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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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최인학(崔仁鶴)
갱신일 2018-11-08

역(曆)과 정월

우리나라에는 춘하추동 4계절이 있어 예로부터 선조들은 이 계절에 맞추어 살아왔다. 이것을 자연력(自然曆)이라고 한다. 선조들은 교체와 순환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자연의 법칙에 어떻게 하면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해 왔다. 농민들은 밤낮의 구분이나 달의 영휴(盈虧: 달의 가득참과 이지러짐)를 신앙과 결부시켜 생활의 활력소로 만들기도 했다. 계절의 변화에 따른 더위와 추위에 적응하기 위한 기술적인 면이 발전했으며, 생활 방식의 질서가 잡히고 생활 궤도와 생활 양식의 기초가 쌓여왔다.
역법(曆法)이 들어오면서부터 이에 준하여 농사를 시작했는데 이것이 곧 태음력(太陰曆)이며, 농경생활에 알맞은 24절기가 생겨났다. 절기에 맞추어 미리 농사 준비를 하게 되었는데, 절기는 매년 되풀이되며 농경생활에도 일정한 리듬을 불어넣어 농민들의 활력소가 되었다. 이를테면, 하루는 태양에 의해 움직이고 한달은 달에 의해 정하며, 일년은 태양의 계절적인 순환과 달의 영휴에 근거한 12개월이란 절충에 의해 정해졌다. 여기서 달을 중심으로 한 생활을 생각할 때 등불이 생기기 이전의 달빛의 밝음과 어둠이 농경생활에 얼마나 중요했던가는 충분히 짐작이 된다.
1월은 일년을 시작하는 달이며 가장 중요한 달이다. ‘시작이 반’이란 말과 같이 시작하는 달은 그만큼 중요하다. 계절적으로도 봄이 시작되는 달이며 본격적인 농경을 위해 준비하는 달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4대 명절이라 할 수 있는 설과 대보름, 단오, 추석과 같은 명절 중 설과 대보름의 의례가 1월에 있고, 그 밖에 크고 작은 의례가 정월에 집중되어 있다. 1월을 정월(正月)이라 하는 이유도 첫 달을 올바르게 지내야 일년을 무사하게 지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설과 대보름

대표적인 큰 명절로 설과 대보름을 들 수 있다. 설은 차례와 세배로 이어지는 가족적 성격이 두드러지고, 대보름은 동제와 규모가 큰 대동놀이와 같은 집단 공동체 의례의 성격이 짙다. 1월은 한마디로 조상 숭배·기복(祈福)·기풍(祈豊)·점복(占卜)·동제(洞祭)·놀이 등으로 축약될 수 있다. 정월에는 시작하는 달이 길(吉)하면 일년 동안의 일이 길(吉)하다 하여 갖가지 주술적인 행위가 벌어지는데, 토정비결은 그 대표적인 점술이다. 개인 건강을 위해서도 다양한 주술이 행해진다. 머지않아 농사철이 가까워지면 눈코 뜰새 없이 바빠지기 때문에 정월은 조상 숭배의 달, 심신을 단련하는 달, 농경을 준비하는 달로 공동체의 화목 단결을 위한 여러 가지 의례와 놀이가 집중되어 있다. 특히 대보름에도 집중적으로 놀이가 행해진다. 일년의 세시풍속을 쓸 때 정월을 기술하면 거의 반을 차지하리만큼 정월에 집중되어 있다.
1월 1일 즉 정월 첫날을 일컬어 설날이라고 한다. 연수(年首)·세수(歲首)·원단(元旦)이라고 하는데 보통 ‘설’이라고 부른다. 연수나 세수, 원단은 모두 그해의 첫날이란 뜻인데 설날이란 명칭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듯하다. 설은 한자로 신일(愼日)이라고 쓰는데 근신하여 경거망동을 삼가는 날이라는 학설이 있다. 여기에 비해‘낯설다’의 ‘설다’에서 그 유래를 찾기도 한다. 처음 겪거나 맞닥뜨리는 대상은 그것은 그것이 사람이든 연장이든 장소든 시간이든 모두 낯설기 마련이다. 첫경험의 낯설음을 통해서 ‘시작의 시간’ 설은 세시의 최초 의례로서 통과의례적 구실을 단단히 하고 있다는 학설을 내놓고 있다. 이 밖에 설은 해갈음이니 나이란 뜻도 있고 새롭다는 의미도 있다. 설은 엄격히 따지면, 섣달그믐 밤부터라고 할 수 있다. 섣달그믐을 작은설이라 하여 이날 묵은세배를 하는 풍속도 있다.
설날에는 차례(茶禮)를 지낸다. 설날 아침에 드리는 제사를 ‘정조차례(正朝茶禮)’라고 한다. 4대 조상까지 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5대조 이상은 신주를 각기 분묘 옆에 묻어 집에서는 지내지 않고 10월 시제(時祭) 때에 제사를 지낸다. 명절 때마다 차례를 지내지만 정조차례는 매우 중요하다. 원래는 조상 제례와 깊은 관계가 있지만 사실은 조상 제례가 확립되기 이전부터 곡식을 수확하는 농경민에게는 곡령(穀靈)에게 경배하는 풍속이 있었다.
차례가 끝나면 모든 가족들은 자리를 정리해 앉는다. 이때 윗사람에게 차례로 세배를 한다. 집안 어른들에게 하는 세배가 끝나면 동네 어른들에게도 세배를 한다. 설날에 하는 인사가 세배라고 하는 이유는 윗사람에 대한 공경의 예의라는 의미도 있지만 설날의 인사는 보통 때와 달리 주술적인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즉, 앞으로 일년 동안의 건강과 안녕을 비는 의미가 포함돼 있는 것이다. 세배나 덕담은 언어주술적인 기능이 있어서 일종의 기복(祈福)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기복에 해당하는 행위는 1월에 집중되어 있다. 예를 들면, 이른 새벽에 복조리를 사서 달기도 하고 정월 말이나 입춘에는 대개의 가정에서 입춘축을 써서 기둥과 벽에 붙인다. 또 설날 대문에 갑옷을 입은 장군이나 종규(鐘馗: 중국에서 역귀나 마귀를 쫓는다는 신) 그림을 붙이기도 한다. 또한 삼재(三災)를 없애기 위해 세 마리의 매를 그려 붙이기도 한다. 설날 저녁이면 소발(燒髮)하는 풍속이 있고 야광귀(夜光鬼) 쫓기 같은 풍속도 있었다. 그리고 14일 저녁이면 제웅이라는 허수아비를 만들어 개천에 떠내려가게 한다. 또 같은 14일 밤에는 도액(度厄: 액막이)을 하는 수가 있는데 팥을 가지고 자기 나이 수대로 묻으며 주언(呪言)을 하면 그해에는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믿었다. 15일 상원날 아침에 부럼을 깨는 것이나 귀밝이술을 마시고 약식을 만들어 먹거나 그 무렵에 다리밟기를 하고 또는 지신밟기를 하는 것 모두 기복의 범주에 속한다.

십이지일(十二支日)

1월에는 하루도 빠짐 없이 의식이나 놀이가 행해진다. 그만큼 정월은 중요한 달이다. 십이지일은 정월에 들어 첫째 자일(子日)을 상자일(上子日)이라 하는데, 이는 곧 ‘쥐날’이다. 이와 같이 상해일(上亥日)까지 12일을 각각 띠로 해석하여 금기와 속신을 지킨다. 즉 쥐날에는 쥐불놀이를 통하여 들과 논밭 두렁을 태워 해충을 없애기도 한다. 축일(丑日)은 ‘소날’, 즉 상축일(上丑日)인데 소 돌보는 날이며 이날 하루는 소에게 일을 시키지 않고 쇠죽에 콩을 많이 넣어 먹인다. 인일(寅日)은 ‘범날’, 상인일(上寅日)로 이날은 남과 서로 왕래를 삼가며 특히 여자는 외출을 삼간다. 묘일(卯日)은 ‘토끼날’, 상묘일(上卯日)로 남자가 먼저 일어나서 대문을 열어야 한다. 또한 장수를 비는 날이기도 하다. 진일(辰日)은 ‘용날’, 상진일(上辰日)로 부녀자들이 남보다 먼저 일어나 우물물을 길어온다. 사일(巳日)은 ‘뱀날’, 상사일(上巳日)로 남녀 모두 머리를 빗거나 깎지 않는다. 오일(午日)은 ‘말날’, 상오일(上午日)인데 말 고사를 지내거나 장을 담근다. 미일(未日)은 ‘염소날’, 상미일(上未日)인데 양은 걸음걸이가 방정맞다 하여 어촌에서는 출항을 하지 않는다. 신일(申日)은 ‘원숭이날’, 상신일(上申日)인데 일손을 쉬고 놀며 특히 칼질을 하지 않는다. 유일(酉日)은 ‘닭날’, 상유일(上酉日)인데 부녀자의 바느질을 금하는 날이다. 술일(戌日)은 ‘개날’, 상술일(上戌日)인데 일손을 쉬고 논다. 해일(亥日)은 ‘돼지날’, 상해일(上亥日)인데 얼굴이 검거나 피부색이 검은 사람이 왕겨나 콩깍지로 얼굴을 문지르면 살결이 희고 고와진다고 한다.
십이지일은 금기와 동시에 이제 곧 농사일이 바빠질 테니 안정을 취하라는 의미가 있다. 이 밖에도 정월 7일은 ‘인일(人日)’이라 하여 외박을 하지 않는다. 이날 손님이 와서 묵고 가면 그해는 불운이 든다고 한다. 또 정월 16일은 ‘귀신날’이라고 한다. 이날에 외출을 하면 귀신이 붙는다고 해서 삼간다. 16일에 일을 하면 가을에 까치가 목화를 모두 쪼아 버린다고 해서 ‘까치날’이라 부르기도 한다.

입춘(立春)

입춘일은 천세력에 정해져 있고, 연초인 경우가 많다. 입춘은 24절기 중의 하나인데 봄으로 접어드는 절기이다. 입춘일에는 도시나 시골 할 것 없이 각 가정마다 대문 기둥이나 대들보 등에 좋은 뜻의 글귀를 써서 붙이며, 이를 ‘춘축(春祝)’이라고 한다.

점복(占卜)

1월은 농경민들이 풍요를 비는 달이기도 하다. 새해 들어 첫 축일[上丑日]을 ‘소날’이라 하여 소에게 일을 시키지 않고 콩·보리·나물들을 삶아 먹인다. 즉, 이와 같이 소를 위함으로써 기운을 내어 농사가 잘 되게 해달라는 농민들의 소박한 기풍(祈豊)의식이 담겨 있다. 1월에 들어 있는 농어민들의 기풍 행위들은 다음과 같다. 정월 8일은 ‘곡식날[穀日]’이라 하는데 이날 춘파(春播)할 준비를 하면 풍년이 든다고 믿는다. 또 설날부터 상원까지는 곡식을 문밖으로 내보내지 않는다. 만일 어기면 작물에 피해를 입는다고 한다. 14일은 ‘누더름날’이라 하는데 이는 늦여름이란 뜻이다. 정월 13일은 봄, 14일은 여름, 15일은 가을, 16일은 겨울로 상징하여 이날에는 많은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어 먹는다. 14일은 ‘낟가릿대’ 또는 ‘볏가릿대’라 하는 화간(禾竿)을 세운다. 이것도 기풍행위에 해당한다. 상원날에는 복쌈을 먹는데 밥을 김이나 취에 싸서 여러 개를 먹으면 그 수만큼 노적을 이루게 되어 풍작을 거둔다고 한다. 상원날에는 ‘나무 시집보내기’라 하여 ‘가수(嫁樹)’를 하는데 과목(果木)의 가지 사이에 돌을 얹어놓는다. 과일이 많이 맺히라는 기원에서 이런 풍속이 생겨났다. 어촌에서는 정월 초에 가정에서 성주를 모시고 뱃고사를 지낸다.
이 밖에 1월에는 일년의 신수를 본다. 토정비결을 비롯한 많은 농점(農占)이 있다. 입춘날 보리를 뽑아 그 뿌리의 상태로 풍흉을 점친다. 즉 뿌리가 셋이면 풍작, 둘이면 평년작, 하나면 흉작이라고 여겼다. 또 물을 담은 종지나 작은 그릇을 두고 안에 콩을 넣어 이튿날 콩의 불어난 상태를 보고 그해 농사를 점치기도 한다. 상원날 저녁에는 달맞이를 하는데 달의 형체나 빛깔을 보고 점치기도 하고 상원날 새벽에는 닭울음소리로 그해를 점치기도 한다. 또한 윷놀이의 승패로 그해의 풍흉을 점치기도 한다. 단순한 놀이지만 상원날을 중심으로 한 것은 모두가 기풍과 기복을 위한 주술적 행위라 할 수 있다.

속신(俗信)

1월 대보름을 전후해서 각 마을마다 동제를 지낸다.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제사를 드리는데 당산제, 장승제, 부군당제, 도당제, 당제, 골메기동신제, 포제, 본향당제, 산신제, 서낭제, 별신제 등 명칭은 다양하고, 제의 내용도 다양하지만 보통 독축을 중심으로 한 유교식 제의절차에 따른 제사형의 마을신앙, 유교식 제의절차를 따르면서도 음악과 춤, 그리고 극 등을 통해 축제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지는 풍물굿형과 무당굿형의 마을신앙으로 구분 지을 수 있다. 특히 용왕제는 풍어를 기원하는 해안 지역의 풍속으로 주로 대보름에 행해진다. 전남에서는 여성들에 의해 용왕제를 지내는 곳도 있다. 이와는 별도로 배를 가지고 있는 각 가정에서는 별도의 제상을 갖추어 배에 가서 뱃고사를 지내기도 한다. 배가 일년 동안 무사히 운항하기를 빌며, 풍어를 기원한다.
이 무렵 마을 수호신의 기능을 하는 장승과 솟대를 세우기도 한다. 솟대는 거릿대·연신대·별신대·갯대·액맥이대·짐대·수살대·오릿대 등으로 불린다. 이는 신간(神竿)의 역할을 하며, 그 기원은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 등에 보이는 소도(蘇塗)의 유습이라는 견해와 우리나라 서낭신과 관련이 깊은 몽고의 오보에서 왔다는 견해가 있다. 장승은 명칭도 다르게 나타난다. 중부지방에서는 ‘장승’, 제주도에서는 ‘하르방’, 남해안지방에서는 ‘벅수’라고 부르며 재질은 돌이나 나무의 두 종류이다. 이와 같이 장승과 솟대들이 종교적인 목적이나 마을공동체에서 연례적으로 많이 세워진다.

놀이

풍년을 기원하는 민속놀이로 ‘달집태우기’가 있다. 달맞이와 연계되어 쥐불놀이, 횃불싸움과도 연관성을 가지는 놀이이다. 호남 지역에서는 마을의 청장년들이 주축이 되어 짚을 모으고 생솔이나 생대를 가져다가 마을 공터에 원추형의 달집을 만들어 놓고, 14일 밤 달이 떠오를 때를 기다려 함성을 지르면서 불을 지른다. 그리고 농악대의 청년들이 각 가정에 지신밟기를 해준다. 보름달은 풍요의 상징이고 불은 모든 부정과 사악을 불살라버리는 정화의 상징이다. 따라서 보름날의 달집태우기는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행사이기도 하다.
보름날의 신명나는 집단놀이로는 줄다리기, 고싸움, 나무쇠싸움(영산쇠머리대기), 차전놀이,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횃불싸움과 석전(石戰) 등이 있었다. 줄다리기는 당산제와 같은 마을 제사를 지낸 뒤인 정월 대보름에 행하는 민속놀이이다. 고싸움놀이는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 옻돌마을에서 해마다 정월 초순경에 시작되어 15일에 그 절정을 이루고 2월 초하룻날에 끝을 맺는 놀이이다. 나무쇠싸움은 경남 창녕군 영산면에서 전승되고 있는데 영취산과 함박산의 산세가 영산읍을 사이에 두고 두 마리의 소가 서로 겨루는 형상을 하는 데서 유래되었으며 두 산의 산살(山煞)을 풀어주기 위해 나무쇠모양을 만들고 싸움을 시키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안동 차전놀이도 놀이편의 편성을 동부와 서부로 나누어, 정월 대보름에 행해지는 놀이이다. 이 밖에도 액연날리기, 축귀놀이 등이 있다. 호남 지역에서는 여성들이 정월 대보름이면 마을에 있는 잡귀를 몰아내는 축귀놀이와 외부로부터의 잡귀의 침입을 막는 액막이놀이가 있다. 이들 놀이는 전승하지 않고 기록으로만 남아있다.

금기(禁忌)

정월 한 달 동안에는 사람의 출입이나 물건의 출납을 비롯한 행동을 삼가는 행위들이 많다. 세시기류(歲時記類)에 나타난 금기들은 대개 정월 초하루 설날과 대보름에, 월내의 금기는 정초십이지일(正初十二支日), 유모일(有毛日), 무모일 (無毛日), 인날(人日), 귀신날 등에 집중되어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1 「사금갑조(射琴匣條)」에 의하면 매년 첫 해일(亥日), 첫 자일(子日), 첫 오일(午日) 등에는 온갖 일을 꺼리며 조심하여 감히 움직이지 않았다고 기술되어 있다. 오늘날에도 정초십이지일에는 십이지 동물에 해당되는 날에는 금기사항을 지키는 풍습이 남아 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월내(月內) 항목에는 정월에 삼가고 꺼리는 풍속이 좀 더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모충일(毛蟲日) 즉, 십이지 동물 중에서 털이 있는 짐승의 날에는 모충들의 번성하는 솜털의 뜻을 취하여 상업의 번창을 바라며 인일(寅日)에 시전(市廛)들이 문을 연다. 8일은 패일(敗日)이라고 하며, 이날 남자들은 외출을 하지 않는다. 고려 풍속에 매월 8일에는 부녀자들이 성 안팎으로 돌아다니므로 남자들이 집에 있으면서 나가지 않았다. 이 풍속이 이날 외출하기에 마땅하지 않은 날로 여기게 된 것이라 소개되어 있다. 또한 16일은 대체로 활동하지 않고 나무로 만든 물건을 받아들이지 않아야 하는 기일(忌日:꺼리는 날)로 여긴다.
정초 외에도 매달 꺼리는 날이 있다. 상현일(上弦日)과 하현일(下弦日)을 조금일[潮減日]이라 하는데, 인가에서 꺼리는 일이 있는 때는 반드시 이날이 지나서야 서로 내왕하고, 사람들 중 꺼리는 사람과도 이날이 지나서야 만난다. 또 5일·14일·23일을 삼패일(三敗日)이라 한다. 고려 풍속에 이 세 날로써 임금의 소용일(所用日)로 삼았으므로 백성들은 그 날을 이용하지 않고 기일로 삼았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그 밖의 금기사항은 현재 전승되고 있는 언술을 통해서 가늠할 수가 있다. 이들 정월의 금기와 관련된 언술은 점차 후대에 이르면서 내용과 의미가 첨삭되었으며, 세시의례가 행해지던 오랜 옛날부터 구전되어 왔다.
한 해를 시작하는 정월은 각별한 의미를 지니는데, 한 해의 첫 달인 정월을 잘 보내야 남은 열 한 달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굳이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여러 가지 금기가 따랐다. 만약 금기사항을 어겼을 경우에는 어떤 형태로든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고 여겼다. 특히 재물·복·건강·농사의 풍흉 등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고 하여 말과 행동을 조심했다.
정월의 월내 금기사항은 지역에 따라서 표현은 다양하지만 그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정월의 금기는 정월이 첫 달이라는 데서 비롯된 시작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들이 많다. ‘정초에 죽을 먹으면 일년 내내 곤궁하다.’, ‘까마귀가 울면 장(葬)난다.’, ‘남과 말다툼하면 재수가 없다.’, ‘그릇을 깨면 재수 없다.’, ‘수저를 잃으면 그해엔 재수 없다.’ 등의 금기사항은 정초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남은 열 한 달도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된다고 여겨 한 해가 시작되는 시점의 중요성을 드러낸다.
정초에는 특히 부정을 타지 않도록 조심했다. ‘정월에 난 강아지를 잡아먹으면 3년 안에 죽는다.’, ‘개고기를 먹으면 재수가 없다.’는 금기는 신성한 정월에 먹는 개고기는 부정하다는 인식에서 생긴 말이다. 특히 마을제의인 동제가 대개 정월에 드는 것을 감안하면 개고기를 먹는 일에 제재를 가할 수밖에 없다. ‘정월에 초상집 가면 나쁘다’는 금기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정월에 아이 낳는 곳에 가는 것은 나쁘다.’는 금기를 통해 ‘피부정’이 드는 것을 막고자 했다.
정월에는 개인의 소망을 기원하는 기복(祈福)행위가 집중되어 있다. 금기사항 또한 이와 닿아있는데, 개인이 바라는 것은 대개 재복(財福)과 운수에 관련된 것이다. ‘정월에 조리를 사지 않으면 복이 들어오지 않는다.’, ‘정월 열나흗날 솥을 비우면 가난해 진다.’, ‘정초 첫 장에서는 키나 체를 사지 않는다.’, ‘정월에 재채기를 하면 복이 나간다.’는 금기사항들은 복이 들기를 바라는데서 생겨난 것들이다. 특히 키나 체는 곡식을 까부르는데 사용되는 농기구이기 때문에 복이 새어 나간다고 여겼고, 이에 비하여 복조리나 밥주걱 등은 곡식이나 밥을 담는데 사용하기 때문에 선호하였다. 솥 또한 식솔의 끼니를 짓는 용구이기 때문에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만월이 뜨는 대보름날 솥이 비어 있으면 복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여 열나흗날 저녁에는 오곡밥을 지어먹고 대보름날 아침에는 쌀밥을 지어먹는 지역이 많다. 또 정월에 문을 바르면 복이나 재물이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여 문종이를 바르지 않았다. 문이 뚫어져도 한 달 동안은 추위를 마냥 견뎌야 했기 때문에 대개 섣달그믐 이전에 뚫어진 문을 미리 발라 추위를 피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젊은이들이 정초에 들뜬 나머지 지나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어른들이 밖을 내다보기 위함이라고도 한다. 마당에서 청소를 할 때도 쓰레기를 바깥으로 쓸어내는 것은 복을 내쫓는 것이므로 삼가야 하며, 복을 안으로 끌어들이듯 안으로 빗자루질을 한다.
재물과 관련된 금기사항은 정초에 곡식·재물·불씨를 집 밖으로 내보내거나 물건을 매매하면 집안의 재물이 줄며 복이 나간다는 언술이 우세하다. ‘정초에 아궁이에 있는 재를 꺼내면 좋지 않다.’는 금기는 집안의 재산 ‘재(財)’와 아궁이의 ‘재(災)’를 동일시하여 재산이 바깥으로 나간다고 여긴 금기이다. 특히 아궁이가 있는 부엌은 예로부터 집안의 재산을 지켜준다는 조왕이 거처하는 곳이니 무엇 하나 밖에 함부로 내기를 조심스러워 했다. 또한 ‘화로를 엎지르면 재수 없다.’고 하여 불씨를 담는 용구인 화로를 엎지르는 것을 재물이 새어 나가는 것과 동일하게 생각했다.
곡식과 돈 또한 마찬가지이다. 정초에는 돈을 빌려주거나 곡식을 내어 팔거나 빌려주지 않는데 곡식을 외부로 유출시키면 그해 농사의 소출이 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특히 돈이 필요하다면 섣달 스무날 이전에 빌리는데 이는 실제로 섣달 스무날이 지나면 집집마다 설 준비를 해야 하기에 돈과 곡식의 필요성이 절실한 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점에 돈이나 곡식을 빌리게 되면 상호간에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한다. 또한 정초부터 돈이나 곡식이 집 밖으로 나가면 한 해 동안 빈곤해진다는 인식을 담고 있어서 꺼렸다. 정초에 재물이 밖으로 흘러나간다고 하여 집안의 연장을 빌려주거나 빌리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정초에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으려는 배려가 담겨 있다.
정초에 먼 길을 가지 않는다든가 사람날(人日:특히 강원도에서는 정월 월내 금기가 사람날에 집중되어 있다)인 초이렛날 ‘남의 식구 재워주지 않기’ 열엿새 귀신날(또는 귀신달굿날, 귀신당날, 귀신닭날, 고마이날) 집 밖 출입을 금하는 사항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열엿새 귀신날에 바깥출입을 하면 귀신이 따라다닌다고 하여 금하거나, 이날 바느질을 하면 생손(생인손)을 앓는다고 하여 아무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 더 나아가 이날 일을 하면 과부나 홀아비가 된다고 하여 하루를 쉬었다. 정월 열엿새는 의례행위를 비롯한 놀이가 집중되어 있는 대보름 바로 다음날이다. 그러므로 열엿샛날에는 휴식이 필요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논매기를 하기 전까지 마지막으로 논다고 하는 2월 초하루가 되기 전에 마음을 다 잡아야 했다.
정월에 땅을 다루면 좋지 않다고 하여 삼갔다. 특히 전라도 지역에서는 정월에 홍역을 비롯한 전염병이 돌아서 사람이 죽더라도 땅을 파서 시신을 묻지 않는다. 땅을 건드리면 동네에 불길한 일이 생긴다고 해서이다. 이는 지신(地神)에 대한 관념이 내포된 금기사항으로 일 년의 첫 달에 땅을 함부로 건드리면 지신이 놀라 동토(동티)가 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또한 ‘정초에 새끼줄을 땔감으로 쓰면 안 된다.’고 하는데, 새끼줄을 태우면 자식들이 새끼처럼 꼬여서 일이 잘 풀리지 않게 되어 집안이 망한다고 해서이다. 새끼줄의 새끼와 자식새끼의 새끼를 동일하게 여긴 유감주술의 예이다. 이는 나무를 하기 싫어서 손쉽게 주위에서 구할 수 있는 새끼줄을 땔감으로 사용하는 게으른 사람을 경계하는 말이기도 하다.
여성과 관련된 금기사항은 대개 여성의 정숙을 요구하고 있다. 대체로 설날과 정초십이지일 중 토끼날, 열엿새 귀신날, 2월 초하루 등에 여자출입을 절대적으로 금하지만 이날 외에도 정월 한 달 동안은 여자의 바깥출입을 꺼려했다. 여자출입의 결과를 농사의 흉작과 연관시킨 금기가 있다. ‘정월에 여자가 와서 울면 재수가 없다.’, ‘정월에 여자가 죽으면 뒤끝이 좋지 않다.’, ‘여자가 남의 집에 일찍 가면 그 집에 재수가 없다.’, ‘세배를 보낼 때 여자아이들을 먼저 보내면 그 집에서 키우는 닭이 성하지 않는다.’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남자아이를 먼저 들여보내면 괜찮다.’라든가 ‘남자가 먼저 들어간 후에 여자가 따라들어 가는 것은 괜찮다.’고 하여 별도의 방안을 마련해 두기도 했다.
또 ‘정월 열나흗날에 여자가 잠을 자면 시집을 못 간다.’, ‘정초 장날에 여자가 머리를 감으면 손(액)이 생긴다.’ 등의 금기는 여성의 부지런함을 강조하는 말들이다. 특히 정월 열나흗날에는 보름에 먹을 오곡밥을 짓기 위해 새벽 일찍 용알뜨기를 하러 우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금기사항이 생겼다. 하지만 설이 지나면 여성도 쉬어야 하기 때문에 세시놀이와 휴식을 정당화하는 언술도 주목된다. ‘정초에 여자가 널을 뛰지 않으면 발바닥에 가시가 박힌다.’고 하여 정초에 바깥출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을 하느라 분주했던 여자들이 쉴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초여드레 곡식날이라든가 열이튿날(지역에 따라 열사흗날, 한편 제주도에서는 입춘날 금기사항이 집중되어 있다.) 농사날에는 여자가 일을 하면 과부가 된다고 하여 하루를 쉬도록 했다.
이처럼 정월 월내의 금기사항은 한 해의 시작이 순조롭도록 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즉 생업력과 세시의례가 맞물리는 마디마다 적절한 제재를 가함으로써 자신은 물론 가족과 사회의 불길하고 위험한 사태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정월은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간의 놀이가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자칫 들뜨기 쉬우므로 금기를 통해 말과 행동을 조심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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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월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정월(正月) > 1월 > 정일

집필자 최인학(崔仁鶴)
갱신일 2018-11-08

역(曆)과 정월

우리나라에는 춘하추동 4계절이 있어 예로부터 선조들은 이 계절에 맞추어 살아왔다. 이것을 자연력(自然曆)이라고 한다. 선조들은 교체와 순환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자연의 법칙에 어떻게 하면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해 왔다. 농민들은 밤낮의 구분이나 달의 영휴(盈虧: 달의 가득참과 이지러짐)를 신앙과 결부시켜 생활의 활력소로 만들기도 했다. 계절의 변화에 따른 더위와 추위에 적응하기 위한 기술적인 면이 발전했으며, 생활 방식의 질서가 잡히고 생활 궤도와 생활 양식의 기초가 쌓여왔다.역법(曆法)이 들어오면서부터 이에 준하여 농사를 시작했는데 이것이 곧 태음력(太陰曆)이며, 농경생활에 알맞은 24절기가 생겨났다. 절기에 맞추어 미리 농사 준비를 하게 되었는데, 절기는 매년 되풀이되며 농경생활에도 일정한 리듬을 불어넣어 농민들의 활력소가 되었다. 이를테면, 하루는 태양에 의해 움직이고 한달은 달에 의해 정하며, 일년은 태양의 계절적인 순환과 달의 영휴에 근거한 12개월이란 절충에 의해 정해졌다. 여기서 달을 중심으로 한 생활을 생각할 때 등불이 생기기 이전의 달빛의 밝음과 어둠이 농경생활에 얼마나 중요했던가는 충분히 짐작이 된다.1월은 일년을 시작하는 달이며 가장 중요한 달이다. ‘시작이 반’이란 말과 같이 시작하는 달은 그만큼 중요하다. 계절적으로도 봄이 시작되는 달이며 본격적인 농경을 위해 준비하는 달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4대 명절이라 할 수 있는 설과 대보름, 단오, 추석과 같은 명절 중 설과 대보름의 의례가 1월에 있고, 그 밖에 크고 작은 의례가 정월에 집중되어 있다. 1월을 정월(正月)이라 하는 이유도 첫 달을 올바르게 지내야 일년을 무사하게 지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설과 대보름

대표적인 큰 명절로 설과 대보름을 들 수 있다. 설은 차례와 세배로 이어지는 가족적 성격이 두드러지고, 대보름은 동제와 규모가 큰 대동놀이와 같은 집단 공동체 의례의 성격이 짙다. 1월은 한마디로 조상 숭배·기복(祈福)·기풍(祈豊)·점복(占卜)·동제(洞祭)·놀이 등으로 축약될 수 있다. 정월에는 시작하는 달이 길(吉)하면 일년 동안의 일이 길(吉)하다 하여 갖가지 주술적인 행위가 벌어지는데, 토정비결은 그 대표적인 점술이다. 개인 건강을 위해서도 다양한 주술이 행해진다. 머지않아 농사철이 가까워지면 눈코 뜰새 없이 바빠지기 때문에 정월은 조상 숭배의 달, 심신을 단련하는 달, 농경을 준비하는 달로 공동체의 화목 단결을 위한 여러 가지 의례와 놀이가 집중되어 있다. 특히 대보름에도 집중적으로 놀이가 행해진다. 일년의 세시풍속을 쓸 때 정월을 기술하면 거의 반을 차지하리만큼 정월에 집중되어 있다.1월 1일 즉 정월 첫날을 일컬어 설날이라고 한다. 연수(年首)·세수(歲首)·원단(元旦)이라고 하는데 보통 ‘설’이라고 부른다. 연수나 세수, 원단은 모두 그해의 첫날이란 뜻인데 설날이란 명칭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듯하다. 설은 한자로 신일(愼日)이라고 쓰는데 근신하여 경거망동을 삼가는 날이라는 학설이 있다. 여기에 비해‘낯설다’의 ‘설다’에서 그 유래를 찾기도 한다. 처음 겪거나 맞닥뜨리는 대상은 그것은 그것이 사람이든 연장이든 장소든 시간이든 모두 낯설기 마련이다. 첫경험의 낯설음을 통해서 ‘시작의 시간’ 설은 세시의 최초 의례로서 통과의례적 구실을 단단히 하고 있다는 학설을 내놓고 있다. 이 밖에 설은 해갈음이니 나이란 뜻도 있고 새롭다는 의미도 있다. 설은 엄격히 따지면, 섣달그믐 밤부터라고 할 수 있다. 섣달그믐을 작은설이라 하여 이날 묵은세배를 하는 풍속도 있다.설날에는 차례(茶禮)를 지낸다. 설날 아침에 드리는 제사를 ‘정조차례(正朝茶禮)’라고 한다. 4대 조상까지 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5대조 이상은 신주를 각기 분묘 옆에 묻어 집에서는 지내지 않고 10월 시제(時祭) 때에 제사를 지낸다. 명절 때마다 차례를 지내지만 정조차례는 매우 중요하다. 원래는 조상 제례와 깊은 관계가 있지만 사실은 조상 제례가 확립되기 이전부터 곡식을 수확하는 농경민에게는 곡령(穀靈)에게 경배하는 풍속이 있었다.차례가 끝나면 모든 가족들은 자리를 정리해 앉는다. 이때 윗사람에게 차례로 세배를 한다. 집안 어른들에게 하는 세배가 끝나면 동네 어른들에게도 세배를 한다. 설날에 하는 인사가 세배라고 하는 이유는 윗사람에 대한 공경의 예의라는 의미도 있지만 설날의 인사는 보통 때와 달리 주술적인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즉, 앞으로 일년 동안의 건강과 안녕을 비는 의미가 포함돼 있는 것이다. 세배나 덕담은 언어주술적인 기능이 있어서 일종의 기복(祈福)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이 밖에도 기복에 해당하는 행위는 1월에 집중되어 있다. 예를 들면, 이른 새벽에 복조리를 사서 달기도 하고 정월 말이나 입춘에는 대개의 가정에서 입춘축을 써서 기둥과 벽에 붙인다. 또 설날 대문에 갑옷을 입은 장군이나 종규(鐘馗: 중국에서 역귀나 마귀를 쫓는다는 신) 그림을 붙이기도 한다. 또한 삼재(三災)를 없애기 위해 세 마리의 매를 그려 붙이기도 한다. 설날 저녁이면 소발(燒髮)하는 풍속이 있고 야광귀(夜光鬼) 쫓기 같은 풍속도 있었다. 그리고 14일 저녁이면 제웅이라는 허수아비를 만들어 개천에 떠내려가게 한다. 또 같은 14일 밤에는 도액(度厄: 액막이)을 하는 수가 있는데 팥을 가지고 자기 나이 수대로 묻으며 주언(呪言)을 하면 그해에는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믿었다. 15일 상원날 아침에 부럼을 깨는 것이나 귀밝이술을 마시고 약식을 만들어 먹거나 그 무렵에 다리밟기를 하고 또는 지신밟기를 하는 것 모두 기복의 범주에 속한다.

십이지일(十二支日)

1월에는 하루도 빠짐 없이 의식이나 놀이가 행해진다. 그만큼 정월은 중요한 달이다. 십이지일은 정월에 들어 첫째 자일(子日)을 상자일(上子日)이라 하는데, 이는 곧 ‘쥐날’이다. 이와 같이 상해일(上亥日)까지 12일을 각각 띠로 해석하여 금기와 속신을 지킨다. 즉 쥐날에는 쥐불놀이를 통하여 들과 논밭 두렁을 태워 해충을 없애기도 한다. 축일(丑日)은 ‘소날’, 즉 상축일(上丑日)인데 소 돌보는 날이며 이날 하루는 소에게 일을 시키지 않고 쇠죽에 콩을 많이 넣어 먹인다. 인일(寅日)은 ‘범날’, 상인일(上寅日)로 이날은 남과 서로 왕래를 삼가며 특히 여자는 외출을 삼간다. 묘일(卯日)은 ‘토끼날’, 상묘일(上卯日)로 남자가 먼저 일어나서 대문을 열어야 한다. 또한 장수를 비는 날이기도 하다. 진일(辰日)은 ‘용날’, 상진일(上辰日)로 부녀자들이 남보다 먼저 일어나 우물물을 길어온다. 사일(巳日)은 ‘뱀날’, 상사일(上巳日)로 남녀 모두 머리를 빗거나 깎지 않는다. 오일(午日)은 ‘말날’, 상오일(上午日)인데 말 고사를 지내거나 장을 담근다. 미일(未日)은 ‘염소날’, 상미일(上未日)인데 양은 걸음걸이가 방정맞다 하여 어촌에서는 출항을 하지 않는다. 신일(申日)은 ‘원숭이날’, 상신일(上申日)인데 일손을 쉬고 놀며 특히 칼질을 하지 않는다. 유일(酉日)은 ‘닭날’, 상유일(上酉日)인데 부녀자의 바느질을 금하는 날이다. 술일(戌日)은 ‘개날’, 상술일(上戌日)인데 일손을 쉬고 논다. 해일(亥日)은 ‘돼지날’, 상해일(上亥日)인데 얼굴이 검거나 피부색이 검은 사람이 왕겨나 콩깍지로 얼굴을 문지르면 살결이 희고 고와진다고 한다.십이지일은 금기와 동시에 이제 곧 농사일이 바빠질 테니 안정을 취하라는 의미가 있다. 이 밖에도 정월 7일은 ‘인일(人日)’이라 하여 외박을 하지 않는다. 이날 손님이 와서 묵고 가면 그해는 불운이 든다고 한다. 또 정월 16일은 ‘귀신날’이라고 한다. 이날에 외출을 하면 귀신이 붙는다고 해서 삼간다. 16일에 일을 하면 가을에 까치가 목화를 모두 쪼아 버린다고 해서 ‘까치날’이라 부르기도 한다.

입춘(立春)

입춘일은 천세력에 정해져 있고, 연초인 경우가 많다. 입춘은 24절기 중의 하나인데 봄으로 접어드는 절기이다. 입춘일에는 도시나 시골 할 것 없이 각 가정마다 대문 기둥이나 대들보 등에 좋은 뜻의 글귀를 써서 붙이며, 이를 ‘춘축(春祝)’이라고 한다.

점복(占卜)

1월은 농경민들이 풍요를 비는 달이기도 하다. 새해 들어 첫 축일[上丑日]을 ‘소날’이라 하여 소에게 일을 시키지 않고 콩·보리·나물들을 삶아 먹인다. 즉, 이와 같이 소를 위함으로써 기운을 내어 농사가 잘 되게 해달라는 농민들의 소박한 기풍(祈豊)의식이 담겨 있다. 1월에 들어 있는 농어민들의 기풍 행위들은 다음과 같다. 정월 8일은 ‘곡식날[穀日]’이라 하는데 이날 춘파(春播)할 준비를 하면 풍년이 든다고 믿는다. 또 설날부터 상원까지는 곡식을 문밖으로 내보내지 않는다. 만일 어기면 작물에 피해를 입는다고 한다. 14일은 ‘누더름날’이라 하는데 이는 늦여름이란 뜻이다. 정월 13일은 봄, 14일은 여름, 15일은 가을, 16일은 겨울로 상징하여 이날에는 많은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어 먹는다. 14일은 ‘낟가릿대’ 또는 ‘볏가릿대’라 하는 화간(禾竿)을 세운다. 이것도 기풍행위에 해당한다. 상원날에는 복쌈을 먹는데 밥을 김이나 취에 싸서 여러 개를 먹으면 그 수만큼 노적을 이루게 되어 풍작을 거둔다고 한다. 상원날에는 ‘나무 시집보내기’라 하여 ‘가수(嫁樹)’를 하는데 과목(果木)의 가지 사이에 돌을 얹어놓는다. 과일이 많이 맺히라는 기원에서 이런 풍속이 생겨났다. 어촌에서는 정월 초에 가정에서 성주를 모시고 뱃고사를 지낸다.이 밖에 1월에는 일년의 신수를 본다. 토정비결을 비롯한 많은 농점(農占)이 있다. 입춘날 보리를 뽑아 그 뿌리의 상태로 풍흉을 점친다. 즉 뿌리가 셋이면 풍작, 둘이면 평년작, 하나면 흉작이라고 여겼다. 또 물을 담은 종지나 작은 그릇을 두고 안에 콩을 넣어 이튿날 콩의 불어난 상태를 보고 그해 농사를 점치기도 한다. 상원날 저녁에는 달맞이를 하는데 달의 형체나 빛깔을 보고 점치기도 하고 상원날 새벽에는 닭울음소리로 그해를 점치기도 한다. 또한 윷놀이의 승패로 그해의 풍흉을 점치기도 한다. 단순한 놀이지만 상원날을 중심으로 한 것은 모두가 기풍과 기복을 위한 주술적 행위라 할 수 있다.

속신(俗信)

1월 대보름을 전후해서 각 마을마다 동제를 지낸다.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제사를 드리는데 당산제, 장승제, 부군당제, 도당제, 당제, 골메기동신제, 포제, 본향당제, 산신제, 서낭제, 별신제 등 명칭은 다양하고, 제의 내용도 다양하지만 보통 독축을 중심으로 한 유교식 제의절차에 따른 제사형의 마을신앙, 유교식 제의절차를 따르면서도 음악과 춤, 그리고 극 등을 통해 축제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지는 풍물굿형과 무당굿형의 마을신앙으로 구분 지을 수 있다. 특히 용왕제는 풍어를 기원하는 해안 지역의 풍속으로 주로 대보름에 행해진다. 전남에서는 여성들에 의해 용왕제를 지내는 곳도 있다. 이와는 별도로 배를 가지고 있는 각 가정에서는 별도의 제상을 갖추어 배에 가서 뱃고사를 지내기도 한다. 배가 일년 동안 무사히 운항하기를 빌며, 풍어를 기원한다.이 무렵 마을 수호신의 기능을 하는 장승과 솟대를 세우기도 한다. 솟대는 거릿대·연신대·별신대·갯대·액맥이대·짐대·수살대·오릿대 등으로 불린다. 이는 신간(神竿)의 역할을 하며, 그 기원은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 등에 보이는 소도(蘇塗)의 유습이라는 견해와 우리나라 서낭신과 관련이 깊은 몽고의 오보에서 왔다는 견해가 있다. 장승은 명칭도 다르게 나타난다. 중부지방에서는 ‘장승’, 제주도에서는 ‘하르방’, 남해안지방에서는 ‘벅수’라고 부르며 재질은 돌이나 나무의 두 종류이다. 이와 같이 장승과 솟대들이 종교적인 목적이나 마을공동체에서 연례적으로 많이 세워진다.

놀이

풍년을 기원하는 민속놀이로 ‘달집태우기’가 있다. 달맞이와 연계되어 쥐불놀이, 횃불싸움과도 연관성을 가지는 놀이이다. 호남 지역에서는 마을의 청장년들이 주축이 되어 짚을 모으고 생솔이나 생대를 가져다가 마을 공터에 원추형의 달집을 만들어 놓고, 14일 밤 달이 떠오를 때를 기다려 함성을 지르면서 불을 지른다. 그리고 농악대의 청년들이 각 가정에 지신밟기를 해준다. 보름달은 풍요의 상징이고 불은 모든 부정과 사악을 불살라버리는 정화의 상징이다. 따라서 보름날의 달집태우기는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행사이기도 하다.보름날의 신명나는 집단놀이로는 줄다리기, 고싸움, 나무쇠싸움(영산쇠머리대기), 차전놀이,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횃불싸움과 석전(石戰) 등이 있었다. 줄다리기는 당산제와 같은 마을 제사를 지낸 뒤인 정월 대보름에 행하는 민속놀이이다. 고싸움놀이는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 옻돌마을에서 해마다 정월 초순경에 시작되어 15일에 그 절정을 이루고 2월 초하룻날에 끝을 맺는 놀이이다. 나무쇠싸움은 경남 창녕군 영산면에서 전승되고 있는데 영취산과 함박산의 산세가 영산읍을 사이에 두고 두 마리의 소가 서로 겨루는 형상을 하는 데서 유래되었으며 두 산의 산살(山煞)을 풀어주기 위해 나무쇠모양을 만들고 싸움을 시키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안동 차전놀이도 놀이편의 편성을 동부와 서부로 나누어, 정월 대보름에 행해지는 놀이이다. 이 밖에도 액연날리기, 축귀놀이 등이 있다. 호남 지역에서는 여성들이 정월 대보름이면 마을에 있는 잡귀를 몰아내는 축귀놀이와 외부로부터의 잡귀의 침입을 막는 액막이놀이가 있다. 이들 놀이는 전승하지 않고 기록으로만 남아있다.

금기(禁忌)

정월 한 달 동안에는 사람의 출입이나 물건의 출납을 비롯한 행동을 삼가는 행위들이 많다. 세시기류(歲時記類)에 나타난 금기들은 대개 정월 초하루 설날과 대보름에, 월내의 금기는 정초십이지일(正初十二支日), 유모일(有毛日), 무모일 (無毛日), 인날(人日), 귀신날 등에 집중되어 있다.『삼국유사(三國遺事)』 권1 「사금갑조(射琴匣條)」에 의하면 매년 첫 해일(亥日), 첫 자일(子日), 첫 오일(午日) 등에는 온갖 일을 꺼리며 조심하여 감히 움직이지 않았다고 기술되어 있다. 오늘날에도 정초십이지일에는 십이지 동물에 해당되는 날에는 금기사항을 지키는 풍습이 남아 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월내(月內) 항목에는 정월에 삼가고 꺼리는 풍속이 좀 더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모충일(毛蟲日) 즉, 십이지 동물 중에서 털이 있는 짐승의 날에는 모충들의 번성하는 솜털의 뜻을 취하여 상업의 번창을 바라며 인일(寅日)에 시전(市廛)들이 문을 연다. 8일은 패일(敗日)이라고 하며, 이날 남자들은 외출을 하지 않는다. 고려 풍속에 매월 8일에는 부녀자들이 성 안팎으로 돌아다니므로 남자들이 집에 있으면서 나가지 않았다. 이 풍속이 이날 외출하기에 마땅하지 않은 날로 여기게 된 것이라 소개되어 있다. 또한 16일은 대체로 활동하지 않고 나무로 만든 물건을 받아들이지 않아야 하는 기일(忌日:꺼리는 날)로 여긴다.정초 외에도 매달 꺼리는 날이 있다. 상현일(上弦日)과 하현일(下弦日)을 조금일[潮減日]이라 하는데, 인가에서 꺼리는 일이 있는 때는 반드시 이날이 지나서야 서로 내왕하고, 사람들 중 꺼리는 사람과도 이날이 지나서야 만난다. 또 5일·14일·23일을 삼패일(三敗日)이라 한다. 고려 풍속에 이 세 날로써 임금의 소용일(所用日)로 삼았으므로 백성들은 그 날을 이용하지 않고 기일로 삼았다는 데서 유래하였다.그 밖의 금기사항은 현재 전승되고 있는 언술을 통해서 가늠할 수가 있다. 이들 정월의 금기와 관련된 언술은 점차 후대에 이르면서 내용과 의미가 첨삭되었으며, 세시의례가 행해지던 오랜 옛날부터 구전되어 왔다.한 해를 시작하는 정월은 각별한 의미를 지니는데, 한 해의 첫 달인 정월을 잘 보내야 남은 열 한 달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굳이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여러 가지 금기가 따랐다. 만약 금기사항을 어겼을 경우에는 어떤 형태로든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고 여겼다. 특히 재물·복·건강·농사의 풍흉 등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고 하여 말과 행동을 조심했다.정월의 월내 금기사항은 지역에 따라서 표현은 다양하지만 그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정월의 금기는 정월이 첫 달이라는 데서 비롯된 시작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들이 많다. ‘정초에 죽을 먹으면 일년 내내 곤궁하다.’, ‘까마귀가 울면 장(葬)난다.’, ‘남과 말다툼하면 재수가 없다.’, ‘그릇을 깨면 재수 없다.’, ‘수저를 잃으면 그해엔 재수 없다.’ 등의 금기사항은 정초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남은 열 한 달도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된다고 여겨 한 해가 시작되는 시점의 중요성을 드러낸다.정초에는 특히 부정을 타지 않도록 조심했다. ‘정월에 난 강아지를 잡아먹으면 3년 안에 죽는다.’, ‘개고기를 먹으면 재수가 없다.’는 금기는 신성한 정월에 먹는 개고기는 부정하다는 인식에서 생긴 말이다. 특히 마을제의인 동제가 대개 정월에 드는 것을 감안하면 개고기를 먹는 일에 제재를 가할 수밖에 없다. ‘정월에 초상집 가면 나쁘다’는 금기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정월에 아이 낳는 곳에 가는 것은 나쁘다.’는 금기를 통해 ‘피부정’이 드는 것을 막고자 했다.정월에는 개인의 소망을 기원하는 기복(祈福)행위가 집중되어 있다. 금기사항 또한 이와 닿아있는데, 개인이 바라는 것은 대개 재복(財福)과 운수에 관련된 것이다. ‘정월에 조리를 사지 않으면 복이 들어오지 않는다.’, ‘정월 열나흗날 솥을 비우면 가난해 진다.’, ‘정초 첫 장에서는 키나 체를 사지 않는다.’, ‘정월에 재채기를 하면 복이 나간다.’는 금기사항들은 복이 들기를 바라는데서 생겨난 것들이다. 특히 키나 체는 곡식을 까부르는데 사용되는 농기구이기 때문에 복이 새어 나간다고 여겼고, 이에 비하여 복조리나 밥주걱 등은 곡식이나 밥을 담는데 사용하기 때문에 선호하였다. 솥 또한 식솔의 끼니를 짓는 용구이기 때문에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만월이 뜨는 대보름날 솥이 비어 있으면 복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여 열나흗날 저녁에는 오곡밥을 지어먹고 대보름날 아침에는 쌀밥을 지어먹는 지역이 많다. 또 정월에 문을 바르면 복이나 재물이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여 문종이를 바르지 않았다. 문이 뚫어져도 한 달 동안은 추위를 마냥 견뎌야 했기 때문에 대개 섣달그믐 이전에 뚫어진 문을 미리 발라 추위를 피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젊은이들이 정초에 들뜬 나머지 지나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어른들이 밖을 내다보기 위함이라고도 한다. 마당에서 청소를 할 때도 쓰레기를 바깥으로 쓸어내는 것은 복을 내쫓는 것이므로 삼가야 하며, 복을 안으로 끌어들이듯 안으로 빗자루질을 한다.재물과 관련된 금기사항은 정초에 곡식·재물·불씨를 집 밖으로 내보내거나 물건을 매매하면 집안의 재물이 줄며 복이 나간다는 언술이 우세하다. ‘정초에 아궁이에 있는 재를 꺼내면 좋지 않다.’는 금기는 집안의 재산 ‘재(財)’와 아궁이의 ‘재(災)’를 동일시하여 재산이 바깥으로 나간다고 여긴 금기이다. 특히 아궁이가 있는 부엌은 예로부터 집안의 재산을 지켜준다는 조왕이 거처하는 곳이니 무엇 하나 밖에 함부로 내기를 조심스러워 했다. 또한 ‘화로를 엎지르면 재수 없다.’고 하여 불씨를 담는 용구인 화로를 엎지르는 것을 재물이 새어 나가는 것과 동일하게 생각했다.곡식과 돈 또한 마찬가지이다. 정초에는 돈을 빌려주거나 곡식을 내어 팔거나 빌려주지 않는데 곡식을 외부로 유출시키면 그해 농사의 소출이 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특히 돈이 필요하다면 섣달 스무날 이전에 빌리는데 이는 실제로 섣달 스무날이 지나면 집집마다 설 준비를 해야 하기에 돈과 곡식의 필요성이 절실한 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점에 돈이나 곡식을 빌리게 되면 상호간에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한다. 또한 정초부터 돈이나 곡식이 집 밖으로 나가면 한 해 동안 빈곤해진다는 인식을 담고 있어서 꺼렸다. 정초에 재물이 밖으로 흘러나간다고 하여 집안의 연장을 빌려주거나 빌리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정초에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으려는 배려가 담겨 있다.정초에 먼 길을 가지 않는다든가 사람날(人日:특히 강원도에서는 정월 월내 금기가 사람날에 집중되어 있다)인 초이렛날 ‘남의 식구 재워주지 않기’ 열엿새 귀신날(또는 귀신달굿날, 귀신당날, 귀신닭날, 고마이날) 집 밖 출입을 금하는 사항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열엿새 귀신날에 바깥출입을 하면 귀신이 따라다닌다고 하여 금하거나, 이날 바느질을 하면 생손(생인손)을 앓는다고 하여 아무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 더 나아가 이날 일을 하면 과부나 홀아비가 된다고 하여 하루를 쉬었다. 정월 열엿새는 의례행위를 비롯한 놀이가 집중되어 있는 대보름 바로 다음날이다. 그러므로 열엿샛날에는 휴식이 필요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논매기를 하기 전까지 마지막으로 논다고 하는 2월 초하루가 되기 전에 마음을 다 잡아야 했다.정월에 땅을 다루면 좋지 않다고 하여 삼갔다. 특히 전라도 지역에서는 정월에 홍역을 비롯한 전염병이 돌아서 사람이 죽더라도 땅을 파서 시신을 묻지 않는다. 땅을 건드리면 동네에 불길한 일이 생긴다고 해서이다. 이는 지신(地神)에 대한 관념이 내포된 금기사항으로 일 년의 첫 달에 땅을 함부로 건드리면 지신이 놀라 동토(동티)가 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또한 ‘정초에 새끼줄을 땔감으로 쓰면 안 된다.’고 하는데, 새끼줄을 태우면 자식들이 새끼처럼 꼬여서 일이 잘 풀리지 않게 되어 집안이 망한다고 해서이다. 새끼줄의 새끼와 자식새끼의 새끼를 동일하게 여긴 유감주술의 예이다. 이는 나무를 하기 싫어서 손쉽게 주위에서 구할 수 있는 새끼줄을 땔감으로 사용하는 게으른 사람을 경계하는 말이기도 하다.여성과 관련된 금기사항은 대개 여성의 정숙을 요구하고 있다. 대체로 설날과 정초십이지일 중 토끼날, 열엿새 귀신날, 2월 초하루 등에 여자출입을 절대적으로 금하지만 이날 외에도 정월 한 달 동안은 여자의 바깥출입을 꺼려했다. 여자출입의 결과를 농사의 흉작과 연관시킨 금기가 있다. ‘정월에 여자가 와서 울면 재수가 없다.’, ‘정월에 여자가 죽으면 뒤끝이 좋지 않다.’, ‘여자가 남의 집에 일찍 가면 그 집에 재수가 없다.’, ‘세배를 보낼 때 여자아이들을 먼저 보내면 그 집에서 키우는 닭이 성하지 않는다.’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남자아이를 먼저 들여보내면 괜찮다.’라든가 ‘남자가 먼저 들어간 후에 여자가 따라들어 가는 것은 괜찮다.’고 하여 별도의 방안을 마련해 두기도 했다.또 ‘정월 열나흗날에 여자가 잠을 자면 시집을 못 간다.’, ‘정초 장날에 여자가 머리를 감으면 손(액)이 생긴다.’ 등의 금기는 여성의 부지런함을 강조하는 말들이다. 특히 정월 열나흗날에는 보름에 먹을 오곡밥을 짓기 위해 새벽 일찍 용알뜨기를 하러 우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금기사항이 생겼다. 하지만 설이 지나면 여성도 쉬어야 하기 때문에 세시놀이와 휴식을 정당화하는 언술도 주목된다. ‘정초에 여자가 널을 뛰지 않으면 발바닥에 가시가 박힌다.’고 하여 정초에 바깥출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을 하느라 분주했던 여자들이 쉴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초여드레 곡식날이라든가 열이튿날(지역에 따라 열사흗날, 한편 제주도에서는 입춘날 금기사항이 집중되어 있다.) 농사날에는 여자가 일을 하면 과부가 된다고 하여 하루를 쉬도록 했다.이처럼 정월 월내의 금기사항은 한 해의 시작이 순조롭도록 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즉 생업력과 세시의례가 맞물리는 마디마다 적절한 제재를 가함으로써 자신은 물론 가족과 사회의 불길하고 위험한 사태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정월은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간의 놀이가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자칫 들뜨기 쉬우므로 금기를 통해 말과 행동을 조심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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