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龙旗)

한자명

龙旗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농악

집필자 김선태(金善泰)

정의

용 문양이 있는 대형기로 마을의 중요 행사에서 마을을 표상하는 기.

개관

농악에서 용기가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농기가 1749년 『영조실록英祖實錄』에 언급된 것으로 보아, 용기도 비슷한 역사를 가질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어가 행렬에서도 용기가 사용되었는데, 이때 황룡과 청룡의 용기는 각 영을 지휘하는 기능을 하였다. 농악에 사용되는 용기가 어가행렬의 용기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나 구체적인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
현존하는 용기 가운데 오래된 것들은 대부분 19세기에 제작되었다. 충청남도 홍성 구수마을 용기(1982년 충남 민속자료 지정)는 1891년(고종 28)에 제작되었다. 이웃 마을 주교 용기의 제작연도는 1824년에 해당한다. 전라북도 전주 중평마을 용기의 연조는 ‘을미년 조성’이라고 묵서해 놓아 1895년에 제작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용기를 비롯한 농기는 정부가 주도한 문화재 보호제도에 편승하여 민속예술경연대회 등에 참여하여 간헐적 전승이 이루어졌다. 1981년 충남 홍성 형산리 마을은 ‘용대기놀이’로 제22회 전국민속예술대회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전라북도 익산과 전주 지역에서도 2000년을 전후로 용기놀이를 소재로 한국민속예술축제는 물론 지역축제 등에서 용기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내용

용기는 농기 가운데 하나로 농악기수단에 편성된다. 기폭에는 용 그림이 그려져 있어 ‘용기’ 또는 ‘용당기’, ‘용대기’ 등으로 불린다. 일부지만 전남 곡성 죽동농악과 같이 기폭에 ‘龍’ 문자를 써 넣는 곳도 있고, 하동의 화촌마을과 같이 호랑이와 용을 같이 그려 놓은 곳도 있다.
마을 기에 관한 전수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용기의 정확한 분포는 아직 분명히 밝힐 수 없다. 단지 용기는 두레 활동이 활발한 서쪽 지역 전반에 두루 분포하는 경향이 있다. 이 가운데 전북 전주 평화 삼천동 일대마을들에서 용기가 집단 군락을 이루고 있어 주목된다.
용기는 기폭에 나타나는 형상이 용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농기의 깃봉, 깃대, 기폭의 기본 요소를 따르고 있다. 용기의 기폭 형상은 주로 용을 단독으로 그려 넣은 것과 용의 형상을 기폭 중앙에 그려놓고 부수적인 내용을 주변에 그려 넣은 기들로 구분된다. 한편 색깔에 따른 용의 형상을 구분하기도 하는데, 황룡과 청룡이 주를 이룬다. 근래에 제작된 기들은 색깔을 달리하여 그리는 경우도 있다. 용의 그림을 그린 이들은 전문화가, 스님, 재주가 좋은 마을 사람 등으로 그 이름이 확인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전북 부안 장신마을 용기는 현존하는 용기 가운데 가장 큰 기로 추정된다. 마을 사람들은 이 기를 ‘용대기龍大旗’ 또는 ‘용당기龍堂旗’라고 부른다. 기폭에는 황룡만이 그려져 있고, 가장자리에 구름 문양이 있다. 기폭의 재료는 광목천이며 가장자리는 황색 지네발이 달려 있다. 기폭 크기는 가로 785㎝, 세로 210㎝로 세로 폭이 좁고 가로 폭이 긴 형태이다. 용기의 기폭은 깃대에 매단 쪽에는 점정 색포色布를 이어서 재봉하고, 흰색 붓글씨로 4괘卦를 적어 넣었다. 괘와 괘 사이에는 마을 이름과 기증자, 마을 두레의 좌상, 공원 등의 주요 인물의 이름과 제작일 1936년 7월 16일[丙子秋七月 旣望]이 적혀 있고 화가 조중태가 그렸다고 전한다.
전남 강진 용소마을의 기는 흰색 무명에 400㎝ 정도의 정방형 기폭에 연조(1933년 제작)와 붉은 색의 지네발이 둘러 있다. 기면에는 청룡의 형상이 중앙에 배치되어 그려져 있고, 살포를 들고 있는 신농씨가 용을 올라타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용 형상의 아래 부분에는 작은 거북 형상을 한 귀룡龜龍과 큰 잉어, 사각도형, 구름 형상이 고루 배치되어 있다. 그림은 전체적으로 매우 해학적이고 소박하며 풍농을 기원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36년도에 중수된 경상남도 밀양 신호마을 쌍룡기는 영남 일대의 기들에 없는 지네발이 붙어 있고, 용그림이 그려져 있어 마치 두레기를 연상케 한다. 기폭은 가로 420㎝, 세로355㎝ 정방형 기로서 기폭 중앙에 여의주를 두고 황룡과 청룡이 서로 교차하고 있는 형상이다. 아주 옛날 낙동강이 범람할 때 마을로 떠내려 온 궤짝 속에 기가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질 뿐 이 기의 기원은 찾기 어렵다. 신호마을 용기는 전설에 따라 마을 수호신인 ‘서낭할배’ 로 불리고 있다. 근래에는 용기가 지닌 형상성과 위용을 놀이 또는 공연으로 만들어 지역문화 상품화를 꾀하는 등 용기의 전승 방식과 내용이 변화하고 있다.

특징 및 의의

용기는 여러 농기 가운데 변별적 특성을 가진다. 주로 경기, 충청, 전라도 등 두레 활동이 활발한 지역에 집중 분포되어 있다. 특히 전주, 익산 등 전북 일부 지역에서는 집중적인 분포를 이루고 있어 지역적 특성을 나타낸다. 용은 농업 사회에서 물을 다스려 풍농을 관장하는 수신의 성격을 지닌 상징물이다. 각 마을 마다 용기의 형상이 조금씩 다르더라도, 용을 형상화하여 치수를 통한 풍농을 기원하며, 각 마을공동체의 위세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참고문헌

곡성죽동농악(송기태 외, 민속원, 2016), 농기(농업박물관, 인트로,2009), 농악(정병호, 열화당, 1986), 두레 농민의 역사(주강현, 들녘, 2006),두레연구(주강현,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5), 삼천지역 문화공간화를위한 문화자원조사보고서(전북민예총, 컨티뉴, 2007), 한국 마을기의 존재양상과 사회문화적 의미(김선태, 민속원, 2016).

용기

용기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농악

집필자 김선태(金善泰)

정의

용 문양이 있는 대형기로 마을의 중요 행사에서 마을을 표상하는 기.

개관

농악에서 용기가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농기가 1749년 『영조실록英祖實錄』에 언급된 것으로 보아, 용기도 비슷한 역사를 가질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어가 행렬에서도 용기가 사용되었는데, 이때 황룡과 청룡의 용기는 각 영을 지휘하는 기능을 하였다. 농악에 사용되는 용기가 어가행렬의 용기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나 구체적인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현존하는 용기 가운데 오래된 것들은 대부분 19세기에 제작되었다. 충청남도 홍성 구수마을 용기(1982년 충남 민속자료 지정)는 1891년(고종 28)에 제작되었다. 이웃 마을 주교 용기의 제작연도는 1824년에 해당한다. 전라북도 전주 중평마을 용기의 연조는 ‘을미년 조성’이라고 묵서해 놓아 1895년에 제작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용기를 비롯한 농기는 정부가 주도한 문화재 보호제도에 편승하여 민속예술경연대회 등에 참여하여 간헐적 전승이 이루어졌다. 1981년 충남 홍성 형산리 마을은 ‘용대기놀이’로 제22회 전국민속예술대회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전라북도 익산과 전주 지역에서도 2000년을 전후로 용기놀이를 소재로 한국민속예술축제는 물론 지역축제 등에서 용기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내용

용기는 농기 가운데 하나로 농악의 기수단에 편성된다. 기폭에는 용 그림이 그려져 있어 ‘용기’ 또는 ‘용당기’, ‘용대기’ 등으로 불린다. 일부지만 전남 곡성 죽동농악과 같이 기폭에 ‘龍’ 문자를 써 넣는 곳도 있고, 하동의 화촌마을과 같이 호랑이와 용을 같이 그려 놓은 곳도 있다.마을 기에 관한 전수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용기의 정확한 분포는 아직 분명히 밝힐 수 없다. 단지 용기는 두레 활동이 활발한 서쪽 지역 전반에 두루 분포하는 경향이 있다. 이 가운데 전북 전주 평화 삼천동 일대마을들에서 용기가 집단 군락을 이루고 있어 주목된다.용기는 기폭에 나타나는 형상이 용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농기의 깃봉, 깃대, 기폭의 기본 요소를 따르고 있다. 용기의 기폭 형상은 주로 용을 단독으로 그려 넣은 것과 용의 형상을 기폭 중앙에 그려놓고 부수적인 내용을 주변에 그려 넣은 기들로 구분된다. 한편 색깔에 따른 용의 형상을 구분하기도 하는데, 황룡과 청룡이 주를 이룬다. 근래에 제작된 기들은 색깔을 달리하여 그리는 경우도 있다. 용의 그림을 그린 이들은 전문화가, 스님, 재주가 좋은 마을 사람 등으로 그 이름이 확인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전북 부안 장신마을 용기는 현존하는 용기 가운데 가장 큰 기로 추정된다. 마을 사람들은 이 기를 ‘용대기龍大旗’ 또는 ‘용당기龍堂旗’라고 부른다. 기폭에는 황룡만이 그려져 있고, 가장자리에 구름 문양이 있다. 기폭의 재료는 광목천이며 가장자리는 황색 지네발이 달려 있다. 기폭 크기는 가로 785㎝, 세로 210㎝로 세로 폭이 좁고 가로 폭이 긴 형태이다. 용기의 기폭은 깃대에 매단 쪽에는 점정 색포色布를 이어서 재봉하고, 흰색 붓글씨로 4괘卦를 적어 넣었다. 괘와 괘 사이에는 마을 이름과 기증자, 마을 두레의 좌상, 공원 등의 주요 인물의 이름과 제작일 1936년 7월 16일[丙子秋七月 旣望]이 적혀 있고 화가 조중태가 그렸다고 전한다.전남 강진 용소마을의 기는 흰색 무명에 400㎝ 정도의 정방형 기폭에 연조(1933년 제작)와 붉은 색의 지네발이 둘러 있다. 기면에는 청룡의 형상이 중앙에 배치되어 그려져 있고, 살포를 들고 있는 신농씨가 용을 올라타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용 형상의 아래 부분에는 작은 거북 형상을 한 귀룡龜龍과 큰 잉어, 사각도형, 구름 형상이 고루 배치되어 있다. 그림은 전체적으로 매우 해학적이고 소박하며 풍농을 기원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1936년도에 중수된 경상남도 밀양 신호마을 쌍룡기는 영남 일대의 기들에 없는 지네발이 붙어 있고, 용그림이 그려져 있어 마치 두레기를 연상케 한다. 기폭은 가로 420㎝, 세로355㎝ 정방형 기로서 기폭 중앙에 여의주를 두고 황룡과 청룡이 서로 교차하고 있는 형상이다. 아주 옛날 낙동강이 범람할 때 마을로 떠내려 온 궤짝 속에 기가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질 뿐 이 기의 기원은 찾기 어렵다. 신호마을 용기는 전설에 따라 마을 수호신인 ‘서낭할배’ 로 불리고 있다. 근래에는 용기가 지닌 형상성과 위용을 놀이 또는 공연으로 만들어 지역문화 상품화를 꾀하는 등 용기의 전승 방식과 내용이 변화하고 있다.

특징 및 의의

용기는 여러 농기 가운데 변별적 특성을 가진다. 주로 경기, 충청, 전라도 등 두레 활동이 활발한 지역에 집중 분포되어 있다. 특히 전주, 익산 등 전북 일부 지역에서는 집중적인 분포를 이루고 있어 지역적 특성을 나타낸다. 용은 농업 사회에서 물을 다스려 풍농을 관장하는 수신의 성격을 지닌 상징물이다. 각 마을 마다 용기의 형상이 조금씩 다르더라도, 용을 형상화하여 치수를 통한 풍농을 기원하며, 각 마을공동체의 위세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참고문헌

곡성죽동농악(송기태 외, 민속원, 2016), 농기(농업박물관, 인트로,2009), 농악(정병호, 열화당, 1986), 두레 농민의 역사(주강현, 들녘, 2006),두레연구(주강현,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5), 삼천지역 문화공간화를위한 문화자원조사보고서(전북민예총, 컨티뉴, 2007), 한국 마을기의 존재양상과 사회문화적 의미(김선태, 민속원,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