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도두레풍장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농악

집필자 강성복(姜成福)
갱신일 2019-01-23

정의

충청남도 부여 세도면 일대에서 두레로 김매기를 할 때 치는 풍물.

개관

세도두레풍장의 유래는 분명하지 않지만 조선 후기 이앙법의 확산에 따른 두레 노동의 성립과 역사를 함께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두레풍장의 전승공동체인 동사리가 늦어도 조선 초기에 형성된 농촌이며, 200여 년(갑신년 7월 7일) 전에 제작된 두레 농기農旗가 1990년대까지 내려온 사실에서도 뒷받침되고 있다. 세도 지역 두레 노동의 관행은 1945년 광복을 전후하여 대부분 소멸되었다. 그러나 동사리를 비롯한 일부 마을에서는 1960년대 초까지 두레를 조직하여 논을 매는 풍습이 남아 있었다. 당시 두레풍장을 이끌었던 예능인은 뛰어난 소리꾼이자 풍물잡이였던 박산봉(장구)이었고, 이미 고인이 된 최종남(상쇠), 박춘실(장구), 박종기(장구), 윤병택(쇠), 조형구(쇠) 등으로 알려져 있다.
세도두레풍장은 속칭 ‘말뚝풍장’이란 별칭으로도 불린다. 말뚝풍장은 특별한 기교나 잔재주를 부리지 않고 꼿꼿하게 서서 치는 투박한 풍물이란 뜻이다. 이는 동사리 특유의 공동 노동 관행이 반영된 산물이다. 동사리에서는 해마다 두레가 조직되는 것이 아니라 가뭄이 지속되어 논을 매지 못하다가 갑자기 비가 내려 김을 맬 때 두레가 조직되었다. 물 걱정이 없는 해는 품앗이나 놉을 얻어서 김매기를 했고, 가뭄이 해갈되면서 일시에 집중적인 노동력이 필요한 해에만 두레를 조직해서 김을 맸다. 이런 까닭에 두레가 조직되는 해는 일손이 있는 집은 수를 불문하고 모두 김매기에 참여했다. 이전에는 집이 100호가 훨씬 넘었기 때문에 두레 일꾼들은 200여 명을 웃도는 대규모 인력이 동원되었다.
이처럼 많은 두레꾼들이 작업을 하다 보니 육성으로는 통제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두레풍장이다. 다시 말해 김매기의 방향과 이동은 좌상이나 공원의 지시를 받은 총각대방이 영기를 들고 신호를 보내면, 풍물패들은 신호를 보고 논풍장, 두렁질굿 등을 울려 두레꾼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의 소통을 택한 것이다. 이처럼 세도두레풍장의 성립은 동사리의 오랜 김매기 전통과 긴밀히 맞닿아 있으며, 이는 다른 지역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두레풍장이 만들어지고 전승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두레와 더불어 세도 지역 농악의 전승에 커다란 버팀목이 되어준 풍물굿 전통은 사동천 ‘다리걸립’이다. 속칭 ‘엉건너다리’로 불리었던 이 다리는 면사무소와 세도중학교, 그리고 금강변의 세도나루를 건너 강경포구를 잇는 길목이었다. 따라서 세도면 일대는 물론, 이웃한 임천면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자주 이용하는 다리였다. 그런데 나무로 만든 다리는 해마다 장마철이 되면 유실되었던 까닭에 정초부터 정월대보름까지 풍물패들이 각 마을로 걸립을 돌아 필요한 기금을 마련하였다. 걸립패는 동사리가 주축을 이루면서 세도에서 최고의 기량을 지닌 풍물꾼으로 구성되었다. 엉건너다리 걸립의 전통은 시멘트 교량으로 대치되는 1980년대 초까지 지속되었으며, 이는 동사리의 농악이 지역을 대표하는 풍물굿으로 온전히 계승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두레의 소멸과 다리걸립의 중단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세도두레풍장은 1986년에 복원의 실마리가 마련되었다. 옛 풍물꾼과 소리꾼이 하나 둘 타개하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주민들이 ‘세도두레풍장보존회’를 만든 것이다. 그 뒤로 지역 풍물 전승에 앞장서 온 보존회는 1997년 전북 익산에서 개최된 제3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현 전국민속예술축제)에 충남 대표로 참가하여 세도 지역 특유의 두레풍물을 선보였고, 2000년 1월 세도두레풍장이란 이름으로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내용

세도두레풍장은 지난날 부여 세도면 동사리 일대에서 두레로 김매기를 할 때 연행되었던 풍물을 계승한 것이다. 동사리에서 논을 매는 시기는 모내기를 마친 뒤 25일을 전후하여 이루어졌다. 그러나 비가 내리지 않으면 한 달이 훌쩍 지난 뒤에야 비로소 두레가 조직 되어 김매기를 했다. 이처럼 동사리에서는 여느 마을처럼 해마다 두레가 조직되지 않았으며, 시기도 일정하지 않았던 까닭에 두레의 김매기는 초벌(아시), 두벌(이듬), 세벌(만물) 중에서 주로 초벌매기에 국한되었다. 다만 가뭄이 심한 해에도 물 사정이 좋아 품앗이로 초벌을 맨 농가에서는 두벌을 두레로 논을 매기도 했다.

  1. 치배구성
    세도두레풍장의 치배(풍물의 구성원)는 악기와 기수로만 구성되었을 뿐 잡색은 일절 편성하지 않았다. 먼저 풍물패에 딸린 깃발은 두레의 상징인 농기영기가 있다. 농기는 광목에 ‘신농지업神農之業’을 횡으로 묵서墨書한 신농기이다. 예전에 두레가 나면 힘센 총각대방이 짚으로 엮은 기받이를 허리에 찬 채 농기를 받쳐 들고 가는데, 이때 꿩장목 밑에는 세 갈래의 줄을 매어 총각대방 앞 옆과 뒤편에서 세 사람이 줄을 잡고 행진을 했다. 영기는 두 개가 있는데, 두레패가 논으로 이동을 할 때 맨 앞에 서서 행렬을 인도했다. 한편 두레풍장의 악기는 꽹과리, 징, 장구, 북으로 편성되었다. 풍물패의 구성이 단출한 이유는 김매기의 현장에서 연행되는 두레풍물의 특성상 사물만으로 풍물패를 꾸렸기 때문이다.

  2. 두레풍장
    두레의 김매기가 시작되면, 아침 일찍 마을 공터에 농기를 꽂아 놓고 풍장을 울려 집결 신호를 보낸다. 이때 풍물패는 두레꾼들이 빨리 나오라는 뜻으로 두마치가락을 흥겹게 울린다. 두레꾼들은 풍장 소리를 듣고 각자 호미를 들고 속속 공터로 모여들었다. 두레패가 논으로 이동을 할 때는 영기-농기-풍물패-두레꾼 등의 순으로 흥겹게 질굿을 울리며 행진하였다. 논에 도착하여 풍물패가 먼저 들어가 논풍장을 치면, 두레꾼들은 그 뒤를 따라 들어가서 풍물가락에 맞춰 김을 맸다. 흥미로운 사실은 동사리에서는 들 가운데에 밭이 있으면 두레에서 밭을 매 주기도 했다. 밭농사 역시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면 수확에 지장이 있는 만큼 화급을 다투는 상황에서는 논밭을 가리지 않고 김을 매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동사리에서 두레로 김매기를 할 때는 별도의 소리가 수반되지 않았다. 그것은 많은 두레꾼들이 동원되어 김매는 소리가 본래의 기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대신 두레꾼들은 풍장 소리를 듣고 작업의 방향과 속도를 맞추는 등 일사불란한 지휘 체계를 갖출 수 있었다.

  3. 굿가락
    세도두레풍장의 기본 가락은 김매기 현장에서 연주되는 논풍장(세마치가락)을 비롯하여 두레꾼들이 행진할 때 울리는 두렁질굿(질굿), 그리고 칠석날 두레먹이나 정초의 마당밟기(지신밟기)에 수반되는 두마치가락, 나비춤가락, 칠채가락이 중심이 된다. 이와 더불어 풍물을 시작하고 맺을 때 치는 인사가락과 매조지가락은 세도두레풍장에서만 보유하고 있는 독특한 가락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이 세도두레풍장은 크게는 다섯 종류의 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칠채는 다시 원칠채, 마당밟기, 반채, 매조지가락으로 분류되어 모두 아홉 개의 가락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세도두레풍장의 특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논풍장(세마치): 두레꾼들이 김매기를 하는 동안 논에 들어가서 풍물을 울리는 가락이다. 굿거리장단과 대동소이하면서도 흥겨운 것이 특징이다. 마치의 수는 굿거리와 같으나 가락에 다소 변화를 준 점이 차이가 있다. 예전에 두레로 김을 맬 때, 논 안에서 즐겨 쳤으므로 속칭 ‘논풍장’으로 불린다. 엇가락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며, 다른 지역 풍물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세도두레풍장의 독특한 가락이다. 논풍장 소리는 은은하면서도 유려하여 30리 밖까지 쇳소리가 울려 퍼져나간다고 한다. 세도면 청포리 만개두레에서는 지심 매는 논풍장을 ‘더드랭이’라고 한다. 장구소리가 ‘더드렁거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는 호남의 풍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락인데, 만개마을이 전라북도와 이웃한 까닭에 두레풍장 역시 그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논풍장은 두레의 김매기가 소멸된 뒤에는 풍물경연대회의 판굿에 수용되어 전승되고 있다.
    2) 두렁질굿: 두레패가 다른 논배미로 이동을 하거나 행진할 때 연주하는 가락이다. 두렁질굿은 ‘질굿’ 또는 ‘세마치질굿’이라고 한다. 굿거리와 동일하나 조금 빠르게 치는 것이 특징이다. 다른 지역에서 접할 수 없는 세도두레풍장의 독특한 가락으로 알려져 있다. 두레패가 논두렁으로 이동을 하거나 먼 길을 갈 때 치는 가락이므로 두렁질굿이라고 하는데, 동사리에서는 늦은질굿·두렁질굿·늦은세마치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두렁질굿은 빠르고 느린 가락에 따라 늦은질굿과 자진질굿으로 나뉜다. 늦은질굿은 논에서 김매기 등 일을 할 때 주로 치는 가락인데 평소의 질굿보다 조금 늦게 친다. 이에 비해 자진질굿은 명절을 맞이하여 마당에서 풍물놀이를 할 때 흥을 돋우기 위해 조금 빠르게 치는 것이 특징이다.
    3) 두마치가락: 두마치는 잔칫집에 초대를 받거나 김매기를 마친 뒤 베푸는 두레먹이 행사에 참석한 주민들과 풍물꾼들이 한데 어우러져 신명나는 풍물 잔치를 벌일 때 치는 가락이다. 굿거리장단보다 조금 빠르게 치는 가락으로서 ‘잦은굿거리’와 흡사하다. 엇가락이 많이 들어가면서도 조화롭고 흥겨운 것이 특징이다. 이때 풍물꾼은 온갖 개인기를 선보이며 흥겹게 풍물을 치는데, 가락이 단순하고 경쾌하여 누구나 악기를 둘러매고 칠 수 있는 그런 가락이다. 두마치의 끝가락은 휘모리인 자진마치이다. 그러나 평소 두레의 김매기 현장이나 마당밟기에 두마치는 거의 치지 않는 가락이다. 호흡이 빠른 만큼 진종일 풍장을 쳐야 하는 풍물패들로서는 이를 감당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4) 나비춤가락: 나비춤가락은 마당에서 연희되는 판굿이나 풍물경연대회 등과 같은 행사에 출연할 때 전후좌우로 흥겹게 역동적으로 치는 가락이다. 충남 전역에서 전승되는 속칭 ‘쩍쩍이’와 거의 흡사한 가락이다. 그래서 다른 지역 풍물꾼들은 나비춤가락을 쩍쩍이로 부르기도 한다. 풍물패들은 상쇠를 따라 흥겹게 풍물을 울리며 앞으로 나아가다가 뒤로 물러나고, 다시 우측으로 갔다 좌측으로 이동하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때문에 이를 ‘전후좌우치기’로 불리기도 한다. 세도에서는 쩍쩍이라는 명칭 대신 나비춤가락 혹은 꽃나비가락이란 용어를 쓴다. 나비춤가락은 가락이 단순하여 여럿이 호흡을 맞추기에 용이하다. 논에서 일을 할 때는 칠 수 없고,놀이마당이나 두레먹이를 할 때 주로 치는 가락이다.
    5) 칠채가락: 동사리와 세도면 일대에서 전승되는 칠채가락은 원칠채, 마당밟기가락, 반채, 매조지가락, 인사가락으로 나누어진다. 먼저 원칠채는 풍물놀이를 처음 시작할 때 치는 가락이다. 가령 풍물꾼들이 풍물을 보관하는 장소에서 놀이터로 이동하거나 걸립패들이 지신밟기(마당밟기)를 위해 마당으로 들어갈 때 주로 친다. 마당밟기가락은 속칭 ‘칠채끝가락’이라고도 한다. 예전에 집집마다 걸립을 돌면 풍물소리를 듣고 아이들과 구경꾼이 마당으로 몰려들어 풍물패들이 들어갈 공간이 없다. 이때 풍물패가 마당에 들어서면 구경꾼들이 조금씩 뒤로 물러나 공간이 점점 넓어진다. 그러면 주변에 원을 둘러 공간을 확보한 다음 빙글빙글 마당을 돌며 마당밟기에 들어간다. 그런가 하면 반채가락은 칠채가락을 절반으로 줄여서 빠르고 흥겹게 풍물을 치는 것을 말한다. 풍물패들이 거나하게 술이 오르면 호기가 발동하여 서로 누가 잘 치는가를 겨룰 때 즐겨 사용한다. 아주 신나게 풍물을 칠 때는 더욱 빠르게 하여 마무리를 하는데 이를 ‘반채끝무리가락’이라고 한다. 매조지가락은 인사가락을 두 번 반복해서 치는 것을 말한다. 마을에서 풍물을 치고 놀거나 집집을 돌며 마당밟기를 할 때 매조지가락으로 끝을 맺는다. 세도면에서만이 가락이 전승된다고 한다. 끝으로 인사가락은 풍물패가 행사장으로 입장하면서 인사할 때 치는 가락인데 매조지가락을 반으로 줄여서 치는 것이 특징이다. 근래들어 농악경연대회나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자주 참가하면서 만들어 낸 가락이다. 매조지가락과 더불어 세도두레풍장 특유의 가락이다.
    6) 쇄납가락: 쇄납은 본래 세도두레풍장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악기이다. 2001년 세도 두레풍장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면서 동사리 윤구병 씨의 기예가 출중한 까닭에 그 전승을 위해 쇄납 후보자(현재 보유자)로 지정한 것이다. 윤구병 씨의 쇄납 중에서 두레풍장의 공개행사에 연주되는 가락은 시나위가락과 허틀가락이다. 시나위는 곡조가 구슬프고 처연하여 노인층이 좋아하는 가락이고, 허틀가락은 태평가·경기민요조와 동일한 가락이다. 세도두레풍장을 연행할 때 쇄납은 ①논풍장-시나위+허틀가락(경기조·태평가), ②두렁질굿-시나위, ③두마치가락-허틀가락(경기조), ④나비춤가락-허틀가락(경기조), ⑤칠채가락-시나위+허틀가락(변형 시나위)를 연주한다.

특징 및 의의

세도두레풍장은 두드러진 특징은 다른 지역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소멸되었거나 전승되지 않는 전통 풍물 가락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두렁질굿, 나비춤가락, 매조지가락 등은 세도두레풍장에서 만 전승되는 가락이다. 뿐만 아니라 자진마치는 오늘날 농악경연대회에서 흔히 연주되는 가락에 비해 상당한 차이가 있다. 가령 경연대회에 참가하는 다른 지역의 판굿은 온갖 재주를 선보이거나 마치 군인들이 제식훈련을 하듯이 묘기에 가까운 기예를 펼친다. 이에 비해 세도두레풍장의 자진마치는 청중들로 하여금 흥이 절로 나게 할 뿐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두렁질굿 역시 높은 논둑을 힘겹게 넘어가듯 길게 끊어지는 맛과 더불어 여유로움이 배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전승되는 농악 가운데 가장 가락이 느리고 역동성이 부족한 말뚝풍장이란 별칭에 걸맞게 세도두레풍장은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았던 농군들의 질박함이 묻어난다. 그 속에는 농경문화 특유의 낙천적인 세계관이 깃들어 있으며, 두레를 매개로 한 지역민들의 화합과 신명이 숨 쉬고 있다.

참고문헌

산유화가(배인교·오문선, 부여문화원, 2010), 세도 두레풍장·공주 선학리 지게놀이(강성복·박종익·이길재, 민속원, 2011),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8호 세도두레풍장(강성복, 무형문화재 활성화방안 조사연구, 한국전통문화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부여군, 2008), 한국민속예술사전(국립민속박물관, 2015).

세도두레풍장

세도두레풍장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농악

집필자 강성복(姜成福)
갱신일 2019-01-23

정의

충청남도 부여 세도면 일대에서 두레로 김매기를 할 때 치는 풍물.

개관

세도두레풍장의 유래는 분명하지 않지만 조선 후기 이앙법의 확산에 따른 두레 노동의 성립과 역사를 함께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두레풍장의 전승공동체인 동사리가 늦어도 조선 초기에 형성된 농촌이며, 200여 년(갑신년 7월 7일) 전에 제작된 두레 농기農旗가 1990년대까지 내려온 사실에서도 뒷받침되고 있다. 세도 지역 두레 노동의 관행은 1945년 광복을 전후하여 대부분 소멸되었다. 그러나 동사리를 비롯한 일부 마을에서는 1960년대 초까지 두레를 조직하여 논을 매는 풍습이 남아 있었다. 당시 두레풍장을 이끌었던 예능인은 뛰어난 소리꾼이자 풍물잡이였던 박산봉(장구)이었고, 이미 고인이 된 최종남(상쇠), 박춘실(장구), 박종기(장구), 윤병택(쇠), 조형구(쇠) 등으로 알려져 있다.세도두레풍장은 속칭 ‘말뚝풍장’이란 별칭으로도 불린다. 말뚝풍장은 특별한 기교나 잔재주를 부리지 않고 꼿꼿하게 서서 치는 투박한 풍물이란 뜻이다. 이는 동사리 특유의 공동 노동 관행이 반영된 산물이다. 동사리에서는 해마다 두레가 조직되는 것이 아니라 가뭄이 지속되어 논을 매지 못하다가 갑자기 비가 내려 김을 맬 때 두레가 조직되었다. 물 걱정이 없는 해는 품앗이나 놉을 얻어서 김매기를 했고, 가뭄이 해갈되면서 일시에 집중적인 노동력이 필요한 해에만 두레를 조직해서 김을 맸다. 이런 까닭에 두레가 조직되는 해는 일손이 있는 집은 수를 불문하고 모두 김매기에 참여했다. 이전에는 집이 100호가 훨씬 넘었기 때문에 두레 일꾼들은 200여 명을 웃도는 대규모 인력이 동원되었다.이처럼 많은 두레꾼들이 작업을 하다 보니 육성으로는 통제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두레풍장이다. 다시 말해 김매기의 방향과 이동은 좌상이나 공원의 지시를 받은 총각대방이 영기를 들고 신호를 보내면, 풍물패들은 신호를 보고 논풍장, 두렁질굿 등을 울려 두레꾼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의 소통을 택한 것이다. 이처럼 세도두레풍장의 성립은 동사리의 오랜 김매기 전통과 긴밀히 맞닿아 있으며, 이는 다른 지역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두레풍장이 만들어지고 전승되는 밑거름이 되었다.두레와 더불어 세도 지역 농악의 전승에 커다란 버팀목이 되어준 풍물굿 전통은 사동천 ‘다리걸립’이다. 속칭 ‘엉건너다리’로 불리었던 이 다리는 면사무소와 세도중학교, 그리고 금강변의 세도나루를 건너 강경포구를 잇는 길목이었다. 따라서 세도면 일대는 물론, 이웃한 임천면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자주 이용하는 다리였다. 그런데 나무로 만든 다리는 해마다 장마철이 되면 유실되었던 까닭에 정초부터 정월대보름까지 풍물패들이 각 마을로 걸립을 돌아 필요한 기금을 마련하였다. 걸립패는 동사리가 주축을 이루면서 세도에서 최고의 기량을 지닌 풍물꾼으로 구성되었다. 엉건너다리 걸립의 전통은 시멘트 교량으로 대치되는 1980년대 초까지 지속되었으며, 이는 동사리의 농악이 지역을 대표하는 풍물굿으로 온전히 계승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두레의 소멸과 다리걸립의 중단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세도두레풍장은 1986년에 복원의 실마리가 마련되었다. 옛 풍물꾼과 소리꾼이 하나 둘 타개하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주민들이 ‘세도두레풍장보존회’를 만든 것이다. 그 뒤로 지역 풍물 전승에 앞장서 온 보존회는 1997년 전북 익산에서 개최된 제3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현 전국민속예술축제)에 충남 대표로 참가하여 세도 지역 특유의 두레풍물을 선보였고, 2000년 1월 세도두레풍장이란 이름으로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내용

세도두레풍장은 지난날 부여 세도면 동사리 일대에서 두레로 김매기를 할 때 연행되었던 풍물을 계승한 것이다. 동사리에서 논을 매는 시기는 모내기를 마친 뒤 25일을 전후하여 이루어졌다. 그러나 비가 내리지 않으면 한 달이 훌쩍 지난 뒤에야 비로소 두레가 조직 되어 김매기를 했다. 이처럼 동사리에서는 여느 마을처럼 해마다 두레가 조직되지 않았으며, 시기도 일정하지 않았던 까닭에 두레의 김매기는 초벌(아시), 두벌(이듬), 세벌(만물) 중에서 주로 초벌매기에 국한되었다. 다만 가뭄이 심한 해에도 물 사정이 좋아 품앗이로 초벌을 맨 농가에서는 두벌을 두레로 논을 매기도 했다. 치배구성세도두레풍장의 치배(풍물의 구성원)는 악기와 기수로만 구성되었을 뿐 잡색은 일절 편성하지 않았다. 먼저 풍물패에 딸린 깃발은 두레의 상징인 농기와 영기가 있다. 농기는 광목에 ‘신농지업神農之業’을 횡으로 묵서墨書한 신농기이다. 예전에 두레가 나면 힘센 총각대방이 짚으로 엮은 기받이를 허리에 찬 채 농기를 받쳐 들고 가는데, 이때 꿩장목 밑에는 세 갈래의 줄을 매어 총각대방 앞 옆과 뒤편에서 세 사람이 줄을 잡고 행진을 했다. 영기는 두 개가 있는데, 두레패가 논으로 이동을 할 때 맨 앞에 서서 행렬을 인도했다. 한편 두레풍장의 악기는 꽹과리, 징, 장구, 북으로 편성되었다. 풍물패의 구성이 단출한 이유는 김매기의 현장에서 연행되는 두레풍물의 특성상 사물만으로 풍물패를 꾸렸기 때문이다. 두레풍장두레의 김매기가 시작되면, 아침 일찍 마을 공터에 농기를 꽂아 놓고 풍장을 울려 집결 신호를 보낸다. 이때 풍물패는 두레꾼들이 빨리 나오라는 뜻으로 두마치가락을 흥겹게 울린다. 두레꾼들은 풍장 소리를 듣고 각자 호미를 들고 속속 공터로 모여들었다. 두레패가 논으로 이동을 할 때는 영기-농기-풍물패-두레꾼 등의 순으로 흥겹게 질굿을 울리며 행진하였다. 논에 도착하여 풍물패가 먼저 들어가 논풍장을 치면, 두레꾼들은 그 뒤를 따라 들어가서 풍물가락에 맞춰 김을 맸다. 흥미로운 사실은 동사리에서는 들 가운데에 밭이 있으면 두레에서 밭을 매 주기도 했다. 밭농사 역시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면 수확에 지장이 있는 만큼 화급을 다투는 상황에서는 논밭을 가리지 않고 김을 매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동사리에서 두레로 김매기를 할 때는 별도의 소리가 수반되지 않았다. 그것은 많은 두레꾼들이 동원되어 김매는 소리가 본래의 기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대신 두레꾼들은 풍장 소리를 듣고 작업의 방향과 속도를 맞추는 등 일사불란한 지휘 체계를 갖출 수 있었다. 굿가락세도두레풍장의 기본 가락은 김매기 현장에서 연주되는 논풍장(세마치가락)을 비롯하여 두레꾼들이 행진할 때 울리는 두렁질굿(질굿), 그리고 칠석날 두레먹이나 정초의 마당밟기(지신밟기)에 수반되는 두마치가락, 나비춤가락, 칠채가락이 중심이 된다. 이와 더불어 풍물을 시작하고 맺을 때 치는 인사가락과 매조지가락은 세도두레풍장에서만 보유하고 있는 독특한 가락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이 세도두레풍장은 크게는 다섯 종류의 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칠채는 다시 원칠채, 마당밟기, 반채, 매조지가락으로 분류되어 모두 아홉 개의 가락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세도두레풍장의 특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1) 논풍장(세마치): 두레꾼들이 김매기를 하는 동안 논에 들어가서 풍물을 울리는 가락이다. 굿거리장단과 대동소이하면서도 흥겨운 것이 특징이다. 마치의 수는 굿거리와 같으나 가락에 다소 변화를 준 점이 차이가 있다. 예전에 두레로 김을 맬 때, 논 안에서 즐겨 쳤으므로 속칭 ‘논풍장’으로 불린다. 엇가락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며, 다른 지역 풍물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세도두레풍장의 독특한 가락이다. 논풍장 소리는 은은하면서도 유려하여 30리 밖까지 쇳소리가 울려 퍼져나간다고 한다. 세도면 청포리 만개두레에서는 지심 매는 논풍장을 ‘더드랭이’라고 한다. 장구소리가 ‘더드렁거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는 호남의 풍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락인데, 만개마을이 전라북도와 이웃한 까닭에 두레풍장 역시 그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논풍장은 두레의 김매기가 소멸된 뒤에는 풍물경연대회의 판굿에 수용되어 전승되고 있다.2) 두렁질굿: 두레패가 다른 논배미로 이동을 하거나 행진할 때 연주하는 가락이다. 두렁질굿은 ‘질굿’ 또는 ‘세마치질굿’이라고 한다. 굿거리와 동일하나 조금 빠르게 치는 것이 특징이다. 다른 지역에서 접할 수 없는 세도두레풍장의 독특한 가락으로 알려져 있다. 두레패가 논두렁으로 이동을 하거나 먼 길을 갈 때 치는 가락이므로 두렁질굿이라고 하는데, 동사리에서는 늦은질굿·두렁질굿·늦은세마치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두렁질굿은 빠르고 느린 가락에 따라 늦은질굿과 자진질굿으로 나뉜다. 늦은질굿은 논에서 김매기 등 일을 할 때 주로 치는 가락인데 평소의 질굿보다 조금 늦게 친다. 이에 비해 자진질굿은 명절을 맞이하여 마당에서 풍물놀이를 할 때 흥을 돋우기 위해 조금 빠르게 치는 것이 특징이다.3) 두마치가락: 두마치는 잔칫집에 초대를 받거나 김매기를 마친 뒤 베푸는 두레먹이 행사에 참석한 주민들과 풍물꾼들이 한데 어우러져 신명나는 풍물 잔치를 벌일 때 치는 가락이다. 굿거리장단보다 조금 빠르게 치는 가락으로서 ‘잦은굿거리’와 흡사하다. 엇가락이 많이 들어가면서도 조화롭고 흥겨운 것이 특징이다. 이때 풍물꾼은 온갖 개인기를 선보이며 흥겹게 풍물을 치는데, 가락이 단순하고 경쾌하여 누구나 악기를 둘러매고 칠 수 있는 그런 가락이다. 두마치의 끝가락은 휘모리인 자진마치이다. 그러나 평소 두레의 김매기 현장이나 마당밟기에 두마치는 거의 치지 않는 가락이다. 호흡이 빠른 만큼 진종일 풍장을 쳐야 하는 풍물패들로서는 이를 감당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4) 나비춤가락: 나비춤가락은 마당에서 연희되는 판굿이나 풍물경연대회 등과 같은 행사에 출연할 때 전후좌우로 흥겹게 역동적으로 치는 가락이다. 충남 전역에서 전승되는 속칭 ‘쩍쩍이’와 거의 흡사한 가락이다. 그래서 다른 지역 풍물꾼들은 나비춤가락을 쩍쩍이로 부르기도 한다. 풍물패들은 상쇠를 따라 흥겹게 풍물을 울리며 앞으로 나아가다가 뒤로 물러나고, 다시 우측으로 갔다 좌측으로 이동하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때문에 이를 ‘전후좌우치기’로 불리기도 한다. 세도에서는 쩍쩍이라는 명칭 대신 나비춤가락 혹은 꽃나비가락이란 용어를 쓴다. 나비춤가락은 가락이 단순하여 여럿이 호흡을 맞추기에 용이하다. 논에서 일을 할 때는 칠 수 없고,놀이마당이나 두레먹이를 할 때 주로 치는 가락이다.5) 칠채가락: 동사리와 세도면 일대에서 전승되는 칠채가락은 원칠채, 마당밟기가락, 반채, 매조지가락, 인사가락으로 나누어진다. 먼저 원칠채는 풍물놀이를 처음 시작할 때 치는 가락이다. 가령 풍물꾼들이 풍물을 보관하는 장소에서 놀이터로 이동하거나 걸립패들이 지신밟기(마당밟기)를 위해 마당으로 들어갈 때 주로 친다. 마당밟기가락은 속칭 ‘칠채끝가락’이라고도 한다. 예전에 집집마다 걸립을 돌면 풍물소리를 듣고 아이들과 구경꾼이 마당으로 몰려들어 풍물패들이 들어갈 공간이 없다. 이때 풍물패가 마당에 들어서면 구경꾼들이 조금씩 뒤로 물러나 공간이 점점 넓어진다. 그러면 주변에 원을 둘러 공간을 확보한 다음 빙글빙글 마당을 돌며 마당밟기에 들어간다. 그런가 하면 반채가락은 칠채가락을 절반으로 줄여서 빠르고 흥겹게 풍물을 치는 것을 말한다. 풍물패들이 거나하게 술이 오르면 호기가 발동하여 서로 누가 잘 치는가를 겨룰 때 즐겨 사용한다. 아주 신나게 풍물을 칠 때는 더욱 빠르게 하여 마무리를 하는데 이를 ‘반채끝무리가락’이라고 한다. 매조지가락은 인사가락을 두 번 반복해서 치는 것을 말한다. 마을에서 풍물을 치고 놀거나 집집을 돌며 마당밟기를 할 때 매조지가락으로 끝을 맺는다. 세도면에서만이 가락이 전승된다고 한다. 끝으로 인사가락은 풍물패가 행사장으로 입장하면서 인사할 때 치는 가락인데 매조지가락을 반으로 줄여서 치는 것이 특징이다. 근래들어 농악경연대회나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자주 참가하면서 만들어 낸 가락이다. 매조지가락과 더불어 세도두레풍장 특유의 가락이다.6) 쇄납가락: 쇄납은 본래 세도두레풍장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악기이다. 2001년 세도 두레풍장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면서 동사리 윤구병 씨의 기예가 출중한 까닭에 그 전승을 위해 쇄납 후보자(현재 보유자)로 지정한 것이다. 윤구병 씨의 쇄납 중에서 두레풍장의 공개행사에 연주되는 가락은 시나위가락과 허틀가락이다. 시나위는 곡조가 구슬프고 처연하여 노인층이 좋아하는 가락이고, 허틀가락은 태평가·경기민요조와 동일한 가락이다. 세도두레풍장을 연행할 때 쇄납은 ①논풍장-시나위+허틀가락(경기조·태평가), ②두렁질굿-시나위, ③두마치가락-허틀가락(경기조), ④나비춤가락-허틀가락(경기조), ⑤칠채가락-시나위+허틀가락(변형 시나위)를 연주한다.

특징 및 의의

세도두레풍장은 두드러진 특징은 다른 지역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소멸되었거나 전승되지 않는 전통 풍물 가락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두렁질굿, 나비춤가락, 매조지가락 등은 세도두레풍장에서 만 전승되는 가락이다. 뿐만 아니라 자진마치는 오늘날 농악경연대회에서 흔히 연주되는 가락에 비해 상당한 차이가 있다. 가령 경연대회에 참가하는 다른 지역의 판굿은 온갖 재주를 선보이거나 마치 군인들이 제식훈련을 하듯이 묘기에 가까운 기예를 펼친다. 이에 비해 세도두레풍장의 자진마치는 청중들로 하여금 흥이 절로 나게 할 뿐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두렁질굿 역시 높은 논둑을 힘겹게 넘어가듯 길게 끊어지는 맛과 더불어 여유로움이 배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전승되는 농악 가운데 가장 가락이 느리고 역동성이 부족한 말뚝풍장이란 별칭에 걸맞게 세도두레풍장은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았던 농군들의 질박함이 묻어난다. 그 속에는 농경문화 특유의 낙천적인 세계관이 깃들어 있으며, 두레를 매개로 한 지역민들의 화합과 신명이 숨 쉬고 있다.

참고문헌

산유화가(배인교·오문선, 부여문화원, 2010), 세도 두레풍장·공주 선학리 지게놀이(강성복·박종익·이길재, 민속원, 2011),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8호 세도두레풍장(강성복, 무형문화재 활성화방안 조사연구, 한국전통문화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부여군, 2008), 한국민속예술사전(국립민속박물관,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