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동놀이(舞童戏)

한자명

舞童戏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농악

집필자 박혜영(朴惠英)

정의

나이 어린 아이들을 뽑아 여장을 하거나, 어린 중의 복색을 갖추게 하여 장정들의 어깨 위로 올리는 기예.

내용

1903년 4월 어린 영친왕이 천연두에 걸렸다가 병세가 회복되자, 이를 경축하기 위해 야외행사가 벌어졌다. 경기도 일대 마을에서 유랑하던 남사당패들은 역병 퇴치와 수명장수를 발원하면서 무동놀이를 펼치기도 했다. 근대 이후 초기 협률사에 남사당패와 기생 80여명이 합숙을 했고, 사당패의 일원이던 기생들은 남사당패로 규합되었다. 솟대쟁이패와 기생들의 협연이 성행하면서, 무동타기와 같은 기예가 극장 연희 종목으로 급부상했다.
무동놀이를 연행할 때 무동 이외에 맨 아래 사람을 ‘밑동’, 가운데 사람을 ‘중동’이라고 부른다. 어린 중의 모습을 한 사미는 가장 어린아이가 맡는다. 사미는 흰 바지저고리에 흰 장삼을 걸치고 머리에 흰 고깔을 쓴다.
경기도 평택농악에서 무동놀이는 맞동니, 동니받기, 던질사위, 앞뒤곤두, 삼무동, 기러기상, 곡마당, 동거리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어깨 위에 올린 무동을 머리 위로 올렸다가 다시 어깨 위로 내리고 팔 위로 옮겼다가 또다시 어깨 위로 오게 하는 곡예도 있다. 치배들은 주로 느린 쩍쩍이가락이나 삼채를 치며, 연행 양상은 다음과 같다.

  1. 동니(단무동): 어른의 어깨 위에 무동 한 명이 올라선다.
  2. 맞동니: 단무동을 한 여러 쌍들이 판에 나가서 동니받기, 던질사위 등을 선보인다.
  3. 동니받기: 단무동을 한 무동에게 새미(사미)를 던져 안기는 것이다.
  4. 던질사위: 단무동을 한 사람이 무동을 머리 위로 올린 다음 맞은편 동니에게 달려가다가 무동을 던지는 것이다.
  5. 앞뒤곤두: 어깨 위의 무동을 앞으로 돌려 내렸다가땅에 닿기 전에 다시 돌려 올리고, 뒤로 젖혔다가 또다시 어깨 위로 바로 세우기를 반복한다.
  6. 삼무동: 밑동을 맡은 어른의 어깨 위에 한 어른이 올라서서 중동을 서고, 그 어깨 위에 다시 사미나 무동을 올려 세운다.
  7. 기러기상: 삼무동을 한 상태에서 중동이 3층 무동을 옆으로 누인 상태로 붙잡고 있는 것이다. 마치 돛대같이 생겼다고 하여 만경창파 돛대사위라고도 부른다.
  8. 오무동(곡마단): 삼무동을 세운 상태에서 무동 두 명을 밑동의 양 허리에 하나씩 더 붙인다.
  9. 동거리: 삼무동을 세운 상태에서 무동 두 명을 밑동의 양 어깨 위에 하나씩 더 올려 5층 무동을 만드는 것이다.
    평택농악과 같은 무동타기 기예는 대전을 비롯한 충청도 일대에서도 전승되었다. 또한 호남 일대에서 무동타기 연행은 밑동을 맞은 장정의 힘을 자랑하고, 장화를 쓴 놀이꾼을 어깨에 태우는 ‘꽃대림굿’으로 연행되기도 한다. 이 지역에서는 무동을 태우는 것을 ‘꽃나부 세운다’, ‘꽃 받는다’고 하거나, 사당놀이라고도 일컫는다.
    이런 무동타기 외에 강릉의 농사풀이웃다리농악 찍금놀이에서 무동과 법구잽이들이 마치 모를 심는 듯이 땅에 손을 내리꽂으면서 고갯짓을 하며 춤을 추는 놀이도 있다. 평택농악에서 판굿이 펼쳐지면 오방진이 끝나고 법고들이 두 줄로 들어와서 오른쪽과 왼쪽 줄이 번갈아가며 앉았다 일어섰다를 두 번씩 반복하는데, 이것을 절구댕이 법고라고 한다. 판굿이 펼쳐질 때 무동춤이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찍금놀이와 쩍쩍이춤 과정으로 무동과 법구잽이들이 마주보고 앉아서 마치 모를 심는 듯한 동작을 한다. ㄷ자 모양으로 당산을 벌리면 상쇠는 무동줄을 법고잽이 줄 앞으로 끌고 나와 무동들과 마주 서서 덩더궁이 장단에 맞춰 춤을 춘다. 상쇠와 함께 무동들이 제자리에 앉아 먼저 오른손을 들어 땅에 꽂고 고개를 오른쪽과 왼쪽으로 돌리며 논다. 다시 왼손을 들어 땅에 꽂아 고갯짓으로 논 다음, 두 손을 함께 땅에 찍고 고개를 놀린다. 무동이 일어나 제자리로 돌아가면 법고잽이들이 나와 상쇠와 함께 무동들이 했던 동작을 똑같이 반복한다. 쩍쩍이춤은 상쇠가 양산더드래기가락을 내면 다 같이 원을 따라 돌면서 시작한다. 양산더드래기가락을 칠 때 치배들은 안쪽을 향해 서서 친다. 법고와 무동은 안쪽을 향해 앉아 오른손은 앞으로 왼손은 뒤로 하고 춤을 춘다. 이것을 무동 깨끼춤이라고 한다. 상쇠가 마지막 가락을 칠 때 치배들은 바깥쪽을 향해 서서치고 법고와 무동은 바깥쪽을 향해 앉아서 춤을 춘다. 이후 연풍대가락으로 모두가 원진으로 돌면서 춤을 추다가 돌림법고를 한다. 돌림법고가 끝나면 가락을 털어주면서 당산벌림 때의 대형을 이루고 삼채를 친다. 법고와 무동들은 판의 한쪽에서 무동놀이를 준비한다. 이때 치배들은 느린 쩍쩍이 가락으로 무동놀이에 맞추고 묘기가 끝날 때마다 자진가락으로 몬다.
    특히 강릉농악의 판굿은 법고잽이와 소고잽이 무동들의 진법과 대형, 몸짓과 춤으로 진행된다. 무동은 시종일관 상쇠의 신호에 따라 농사짓는 행위를 모방하면서 법고잽이와 어울려 모 혹은 나락 등을 심고 거두는 연행을 한다. 법고잽이가 무동을 어깨에 지고 동고리를 받으며 최고 오동까지 받는다. 방아걸이는 법고잽이들이 동고리로 받은 무동을 뉘어 디딜방아를 올리고 내리는 흉내를 낸다. 방아 찧기에서 법고는 방아가 되고 소고잽이들은 방아의 중심대가 되며 무동은 방아 찧기와 키질을 묘사한다. 벼광이기에서 법고잽이가 말뚝이 되는가 하면, 벼 모으기에서는 무동이 볏단이 된다. 방아 찧기에서 법고잽이 두 명이 양 팔을 잡고 앉으면 그 위에 법고 한 명이 누워 양 다리를 벌린다. 법고 한명과 무동 한 명이 방아를 찧고 다른 무동 한 명은 키질과 써래질을 한다.

특징 및 의의

무동놀이는 풍농을 기원하는 풍속이자 전국 곳곳에서 세시 절기에 전승된 향토오락으로 성행했다. 조선의 향토오락에서 무동놀이는 마을에 거주하는 16세 이하의 여장한 소년들이 다리밟기, 정월 수신제, 초파일, 모내기철이나 머슴날, 김매기철, 호미씻이, 설이나 단오와 추석 등의 명절, 그리고 환갑연과 같은 잔치 때 연행한 민속으로 조사·보고되었다. 무동타기는 남녀의 성별보다는 가장형태와 어깨를 밟고 올라서서 춤과 기예를 펼치는 시각적 긴장감이 우선시된다. 무동놀이는 무대공연에서 활용도가 높으며 다양한 레퍼토리가 이어지는 막간을 이용하여 장면 전환을 위한 볼거리로 삽입되기도 했다.

참고문헌

20세기 전반기 극장연희의 종목과 그 특징(권도희, 한국음악연구47, 한국국악학회, 2010), 강릉농악(국립문화재연구소, 1997), 꼬레아 에꼬레아니(이돈수·이순우, 하늘재, 2009), 농악(정병호, 열화당, 1986), 농악현장의 해석(권은영, 민속원, 2014), 조선의 향토오락(村山智順, 박전열 역,집문당, 1992), 평택농악(천진기, 국립문화재연구소, 1996).

무동놀이

무동놀이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농악

집필자 박혜영(朴惠英)

정의

나이 어린 아이들을 뽑아 여장을 하거나, 어린 중의 복색을 갖추게 하여 장정들의 어깨 위로 올리는 기예.

내용

1903년 4월 어린 영친왕이 천연두에 걸렸다가 병세가 회복되자, 이를 경축하기 위해 야외행사가 벌어졌다. 경기도 일대 마을에서 유랑하던 남사당패들은 역병 퇴치와 수명장수를 발원하면서 무동놀이를 펼치기도 했다. 근대 이후 초기 협률사에 남사당패와 기생 80여명이 합숙을 했고, 사당패의 일원이던 기생들은 남사당패로 규합되었다. 솟대쟁이패와 기생들의 협연이 성행하면서, 무동타기와 같은 기예가 극장 연희 종목으로 급부상했다.무동놀이를 연행할 때 무동 이외에 맨 아래 사람을 ‘밑동’, 가운데 사람을 ‘중동’이라고 부른다. 어린 중의 모습을 한 사미는 가장 어린아이가 맡는다. 사미는 흰 바지저고리에 흰 장삼을 걸치고 머리에 흰 고깔을 쓴다.경기도 평택농악에서 무동놀이는 맞동니, 동니받기, 던질사위, 앞뒤곤두, 삼무동, 기러기상, 곡마당, 동거리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어깨 위에 올린 무동을 머리 위로 올렸다가 다시 어깨 위로 내리고 팔 위로 옮겼다가 또다시 어깨 위로 오게 하는 곡예도 있다. 치배들은 주로 느린 쩍쩍이가락이나 삼채를 치며, 연행 양상은 다음과 같다. 동니(단무동): 어른의 어깨 위에 무동 한 명이 올라선다. 맞동니: 단무동을 한 여러 쌍들이 판에 나가서 동니받기, 던질사위 등을 선보인다. 동니받기: 단무동을 한 무동에게 새미(사미)를 던져 안기는 것이다. 던질사위: 단무동을 한 사람이 무동을 머리 위로 올린 다음 맞은편 동니에게 달려가다가 무동을 던지는 것이다. 앞뒤곤두: 어깨 위의 무동을 앞으로 돌려 내렸다가땅에 닿기 전에 다시 돌려 올리고, 뒤로 젖혔다가 또다시 어깨 위로 바로 세우기를 반복한다. 삼무동: 밑동을 맡은 어른의 어깨 위에 한 어른이 올라서서 중동을 서고, 그 어깨 위에 다시 사미나 무동을 올려 세운다. 기러기상: 삼무동을 한 상태에서 중동이 3층 무동을 옆으로 누인 상태로 붙잡고 있는 것이다. 마치 돛대같이 생겼다고 하여 만경창파 돛대사위라고도 부른다. 오무동(곡마단): 삼무동을 세운 상태에서 무동 두 명을 밑동의 양 허리에 하나씩 더 붙인다. 동거리: 삼무동을 세운 상태에서 무동 두 명을 밑동의 양 어깨 위에 하나씩 더 올려 5층 무동을 만드는 것이다.평택농악과 같은 무동타기 기예는 대전을 비롯한 충청도 일대에서도 전승되었다. 또한 호남 일대에서 무동타기 연행은 밑동을 맞은 장정의 힘을 자랑하고, 장화를 쓴 놀이꾼을 어깨에 태우는 ‘꽃대림굿’으로 연행되기도 한다. 이 지역에서는 무동을 태우는 것을 ‘꽃나부 세운다’, ‘꽃 받는다’고 하거나, 사당놀이라고도 일컫는다.이런 무동타기 외에 강릉의 농사풀이와 웃다리농악 찍금놀이에서 무동과 법구잽이들이 마치 모를 심는 듯이 땅에 손을 내리꽂으면서 고갯짓을 하며 춤을 추는 놀이도 있다. 평택농악에서 판굿이 펼쳐지면 오방진이 끝나고 법고들이 두 줄로 들어와서 오른쪽과 왼쪽 줄이 번갈아가며 앉았다 일어섰다를 두 번씩 반복하는데, 이것을 절구댕이 법고라고 한다. 판굿이 펼쳐질 때 무동춤이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찍금놀이와 쩍쩍이춤 과정으로 무동과 법구잽이들이 마주보고 앉아서 마치 모를 심는 듯한 동작을 한다. ㄷ자 모양으로 당산을 벌리면 상쇠는 무동줄을 법고잽이 줄 앞으로 끌고 나와 무동들과 마주 서서 덩더궁이 장단에 맞춰 춤을 춘다. 상쇠와 함께 무동들이 제자리에 앉아 먼저 오른손을 들어 땅에 꽂고 고개를 오른쪽과 왼쪽으로 돌리며 논다. 다시 왼손을 들어 땅에 꽂아 고갯짓으로 논 다음, 두 손을 함께 땅에 찍고 고개를 놀린다. 무동이 일어나 제자리로 돌아가면 법고잽이들이 나와 상쇠와 함께 무동들이 했던 동작을 똑같이 반복한다. 쩍쩍이춤은 상쇠가 양산더드래기가락을 내면 다 같이 원을 따라 돌면서 시작한다. 양산더드래기가락을 칠 때 치배들은 안쪽을 향해 서서 친다. 법고와 무동은 안쪽을 향해 앉아 오른손은 앞으로 왼손은 뒤로 하고 춤을 춘다. 이것을 무동 깨끼춤이라고 한다. 상쇠가 마지막 가락을 칠 때 치배들은 바깥쪽을 향해 서서치고 법고와 무동은 바깥쪽을 향해 앉아서 춤을 춘다. 이후 연풍대가락으로 모두가 원진으로 돌면서 춤을 추다가 돌림법고를 한다. 돌림법고가 끝나면 가락을 털어주면서 당산벌림 때의 대형을 이루고 삼채를 친다. 법고와 무동들은 판의 한쪽에서 무동놀이를 준비한다. 이때 치배들은 느린 쩍쩍이 가락으로 무동놀이에 맞추고 묘기가 끝날 때마다 자진가락으로 몬다.특히 강릉농악의 판굿은 법고잽이와 소고잽이 무동들의 진법과 대형, 몸짓과 춤으로 진행된다. 무동은 시종일관 상쇠의 신호에 따라 농사짓는 행위를 모방하면서 법고잽이와 어울려 모 혹은 나락 등을 심고 거두는 연행을 한다. 법고잽이가 무동을 어깨에 지고 동고리를 받으며 최고 오동까지 받는다. 방아걸이는 법고잽이들이 동고리로 받은 무동을 뉘어 디딜방아를 올리고 내리는 흉내를 낸다. 방아 찧기에서 법고는 방아가 되고 소고잽이들은 방아의 중심대가 되며 무동은 방아 찧기와 키질을 묘사한다. 벼광이기에서 법고잽이가 말뚝이 되는가 하면, 벼 모으기에서는 무동이 볏단이 된다. 방아 찧기에서 법고잽이 두 명이 양 팔을 잡고 앉으면 그 위에 법고 한 명이 누워 양 다리를 벌린다. 법고 한명과 무동 한 명이 방아를 찧고 다른 무동 한 명은 키질과 써래질을 한다.

특징 및 의의

무동놀이는 풍농을 기원하는 풍속이자 전국 곳곳에서 세시 절기에 전승된 향토오락으로 성행했다. 조선의 향토오락에서 무동놀이는 마을에 거주하는 16세 이하의 여장한 소년들이 다리밟기, 정월 수신제, 초파일, 모내기철이나 머슴날, 김매기철, 호미씻이, 설이나 단오와 추석 등의 명절, 그리고 환갑연과 같은 잔치 때 연행한 민속으로 조사·보고되었다. 무동타기는 남녀의 성별보다는 가장형태와 어깨를 밟고 올라서서 춤과 기예를 펼치는 시각적 긴장감이 우선시된다. 무동놀이는 무대공연에서 활용도가 높으며 다양한 레퍼토리가 이어지는 막간을 이용하여 장면 전환을 위한 볼거리로 삽입되기도 했다.

참고문헌

20세기 전반기 극장연희의 종목과 그 특징(권도희, 한국음악연구47, 한국국악학회, 2010), 강릉농악(국립문화재연구소, 1997), 꼬레아 에꼬레아니(이돈수·이순우, 하늘재, 2009), 농악(정병호, 열화당, 1986), 농악현장의 해석(권은영, 민속원, 2014), 조선의 향토오락(村山智順, 박전열 역,집문당, 1992), 평택농악(천진기, 국립문화재연구소,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