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계화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화

집필자 이수경(李洙京)

정의

유교적인 교훈을 주는 내용을 그린 그림.

역사

감계鑑戒는 과거의 사적을 거울삼아 좋은 것은 귀감으로 삼고 나쁜 것은 경계한다는 의미이다. 유교 국가에서 개인의 도덕성을 함양하고 국가 통치 이념을 강화하기 위해 과거의 이야기 또는 당대의 사건 중 본받을 만한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서 활용했다. 무일도無逸圖와 빈풍도豳風圖, 성군현비고사도聖君賢妃故事圖, 기기도攲器圖, 복주도覆舟圖, 양정도養正圖, 효자도孝子圖, 공자성적도孔子聖蹟圖 등이 이에 해당된다.
감계화는 중국 한나라 기록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한나라 궁궐에 역대 제왕·왕후, 충신·열사烈士의 감계적인 이야기를 그린 것이 기원으로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왕을 위한 그림에 대한 제작 기록은 고려 충렬왕忠烈王, 재위 1274~1308 때 연회를 즐기다가, 당 현종이 밤에 연회를 즐긴 고사를 그린 <당현종야연도唐玄宗夜宴圖>를 보고 그에 뒤쳐질 수 없다고 하며 더욱 연회를 즐겼다는 일화이다.
1392년(태조1)에 조박趙璞이 역대 제왕이 학문을 하고 정치를 하는 것을 그린 그림인 <역대제왕위학위치강목지도歷代帝王爲學爲治綱目之圖>를 진향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이는 송나라 주자朱子의 역사서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 기반을 둔 감계화이다.
왕을 위한 감계화는 군왕을 요순堯舜과 같은 이상적인 왕으로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자치통감資治通鑑』과 『자치통감강목』 등 경연經筵에 사용하는 교재에 수록된 고사를 그림으로 그렸다. 1402년 태종太宗이 전각 벽에 옛날에 있었던 본받을 만한 일[前古可法事]을 그리도록 명하자 예조전서 김첨金瞻이 주周 문왕文王, 한漢 고제高帝, 주 선왕宣王, 당唐 장손왕후長孫皇后의 이야기를 소개하였고 태종은 이를 화공에게 그리도록 하였다. 성종成宗도 1475년과 1476년에 본받거나 본받지 않아야 할 왕과 왕비 고사를 그린 <명군도明君圖 10폭 병풍>, <암군도暗君圖 8폭 병풍>, <선명후암군도先明後暗君圖 10폭 병풍>, <현비도賢妃圖 10폭 병풍>을 제작하도록 한 기록이 실록에 전한다. 이들은 구휼로 선정과 인덕을 귀감으로 하고, 여색과 주연을 경계하는 고사이다. 이처럼 명군과 암군을 함께 배치하는 구성 방식은 이후 제작되는 역대제왕도의 선례가 된다.
왕의 수양과 성찰을 위해, 물이 알맞게 들어 있어야만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그릇 모양의 금속기구인 기기欹器를 그린 기기도欹器圖와 배가 뒤집어지지 않도록 살피듯이 국가 일도 경계를 하며 다스려야 한다는 가르침을 담은 복주도覆舟圖가 제작된 기록도 찾을 수 있다. 또한 왕이 백성의 농사와 노동의 어려움을 성찰하도록 빈풍도豳風圖와 무일도無逸圖를 내전이나 침전 등의 처소에 설치했다. 무일도는 『서경書經』의 「무일無逸」편을 그린 것으로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에게 백성들을 다스리는 임금의 자세에 대해 충고하는 내용이다. 빈풍도는 『시경詩經』 국풍國風 중 「빈풍칠월」 편을 그린 것이다. 「빈풍칠월」 편은 주나라 주공이 섭정을 그만두고 나이 어린 성왕을 등극시킨 후, 농사짓는 어려움을 알리기 위해 지역에서 유행하던 노래를 모은 것이며, 농업과 잠업, 자연을 노래하는 일종의 월령가月令歌로서 후대에 그림으로 그려졌다. 조선 왕조는 초기부터 왕실에서 왕과 왕자에게 농사의 어려움을 깨닫고 바른 정치를 펼칠 수 있도록 <빈풍도>를 제작하였다.
이외에도 백성의 생활상을 보여 주는 감계화로 사농공상의 연중행사를 그린 <사민도四民圖>, 농사짓는 그림인 <가색도稼穡圖>, 농경도인 <관가도觀稼圖>, 경작과 관련된 <농포도農圃圖>, 누에 치는 모습을 그린 <잠도蠶圖>가 제작되어 왕에게 백성의 어려움을 일깨웠다. 효자도 등의 행실도류 감계화는 판화 형식으로 제작되어 삼강三綱과 오륜五倫의 유교 윤리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세자 교육을 위해 공자의 일생을 그린 〈공자성적도孔子聖蹟圖〉를 활용하였다. 공자의 탄생에 얽힌 일화, 인품과 외모와 관련되는 일화, 가르침을 담고 있는 장면, 성인으로서 모습, 유학자이자 교육자로서 풍모를 보여 주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성적도>는 영조 때 병조참판 이익정李益炡이 중국으로 사행을 가서 구해 온 것을 1741년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이기언李箕彦이 당시 7세인 세자[훗날 사도세자思悼世子]를 위해 모사한 것이다. 이기언은 세자는 <성적도>를 펼쳐서 볼 때는 항상 성인을 대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하는 글을 성적도첩에 첨부하여 〈성적도〉 제작 의도를 분명하게 밝혔다. 이외에 숙종 연간 부터 〈양정도養正圖〉와 〈성공도聖功圖〉가 세자 교육을 위해 선호되었다. 명나라 만력萬曆 연간에 황태자 주상락朱常洛을 지도하기 위해 태사太史 초횡焦竑이 시강관侍講官에 임명된 후 고대 현군賢君·명신名臣·성현들의 본받을 만한 언행 60건을 모아 구성하고 궁정화가 정운붕丁雲鵬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여 황제에게 진헌한 것이 『양정도해養正圖解』이다. 조선 숙종 때 세자시강원에서 동궁에게 화면 윗부분에 해설을 쓴 양정도 병풍을 만들어올렸다. 조선의 <양정도>는 효행고사로 이루어진 점이 중국과 차이가 난다. 영조 때는 세자시강원에서 〈양정도〉와 〈성공도〉를 하나의 화첩으로 만들어 동궁이 평상시에 볼 수 있도록 했다.

내용

역대제왕도와 현비사적도는 조선시대 그림으로 확정할 수 있는 작품은 전하지 않는다. 빈풍도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이방운李肪運이 그린 <빈풍칠월도첩豳風七月圖帖>이 가장 유명하다. 화첩은 8면으로 이루어졌으며, 제1면의 봄의 풍경에서 시작하여 제8면의 겨울 모습까지 다양한 농경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시詩에서는 시차를 두고 행해지는 일들이 그림에서는 명확한 구획 없이 배치되어 있다. 이방운 특유의 부드러우면서 끊어질 듯한 서체와 필선이 어우러지며 밝고 화사한 색감이 잘 살아 있다. 공부자성적도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으로 김진여金振汝가 1700년에 중국 원나라 왕진붕王振鵬 <성적도>를 모사해 채색으로 정치하게 그린 그림 10폭이다. 공자가 5, 6세 때 조두를 벌려 놓고 예식하는 모양으로 놀았다는 <조두예용俎豆禮容>, 공자가 자로로 하여금 나루터 가는 길을 물었다는 우의적 의미가 있는 <자로문진子路問津>, 공자의 교육자로서 모습을 보여 주는 <퇴수시서退修詩書>, 공자가 시기와 모략에 시달린 이야기인 <안영저봉晏嬰沮封>, <협곡회제夾谷會齊>, <영공문진靈公問陣>, <문례노담問禮老聃>, <적위격경適衛擊磬>, <송인벌목宋人伐木>, <주소정묘誅少正卯>로 구성되어 있다.

특징 및 의의

감계화는 조선시대 궁중에서 가장 자주 진상되고 왕실에서 열람한 그림으로 왕의 수양과 성찰을 돕고자 본받을 역대 제왕과 현비를 그린 것이며 농업 국가로 농사의 어려움과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제작되었다.

참고문헌

그림에게 물은 사대부의 생활과 풍류(국사편찬위원회, 두산동아, 2007), 미술사의 정립과 확산1(안휘준, 사회평론, 2006), 역대 제왕의 고사를 그린 조선후기 왕실 감계화(김영욱, 미술사학28,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14), 왕과 국가의 회화(박정혜·윤진영 외, 돌베개, 2011), 조선시대 여성소재 감계화 연구-현비고사도와 열녀도의 정치적 성격을 중심으로(문선주, 역사민속학43, 한국역사민속학회, 2013), Mirror of Morality:Chinese Narrative Illustration and Confucian Ideology(Murray, JuliaK,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07).

감계화

감계화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화

집필자 이수경(李洙京)

정의

유교적인 교훈을 주는 내용을 그린 그림.

역사

감계鑑戒는 과거의 사적을 거울삼아 좋은 것은 귀감으로 삼고 나쁜 것은 경계한다는 의미이다. 유교 국가에서 개인의 도덕성을 함양하고 국가 통치 이념을 강화하기 위해 과거의 이야기 또는 당대의 사건 중 본받을 만한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서 활용했다. 무일도無逸圖와 빈풍도豳風圖, 성군현비고사도聖君賢妃故事圖, 기기도攲器圖, 복주도覆舟圖, 양정도養正圖, 효자도孝子圖, 공자성적도孔子聖蹟圖 등이 이에 해당된다.감계화는 중국 한나라 기록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한나라 궁궐에 역대 제왕·왕후, 충신·열사烈士의 감계적인 이야기를 그린 것이 기원으로 전해진다.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왕을 위한 그림에 대한 제작 기록은 고려 충렬왕忠烈王, 재위 1274~1308 때 연회를 즐기다가, 당 현종이 밤에 연회를 즐긴 고사를 그린 를 보고 그에 뒤쳐질 수 없다고 하며 더욱 연회를 즐겼다는 일화이다.1392년(태조1)에 조박趙璞이 역대 제왕이 학문을 하고 정치를 하는 것을 그린 그림인 를 진향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이는 송나라 주자朱子의 역사서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 기반을 둔 감계화이다.왕을 위한 감계화는 군왕을 요순堯舜과 같은 이상적인 왕으로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자치통감資治通鑑』과 『자치통감강목』 등 경연經筵에 사용하는 교재에 수록된 고사를 그림으로 그렸다. 1402년 태종太宗이 전각 벽에 옛날에 있었던 본받을 만한 일[前古可法事]을 그리도록 명하자 예조전서 김첨金瞻이 주周 문왕文王, 한漢 고제高帝, 주 선왕宣王, 당唐 장손왕후長孫皇后의 이야기를 소개하였고 태종은 이를 화공에게 그리도록 하였다. 성종成宗도 1475년과 1476년에 본받거나 본받지 않아야 할 왕과 왕비 고사를 그린 , , , 을 제작하도록 한 기록이 실록에 전한다. 이들은 구휼로 선정과 인덕을 귀감으로 하고, 여색과 주연을 경계하는 고사이다. 이처럼 명군과 암군을 함께 배치하는 구성 방식은 이후 제작되는 역대제왕도의 선례가 된다.왕의 수양과 성찰을 위해, 물이 알맞게 들어 있어야만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그릇 모양의 금속기구인 기기欹器를 그린 기기도欹器圖와 배가 뒤집어지지 않도록 살피듯이 국가 일도 경계를 하며 다스려야 한다는 가르침을 담은 복주도覆舟圖가 제작된 기록도 찾을 수 있다. 또한 왕이 백성의 농사와 노동의 어려움을 성찰하도록 빈풍도豳風圖와 무일도無逸圖를 내전이나 침전 등의 처소에 설치했다. 무일도는 『서경書經』의 「무일無逸」편을 그린 것으로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에게 백성들을 다스리는 임금의 자세에 대해 충고하는 내용이다. 빈풍도는 『시경詩經』 국풍國風 중 「빈풍칠월」 편을 그린 것이다. 「빈풍칠월」 편은 주나라 주공이 섭정을 그만두고 나이 어린 성왕을 등극시킨 후, 농사짓는 어려움을 알리기 위해 지역에서 유행하던 노래를 모은 것이며, 농업과 잠업, 자연을 노래하는 일종의 월령가月令歌로서 후대에 그림으로 그려졌다. 조선 왕조는 초기부터 왕실에서 왕과 왕자에게 농사의 어려움을 깨닫고 바른 정치를 펼칠 수 있도록 를 제작하였다.이외에도 백성의 생활상을 보여 주는 감계화로 사농공상의 연중행사를 그린 , 농사짓는 그림인 , 농경도인 , 경작과 관련된 , 누에 치는 모습을 그린 가 제작되어 왕에게 백성의 어려움을 일깨웠다. 효자도 등의 행실도류 감계화는 판화 형식으로 제작되어 삼강三綱과 오륜五倫의 유교 윤리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또한 세자 교육을 위해 공자의 일생을 그린 〈공자성적도孔子聖蹟圖〉를 활용하였다. 공자의 탄생에 얽힌 일화, 인품과 외모와 관련되는 일화, 가르침을 담고 있는 장면, 성인으로서 모습, 유학자이자 교육자로서 풍모를 보여 주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는 영조 때 병조참판 이익정李益炡이 중국으로 사행을 가서 구해 온 것을 1741년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이기언李箕彦이 당시 7세인 세자[훗날 사도세자思悼世子]를 위해 모사한 것이다. 이기언은 세자는 를 펼쳐서 볼 때는 항상 성인을 대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하는 글을 성적도첩에 첨부하여 〈성적도〉 제작 의도를 분명하게 밝혔다. 이외에 숙종 연간 부터 〈양정도養正圖〉와 〈성공도聖功圖〉가 세자 교육을 위해 선호되었다. 명나라 만력萬曆 연간에 황태자 주상락朱常洛을 지도하기 위해 태사太史 초횡焦竑이 시강관侍講官에 임명된 후 고대 현군賢君·명신名臣·성현들의 본받을 만한 언행 60건을 모아 구성하고 궁정화가 정운붕丁雲鵬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여 황제에게 진헌한 것이 『양정도해養正圖解』이다. 조선 숙종 때 세자시강원에서 동궁에게 화면 윗부분에 해설을 쓴 양정도 병풍을 만들어올렸다. 조선의 는 효행고사로 이루어진 점이 중국과 차이가 난다. 영조 때는 세자시강원에서 〈양정도〉와 〈성공도〉를 하나의 화첩으로 만들어 동궁이 평상시에 볼 수 있도록 했다.

내용

역대제왕도와 현비사적도는 조선시대 그림으로 확정할 수 있는 작품은 전하지 않는다. 빈풍도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이방운李肪運이 그린 이 가장 유명하다. 화첩은 8면으로 이루어졌으며, 제1면의 봄의 풍경에서 시작하여 제8면의 겨울 모습까지 다양한 농경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시詩에서는 시차를 두고 행해지는 일들이 그림에서는 명확한 구획 없이 배치되어 있다. 이방운 특유의 부드러우면서 끊어질 듯한 서체와 필선이 어우러지며 밝고 화사한 색감이 잘 살아 있다. 공부자성적도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으로 김진여金振汝가 1700년에 중국 원나라 왕진붕王振鵬 를 모사해 채색으로 정치하게 그린 그림 10폭이다. 공자가 5, 6세 때 조두를 벌려 놓고 예식하는 모양으로 놀았다는 , 공자가 자로로 하여금 나루터 가는 길을 물었다는 우의적 의미가 있는 , 공자의 교육자로서 모습을 보여 주는 , 공자가 시기와 모략에 시달린 이야기인 , , , , , , 로 구성되어 있다.

특징 및 의의

감계화는 조선시대 궁중에서 가장 자주 진상되고 왕실에서 열람한 그림으로 왕의 수양과 성찰을 돕고자 본받을 역대 제왕과 현비를 그린 것이며 농업 국가로 농사의 어려움과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제작되었다.

참고문헌

그림에게 물은 사대부의 생활과 풍류(국사편찬위원회, 두산동아, 2007), 미술사의 정립과 확산1(안휘준, 사회평론, 2006), 역대 제왕의 고사를 그린 조선후기 왕실 감계화(김영욱, 미술사학28,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14), 왕과 국가의 회화(박정혜·윤진영 외, 돌베개, 2011), 조선시대 여성소재 감계화 연구-현비고사도와 열녀도의 정치적 성격을 중심으로(문선주, 역사민속학43, 한국역사민속학회, 2013), Mirror of Morality:Chinese Narrative Illustration and Confucian Ideology(Murray, JuliaK,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