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팔경도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화

집필자 유미나(劉美那)

정의

동해안의 명승지 여덟 곳을 그린 그림.

개관

관동팔경은 빼어난 경관과 그 경치를 조망하는 누정이 어우러져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의 관심을 끌었던 곳으로서, 철령鐵嶺의 동쪽에 있어 관동關東이라 하였다. 통천의 총석정叢石亭, 고성의 삼일포三日浦, 간성의 청간정淸澗亭, 양양의 낙산사洛山寺, 강릉의 경포대鏡浦臺, 삼척의 죽서루竹西樓, 울진의 망양정望洋亭, 평해의 월송정越松亭 등 여덟 곳이 관동팔경에 해당된다. 여기에 흡곡의 시중대侍中臺와 고성의 해산정海山亭을 더하여 관동십경이라고도 하였다. 관동팔경이라는 용어는 16세기부터 등장하지만 신즙申楫, 1580~1639이 강원도사江原都事로 부임하여 1626년에 지은 <관동팔영關東八詠>에 이르러 관동팔경으로 정형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8폭 혹은 10폭으로 이루어진 관동팔경도 혹은 관동십경도가 본격적으로 그림으로 그려지기 시작한 시기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 무렵이었고, 이후 18세기 진경산수화의 유행과 더불어 성행하였다. 진경산수화의 대표적인 화가인 정선과 김홍도가 <관동팔경도>를 그렸으며, 그 외에도 많은 문인, 도화서 화원 및 중앙의 화가들이 감상용 혹은 장식용의 관동팔경도를 그렸다. 민화 관동팔경도는 이들의 영향으로 18세기 후반부터 등장하여 근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제작되었다.
현존하는 민화 관동팔경도는 병풍 혹은 화첩 형식으로 이루어졌으며, 다양한 구도와 개성적인 소재, 제각기 다른 화풍 등으로 표현되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관동팔경도병>, 관동대학교 박물관 소장 <백운화첩白雲畵帖>,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관동팔경도병>, 경산시립박물관 소장 <관동팔경도병>, 화정박물관 소장 <관동팔경도첩>, 강릉시립박물관 소장 <관동팔경도>, 경기대학교 박물관 소장 <관동십경도병> 등의 작품들이 전해지고 있다.

내용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관동팔경도병>은 8폭 병풍으로 통천 총석정, 고성 삼일포, 간성 청간정, 양양낙산사, 강릉 경포대, 삼척 죽서루, 울진 망양정, 평해월송정의 여덟 경관을 차례로 담았다. 간략한 필치로 경물을 단순화시켰으며, 각 장면마다 핵심이 되는 정자를 화면의 중앙에 두고 주위 경관을 넓게 조망하여 확트인 시원한 공간감을 조성하였다.
수묵과 옅은 담채를 사용하여 소박하면서도 감각적인 운치를 살리되 원산과 누정의 지붕, 그리고 근경의 소나무에 짙은 채색을 가하여 강약을 살림으로써 화면에 변화감을 주었다. 각 명소마다 핵심을 이루는 지형과 누정의 특징을 살려 관동팔경도의 주제를 전달하고자 하였다. 예를 들어 총석정의 경우 기이하게 생긴 절벽 위에 정자를 배치하고 해변에 우뚝 솟은 기둥 모양의 특이한 바위의 형태를 간략하지만 인상적으로 표현하였다. 낙산사는 산속에 감싸인 사찰의 모습을 멀리 조망하면서 바닷가 깎아지른 절벽 위의 홍련암을 근경에서 포착하여 변화감 있는 화면을 보여주었다. 산이며 바위, 나무와 누정 등의 표현이 단순하고 어눌하지만 관동팔경의 특징적 경관을 화폭마다 생생하게 묘사하고자 한 작자의 의도가 뚜렷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경기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관동십경도병>은 각 장면의 구도와 경물이 비슷하여 화면 상단에 적힌 제목이 아니라면 어느 곳을 그린 것인지 특징을 잡아내기 힘들다. 다만 해금강과 삼일포는 각각 바다에 불쑥불쑥 솟아 있는 기암괴석의 특징을 잘 표현하였고, 총석정에서는 마치 돌기둥 같이 늘어선 바위의 모습이 총석정 인근의 지형적 특색을 묘사하였다. 그러나 대체로 소략한 표현에 도식적이고 정형화된 묘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일반적인 산수에 관동팔경의 소재를 결합시키거나 주요 경물을 부각시킨 형태라 할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의 <관동팔경도>에서 ‘망양정도’를 보면 산에는 가는 선과 점묘법을 활용하여 마치 호피 문양과 같은 표현이 독특한 장식미가 있다.
능선에 늘어선 나무의 표현은 목책을 세워 놓은 것 같기도 하고, 휘어진 나무들은 율동감을 주고 있다. 화면 하단의 파도문은 마치 사람이 고개를 들고 늘어선 듯 흥미로운 표현을 하였다. 또 그림 속에는 배를 타는 인물이나 산수 유람하는 인물들을 그려 넣어 생동감을 더하였다. 이처럼 개성적인 표현, 바위의 형태를 동물이나 사람의 형상으로 묘사한 의물화擬物化 경향은 민화 금강산도에서도 나타나는 특징이며, 민화 관동팔경도와 민화 금강산도의 표현 양식이 동일한 흐름을 보인 점도 특기할 만하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의 또 다른 <관동팔경도> 병풍은 추상화에 가까운 구성으로 누정과 주위 경관을 담았는데 각 지역의 지형적 특징에 대한 관심은 없다.

특징 및 의의

관동팔경도는 금강산도와 함께 조선의 실경을 지극히 한국적인 화풍으로 그려낸 진경산수화의 한 주제로 조선 후기에 정선을 필두로 성행하였으며, 그 영향으로 민화 관동팔경도의 제작도 시작되었다. 그러나 민화 관동팔경도는 실제 지형이나 경물과의 관련성이 미약하고 일반적인 산수의 구성에 관동팔경의 소재를 결합시키거나 주요 경물을 부각시키는 형태로 그려졌으며, 도식적이고 정형화된 표현이 주를 이루어 장식용의 성격이 강조된 편이다. 또한 조선 말기와 근대기에 걸쳐 중앙 화단에서는 관동팔경도가 외면되었던 반면, 민화 관동팔경도는 서민들의 삶 속에 파고들어 그들의 미의식에 부응하면서 개성적인 필치와 양식으로 널리 제작되고 향유되어 대표적인 산수화 주제로 자리 잡았다.

참고문헌

조선시대 관동유람의 유행 배경(이상균, 인문과학연구31,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1), 조선시대 관동팔경도의 연구(이보라, 미술사학연구266, 한국미술사학회, 2010).

관동팔경도

관동팔경도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화

집필자 유미나(劉美那)

정의

동해안의 명승지 여덟 곳을 그린 그림.

개관

관동팔경은 빼어난 경관과 그 경치를 조망하는 누정이 어우러져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의 관심을 끌었던 곳으로서, 철령鐵嶺의 동쪽에 있어 관동關東이라 하였다. 통천의 총석정叢石亭, 고성의 삼일포三日浦, 간성의 청간정淸澗亭, 양양의 낙산사洛山寺, 강릉의 경포대鏡浦臺, 삼척의 죽서루竹西樓, 울진의 망양정望洋亭, 평해의 월송정越松亭 등 여덟 곳이 관동팔경에 해당된다. 여기에 흡곡의 시중대侍中臺와 고성의 해산정海山亭을 더하여 관동십경이라고도 하였다. 관동팔경이라는 용어는 16세기부터 등장하지만 신즙申楫, 1580~1639이 강원도사江原都事로 부임하여 1626년에 지은 에 이르러 관동팔경으로 정형화된 것으로 추정된다.8폭 혹은 10폭으로 이루어진 관동팔경도 혹은 관동십경도가 본격적으로 그림으로 그려지기 시작한 시기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 무렵이었고, 이후 18세기 진경산수화의 유행과 더불어 성행하였다. 진경산수화의 대표적인 화가인 정선과 김홍도가 를 그렸으며, 그 외에도 많은 문인, 도화서 화원 및 중앙의 화가들이 감상용 혹은 장식용의 관동팔경도를 그렸다. 민화 관동팔경도는 이들의 영향으로 18세기 후반부터 등장하여 근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제작되었다.현존하는 민화 관동팔경도는 병풍 혹은 화첩 형식으로 이루어졌으며, 다양한 구도와 개성적인 소재, 제각기 다른 화풍 등으로 표현되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 관동대학교 박물관 소장 ,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 경산시립박물관 소장 , 화정박물관 소장 , 강릉시립박물관 소장 , 경기대학교 박물관 소장 등의 작품들이 전해지고 있다.

내용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은 8폭 병풍으로 통천 총석정, 고성 삼일포, 간성 청간정, 양양낙산사, 강릉 경포대, 삼척 죽서루, 울진 망양정, 평해월송정의 여덟 경관을 차례로 담았다. 간략한 필치로 경물을 단순화시켰으며, 각 장면마다 핵심이 되는 정자를 화면의 중앙에 두고 주위 경관을 넓게 조망하여 확트인 시원한 공간감을 조성하였다.수묵과 옅은 담채를 사용하여 소박하면서도 감각적인 운치를 살리되 원산과 누정의 지붕, 그리고 근경의 소나무에 짙은 채색을 가하여 강약을 살림으로써 화면에 변화감을 주었다. 각 명소마다 핵심을 이루는 지형과 누정의 특징을 살려 관동팔경도의 주제를 전달하고자 하였다. 예를 들어 총석정의 경우 기이하게 생긴 절벽 위에 정자를 배치하고 해변에 우뚝 솟은 기둥 모양의 특이한 바위의 형태를 간략하지만 인상적으로 표현하였다. 낙산사는 산속에 감싸인 사찰의 모습을 멀리 조망하면서 바닷가 깎아지른 절벽 위의 홍련암을 근경에서 포착하여 변화감 있는 화면을 보여주었다. 산이며 바위, 나무와 누정 등의 표현이 단순하고 어눌하지만 관동팔경의 특징적 경관을 화폭마다 생생하게 묘사하고자 한 작자의 의도가 뚜렷하다고 할 수 있다.이에 반해 경기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은 각 장면의 구도와 경물이 비슷하여 화면 상단에 적힌 제목이 아니라면 어느 곳을 그린 것인지 특징을 잡아내기 힘들다. 다만 해금강과 삼일포는 각각 바다에 불쑥불쑥 솟아 있는 기암괴석의 특징을 잘 표현하였고, 총석정에서는 마치 돌기둥 같이 늘어선 바위의 모습이 총석정 인근의 지형적 특색을 묘사하였다. 그러나 대체로 소략한 표현에 도식적이고 정형화된 묘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일반적인 산수에 관동팔경의 소재를 결합시키거나 주요 경물을 부각시킨 형태라 할 수 있다.국립민속박물관 소장의 에서 ‘망양정도’를 보면 산에는 가는 선과 점묘법을 활용하여 마치 호피 문양과 같은 표현이 독특한 장식미가 있다.능선에 늘어선 나무의 표현은 목책을 세워 놓은 것 같기도 하고, 휘어진 나무들은 율동감을 주고 있다. 화면 하단의 파도문은 마치 사람이 고개를 들고 늘어선 듯 흥미로운 표현을 하였다. 또 그림 속에는 배를 타는 인물이나 산수 유람하는 인물들을 그려 넣어 생동감을 더하였다. 이처럼 개성적인 표현, 바위의 형태를 동물이나 사람의 형상으로 묘사한 의물화擬物化 경향은 민화 금강산도에서도 나타나는 특징이며, 민화 관동팔경도와 민화 금강산도의 표현 양식이 동일한 흐름을 보인 점도 특기할 만하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의 또 다른 병풍은 추상화에 가까운 구성으로 누정과 주위 경관을 담았는데 각 지역의 지형적 특징에 대한 관심은 없다.

특징 및 의의

관동팔경도는 금강산도와 함께 조선의 실경을 지극히 한국적인 화풍으로 그려낸 진경산수화의 한 주제로 조선 후기에 정선을 필두로 성행하였으며, 그 영향으로 민화 관동팔경도의 제작도 시작되었다. 그러나 민화 관동팔경도는 실제 지형이나 경물과의 관련성이 미약하고 일반적인 산수의 구성에 관동팔경의 소재를 결합시키거나 주요 경물을 부각시키는 형태로 그려졌으며, 도식적이고 정형화된 표현이 주를 이루어 장식용의 성격이 강조된 편이다. 또한 조선 말기와 근대기에 걸쳐 중앙 화단에서는 관동팔경도가 외면되었던 반면, 민화 관동팔경도는 서민들의 삶 속에 파고들어 그들의 미의식에 부응하면서 개성적인 필치와 양식으로 널리 제작되고 향유되어 대표적인 산수화 주제로 자리 잡았다.

참고문헌

조선시대 관동유람의 유행 배경(이상균, 인문과학연구31,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1), 조선시대 관동팔경도의 연구(이보라, 미술사학연구266, 한국미술사학회,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