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기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이호정(李祜姃)
갱신일 2018-10-02

정의

머리카락을 묶거나 정리하고 혹은 장식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직물로 만든 머리 장식품.

역사

댕기의 옛 이름인 ‘당기’는 ‘머리를 당긴다.’라는 의미로 생긴 이름이다. 댕기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계속 착용하였음을 문헌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먼저 댕기의 다른 명칭인 ‘단기檀紀’는 단군 때에 처음으로 땋은 머리를 시작하여 끈이나 천으로 결발結髮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단군 원년에 “나라 사람들에게 머리를 땋고 개수하는 법을 가르쳤다.”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 고조선 시기에 이미 머리를 땋았음을 말해 주고 있다. 또한 『해동역사海東繹史』에는 “삼한三韓의 부인은 반발盤髮하였는데 모두 아괄鴉髺을 찌었고 여발餘髮(남은 머리)은 늘어뜨렸으며 여자는 말아서 뒤에 드리운다.”라는 기록을 통해 삼국시대 이전부터 머리를 빗어 정리하여 머리모양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머리모양을 고정하고 장식하기 위하여 댕기와 유사한 머리 장식이 이미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삼국시대의 댕기의 사용은 문헌 및 벽화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먼저 고구려는 머릿수건이나 머리띠 형태로 직물을 사용한 모습, 쪽과 비녀 모양 장식을 한 모습 등이 벽화에 나타난다. 특히 안악 3호분 벽화에서는 신분에 따라 댕기를 착장한 모습과 장식 방법을 파악할 수 있는데, 묘주 부인 좌우에 위치한 시녀의 머리에 늘어뜨려진 폭이 좁고 색이 붉은 직물과 행렬도 고취악대 중 춤꾼으로 보이는 여자들이 머리에 묶은 붉은색 직물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북사北史』 열전列傳에는 “백제의 처녀는 머리를 뒤로 땋아 늘어뜨리고 부인은 두 갈래로 나누어 머리 위에 얹었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서唐書』 동이전東夷傳 신라조新羅條에는 “옷의 빛깔은 흰빛을 숭상하고 부인은 머리카락을 땋아 머리에 틀어 올리는데 여러 가지 비단과 구슬로써 장식한다.”라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에서 모두 공통적으로 댕기를 여자들의 수식품으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남녀 모두 댕기를 사용하였고, 댕기의 색채와 소재 등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 있다. 먼저 『송사宋史』 고려전高麗傳에는 “고려 때 일반 서민 여자들은 머리털을 뭉치어 오른쪽 어깨에 늘여서 붉은 비단 헝겊으로 묶어 비녀를 꽂았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권20 부인여자조婦人女子條에는 “출가하기 전 여자는 홍색 라로 머리를 묶고 여발은 뒤로 내렸으며, 남자 역시 머리를 홍색 라 대신 검은색 라로 묶었다. 부인들은 머리를 틀어 라직물로 묶고 여기에 작은 비녀를 했으며, 나머지는 머리를 뒤에 내려뜨렸는데 이는 귀천貴賤의 구별 없이 동일하였다.”라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고려 후기에는 원元의 영향으로 변발辮髮이 정착하면서 댕기가 필수 수식품이 되었고, 이후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확립으로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을 불경으로 여겼다.

내용

댕기는 일반적으로 ‘땋은머리의 끝에 드리는 천으로 만든 장식의 일종이며, 여자의 수발과 함께 생겨났다.’라고 정의되어 왔다. 그러나 댕기는 땋은머리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머리 형태에서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장식하는 용도로 사용되었고, 성별·연령·용도에 따라 다양한 길이와 너비, 장식과 문양을 포함하는 여러 가지 형태로 발달하였다. 따라서 최근 연구에서는, 댕기는 머리카락을 묶는 끈, 즉 머리카락을 묶거나 정리하고 장식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직물 수식품으로 개념화하고 있다. 즉, 댕기는 다양하고 화려한 수식 가운데 금속이나 원석류가 아닌 유일한 직물 수식이며, 남녀노소, 신분의 상하를 불문하고 사용했던 복식품이다.
댕기의 종류는 크게 용도나 연령에 따라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용도별로 구분하면 크게 궁중에서 궁녀들이 사용했던 네 가닥 댕기, 팥잎댕기 등이 있으며, 예장용으로는 떠구지댕기, 매개댕기, 도투락댕기, 앞댕기, 뒷댕기, 고이댕기, 드림댕기, 앞줄댕기 등이, 일상용으로 사용하는 쪽댕기, 도투락댕기, 말뚝댕기, 제비부리댕기, 배씨댕기, 목판댕기 등 세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명칭은 댕기의 끝부분을 처리하는 방법이나 드리는 방향에 따라 명명되었다. 또한 연령에 따라 어린아이들 배씨댕기, 말뚝댕기, 제비부리댕기, 도투락댕기 등을 사용하였으며, 미혼 남녀는 제비부리댕기를 사용하였다. 기혼 여자들이 쪽머리를 곱게 만들기 위해 사용한 쪽댕기는 조선시대 복식 규범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젊은 부인은 붉은색, 중년은 자주색, 노인은 짙은 자주색, 과부는 검은색, 상제는 흰색을 사용했다. 남편이 살아 있는 부인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붉은색을 사용했으며, 과부는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검은색 댕기를 드렸다.
댕기의 착용이 쇠퇴하기 시작한 것은 1895년(고종 32)에 시행된 단발령 이후부터이다. 이때 여자들의 머리모양은 단발령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으나, 신여성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서양식의 머리모양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1910년대 이후 일제의 강압적인 지배 아래에서 애국심의 표현으로 한복의 착용이 늘어나면서 여학생들을 중심으로 땋은머리와 자주색 댕기를 드리웠으나 점차 그 길이가 짧아져 사회적인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후 1930년대까지는 머리를 곱게 땋고 그 끝에 댕기를 드리운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으나 1937년부터 서양식 파마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광복 후에는 쪽머리나 땋은머리를 시골에서조차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특징 및 의의

댕기는 머리를 고정하거나 장식하는 데 사용했던 직물 수식품으로, 머리를 빗는 과정에서부터 함께 삽입되어 머리모양을 완성하는 데 쓰임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이것은 미적인 효과를 중요시하는 다른 수식품들과는 다르게 댕기는 예禮를 갖추기 위해 드렸으며, 그만큼 예를 갖추는 것이 중요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장식하는 방법으로는 석웅판石雄板, 오색견사, 옥판玉板등을 더하여 치장하거나 직물에 수복壽福, 부귀富貴, 다남多男 등을 상징하는 문자와 문양을 화려하게 금박 또는 자수로 장식하였다. 그러면서 명확하게 정해진 일정한 재료나 형식은 없었는데, 다른 수식처럼 특별한 기술을 가진 장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반 여자들이 일정한 형식 없이 만들었기 때문에 지역이나 집안, 제작자에 따라 그 형태나 특징이 조금씩 다르게 표현되었다. 또한 당시에는 비단이라는 소재가 무척 귀했기 때문에 일정한 규격이나 색채를 맞추기보다 소재의 형편에 맞추어 만든 것으로 보인다. 색은 일반적으로 붉은색, 자주색, 흑색을 띄며 사용자에 따라 달리하였는데, 젊은 여자는 붉은색, 중년은 자주색, 노인은 짙은 자주색, 과부는 검은색, 상제는 흰색을 사용하여 색채에 의미와 상징을 부여하였고, 특히 미혼 여자의 길게 땋은머리에 드린 붉은 댕기는 검은색의 머리카락과 조화되어 뚜렷하게 주목되는 시각적인 효과를 주었다.
댕기는 신분이나 용도에 따라 소재와 색채에 차이를 두어 제작하였다. 일반적으로 사紗, 비단, 무명 등을 주로 소재로 사용하였으며, 댕기를 주제로 한 민요에서는 공단, 생견, 갑사, 생초 등의 옷감을 언급하고 있다. 댕기에 사용한 소재 중에서 특이한 것은 닥나무로 만든 한지인데, 남녀노소가 상을 당했을 때 만들어 탈상脫喪 때까지 조심스럽게 사용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영조 대 이후에 노론은 흰 댕기가 꺼림칙하다고 하여 한지에 먹물을 들여 사용했다고 한다. 1880년대에는 비단이 귀해서 안감으로 무명을 썼는데, 겉은 살짝 비단을 입혀 공단처럼 보이도록 짠 ‘미치광이 모본단’이라는 소재가 유행했다. 이 소재는 일반 서민 가정에서 혼례도투락댕기를 만들 때 썼다고 하는데, 현재 도투락댕기 유물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20년대 말부터는 학단, 공단, 인조견을 소재로 많이 사용하였다.

참고문헌

댕기에 관한 연구(이승현,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2), 우리 옷과 장신구(이경자·홍나영·장숙환, 열화당, 2003), 전통 장신구(장숙환, 대원사, 2002), 한국복식문화사전(김영숙, 미술문화, 1998), 한국복식사(유송옥, 수학사, 1998), 한국복식사전(강순제 외, 민속원, 2015).

댕기

댕기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이호정(李祜姃)
갱신일 2018-10-02

정의

머리카락을 묶거나 정리하고 혹은 장식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직물로 만든 머리 장식품.

역사

댕기의 옛 이름인 ‘당기’는 ‘머리를 당긴다.’라는 의미로 생긴 이름이다. 댕기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계속 착용하였음을 문헌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먼저 댕기의 다른 명칭인 ‘단기檀紀’는 단군 때에 처음으로 땋은 머리를 시작하여 끈이나 천으로 결발結髮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단군 원년에 “나라 사람들에게 머리를 땋고 개수하는 법을 가르쳤다.”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 고조선 시기에 이미 머리를 땋았음을 말해 주고 있다. 또한 『해동역사海東繹史』에는 “삼한三韓의 부인은 반발盤髮하였는데 모두 아괄鴉髺을 찌었고 여발餘髮(남은 머리)은 늘어뜨렸으며 여자는 말아서 뒤에 드리운다.”라는 기록을 통해 삼국시대 이전부터 머리를 빗어 정리하여 머리모양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머리모양을 고정하고 장식하기 위하여 댕기와 유사한 머리 장식이 이미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삼국시대의 댕기의 사용은 문헌 및 벽화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먼저 고구려는 머릿수건이나 머리띠 형태로 직물을 사용한 모습, 쪽과 비녀 모양 장식을 한 모습 등이 벽화에 나타난다. 특히 안악 3호분 벽화에서는 신분에 따라 댕기를 착장한 모습과 장식 방법을 파악할 수 있는데, 묘주 부인 좌우에 위치한 시녀의 머리에 늘어뜨려진 폭이 좁고 색이 붉은 직물과 행렬도 고취악대 중 춤꾼으로 보이는 여자들이 머리에 묶은 붉은색 직물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북사北史』 열전列傳에는 “백제의 처녀는 머리를 뒤로 땋아 늘어뜨리고 부인은 두 갈래로 나누어 머리 위에 얹었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서唐書』 동이전東夷傳 신라조新羅條에는 “옷의 빛깔은 흰빛을 숭상하고 부인은 머리카락을 땋아 머리에 틀어 올리는데 여러 가지 비단과 구슬로써 장식한다.”라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에서 모두 공통적으로 댕기를 여자들의 수식품으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고려시대에는 남녀 모두 댕기를 사용하였고, 댕기의 색채와 소재 등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 있다. 먼저 『송사宋史』 고려전高麗傳에는 “고려 때 일반 서민 여자들은 머리털을 뭉치어 오른쪽 어깨에 늘여서 붉은 비단 헝겊으로 묶어 비녀를 꽂았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권20 부인여자조婦人女子條에는 “출가하기 전 여자는 홍색 라로 머리를 묶고 여발은 뒤로 내렸으며, 남자 역시 머리를 홍색 라 대신 검은색 라로 묶었다. 부인들은 머리를 틀어 라직물로 묶고 여기에 작은 비녀를 했으며, 나머지는 머리를 뒤에 내려뜨렸는데 이는 귀천貴賤의 구별 없이 동일하였다.”라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고려 후기에는 원元의 영향으로 변발辮髮이 정착하면서 댕기가 필수 수식품이 되었고, 이후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확립으로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을 불경으로 여겼다.

내용

댕기는 일반적으로 ‘땋은머리의 끝에 드리는 천으로 만든 장식의 일종이며, 여자의 수발과 함께 생겨났다.’라고 정의되어 왔다. 그러나 댕기는 땋은머리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머리 형태에서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장식하는 용도로 사용되었고, 성별·연령·용도에 따라 다양한 길이와 너비, 장식과 문양을 포함하는 여러 가지 형태로 발달하였다. 따라서 최근 연구에서는, 댕기는 머리카락을 묶는 끈, 즉 머리카락을 묶거나 정리하고 장식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직물 수식품으로 개념화하고 있다. 즉, 댕기는 다양하고 화려한 수식 가운데 금속이나 원석류가 아닌 유일한 직물 수식이며, 남녀노소, 신분의 상하를 불문하고 사용했던 복식품이다.댕기의 종류는 크게 용도나 연령에 따라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용도별로 구분하면 크게 궁중에서 궁녀들이 사용했던 네 가닥 댕기, 팥잎댕기 등이 있으며, 예장용으로는 떠구지댕기, 매개댕기, 도투락댕기, 앞댕기, 뒷댕기, 고이댕기, 드림댕기, 앞줄댕기 등이, 일상용으로 사용하는 쪽댕기, 도투락댕기, 말뚝댕기, 제비부리댕기, 배씨댕기, 목판댕기 등 세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명칭은 댕기의 끝부분을 처리하는 방법이나 드리는 방향에 따라 명명되었다. 또한 연령에 따라 어린아이들 배씨댕기, 말뚝댕기, 제비부리댕기, 도투락댕기 등을 사용하였으며, 미혼 남녀는 제비부리댕기를 사용하였다. 기혼 여자들이 쪽머리를 곱게 만들기 위해 사용한 쪽댕기는 조선시대 복식 규범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젊은 부인은 붉은색, 중년은 자주색, 노인은 짙은 자주색, 과부는 검은색, 상제는 흰색을 사용했다. 남편이 살아 있는 부인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붉은색을 사용했으며, 과부는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검은색 댕기를 드렸다.댕기의 착용이 쇠퇴하기 시작한 것은 1895년(고종 32)에 시행된 단발령 이후부터이다. 이때 여자들의 머리모양은 단발령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으나, 신여성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서양식의 머리모양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1910년대 이후 일제의 강압적인 지배 아래에서 애국심의 표현으로 한복의 착용이 늘어나면서 여학생들을 중심으로 땋은머리와 자주색 댕기를 드리웠으나 점차 그 길이가 짧아져 사회적인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후 1930년대까지는 머리를 곱게 땋고 그 끝에 댕기를 드리운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으나 1937년부터 서양식 파마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광복 후에는 쪽머리나 땋은머리를 시골에서조차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특징 및 의의

댕기는 머리를 고정하거나 장식하는 데 사용했던 직물 수식품으로, 머리를 빗는 과정에서부터 함께 삽입되어 머리모양을 완성하는 데 쓰임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이것은 미적인 효과를 중요시하는 다른 수식품들과는 다르게 댕기는 예禮를 갖추기 위해 드렸으며, 그만큼 예를 갖추는 것이 중요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장식하는 방법으로는 석웅판石雄板, 오색견사, 옥판玉板등을 더하여 치장하거나 직물에 수복壽福, 부귀富貴, 다남多男 등을 상징하는 문자와 문양을 화려하게 금박 또는 자수로 장식하였다. 그러면서 명확하게 정해진 일정한 재료나 형식은 없었는데, 다른 수식처럼 특별한 기술을 가진 장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반 여자들이 일정한 형식 없이 만들었기 때문에 지역이나 집안, 제작자에 따라 그 형태나 특징이 조금씩 다르게 표현되었다. 또한 당시에는 비단이라는 소재가 무척 귀했기 때문에 일정한 규격이나 색채를 맞추기보다 소재의 형편에 맞추어 만든 것으로 보인다. 색은 일반적으로 붉은색, 자주색, 흑색을 띄며 사용자에 따라 달리하였는데, 젊은 여자는 붉은색, 중년은 자주색, 노인은 짙은 자주색, 과부는 검은색, 상제는 흰색을 사용하여 색채에 의미와 상징을 부여하였고, 특히 미혼 여자의 길게 땋은머리에 드린 붉은 댕기는 검은색의 머리카락과 조화되어 뚜렷하게 주목되는 시각적인 효과를 주었다.댕기는 신분이나 용도에 따라 소재와 색채에 차이를 두어 제작하였다. 일반적으로 사紗, 비단, 무명 등을 주로 소재로 사용하였으며, 댕기를 주제로 한 민요에서는 공단, 생견, 갑사, 생초 등의 옷감을 언급하고 있다. 댕기에 사용한 소재 중에서 특이한 것은 닥나무로 만든 한지인데, 남녀노소가 상을 당했을 때 만들어 탈상脫喪 때까지 조심스럽게 사용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영조 대 이후에 노론은 흰 댕기가 꺼림칙하다고 하여 한지에 먹물을 들여 사용했다고 한다. 1880년대에는 비단이 귀해서 안감으로 무명을 썼는데, 겉은 살짝 비단을 입혀 공단처럼 보이도록 짠 ‘미치광이 모본단’이라는 소재가 유행했다. 이 소재는 일반 서민 가정에서 혼례용 도투락댕기를 만들 때 썼다고 하는데, 현재 도투락댕기 유물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20년대 말부터는 학단, 공단, 인조견을 소재로 많이 사용하였다.

참고문헌

댕기에 관한 연구(이승현,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2), 우리 옷과 장신구(이경자·홍나영·장숙환, 열화당, 2003), 전통 장신구(장숙환, 대원사, 2002), 한국복식문화사전(김영숙, 미술문화, 1998), 한국복식사(유송옥, 수학사, 1998), 한국복식사전(강순제 외, 민속원,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