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농악(平泽农乐)

한자명

平泽农乐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농악

집필자 시지은(施知恩)

정의

경기도 평택 지방에 전승되던 마을 두레패 농악에 경기 남부 전문 연희패 농악이 강하게 결합되어 평택 팽성읍 평궁리를 중심으로 전승되는 농악.

개관

평택은 소샛들이라는 넓은 들을 끼고 있어 농산물이 풍요했고, 이러한 산물의 풍요로 평택 지방은 농악이 성했다. 특히 팽성읍 평궁리는 예로부터 지신밟기, 두레굿 등 여러 농악을 세게 쳤다.
평택농악의 형태로는 정초에 주로 행해졌던 지신밟기와 농사철의 두레굿 그리고 전문 연희패가 한 난장굿과 걸립 등이 있었다. 평택에서 지신밟기는 충청·전라·경상 등 남부 지방처럼 해마다 일정한 시기에 고정적으로 행해지지는 않았지만, 지신밟기를 하면 먼저 대문 밖에서 수문장굿을 치고 집 안으로 들어가 우물굿, 터주굿, 조왕굿, 고사, 마당굿 등의 순서로 진행하였다. 평택의 두레 농악은 모내기에서 가을걷이에 이르는 논농사 기간과 함께 하지만, 특히 짧은 기간에 많은 품을 들여야 하는 모내기와 김매기에는 반드시 두레가 행해졌다. 모내기에서 시작되어 세벌 김매기 때까지 행해진다. 두레 농악은 세벌 김매기가 끝날 때쯤인 백중날에는 ‘백중놀이’ 또는 ‘호미씻이’라고 하여 마을 공터에서 술과 음식을 차려 놓고 판굿을 하며 걸판지게 놀았다고 한다. 난장이란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 외에 임시로 열리는 특별한 시장을 말한다. 평택 지역에서는 주로 명절을 맞아 난장이 섰는데, 사월 초파일에 열리는 ‘파일 난장’과 백중에 열리는 ‘백중 난장’이다. 이처럼 난장이 열릴 때 보다 많은 상인들과 사람들을 끌어 모아 시장 경기가 부양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전문적인 기예를 가진 풍물 단체를 불러 장터 한가운데서 굿을 놀게 했다. 이것이 바로 난장굿이다. 이런 난장굿은 평택 뿐 아니라 안성·오산·안산·용인·수원 등지에서도 푸짐하게 열렸다고 한다. 걸립은 어떤 공동체에서 공동의 기금을 마련하거나 특별한 경비를 모을 필요가 있을 때, 집집마다 다니면서 풍물을 치고 고사를 통해 축원 등을 해 주며 그 대가로 돈이나 곡식을 받는 행위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걸립乞粒’이라 표기한다. 지역에 따라 걸궁·걸량이라고도 부르는데, 경기 남부 지역에서는 대체로 걸립이라 부르고 이런 일을 하는 풍물패를 걸립패라 한다. 걸립을 다닐 때 하는 고사에 대해 ‘1960~70년대 절걸립패의 이름난 고사꾼으로 평택의 최은창과 대전의 김복섭이 있었다. 고사 잘하기는 최은창이요, 돈 잘 뺏기는 김복섭이다’라는 재미있는 일화가 나돌 정도로 최은창의 고사소리가 빼어났다고 한다.
최은창은 평택 팽성읍 평궁리 출신으로 16세 때부터 마을 농악의 상쇠를 맡았고, 20세 되던 해에는 걸립을 시작하여 광복 후에는 경기·충청을 근거로 서울·강원·경상도에 이르기까지 남사당 못지않은 활동 영역을 자랑했다. 경기·충청 지역을 중심으로 한 전문 걸립패를 ‘행중’이라 칭했는데, 광복 이후 박치삼 행중, 남운용 행중, 최성구 행중, 이원보 행중, 송순갑 행중, 최은창 행중 등 여러 패들의 활동이 이루어졌다. 최은창은 걸립을 다니면서 전문적인 기량을 지닌 여러 명인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역량을 넓혀 나간 것으로 보인다.
최은창의 활동에서 주요 인맥으로 꼽을 수 있는 사람으로는 안성 출신의 상쇠 이원보, 천안에서 활동했던 법고잽이 이돌천, 천안 출신의 법고잽이 김용래 등이다. 최은창은 이와 같이 평택에 머물지 않고 안성·천안 등지의 여러 명인들과 교류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평택농악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뒤에는 천안의 이돌천과 함께 판굿의 정비와 구성원들의 교육에 노력을 기하였다. 지금의 평택농악은 평택 팽성면 평궁리의 상쇠 최은창이 편성과 내용을 갖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택농악이라는 명칭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 대통령의 생일을 기념해 열리는 농악경연대회에 최은창이 평택의 요청으로 ‘평택농악단’을 꾸려 나가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80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평궁리 사람을 중심으로 천안·안성 등지의 이름난 사람들과 함께 경기도 대표로 ‘평택농악’이 참가하여 대통령상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1985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1-나호로 지정받는다.
평택농악은 ‘평택 관내에서 전승되어 오던 마을 두레패 성격의 농악과 웃다리 지역 전체를 넘나들던 전문연희패의 전통을 함께 지니고 있는 복합적인 특성’을 지녔다고 평가된다. 평택농악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명실공히 경기·충청 지역의 이른바 웃다리농악의 대표 주자임을 대내외적으로 인정받았다.
1985년 최은창은 상쇠로, 이돌천은 법고잽이로 예능보유자 지정이 되었다. 이돌천의 타계 후 2000년에 김용래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2002년 최은창의 타계 후 예능보유자 김용래와 김육동, 황홍엽 등 10명의 전수교육조교를 중심으로 전승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렸을 때 걸립을 시작으로 농악을 접하고 줄곧 법고잽이로 활동을 한 김용래 예능보유자의 영향으로 평택농악은 기존의 예술적 연행에 더 기예화되고 다채로운 무동놀이를 행하게 되었다. 2012년 5월, 문화재청의 국가지정문화재 지정번호 변경 고시에 따라 국가 무형문화재 제11-나호에서 국가무형문화재 제11-2호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내용

지신밟기, 두레굿, 난장굿, 걸립 등 평택농악의 여러 가지 농악의 형태 중 난장굿과 걸립 등에서 주로 행했던 판굿을 중심으로 평택농악의 연행 순서와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편성 및 복색
    평택농악은 크게 기수, 호적수, 악기수, 법고수, 무동, 잡색으로 편성된다. 평택농악에서 사용하는 깃발에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쓰여진 농기, 영기 2, 단체기, ‘군자봉산왕대신지위君子峰山王大神之位’라 쓰여진 낭기가 있는데, 이 중 낭기는 걸립이나 난장굿을 할 때만 사용한다. 태평소를 부는 호적수 1명과 꽹과리, 징, 장구, 징, 북, 법고로 악기를 구성하되 8잽이(사물), 8법고, 8무동을 기본으로 한다. 평택농악은 법고놀이가 발달해 있고 많은 무동의 수로 무동놀이를 탁월하게 진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요즘은 판굿을 구성하는 인원을 늘려 악기수가 10~12명, 법고 8~10명 정도로 연행하는 경우가 많고, 상대적으로 무동의 수는 적다. 잡색으로는 양반·농부가 편성된다.
    무동과 사미·잡색을 제외하고, 모든 치배들은 흰 바지저고리에 파란 조끼를 입고 삼색띠를 맨다. 치배 중에 쇠치배만 부들상모(북상 또는 종이부포: 짧은 물체에 실이나 잘게 썬 종이를 총채처럼 달아 돌리는 상모)를 쓰고, 다른 치배들은 채상모(긴 물체에 부전지를달아 돌리는 상모)를 쓴다. 예전에 징수나 북수는 벙거지 대신에 패랭이고깔을 썼다고 하지만, 요즘은 모두 채상모를 쓴다. 무동은 붉은 치마·노랑 저고리 위에 남쾌자를 입고 삼색띠를 맨다. 머리에는 옛날 댕기 맨것처럼 머리 수건 밑으로 댕기를 늘어뜨린다. 사미는 흰 장삼을 입고 흰 한삼을 걸치고 흰 고깔을 쓰며 다리에 다릿바(무동놀이를 할 때 손으로 잡을 수 있게 무릎과 발목을 연결하여 묶은 천)쓴다.

  2. 연행 절차와 순서
    평택농악의 판굿은 전통적으로 ‘입장 및 인사굿-돌림법고-당산벌림1-오방진-돌림법고-당산벌림2(찍금놀이·절구댕이법고놀이)-사통백이-돌림좌우치기-합동좌우치기-쩍쩍이춤(연풍대)-돌림법고-개인놀이-무동놀이-12발 채상놀이-인사굿’의 순서로 진행된다. 1980년대 자료들을 보면 합동좌우치기와 쩍쩍이 사이에 ‘가새발림’이 있었으나, 2000년대 들어 ‘가새발림’ 연행 자료를 찾을 수 없다. 근래에도 가새발림은 연행되지 않는다.
    순서 중 주목할 만한 점은 당산벌림 2에서 놀아지는 찍금놀이와 절구댕이법고놀이이다. 이 두 놀이는 농사모의 동작에 해당하여 두레농악과 연희농악을 연결시킬 수 있는 요소로 보이기 때문이다.
    찍금놀이는 상쇠가 무동과 법고잽이들을 차례로불러내 함께 노는 것이다. 삼채장단에 앉고, 두 번째 장단에 오른손을 땅에 짚었다 뗀다. 세 번째 장단에 왼손을 땅에 짚었다 떼고, 네 번째 장단에 양손을 땅에 짚었다가 다섯 번째 장단에 일어나는 순서로 진행된다. 이렇게 손을 번갈아 땅에 짚었다 떼는 것은 모를 논에심는 동작을 본 뜬 것으로, 연희 농악에서 찾아볼 수 있는 농사모의의 예술적 형상화라고 할 수 있다.
    절구댕이 법고놀이는 찍금놀이와 같이 두 번째 당산벌림에서 놀아지는데, 찍금놀이를 마친 법고잽이들이 두 줄로 나누어 서서 번갈아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는 것이다. 두 줄의 법고잽이가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동작은 두 사람이 마주서서 절구공이를 번갈아 내리 찧는 모습을 본 뜬 것으로, 이 놀이 역시 찍금놀이와 마찬가지로 농사모의의 예술적 형상화라 볼 수 있다.

  3. 주요 장단
    덩더궁이 (삼채) 악보
    쩍쩍이(잦은 삼채) 악보
    자즌가락(따따부따) 악보
    길군악 칠채 악보

    마당일채 악보

판굿

평택농악의 판굿을 현행의 모습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인사굿: 삼채-자즌가락-인사굿
    삼채를 치면서 영기를 선두로 입장하여 원진으로 서고, 이어 자진가락으로 바꾸어 치면서 원 밖을 향해 돌아서서 인사굿으로 인사를 한다.

  2. 돌림법고: 삼채-쩍쩍이-자즌가락-더드래기-자즌가락
    인사굿을 마치고 삼채를 치며 원진으로 돌다가 상쇠가 원 안으로 들어가 쩍쩍이를 치면, 법고잽이들만 원 안으로 들어가 겹원을 만든다. 상쇠가 법고잽이 원 안으로 들어가 자즌가락과 더드래기장단을 치며 놀다가 다시 자즌가락을 치면 바깥의 원과 안의 원이 모두 옆뛰기를 한다.
    돌림법고

  3. 당산벌림1: 가락털기-자즌가락-가락털기-삼채-쩍쩍이-자즌가락-더드래기-자즌가락
    옆뛰기가 끝나면 다같이 가락을 털면서 치배는 오른쪽에 한 줄로 서고 법고는 왼쪽에, 무동은 앞쪽에 한 줄로 서서 디귿(ㄷ)자 형태를 만든다. 치배들이 계속 가락을 털어 주는 동안 상쇠가 가운데로 나가 연풍대로 부들상모놀이를 하다가 치배 쪽으로 와서 가락을 맺는다. 삼채 장단에 법고잽이들은 한 걸음씩 나와 자즌가락에 맞춰 양상을 치다가 제자리로 돌아간다.
    상쇠가 다시 상쇠놀이를 할 때 법고잽이들이 삼채장단에 맞춰 반원을 만들고, 상쇠놀이가 끝나면 더드래기장단에 원을 만들어 옆뛰기를 한 뒤 제자리로 돌아간다.
    당산벌림1에서 법고놀이와 상쇠놀이
  4. 오방진: 칠채-마당일채-쩍쩍이-삼채
    오방진은 멍석말이라고도 한다. 상쇠가 칠채를 치면서 치배들을 이끌고 놀이판의 한쪽에서 멍석을 말듯이 감아 들어간다. 상쇠가 멍석을 말 때 법고잽이들은 멍석 밖에서 외상을 치며 뒤집기를 하고 무동들은 법고 원바깥에서 역원진으로 돈다. 멍석 마는 것이 완성되면 상쇠는 멍석을 말았을 때와 반대로 풀어 나온다. 동서남북과 중앙 다섯 군데에 진을 쌓아야 하지만, 요즘에는 3회 정도만 진행한다. 마지막으로 중앙의 멍석말이가 완성되면 자진가락을 치며 옆뛰기를 하고 멍석을 풀어 하나의 원진을 만든다.
    오방진
  5. 돌림법고: 삼채-쩍쩍이-자즌가락-더드래기-자즌가락
    삼채를 치며 오방진을 풀어 크게 하나의 원을 만든 다음 다시 돌림법고를 하는데 진행 방식은 2)의 돌림법고와 동일하다.
  6. 당산벌림2(찍금놀이·법고놀이): 가락털기-자즌가락-가락털기-삼채
    당산벌림 대형으로 만들어 가운데에서 상쇠놀음을 마친 상쇠는 삼채를 치며 무동을 데리고 나와 한 줄로 세운다. 무동과 상쇠가 마주 앉아서 모심는 동작을 흉내내는 찍금놀이를 진행한 뒤 무동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무동이 제자리로 돌아가면 상쇠는 법고잽이들을 데리고 나와 찍금놀이를 진행하고, 찍금놀이를 마친 법고잽이들은 일어나 치배들과 수직으로 마주선다. 법고가 원을 만들어 외상을 치면서 좌우전후 옆뛰기를 한 뒤, 수법고과 중법고를 선두로 두 줄로 들어와 삼채장단에 앉았다 일어섰다를 번갈아 진행한다. 이것을 쌍줄백이라고도 하고 절구댕이법고라고도 한다. 추수한 곡식을 절구로 빻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7. 사통백이: 삼채-자즌가락
    법고가 두 줄로 갈라져 마주서고 무동줄이 치배와 마주보게 자리를 이동하여 정방형의 대형이 완성되면, 상쇠의 장단에 맞추어 마주보고 있는 줄끼리 교차하여 자리바꾸기를 반복하여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제자리로 돌아가면 네 줄이 각각 작은 원을 만들어 원진으로 돌다가 상쇠가 네 개의 원을 순서대로 풀어 하나의 큰 원을 만든다.
    자리 바꾸기, 사통백이에서 원진 만들기

  8. 돌림좌우치기: 자즌가락-좌우치기 장단
    하나의 원이 완성되면 제자리에 서서 자진가락을 치다가 맺고 좌우치기를 한다. 좌우치기는 오른쪽-왼쪽-안쪽-바깥쪽 순으로 각각 세 걸음씩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돌림좌우치기는 원좌우치기라고도 한다.
  9. 합동좌우치기: 가락털기-자즌가락-좌우치기장단
    돌림좌우치기가 끝나면 치배들이 일제히 가락을 털며 흩어져 뛰면서 상쇠 앞에 오른쪽부터 치배, 수법고, 중법고, 무동의 순서로 4줄(네줄백이)을 맞추어 선다. 자진가락을 잠깐 치다가 맺고 다시 좌우치기를 하는데, 오른쪽-왼쪽-뒤쪽-앞쪽 순으로 역시 세 걸음씩 이동한다. 합동좌우치기는 집단좌우치기라고도 한다.

  10. 쩍쩍이춤(연풍대): 자즌가락-양산더드래기-연풍대
    합동좌우치기가 끝나면 네 줄이 다시 하나의 원을 만든 뒤 제자리에 선다. 자즌가락을 맺고 양산더드래기장단을 치며 치배들은 춤을 춘다. 양산더드래기를 칠 때 법고잽이와 무동들이 손을 앞뒤로 하여 추는 춤을 무동깨끼춤이라고 한다. 양산더드래기를 마치고 연풍대장단이 진행될 때는 모두 원을 따라 천천히 돌면서 춤을 춘다.

  11. 돌림법고: 마당일채-쩍쩍이-자즌가락
    연풍대장단에 춤추기를 마치면 마당일채를 빨리 몰아서 치다가 자즌가락으로 돌림법고를 한다.

  12. 무동놀이: 삼채-느린 쩍쩍이 또는 자즌가락
    돌림법고가 끝나면 치배들은 당산벌림으로 서고, 법고와 무동들은 한 쪽에서 무동놀이를 준비한다. 무동놀이는 법고잽이들이 무동을 어깨 위에 세우거나, 무동 위에 새미를 또 올리는 것이 주요 놀이이다. 무동놀이가 진행될 때 치배들은 주로 삼채를 치는데 상황에 따라 느린 쩍쩍이(양산더드래기)가락으로 무동놀이에 맞추어 주기도 하고 각 무동놀이가끝날 때마다 자진가락으로 흥을 돋우어 주기도 한다.
    무동놀이는 웃다리농악의 평택과 안성에서 주로 발달한 놀이다. 강원 지역의 무동놀이는 타작이나 방아 찧는 장면을 무동들이 흉내 내는 것이고, 남원의 삼동놀이는 어른 어깨 위에 올라간 어린 무동의 출산·성장·출세의 과정을 나타낸 것으로 차이가 있다. 평택농악의 다양한 무동놀이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무동놀이 동류

  1. 버나돌리기
    버나는 쳇바퀴나 대접을 돌리는 일종의 묘기로 법고잽이들이 진행한다. 버나돌리기의 종류로는 머리 위로 높이 던져 올렸다가 받는 던질사위, 다리 사이로 던져 올렸다가 받는 다리사위, 담배대로 돌리다가 막대 두 대를 받쳐 돌리는 무지개 사위, 양손으로 번갈아 던져 받기 등이 있다. 버나돌리기는 원래 남사당패 6개 놀이 종목 중 하나로, 다른 지역의 웃다리농악에서는 보이지 않는 버나놀이가 평택농악에서 연행되는 것은 평택농악과 유랑전문연희패와의 연관성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2. 채상놀이
    채상모를 쓴 법고잽이가 한 명씩 나와 상모놀이를 진행하다가 마지막에 열두발상모를 쓴 법고잽이가 나와 상모놀이를 한다. 열두발이란 굉장히 긴 부전지(길고 가느다란 종이)를 뜻하며, 예전에는 열두발상모를 돌리면서 적당한 재담을 곁들이기도 했다고 한다.

  3. 인사굿
    열두발상모놀이가 끝나면 상쇠를 삼채를 치며 치배들을 하나의 큰 원으로 만든 다음 인사굿으로 맺는다.

특징 및 의의

광복 이후 걸립활동으로 발전한 경기·충청 농악의 뛰어난 기예적 요소가, 1950년대 말부터 평택이라는 지역을 기반으로 집중적으로 보존·전승되고 있다는 점에서 평택농악은 경기·충청 연희 농악의 총체성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평택농악은 경기·영서·충청도에 전승되는 웃다리농악의 공통점인 칠채와 사통백이·화려한 법고놀이·농사모의동작·무동타기 등의 특징을 모두 지녔다. 특히 평택농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점은, 법고잽이와 무동들이 찍금놀이와 절구댕이벅고라는 농사모의동작과 다양한 무동놀이의 발달이다. 일부이지만 법고잽이와 무동을 통해 연행되는 농사모의동작은 농사풀이농악을 주로 하는 경기 북부와 연희농악이 발달한 경기 남부의 농악을 연결시켜 주는 매개이자, 두레농악과 연희농악을 연결시켜 주는 중요한 고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경기 농사풀이농악과 웃다리농악의 상관성 연구-양주농악과 평택농악을 중심으로(시지은, 경기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8), 최은창을 통해 본 평택농악의 전승과 상쇠의 역할(홍사열, 안동대학교 석사학위논문,2007), 평택농악(국립문화재연구소, 1996), 평택농악의 연희학적 연구(조한숙, 원광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4), 평택농악 원형에 관한 연구: 판제와 가락을 중심으로(황삼열, 추계예술대학 석사학위논문, 2007), 평택농악의 정체성과 가치(시지은, 풍물굿연구3, 한국풍물굿학회, 2014).

평택농악

평택농악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농악

집필자 시지은(施知恩)

정의

경기도 평택 지방에 전승되던 마을 두레패 농악에 경기 남부 전문 연희패 농악이 강하게 결합되어 평택 팽성읍 평궁리를 중심으로 전승되는 농악.

개관

평택은 소샛들이라는 넓은 들을 끼고 있어 농산물이 풍요했고, 이러한 산물의 풍요로 평택 지방은 농악이 성했다. 특히 팽성읍 평궁리는 예로부터 지신밟기, 두레굿 등 여러 농악을 세게 쳤다.평택농악의 형태로는 정초에 주로 행해졌던 지신밟기와 농사철의 두레굿 그리고 전문 연희패가 한 난장굿과 걸립 등이 있었다. 평택에서 지신밟기는 충청·전라·경상 등 남부 지방처럼 해마다 일정한 시기에 고정적으로 행해지지는 않았지만, 지신밟기를 하면 먼저 대문 밖에서 수문장굿을 치고 집 안으로 들어가 우물굿, 터주굿, 조왕굿, 고사, 마당굿 등의 순서로 진행하였다. 평택의 두레 농악은 모내기에서 가을걷이에 이르는 논농사 기간과 함께 하지만, 특히 짧은 기간에 많은 품을 들여야 하는 모내기와 김매기에는 반드시 두레가 행해졌다. 모내기에서 시작되어 세벌 김매기 때까지 행해진다. 두레 농악은 세벌 김매기가 끝날 때쯤인 백중날에는 ‘백중놀이’ 또는 ‘호미씻이’라고 하여 마을 공터에서 술과 음식을 차려 놓고 판굿을 하며 걸판지게 놀았다고 한다. 난장이란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 외에 임시로 열리는 특별한 시장을 말한다. 평택 지역에서는 주로 명절을 맞아 난장이 섰는데, 사월 초파일에 열리는 ‘파일 난장’과 백중에 열리는 ‘백중 난장’이다. 이처럼 난장이 열릴 때 보다 많은 상인들과 사람들을 끌어 모아 시장 경기가 부양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전문적인 기예를 가진 풍물 단체를 불러 장터 한가운데서 굿을 놀게 했다. 이것이 바로 난장굿이다. 이런 난장굿은 평택 뿐 아니라 안성·오산·안산·용인·수원 등지에서도 푸짐하게 열렸다고 한다. 걸립은 어떤 공동체에서 공동의 기금을 마련하거나 특별한 경비를 모을 필요가 있을 때, 집집마다 다니면서 풍물을 치고 고사를 통해 축원 등을 해 주며 그 대가로 돈이나 곡식을 받는 행위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걸립乞粒’이라 표기한다. 지역에 따라 걸궁·걸량이라고도 부르는데, 경기 남부 지역에서는 대체로 걸립이라 부르고 이런 일을 하는 풍물패를 걸립패라 한다. 걸립을 다닐 때 하는 고사에 대해 ‘1960~70년대 절걸립패의 이름난 고사꾼으로 평택의 최은창과 대전의 김복섭이 있었다. 고사 잘하기는 최은창이요, 돈 잘 뺏기는 김복섭이다’라는 재미있는 일화가 나돌 정도로 최은창의 고사소리가 빼어났다고 한다.최은창은 평택 팽성읍 평궁리 출신으로 16세 때부터 마을 농악의 상쇠를 맡았고, 20세 되던 해에는 걸립을 시작하여 광복 후에는 경기·충청을 근거로 서울·강원·경상도에 이르기까지 남사당 못지않은 활동 영역을 자랑했다. 경기·충청 지역을 중심으로 한 전문 걸립패를 ‘행중’이라 칭했는데, 광복 이후 박치삼 행중, 남운용 행중, 최성구 행중, 이원보 행중, 송순갑 행중, 최은창 행중 등 여러 패들의 활동이 이루어졌다. 최은창은 걸립을 다니면서 전문적인 기량을 지닌 여러 명인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역량을 넓혀 나간 것으로 보인다.최은창의 활동에서 주요 인맥으로 꼽을 수 있는 사람으로는 안성 출신의 상쇠 이원보, 천안에서 활동했던 법고잽이 이돌천, 천안 출신의 법고잽이 김용래 등이다. 최은창은 이와 같이 평택에 머물지 않고 안성·천안 등지의 여러 명인들과 교류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평택농악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뒤에는 천안의 이돌천과 함께 판굿의 정비와 구성원들의 교육에 노력을 기하였다. 지금의 평택농악은 평택 팽성면 평궁리의 상쇠 최은창이 편성과 내용을 갖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평택농악이라는 명칭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 대통령의 생일을 기념해 열리는 농악경연대회에 최은창이 평택의 요청으로 ‘평택농악단’을 꾸려 나가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80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평궁리 사람을 중심으로 천안·안성 등지의 이름난 사람들과 함께 경기도 대표로 ‘평택농악’이 참가하여 대통령상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1985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1-나호로 지정받는다.평택농악은 ‘평택 관내에서 전승되어 오던 마을 두레패 성격의 농악과 웃다리 지역 전체를 넘나들던 전문연희패의 전통을 함께 지니고 있는 복합적인 특성’을 지녔다고 평가된다. 평택농악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명실공히 경기·충청 지역의 이른바 웃다리농악의 대표 주자임을 대내외적으로 인정받았다.1985년 최은창은 상쇠로, 이돌천은 법고잽이로 예능보유자 지정이 되었다. 이돌천의 타계 후 2000년에 김용래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2002년 최은창의 타계 후 예능보유자 김용래와 김육동, 황홍엽 등 10명의 전수교육조교를 중심으로 전승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렸을 때 걸립을 시작으로 농악을 접하고 줄곧 법고잽이로 활동을 한 김용래 예능보유자의 영향으로 평택농악은 기존의 예술적 연행에 더 기예화되고 다채로운 무동놀이를 행하게 되었다. 2012년 5월, 문화재청의 국가지정문화재 지정번호 변경 고시에 따라 국가 무형문화재 제11-나호에서 국가무형문화재 제11-2호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내용

지신밟기, 두레굿, 난장굿, 걸립 등 평택농악의 여러 가지 농악의 형태 중 난장굿과 걸립 등에서 주로 행했던 판굿을 중심으로 평택농악의 연행 순서와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편성 및 복색평택농악은 크게 기수, 호적수, 악기수, 법고수, 무동, 잡색으로 편성된다. 평택농악에서 사용하는 깃발에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쓰여진 농기, 영기 2, 단체기, ‘군자봉산왕대신지위君子峰山王大神之位’라 쓰여진 낭기가 있는데, 이 중 낭기는 걸립이나 난장굿을 할 때만 사용한다. 태평소를 부는 호적수 1명과 꽹과리, 징, 장구, 징, 북, 법고로 악기를 구성하되 8잽이(사물), 8법고, 8무동을 기본으로 한다. 평택농악은 법고놀이가 발달해 있고 많은 무동의 수로 무동놀이를 탁월하게 진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요즘은 판굿을 구성하는 인원을 늘려 악기수가 10~12명, 법고 8~10명 정도로 연행하는 경우가 많고, 상대적으로 무동의 수는 적다. 잡색으로는 양반·농부가 편성된다.무동과 사미·잡색을 제외하고, 모든 치배들은 흰 바지저고리에 파란 조끼를 입고 삼색띠를 맨다. 치배 중에 쇠치배만 부들상모(북상 또는 종이부포: 짧은 물체에 실이나 잘게 썬 종이를 총채처럼 달아 돌리는 상모)를 쓰고, 다른 치배들은 채상모(긴 물체에 부전지를달아 돌리는 상모)를 쓴다. 예전에 징수나 북수는 벙거지 대신에 패랭이나 고깔을 썼다고 하지만, 요즘은 모두 채상모를 쓴다. 무동은 붉은 치마·노랑 저고리 위에 남쾌자를 입고 삼색띠를 맨다. 머리에는 옛날 댕기 맨것처럼 머리 수건 밑으로 댕기를 늘어뜨린다. 사미는 흰 장삼을 입고 흰 한삼을 걸치고 흰 고깔을 쓰며 다리에 다릿바(무동놀이를 할 때 손으로 잡을 수 있게 무릎과 발목을 연결하여 묶은 천)쓴다. 연행 절차와 순서평택농악의 판굿은 전통적으로 ‘입장 및 인사굿-돌림법고-당산벌림1-오방진-돌림법고-당산벌림2(찍금놀이·절구댕이법고놀이)-사통백이-돌림좌우치기-합동좌우치기-쩍쩍이춤(연풍대)-돌림법고-개인놀이-무동놀이-12발 채상놀이-인사굿’의 순서로 진행된다. 1980년대 자료들을 보면 합동좌우치기와 쩍쩍이 사이에 ‘가새발림’이 있었으나, 2000년대 들어 ‘가새발림’ 연행 자료를 찾을 수 없다. 근래에도 가새발림은 연행되지 않는다.순서 중 주목할 만한 점은 당산벌림 2에서 놀아지는 찍금놀이와 절구댕이법고놀이이다. 이 두 놀이는 농사모의 동작에 해당하여 두레농악과 연희농악을 연결시킬 수 있는 요소로 보이기 때문이다.찍금놀이는 상쇠가 무동과 법고잽이들을 차례로불러내 함께 노는 것이다. 삼채 첫 장단에 앉고, 두 번째 장단에 오른손을 땅에 짚었다 뗀다. 세 번째 장단에 왼손을 땅에 짚었다 떼고, 네 번째 장단에 양손을 땅에 짚었다가 다섯 번째 장단에 일어나는 순서로 진행된다. 이렇게 손을 번갈아 땅에 짚었다 떼는 것은 모를 논에심는 동작을 본 뜬 것으로, 연희 농악에서 찾아볼 수 있는 농사모의의 예술적 형상화라고 할 수 있다.절구댕이 법고놀이는 찍금놀이와 같이 두 번째 당산벌림에서 놀아지는데, 찍금놀이를 마친 법고잽이들이 두 줄로 나누어 서서 번갈아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는 것이다. 두 줄의 법고잽이가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동작은 두 사람이 마주서서 절구공이를 번갈아 내리 찧는 모습을 본 뜬 것으로, 이 놀이 역시 찍금놀이와 마찬가지로 농사모의의 예술적 형상화라 볼 수 있다. 주요 장단

판굿

평택농악의 판굿을 현행의 모습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인사굿: 삼채-자즌가락-인사굿삼채를 치면서 영기를 선두로 입장하여 원진으로 서고, 이어 자진가락으로 바꾸어 치면서 원 밖을 향해 돌아서서 인사굿으로 인사를 한다. 돌림법고: 삼채-쩍쩍이-자즌가락-더드래기-자즌가락인사굿을 마치고 삼채를 치며 원진으로 돌다가 상쇠가 원 안으로 들어가 쩍쩍이를 치면, 법고잽이들만 원 안으로 들어가 겹원을 만든다. 상쇠가 법고잽이 원 안으로 들어가 자즌가락과 더드래기장단을 치며 놀다가 다시 자즌가락을 치면 바깥의 원과 안의 원이 모두 옆뛰기를 한다. 당산벌림1: 가락털기-자즌가락-가락털기-삼채-쩍쩍이-자즌가락-더드래기-자즌가락옆뛰기가 끝나면 다같이 가락을 털면서 치배는 오른쪽에 한 줄로 서고 법고는 왼쪽에, 무동은 앞쪽에 한 줄로 서서 디귿(ㄷ)자 형태를 만든다. 치배들이 계속 가락을 털어 주는 동안 상쇠가 가운데로 나가 연풍대로 부들상모놀이를 하다가 치배 쪽으로 와서 가락을 맺는다. 삼채 장단에 법고잽이들은 한 걸음씩 나와 자즌가락에 맞춰 양상을 치다가 제자리로 돌아간다.상쇠가 다시 상쇠놀이를 할 때 법고잽이들이 삼채장단에 맞춰 반원을 만들고, 상쇠놀이가 끝나면 더드래기장단에 원을 만들어 옆뛰기를 한 뒤 제자리로 돌아간다. 오방진: 칠채-마당일채-쩍쩍이-삼채오방진은 멍석말이라고도 한다. 상쇠가 칠채를 치면서 치배들을 이끌고 놀이판의 한쪽에서 멍석을 말듯이 감아 들어간다. 상쇠가 멍석을 말 때 법고잽이들은 멍석 밖에서 외상을 치며 뒤집기를 하고 무동들은 법고 원바깥에서 역원진으로 돈다. 멍석 마는 것이 완성되면 상쇠는 멍석을 말았을 때와 반대로 풀어 나온다. 동서남북과 중앙 다섯 군데에 진을 쌓아야 하지만, 요즘에는 3회 정도만 진행한다. 마지막으로 중앙의 멍석말이가 완성되면 자진가락을 치며 옆뛰기를 하고 멍석을 풀어 하나의 원진을 만든다. 돌림법고: 삼채-쩍쩍이-자즌가락-더드래기-자즌가락삼채를 치며 오방진을 풀어 크게 하나의 원을 만든 다음 다시 돌림법고를 하는데 진행 방식은 2)의 돌림법고와 동일하다. 당산벌림2(찍금놀이·법고놀이): 가락털기-자즌가락-가락털기-삼채당산벌림 대형으로 만들어 가운데에서 상쇠놀음을 마친 상쇠는 삼채를 치며 무동을 데리고 나와 한 줄로 세운다. 무동과 상쇠가 마주 앉아서 모심는 동작을 흉내내는 찍금놀이를 진행한 뒤 무동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무동이 제자리로 돌아가면 상쇠는 법고잽이들을 데리고 나와 찍금놀이를 진행하고, 찍금놀이를 마친 법고잽이들은 일어나 치배들과 수직으로 마주선다. 법고가 원을 만들어 외상을 치면서 좌우전후 옆뛰기를 한 뒤, 수법고과 중법고를 선두로 두 줄로 들어와 삼채장단에 앉았다 일어섰다를 번갈아 진행한다. 이것을 쌍줄백이라고도 하고 절구댕이법고라고도 한다. 추수한 곡식을 절구로 빻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사통백이: 삼채-자즌가락법고가 두 줄로 갈라져 마주서고 무동줄이 치배와 마주보게 자리를 이동하여 정방형의 대형이 완성되면, 상쇠의 장단에 맞추어 마주보고 있는 줄끼리 교차하여 자리바꾸기를 반복하여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제자리로 돌아가면 네 줄이 각각 작은 원을 만들어 원진으로 돌다가 상쇠가 네 개의 원을 순서대로 풀어 하나의 큰 원을 만든다. 돌림좌우치기: 자즌가락-좌우치기 장단하나의 원이 완성되면 제자리에 서서 자진가락을 치다가 맺고 좌우치기를 한다. 좌우치기는 오른쪽-왼쪽-안쪽-바깥쪽 순으로 각각 세 걸음씩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돌림좌우치기는 원좌우치기라고도 한다. 합동좌우치기: 가락털기-자즌가락-좌우치기장단돌림좌우치기가 끝나면 치배들이 일제히 가락을 털며 흩어져 뛰면서 상쇠 앞에 오른쪽부터 치배, 수법고, 중법고, 무동의 순서로 4줄(네줄백이)을 맞추어 선다. 자진가락을 잠깐 치다가 맺고 다시 좌우치기를 하는데, 오른쪽-왼쪽-뒤쪽-앞쪽 순으로 역시 세 걸음씩 이동한다. 합동좌우치기는 집단좌우치기라고도 한다. 쩍쩍이춤(연풍대): 자즌가락-양산더드래기-연풍대합동좌우치기가 끝나면 네 줄이 다시 하나의 원을 만든 뒤 제자리에 선다. 자즌가락을 맺고 양산더드래기장단을 치며 치배들은 춤을 춘다. 양산더드래기를 칠 때 법고잽이와 무동들이 손을 앞뒤로 하여 추는 춤을 무동깨끼춤이라고 한다. 양산더드래기를 마치고 연풍대장단이 진행될 때는 모두 원을 따라 천천히 돌면서 춤을 춘다. 돌림법고: 마당일채-쩍쩍이-자즌가락연풍대장단에 춤추기를 마치면 마당일채를 빨리 몰아서 치다가 자즌가락으로 돌림법고를 한다. 무동놀이: 삼채-느린 쩍쩍이 또는 자즌가락돌림법고가 끝나면 치배들은 당산벌림으로 서고, 법고와 무동들은 한 쪽에서 무동놀이를 준비한다. 무동놀이는 법고잽이들이 무동을 어깨 위에 세우거나, 무동 위에 새미를 또 올리는 것이 주요 놀이이다. 무동놀이가 진행될 때 치배들은 주로 삼채를 치는데 상황에 따라 느린 쩍쩍이(양산더드래기)가락으로 무동놀이에 맞추어 주기도 하고 각 무동놀이가끝날 때마다 자진가락으로 흥을 돋우어 주기도 한다.무동놀이는 웃다리농악의 평택과 안성에서 주로 발달한 놀이다. 강원 지역의 무동놀이는 타작이나 방아 찧는 장면을 무동들이 흉내 내는 것이고, 남원의 삼동놀이는 어른 어깨 위에 올라간 어린 무동의 출산·성장·출세의 과정을 나타낸 것으로 차이가 있다. 평택농악의 다양한 무동놀이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버나돌리기버나는 쳇바퀴나 대접을 돌리는 일종의 묘기로 법고잽이들이 진행한다. 버나돌리기의 종류로는 머리 위로 높이 던져 올렸다가 받는 던질사위, 다리 사이로 던져 올렸다가 받는 다리사위, 담배대로 돌리다가 막대 두 대를 받쳐 돌리는 무지개 사위, 양손으로 번갈아 던져 받기 등이 있다. 버나돌리기는 원래 남사당패 6개 놀이 종목 중 하나로, 다른 지역의 웃다리농악에서는 보이지 않는 버나놀이가 평택농악에서 연행되는 것은 평택농악과 유랑전문연희패와의 연관성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채상놀이채상모를 쓴 법고잽이가 한 명씩 나와 상모놀이를 진행하다가 마지막에 열두발상모를 쓴 법고잽이가 나와 상모놀이를 한다. 열두발이란 굉장히 긴 부전지(길고 가느다란 종이)를 뜻하며, 예전에는 열두발상모를 돌리면서 적당한 재담을 곁들이기도 했다고 한다. 인사굿열두발상모놀이가 끝나면 상쇠를 삼채를 치며 치배들을 하나의 큰 원으로 만든 다음 인사굿으로 맺는다.

특징 및 의의

광복 이후 걸립활동으로 발전한 경기·충청 농악의 뛰어난 기예적 요소가, 1950년대 말부터 평택이라는 지역을 기반으로 집중적으로 보존·전승되고 있다는 점에서 평택농악은 경기·충청 연희 농악의 총체성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평택농악은 경기·영서·충청도에 전승되는 웃다리농악의 공통점인 칠채와 사통백이·화려한 법고놀이·농사모의동작·무동타기 등의 특징을 모두 지녔다. 특히 평택농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점은, 법고잽이와 무동들이 찍금놀이와 절구댕이벅고라는 농사모의동작과 다양한 무동놀이의 발달이다. 일부이지만 법고잽이와 무동을 통해 연행되는 농사모의동작은 농사풀이농악을 주로 하는 경기 북부와 연희농악이 발달한 경기 남부의 농악을 연결시켜 주는 매개이자, 두레농악과 연희농악을 연결시켜 주는 중요한 고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경기 농사풀이농악과 웃다리농악의 상관성 연구-양주농악과 평택농악을 중심으로(시지은, 경기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8), 최은창을 통해 본 평택농악의 전승과 상쇠의 역할(홍사열, 안동대학교 석사학위논문,2007), 평택농악(국립문화재연구소, 1996), 평택농악의 연희학적 연구(조한숙, 원광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4), 평택농악 원형에 관한 연구: 판제와 가락을 중심으로(황삼열, 추계예술대학 석사학위논문, 2007), 평택농악의 정체성과 가치(시지은, 풍물굿연구3, 한국풍물굿학회,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