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강순제(姜淳弟)
갱신일 2018-10-04

정의

조선시대에 성인 남자들이 일상 통행 시에 착용한 대표적인 관모.

개관

갓의 한자 표기는 ‘입笠’이다. 원래는 햇볕이나 비바람을 가리기 위해 식물성 재료를 거칠게 엮어 머리에 쓰기 시작했던 ‘실용적인 용구’로서의 쓰개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사대부들이 일상 통행을 할 때 착용한 대표적 관모인 ‘흑칠한 갓’ 즉 흑립黑笠으로 발전했다. 따라서 협의로는 입笠의 발달단계에서 최종 단계의 것인 흑립만을 ‘갓’이라고 지칭한다. 또한 입자笠子란 갓을 한결 격식 있게 부르는 용어로서, 주로 흑립의 이칭으로 사용된다.
입笠은 착용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다. 『설문해자說文解字』, 『양사전良耜傳』, 『무양전無羊傳』에 “입笠은 더위와 비를 막는 데에 쓰인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발생 초기에는 용기나 도구로서의 요소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점차 재료가 다양화되고 제작 방법이 발전하면서 종류와 용도가 확대된다.
입笠 착용을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자료는 말을 타고 달리면서 활을 당기고 있는 고구려의 감신총龕神塚 벽화 인물과, 차양에 손을 대고 나는 새를 쫒는 매를 바라보고 있는 안악 1호분의 수렵 인물에서 확인된다. 형태는 모정이 둥글고 차양이 넓으며, 끈을 턱에 걸어 맨 듯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또 『삼국유사三國遺事』 원성왕조에 ‘착소립着素笠’의 기록이 있다. 『고려사高麗史』 지권26 여복輿服에는 1367년(공민왕 16) 9월 “백관시착립조알白官始着笠朝謁”이라는 기록과 함께 흑초방립, 백방립 등도 관리들의 관모로 등장한다. 따라서 몇 종류의 입笠은 고려 말에 이르러서 점차 신분이나 관직을 나타내는 사회적 기능도 가지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면 오늘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모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흑립, 곧 갓이 등장하게 된다.
흑립이라는 용어가 처음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1367년(공민왕 16)에 품계에 따라 정자장식頂子裝飾(입식)에 차이를 둔 흑립을 관리의 관모로 제정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이때의 흑립은 대우와 양태의 구분이 명확한 평량자형平凉子型일 것이라는 추측만 가능할 뿐이고, 재료나 형태 측면에서 조선시대 흑립과의 공통점은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정자장식은 원래 원나라 관리들이 많이 착용한 발립鈸笠에 특징이 보이며, 고려 말 인물의 초상화에서도 발립을 착용한 예를 볼 수 있다. 따라서 발립의 수용은 고려시대 여러 종류의 입笠이 점차 사회적 기능을 갖게 되는 것과 관련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나아가 조선 입제의 대사회화 과정으로 확대되면서 조선시대 사대부 관모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흑립의 생성을 예견할 수 있는 중요한 대목으로 볼 수 있다.
『태종실록太宗實錄』 1417년(태종 17) 12월의 기록을 보면 “대소 관리는 아침(출근) 길, 눈비가 오는 날[雨雪日]이 아닌데도 입笠을 착용하는 자가 있어 미편未便하다(편안하지 않다).”라고 했으므로, 태종 때에는 입笠을 쓰고 궁궐에 출입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로써 입笠은 이미 우설雨雪 중에도 쓸 수 있는 칠漆을 올린 입자, 즉 흑립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경국대전經國大典』 예전禮典 의장조儀章條에 “일품에서 삼품까지는 금, 옥의 관자와 입영立纓을 사용하고, 입식笠飾은 은을 사용하며, 대군은 금을 사용한다 …… 사헌부, 사간원, 관찰사, 절도사의 입식은 옥정자, 감찰은 수정정자를 사용한다.”라고 하였으니 조선 초 성종 때까지의 흑립은 고려 말에 제정된 정자 장식의 흑립과 그 제도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경국대전』에 마미립馬尾笠, 부죽립付竹笠, 죽직립竹織笠, 승결립繩結笠 등의 기록, 『대전속록大典續錄』에 종립鬃笠, 『대전후속록大典後續錄』에는 죽립竹笠, 숭립繩笠, 이라립裏羅笠 등의 기록을 통해 입자의 재료나 제작이 다양해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로써 조선의 입제는 성종 대를 지나면서 점차 완성기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성종 때부터는 입양笠樣을 개정하자는 논의가 시작되었다. 당시 갓은 둥근 모정에 테가 넓은 원정광첨圓頂廣詹 모양이었다. 이 모습은 곧 조선 초 인물인 김시습金 時習의 초상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입자, 즉 흑립의 모정은 편평해지고, 모부帽部는 위가 조금 좁고 아래는 넓은 상협하관上狹下寬의 원통형을 갖추게 되었다. 모부의 높이와 입첨의 광협廣狹은 시대에 따라 계속된 논의와 변화를 보이며 조선 말까지 대표적인 관모로 사용되었다. 이는 갓이 조선의 관모 중에서 그만큼 중요한 위치에서 역할을 다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조선 말에 이르러 개화운동과 함께 모든 의관문물衣冠文物의 서구화 과정에서 점차 사라져 버렸다.

내용

입笠은 형태상으로 대우(모자집)와 양태(입첨)의 구별이 없는 방립형方笠型 갓인 삿갓(노립蘆笠)·방갓(방립方笠)과 그 구별이 뚜렷한 평량자형平凉子型 갓인 평량자(平涼子·蔽凉笠·패랭이초립草笠·흑립으로 분류한다. 또 흑립과 기본 형태는 동일하나 색깔에 변화를 주어 만든 주립朱笠·백립白笠 등이 있으며, 우리나라의 입제와 근원은 다르나 군용軍用으로써 고려 말, 조선 초부터 사용되면서 조선 입제의 한 부분으로 자리한 전립이 있다. 따라서 넓은 의미에서의 갓이라고 하면 방립형과 평량자형에 속하는 모든 종류의 입笠을 포괄한다. 그러나 좁은 의미로는 패랭이·초립의 단계를 거치면서 완성되어 조선시대 대표적인 관모로 발전한 흑립을 지칭하며, 이에 조선시대의 입笠으로서 대표성을 가진 흑립만을 일반적으로 ‘갓’ 혹은 ‘입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1. 갓(흑립黑笠)의 제작: 흑립은 통상 대나무를 머리카락처럼 가늘게 오린 세죽사나 말총으로 대우(모자집)를 만드는 과정과 세죽사로 양태(입첨)를 각각 짜는 과정 및 갓방에서 이를 하나로 모으는 과정, 이 세 과정의 분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대우와 양태를 모은 밑뿌리에는 홍사紅絲나 청사靑絲, 녹사綠絲를 돌려 붙이고(합사 돌린다), 밑뿌리의 대우 안쪽에는 따로 미리 만들어 둔 은각을 붙인다(땀새).
완성된 갓의 모자집은 모정이 편평하며 위가 조금 줄어든 상협하관의 원통형이고, 입첨은 아래로 약간 우긋하게 곡선을 이루게 된다. 각 과정 중에 이루어지는 어교칠, 먹칠, 옻칠 및 싸기 올리기, 입첨인 양태의 모양을 아래로 우긋하게 버렁 잡은 일(트집 잡기) 등은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다.
흑립은 다시 제작 과정에서의 거칠고 섬세함[精粗]이나 싸기의 종류에 따라 다시 몇 가지로 구분된다. 이들은 각기 신분과 용도에 따라 달리 사용되었다.
2. 종류(싸기의 종류와 제법상의 정조精粗에 따른 분류)
1) 진사립: 머리카락보다 더 가는 죽사로만 대우와 양태를 네 겹으로 엮고 그 위에 중국산 촉사를 한 올 한 올 입혀 칠을 한 갓이다. 왕이나 귀인이 착용하는 극상품의 갓으로 왕이 쓰는 어립御笠에는 대우와 양태를 연결한 부위에 당사唐絲를 물들여 꼬아 홍사를 둘렀다. 이를 ‘합사 돌린다’라고 한다.
2) 음양사립: 진사립 다음 등품으로 모자집은 말총으로 곱게 엮어 만들고 양태는 죽사를 쓴다. 양태에는 견사의 일종인 촉사를 올려 옻칠을 하고 대우와 양태를 연결한 부위에는 청사를 두른다.
3) 음양립: 음양사립 다음 등품으로 말총으로 엮은 모자집(총모자)에 양태는 죽사를 쓰나 양태 위에 촉사 대신 생초를 입혀 옻칠을 한다. 대우와 양태를 연결한 부위에는 녹사를 두른다.
4) 마미립[鬃笠, 馬鬃笠]: 말총으로 대우와 양태를 한 고급품이다. 마미립은 『경국대전』에 처음 사족의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대전속록』 형전에도 “종립鬃笠 시산조사時散朝士 허착許着”이라 하였으며, 『대전후속록』 금제조에는 당상관 외에는 종립의 착용을 금한다고 하였다.
5) 기타
•포립: 총모자에 죽사의 양태로 구성되어 있으며 양태 위에 명주를 입힌 것이다.
•부죽립: 『경국대전』 예전禮典 잡령조雜令條에 사족士族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죽직립, 승결립: 『경국대전』 예전 잡령조에 서인庶人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3. 형태 변화: 시속時俗에 따라 대우의 높고 낮음과 양태의 넓고 좁음에는 자주 변화가 있었다. 갓의 모양에 대하여 처음 논의가 된 것은 1485년(성종 20) 3월 “입笠 모양이 승립僧笠과 같으니 이를 개정하라.”라고 하는 기록에서부터이다. 당시의 갓은 정상이 둥글고 테가 넓은 형태였다. 연산군 초에는 둥글던 모정이 조금 뾰족하게 변하였고 이후 점차 모자집의 모양은 위가 좁고 아래는 넓은 상협하관의 원통형에 가까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갓 모양의 변화를 역대 왕조별로 보면, 연산군 말에는 대우가 낮고 양태가 넓은 형인데, 중종 말에는 대우가 극히 높고[臺上極重厚高大] 양태는 좁아진다[坪兒極狹]. 이어 명종 중기에서 말에 이르면 다시 대우가 매우 낮고[雲頭甚短而] 양태는 넓어지나[凉臺太廣], 선조 때는 대우가 높고 첨이 극히 좁아진다. 광해군 때에 다시 양태가 크고 대우가 낮은 입자가 유행하였고[邊極廣 頂極低], 인조와 효종 대는 큰 갓[帽子極高 凉台太闊]이 유행하였다. 이후 숙종 대에 이르러 한때 작아졌으나 영·정조 대의 갓은 그 시대의 풍속도에서 볼 수 있듯이 양태가 비교적 넓으며, 순조 말기에는 더욱 넓어져 종전의 어깨를 덮을 정도에서 앉은 사람을 완전히 덮을 정도가 되었다. 대원군 때에 이르러 사회개혁의 일환으로 종래의 큰 갓은 작은 갓으로 바뀐다.
4. 수식: 갓의 제작이 정교해짐에 따라 이를 꾸미는 장식의 종류도 다양해진다.
입식笠飾에는 정자頂子, 맥수麥穗나 호수虎鬚, 공작미, 상모 등이 있으나, 일상 통행시에 착용했던 갓, 즉 흑립에는 입식은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에 갓끈(입영笠纓)에 대한 호사를 중요시했다.
갓끈에는 턱밑에 묶는 실질적 역할의 비단 끈 외에, 각종 옥을 꿰어 가슴 밑으로 길게 늘어뜨리는 형상의 패영貝纓이 있다. 갓은 머리 위에 얹는 형상으로 쓰기 때문에 갓을 머리 위에 고정시키는 데는 실질적 역할의 비단 끈이 일차적이나, 갓의 부속물로서 중요한 것은 치렛거리로서의 역할을 다한 패영이다. 패영의 재료로는 대모玳瑁·밀화蜜花·금파金波·상아象牙·수정水晶·유리琉璃·옥玉·마노瑪瑙·산호珊瑚·호박琥珀·대나무[竹] 등이 사용되었다.

특징 및 의의

갓은 머리카락처럼 고운 세죽사로 짠 반투명의 섬세한 죽세공품이다. 갓 착용 시 모자집은 머리 위에 단정히 얹혀진 형태이므로, 망건의 정중앙 위쪽에 달린 풍잠을 모자집 속으로 밀어 넣어 갓이 움직이지 않도록 하고 검은색의 비단 끈을 턱 밑에 매어 갓을 고정시킨다. 여기에 밀화나 호박, 대모 등으로 만든 갓끈을 가슴 밑으로 내려뜨려 그 멋을 한층 더하였다. 또한 옻칠을 올려 단단한 형으로 정형화된 상협하관의 모자집과 아래로 우긋한 모양의 곡선을 이루고 있는 양태는 긴장감과 함께 여유로움을 준다. 더욱이 반투명의 멋스러움마저 갖는 흑색의 갓은 백색의 복식과 함께 어우러짐으로써 조선시대 남자복식에서의 에로티시즘과 절제미의 상징물이며 동시에 조선 최고의 미적 산물로 자리매김하는 데에 모자람이 없다.
흑색의 갓, 즉 흑립은 사실 비기능적이며 비실용적인 모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갓 아래로 길게 내려뜨린 패영으로 멋을 더하고 비가 오면 그 위에 갈모를 쓰며, 잘 다듬은 육중한 목제나 생피 갓집에 보관하는 등, 갓에 대한 사랑과 갓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은 지대한 것이었다. 또한 갓이 걸려 있는 곳은 항상 상석임을 표현할 정도로 갓에 대한 존경과 정성은 곧 의관을 존중했던 당시대의 복식 규범에서 연유한 것이다.

참고문헌

經國大典, 大典續錄, 大典後續錄, 명선-중(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단국대학교출판부, 2004), 우리 관모의 시말에 관한 연구(강순제, 서울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3), 우리나라의 관모(강순제, 한국의 복식문화사,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학연문화사, 2006).

갓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강순제(姜淳弟)
갱신일 2018-10-04

정의

조선시대에 성인 남자들이 일상 통행 시에 착용한 대표적인 관모.

개관

갓의 한자 표기는 ‘입笠’이다. 원래는 햇볕이나 비바람을 가리기 위해 식물성 재료를 거칠게 엮어 머리에 쓰기 시작했던 ‘실용적인 용구’로서의 쓰개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사대부들이 일상 통행을 할 때 착용한 대표적 관모인 ‘흑칠한 갓’ 즉 흑립黑笠으로 발전했다. 따라서 협의로는 입笠의 발달단계에서 최종 단계의 것인 흑립만을 ‘갓’이라고 지칭한다. 또한 입자笠子란 갓을 한결 격식 있게 부르는 용어로서, 주로 흑립의 이칭으로 사용된다.입笠은 착용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다. 『설문해자說文解字』, 『양사전良耜傳』, 『무양전無羊傳』에 “입笠은 더위와 비를 막는 데에 쓰인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발생 초기에는 용기나 도구로서의 요소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점차 재료가 다양화되고 제작 방법이 발전하면서 종류와 용도가 확대된다.입笠 착용을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자료는 말을 타고 달리면서 활을 당기고 있는 고구려의 감신총龕神塚 벽화 인물과, 차양에 손을 대고 나는 새를 쫒는 매를 바라보고 있는 안악 1호분의 수렵 인물에서 확인된다. 형태는 모정이 둥글고 차양이 넓으며, 끈을 턱에 걸어 맨 듯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또 『삼국유사三國遺事』 원성왕조에 ‘착소립着素笠’의 기록이 있다. 『고려사高麗史』 지권26 여복輿服에는 1367년(공민왕 16) 9월 “백관시착립조알白官始着笠朝謁”이라는 기록과 함께 흑초방립, 백방립 등도 관리들의 관모로 등장한다. 따라서 몇 종류의 입笠은 고려 말에 이르러서 점차 신분이나 관직을 나타내는 사회적 기능도 가지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면 오늘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모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흑립, 곧 갓이 등장하게 된다.흑립이라는 용어가 처음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1367년(공민왕 16)에 품계에 따라 정자장식頂子裝飾(입식)에 차이를 둔 흑립을 관리의 관모로 제정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이때의 흑립은 대우와 양태의 구분이 명확한 평량자형平凉子型일 것이라는 추측만 가능할 뿐이고, 재료나 형태 측면에서 조선시대 흑립과의 공통점은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정자장식은 원래 원나라 관리들이 많이 착용한 발립鈸笠에 특징이 보이며, 고려 말 인물의 초상화에서도 발립을 착용한 예를 볼 수 있다. 따라서 발립의 수용은 고려시대 여러 종류의 입笠이 점차 사회적 기능을 갖게 되는 것과 관련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나아가 조선 입제의 대사회화 과정으로 확대되면서 조선시대 사대부 관모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흑립의 생성을 예견할 수 있는 중요한 대목으로 볼 수 있다.『태종실록太宗實錄』 1417년(태종 17) 12월의 기록을 보면 “대소 관리는 아침(출근) 길, 눈비가 오는 날[雨雪日]이 아닌데도 입笠을 착용하는 자가 있어 미편未便하다(편안하지 않다).”라고 했으므로, 태종 때에는 입笠을 쓰고 궁궐에 출입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로써 입笠은 이미 우설雨雪 중에도 쓸 수 있는 칠漆을 올린 입자, 즉 흑립이었을 것으로 보인다.『경국대전經國大典』 예전禮典 의장조儀章條에 “일품에서 삼품까지는 금, 옥의 관자와 입영立纓을 사용하고, 입식笠飾은 은을 사용하며, 대군은 금을 사용한다 …… 사헌부, 사간원, 관찰사, 절도사의 입식은 옥정자, 감찰은 수정정자를 사용한다.”라고 하였으니 조선 초 성종 때까지의 흑립은 고려 말에 제정된 정자 장식의 흑립과 그 제도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또한 『경국대전』에 마미립馬尾笠, 부죽립付竹笠, 죽직립竹織笠, 승결립繩結笠 등의 기록, 『대전속록大典續錄』에 종립鬃笠, 『대전후속록大典後續錄』에는 죽립竹笠, 숭립繩笠, 이라립裏羅笠 등의 기록을 통해 입자의 재료나 제작이 다양해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로써 조선의 입제는 성종 대를 지나면서 점차 완성기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성종 때부터는 입양笠樣을 개정하자는 논의가 시작되었다. 당시 갓은 둥근 모정에 테가 넓은 원정광첨圓頂廣詹 모양이었다. 이 모습은 곧 조선 초 인물인 김시습金 時習의 초상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입자, 즉 흑립의 모정은 편평해지고, 모부帽部는 위가 조금 좁고 아래는 넓은 상협하관上狹下寬의 원통형을 갖추게 되었다. 모부의 높이와 입첨의 광협廣狹은 시대에 따라 계속된 논의와 변화를 보이며 조선 말까지 대표적인 관모로 사용되었다. 이는 갓이 조선의 관모 중에서 그만큼 중요한 위치에서 역할을 다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조선 말에 이르러 개화운동과 함께 모든 의관문물衣冠文物의 서구화 과정에서 점차 사라져 버렸다.

내용

입笠은 형태상으로 대우(모자집)와 양태(입첨)의 구별이 없는 방립형方笠型 갓인 삿갓(노립蘆笠)·방갓(방립方笠)과 그 구별이 뚜렷한 평량자형平凉子型 갓인 평량자(平涼子·蔽凉笠·패랭이)·초립草笠·흑립으로 분류한다. 또 흑립과 기본 형태는 동일하나 색깔에 변화를 주어 만든 주립朱笠·백립白笠 등이 있으며, 우리나라의 입제와 근원은 다르나 군용軍用으로써 고려 말, 조선 초부터 사용되면서 조선 입제의 한 부분으로 자리한 전립이 있다. 따라서 넓은 의미에서의 갓이라고 하면 방립형과 평량자형에 속하는 모든 종류의 입笠을 포괄한다. 그러나 좁은 의미로는 패랭이·초립의 단계를 거치면서 완성되어 조선시대 대표적인 관모로 발전한 흑립을 지칭하며, 이에 조선시대의 입笠으로서 대표성을 가진 흑립만을 일반적으로 ‘갓’ 혹은 ‘입자’라고 부르기도 했다.1. 갓(흑립黑笠)의 제작: 흑립은 통상 대나무를 머리카락처럼 가늘게 오린 세죽사나 말총으로 대우(모자집)를 만드는 과정과 세죽사로 양태(입첨)를 각각 짜는 과정 및 갓방에서 이를 하나로 모으는 과정, 이 세 과정의 분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대우와 양태를 모은 밑뿌리에는 홍사紅絲나 청사靑絲, 녹사綠絲를 돌려 붙이고(합사 돌린다), 밑뿌리의 대우 안쪽에는 따로 미리 만들어 둔 은각을 붙인다(땀새).완성된 갓의 모자집은 모정이 편평하며 위가 조금 줄어든 상협하관의 원통형이고, 입첨은 아래로 약간 우긋하게 곡선을 이루게 된다. 각 과정 중에 이루어지는 어교칠, 먹칠, 옻칠 및 싸기 올리기, 입첨인 양태의 모양을 아래로 우긋하게 버렁 잡은 일(트집 잡기) 등은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다.흑립은 다시 제작 과정에서의 거칠고 섬세함[精粗]이나 싸기의 종류에 따라 다시 몇 가지로 구분된다. 이들은 각기 신분과 용도에 따라 달리 사용되었다.2. 종류(싸기의 종류와 제법상의 정조精粗에 따른 분류)1) 진사립: 머리카락보다 더 가는 죽사로만 대우와 양태를 네 겹으로 엮고 그 위에 중국산 촉사를 한 올 한 올 입혀 칠을 한 갓이다. 왕이나 귀인이 착용하는 극상품의 갓으로 왕이 쓰는 어립御笠에는 대우와 양태를 연결한 부위에 당사唐絲를 물들여 꼬아 홍사를 둘렀다. 이를 ‘합사 돌린다’라고 한다.2) 음양사립: 진사립 다음 등품으로 모자집은 말총으로 곱게 엮어 만들고 양태는 죽사를 쓴다. 양태에는 견사의 일종인 촉사를 올려 옻칠을 하고 대우와 양태를 연결한 부위에는 청사를 두른다.3) 음양립: 음양사립 다음 등품으로 말총으로 엮은 모자집(총모자)에 양태는 죽사를 쓰나 양태 위에 촉사 대신 생초를 입혀 옻칠을 한다. 대우와 양태를 연결한 부위에는 녹사를 두른다.4) 마미립[鬃笠, 馬鬃笠]: 말총으로 대우와 양태를 한 고급품이다. 마미립은 『경국대전』에 처음 사족의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대전속록』 형전에도 “종립鬃笠 시산조사時散朝士 허착許着”이라 하였으며, 『대전후속록』 금제조에는 당상관 외에는 종립의 착용을 금한다고 하였다.5) 기타•포립: 총모자에 죽사의 양태로 구성되어 있으며 양태 위에 명주를 입힌 것이다.•부죽립: 『경국대전』 예전禮典 잡령조雜令條에 사족士族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죽직립, 승결립: 『경국대전』 예전 잡령조에 서인庶人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3. 형태 변화: 시속時俗에 따라 대우의 높고 낮음과 양태의 넓고 좁음에는 자주 변화가 있었다. 갓의 모양에 대하여 처음 논의가 된 것은 1485년(성종 20) 3월 “입笠 모양이 승립僧笠과 같으니 이를 개정하라.”라고 하는 기록에서부터이다. 당시의 갓은 정상이 둥글고 테가 넓은 형태였다. 연산군 초에는 둥글던 모정이 조금 뾰족하게 변하였고 이후 점차 모자집의 모양은 위가 좁고 아래는 넓은 상협하관의 원통형에 가까워졌던 것으로 보인다.이후 갓 모양의 변화를 역대 왕조별로 보면, 연산군 말에는 대우가 낮고 양태가 넓은 형인데, 중종 말에는 대우가 극히 높고[臺上極重厚高大] 양태는 좁아진다[坪兒極狹]. 이어 명종 중기에서 말에 이르면 다시 대우가 매우 낮고[雲頭甚短而] 양태는 넓어지나[凉臺太廣], 선조 때는 대우가 높고 첨이 극히 좁아진다. 광해군 때에 다시 양태가 크고 대우가 낮은 입자가 유행하였고[邊極廣 頂極低], 인조와 효종 대는 큰 갓[帽子極高 凉台太闊]이 유행하였다. 이후 숙종 대에 이르러 한때 작아졌으나 영·정조 대의 갓은 그 시대의 풍속도에서 볼 수 있듯이 양태가 비교적 넓으며, 순조 말기에는 더욱 넓어져 종전의 어깨를 덮을 정도에서 앉은 사람을 완전히 덮을 정도가 되었다. 대원군 때에 이르러 사회개혁의 일환으로 종래의 큰 갓은 작은 갓으로 바뀐다.4. 수식: 갓의 제작이 정교해짐에 따라 이를 꾸미는 장식의 종류도 다양해진다.입식笠飾에는 정자頂子, 맥수麥穗나 호수虎鬚, 공작미, 상모 등이 있으나, 일상 통행시에 착용했던 갓, 즉 흑립에는 입식은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에 갓끈(입영笠纓)에 대한 호사를 중요시했다.갓끈에는 턱밑에 묶는 실질적 역할의 비단 끈 외에, 각종 옥을 꿰어 가슴 밑으로 길게 늘어뜨리는 형상의 패영貝纓이 있다. 갓은 머리 위에 얹는 형상으로 쓰기 때문에 갓을 머리 위에 고정시키는 데는 실질적 역할의 비단 끈이 일차적이나, 갓의 부속물로서 중요한 것은 치렛거리로서의 역할을 다한 패영이다. 패영의 재료로는 대모玳瑁·밀화蜜花·금파金波·상아象牙·수정水晶·유리琉璃·옥玉·마노瑪瑙·산호珊瑚·호박琥珀·대나무[竹] 등이 사용되었다.

특징 및 의의

갓은 머리카락처럼 고운 세죽사로 짠 반투명의 섬세한 죽세공품이다. 갓 착용 시 모자집은 머리 위에 단정히 얹혀진 형태이므로, 망건의 정중앙 위쪽에 달린 풍잠을 모자집 속으로 밀어 넣어 갓이 움직이지 않도록 하고 검은색의 비단 끈을 턱 밑에 매어 갓을 고정시킨다. 여기에 밀화나 호박, 대모 등으로 만든 갓끈을 가슴 밑으로 내려뜨려 그 멋을 한층 더하였다. 또한 옻칠을 올려 단단한 형으로 정형화된 상협하관의 모자집과 아래로 우긋한 모양의 곡선을 이루고 있는 양태는 긴장감과 함께 여유로움을 준다. 더욱이 반투명의 멋스러움마저 갖는 흑색의 갓은 백색의 복식과 함께 어우러짐으로써 조선시대 남자복식에서의 에로티시즘과 절제미의 상징물이며 동시에 조선 최고의 미적 산물로 자리매김하는 데에 모자람이 없다.흑색의 갓, 즉 흑립은 사실 비기능적이며 비실용적인 모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갓 아래로 길게 내려뜨린 패영으로 멋을 더하고 비가 오면 그 위에 갈모를 쓰며, 잘 다듬은 육중한 목제나 생피 갓집에 보관하는 등, 갓에 대한 사랑과 갓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은 지대한 것이었다. 또한 갓이 걸려 있는 곳은 항상 상석임을 표현할 정도로 갓에 대한 존경과 정성은 곧 의관을 존중했던 당시대의 복식 규범에서 연유한 것이다.

참고문헌

經國大典, 大典續錄, 大典後續錄, 명선-중(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단국대학교출판부, 2004), 우리 관모의 시말에 관한 연구(강순제, 서울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3), 우리나라의 관모(강순제, 한국의 복식문화사,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학연문화사,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