.

참고문헌

무당내력(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민속원, 2005), 한국무속복식의 착용실태에 관한 연구(김은정, 남도민속연구28, 남도민속학회, 2014), 한국민속신앙사전-무속신앙(국립민속박물관, 2009), 한국의 무복(김은정, 민속원, 2004), 호남의 저승혼사굿(나경수 외, 민속원, 2016).

무복

무복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김은정(金垠呈)
갱신일 2018-10-05

정의

굿을 연행할 때 무속인이 굿거리에 따라 착용하는 일종의 종교복식.

내용

무복巫服은 굿을 행하는 지역과 굿의 종류에 따라 그 양상을 달리하는데 강신무降神巫와 세습무世襲巫, 강신무와 세습무 혼용으로 나뉜다. 강신무복은 서울·중부지역 강신무가 착용하는 무복이고, 세습무복은 호남·남부 지역 세습무가 착용하는 무복이며, 강신무복과 세습무복의 혼용을 나타내는 제주와 경상·충청 지역으로 분류된다. 강신무는 굿거리마다 모시는 신을 달리 표현하려고 굿거리마다 다양한 무복을 갈아입는다. 서울 지역의 강신무가 착용하는 무복 종류나 구성의 근거는 굿거리를 그린 『무당내력巫堂來歷』(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을 통해서 확인된다.자료에 따르면 무복은 제차를 12거리로 나누고, 굿거리에 해당하는 무복을 구체적으로 나타낸다. 부정거리不淨巨里에서 강신무는 평상복 차림을 하는데, 저고리의 수구와 깃에는 홍색 회장을 댄 반회장 황색 저고리에 남색 치마를 착용하였다. 제석거리帝釋巨里에서 강신무는 고깔을 쓰고 백색 장삼을 착용했으며, 어깨와 가슴에 붉은색 대를 맨다. 불교를 상징하는 승복을 착용하여 불법승을 상징하였다. 대거리大巨里에서는 주립을 쓰고 남색 철릭을 입었으며, 홍색의 광대廣帶를 가슴 부위에 맸다. 호구거리戶口巨里에서 강신무는 면사를 쓰고 홍색 삼회장의 황색 저고리에 홍색 치마를 착용하였다. 별성거리別星巨里에서 강신무는 전립을 쓰고 홍색 소매가 달린 동다리를 입었으며 그 위에 흑색의 전복을 착용하고 가슴에는 청색의 대를 하였다. 감응청배感應請陪에서 강신무는 얹은머리에 녹색 장의長衣를 입고, 그 밑에 백색 속바지와 남색 치마를 입었다.조상거리祖上巨里에서 강신무는 소매가 좁은 녹색의 포袍를 착용하고, 포 밑에는 백색의 속바지를 입는다. 남색치마 위에 백색의 대가 늘어져 있다. 만신말명에서 강신무는 수구가 넓은 황색의 몽두리를 입는다. 어깨 부위에는 홍색의 잣 무늬가 있고, 가슴 부위에 붉은색 대帶를 맸다. 구릉거리에서 강신무는 홍색 철릭을 입고, 청색 전대靑戰帶를 맸다. 성조거리成造巨里에서 강신무는 소매가 넓은 색동 원삼을 입었다. 창부거리唱婦巨里에서 강신무는 홍색 저고리에 녹색 치마를 입으며 흑색 쾌자를 입었다. 뒷전에서 강신무는 홍색 저고리에 녹색 치마를 입었다. 중부 지역인 서울 강신무의 경우에는 경쾌한 음악과 함께 춤이 추어지고 신이 내려 공수하는 과정에서 무속인은 거리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포를 갈아입는다. 각 지역에서 착용하는 무복의 종류와 형태는 다양한데, 그중 무복의 종류가 가장 많은 지역은 서울이다. 굿거리에서 무속인이 평상복을 입고 있다는 것은 굿의 집행자로서 예비상태를 알리는 것이다. 무속인이 거리마다 해당 신의 의복을 입어 신이 내려왔다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다. 이때 무녀가 착용하는 외의에는 무복 장삼·무복 원삼·무복 철릭·무복 동다리·무복 몽두리로 전통복식의 포袍이며, 이러한 무복을 갖추어 관모나 장신구를 착용한다. 무속인이 신을 모셔 놓고 연행하는 거리는 시기나 목적, 규모에 따라 다르다. 모시는 제신에 따라 무복의 유형이 다르고, 명칭 또한 다를 수는 있으나 착용하는 방식에는 기본형이 있다.강신무가 굿거리에 따라 착용하는 무복은 무속인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무복 철릭은 조선시대 융복으로 정착되어 전쟁 중에는 공복으로 착용하였다. 이는 굿거리에서 최영 장군이나 억울하게 죽은 문무백관의 신을 상징한다. 무복 장삼은 불교복식으로 출산을 관장하는 신이나 불법승을 상징하는 거리에서 착용한다. 무복 원삼은 궁중에서 왕비나 공주가 착용했던 궁중 여성의 복식으로 굿거리에서 가옥을 관장하고 가정을 지키는 신을 상징한다. 무복 몽두리는 무업을 하다가 죽은 무속인의 조상신을 상징한다. 무복 동다리는 조선시대 구군복으로 높은 벼슬을 했던 무관의 혼령을 상징한다. 이처럼 강신무가 무복으로 착용하는 외의에는 굿거리의 의미를 전달하고 주신을 대변한다. 무속인이 착용한 무복원삼에는 화관을 쓰고, 무복 장삼에는 종이 고깔이나 천고깔을 쓴다. 무복 철릭에는 흑립을, 동다리에는 벙거지를 착용한다. 이는 조선시대 궁중복식을 착용함으로써 무녀를 신격화하며, 무녀를 통해서 신의 행위를 설명하는 상징이 된다.반면 강신무와 대조를 이루는 세습무는 호남지역에서 연행하는 굿으로 신을 상징하는 무복을 착용하기보다는 무가와 춤사위로 굿거리 성격을 나타낸다. 호남 지역 굿의 종류는 명칭이 다양한데, 대부분 죽은 사람의 혼을 위로하는 씻김굿이다. 남부 지역에서 세습무가 착용하는 무복은 서울이나 중부 지역과 달리 각 거리에서 무복의 종류가 단순하다. 호남 지역 무복에 대한 문헌상 기록이 외에는 남아 있지 않은데, 점과 굿이 진행되는 동안 무복 장삼 외에는 서민들이 평상시에 착용했던 전통복식인 무복 바지·무복 저고리·무복 치마만을 무복으로 단순하게 착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습무 지역도 굿의 종류나 무속인의 성향에 따라 강신무와 세습무가 함께 참여하면서 세습무복도 종류가 다양해졌다. 일반적으로 무복이 전통복식인 무복 바지, 무복 저고리 외에도 다양한 외의外衣인 포와 관모를 착용한다.강신무와 세습무가 혼용된 제주도나 경상·충청 지역에서는 현재 굿의 종류에 따라 무복 바지·무복 저고리·무복 장삼·무복 쾌자·무복 동다리·무복 두루마기· 무복 철릭 등에 외의인 포에 해당하는 관모나 대를 착용한다. 이러한 무복은 현재 신복神服으로 간주되지만, 굿거리 현장에서만 입는 고유한 특수 복식이 아닌 과거 전통복식에서 차용한 것이다. 하지만, 현행 굿거리에서 착용하는 무복은 무속 문화의 환경적 변화로 구매나 관리 방법이 간편해졌다. 현대인의 감성을 중요시 여기면서 현대 한복 형태나 색상 등 유행에 민감하게 나타나기도 한다.1. 서울 진적굿: 서울 인왕산 입구에 위치한 굿당인 국사당에서 진적굿을 연행하였다. 진적굿에서는 주무를 포함하여 여섯 명이 참여하였는데, 무속인들이 착용하는 무복의 종류는 다양하였다. 굿거리마다 무속인이 착용하는 다양한 포는 황색 무복 몽두리, 색동 무복 원삼, 백색 무복 장삼, 남색 무복 철릭·홍색 무복 철릭·자주색 무복 철릭, 황색동이 달린 무복 동다리, 남색 무복 쾌자로 갖추어 입어 무속인을 신격화하였다. 다양한 무복인 포를 착용할 때는 머리에 쓰는 관모나 장신구도 굿거리에 따라 무복과 일습을 이루었다. 진적굿에서 무복의 기능은 크게 세 가지이다. 굿을 준비하는 초반부인 부정청배에서 무속인은 무복 저고리와 무복 치마를 입었다. 중반부에서는 굿거리의 신을 상징하는 신격의 무복을 다양하게 갈아입었다. 후반부 뒷전에서는 무복 저고리와 치마만을 착용한다.2. 경상도 오구굿: 경북 영덕에서 연행되었던 병곡 오구굿은 굿거리 과정에서 무속인들은 무복 치마와 무복 저고리를 기본 복식으로 착용하였다. 하지만 여느 굿과 달리 무속인들이 많이 참여하여 무복 저고리와 무복 치마는 다양한 형태와 색상으로 변화를 주어 착용하였다. 특히 병곡 오구굿에서 무속인들이 착용한 무복 저고리와 무복 치마는 색상과 소재가 다양하여 전체 굿거리에서 무녀가 착용하는 무복 저고리와 무복 치마는 크게 여덟 가지 유형으로 나타났다. 그 외에 무복으로 무복 남자저고리·무복 바지·무복 조끼·무복 두루마기·무복 쾌자·고깔·대를 착용하였다. 대는 가슴에 두르는 넓은 대와 머리에 두르는 좁은 머리띠를 함께 착용하였다.3. 호남 저승혼사굿: 전남 목포 가정집에서 연행되었던 저승혼사굿은 고인이 된 남편과 생전에 혼례식을 올리지 못한 부인이 저승혼사굿을 하기 위해 의뢰한 굿이다. 주무인 세습무가 굿거리 중에 하늘색 옷고름이 있는 백색 무복 저고리와 백색 치마를 착용하였다. 굿거리 연행과정 중에 제석거리에서만 무복 장삼을 착용하였는데, 무복 장삼은 소매가 없는 반비 형태로 반소매를 두 겹 접어 착용하였다. 머리에는 창호지로 접은 고깔을 썼다. 굿의 성격에 따라 저승혼사굿에서는 허재비를 만들어 망자를 형상화하였다. 무속인이 짚으로 만든 허재비에 전통 혼례식에 착용하는 남자 혼례복인 단령·사모·마고자·저고리·바지·저고리를 입혀 굿을 연행하였다. 종장인 중천에서 무속인은 백색 무복 저고리와 무복 치마만을 착용하였다.4. 제주도 성주굿: 제주의 성주굿은 집을 지어가는 과정을 재현하면서 무속인이 복을 기원하는 퍼포먼스를 겸한 굿으로 무복을 착용하는 과정이 다른 지역과 차이가 있었다. 성주굿에서 착용하는 무복은 중부 지역의 강신무처럼 다양한 무복을 착용하거나 남부 지역 세습무처럼 백색 한복을 착용하지 않았다. 주무만이 무복을 소지하였고 거리에 따라 달리 착용하였으나 무복은 다양하지 않았다. 굿거리 과정에서는 백색 무복 저고리와 무복 바지를 기본으로 백색 두루마기, 무복 쾌자만을 입었다. 그 외 색동대대인 흉대(가슴띠)를 하였고, 목에는 노란 끈으로 목 띠를 둘렀다. 머리에는 탕건을 쓰고 그 위에 흑색 갓을 썼다. 그 외 굿 연행에 참여한 다른 무속인은 무복으로 진분홍색 무복 두루마기나 평상복만을 착용하였다.

특징 및 의의

현재 굿거리에서 착용하는 무복은 권위와 위엄의 상징체계로 활용되어 전통복식의 형태가 지속될 수 있는 근간이 된다. 다양한 포를 착용하는 강신무는 무복 장삼, 무복 철릭, 무복 몽두리, 무복 원삼, 무복 단령, 무복 당의, 무복 도포 등을 착용하여 신을 형상화하고 있다. 세습무의 경우에는 무복을 화려하게 착용하지 않고 무복 치마, 무복 저고리, 무복 장삼만을 착용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호남이나 충청 지역에서도 세습무와 강신무가 함께 굿을 연행하고 있어 화려한 무복을 입기도 한다. 이러한 무복은 최근 무형문화재 지정에 따른 무속인의 인식변화에 따라 조선시대 착용했던 고유한 전통복식의 형태가 유지되고 있다.

참고문헌

무당내력(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민속원, 2005), 한국무속복식의 착용실태에 관한 연구(김은정, 남도민속연구28, 남도민속학회, 2014), 한국민속신앙사전-무속신앙(국립민속박물관, 2009), 한국의 무복(김은정, 민속원, 2004), 호남의 저승혼사굿(나경수 외, 민속원,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