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모여재도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화

집필자 김시덕(金時德)

정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 지방을 붙일 수 있는 사당을 화폭에 담은 그림.

개관

감모여재도는 사당을 그린 그림이므로 사당도祠堂圖라고 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라는 화제畫題가 붙은 그림이 많이 발견되면서 명칭으로 발전하였다. ‘감모여재感慕如在’는 조상을 사모하는 마음이 지극하면 그 모습이 실제 앞에 계신것 같다는 의미이다. 감모여재도는 조상신이 머무는 신성한 사당을 그림으로 그려 조상신을 받드는 후손의 효성 어린 마음을 표현한 그림이며,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그림이므로 일종의 제사 도구이다. 그리고 그림으로 보면 종교화에 속한다. 불교의 영향을 받았지만, 유교식 제사에서 조상의 신위神位를 모시는 신성한 공간인 사당을 표현한 그림이다. 사당 그림 가운데에 조상의 임시 신위인 지방紙榜을 붙일 수 있게 한 그림이어서 유교의 종교화라 할 수 있다. 감모여재도의 기원에 관한 예서禮書의 규정이나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브루클린박물관에 소장된 <감모여재도>에 1811년[가경嘉慶16] 동향각東香閣에서 그렸다는 화기畫記가 있어, 감모여재도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등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유교식 의례가 우리나라 의례의 문화적 전통으로 자리 잡는 시기와도 같아 설득력이 있다.
감모여재도의 등장 배경은 첫째, 유교식 제사의 실천이다. 조선시대는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고 유교식 의례를 제도로 삼아,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시는 사당을 중요하게 여겼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대부들은 별도로 사당을 지어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낼 수 있었지만 서민들은 사당을 지을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사당대신 감모여재도에 조상의 지방을 붙이고 제사를 지내면서 조상 숭배에 대한 열망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둘째는 임지任地로 부임하는 관리들의 제사 실천에 필요한도구이다. 이미 유교식 종법宗法에 따라 세거지世居地를 형성하였던 사대부들은 임지로 떠나더라도 신주를 모신 사당과 저택을 옮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 따라서 이동이 편리한 족자형 감모여재도로 사당을 대신하였다. 셋째는 불교의 영향이다. 조선 후기에 유교식 제사로 서민을 교화했던 민간불교가 민간인의 천도재를 지낼 때 감모여재도를 사용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불교와 유교가 융합된 도상의 감모여재도가 등장할 수 있었다.

내용

감모여재도는 형태에 따라 족자형·병풍형·가리개(3폭 병풍)형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족자형은 걸개그림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형태이다. 그림 내용은 사당 앞에 제상을 마련하고 제물을 진설한 형태와 사당 건물 앞에 향로와 촛대만 그린 형태, 사당 건물만 그린 형태가 있다. 족자형은 필요할 때 벽에 걸고 그 앞에 제상을 차려 제사를 지내고,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두루마리로 말아 보관할 수 있다. 공간을 차지 하지 않고, 옮길 때도 부피가 작아 이동에도 용이한 기능성을 강조한 것이다.
둘째, 병풍형은 병풍에 사당을 그려 제사를 지낼 때 제상 뒤에 둘러칠 수 있도록 만든 형태이다. 8폭 병풍 중앙에 사당을 배치하고 좌우에 사당의 신성성을 상징하는 그림을 배치한 형태와 6폭 병풍 오른쪽 끝에 사당을 배치하고, 나머지 폭에 장식 그림을 배치한 형태가 있다.
셋째, 가리개(3폭 병풍)형은 가운데 폭을 넓게 만들어 좌우 날개폭을 접어 수납할 수 있도록 만든 형태이다. 크기로 보아 교의 위에 놓거나 족자처럼 벽에 걸어서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가리개형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가운데 폭에 제구와 제물이 없는 사당만 그리고 좌우 날개폭에 수목과 화조를 그린 형태이다. 다른 하나는 크기가 작고 그림 장식이 없는 소병素屛 형태로 교의에 모신 신주 뒤를 가릴 때 사용하였다.
감모여재도는 내용에 따라 교의형, 사당형과 제사형, 단설형과 합설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교의형은 커다란 교의를 실감 있게 그리거나 추상적으로 그리고, 그 앞에 향탁과 향로, 모사茅沙를 배치한 형태로 ‘영위도靈位圖’라고도 한다.
둘째, 사당형과 제사형은 사당 건물 앞에 제물을 차린 제상의 유무에 따른 구분이다. 사당 건물 앞에 제상을 배치하고 향로와 향합, 잔, 촛대, 각종 제물을 차린 제사형 감모여재도는 감로탱甘露幀처럼 이미 그림 자체가 제사라는 의례를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물 그림이 없는 사당형 감모여재도는 제사를 지낼 때 지방을 모시는 도구의 기능만 하여 제물이 진설된 그림과는 기능에 많은 차이가 있다. 제상과 향로 등의 도구만 그린 감모여재도는 이 둘의 중간 형태이다. 셋째, 단설형과 합설형은 그림 속 사당 건물 앞에 마련된 지방을 붙이는 자리가 하나인가 둘인가에 따른 구분이다. 『가례家禮』 등의 예서에서는 한 분만 모시는 단설單設을 규정으로 삼는다. 그러나합설형의 감모여재도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부부를 함께 모시는 합설合設을 하는 한국적 전통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병풍의 어깨에는 사당을, 치마에는 고팡상을 그린 제주도 문자도형도 있다.
감모여재도의 주요 도상圖像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사당 건물로, 규정에서 정한 맞배지붕 세 칸이 아니라 누각형의 이층 팔작지붕 형태, 정자각 형태로까지 과장하였는데, 이는 조상신을 모시는 사당 건물의 신성성을 극대화한 것이다. 둘째는 수목樹木으로,사당의 뒤쪽이나 좌우에 고송古松이나 오동나무, 향나무 등의 수목이 등장한다. 이들 수목은 수형樹形이 ‘수壽’ 자를 형상하여 장수와 전통 있는 선비 집안을 상징하는 유교식 생활 덕목에 걸맞은 수종들이다. 셋째는 화조花鳥로, 연꽃, 모란, 매화, 불로초, 패랭이, 국화 등과 학, 원앙, 메추리 등이 등장하는데, 이들 화조는 부귀영화와 선비, 영속성, 효와 자식 사랑 등의 상징을 표현한 것이다. 넷째는 제구와 제물들인데, 향로, 향합, 촛대, 제사상등 제사 도구는 유교식 제사에서 흔히 사용되는 것들이지만 꽃병이 등장하는 것이 다르다. 제상에 차린 음식은 유교식 제물과는 달리 석류, 수박, 참외, 포도 등 씨가 많은 과일이 주로 등장하는데, 이는 자손 번창 등 집안의 화목과 영속성을 기원하는 의미로 읽을 수 있겠다.
그림에 등장하는 제상 등은 하나같이 뒤쪽이 좁고 앞쪽이 넓게 그려져 있는데, 지금까지는 이 기법을 역원근법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는 사당에 모신 조상신이 상을 내려다보는 위치에서 그렸기에 이러한 원근법이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도상들의 기원은 유교 불교 도교 등 다양한 종교의 영향에서 찾을 수 있다. 감모여재도 안에서 지방을 붙이는 자리가 천원지방天圓地方을 상징화 한 위는 둥글고 아래는 네모난 신주의 모습을 형상화 하고 있는 것에서는 유교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 또 다른 형태로 불교의 위패나 전패殿牌를 모방하여 지방을 붙이는 자리를 만들어 부처님처럼 조상이 연꽃에서 현현顯現하는 것처럼 상징화한 것에서는 불교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사당을 나타낼 때, 유교식의 세 칸 건물을 권위건축 이상으로 과장하여 신성성을 강조한 도교나 불교 사원처럼 그린 것에서도 다양한 종교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이외에도 청나라 때 등장하는 중국의 조종화祖宗畵(조상들을 그린 초상화)나 가당도家堂圖(조상들의 신주들이 안치된 모습을 그린 그림)와의 연관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감모여재도는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종교화宗敎畵로 다양한 의미와 상징이 포함되어 있다. 첫째, 집안의 영속성을 기원한다. 둘째, 집안의 부귀영화를 기원한다. 셋째, 사당의 신성성을 강조한다. 넷째, 유교 덕목을 실천하는 선비 집안임을 상징한다. 다섯째, 조상에게 제사지내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이처럼 감모여재도는 유교가 스스로 종교임을 주장하지 않았음에도 종교로 보게 하는 제사를 강조한 그림이다. 또한 사당이라는 건물의 신성성을 과장되게 그려 조상의 신성성을 극대화한 종교화로서 유교식 제사가 생활문화로 정착되었음을 읽을 수 있는 그림이다.

참고문헌

감모여재도 연구(이상현,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8),감모여재도 첫 번째~다섯 번째 이야기(강우방, 월간 민화, 지디비주얼,2015. 12.~2016. 4.), 유교식 제사 실천을 위한 감모여재도(김시덕, 종교와그림, 민속원, 2008), 조선시대 감모여재도 연구(지은순,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2), 조선시대 감모여재도와 명・청대 가당도의 비교 연구(정현,경주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4).

감모여재도

감모여재도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화

집필자 김시덕(金時德)

정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 지방을 붙일 수 있는 사당을 화폭에 담은 그림.

개관

감모여재도는 사당을 그린 그림이므로 사당도祠堂圖라고 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라는 화제畫題가 붙은 그림이 많이 발견되면서 명칭으로 발전하였다. ‘감모여재感慕如在’는 조상을 사모하는 마음이 지극하면 그 모습이 실제 앞에 계신것 같다는 의미이다. 감모여재도는 조상신이 머무는 신성한 사당을 그림으로 그려 조상신을 받드는 후손의 효성 어린 마음을 표현한 그림이며,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그림이므로 일종의 제사 도구이다. 그리고 그림으로 보면 종교화에 속한다. 불교의 영향을 받았지만, 유교식 제사에서 조상의 신위神位를 모시는 신성한 공간인 사당을 표현한 그림이다. 사당 그림 가운데에 조상의 임시 신위인 지방紙榜을 붙일 수 있게 한 그림이어서 유교의 종교화라 할 수 있다. 감모여재도의 기원에 관한 예서禮書의 규정이나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브루클린박물관에 소장된 에 1811년[가경嘉慶16] 동향각東香閣에서 그렸다는 화기畫記가 있어, 감모여재도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등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유교식 의례가 우리나라 의례의 문화적 전통으로 자리 잡는 시기와도 같아 설득력이 있다.감모여재도의 등장 배경은 첫째, 유교식 제사의 실천이다. 조선시대는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고 유교식 의례를 제도로 삼아,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시는 사당을 중요하게 여겼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대부들은 별도로 사당을 지어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낼 수 있었지만 서민들은 사당을 지을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사당대신 감모여재도에 조상의 지방을 붙이고 제사를 지내면서 조상 숭배에 대한 열망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둘째는 임지任地로 부임하는 관리들의 제사 실천에 필요한도구이다. 이미 유교식 종법宗法에 따라 세거지世居地를 형성하였던 사대부들은 임지로 떠나더라도 신주를 모신 사당과 저택을 옮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 따라서 이동이 편리한 족자형 감모여재도로 사당을 대신하였다. 셋째는 불교의 영향이다. 조선 후기에 유교식 제사로 서민을 교화했던 민간불교가 민간인의 천도재를 지낼 때 감모여재도를 사용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불교와 유교가 융합된 도상의 감모여재도가 등장할 수 있었다.

내용

감모여재도는 형태에 따라 족자형·병풍형·가리개(3폭 병풍)형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족자형은 걸개그림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형태이다. 그림 내용은 사당 앞에 제상을 마련하고 제물을 진설한 형태와 사당 건물 앞에 향로와 촛대만 그린 형태, 사당 건물만 그린 형태가 있다. 족자형은 필요할 때 벽에 걸고 그 앞에 제상을 차려 제사를 지내고,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두루마리로 말아 보관할 수 있다. 공간을 차지 하지 않고, 옮길 때도 부피가 작아 이동에도 용이한 기능성을 강조한 것이다.둘째, 병풍형은 병풍에 사당을 그려 제사를 지낼 때 제상 뒤에 둘러칠 수 있도록 만든 형태이다. 8폭 병풍 중앙에 사당을 배치하고 좌우에 사당의 신성성을 상징하는 그림을 배치한 형태와 6폭 병풍 오른쪽 끝에 사당을 배치하고, 나머지 폭에 장식 그림을 배치한 형태가 있다.셋째, 가리개(3폭 병풍)형은 가운데 폭을 넓게 만들어 좌우 날개폭을 접어 수납할 수 있도록 만든 형태이다. 크기로 보아 교의 위에 놓거나 족자처럼 벽에 걸어서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가리개형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가운데 폭에 제구와 제물이 없는 사당만 그리고 좌우 날개폭에 수목과 화조를 그린 형태이다. 다른 하나는 크기가 작고 그림 장식이 없는 소병素屛 형태로 교의에 모신 신주 뒤를 가릴 때 사용하였다.감모여재도는 내용에 따라 교의형, 사당형과 제사형, 단설형과 합설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교의형은 커다란 교의를 실감 있게 그리거나 추상적으로 그리고, 그 앞에 향탁과 향로, 모사茅沙를 배치한 형태로 ‘영위도靈位圖’라고도 한다.둘째, 사당형과 제사형은 사당 건물 앞에 제물을 차린 제상의 유무에 따른 구분이다. 사당 건물 앞에 제상을 배치하고 향로와 향합, 잔, 촛대, 각종 제물을 차린 제사형 감모여재도는 감로탱甘露幀처럼 이미 그림 자체가 제사라는 의례를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물 그림이 없는 사당형 감모여재도는 제사를 지낼 때 지방을 모시는 도구의 기능만 하여 제물이 진설된 그림과는 기능에 많은 차이가 있다. 제상과 향로 등의 도구만 그린 감모여재도는 이 둘의 중간 형태이다. 셋째, 단설형과 합설형은 그림 속 사당 건물 앞에 마련된 지방을 붙이는 자리가 하나인가 둘인가에 따른 구분이다. 『가례家禮』 등의 예서에서는 한 분만 모시는 단설單設을 규정으로 삼는다. 그러나합설형의 감모여재도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부부를 함께 모시는 합설合設을 하는 한국적 전통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병풍의 어깨에는 사당을, 치마에는 고팡상을 그린 제주도 문자도형도 있다.감모여재도의 주요 도상圖像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사당 건물로, 규정에서 정한 맞배지붕 세 칸이 아니라 누각형의 이층 팔작지붕 형태, 정자각 형태로까지 과장하였는데, 이는 조상신을 모시는 사당 건물의 신성성을 극대화한 것이다. 둘째는 수목樹木으로,사당의 뒤쪽이나 좌우에 고송古松이나 오동나무, 향나무 등의 수목이 등장한다. 이들 수목은 수형樹形이 ‘수壽’ 자를 형상하여 장수와 전통 있는 선비 집안을 상징하는 유교식 생활 덕목에 걸맞은 수종들이다. 셋째는 화조花鳥로, 연꽃, 모란, 매화, 불로초, 패랭이, 국화 등과 학, 원앙, 메추리 등이 등장하는데, 이들 화조는 부귀영화와 선비, 영속성, 효와 자식 사랑 등의 상징을 표현한 것이다. 넷째는 제구와 제물들인데, 향로, 향합, 촛대, 제사상등 제사 도구는 유교식 제사에서 흔히 사용되는 것들이지만 꽃병이 등장하는 것이 다르다. 제상에 차린 음식은 유교식 제물과는 달리 석류, 수박, 참외, 포도 등 씨가 많은 과일이 주로 등장하는데, 이는 자손 번창 등 집안의 화목과 영속성을 기원하는 의미로 읽을 수 있겠다.그림에 등장하는 제상 등은 하나같이 뒤쪽이 좁고 앞쪽이 넓게 그려져 있는데, 지금까지는 이 기법을 역원근법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는 사당에 모신 조상신이 상을 내려다보는 위치에서 그렸기에 이러한 원근법이 등장한 것이다.이러한 도상들의 기원은 유교 불교 도교 등 다양한 종교의 영향에서 찾을 수 있다. 감모여재도 안에서 지방을 붙이는 자리가 천원지방天圓地方을 상징화 한 위는 둥글고 아래는 네모난 신주의 모습을 형상화 하고 있는 것에서는 유교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 또 다른 형태로 불교의 위패나 전패殿牌를 모방하여 지방을 붙이는 자리를 만들어 부처님처럼 조상이 연꽃에서 현현顯現하는 것처럼 상징화한 것에서는 불교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사당을 나타낼 때, 유교식의 세 칸 건물을 권위건축 이상으로 과장하여 신성성을 강조한 도교나 불교 사원처럼 그린 것에서도 다양한 종교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이외에도 청나라 때 등장하는 중국의 조종화祖宗畵(조상들을 그린 초상화)나 가당도家堂圖(조상들의 신주들이 안치된 모습을 그린 그림)와의 연관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감모여재도는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종교화宗敎畵로 다양한 의미와 상징이 포함되어 있다. 첫째, 집안의 영속성을 기원한다. 둘째, 집안의 부귀영화를 기원한다. 셋째, 사당의 신성성을 강조한다. 넷째, 유교 덕목을 실천하는 선비 집안임을 상징한다. 다섯째, 조상에게 제사지내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이처럼 감모여재도는 유교가 스스로 종교임을 주장하지 않았음에도 종교로 보게 하는 제사를 강조한 그림이다. 또한 사당이라는 건물의 신성성을 과장되게 그려 조상의 신성성을 극대화한 종교화로서 유교식 제사가 생활문화로 정착되었음을 읽을 수 있는 그림이다.

참고문헌

감모여재도 연구(이상현,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8),감모여재도 첫 번째~다섯 번째 이야기(강우방, 월간 민화, 지디비주얼,2015. 12.~2016. 4.), 유교식 제사 실천을 위한 감모여재도(김시덕, 종교와그림, 민속원, 2008), 조선시대 감모여재도 연구(지은순,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2), 조선시대 감모여재도와 명・청대 가당도의 비교 연구(정현,경주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