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매는 소리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민요 > 노동요

집필자 강등학(姜騰鶴)
갱신일 2019-01-03

정의

모를 심은 뒤 논에 나는 잡초를 제거하면서 부르는 노동요.

내용

논매기는 보통 2~3회를 하는데, 대체로 모심기를 하고 20여 일이 지난 후 초벌매기를 하고, 다시 15~20일이 지난 뒤 두벌매기를 하며, 이어서 10~15일 정도 지난 뒤 세벌매기를 한다. 토질과 환경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초벌매기는 보통 호미로 하고, 두벌매기는 곳에 따라 호미로 하기도 하고 손으로 하기도 한다. 그리고 세벌매기는 손으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와 함께 피를 손으로 뽑아내는, 이른바 피사리를 별도로 하는 경우도 있다.

논매기의 역사는 늦어도 통일신라 시기까지 소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 이후 미곡 생산이 잡곡 생산을 앞서며 논농사가 농사의 중심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논매는 소리> 또한 이 시기에 존재했을 것이다. 조선 세조 때 인물인 강희맹(姜熙孟)도 『금양잡록(衿陽雜錄)』에서 신라의 <논매는 소리>는 끝에 반드시 “다농다리호지리다리(多農多利乎地利多利)”라고 노래한다고 말한 바 있다. 강희맹이 무엇을 참고하여 이처럼 말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개연성은 충분하다.

이와 함께 강희맹은 『금양잡록』에서 당시의 <논매는 소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금양잡록』은 농사짓는 일을 다룬 책인데, 말미에 한시 작품 <농구 14장(農謳十四章)>을 지어 수록했다. 강희맹은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글을 적으며 <논매는 소리>와 관련해 ‘만조(慢調)’와 ‘촉조(促調)’ 등을 거론하면서 해당 후렴으로 ‘만조’의 것은 “뇨응아지리(尿應阿地利)”를, ‘촉조’의 것은 “확자고로로농(確者古老農)”을 언급했다. 이로 미루어 당시에도 <논매는 소리>가 느린 것과 빠른 것이 있었다는 것, 또 노래에 후렴이 달려 있고 선후창으로 가창되었다는 것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요컨대 조선 전기의 <논매는 소리>는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논매는 소리>는 마을마다 최소 2~3종 이상 존재하며, 많게는 4~5종 이상 존재하는 곳도 적지 않다. 곳에 따라서는 8종(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금산리) 또는 10종(경기도 고양시 대화동)의 <논매는 소리>가 존재하기도 한다. <모심는 소리>가 보통 마을별로 1종씩 존재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여기에 <모심는 소리>는 소수의 노래가 배타적 속성을 띠며 전국을 거의 과점하는 양상을 보이지만, <논매는 소리>는 크고 작은 권역의 노래들이 마을별로 이러저러한 조합을 이루고 있다. 그렇기에 <논매는 소리>는 노래의 종류도 많고, 존재 국면 또한 다양하다. 전국적으로 <모심는 소리>는 20여 종이 조금 넘는 데에 불과하지만, <논매는 소리>는 200종 이상이 확인되고 있다.

마을별 <논매는 소리>는 기본적으로 느린 노래와 빠른 노래, 또는 일상적 정서를 띤 노래와 유흥적 정서를 띤 노래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가창은 느린 노래로부터 빠른 노래로 이어지며, 정서적 흐름은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유흥적인 것으로 옮아간다.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의 경우를 예로 들면, 이곳의 <논매는 소리>는 5종이며 <오독떼기>, <잡가>, <사리랑>, <담성가>, <싸대>의 순으로 부른다. 이 중 <오독떼기>는 느리고 침착한 분위기로 부르고 나머지는 이보다 빠르면서 흥청대는 분위기로 부른다.

그런가 하면 <논매는 소리>는 작업 횟수에 관계없이 같은 노래를 부르는 곳도 있고, 작업에 따라 다른 노래를 부르는 곳도 있다. 이를테면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의 <논매는 소리>는 전자에 해당하고, 충남 금산군 부리면 선원리의 <논매는 소리>는 후자에 해당한다. 이곳의 <논매는 소리>는 호미로 맬 때(초벌) <잘도한다소리>와 <얼카산이야소리>를 하고, 손으로 맬 때(두벌과 세벌) <긴방아소리>와 <자진방아소리>를 부른다. 그리고 이것들의 구성은 각각 느리고 빠른 노래로 조합되어 있다. 그런데 호미로 흙을 파내며 작업하는 일은 힘들고 손으로 김을 뽑는 일은 그보다 부담이 적다. 노동의 강도가 낮아지다 보니 호미 작업보다는 손작업의 <논매는 소리>가 흥청대며 유흥적인 분위기의 노래가 많다.

<논매는 소리>는 후렴이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후렴이 있다. <논매는 소리>로 후렴이 없는 노래는 <미나리>·<오독떼기>·<어사용> 등인데, 이것들은 모두 강원도와 영남 등 동부 지역에 토대를 둔 노래들이다. 이 밖에 동부 지역의 영향을 받은 전북 무주·남원·순창·임실·전남 곡성 등의 <미나리> 계통 <논매는 소리>에도 후렴이 없는 노래가 더러 발견된다. 현지에서 <문열가>(전북 순창군 유등면 간곡리), <방개타령>(전남 곡성군 삼기면 원등리), 또는 그냥 <논매는 소리>라는 기능명(전북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으로 통하는 노래들이 그것이다.

<논매는 소리>의 가창방식은 선후창이 지배적이며, 이 밖에 제창, 교환창, 윤창, 복창 등이 나타난다. <논매는 소리>는 후렴이 있는 노래가 대부분이므로 그 가창방식도 자연스레 선후창이 많아졌다. 그러나 후렴이 있는 <논매는 소리>를 제창 또는 교환창으로 부르는 곳도 있다.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의 <잡가>·<사리랑>·<담성가> 전북 순창군 팔덕면 월곡리의 <설움소리>·<방아소리(두목지기)> 등은 모두 후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각 제창과 교환창으로 부른다. 이러한 사례는 두 지역의 인근 지역에도 더러 존재한다.

제창은 선창자가 노래를 시작하면, 이어서 다 함께 부르는 방식인데, <논매는 소리>를 이렇게 부르는 곳은 강원도 영동 지역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이 지역에서는 후렴 유무와 상관없이 실상 거의 모든 <논매는 소리>를 이 방식으로 부른다. 교환창은 두 패로 나뉘어 가사를 분담하거나 전담하며 주고받는 방식인데, <논매는 소리>의 교환창은 후자의 방식이 지배적이다. 이 방식 역시 후렴 유무와 상관이 없으며, 전북 순창·임실·남원·전남 곡성 등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소리를 이어가는 윤창은 대부분 <미나리>와 <아라리>를 부를 때 나타나는데, <미나리>는 강원도 영동 지역 이외의 곳에서, 그리고 <아라리>는 강원도 안에서 주로 발견된다. 이 밖에 드물지만 <미나리>를 복창으로 부르는 곳(경기도 포천시 산북면 계류리)도 존재한다.

지역사례

<논매는 소리>의 거시적 판도와 지역적 판도의 근간은 전국적 분포 노래가 그 권역을 확산하는 가운데 지역의 국지적 노래들과 충돌하며 대립하는 구도로 형성되어 있다. 전국적 분포의 <논매는 소리>는 <방아소리>와 <상사소리> 2종이며, 이 노래들은 경기도에 강한 토대를 구축한 뒤 이를 기반으로 전국적인 확산을 이루었다.

경기도 <논매는 소리>는 <방아소리>와 <상사소리>가 거의 전역을 점유한 가운데 <방아타령>, <덩어리소리>, <단허리소리>, <미나리> 등 국지적으로 분포된 노래들이 일정 지역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먼저 <방아타령>은 인천시 강화, 경기도 김포·고양·양주·파주 등 경기 북서부일대에 토대를 구축한 뒤 구리·용인·화성 등에까지 진출하였다. 그런가 하면 화성·평택·용인 등 경기 서남부에는 충남에 토대를 둔 <덩어리소리>가, 안성·여주·양평 등 경기 동남부 일대에는 강원도에 토대를 둔 <단허리소리>가, 그리고 포천·가평·양평 등 동북부 일대에는 역시 강원도에 토대를 둔 <미나리>가 진출해 강한 힘을 구축하고 있다. 경기 서북부를 중심으로 내부적 토대가 형성되고, 그 외곽에서 인접지 <논매는 소리>가 파고들어 대립하는 국면을 형성한 것이다. 다만 여기서 하나 특이한 점은 <방아타령>이 본래 전문 소리꾼들이 부르는 통속민요라는 점이다. 통속민요가 일노래로 수용되어 비중 있는 노래로 토착화된 사례는 <방아타령>이 유일하다.

강원도의 <논매는 소리>는 <미나리>가 영서 북부에, <단허리소리>가 영서 남부에, <제창미나리>가 영동 북부에, <오독떼기>가 영동 남부에 각각 강세를 보이며 내부 노래들이 포진하는 가운데 경기도로부터 <방아소리>와 <상사소리>가 진입하는 국면이 전개되었다. <방아소리>와 <상사소리>는 강원도에 진입하면서 영서 지역의 <미나리>와 <단허리소리>로부터 저항을 받았으나, 이내 수습되어 모두 함께 공존하는 상황을 연출하였다. 그 결과 <방아소리>와 <상사소리>는 인제·홍천·평창 등 영서 지역 끝자락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창미나리>와 <오독떼기>의 저항을 이겨내지 못하여 영동 지역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강원도의 <논매는 소리>는 영동 지역과 영서 지역에서 각기 다른 국면으로 전개된 것이다.

충청권의 <논매는 소리>로 강세인 것은 <덩어리소리>, <잘도한다소리> 등이다. 이 중 <덩어리소리>는 내부 노래로서 홍성·예산·공주·아산 등 충남 서부 일대에 강한 토대를 구축하였고, <잘도한다소리>는 경북에 토대를 두고 영동·옥천·보은 등 충북 남부에 거점을 마련한 뒤 충남 금산과 대전 등으로 나아갔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방아소리>와 <상사소리>의 남진(南進)은 <덩어리소리>의 권역을 피해 충남 동부와 충북 북부를 통해 전개되었고, 충남 동남부와 충북 남부에 이르러서는 <잘도한다소리>와 충돌하며 대립 구도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로써 충청권 <논매는 소리>의 지역 구도는 내부 노래와 외부 노래, 그리고 외부 노래 간의 대립이 맞물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영남권에서 전국적 분포 노래와 대립 구도를 보이는 <논매는 소리>는 <잘도한다소리>이다. <잘도한다소리>는 경북의 내부 노래로서 상주·구미·김천·칠곡 등 경북 서부에 강한 토대를 구축하고, 또 충북 남부까지 그 외곽을 확장하며 외부 노래의 진출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방아소리>와 <상사소리>는 <잘도한다소리>의 장악력이 낮은 충북 괴산 일대를 통해 예천·영주·의성·안동 등 낙동강 상류 및 경북 북부 지역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이곳은 <에웨기소리>, <옹헤야소리>, <칭칭이소리> 등 경북의 내부 노래군이 공존하는 곳으로서 <잘도한다소리>의 장악력이 낮다. 이후 남진을 계속한 전국적 분포 노래는 경북 동남부에 이르러 <방아소리>가 약세를 보이며 경남에는 <상사소리>만 진출할 수 있었다. 경남의 <논매는 소리>로서 내부 노래는 <궁글레소리>, <두헤소리> 등이 있으나 그 종류도 단조롭고 확장력도 약한 상황이기에 <상사소리>는 이것들을 압도하며 점유 비중이 가장 높게 자리 잡았다.

전국적 분포 노래의 호남권 진입은 <방아소리>만 이루어냈다. 현재 그 배경은 분명히 드러나 있지 않지만, 경남에 <상사소리>만 진입할 수 있었던 것과 대조적인 상황이다. <방아소리>의 남진은 충청권을 지나면서 크게 약화되었지만, <덩어리소리>와 <잘도한다소리>의 장악력이 약해진 부여·논산 등 충남 남부를 통해 전북에 진입한 뒤 다시 활기를 띠었다. 본래 전북의 <논매는 소리>는 지역적 차원의 강세 노래가 특별하지 않은 상황에서 서부 평야 지대와 동부 산간 지대에 소권역의 여러 노래가 대립을 하는 구도를 지니고 있었지만, <방아소리>는 이러한 구도와 무관하게 거의 전역에 고른 분포를 이루며 점유 비중이 가장 높은 소리로 자리 잡았다.

전남의 <논매는 소리> 판도는 서북부에 <마뒤소리>, 서남부에 <절로소리>, 동부에 <산타령>이 강세를 보이며 상호 대립하는 구도를 지니고 있다. <방아소리>는 전북에 거점을 확보한 뒤 남진을 계속했지만 <마뒤소리>의 저항을 받아 전남 서부로 진출하지 못하였고, 장성과 함평 일부 지역을 기점으로 진로를 바꿔 동진 끝에 담양, 곡성을 통해 섬진강 상류에 거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후 다시 남행한 <방아소리>는 서남해의 <절로소리>와 충돌한 뒤 순천·여수 등 섬진강 하류 일대에 머물러야 했다. 그러므로 전남의 <논매는 소리>는 외부 노래를 동부에서 받아들여 서부의 내부 노래들과 대치하는 국면을 연출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논매는 소리>는 우리 민요 가운데 노래의 종류가 가장 풍부한 부류에 해당한다. 또한 <논매는 소리>는 그 종류가 많은 대신 점유 공간이 좁은 노래들이 대부분이다. <논매는 소리>는 특정 마을 또는 불과 몇 개 마을에 분포되어 있는 노래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가 하면 <논매는 소리>의 구성은 마을마다 다른 조합을 보이는 일이 많다. 인접 마을임에도 <논매는 소리>의 구성은 다를 수 있다. 노래의 생산과 소통이 그만큼 활성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논매는 소리>가 우리 민요 중 문화적 다양성과 지역적 독자성을 가장 풍부하게 내포하고 있는 부류에 해당함을 의미한다.

참고문헌

강원도 <논매는 소리>의 기초적 분석과 지역적 판도(강등학, 한국민속학53, 한국민속학회, 2011), 경기향토민요(강등학 외, 경기도 문화의전당, 2007), <모심는 소리>와 <논매는 소리>의 전국적 판도 및 농요의 권역에 관한 연구(강등학, 한국민속학38, 한국민속학회, 2003), 한국구비문학의 이해(강등학 외, 월인, 2000), 한국구연민요-연구(한국구연민요연구회, 집문당, 1997).

논매는 소리

논매는 소리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민요 > 노동요

집필자 강등학(姜騰鶴)
갱신일 2019-01-03

정의

모를 심은 뒤 논에 나는 잡초를 제거하면서 부르는 노동요.

내용

논매기는 보통 2~3회를 하는데, 대체로 모심기를 하고 20여 일이 지난 후 초벌매기를 하고, 다시 15~20일이 지난 뒤 두벌매기를 하며, 이어서 10~15일 정도 지난 뒤 세벌매기를 한다. 토질과 환경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초벌매기는 보통 호미로 하고, 두벌매기는 곳에 따라 호미로 하기도 하고 손으로 하기도 한다. 그리고 세벌매기는 손으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와 함께 피를 손으로 뽑아내는, 이른바 피사리를 별도로 하는 경우도 있다. 논매기의 역사는 늦어도 통일신라 시기까지 소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 이후 미곡 생산이 잡곡 생산을 앞서며 논농사가 농사의 중심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또한 이 시기에 존재했을 것이다. 조선 세조 때 인물인 강희맹(姜熙孟)도 『금양잡록(衿陽雜錄)』에서 신라의 는 끝에 반드시 “다농다리호지리다리(多農多利乎地利多利)”라고 노래한다고 말한 바 있다. 강희맹이 무엇을 참고하여 이처럼 말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개연성은 충분하다. 이와 함께 강희맹은 『금양잡록』에서 당시의 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금양잡록』은 농사짓는 일을 다룬 책인데, 말미에 한시 작품 을 지어 수록했다. 강희맹은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글을 적으며 와 관련해 ‘만조(慢調)’와 ‘촉조(促調)’ 등을 거론하면서 해당 후렴으로 ‘만조’의 것은 “뇨응아지리(尿應阿地利)”를, ‘촉조’의 것은 “확자고로로농(確者古老農)”을 언급했다. 이로 미루어 당시에도 가 느린 것과 빠른 것이 있었다는 것, 또 노래에 후렴이 달려 있고 선후창으로 가창되었다는 것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요컨대 조선 전기의 는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는 마을마다 최소 2~3종 이상 존재하며, 많게는 4~5종 이상 존재하는 곳도 적지 않다. 곳에 따라서는 8종(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금산리) 또는 10종(경기도 고양시 대화동)의 가 존재하기도 한다. 가 보통 마을별로 1종씩 존재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여기에 는 소수의 노래가 배타적 속성을 띠며 전국을 거의 과점하는 양상을 보이지만, 는 크고 작은 권역의 노래들이 마을별로 이러저러한 조합을 이루고 있다. 그렇기에 는 노래의 종류도 많고, 존재 국면 또한 다양하다. 전국적으로 는 20여 종이 조금 넘는 데에 불과하지만, 는 200종 이상이 확인되고 있다. 마을별 는 기본적으로 느린 노래와 빠른 노래, 또는 일상적 정서를 띤 노래와 유흥적 정서를 띤 노래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가창은 느린 노래로부터 빠른 노래로 이어지며, 정서적 흐름은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유흥적인 것으로 옮아간다.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의 경우를 예로 들면, 이곳의 는 5종이며 , , , , 의 순으로 부른다. 이 중 는 느리고 침착한 분위기로 부르고 나머지는 이보다 빠르면서 흥청대는 분위기로 부른다. 그런가 하면 는 작업 횟수에 관계없이 같은 노래를 부르는 곳도 있고, 작업에 따라 다른 노래를 부르는 곳도 있다. 이를테면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의 는 전자에 해당하고, 충남 금산군 부리면 선원리의 는 후자에 해당한다. 이곳의 는 호미로 맬 때(초벌) 와 를 하고, 손으로 맬 때(두벌과 세벌) 와 를 부른다. 그리고 이것들의 구성은 각각 느리고 빠른 노래로 조합되어 있다. 그런데 호미로 흙을 파내며 작업하는 일은 힘들고 손으로 김을 뽑는 일은 그보다 부담이 적다. 노동의 강도가 낮아지다 보니 호미 작업보다는 손작업의 가 흥청대며 유흥적인 분위기의 노래가 많다. 는 후렴이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후렴이 있다. 로 후렴이 없는 노래는 ·· 등인데, 이것들은 모두 강원도와 영남 등 동부 지역에 토대를 둔 노래들이다. 이 밖에 동부 지역의 영향을 받은 전북 무주·남원·순창·임실·전남 곡성 등의 계통 에도 후렴이 없는 노래가 더러 발견된다. 현지에서 (전북 순창군 유등면 간곡리), (전남 곡성군 삼기면 원등리), 또는 그냥 라는 기능명(전북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으로 통하는 노래들이 그것이다. 의 가창방식은 선후창이 지배적이며, 이 밖에 제창, 교환창, 윤창, 복창 등이 나타난다. 는 후렴이 있는 노래가 대부분이므로 그 가창방식도 자연스레 선후창이 많아졌다. 그러나 후렴이 있는 를 제창 또는 교환창으로 부르는 곳도 있다.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의 ·· 전북 순창군 팔덕면 월곡리의 · 등은 모두 후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각 제창과 교환창으로 부른다. 이러한 사례는 두 지역의 인근 지역에도 더러 존재한다. 제창은 선창자가 노래를 시작하면, 이어서 다 함께 부르는 방식인데, 를 이렇게 부르는 곳은 강원도 영동 지역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이 지역에서는 후렴 유무와 상관없이 실상 거의 모든 를 이 방식으로 부른다. 교환창은 두 패로 나뉘어 가사를 분담하거나 전담하며 주고받는 방식인데, 의 교환창은 후자의 방식이 지배적이다. 이 방식 역시 후렴 유무와 상관이 없으며, 전북 순창·임실·남원·전남 곡성 등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소리를 이어가는 윤창은 대부분 와 를 부를 때 나타나는데, 는 강원도 영동 지역 이외의 곳에서, 그리고 는 강원도 안에서 주로 발견된다. 이 밖에 드물지만 를 복창으로 부르는 곳(경기도 포천시 산북면 계류리)도 존재한다.

지역사례

의 거시적 판도와 지역적 판도의 근간은 전국적 분포 노래가 그 권역을 확산하는 가운데 지역의 국지적 노래들과 충돌하며 대립하는 구도로 형성되어 있다. 전국적 분포의 는 와 2종이며, 이 노래들은 경기도에 강한 토대를 구축한 뒤 이를 기반으로 전국적인 확산을 이루었다. 경기도 는 와 가 거의 전역을 점유한 가운데 , , , 등 국지적으로 분포된 노래들이 일정 지역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먼저 은 인천시 강화, 경기도 김포·고양·양주·파주 등 경기 북서부일대에 토대를 구축한 뒤 구리·용인·화성 등에까지 진출하였다. 그런가 하면 화성·평택·용인 등 경기 서남부에는 충남에 토대를 둔 가, 안성·여주·양평 등 경기 동남부 일대에는 강원도에 토대를 둔 가, 그리고 포천·가평·양평 등 동북부 일대에는 역시 강원도에 토대를 둔 가 진출해 강한 힘을 구축하고 있다. 경기 서북부를 중심으로 내부적 토대가 형성되고, 그 외곽에서 인접지 가 파고들어 대립하는 국면을 형성한 것이다. 다만 여기서 하나 특이한 점은 이 본래 전문 소리꾼들이 부르는 통속민요라는 점이다. 통속민요가 일노래로 수용되어 비중 있는 노래로 토착화된 사례는 이 유일하다. 강원도의 는 가 영서 북부에, 가 영서 남부에, 가 영동 북부에, 가 영동 남부에 각각 강세를 보이며 내부 노래들이 포진하는 가운데 경기도로부터 와 가 진입하는 국면이 전개되었다. 와 는 강원도에 진입하면서 영서 지역의 와 로부터 저항을 받았으나, 이내 수습되어 모두 함께 공존하는 상황을 연출하였다. 그 결과 와 는 인제·홍천·평창 등 영서 지역 끝자락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와 의 저항을 이겨내지 못하여 영동 지역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강원도의 는 영동 지역과 영서 지역에서 각기 다른 국면으로 전개된 것이다. 충청권의 로 강세인 것은 , 등이다. 이 중 는 내부 노래로서 홍성·예산·공주·아산 등 충남 서부 일대에 강한 토대를 구축하였고, 는 경북에 토대를 두고 영동·옥천·보은 등 충북 남부에 거점을 마련한 뒤 충남 금산과 대전 등으로 나아갔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와 의 남진(南進)은 의 권역을 피해 충남 동부와 충북 북부를 통해 전개되었고, 충남 동남부와 충북 남부에 이르러서는 와 충돌하며 대립 구도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로써 충청권 의 지역 구도는 내부 노래와 외부 노래, 그리고 외부 노래 간의 대립이 맞물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영남권에서 전국적 분포 노래와 대립 구도를 보이는 는 이다. 는 경북의 내부 노래로서 상주·구미·김천·칠곡 등 경북 서부에 강한 토대를 구축하고, 또 충북 남부까지 그 외곽을 확장하며 외부 노래의 진출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와 는 의 장악력이 낮은 충북 괴산 일대를 통해 예천·영주·의성·안동 등 낙동강 상류 및 경북 북부 지역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이곳은 , , 등 경북의 내부 노래군이 공존하는 곳으로서 의 장악력이 낮다. 이후 남진을 계속한 전국적 분포 노래는 경북 동남부에 이르러 가 약세를 보이며 경남에는 만 진출할 수 있었다. 경남의 로서 내부 노래는 , 등이 있으나 그 종류도 단조롭고 확장력도 약한 상황이기에 는 이것들을 압도하며 점유 비중이 가장 높게 자리 잡았다. 전국적 분포 노래의 호남권 진입은 만 이루어냈다. 현재 그 배경은 분명히 드러나 있지 않지만, 경남에 만 진입할 수 있었던 것과 대조적인 상황이다. 의 남진은 충청권을 지나면서 크게 약화되었지만, 와 의 장악력이 약해진 부여·논산 등 충남 남부를 통해 전북에 진입한 뒤 다시 활기를 띠었다. 본래 전북의 는 지역적 차원의 강세 노래가 특별하지 않은 상황에서 서부 평야 지대와 동부 산간 지대에 소권역의 여러 노래가 대립을 하는 구도를 지니고 있었지만, 는 이러한 구도와 무관하게 거의 전역에 고른 분포를 이루며 점유 비중이 가장 높은 소리로 자리 잡았다. 전남의 판도는 서북부에 , 서남부에 , 동부에 이 강세를 보이며 상호 대립하는 구도를 지니고 있다. 는 전북에 거점을 확보한 뒤 남진을 계속했지만 의 저항을 받아 전남 서부로 진출하지 못하였고, 장성과 함평 일부 지역을 기점으로 진로를 바꿔 동진 끝에 담양, 곡성을 통해 섬진강 상류에 거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후 다시 남행한 는 서남해의 와 충돌한 뒤 순천·여수 등 섬진강 하류 일대에 머물러야 했다. 그러므로 전남의 는 외부 노래를 동부에서 받아들여 서부의 내부 노래들과 대치하는 국면을 연출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는 우리 민요 가운데 노래의 종류가 가장 풍부한 부류에 해당한다. 또한 는 그 종류가 많은 대신 점유 공간이 좁은 노래들이 대부분이다. 는 특정 마을 또는 불과 몇 개 마을에 분포되어 있는 노래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가 하면 의 구성은 마을마다 다른 조합을 보이는 일이 많다. 인접 마을임에도 의 구성은 다를 수 있다. 노래의 생산과 소통이 그만큼 활성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가 우리 민요 중 문화적 다양성과 지역적 독자성을 가장 풍부하게 내포하고 있는 부류에 해당함을 의미한다.

참고문헌

강원도 의 기초적 분석과 지역적 판도(강등학, 한국민속학53, 한국민속학회, 2011), 경기향토민요(강등학 외, 경기도 문화의전당, 2007), 와 의 전국적 판도 및 농요의 권역에 관한 연구(강등학, 한국민속학38, 한국민속학회, 2003), 한국구비문학의 이해(강등학 외, 월인, 2000), 한국구연민요-연구(한국구연민요연구회, 집문당,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