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도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화

집필자 유미나(劉美那)

정의

동해에 임한 태백산맥 북부의 명승지인 금강산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은 그림.

개관

금강산도는 내금강, 외금강, 해금강으로 이루어진 금강산 전체의 모습을 다룬 금강전도와 각 명소를 독립된 화목으로 다룬 명소도식 금강산도가 있다. 금강산도는 조선 후기 조선의 산하를 한국적 화풍으로 그린진경산수화의 유행과 더불어 주요 산수화 주제로 떠올랐다. 금강산도는 정선에 의해 양식적 틀을 형성하였으며, 이후 화단의 핵심을 이룬 여러 문인화가와 도화서 화원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다루어지며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 중앙 화단에서 유행한 금강산도는 19세기 들어서 저변화되어 민화 금강산도의 제작으로 이어졌고 조선 말기와 근대기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제작되었다. 중앙 화단의 금강산도가 사의성寫意性을 띠며 순수 감상용으로 화첩이나 첩, 축, 부채 등의 형식으로 제작된 데 반해, 민화 금강산도는 장식화로서 주로 병풍 형식으로 그려졌다.

내용

민화 금강산도의 유형은 내금강의 경관을 조망한 내금강산전도와 외금강의 명소까지 아우른 내외금강산명소도의 두 유형으로 크게 대별된다.
내금강산전도의 대표적인 초기 작품의 예로, 현존하는 민화 금강산도 가운데 가장 양식적으로 앞선다고 여겨지는 작품은 미국 오레곤 주립대학교 미술관 소장의 <내금강전도 8폭 병풍>을 들 수 있다. 이 그림에는 19세기의 문인 신학권申學權, 1785~1866이 1865년에 쓴 제발이 있다. 제발에 따르면 “십 년간 겸재 그림 팔 폭화첩 두 권을 감상하고 한 권을 모사하여 보았으나 선배 그림을 따라갈 수 없다.”라고 쓰여 있는데, 신학권이 직접 그린 것은 아니고 전문 화가에게 의뢰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제발을 통해 민화 금강산도가 정선의 금강산도를 모방하는 데서 비롯되었음을 살필 수 있다. 이에 영향을 미친 작품은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된 <금강전도 10폭 병풍>과 같은 그림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 <금강전도 10폭 병풍>은 정선의 <봉래도권>과 같이 좌우로 넓게 펼쳐져 있다.
오레곤 주립대학교 미술관 소장의 <내금강전도 8폭 병풍>과 리움 소장의 <금강전도 10폭 병풍> 모두 오른쪽의 장안사에서 시작하여 왼쪽에서 정양사로 끝나는 구도가 동일하고, 미점으로 묘사된 토산과 수직으로 묘사한 암봉의 표현에서 유사성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정선의 내금강산전도가 단순화되어 점차 민화로 이행하였음을 알 수 있고, 오레곤 주립대학교 미술관 소장의 <내금강전도 8폭 병풍>은 ‘민화 내금강전도’의 양식이 형성되는 첫 단계를 보여 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리움 소장의 <금강전도 10폭 병풍>은 민화 특유의 해학과 과장, 생략을 적절히 가미하면서도 뛰어난 구성력을 지닌 가작으로 이 유형에서 전형을 이룬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내금강전도에서는 내금강을 다루었을 뿐 외금강의 풍광을 담아내지는 못하였다. 이에 민화에서는 외금강의 명소까지 아우른 ‘내외금강산명소도’의 제작이 활발하였다. 이는 민화 금강산도의 또 다른 유형이며, 민화 금강산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가장 대표적인 유형이라 할 수 있다. 화풍에 있어서는 정선의 영향이 주를 이루고, 일부 김홍도의 영향도 보인다.
내금강-외금강-해금강으로 이어지는 기행 여정에 따라 단발령-장안사-명경대(내금강), 만물초-구룡연-은선대(외금강), 총석정(해금강) 등을 다루었는데, 내금강전도식과 명소도식이 혼합된 구성이 특징이다. 이때 유명 사찰과 봉우리, 폭포 등의 명칭을 기입하였고, 일부 봉우리나 바위 등을 표현할 때 민간 전설과 관련된 자연사물의 특징을 과장하거나 의물화擬物化하여 표현한다든지 전설과 관련된 인물을 등장시킨다든지하여 민간 전설이 그림 속에 녹아든 양상을 드러낸 점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 유형에서 양식적으로 가장 앞선 작품은 경기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금강산도> 두 폭이다. 암산을 묘사한 필선이 날카롭고 깔끔하며, 반복적 도식적 표현이 드물고, 구도가 짜임새 있는 점에서 전문 화원급 화가의 솜씨로 여겨진다.
이 유형이 더욱 확산되고 성행하면서 하나의 전형을 이루게 되는데 한국민속촌박물관 소장의 <금강산도 12폭 병풍>이 그 예이다. 여기서 수직의 암봉 표현 등의 정선 화풍의 영향이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이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표현 기법이 민화 화가들의 반복적·도식적 표현에 알맞았고 쉽게 모방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으로 여겨진다. 12폭 병풍의 전반부는 내금강전도를 담았고, 후반부는 외금강의 명소들을 배치하였다. 이렇게 지리적 위치에 상관없이 편의적으로 배치된 점은 작가가 금강산의 실제 지리를 잘 알지 못한 채 그림을 그렸음을 알려 준다. 험준한 바위산의 뾰족한 봉우리를 배열하고 토산의 능선을 따라 우거진 수목을 띠 모양으로 표현하였는데, 흰색의 암산과 검은 먹의 수목 표현이 대조를 이루며 교차되어 화면에 리듬감을 주었다.
이와 동일한 계열의 금강산도 병풍이 다수 전해지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의 <금강산도 10폭 병풍>은 비교적 충실하게 도상을 표현하였고, 호림박물관과 영남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금강산도 병풍>은 점차 도상이 해체되고 추상화된 경향을 보여 준다. 그리고 화정박물관 소장의 <금강산도 병풍>은 더욱 단순화되어 극도의 추상화 경향을 띤다.
내외금강산의 명소를 담은 그림 중에는 정선이 아닌 김홍도 화풍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난 작품들이 있다. 이 경우 병풍 형식보다는 화첩이나 낱폭 형식인 경우가 많다. 오죽헌박물관 소장의 <금강산도첩>의 경우, 특히 환선정, 정양사, 진주담의 회화 양식은 간송미술관 소장의 김홍도의 <금강산도 8폭 병풍>과 관련성이 깊다.
민화 금강산도의 묘미는 도상의 기발한 변용과 자유로운 표현 양식에 있다. 경상남도 진주 대아고등학교 소장의 황현룡 필 <금강산도 병풍>은 기이하게 변형된 산의 형태와 평행선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도식화된 준법, 음영법을 적극 구사하여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또 선문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금강산도 병풍>은 지명에 따라 봉우리를 의인화 혹은 의물화하여 재미있게 표현하였다. 예를 들어 관음봉은 사람의 형태로, 사자암은 사자의 형태로 그린 것이 그것이다.
이렇듯 민화에서 금강산 승경의 표현은 점차 간략화, 도식화, 도안화, 희화화되는 흐름을 거치게 된다. 나아가 도상이 해체되고 추상화되기도 하였는데, 산의 유기적 형태도 분해되어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기하학적, 추상적 도형들로 변했다. 진주 대아고등학교 소장의 황현룡 필 <금강산도 병풍>은 민화 금강산도의 전형 양식을 기발한 형태로 변용한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는 전형 양식의 붕괴로서 크게 보면 민화의 쇠퇴이지만, 민화 금강산도에서는 기발한 변용으로 자유스럽고 재미있는 회화세계가 펼쳐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민중의 소박한 꿈이 다양하게 꽃피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특징 및 의의

민화 금강산도는 조선 후기를 풍미했던 진경산수화의 연장선에서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전반에 걸쳐 민간에서 주문·제작되며 크게 유행하였다. 상류층에서 애호하던 금강산도가 점차 민중으로 확산되어 민화 금강산도라는 형태로 저변화된 것이다. 그리고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정선, 김홍도 등의 진경산수화를 모방하는 것으로 시작하다가 후에는 단순한 모방이 아닌 일정한 양식 계보를 형성하며 창의적으로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특히 도상의 기발한 변용과 자유로운 표현 양식이 돋보이는 많은 작품들이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금강산도 연구(박은순, 일지사, 1997), 민중의 꿈, 민화 금강산도의 양식계보(진준현, 미술사학연구279·280, 한국미술사학회, 2013), 민화금강산도에 관한 고찰(이영수, 미술사연구14, 미술사연구회, 2000).

금강산도

금강산도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화

집필자 유미나(劉美那)

정의

동해에 임한 태백산맥 북부의 명승지인 금강산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은 그림.

개관

금강산도는 내금강, 외금강, 해금강으로 이루어진 금강산 전체의 모습을 다룬 금강전도와 각 명소를 독립된 화목으로 다룬 명소도식 금강산도가 있다. 금강산도는 조선 후기 조선의 산하를 한국적 화풍으로 그린진경산수화의 유행과 더불어 주요 산수화 주제로 떠올랐다. 금강산도는 정선에 의해 양식적 틀을 형성하였으며, 이후 화단의 핵심을 이룬 여러 문인화가와 도화서 화원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다루어지며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 중앙 화단에서 유행한 금강산도는 19세기 들어서 저변화되어 민화 금강산도의 제작으로 이어졌고 조선 말기와 근대기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제작되었다. 중앙 화단의 금강산도가 사의성寫意性을 띠며 순수 감상용으로 화첩이나 첩, 축, 부채 등의 형식으로 제작된 데 반해, 민화 금강산도는 장식화로서 주로 병풍 형식으로 그려졌다.

내용

민화 금강산도의 유형은 내금강의 경관을 조망한 내금강산전도와 외금강의 명소까지 아우른 내외금강산명소도의 두 유형으로 크게 대별된다.내금강산전도의 대표적인 초기 작품의 예로, 현존하는 민화 금강산도 가운데 가장 양식적으로 앞선다고 여겨지는 작품은 미국 오레곤 주립대학교 미술관 소장의 을 들 수 있다. 이 그림에는 19세기의 문인 신학권申學權, 1785~1866이 1865년에 쓴 제발이 있다. 제발에 따르면 “십 년간 겸재 그림 팔 폭화첩 두 권을 감상하고 한 권을 모사하여 보았으나 선배 그림을 따라갈 수 없다.”라고 쓰여 있는데, 신학권이 직접 그린 것은 아니고 전문 화가에게 의뢰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제발을 통해 민화 금강산도가 정선의 금강산도를 모방하는 데서 비롯되었음을 살필 수 있다. 이에 영향을 미친 작품은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된 과 같은 그림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 은 정선의 과 같이 좌우로 넓게 펼쳐져 있다.오레곤 주립대학교 미술관 소장의 과 리움 소장의 모두 오른쪽의 장안사에서 시작하여 왼쪽에서 정양사로 끝나는 구도가 동일하고, 미점으로 묘사된 토산과 수직으로 묘사한 암봉의 표현에서 유사성을 볼 수 있다.따라서 정선의 내금강산전도가 단순화되어 점차 민화로 이행하였음을 알 수 있고, 오레곤 주립대학교 미술관 소장의 은 ‘민화 내금강전도’의 양식이 형성되는 첫 단계를 보여 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리움 소장의 은 민화 특유의 해학과 과장, 생략을 적절히 가미하면서도 뛰어난 구성력을 지닌 가작으로 이 유형에서 전형을 이룬 작품이라 할 수 있다.내금강전도에서는 내금강을 다루었을 뿐 외금강의 풍광을 담아내지는 못하였다. 이에 민화에서는 외금강의 명소까지 아우른 ‘내외금강산명소도’의 제작이 활발하였다. 이는 민화 금강산도의 또 다른 유형이며, 민화 금강산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가장 대표적인 유형이라 할 수 있다. 화풍에 있어서는 정선의 영향이 주를 이루고, 일부 김홍도의 영향도 보인다.내금강-외금강-해금강으로 이어지는 기행 여정에 따라 단발령-장안사-명경대(내금강), 만물초-구룡연-은선대(외금강), 총석정(해금강) 등을 다루었는데, 내금강전도식과 명소도식이 혼합된 구성이 특징이다. 이때 유명 사찰과 봉우리, 폭포 등의 명칭을 기입하였고, 일부 봉우리나 바위 등을 표현할 때 민간 전설과 관련된 자연사물의 특징을 과장하거나 의물화擬物化하여 표현한다든지 전설과 관련된 인물을 등장시킨다든지하여 민간 전설이 그림 속에 녹아든 양상을 드러낸 점도 특징이라 할 수 있다.이 유형에서 양식적으로 가장 앞선 작품은 경기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두 폭이다. 암산을 묘사한 필선이 날카롭고 깔끔하며, 반복적 도식적 표현이 드물고, 구도가 짜임새 있는 점에서 전문 화원급 화가의 솜씨로 여겨진다.이 유형이 더욱 확산되고 성행하면서 하나의 전형을 이루게 되는데 한국민속촌박물관 소장의 이 그 예이다. 여기서 수직의 암봉 표현 등의 정선 화풍의 영향이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이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표현 기법이 민화 화가들의 반복적·도식적 표현에 알맞았고 쉽게 모방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으로 여겨진다. 12폭 병풍의 전반부는 내금강전도를 담았고, 후반부는 외금강의 명소들을 배치하였다. 이렇게 지리적 위치에 상관없이 편의적으로 배치된 점은 작가가 금강산의 실제 지리를 잘 알지 못한 채 그림을 그렸음을 알려 준다. 험준한 바위산의 뾰족한 봉우리를 배열하고 토산의 능선을 따라 우거진 수목을 띠 모양으로 표현하였는데, 흰색의 암산과 검은 먹의 수목 표현이 대조를 이루며 교차되어 화면에 리듬감을 주었다.이와 동일한 계열의 금강산도 병풍이 다수 전해지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의 은 비교적 충실하게 도상을 표현하였고, 호림박물관과 영남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은 점차 도상이 해체되고 추상화된 경향을 보여 준다. 그리고 화정박물관 소장의 은 더욱 단순화되어 극도의 추상화 경향을 띤다.내외금강산의 명소를 담은 그림 중에는 정선이 아닌 김홍도 화풍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난 작품들이 있다. 이 경우 병풍 형식보다는 화첩이나 낱폭 형식인 경우가 많다. 오죽헌박물관 소장의 의 경우, 특히 환선정, 정양사, 진주담의 회화 양식은 간송미술관 소장의 김홍도의 과 관련성이 깊다.민화 금강산도의 묘미는 도상의 기발한 변용과 자유로운 표현 양식에 있다. 경상남도 진주 대아고등학교 소장의 황현룡 필 은 기이하게 변형된 산의 형태와 평행선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도식화된 준법, 음영법을 적극 구사하여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또 선문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은 지명에 따라 봉우리를 의인화 혹은 의물화하여 재미있게 표현하였다. 예를 들어 관음봉은 사람의 형태로, 사자암은 사자의 형태로 그린 것이 그것이다.이렇듯 민화에서 금강산 승경의 표현은 점차 간략화, 도식화, 도안화, 희화화되는 흐름을 거치게 된다. 나아가 도상이 해체되고 추상화되기도 하였는데, 산의 유기적 형태도 분해되어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기하학적, 추상적 도형들로 변했다. 진주 대아고등학교 소장의 황현룡 필 은 민화 금강산도의 전형 양식을 기발한 형태로 변용한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는 전형 양식의 붕괴로서 크게 보면 민화의 쇠퇴이지만, 민화 금강산도에서는 기발한 변용으로 자유스럽고 재미있는 회화세계가 펼쳐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민중의 소박한 꿈이 다양하게 꽃피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특징 및 의의

민화 금강산도는 조선 후기를 풍미했던 진경산수화의 연장선에서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전반에 걸쳐 민간에서 주문·제작되며 크게 유행하였다. 상류층에서 애호하던 금강산도가 점차 민중으로 확산되어 민화 금강산도라는 형태로 저변화된 것이다. 그리고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정선, 김홍도 등의 진경산수화를 모방하는 것으로 시작하다가 후에는 단순한 모방이 아닌 일정한 양식 계보를 형성하며 창의적으로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특히 도상의 기발한 변용과 자유로운 표현 양식이 돋보이는 많은 작품들이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금강산도 연구(박은순, 일지사, 1997), 민중의 꿈, 민화 금강산도의 양식계보(진준현, 미술사학연구279·280, 한국미술사학회, 2013), 민화금강산도에 관한 고찰(이영수, 미술사연구14, 미술사연구회,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