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도(牡丹圖)

한자명

牡丹圖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화

집필자 이은하(李垠河)

정의

모란꽃을 그린 그림.

개관

‘모란’은 ‘모牡’(수컷)와 ‘단丹’(붉다)이 합쳐져 만들어진 한자어로 ‘모단牡丹’이나, 유음화하여 모란으로 발음된다. ‘모란’은 양陽에 속하여 남성을 상징하므로 ‘모牡’ 자를 앞에 놓아, 모든 꽃 중에서 으뜸이라 하여 ‘화중왕花中王’ 또는 ‘화왕花王’이라 한다. ‘모란牡丹’이라 하기 전에는 ‘대작약大芍藥’이라고 했다. 이는 모란꽃이 작약과 비슷하고 목본이기 때문이다.
북송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에 “모란은 꽃 중에서 부귀한 것이다[牡丹花之富貴者].”라고 하였고, 『하황사기下黃私記』나 『북산집北山集』에 “모든 꽃의 왕[百花王]”이라고 하였듯이 모란은 예로부터 동양인들 사이에서 부귀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왔다.
중국에서 모란은 황제의 꽃으로 국화나 난초가 여성을 상징하는 것과 대응되는 의미를 지녔다. 또한 빛, 영광, 사랑, 행운, 여름, 청춘을 상징한다.
모란은 국색천향으로 진선진미盡善盡美와 화목을 상징하여 복식, 가구 등의 장식 도상으로도 널리 쓰였다. 국색천향國色天香이란 모란의 아름다움을 형용하는 말이며, 후세에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형용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모란도는 이러한 모란을 소재로 한 그림이다.

내용

모란도는 단폭의 그림보다는 다른 사군자四君子와 함께 제작되는 경우가 많으며 민화에서는 석모란石牡丹으로 꾸며진 모란 병풍이 많이 그려졌다. 화풍은 먹으로만 그린 수묵화풍水墨畫風과 짙고 호화로운 채색의 민화풍 두 종류가 있다. 수묵화풍의 모란도는 문인화의 소재로 즐겨 그려졌으며, 극채색풍의 모란도는 혼례용 병풍으로 많이 쓰였다. 모란만을 단독으로 그린 것도 있지만 괴석과 같이 그려서 석모란을 만들거나 소나무·난·대나무 등과 조화시켜 많은 화제를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면, 모란에 소나무나 괴석怪石이 첨가되어 부귀장년富貴長年을, 난蘭을 같이 그려 부귀국향富貴國香을, 대나무가 첨가되어 부귀평안富貴平安을 뜻하게 된다. 고양이와 나비를 모란과 함께 그려 넣기도 하였는데, 그러면 부귀모질富貴耄耋을 뜻한다. 이렇듯 모란도는 다른 제재와 함께 그려지면서 그 의미가 더해지기도 하였다.
특히, 큰 규모의 석모란 병풍은 궁宮에서도 애용되어 궁모란宮牡丹이라고도 불리었다. 당대唐代에 유행하였으며, 신라新羅 선덕여왕善德女王, 재위 635~647의 설화로 미루어 보았을 때, 우리나라에도 신라 때에 전래된 듯하다. 현재 전하는 모란도는 조선 후기 이후의 작품들이며, 그 가운데 허련許鍊, 1809~1892의 모란도가 유명하다.
허련은 모란꽃 그림을 많이 그려 ‘허모란許牡丹’이라는 평을 듣기도 하였다. 종래의 모란꽃 그림은 화려한 채색으로 그리던 것이 상례였으나 허련은 굳이 먹으로만 모란을 그렸다. 모란은 본래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꽃이므로 가정마다 모란 병풍이나 화첩을 필요로 하였다. 그러므로 궁중은 물론 일반 서민들의 가정에서도 모란꽃 그림은 항상 요구되었고, 이의 수급을 위해 민화에서도 흔히 다루어졌다.
모란의 부귀를 뜻하는 상징성이 부각된 다양한 도안들이 전해진다. 오래도록 부귀영화를 누리기를 축원하는 의미로 모란에 장미꽃(혹은 할미새)을 배합한 도안인 부귀장춘富貴長春, 돌 옆에 모란과 복사꽃을 배치하여 생일을 축하하면서 장수와 부귀를 누리기를 축원하는 장명부귀長命富貴, 모란꽃에 수탉을 배치한 그림으로 벼슬길에 나아가 이름을 날리고 부귀를 누리기를 축원하는 공명부귀功名富貴, 모란과 할미새가 한데 어울린 그림으로 부부가 백년해로하며 부귀를 누리기를 축원하는 백두부귀白頭富貴, 덩굴풀이 모란의 가지를 칭칭 감고 올라간 그림으로 부귀영화가 만대萬代에까지 이어지기를 축원하는 부귀만대富貴萬代, 모란을 꽂은 꽃병 옆에 사과를 배치한 그림 혹은 대나무에 모란을 배치하여 부귀와 평안을 누리기를 축원하는 부귀평안富貴平安, 모란에 수선화를 배치하여 부귀를 누리며 신선처럼 살기를 축원하는 신선부귀神僊富貴, 모란에 해당화를 배치하여 부귀영화가 온 집안에 넘쳐흐르기를 축원하는 만당부귀滿堂富貴, 옥란화玉蘭花와 해당화, 모란의 그림으로 모두가 선망하는 높은 지위에 올라 부귀영화를 누리기를 축원하는 옥당부귀玉堂富貴, 부용화芙蓉花에 모란을 배치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기를 축원하는 영화부귀榮華富貴 등이 있다.

특징 및 의의

모란도는 부귀영화를 상징하며 궁중회화와 민화의 대표적인 화제로 그려졌다. 또한 문인화로도 그려져 여러 계층에서 다양한 화법으로 즐겨 그렸음을 알 수 있다. ‘화중왕’으로서 오랜 세월 각 계층에게 사랑받은 모란도는 조선 사회의 계층별 미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중국상징미술사전(노자키 세이킨 저, 변영섭·안영길 역, 고려대학교출판부, 2011), 한국 회화사 연구(안휘준, 시공아트, 200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모란도

모란도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화

집필자 이은하(李垠河)

정의

모란꽃을 그린 그림.

개관

‘모란’은 ‘모牡’(수컷)와 ‘단丹’(붉다)이 합쳐져 만들어진 한자어로 ‘모단牡丹’이나, 유음화하여 모란으로 발음된다. ‘모란’은 양陽에 속하여 남성을 상징하므로 ‘모牡’ 자를 앞에 놓아, 모든 꽃 중에서 으뜸이라 하여 ‘화중왕花中王’ 또는 ‘화왕花王’이라 한다. ‘모란牡丹’이라 하기 전에는 ‘대작약大芍藥’이라고 했다. 이는 모란꽃이 작약과 비슷하고 목본이기 때문이다.북송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에 “모란은 꽃 중에서 부귀한 것이다[牡丹花之富貴者].”라고 하였고, 『하황사기下黃私記』나 『북산집北山集』에 “모든 꽃의 왕[百花王]”이라고 하였듯이 모란은 예로부터 동양인들 사이에서 부귀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왔다.중국에서 모란은 황제의 꽃으로 국화나 난초가 여성을 상징하는 것과 대응되는 의미를 지녔다. 또한 빛, 영광, 사랑, 행운, 여름, 청춘을 상징한다.모란은 국색천향으로 진선진미盡善盡美와 화목을 상징하여 복식, 가구 등의 장식 도상으로도 널리 쓰였다. 국색천향國色天香이란 모란의 아름다움을 형용하는 말이며, 후세에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형용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모란도는 이러한 모란을 소재로 한 그림이다.

내용

모란도는 단폭의 그림보다는 다른 사군자四君子와 함께 제작되는 경우가 많으며 민화에서는 석모란石牡丹으로 꾸며진 모란 병풍이 많이 그려졌다. 화풍은 먹으로만 그린 수묵화풍水墨畫風과 짙고 호화로운 채색의 민화풍 두 종류가 있다. 수묵화풍의 모란도는 문인화의 소재로 즐겨 그려졌으며, 극채색풍의 모란도는 혼례용 병풍으로 많이 쓰였다. 모란만을 단독으로 그린 것도 있지만 괴석과 같이 그려서 석모란을 만들거나 소나무·난·대나무 등과 조화시켜 많은 화제를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면, 모란에 소나무나 괴석怪石이 첨가되어 부귀장년富貴長年을, 난蘭을 같이 그려 부귀국향富貴國香을, 대나무가 첨가되어 부귀평안富貴平安을 뜻하게 된다. 고양이와 나비를 모란과 함께 그려 넣기도 하였는데, 그러면 부귀모질富貴耄耋을 뜻한다. 이렇듯 모란도는 다른 제재와 함께 그려지면서 그 의미가 더해지기도 하였다.특히, 큰 규모의 석모란 병풍은 궁宮에서도 애용되어 궁모란宮牡丹이라고도 불리었다. 당대唐代에 유행하였으며, 신라新羅 선덕여왕善德女王, 재위 635~647의 설화로 미루어 보았을 때, 우리나라에도 신라 때에 전래된 듯하다. 현재 전하는 모란도는 조선 후기 이후의 작품들이며, 그 가운데 허련許鍊, 1809~1892의 모란도가 유명하다.허련은 모란꽃 그림을 많이 그려 ‘허모란許牡丹’이라는 평을 듣기도 하였다. 종래의 모란꽃 그림은 화려한 채색으로 그리던 것이 상례였으나 허련은 굳이 먹으로만 모란을 그렸다. 모란은 본래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꽃이므로 가정마다 모란 병풍이나 화첩을 필요로 하였다. 그러므로 궁중은 물론 일반 서민들의 가정에서도 모란꽃 그림은 항상 요구되었고, 이의 수급을 위해 민화에서도 흔히 다루어졌다.모란의 부귀를 뜻하는 상징성이 부각된 다양한 도안들이 전해진다. 오래도록 부귀영화를 누리기를 축원하는 의미로 모란에 장미꽃(혹은 할미새)을 배합한 도안인 부귀장춘富貴長春, 돌 옆에 모란과 복사꽃을 배치하여 생일을 축하하면서 장수와 부귀를 누리기를 축원하는 장명부귀長命富貴, 모란꽃에 수탉을 배치한 그림으로 벼슬길에 나아가 이름을 날리고 부귀를 누리기를 축원하는 공명부귀功名富貴, 모란과 할미새가 한데 어울린 그림으로 부부가 백년해로하며 부귀를 누리기를 축원하는 백두부귀白頭富貴, 덩굴풀이 모란의 가지를 칭칭 감고 올라간 그림으로 부귀영화가 만대萬代에까지 이어지기를 축원하는 부귀만대富貴萬代, 모란을 꽂은 꽃병 옆에 사과를 배치한 그림 혹은 대나무에 모란을 배치하여 부귀와 평안을 누리기를 축원하는 부귀평안富貴平安, 모란에 수선화를 배치하여 부귀를 누리며 신선처럼 살기를 축원하는 신선부귀神僊富貴, 모란에 해당화를 배치하여 부귀영화가 온 집안에 넘쳐흐르기를 축원하는 만당부귀滿堂富貴, 옥란화玉蘭花와 해당화, 모란의 그림으로 모두가 선망하는 높은 지위에 올라 부귀영화를 누리기를 축원하는 옥당부귀玉堂富貴, 부용화芙蓉花에 모란을 배치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기를 축원하는 영화부귀榮華富貴 등이 있다.

특징 및 의의

모란도는 부귀영화를 상징하며 궁중회화와 민화의 대표적인 화제로 그려졌다. 또한 문인화로도 그려져 여러 계층에서 다양한 화법으로 즐겨 그렸음을 알 수 있다. ‘화중왕’으로서 오랜 세월 각 계층에게 사랑받은 모란도는 조선 사회의 계층별 미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중국상징미술사전(노자키 세이킨 저, 변영섭·안영길 역, 고려대학교출판부, 2011), 한국 회화사 연구(안휘준, 시공아트, 200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