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도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화

집필자 홍선표(洪善杓)

정의

천상을 왕래하는 상상의 영수靈獸, 즉 상서로운 동물로 신앙되던 기린을 그린 그림.

개관

기린은 길상적이고 신령스러운 서수瑞獸와 신수神獸 또는 영수로서 한대의 화상전畫像塼이나 화상석畫像石, 고분벽화 등에 본격적으로 형상화되기 시작하여 고구려로 파급되었다. 안악1호분을 비롯해 무용총과 삼실총, 강서대묘, 오회분오호묘 등, 고구려 중기와 후기의 벽화고분 천장부에 단독으로 또는 선인의 승물로 묘사되어 천계의 동물로 표상되었다. 통일신라에서는 와당과 전돌에 용과 봉황, 가릉빈가 못지않게 기린을 새겼다. 당 양식을 토대로 삼아 단독상이나 대칭적인 쌍 무늬로 장식되었으며, 사산조의 영향으로 입에 보화줄기를 물고 있는 도상도 전한다.
고려시대에는 동경을 비롯한 청동제 공예품과 드물게는 청자 향로의 뚜껑 꼭지에 형상화되기도 했다. 그리고 14세기로 추정되는 일본 사이후쿠지西福寺 소장의 고려 불화인 <관경16관변상도>의 전각 하단부에 4마리의 비주형 기린이 좌우 대칭으로 묘사되었다. 승탑인 부도의 기단부에 용과 함께 새겨진 경우도 있다. 『고려사』에 의하면 의종재위 1146~1170 때 정해진 어가행렬 제도의 의장기 가운데 ‘기린기’와 ‘황기린기’, ‘백기린기’가 있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기린은 이상적인 왕도정치의 상징으로 표상되면서 그 형상의 사용이 제한되어 전기에는 왕이 타는 어련이나 세자의 말다래를 비롯해 주로 왕실용 기물 등에 시문되었다. 1454년(단종 2)부터 시행된 흉배의 문양도 기린은 세자와 대군 등의 왕족만 사용할 수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왕이 직접 관리하는 규장각 화원의 녹취재 화문 중 영모화의 화제로 대두되었으나, 일반화되지는 않았다. 이 시기를 통해 불교 사찰의 수미단을 비롯해 기둥이나 대들보, 창방 등에 장엄용 서수로서 묘사되며 확산되었다. 이러한 현상이 태평성세를 체현하는 기린과 같이 뛰어난 자손이 끊이지 않고 번창하기를 소망하는 등의 민간 기복신앙과 결부되어 기린이 병풍이나 족자에 길상장식화로 더 많이 그려졌다.

내용

기린은 상상의 동물로, 사슴 또는 말의 몸에 꼬리는 소와 같고, 머리에 뿔이 한 개 있으며, 수컷을 기, 암컷을 린이라 부르기도 한다. 봉황과 거북이, 용과 함께 사령도四靈圖의 하나로도 그려졌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는 기린을 몸에 반점 등이 있는 사슴의 형태로 나타내기도 하고 끝이 둥근 막대기 모양의 뿔과 기익형氣翼形 날개로 표현하기도 했다. 점차 말의 신체와 닮게 묘사되면서 뿔처럼 생긴 말 상투와 화염형의 갈기 및 꼬리털을 갖춘 천마와 혼동되기도 한다. 신라 천마총에서 출토된 말다래인 장니에 그려진 천마를 기린으로 주장했던 견해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와당과 전돌에 주로 의장된 통일신라의 기린상은 대부분 말 모양으로 표현되었으며, 암막새에는 두 마리가 좌우대칭으로 배치되는 경우가 많았다. 머리 위로 뿔이 두 갈래로 뻗어 있거나 날개와 함께 갈기 같은 것을 양 옆으로 나타냈고, 구름무늬나 연판문, 연주문을 곁들여 장식했다. 고려시대에는 기린상에 송과 원대의 영향으로 용의 비늘이 부가되는 변화를 보였다. 용이 서수 또는 신수의 으뜸이라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이해된다. 동경의 문양으로 봉황과 짝을 이루며 새겨지기도 했고, 사령四靈의 하나로 배열되기도 했는데, 말의 형상에서 점차 용의 얼굴이 가미되는 양상을 나타냈다.
조선 전기의 기린 도상은 현재 전하는 유물이 드물어 구체적인 파악이 쉽지 않다. 대원군 이하응이 사용한 흉배의 기린상을 통해 유추하면, 용의 머리와 뿔과 비늘에, 말의 다리와 발굽, 소의 꼬리털, 녹각형 날개를 지닌 모습을 하고 있어서 고려 말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후대의 유물이긴 하지만, 의장기 기린의 경우 용 비늘 외에 사슴의 반점으로 나타내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는 기린이 불교 사찰의 장엄용 서수로도 확산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문양의 맥락에서 묘사되었으며, 그림으로는 병풍 등에 자손 번창과 가문 번영의 기복호사 풍조와 결부된 길상용 장식화로 다루어졌다. 형상은 1607년에 명의 왕기王圻가 편찬한 『삼재도회三才圖繪』와 1725년 강희제 때 간행된 『고금도집성古今圖集成』의 ‘기린도’ 도상을 토대로 변용하며 전개되었다. 수컷인 ‘기’와 암컷인 ‘린’을 쌍으로 그릴 경우, 전자를 황색으로, 후자를 청색으로 구분해 색비 효과를 강조해 나타냈으며, 용머리를 두드러지게 표현하고 작은 반점을 비늘처럼 밀집해 묘사했다. 날개를 상징하는 깃털 부위를 붉은색 화염문으로 그려 넣어 장식성을 높인 특징을 보이기도 했다. 진채풍 화조도와 십장생도의 구도에 암수 부부 기린과 새끼들을 배열한 작품도 대두되었다. 연폭 병풍에는 반도蟠桃를 비롯해 영지와 바위, 계곡수, 폭포, 구름 등 장생물들로 가득 찬 선계에서 노니는 기린 가족들의 이상적이고 환상적인 정경이 정교한 필치와 화려한 색채로 펼쳐져 있다. 이는 규장각 화원의 녹취재 화제인 <기린재유麒麟在囿>, 즉 궁궐 동산에서 노니는 기린들을 그린 진채풍 궁중회화의 한 유형으로 보인다.

특징 및 의의

삼국시대의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통일신라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 후기의 길상장식화로 이어진 기린도는 종교적 신앙 및 기복 풍조 등과 결부되어 전개되면서, 각 시기와 장르 유형에 따라 사슴과 말, 용을 절충하거나 혼성한 서수 또는 영수로서 묘사되며 그 상징성이 유포되었다. 조선 후기의 길상장식화에서 진채풍 화조도나 십장생도의 구도를 통해 부부와 새끼 기린이 군상을 이룬 구성은 기존의 기린도에서 볼 수 없는 특징이다.

참고문헌

민화 이야기(윤열수, 디자인하우스, 1995), 조선후기 궁중화원 연구-하(강관식, 돌베개, 2001), 조선후기 왕실·상층문화의 세속화 과정 고찰-기린 모티프를 중심으로(이재중, 역사민속학11, 역사민속학회, 2000),東洋文樣史(渡邊素舟, 富山房, 1971), 鳳麟龜龍考釋(杜而未, 臺灣商務印書館, 1996).

기린도

기린도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화

집필자 홍선표(洪善杓)

정의

천상을 왕래하는 상상의 영수靈獸, 즉 상서로운 동물로 신앙되던 기린을 그린 그림.

개관

기린은 길상적이고 신령스러운 서수瑞獸와 신수神獸 또는 영수로서 한대의 화상전畫像塼이나 화상석畫像石, 고분벽화 등에 본격적으로 형상화되기 시작하여 고구려로 파급되었다. 안악1호분을 비롯해 무용총과 삼실총, 강서대묘, 오회분오호묘 등, 고구려 중기와 후기의 벽화고분 천장부에 단독으로 또는 선인의 승물로 묘사되어 천계의 동물로 표상되었다. 통일신라에서는 와당과 전돌에 용과 봉황, 가릉빈가 못지않게 기린을 새겼다. 당 양식을 토대로 삼아 단독상이나 대칭적인 쌍 무늬로 장식되었으며, 사산조의 영향으로 입에 보화줄기를 물고 있는 도상도 전한다.고려시대에는 동경을 비롯한 청동제 공예품과 드물게는 청자 향로의 뚜껑 꼭지에 형상화되기도 했다. 그리고 14세기로 추정되는 일본 사이후쿠지西福寺 소장의 고려 불화인 의 전각 하단부에 4마리의 비주형 기린이 좌우 대칭으로 묘사되었다. 승탑인 부도의 기단부에 용과 함께 새겨진 경우도 있다. 『고려사』에 의하면 의종재위 1146~1170 때 정해진 어가행렬 제도의 의장기 가운데 ‘기린기’와 ‘황기린기’, ‘백기린기’가 있었다.조선시대에 이르러 기린은 이상적인 왕도정치의 상징으로 표상되면서 그 형상의 사용이 제한되어 전기에는 왕이 타는 어련이나 세자의 말다래를 비롯해 주로 왕실용 기물 등에 시문되었다. 1454년(단종 2)부터 시행된 흉배의 문양도 기린은 세자와 대군 등의 왕족만 사용할 수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왕이 직접 관리하는 규장각 화원의 녹취재 화문 중 영모화의 화제로 대두되었으나, 일반화되지는 않았다. 이 시기를 통해 불교 사찰의 수미단을 비롯해 기둥이나 대들보, 창방 등에 장엄용 서수로서 묘사되며 확산되었다. 이러한 현상이 태평성세를 체현하는 기린과 같이 뛰어난 자손이 끊이지 않고 번창하기를 소망하는 등의 민간 기복신앙과 결부되어 기린이 병풍이나 족자에 길상장식화로 더 많이 그려졌다.

내용

기린은 상상의 동물로, 사슴 또는 말의 몸에 꼬리는 소와 같고, 머리에 뿔이 한 개 있으며, 수컷을 기, 암컷을 린이라 부르기도 한다. 봉황과 거북이, 용과 함께 사령도四靈圖의 하나로도 그려졌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는 기린을 몸에 반점 등이 있는 사슴의 형태로 나타내기도 하고 끝이 둥근 막대기 모양의 뿔과 기익형氣翼形 날개로 표현하기도 했다. 점차 말의 신체와 닮게 묘사되면서 뿔처럼 생긴 말 상투와 화염형의 갈기 및 꼬리털을 갖춘 천마와 혼동되기도 한다. 신라 천마총에서 출토된 말다래인 장니에 그려진 천마를 기린으로 주장했던 견해가 대표적인 사례이다.와당과 전돌에 주로 의장된 통일신라의 기린상은 대부분 말 모양으로 표현되었으며, 암막새에는 두 마리가 좌우대칭으로 배치되는 경우가 많았다. 머리 위로 뿔이 두 갈래로 뻗어 있거나 날개와 함께 갈기 같은 것을 양 옆으로 나타냈고, 구름무늬나 연판문, 연주문을 곁들여 장식했다. 고려시대에는 기린상에 송과 원대의 영향으로 용의 비늘이 부가되는 변화를 보였다. 용이 서수 또는 신수의 으뜸이라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이해된다. 동경의 문양으로 봉황과 짝을 이루며 새겨지기도 했고, 사령四靈의 하나로 배열되기도 했는데, 말의 형상에서 점차 용의 얼굴이 가미되는 양상을 나타냈다.조선 전기의 기린 도상은 현재 전하는 유물이 드물어 구체적인 파악이 쉽지 않다. 대원군 이하응이 사용한 흉배의 기린상을 통해 유추하면, 용의 머리와 뿔과 비늘에, 말의 다리와 발굽, 소의 꼬리털, 녹각형 날개를 지닌 모습을 하고 있어서 고려 말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후대의 유물이긴 하지만, 의장기 기린의 경우 용 비늘 외에 사슴의 반점으로 나타내기도 했다.조선 후기에는 기린이 불교 사찰의 장엄용 서수로도 확산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문양의 맥락에서 묘사되었으며, 그림으로는 병풍 등에 자손 번창과 가문 번영의 기복호사 풍조와 결부된 길상용 장식화로 다루어졌다. 형상은 1607년에 명의 왕기王圻가 편찬한 『삼재도회三才圖繪』와 1725년 강희제 때 간행된 『고금도집성古今圖集成』의 ‘기린도’ 도상을 토대로 변용하며 전개되었다. 수컷인 ‘기’와 암컷인 ‘린’을 쌍으로 그릴 경우, 전자를 황색으로, 후자를 청색으로 구분해 색비 효과를 강조해 나타냈으며, 용머리를 두드러지게 표현하고 작은 반점을 비늘처럼 밀집해 묘사했다. 날개를 상징하는 깃털 부위를 붉은색 화염문으로 그려 넣어 장식성을 높인 특징을 보이기도 했다. 진채풍 화조도와 십장생도의 구도에 암수 부부 기린과 새끼들을 배열한 작품도 대두되었다. 연폭 병풍에는 반도蟠桃를 비롯해 영지와 바위, 계곡수, 폭포, 구름 등 장생물들로 가득 찬 선계에서 노니는 기린 가족들의 이상적이고 환상적인 정경이 정교한 필치와 화려한 색채로 펼쳐져 있다. 이는 규장각 화원의 녹취재 화제인 , 즉 궁궐 동산에서 노니는 기린들을 그린 진채풍 궁중회화의 한 유형으로 보인다.

특징 및 의의

삼국시대의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통일신라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 후기의 길상장식화로 이어진 기린도는 종교적 신앙 및 기복 풍조 등과 결부되어 전개되면서, 각 시기와 장르 유형에 따라 사슴과 말, 용을 절충하거나 혼성한 서수 또는 영수로서 묘사되며 그 상징성이 유포되었다. 조선 후기의 길상장식화에서 진채풍 화조도나 십장생도의 구도를 통해 부부와 새끼 기린이 군상을 이룬 구성은 기존의 기린도에서 볼 수 없는 특징이다.

참고문헌

민화 이야기(윤열수, 디자인하우스, 1995), 조선후기 궁중화원 연구-하(강관식, 돌베개, 2001), 조선후기 왕실·상층문화의 세속화 과정 고찰-기린 모티프를 중심으로(이재중, 역사민속학11, 역사민속학회, 2000),東洋文樣史(渡邊素舟, 富山房, 1971), 鳳麟龜龍考釋(杜而未, 臺灣商務印書館,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