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요

한자명

勞動謠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민요 > 노동요

집필자 강등학(姜騰鶴)
갱신일 2019-01-03

정의

민중이 일하면서 일을 위한 도구로 부르는 노래.

개관

노동요는 민중이 일을 하면서 부르는 민요를 말한다. 일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일을 더욱 효과적으로 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어떤 일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하여 알맞은 도구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노동요는 민중이 일을 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는 민요라고 할 수 있다.

민중이 일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 가운데에는 노동의 현장에서만 구연되는 것이 있고, 일과 무관한 자리에서 구연되는 것도 있다. 전자는 원래 작업의 필요에 의해 생성되고 작업을 통해서 전승되어온 순수 노동요이다. 예를 들면 토목 공사나 벌목 작업의 현장에서 무거운 돌이나 나무를 여럿이 옮기며 부르는 <목도하는 소리>, 큰 돌이나 나무를 일시에 들었다 내리며 집터를 다지는 <땅 다지는 소리> 등이 여기에 속하는 노래들이다. 후자의 경우는 노동요가 아닌 다른 노래를 필요에 따라 일의 현장에 가져다 부르는 것으로서 그 대부분은 노래 자체를 즐기는 가창유희요들이다. 예를 들어 전남 담양에서 나무를 할 때 부르는 <육자배기>는 호남 지역의 가창유희요이다. 강원도 정선에서 밭맬 때 부르는 <아라리>, 경남 고성에서 논맬 때 부르는 <칭칭이> 등도 같은 사례에 해당한다.

이처럼 민중이 노동의 현장에서 부르는 민요는 본래부터 일을 할 때만 부르는 순수한 노동요와 일과 무관한 노래를 차용해서 부르는 노동요가 있다. 노동요는 민중이 일의 도구로 활용하는 민요이며, 다른 민요의 차용도 노동의 필요성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차용된 노동요도 그 도구적 기능에 있어서는 순수 노동요와 차이가 나지 않는다. 따라서 민중이 실제로 일을 하면서 부르는 민요는 차용 여부와 관계없이 모두 노동요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노동요는 일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이기에, 단지 일을 소재로 한 민요는 노동요라고 할 수 없다. 이를테면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담고 있는 <성님 성님 사촌 성님>은 일과 관계되는 내용은 없지만 부녀자들이 삼을 삼으면서 부르기에 노동요에 넣을 수 있다. 그러나 <바느질소리>는 저고리의 깃, 섭, 고름 등을 다는 바느질 작업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실제로 바느질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는 아니므로 노동요라고 할 수 없다. 같은 이유에서 <누에타령>, <메밀타령>, <빨래소리> 등도 노동요로 보기 어렵다. 이들은 모두 일을 소재로 한 민요일 뿐이다.

내용

민요는 민중이 생활의 필요에 의해 부르는 노래이다. 그리고 민중의 생활은 일과 놀이, 그리고 의례가 대강을 이룬다. 이에 따라 민요 또한 자연스레 노동요, 의식요, 유희요의 세 개 범주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런데 전통 사회에서 민중은 피지배 계급으로서 생산과 생활 현장의 제반 작업을 담당했다. 그러므로 민요의 세 개 범주 중 가장 중요한 핵심은 노동요이다. 이는 민중의 기본적 소임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노동요는 민요의 계급 문화적 본질을 그대로 내포하고 있는 범주라고 할 수 있다.

노동은 기본적으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긴요함이 있지만, 의례와 놀이는 문화적인 것으로서 노동에 비해 부수적인 성격을 띤다. 그러므로 노동에는 삶을 위한 몸놀림이 있지만, 의례와 놀이에는 소망과 취향을 위한 참여와 선택이 있다. 해당 민요 역시 이러한 본질적 차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를테면 논농사요는 취향과 관계없이 일의 효율과 몸이 처한 어려움을 덜어내기 위해 노래함이며, 기원의식요는 안녕과 풍요에 대한 소망의 표현으로, 그리고 언어유희요가창유희요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부른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노동요의 정서는 의식요나 놀이요와는 달리 삶의 긴요함과 몸이 처한 현장적 상황이 주도한다.

민중이 감당하는 노동은 생산, 유통, 판매, 토목과 건축 등 사회가 필요로 하는 모든 영역에 걸쳐 존재하며, 생산 또한 사회가 필요로 하는 모든 품목에 걸쳐 수행된다. 이에 따라 노동요 역시 노동의 사회적 수요에 부응하며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다. 이 같은 노동요의 부류를 생산 활동 또는 노동 내용에 따라 나누면, 농산노동요·수산노동요·임산노동요·공산노동요·토건노동요·운수노동요·광산노동요·상업노동요·가사노동요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분류의 기준을 업종으로 선택하면, 일부는 농업노동요·어업노동요·공업노동요·광업노동요 등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분류 기준에 따른 문제이며, 노동요가 사회적 수요에 맞추어 일마다 생성된 것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요는 기본적으로 작업의 효율을 높이는 도구로 기능한다. 노래의 리듬에 따라 동작을 맞추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작업 동작을 일치시킬 필요가 적은 경우에도 노동요는 일의 지루함과 고통을 덜어주어 작업의 효율을 높인다. 그러므로 노동요는 일의 작업 과정과 방식의 일부로 조직되어 있다고 하겠다. 고기잡이할 때 <노 젓는 소리>와 <그물 당기는 소리>는 배를 이동하고 잡은 고기를 끌어 올리는 과정에서 몸동작과 함께 불러야 하는 작업 내역의 일부에 해당한다. 논농사요의 <물 품는 소리>, 밭농사요의 <도리깨질하는 소리>, 목재생산요의 <목도하는 소리>, 길쌈요의 <삼 삼는 소리> 등 노동요 전반이 두루 같은 상황이다. 그러나 노동요가 노동 행위의 일부로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이 노래라는 점이 부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노동요의 가창은 기술적 행위이면서 문화적 행위라는 이원적 성격을 지닌다. 결국 노동요는 기술과 문화의 양면을 지닌 노래라고 하겠다.

그런데 같은 일을 하는 경우라도 어떤 노래를 하는지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 강원도 영서 지역에서는 논매기할 때 <단허리소리>나 <상사소리>를 부르는 일이 많지만, 영동 지역에서는 <오독떼기>나 <제창미나리>를 부른다. 그런가 하면, 같은 일에 대해서도 정해진 노래가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다. <밭 가는 소리>로 강원도와 그 인근, 또 제주도에서는 각각 <이랴소리>와 <더럼소리>를 부르지만, 충남과 호남 등에서는 정해진 노래가 발견되지 않는다. 이러한 사례는 물론 노동요 전반에 흔하게 존재한다.

한편 노동요의 지역적 편차는 노래 구성과 가창방식에 있어서도 나타난다. <모심는 소리>의 경우 영남의 <정자소리>는 무후렴요인 반면, 호남의 <상사소리>는 후렴요이다. <논매는 소리>의 경우 전국적으로 후렴요가 우세하지만, 강원도 영동 지역은 <오독떼기>, <제창미나리> 등 무후렴요가 중심을 이룬다. 또 후렴이 있는 <논매는 소리>도 경기도·충남·전북·전남 등 서부 지역 노래가 강원도·충북·경북·경남 등 동부 지역 노래에 비해 행 구성이 길고, 이에 따라 노래의 호흡 역시 그만큼 길게 전개되는 경향을 보인다. 요컨대 1행을 4가보 이상으로 구성하는 비율이 서부 지역 <논매는 소리>가 동부 지역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나는 것이다. 가창방식의 경우에도 모심는 행위는 동일해도 영남은 <정자소리>를 교환창으로 부르고, 호남은 <상사소리>를 선후창으로 부른다. 또 <논매는 소리>의 경우에는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선후창이 우세하지만, 강원도 영동 지역은 노래의 후렴 유무와 관계없이 제창으로 부른다.

노동요는 작업 과정의 일부로 조직되어 있다. 그러므로 노동요는 일단 해당 노동의 기술적 측면을 충족시켜야 한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동일 기능의 다른 노동요들은 모두 해당 노동의 기술적 측면을 충족시킨 노래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럼에도 노동요는 종류와 구성, 가창방식 등 여러 측면에서 지역 편차를 보인다. 이는 노동요의 생성과 수용에 기술적 측면 외에 문화적 측면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문화는 지리적 조건, 산업, 그리고 역사적 과정과 인문적 정서 등 제반 여건 위에 존재하고 유통된다. 이렇게 문화의 저변에 놓여있는 여러 요인의 집합을 문화 지형이라고 한다. 노동요의 지역적 편차는 그 기저에 놓여있는 문화 지형에서 비롯된 것이다. 노동요가 기술과 문화의 양 측면의 수요를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요는 작업 과정의 조직성 여부에 따라 그 내용과 정서도 달라진다. 모심기·논매기·노젓기·말뚝 박기 등은 여럿이 보조를 맞추어 공동 작업을 해야 하지만, 밭매기·밭 갈기·나무하기·삼 삼기 등은 여럿이 어울려 해도 작업은 각자 자유롭게 진행한다. 가창방식 또한 작업의 성격에 맞추어 공동 작업 노동요는 대부분 선후창, 교환창, 제창, 복창 등 공동창을 취하고, 개별 작업 노동요는 독창 또는 윤창을 취한다. 그러므로 공동 작업의 노동요는 노래의 화제와 정서가 공동적 기조 위에 존재하고, 개별 작업 노동요는 사적 기조 위에 존재한다. 전자는 기본적으로 우리의 문제를 노래하고, 후자는 나의 문제를 노래하는 것이다.

불쌍하다 우리야 농부/ 우훌류라 궁글레야
먹고 나도 요종사요/ 우훌류라 궁글레야
자고 나도 요종산데/ 우훌류라 궁글레야
우리 농부 아니면은/ 우훌류라 궁글레야
이 논배미를 어떻게 하나/ 우훌류라 궁글레야
- 경남 의령, <논매는 소리-궁글레소리>

울 어매는 날 설 적에 감감초를 원했던가
살아갈수록 감감하네
울 어매는 날 설 적에 대나무 죽순을 원했던가
마디마디도 설움이네
울 어매는 나를 키워서 남 안 준다고 하더니
싫은 듯이 남을 줘서 이 설움 때문에도 못 살겠고
잠 때문에도 못 살겠네
- 전남 광양, <밭매는 소리-흥글소리>

<궁글레소리>의 창자는 농부 자신들이 불쌍하다고 했다. 몸이 늘 농사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농사가 자신들의 소임임을 말하고 있다. 또 <흥글소리>의 창자는 삶이 고달픔을 토로했다. 시집살이가 서러워 힘들고,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 힘들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왜 이런 데에 시집을 보냈는가, 임신 중에 감감초나 죽순을 먹었는가 하면서 마구 투정을 부려본다. 두 노래 모두 신세타령을 하고 있다. 그러나 <궁글레소리>의 어려움은 논매기에 참여한 농부 모두의 처지이며, <흥글소리>의 어려움은 시집살이로 힘들어 하는 여성 개인의 처지이다.

특징 및 의의

상고시대부터 근대 이전 전통 사회에 이르기까지 우리 노래 문화는 궁중, 상층, 하층이 각자의 형편과 미의식에 맞는 장르와 작품들을 생산하고 소비해왔다. 그런데 궁중 가요와 상층 가요는 미적 가공이 인위적이며 전문적으로 행해지지만, 하층 가요의 미적 가공은 자연적이며 무의식적으로 행해진다는 점에서 다른 면이 있다. 조선시대의 경우 궁중의 악장은 성리학에 기반을 둔 예악 사상의 시각에서 작품을 형상하였으며, 조선 상층 사회가 소비한 시조는 그들의 취향에 맞도록 유학적 기반의 세계관과 미의식을 내면화한 작품 생산이 많았다. 그리고 악장·시조의 곡과 반주의 악기 편성도 각각 해당 미감에 맞도록 조직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이에 반해 하층 가요인 민요는 인위적이며 전문적인 미적 처리와 가공을 거치지 않아왔다. 양육요의 리듬 기조는 자연스러운 읊조림의 구조에 의해 유도되고, <논매는 소리> 중 길게 부르는 노래의 리듬은 호흡과 우리말의 구조에 의해 자연스레 형성된다. 그런가 하면 미의식과 세계관도 특정 이념이나 문화에 따른 지향성을 지니기보다는 민중적 생활 경험과 감각이 더 우선적이다. 그런데 민요의 미적 가공도 그 범주에 따라 다소 다른 면이 있다. 의식요와 유희요가 문화적 지향으로 전개되는 것이라면, 노동요는 작업과 몸이 처한 현장이 그 지향을 주도한다. 이는 노동요가 민요 중에서도 노래의 미적 가공이 여타 범주보다 더욱 낮은 수준의 노래임을 의미한다. 물론 노동요 중에는 전문 소리꾼들의 노래에 영향을 받은 것도 상당수 존재하고, 또 시기에 따라 미적 가공의 정도도 균일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동요는 작업의 일부로서 조직되어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것이 한층 본질적이며 중심적 양상이다. 그러므로 노동요는 우리 노래 생태계의 가장 저층에 자리하는 노래이며, 우리 노래 문화의 원형질을 가장 풍부하게 내포하고 있는 노래라고 하겠다.

참고문헌

구비문학개설(장덕순 외, 일조각, 1971), 한국구비문학의 이해(강등학 외, 월인, 2000), 한국민요학의 논리와 시각(강등학, 민속원, 2005).

노동요

노동요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민요 > 노동요

집필자 강등학(姜騰鶴)
갱신일 2019-01-03

정의

민중이 일하면서 일을 위한 도구로 부르는 노래.

개관

노동요는 민중이 일을 하면서 부르는 민요를 말한다. 일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일을 더욱 효과적으로 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어떤 일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하여 알맞은 도구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노동요는 민중이 일을 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는 민요라고 할 수 있다. 민중이 일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 가운데에는 노동의 현장에서만 구연되는 것이 있고, 일과 무관한 자리에서 구연되는 것도 있다. 전자는 원래 작업의 필요에 의해 생성되고 작업을 통해서 전승되어온 순수 노동요이다. 예를 들면 토목 공사나 벌목 작업의 현장에서 무거운 돌이나 나무를 여럿이 옮기며 부르는 , 큰 돌이나 나무를 일시에 들었다 내리며 집터를 다지는 등이 여기에 속하는 노래들이다. 후자의 경우는 노동요가 아닌 다른 노래를 필요에 따라 일의 현장에 가져다 부르는 것으로서 그 대부분은 노래 자체를 즐기는 가창유희요들이다. 예를 들어 전남 담양에서 나무를 할 때 부르는 는 호남 지역의 가창유희요이다. 강원도 정선에서 밭맬 때 부르는 , 경남 고성에서 논맬 때 부르는 등도 같은 사례에 해당한다. 이처럼 민중이 노동의 현장에서 부르는 민요는 본래부터 일을 할 때만 부르는 순수한 노동요와 일과 무관한 노래를 차용해서 부르는 노동요가 있다. 노동요는 민중이 일의 도구로 활용하는 민요이며, 다른 민요의 차용도 노동의 필요성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차용된 노동요도 그 도구적 기능에 있어서는 순수 노동요와 차이가 나지 않는다. 따라서 민중이 실제로 일을 하면서 부르는 민요는 차용 여부와 관계없이 모두 노동요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노동요는 일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이기에, 단지 일을 소재로 한 민요는 노동요라고 할 수 없다. 이를테면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담고 있는 은 일과 관계되는 내용은 없지만 부녀자들이 삼을 삼으면서 부르기에 노동요에 넣을 수 있다. 그러나 는 저고리의 깃, 섭, 고름 등을 다는 바느질 작업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실제로 바느질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는 아니므로 노동요라고 할 수 없다. 같은 이유에서 , , 등도 노동요로 보기 어렵다. 이들은 모두 일을 소재로 한 민요일 뿐이다.

내용

민요는 민중이 생활의 필요에 의해 부르는 노래이다. 그리고 민중의 생활은 일과 놀이, 그리고 의례가 대강을 이룬다. 이에 따라 민요 또한 자연스레 노동요, 의식요, 유희요의 세 개 범주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런데 전통 사회에서 민중은 피지배 계급으로서 생산과 생활 현장의 제반 작업을 담당했다. 그러므로 민요의 세 개 범주 중 가장 중요한 핵심은 노동요이다. 이는 민중의 기본적 소임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노동요는 민요의 계급 문화적 본질을 그대로 내포하고 있는 범주라고 할 수 있다. 노동은 기본적으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긴요함이 있지만, 의례와 놀이는 문화적인 것으로서 노동에 비해 부수적인 성격을 띤다. 그러므로 노동에는 삶을 위한 몸놀림이 있지만, 의례와 놀이에는 소망과 취향을 위한 참여와 선택이 있다. 해당 민요 역시 이러한 본질적 차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를테면 논농사요는 취향과 관계없이 일의 효율과 몸이 처한 어려움을 덜어내기 위해 노래함이며, 기원의식요는 안녕과 풍요에 대한 소망의 표현으로, 그리고 언어유희요와 가창유희요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부른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노동요의 정서는 의식요나 놀이요와는 달리 삶의 긴요함과 몸이 처한 현장적 상황이 주도한다. 민중이 감당하는 노동은 생산, 유통, 판매, 토목과 건축 등 사회가 필요로 하는 모든 영역에 걸쳐 존재하며, 생산 또한 사회가 필요로 하는 모든 품목에 걸쳐 수행된다. 이에 따라 노동요 역시 노동의 사회적 수요에 부응하며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다. 이 같은 노동요의 부류를 생산 활동 또는 노동 내용에 따라 나누면, 농산노동요·수산노동요·임산노동요·공산노동요·토건노동요·운수노동요·광산노동요·상업노동요·가사노동요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분류의 기준을 업종으로 선택하면, 일부는 농업노동요·어업노동요·공업노동요·광업노동요 등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분류 기준에 따른 문제이며, 노동요가 사회적 수요에 맞추어 일마다 생성된 것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요는 기본적으로 작업의 효율을 높이는 도구로 기능한다. 노래의 리듬에 따라 동작을 맞추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작업 동작을 일치시킬 필요가 적은 경우에도 노동요는 일의 지루함과 고통을 덜어주어 작업의 효율을 높인다. 그러므로 노동요는 일의 작업 과정과 방식의 일부로 조직되어 있다고 하겠다. 고기잡이할 때 와 는 배를 이동하고 잡은 고기를 끌어 올리는 과정에서 몸동작과 함께 불러야 하는 작업 내역의 일부에 해당한다. 논농사요의 , 밭농사요의 , 목재생산요의 , 길쌈요의 등 노동요 전반이 두루 같은 상황이다. 그러나 노동요가 노동 행위의 일부로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이 노래라는 점이 부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노동요의 가창은 기술적 행위이면서 문화적 행위라는 이원적 성격을 지닌다. 결국 노동요는 기술과 문화의 양면을 지닌 노래라고 하겠다. 그런데 같은 일을 하는 경우라도 어떤 노래를 하는지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 강원도 영서 지역에서는 논매기할 때 나 를 부르는 일이 많지만, 영동 지역에서는 나 를 부른다. 그런가 하면, 같은 일에 대해서도 정해진 노래가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다. 로 강원도와 그 인근, 또 제주도에서는 각각 와 를 부르지만, 충남과 호남 등에서는 정해진 노래가 발견되지 않는다. 이러한 사례는 물론 노동요 전반에 흔하게 존재한다. 한편 노동요의 지역적 편차는 노래 구성과 가창방식에 있어서도 나타난다. 의 경우 영남의 는 무후렴요인 반면, 호남의 는 후렴요이다. 의 경우 전국적으로 후렴요가 우세하지만, 강원도 영동 지역은 , 등 무후렴요가 중심을 이룬다. 또 후렴이 있는 도 경기도·충남·전북·전남 등 서부 지역 노래가 강원도·충북·경북·경남 등 동부 지역 노래에 비해 행 구성이 길고, 이에 따라 노래의 호흡 역시 그만큼 길게 전개되는 경향을 보인다. 요컨대 1행을 4가보 이상으로 구성하는 비율이 서부 지역 가 동부 지역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나는 것이다. 가창방식의 경우에도 모심는 행위는 동일해도 영남은 를 교환창으로 부르고, 호남은 를 선후창으로 부른다. 또 의 경우에는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선후창이 우세하지만, 강원도 영동 지역은 노래의 후렴 유무와 관계없이 제창으로 부른다. 노동요는 작업 과정의 일부로 조직되어 있다. 그러므로 노동요는 일단 해당 노동의 기술적 측면을 충족시켜야 한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동일 기능의 다른 노동요들은 모두 해당 노동의 기술적 측면을 충족시킨 노래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럼에도 노동요는 종류와 구성, 가창방식 등 여러 측면에서 지역 편차를 보인다. 이는 노동요의 생성과 수용에 기술적 측면 외에 문화적 측면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문화는 지리적 조건, 산업, 그리고 역사적 과정과 인문적 정서 등 제반 여건 위에 존재하고 유통된다. 이렇게 문화의 저변에 놓여있는 여러 요인의 집합을 문화 지형이라고 한다. 노동요의 지역적 편차는 그 기저에 놓여있는 문화 지형에서 비롯된 것이다. 노동요가 기술과 문화의 양 측면의 수요를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요는 작업 과정의 조직성 여부에 따라 그 내용과 정서도 달라진다. 모심기·논매기·노젓기·말뚝 박기 등은 여럿이 보조를 맞추어 공동 작업을 해야 하지만, 밭매기·밭 갈기·나무하기·삼 삼기 등은 여럿이 어울려 해도 작업은 각자 자유롭게 진행한다. 가창방식 또한 작업의 성격에 맞추어 공동 작업 노동요는 대부분 선후창, 교환창, 제창, 복창 등 공동창을 취하고, 개별 작업 노동요는 독창 또는 윤창을 취한다. 그러므로 공동 작업의 노동요는 노래의 화제와 정서가 공동적 기조 위에 존재하고, 개별 작업 노동요는 사적 기조 위에 존재한다. 전자는 기본적으로 우리의 문제를 노래하고, 후자는 나의 문제를 노래하는 것이다. 불쌍하다 우리야 농부/ 우훌류라 궁글레야먹고 나도 요종사요/ 우훌류라 궁글레야자고 나도 요종산데/ 우훌류라 궁글레야우리 농부 아니면은/ 우훌류라 궁글레야이 논배미를 어떻게 하나/ 우훌류라 궁글레야- 경남 의령, 울 어매는 날 설 적에 감감초를 원했던가살아갈수록 감감하네울 어매는 날 설 적에 대나무 죽순을 원했던가마디마디도 설움이네울 어매는 나를 키워서 남 안 준다고 하더니싫은 듯이 남을 줘서 이 설움 때문에도 못 살겠고잠 때문에도 못 살겠네- 전남 광양, 의 창자는 농부 자신들이 불쌍하다고 했다. 몸이 늘 농사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농사가 자신들의 소임임을 말하고 있다. 또 의 창자는 삶이 고달픔을 토로했다. 시집살이가 서러워 힘들고,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 힘들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왜 이런 데에 시집을 보냈는가, 임신 중에 감감초나 죽순을 먹었는가 하면서 마구 투정을 부려본다. 두 노래 모두 신세타령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의 어려움은 논매기에 참여한 농부 모두의 처지이며, 의 어려움은 시집살이로 힘들어 하는 여성 개인의 처지이다.

특징 및 의의

상고시대부터 근대 이전 전통 사회에 이르기까지 우리 노래 문화는 궁중, 상층, 하층이 각자의 형편과 미의식에 맞는 장르와 작품들을 생산하고 소비해왔다. 그런데 궁중 가요와 상층 가요는 미적 가공이 인위적이며 전문적으로 행해지지만, 하층 가요의 미적 가공은 자연적이며 무의식적으로 행해진다는 점에서 다른 면이 있다. 조선시대의 경우 궁중의 악장은 성리학에 기반을 둔 예악 사상의 시각에서 작품을 형상하였으며, 조선 상층 사회가 소비한 시조는 그들의 취향에 맞도록 유학적 기반의 세계관과 미의식을 내면화한 작품 생산이 많았다. 그리고 악장·시조의 곡과 반주의 악기 편성도 각각 해당 미감에 맞도록 조직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이에 반해 하층 가요인 민요는 인위적이며 전문적인 미적 처리와 가공을 거치지 않아왔다. 양육요의 리듬 기조는 자연스러운 읊조림의 구조에 의해 유도되고, 중 길게 부르는 노래의 리듬은 호흡과 우리말의 구조에 의해 자연스레 형성된다. 그런가 하면 미의식과 세계관도 특정 이념이나 문화에 따른 지향성을 지니기보다는 민중적 생활 경험과 감각이 더 우선적이다. 그런데 민요의 미적 가공도 그 범주에 따라 다소 다른 면이 있다. 의식요와 유희요가 문화적 지향으로 전개되는 것이라면, 노동요는 작업과 몸이 처한 현장이 그 지향을 주도한다. 이는 노동요가 민요 중에서도 노래의 미적 가공이 여타 범주보다 더욱 낮은 수준의 노래임을 의미한다. 물론 노동요 중에는 전문 소리꾼들의 노래에 영향을 받은 것도 상당수 존재하고, 또 시기에 따라 미적 가공의 정도도 균일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동요는 작업의 일부로서 조직되어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것이 한층 본질적이며 중심적 양상이다. 그러므로 노동요는 우리 노래 생태계의 가장 저층에 자리하는 노래이며, 우리 노래 문화의 원형질을 가장 풍부하게 내포하고 있는 노래라고 하겠다.

참고문헌

구비문학개설(장덕순 외, 일조각, 1971), 한국구비문학의 이해(강등학 외, 월인, 2000), 한국민요학의 논리와 시각(강등학, 민속원,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