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도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화

집필자 박본수(朴本洙)

정의

김만중이 지은 소설 구운몽九雲夢을 도해한 그림.

역사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은 병자호란 때 순절한 김익겸金益兼, 1615~1637의 유복자로 태어나 모친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소설 『구운몽』은 김만중이 유배 생활을 하고 있을 때 나이 많은 어머니를 위로하는 뜻으로 하룻밤 만에 완성했다는 작품이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장편소설인 『구운몽』은 17세기 말 창작된 이후 소설 가운데 가장 높은 인기를 누렸다.
소설의 내용은 본래 육관대사六觀大師의 제자였던 주인공 성진性眞이 팔선녀를 희롱한 죄로 양소유楊少游라는 이름으로 인간 세상에 유배되어 태어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양소유는 어린 나이에 등과登科하여 많은 공을 세우고 그 공으로 승상丞相이 되어 위국공魏國公에 책봉되고 부마駙馬가 되었다. 그동안 양소유는 인간 세상에 같이 유배된 팔선녀의 후신인 여덟 명의 여인들과 차례로 만나 아내로 삼고, 인간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살다가 만년晩年에 인생무상을 느끼고 여덟 부인들과 함께 불문佛門에 귀의하려 한다. 이 환몽구조의 소설은 왕이나 양반뿐만 아니라 기생에 이르기까지 조선 사람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가장 애호한 소설이다. 그래서 소설 『구운몽』에 대한 문학적 연구는 다양한 측면에서 많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구운몽도>는 회화사적 측면에서 그림을 그린 화가를 알 수 없거나 작품의 제작시기가 정확하지 않고, 그림의 형식과 화풍에 대한 분석이 쉽지 않기 때문에 연구가 많이 진행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운몽도>는 회화사 측면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왜냐하면 한국의 소설이 그림으로 도해된 매우 드문 사례이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에는 <구운몽도> 이외에도 소설을 그린 작품들이 존재하였다. <구운몽도>와 마찬가지로 많이 도해된 작품 중의 하나인 <삼국지연의도三國志演義圖>는 중국소설을 도해한 것이다. 한국소설을 도해한 경우 로는 <춘향전도春香傳圖>, <별주부전도鼈主簿傳圖>, <심청전도沈淸傳圖>등이 전하지만, <구운몽도>만큼 많은 작품이 남아 있지는 않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구운몽도>는 대중적인 인기를 배경으로 가장 많이 그려진 한국소설 그림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내용

현전하는 <구운몽도>는 거의 병풍이다. <구운몽도> 병풍이 지닌 특징 및 가치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다른 그림들과 혼합된 병풍이 적지 않다. 둘째, 이야기 차례와 그림의 순서가 일치하는 것이 없다. 셋째, 소설 내용과 차이가 있는 그림도 다수 보인다. 넷째, 어떤 내용을 그렸는지 특정할 수 없는 그림도 드물지 않다.
일반적으로 병풍을 읽는 바른 순서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시선을 옮겨 가는 것인데, 그림의 차례가 『구운몽』의 이야기 전개에 따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겨간 병풍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또 소설 내용으로 보면 아이를 그려야 할 자리인데 노파를 그린다든지, 비수匕首를 그려야 할 자리에 장검長劍을 그리는 등 소설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그림들이 상당수 발견된다. 이런 점 등을 통해 볼 때 <구운몽도>가 『구운몽』에 단단히 묶여 있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구운몽도>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보여 주려고 한 것이라기보다 『구운몽』의 분위기와 이미지를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조선시대병풍이 가진 가장 중요한 기능인 장식성과 잘 부합한다.
8첩이든 10첩이든 그 한정된 장면으로는 장편소설인 『구운몽』을 온전히 옮길 수 없다. 『구운몽』은 기본적으로는 사랑 이야기로서 성진과 팔선녀, 또는 양소유와 여덟 부인의 만남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맨 처음 성진과 팔선녀가 돌다리에서 만나는 장면은 <구운몽도>의 대표 장면이고, 양소유가 여덟 처첩과 만나는 것은 기본 장면이다. 대표 장면과 기본 장면만 해도 9첩이 필요하니, 기껏 10첩의 병풍으로는 『구운몽』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
<구운몽도>는 이 밖에도 낙유원에서 양소유와 월왕이 자신이 가진 기녀들의 재주를 겨루는 장면, 육관대사가 깨달음을 주려고 양소유의 누대로 올라가는 장면, 각종 잔치 장면 등이 잘 그려져 있다. 한편 팔선녀와의 만남 중에는 계섬월, 정경패, 심요연과 만나는 장면처럼 자주 그려지는 것도 있고, 적경홍 장면처럼 별로 그려지지 않는 것도 있다. 또한 무엇을 그렸는지 불명확한 것도 있는데, 이런 여러 그림을 모두 합하면 <구운몽도> 병풍에 그려진 장면은 다음과 같다. 1. 성진과 팔선녀, 돌다리에서 만나다. 2. 성진, 풍도 지옥으로 끌려가다. 3.성진, 인간 세상(당나라 시절, 9세기 전반)에 태어나다. 4. 진채봉을 만나다. 5. 낙양 기생 계섬월을 첩으로 맞다. 6. 여장을 하고 정경패에게 구애하다. 7. 선녀로 변장한 가춘운에게 속다. 8. 계섬월이 남장한 기생 적경홍을 만나다. 9. 퉁소를 불어 난양 공주의 학을 부르다. 10. 자객 심요연을 첩으로 맞다. 11. 용왕의 딸 백능파를 위해 남해 태자와 싸우다. 12. 칠보시로 두 공주의 재주를 시험하다. 13. 두 공주와 결혼하다. 14. 낙유원에서 기예를 겨루다. 15. 육관대사가 찾아오다. 16. 잠에서 깨어나다.

특징 및 의의

<구운몽도>는 화첩, 병풍, 족자의 형태로 그려져 사람들에게 소설과 함께 교훈을 전하는 역할이나, 집 안에 장식되어 방 안을 꾸미는 역할도 하였다. 현재는 병풍의 형태로 가장 많이 남아 있다. 문헌 속에 등장하는 <구운몽도>를 보면 왕실이나 양반집이 아니라, 기생집이나 첩의 방을 장식하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양반계층이 주로 향유한 그림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구운몽도>는 대부분이 민화의 형태로 남아 있으며, 대부분이 8첩 또는 10첩의 병풍 형태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소설 속의 여러 주제들이 그려졌는데, 주로 양소유와 팔낭자의 첫 만남이 주제로 그려졌다. 소설 『구운몽』의 인기 있는 열한개의 장면이 반복적으로 그려지다 보니 비슷한 유형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각 그림이 큰 편차를 보이며 나타나고 있다. 어느 그림은 중국풍의 느낌이 나지만 어떤 그림은 한복을 입고 좌식생활을 하는 토속적인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구운몽도>가 얼마나 한국적인 그림인지 말해주고 있다. <구운몽도>는 조선의 소설을 그렸다는 점, 또 기준으로 삼을 만한 삽화가 없는 상황에서 단독 작품으로 존재했다는 점과 20세기까지도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연구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19세기 구운몽도 연구(김은비, 덕성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2015), 구운몽도(간호윤, 한국 고소설도 특강-그림과 소설이 만났을 때, 새문사, 2014), 구운몽도(허동화,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규방 문화, 현암사, 2006), 구운몽도-그림으로 읽는 구운몽(정병설, 문학동네, 2010), 구운몽도 연구(정병설, 고전문학연구30, 한국고전문학회, 2006).

구운몽도

구운몽도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화

집필자 박본수(朴本洙)

정의

김만중이 지은 소설 구운몽九雲夢을 도해한 그림.

역사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은 병자호란 때 순절한 김익겸金益兼, 1615~1637의 유복자로 태어나 모친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소설 『구운몽』은 김만중이 유배 생활을 하고 있을 때 나이 많은 어머니를 위로하는 뜻으로 하룻밤 만에 완성했다는 작품이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장편소설인 『구운몽』은 17세기 말 창작된 이후 소설 가운데 가장 높은 인기를 누렸다.소설의 내용은 본래 육관대사六觀大師의 제자였던 주인공 성진性眞이 팔선녀를 희롱한 죄로 양소유楊少游라는 이름으로 인간 세상에 유배되어 태어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양소유는 어린 나이에 등과登科하여 많은 공을 세우고 그 공으로 승상丞相이 되어 위국공魏國公에 책봉되고 부마駙馬가 되었다. 그동안 양소유는 인간 세상에 같이 유배된 팔선녀의 후신인 여덟 명의 여인들과 차례로 만나 아내로 삼고, 인간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살다가 만년晩年에 인생무상을 느끼고 여덟 부인들과 함께 불문佛門에 귀의하려 한다. 이 환몽구조의 소설은 왕이나 양반뿐만 아니라 기생에 이르기까지 조선 사람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가장 애호한 소설이다. 그래서 소설 『구운몽』에 대한 문학적 연구는 다양한 측면에서 많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는 회화사적 측면에서 그림을 그린 화가를 알 수 없거나 작품의 제작시기가 정확하지 않고, 그림의 형식과 화풍에 대한 분석이 쉽지 않기 때문에 연구가 많이 진행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는 회화사 측면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왜냐하면 한국의 소설이 그림으로 도해된 매우 드문 사례이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에는 이외에도 소설을 그린 작품들이 존재하였다. 와 마찬가지로 많이 도해된 작품 중의 하나인 는 중국소설을 도해한 것이다. 한국소설을 도해한 경우 로는 , , 등이 전하지만, 만큼 많은 작품이 남아 있지는 않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는 대중적인 인기를 배경으로 가장 많이 그려진 한국소설 그림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내용

현전하는 는 거의 병풍이다. 병풍이 지닌 특징 및 가치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다른 그림들과 혼합된 병풍이 적지 않다. 둘째, 이야기 차례와 그림의 순서가 일치하는 것이 없다. 셋째, 소설 내용과 차이가 있는 그림도 다수 보인다. 넷째, 어떤 내용을 그렸는지 특정할 수 없는 그림도 드물지 않다.일반적으로 병풍을 읽는 바른 순서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시선을 옮겨 가는 것인데, 그림의 차례가 『구운몽』의 이야기 전개에 따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겨간 병풍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또 소설 내용으로 보면 아이를 그려야 할 자리인데 노파를 그린다든지, 비수匕首를 그려야 할 자리에 장검長劍을 그리는 등 소설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그림들이 상당수 발견된다. 이런 점 등을 통해 볼 때 가 『구운몽』에 단단히 묶여 있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보여 주려고 한 것이라기보다 『구운몽』의 분위기와 이미지를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조선시대병풍이 가진 가장 중요한 기능인 장식성과 잘 부합한다.8첩이든 10첩이든 그 한정된 장면으로는 장편소설인 『구운몽』을 온전히 옮길 수 없다. 『구운몽』은 기본적으로는 사랑 이야기로서 성진과 팔선녀, 또는 양소유와 여덟 부인의 만남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맨 처음 성진과 팔선녀가 돌다리에서 만나는 장면은 의 대표 장면이고, 양소유가 여덟 처첩과 만나는 것은 기본 장면이다. 대표 장면과 기본 장면만 해도 9첩이 필요하니, 기껏 10첩의 병풍으로는 『구운몽』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는 이 밖에도 낙유원에서 양소유와 월왕이 자신이 가진 기녀들의 재주를 겨루는 장면, 육관대사가 깨달음을 주려고 양소유의 누대로 올라가는 장면, 각종 잔치 장면 등이 잘 그려져 있다. 한편 팔선녀와의 만남 중에는 계섬월, 정경패, 심요연과 만나는 장면처럼 자주 그려지는 것도 있고, 적경홍 장면처럼 별로 그려지지 않는 것도 있다. 또한 무엇을 그렸는지 불명확한 것도 있는데, 이런 여러 그림을 모두 합하면 병풍에 그려진 장면은 다음과 같다. 1. 성진과 팔선녀, 돌다리에서 만나다. 2. 성진, 풍도 지옥으로 끌려가다. 3.성진, 인간 세상(당나라 시절, 9세기 전반)에 태어나다. 4. 진채봉을 만나다. 5. 낙양 기생 계섬월을 첩으로 맞다. 6. 여장을 하고 정경패에게 구애하다. 7. 선녀로 변장한 가춘운에게 속다. 8. 계섬월이 남장한 기생 적경홍을 만나다. 9. 퉁소를 불어 난양 공주의 학을 부르다. 10. 자객 심요연을 첩으로 맞다. 11. 용왕의 딸 백능파를 위해 남해 태자와 싸우다. 12. 칠보시로 두 공주의 재주를 시험하다. 13. 두 공주와 결혼하다. 14. 낙유원에서 기예를 겨루다. 15. 육관대사가 찾아오다. 16. 잠에서 깨어나다.

특징 및 의의

는 화첩, 병풍, 족자의 형태로 그려져 사람들에게 소설과 함께 교훈을 전하는 역할이나, 집 안에 장식되어 방 안을 꾸미는 역할도 하였다. 현재는 병풍의 형태로 가장 많이 남아 있다. 문헌 속에 등장하는 를 보면 왕실이나 양반집이 아니라, 기생집이나 첩의 방을 장식하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양반계층이 주로 향유한 그림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는 대부분이 민화의 형태로 남아 있으며, 대부분이 8첩 또는 10첩의 병풍 형태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소설 속의 여러 주제들이 그려졌는데, 주로 양소유와 팔낭자의 첫 만남이 주제로 그려졌다. 소설 『구운몽』의 인기 있는 열한개의 장면이 반복적으로 그려지다 보니 비슷한 유형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각 그림이 큰 편차를 보이며 나타나고 있다. 어느 그림은 중국풍의 느낌이 나지만 어떤 그림은 한복을 입고 좌식생활을 하는 토속적인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가 얼마나 한국적인 그림인지 말해주고 있다. 는 조선의 소설을 그렸다는 점, 또 기준으로 삼을 만한 삽화가 없는 상황에서 단독 작품으로 존재했다는 점과 20세기까지도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연구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19세기 구운몽도 연구(김은비, 덕성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2015), 구운몽도(간호윤, 한국 고소설도 특강-그림과 소설이 만났을 때, 새문사, 2014), 구운몽도(허동화,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규방 문화, 현암사, 2006), 구운몽도-그림으로 읽는 구운몽(정병설, 문학동네, 2010), 구운몽도 연구(정병설, 고전문학연구30, 한국고전문학회,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