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농악(江陵农乐)

한자명

江陵农乐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농악

집필자 장정룡(張正龍)

정의

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전승되는 마을 농악.

개관

강릉농악은 고대 무천제의 가무악에서 단초를 찾아볼 수 있으나, 조선시대 기록에서도 보인다. 강원도 관찰사를 역임한 성현成俔, 1439~1504은 <차강릉동헌운次江陵東軒韻>에서 “마을마다 퉁소와 북소리 울려 풍년을 즐기노라(村村簫鼓樂豊年).”라고 하여 500년 전 ‘소고악簫鼓樂’ 상황을 엿볼 수 있다. 1466년 윤3월 14일 세조대왕은 강릉 연곡리에 머물며 농가農歌를 잘 부르는 농부들을 모이게 하였다. 양양의 관노 동구리가 최고로 잘 불러 왕명으로 조석반을 먹이고 악공의 예로 가마를 따랐으며, 비단옷을 하사하였다는 내용이 『조선왕조실록』 권38에 전한다. 이 기록은 강릉농악과 농요의 깊은 역사적 관련성을 암시한다.
생육신인 남효온南孝溫, 1454~1492이 1485년 윤4월 11일에 쓴 「유금강산기遊金剛山記」에는 산신제 때 ‘취생고슬吹笙鼓瑟’한다고 하였다. 또한 강릉 출신 허균의 「대령산신찬병서大嶺山神贊竝書」(1603)에도 잡희雜戱로 산신을 맞이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때 연희악이 연주되었다. 1756년 「진경선조선강릉표착기津輕船朝鮮江陵漂着記」는 강릉에 표착했던 일본인들의 기록이다. 음력 5월 8일 동라銅鑼(꽹과리), 대고大鼓(북), 적笛(피리), 종鐘, 정鉦(징), 수비라手飛羅(자바라) 등을 연주하였다는 내용과 자반뛰기춤이나 국화꽃을 꽂은 무당춤, 씨름 등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
1928년 강릉단오제를 조사한 아키바 다카시秋葉隆에 따르면, 대관령 산신을 모시러 갈 때 행렬 선두에 태평소, 나팔수 각 2명, 6각(장고 1명, 대고 1명, 피리 1명, 해금 1명, 필률 1쌍)의 세악수 6명이 참가한다. 이들은 4월 보름 영신행차와 5월 5일 단옷날에도 관청과 성황당을 돌았다. 화각전도畵角前導로서 관노가 앞에서 태평소를 불었고, 농악 놀이, 탈놀이와 무당들이 산유가를 부르며 행진을 했다고 한다. 같은 시기인 1928년 단오 때 3만 명이 운집하여 강릉단양운동대회 농악대회가 개최되었다. 일등상은 성산면 유천대, 이등상은 강동면 운산대, 삼등상은 오봉대였다. 1929년 농악 대회에서는 옥천동 농악대가 이등상을 받았다.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1933)에는 무격의 악기 연주와 창우배 잡희로 신을 맞이한다고 기록하였다.
1937년에는 강릉단오운동회가 5일간 개최되었으며, 강릉농악대는 33개 단체에 8백여 명이 참가했다. 시내는 말두(30명), 옥거리(25명)·포람(20명)·송정(35명)·공제(25명)·이랠(25명), 정동면은 모솔·하람·경포·느름내에서 각 20명, 성덕면은 자림이·진재·회산·납돌에서 25명 내외, 성산면은 보괭이·무시골·우추리·소암, 사천면은 옘벤·산대월·구렘이·이설당·진리, 연곡면은 송림·행쟁이, 신리면은 새말·방우젱이 등 전 지역에서 20명에서 40명까지 출연하였다. 1938년 동아일보 강릉지국 주최로 제1회 강릉농악대회가 열렸다. 당시 33개 농악대에서 805여명이 참가하였다. 이 대회는 1939년 제2회를 끝으로 열리지 못 하였다.
1940년대부터 1960년대 사이에 구성된 명주군 농악대는 주문진읍 장덕리농악(1965년 편성, 상쇠 최찬환), 주문진읍 향호리농악(1969년 편성, 상쇠 최운식), 옥계면 남양리농악(1942년 편성, 상쇠 최상기) 등이 있었다. 이들 농악대는 정월대보름, 강릉 단오, 김맬 때 등에 연행하였다. 강릉농악은 1961년 제2회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출연하였고 1985년 12월 1일 국가무형문화재 제11-4호로 지정되었다. 1986년 11월 1일 강릉농악보존회가 결성되었으며, 현재 명예보유자는 박기하, 보유자는 정희철, 전수교육조교로 최동규·차주택·김남수·손호의·서수희가 지정되었다.
강릉농악은 동해안과 동해안 인접 경북 지역, 함경도 지역 농악과 연관성이 깊은 영동농악으로 걸립이나농사풀이, 고사반을 하는 두레굿 성격을 지닌다. 강릉 농악 상쇠 계보는 김달식·박기하·정희철 상쇠(현재기능보유자)로 이어지고 있으며, 다른 계보는 이만손·권오선·권태경 상쇠 계보, 신질봉·정선화 상쇠 계보, 신수영·권영하 상쇠 계보, 김용현·조규복 상쇠 계보 등이 있다. 강릉 지역 마을 농악대는 총 7개 단체로 강남동농악대(1950년대 이전 창단, 구 월호평농악대, 대장 강진화), 경포동농악대(1956년 창단, 대장 김대경), 교동농악대(2004년 창단, 대장 조수현), 달맞이농악대(1996년 창단, 대장 정정자), 사천하평농악대(1950년대 이전창단, 대장 허권), 성덕동농악대(1975년 창단 , 대장 권오윤), 홍제동농악대(2007년 창단, 대장 김영랑) 등이 있으며 어린이 농악대도 운영되고 있다.

강릉농악은 국가무형문화재이며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강원 영동 지역 동해안권역에서 발생하여 자리를 잡았다. 정초 무렵 걸립, 고사반, 지신밟기를 할 때 농악을 연행하며, 매년 단오제 신목 행차를선도하며 마을 농악대가 축제를 즐긴다. 강릉농악은 무동춤, 법고와 소고의 상모놀이가 눈여겨볼 만하고, 모심기, 김매기, 타작 등 농사풀이라는 이른바 농식 놀이가 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하면서도 빠르고 회선완전回旋宛轉하는 원시적 농경의례의 제의성과 소박미를 갖추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강릉농악대의 구성은 25명에서 40명 내외이며, 빠르고 경쾌한 12채 가락에 맞추어 판놀이와 악기 연주를 펼친다. 구성은 농기, 단기, 호적수(날나리, 쇄납) 1명, 꽹과리 3명(상쇠·부쇠·삼쇠), 징수 2명, 장고수 2명, 큰북수 3명, 소고수 8명, 법고수8명, 무동 8명으로 구성된다. 과거에는 화동이 있었고, 열두발 상모수가 포함된다.
강릉농악 가락은 ‘채’라는 용어를 쓰는데 일채, 이채, 삼채, 사채, 길놀이, 굿거리, 질꼬내기(구식 길군악), 12채 등이 있다. 일채는 한 마치로 ‘천부당만부당’이라고 하는데, 마당굿에서 사용되는 가락으로 매우 빠른 4박(12/8박자)이다. 이채는 2분박 좀 빠른 4박자(4/4박자), 삼채가락은 3분박 좀 빠른 4박자이다. 사채는 3분박 빠른 4박자(12/8박자), 길놀이는 행진할 때 쓰이는 것으로 2분박 조금 빠른 4박자(4/4박자), 굿거리는 춤 출 때 친다. 3분박 느린 4박자(12/8박자), 구식 길놀이 질꼬내기가락은 행진 시 치는데 3분박 보통 빠른 4박자(12/8)이다.
강릉농악대 복색은 기본적으로 삼베모시 중적삼이나 흰 바지저고리를 입는다. 청색조끼에 왼쪽 어깨에 청색 띠, 오른쪽 어깨에는 노란색, 허리에는 적색띠 등 삼색띠를 두른다. 호적수와 농기수는 바지저고리에 청홍황색의 삼색띠를 두르고, 고깔을 쓴다. 상쇠는 상공원이라고도 하는데, 바지저고리에 남색등지기, 삼색띠를 띠며 상모가 달린 벙거지를 쓴다. 꽹과리(꽹매기)채에는 여러 색의 천을 매달아서 흔든다. 부쇠와 삼쇠는 같은 복장에 상모지를 단 벙거지를 쓴다. 징수(징잽이)와 장고수(장고잽이), 북수(큰북잽이)는 바지저고리에 삼색띠를 매고 상모지가 달리지 않은 길이가 짧고 폭이 넓은 퍽상(방망이상모, 말뚝상모)을 단다. 소고수는 ‘소구잽이’라고도 하며, 상소고와 끝소고로 나뉘며 전체를 ‘8소고’라고 한다.
복장은 징수와 같고 수건을 머리에 쓰고 퍽을 단 벙거지를 쓴다. 법고는 ‘벅구잽이’라고 하며, 소고보다 작은 ‘미지기’라는 악기를 들고 나온다. 이들은 태극이 그려진 북을 들며 상모지가 달린 벙거지를 쓴다. 무동은 붉은 치마 노랑저고리에 남색쾌자, 색띠, 고깔을 쓰며, 한손에는 수건을 들고 다른 손으로 쾌자를 잡고 좌우로흔든다. 벙거지는 상모를 칭하는데 소고를 제외하고는 벙거지에 채산이를 한다. 소고는 ‘퍽’, ‘퍽상’, ‘퍽상모 ’, 일명 ‘말뚝상모’를 앞에 단다. 퍽상은 상모 끝에 30㎝정도의 철사를 달고, 문종이를 잘게 썰어 깃털처럼 붙이고 끝에는 붉은 색 꽃을 단다. 고깔은 두꺼운 종이를 여러 겹으로 붙여 만들며, 한지로 오색꽃을 만들어 붙인다.
농악대 춤사위는 남성들로 구성된 무동舞童의 춤사위, 농사풀이에 참가하는 소고(상모)춤사위와 법고(벙거지)춤사위가 있다. 개인놀이로 열두발 상모춤사위, 상쇠춤사위, 장고춤사위 등이 있다. 상쇠는 꽹과리를 들고 채를 8자형 양상치기로 돌리고, 외상모와 양상모, 꼭두상모춤 등 개인놀이를 보인다. 강릉농악 무동은 화려한 청의홍상綠衣紅裳의 복색과 함께 고깔을 쓰고 쾌자를 입고, 수건을 쥐고 좌우로 흔들어 춤춘다. 특히 오른손바닥과 왼손바닥이 서로 마주 보게 하거나 반대로 엇갈리게 하고, 팔을 양 옆으로 벌려서 흔드는 춤을 춘다. 이것은 1800년대 『경도잡지京都雜誌』 「성기조聲伎條」에나오는 ‘여번수女翻手(여자춤은 손바닥을 뒤집는다)’는 표현이 연상된다. 소고춤의 특징적인 모습은 몸을 땅을 보고 앞으로 숙이고, 소고를 앞에서 한 번 치고 좌우로 몸을 틀면서 앞으로 뛰어나가며 춘다. 또한 팔자형으로 양손을 머리 위에서 올렸다가 내리는 춤, 제자리에서 뛰면서 상모를 돌리고 소고를 몸 앞에서 가슴으로 올렸다 내렸다하는 춤 등이 있다. 땅을 발로 차고 고개를 숙였다가 하늘을 우러르는 ‘답지저앙踏地低昻’이나 손발이 서로 대응하는 ‘수족상응手足相應’의 옛 춤사위와 유사하다. 강릉농악에서는 걸립을 덤불놀이, 소고를 두꺼비, 법고를 무지개, 상쇠를 상고님, 끝무동은 오동동, 무동을 청나비라는 은어를 사용한다.

판굿

판굿은 강릉농악의 주제와 예술적 형상화가 전개되는 것으로 농사일의 진행 과정과 기쁨, 두레 농경의 생활 풍습 등이 연행된다. 하나는 농사풀이 즉 농경 춤이고 다음은 풍년을 구가하는 환희 춤, 그리고 두레 조직력과 단합을 과시하는 진놀이다. 판굿은 일명 판짜기, 마당굿이라고도 한다. 강릉농악의 놀이마당과 순서는 인사굿, 두루치기, 발맞추기, 성황모시기, 칠채멍석말이, 오방지신밟기, 황덕굿, 농사풀이, 오고북놀이, 팔도진놀이, 삼동고리, 열두발상모, 굿거리, 뒤풀이 여흥 놀이까지 열두 과장이다.
판굿의 특징은 외가락을 반복하면서 제자리 춤 없이 앞으로 나간다. 행진법은 정방형, 제조대형, 디귿(ㄷ)자형 멍석발이, 오방진이 있다. 과거 수렵 모습이나 논밭갈이 하는 농경의 거친 일터의 모습도 엿보인다. 판굿 전개에는 언제나 다른 과장으로 넘어갈 때 큰 원의 판에서 바뀌는 점, 가락은 판을 만들 때 사채, 놀 때는 삼채, 이채, 일채로 바뀐다. 삼채에서는 오른쪽 옆으로 한발자국씩 옮기며, 이채에서는 상모 돌리고 발을 올리며, 무동 춤사위가 빨라진다. 일체에서도 같은 춤사위가 점점 빨라진다. 농사풀이에서는 악사의 위치가 반드시 판굿 대형의 오른쪽에 위치한다. 마을 농악대 간에 다소 차이가 있으나 성황굿(사설), 멍석말이, 지신밟기, 십자놀이, 소고황덕굿, 법고황덕굿, 무동황덕굿, 황덕굿, 농사풀이, 자매놀이, 오고북놀이, 굿거리, 동고리받기, 장구통놀이, 12발상모 등이 있다.
농사풀이는 12가지부터 20여 가지가 연행되는데, 풍년을 기원하는 뜻으로 다양한 모의 농경으로 진행된다. 한 해 동안의 모심기 농사의 시작부터 수확의 끝까지 과정을 보여 주며, 소고, 법고, 무동이 연희에 참여한다. 무동은 제자리에서 연주하고, 사채를 치면서 법고잽이가 놀이판으로 들어가고 무동들이 선다. 법고는 세명씩 한 조가 되어 느린 일체에 맞추어 가래질 동작을 한다. 세 명은 가래질하고 한 명은 땅을 밟아 주며, 한 사람은 땅을 고르는 동작을 한다. 논갈이와 논심기는 법고와 소고가 사채에 맞추어 두 줄로 선다. 한 패는 농부가 되어 논갈이 하는 동작, 한 패는 써레질로 땅을 고르는 동작을 한다. 법고는 소가 되면 법고의 상모꼬리를 잡고 소고가 소를 끄는 농부가 된다.
못자리누르기는 무동들이 사채장단으로 들어가서 소고 앞에 한 줄로 선다. 다음 삼채에 맞추어 엎드려 뒤로 물러가면서 손으로 못자리를 누르는 동작을 보인다. 볍씨뿌리기는 소고잽이들이 소고를 씨앗망태로 삼아 볍씨를 뿌리는 동작을 한다. 모찌기와 모심기는 사채장단에 맞추어 무동과 소고, 법고가 두 줄로 선다. 소고와 법고가 앉아서 모를 양손으로 찌는 흉내를 내면서 전진한다. 모심는 동작을 율동적으로 하고, 무동들은 모를 나르는 동작을 한다. 논매기는 사채장단을 치면서 소고, 법고, 무동이 원형을 만들면 중심에 징과 상쇠가 들어간다. ‘강릉오독떼기’나 ‘자진아라리’를 부르며 논매는 시늉을 하고 원의 중심으로 들어간다. 메기고 받는 소리를 하고 논을 다 매고 나면 마지막에 일제히 손을 들어 “와” 하고 환호를 지른다.
낫갈기는 벼 수확을 앞둔 준비 과정으로 소고와 법고가 한 줄로 앉아 소고를 발 사이에 끼고 낫을 간다. 벼 베기는 수확 연행으로 법고와 무동이 나란히 서면 법고가 벼를 묶어 뒷줄 무동에게 준다. 벼광이기는 볏단을 세우는 과정으로 무동 8명이 한 덩어리가 되어 상쇠의 지휘대로 엑스자로 세워 마치 볏단을 세운 것과 같은 모습을 연출한다. 벼타작은 태치기라고도 하는데, 북두 개를 태상으로 만들어 중간에 놓는다. 법고 3명이 한조가 되어 태질하고, 소고는 도리깨질을 한다. 벼 모으기는 무동, 법고, 소고들이 원형으로 둘러싸고, 나락을 끌어 모은다. 풍년가를 부르면서 무동은 벼무지기가 되고, 소고와 법고가 벼를 모으는 동작을 한다. 방아찧기는 알곡을 찧는 모습으로 법고 3명이 방아를 만든다. 두 다리는 방아다리가 되고, 머리는 방아공이가 된다. 무동들이 나와서 방아찧기와 키질을 한다. 이렇게 벼 방아찧기를 하면 농사풀이는 끝나게 된다.
개인놀이는 단동고리, 삼동고리, 오동고리받기가 있으며, 법고춤, 무동춤, 열두발 상모 순으로 한다. 단동고리는 1층으로 무동타기, 삼동고리받기는 3층 무동타기다. 오동고리받기는 가장 어렵고 힘이 들지만 볼거리를 장식한다. 열두발상모는 놀이판 중앙에서 뒤에 손을 합치고 외사, 양사, 땅에 엎드려 외사 등의 묘기를 보인다. 팔진법은 쇠, 징, 장고, 북 등이 한 조가 되고 소고, 법고, 무동 등이 한 조가 된다. 이열의 원을 만들어 행진하다가 각 열이 여덟 번 각을 만들면서 팔진법을 그린다.
지신밟기는 정월대보름부터 시작한다. 농악대가 질꼬내기(길군악가락)을 치면서 서낭당을 가서 서낭 굿 사채를 치고 절을 한다. 다음에 서낭기를 들고 개인 집에 들려 지신을 밟는다. 먼저 문굿을 치고, 멍석말이, 황덕굿, 진놀이, 농사풀이, 자매놀이 등을 논다. 마당굿, 문전굿, 안택굿, 용왕굿, 장독굿 등으로 고사반을 상쇠가 치면서 고축하고 집 안 구석구석을 돈다. 마지막으로 농악대가 마당에서 이르면 고사상을 차려 놓는다. 소반에는 쌀과 주과포 등을 놓고 그 위에 수명장수를 비는 실과 재복을 기원하는 돈을 올려놓는다. 상쇠는 집안 안녕과 자손 번영, 육축 번성을 기원한다. 걸립 굿은 농악대가 공금을 걷기 위해서 하는데, 영좌, 대방, 청수 등 임원을 정한다. 이들이 상공원 악사들에게 굿패 조직을 일임한다. 걸립 나가기 하루 전에 서낭을 모신다. 서낭기를 앞세우고 악기를 치면서 서낭당에 가서 서낭기를 세운다. 주과포 등 제물을 차려 제를 지내고 서낭굿을 친다.
다리밟기굿은 답교踏橋농악이라고도 한다. 남대천다리의 양쪽 10개 마을 간에 또는 송정과 초당마을의 억지다리나 사천 하평 지역에서 정월대보름, 2월 초엿샛날 좀상날 다리를 밟으면서 농악 놀이를 한다. 저녁에 농악대원들이 모여서 질꼬내기를 치면서 다리를 향하면, 남녀노소가 광솔에 횃불을 붙여 든다. 달이 뜨면 다리를 먼저 밟기 위해서 다리위로 올라간다. 양 마을 간에 상쇠가 쇠절금으로 겨루기를 하면서 다리뺏기를 한다. 다리를 먼저 차지한 마을이 풍년이 든다는 믿음에서 이와 같이 행한다.
강릉의 질먹기는 ‘질’을 짜서 농사일을 하고 나서 한마당 잔치를 펼치는 농군의 명절이다. ‘질’은 강릉 지역에서만 사용하는 ‘두레’와 같은 용어로서 모심기나 김맬 때 농악을 치고, 두레패를 짠다. ‘질’은 차례 ‘질秩’의 의미로서, 두레패를 짜서 일의 순서를 정하는 것을 ‘질짠다’, ‘질레짠다’ ‘들계짠다’고도 한다. 보통 25명 내외로 질을 짜는데 농군 성인식인 판례는 15세 무렵에 하였다. 영좌는 농악대의 우두머리로서 좌상이라고도 한다. “아무개는 이제 판례를 했으니, 어울려 질을 짜서 일을 하시오.”라고 일꾼이 되었음을 명하면 품회계(품앗이) 일원이 된다. 김을 매는 아이짐(초벌김매기), 두벌짐, 세벌짐(짐은 김매기의 방언)을 매는 농번기가 끝나는 7월 보름 경에 ‘질먹는다’고 하루 날을 받아서 푸짐한 음식을 차려 놓고 하루 종일 논다. 그 뒤에 ‘질헤친다’고 하여 해산한다. 이것은 일종의 세서연洗鋤宴(호미씻이)으로 농군들을 위하여 논 주인들이 베푸는 ‘일꾼잔치’다. 1930년대의 기록에 무려 40가지의 질상음식이 등장한다.

특징 및 의의

강릉농악의 특징은 첫째로 농사풀이이다. 이는 농악의 생산 연행적 근간을 말하는 사례이다. 8소고, 8법고, 8무동이 논갈이부터 벼베기, 방아찧기에 이르기까지 수십 가지의 모의 농경 연행으로 합작과 유기적 연대를 이룬다. 이는 농사 과정을 역동적이고 창의적으로 형상화한 농경문화의 차별화된 연행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둘째로 고사반告祀盤을 상쇠가 주도하여 정월대보름 걸립굿을 할 때 가정에서 농악대를 위해 쌀과 실 등을 장만하면 순례하면서 안녕을 기원하는 고사반을 친다. 강릉농악의 고사반은 다른 지역 구연내용보다 길고, 내용도 다양한 점이 특징이다. 셋째, 세시 풍속 연행으로 다양하게 진행된다. 정초 지신밟기, 정월대보름 달맞이, 횃불싸움, 다리밟기를 하고, 2월 초엿새 좀상날에는 농악대 쇠절금으로 마을에 놓인 나무다리를 서로 뺏기도 하면서 이긴 마을과 진 마을 간에 농작의 풍흉년을 점친다. 음력 3월에는 화전놀이를 가는 데 ‘꽃다림’이라 하여 여성들과 농악대도 하루 종일 음식을 차려서 먹고 즐긴다. 음력 5월 대관령국사성황제의 길놀이를 선도하고, 두레 농악이라 할 수 있는 모심기, 질먹기 농악을 하며, 이후에는 뱃놀이를 한다. 넷째, 전체적으로 빠르고 박력 있는 쇠가락과 세련된 춤사위를 구사하는데, 마치 전 과장에서 뛰어다니는 것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 악기 편성에서 소고와 법고가 확연히 구분되며, 무동까지 각 8명씩 구성된다. 오동고리받기는 강릉농악의 힘과 기량을 보여 준다. 다섯째, 조직과 운영에서 보유자 및 마을 농악대원들로 하나의 대표 농악대를 구성한다. 마을 농악대는 각자의 체계를 유지하면서 대외적으로 강릉농악의 전형성을 갖추고 기량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

참고문헌

강릉농악(천진기·이준석, 국립문화재연구소, 1997), 강릉농악(강릉농악보존회, 2012), 강릉농악논총(장정룡 외, 강릉농악보존회, 2015), 강릉농악의 문화재적 가치와 연구사적 검토(장정룡, KBS강릉방송국, 2011),강릉단오제 농악(장정룡, 월간태백 강원일보사, 1997.7), 강릉단오제 현장론탐구(장정룡, 국학자료원, 2007), 조선의 농악무(김선영, 사회과학출판사,2013).

강릉농악

강릉농악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농악

집필자 장정룡(張正龍)

정의

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전승되는 마을 농악.

개관

강릉농악은 고대 무천제의 가무악에서 단초를 찾아볼 수 있으나, 조선시대 기록에서도 보인다. 강원도 관찰사를 역임한 성현成俔, 1439~1504은 에서 “마을마다 퉁소와 북소리 울려 풍년을 즐기노라(村村簫鼓樂豊年).”라고 하여 500년 전 ‘소고악簫鼓樂’ 상황을 엿볼 수 있다. 1466년 윤3월 14일 세조대왕은 강릉 연곡리에 머물며 농가農歌를 잘 부르는 농부들을 모이게 하였다. 양양의 관노 동구리가 최고로 잘 불러 왕명으로 조석반을 먹이고 악공의 예로 가마를 따랐으며, 비단옷을 하사하였다는 내용이 『조선왕조실록』 권38에 전한다. 이 기록은 강릉농악과 농요의 깊은 역사적 관련성을 암시한다.생육신인 남효온南孝溫, 1454~1492이 1485년 윤4월 11일에 쓴 「유금강산기遊金剛山記」에는 산신제 때 ‘취생고슬吹笙鼓瑟’한다고 하였다. 또한 강릉 출신 허균의 「대령산신찬병서大嶺山神贊竝書」(1603)에도 잡희雜戱로 산신을 맞이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때 연희악이 연주되었다. 1756년 「진경선조선강릉표착기津輕船朝鮮江陵漂着記」는 강릉에 표착했던 일본인들의 기록이다. 음력 5월 8일 동라銅鑼(꽹과리), 대고大鼓(북), 적笛(피리), 종鐘, 정鉦(징), 수비라手飛羅(자바라) 등을 연주하였다는 내용과 자반뛰기춤이나 국화꽃을 꽂은 무당춤, 씨름 등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1928년 강릉단오제를 조사한 아키바 다카시秋葉隆에 따르면, 대관령 산신을 모시러 갈 때 행렬 선두에 태평소, 나팔수 각 2명, 6각(장고 1명, 대고 1명, 피리 1명, 해금 1명, 필률 1쌍)의 세악수 6명이 참가한다. 이들은 4월 보름 영신행차와 5월 5일 단옷날에도 관청과 성황당을 돌았다. 화각전도畵角前導로서 관노가 앞에서 태평소를 불었고, 농악 놀이, 탈놀이와 무당들이 산유가를 부르며 행진을 했다고 한다. 같은 시기인 1928년 단오 때 3만 명이 운집하여 강릉단양운동대회 농악대회가 개최되었다. 일등상은 성산면 유천대, 이등상은 강동면 운산대, 삼등상은 오봉대였다. 1929년 농악 대회에서는 옥천동 농악대가 이등상을 받았다.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1933)에는 무격의 악기 연주와 창우배 잡희로 신을 맞이한다고 기록하였다.1937년에는 강릉단오운동회가 5일간 개최되었으며, 강릉농악대는 33개 단체에 8백여 명이 참가했다. 시내는 말두(30명), 옥거리(25명)·포람(20명)·송정(35명)·공제(25명)·이랠(25명), 정동면은 모솔·하람·경포·느름내에서 각 20명, 성덕면은 자림이·진재·회산·납돌에서 25명 내외, 성산면은 보괭이·무시골·우추리·소암, 사천면은 옘벤·산대월·구렘이·이설당·진리, 연곡면은 송림·행쟁이, 신리면은 새말·방우젱이 등 전 지역에서 20명에서 40명까지 출연하였다. 1938년 동아일보 강릉지국 주최로 제1회 강릉농악대회가 열렸다. 당시 33개 농악대에서 805여명이 참가하였다. 이 대회는 1939년 제2회를 끝으로 열리지 못 하였다.1940년대부터 1960년대 사이에 구성된 명주군 농악대는 주문진읍 장덕리농악(1965년 편성, 상쇠 최찬환), 주문진읍 향호리농악(1969년 편성, 상쇠 최운식), 옥계면 남양리농악(1942년 편성, 상쇠 최상기) 등이 있었다. 이들 농악대는 정월대보름, 강릉 단오, 김맬 때 등에 연행하였다. 강릉농악은 1961년 제2회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출연하였고 1985년 12월 1일 국가무형문화재 제11-4호로 지정되었다. 1986년 11월 1일 강릉농악보존회가 결성되었으며, 현재 명예보유자는 박기하, 보유자는 정희철, 전수교육조교로 최동규·차주택·김남수·손호의·서수희가 지정되었다.강릉농악은 동해안과 동해안 인접 경북 지역, 함경도 지역 농악과 연관성이 깊은 영동농악으로 걸립이나농사풀이, 고사반을 하는 두레굿 성격을 지닌다. 강릉 농악 상쇠 계보는 김달식·박기하·정희철 상쇠(현재기능보유자)로 이어지고 있으며, 다른 계보는 이만손·권오선·권태경 상쇠 계보, 신질봉·정선화 상쇠 계보, 신수영·권영하 상쇠 계보, 김용현·조규복 상쇠 계보 등이 있다. 강릉 지역 마을 농악대는 총 7개 단체로 강남동농악대(1950년대 이전 창단, 구 월호평농악대, 대장 강진화), 경포동농악대(1956년 창단, 대장 김대경), 교동농악대(2004년 창단, 대장 조수현), 달맞이농악대(1996년 창단, 대장 정정자), 사천하평농악대(1950년대 이전창단, 대장 허권), 성덕동농악대(1975년 창단 , 대장 권오윤), 홍제동농악대(2007년 창단, 대장 김영랑) 등이 있으며 어린이 농악대도 운영되고 있다.

강릉농악은 국가무형문화재이며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강원 영동 지역 동해안권역에서 발생하여 자리를 잡았다. 정초 무렵 걸립, 고사반, 지신밟기를 할 때 농악을 연행하며, 매년 단오제 신목 행차를선도하며 마을 농악대가 축제를 즐긴다. 강릉농악은 무동춤, 법고와 소고의 상모놀이가 눈여겨볼 만하고, 모심기, 김매기, 타작 등 농사풀이라는 이른바 농식 놀이가 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하면서도 빠르고 회선완전回旋宛轉하는 원시적 농경의례의 제의성과 소박미를 갖추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강릉농악대의 구성은 25명에서 40명 내외이며, 빠르고 경쾌한 12채 가락에 맞추어 판놀이와 악기 연주를 펼친다. 구성은 농기, 단기, 호적수(날나리, 쇄납) 1명, 꽹과리 3명(상쇠·부쇠·삼쇠), 징수 2명, 장고수 2명, 큰북수 3명, 소고수 8명, 법고수8명, 무동 8명으로 구성된다. 과거에는 화동이 있었고, 열두발 상모수가 포함된다.강릉농악 가락은 ‘채’라는 용어를 쓰는데 일채, 이채, 삼채, 사채, 길놀이, 굿거리, 질꼬내기(구식 길군악), 12채 등이 있다. 일채는 한 마치로 ‘천부당만부당’이라고 하는데, 마당굿에서 사용되는 가락으로 매우 빠른 4박(12/8박자)이다. 이채는 2분박 좀 빠른 4박자(4/4박자), 삼채가락은 3분박 좀 빠른 4박자이다. 사채는 3분박 빠른 4박자(12/8박자), 길놀이는 행진할 때 쓰이는 것으로 2분박 조금 빠른 4박자(4/4박자), 굿거리는 춤 출 때 친다. 3분박 느린 4박자(12/8박자), 구식 길놀이 질꼬내기가락은 행진 시 치는데 3분박 보통 빠른 4박자(12/8)이다.강릉농악대 복색은 기본적으로 삼베모시 중적삼이나 흰 바지저고리를 입는다. 청색조끼에 왼쪽 어깨에 청색 띠, 오른쪽 어깨에는 노란색, 허리에는 적색띠 등 삼색띠를 두른다. 호적수와 농기수는 바지저고리에 청홍황색의 삼색띠를 두르고, 고깔을 쓴다. 상쇠는 상공원이라고도 하는데, 바지저고리에 남색등지기, 삼색띠를 띠며 상모가 달린 벙거지를 쓴다. 꽹과리(꽹매기)채에는 여러 색의 천을 매달아서 흔든다. 부쇠와 삼쇠는 같은 복장에 상모지를 단 벙거지를 쓴다. 징수(징잽이)와 장고수(장고잽이), 북수(큰북잽이)는 바지저고리에 삼색띠를 매고 상모지가 달리지 않은 길이가 짧고 폭이 넓은 퍽상(방망이상모, 말뚝상모)을 단다. 소고수는 ‘소구잽이’라고도 하며, 상소고와 끝소고로 나뉘며 전체를 ‘8소고’라고 한다.복장은 징수와 같고 수건을 머리에 쓰고 퍽을 단 벙거지를 쓴다. 법고는 ‘벅구잽이’라고 하며, 소고보다 작은 ‘미지기’라는 악기를 들고 나온다. 이들은 태극이 그려진 북을 들며 상모지가 달린 벙거지를 쓴다. 무동은 붉은 치마 노랑저고리에 남색쾌자, 색띠, 고깔을 쓰며, 한손에는 수건을 들고 다른 손으로 쾌자를 잡고 좌우로흔든다. 벙거지는 상모를 칭하는데 소고를 제외하고는 벙거지에 채산이를 한다. 소고는 ‘퍽’, ‘퍽상’, ‘퍽상모 ’, 일명 ‘말뚝상모’를 앞에 단다. 퍽상은 상모 끝에 30㎝정도의 철사를 달고, 문종이를 잘게 썰어 깃털처럼 붙이고 끝에는 붉은 색 꽃을 단다. 고깔은 두꺼운 종이를 여러 겹으로 붙여 만들며, 한지로 오색꽃을 만들어 붙인다.농악대 춤사위는 남성들로 구성된 무동舞童의 춤사위, 농사풀이에 참가하는 소고(상모)춤사위와 법고(벙거지)춤사위가 있다. 개인놀이로 열두발 상모춤사위, 상쇠춤사위, 장고춤사위 등이 있다. 상쇠는 꽹과리를 들고 채를 8자형 양상치기로 돌리고, 외상모와 양상모, 꼭두상모춤 등 개인놀이를 보인다. 강릉농악 무동은 화려한 청의홍상綠衣紅裳의 복색과 함께 고깔을 쓰고 쾌자를 입고, 수건을 쥐고 좌우로 흔들어 춤춘다. 특히 오른손바닥과 왼손바닥이 서로 마주 보게 하거나 반대로 엇갈리게 하고, 팔을 양 옆으로 벌려서 흔드는 춤을 춘다. 이것은 1800년대 『경도잡지京都雜誌』 「성기조聲伎條」에나오는 ‘여번수女翻手(여자춤은 손바닥을 뒤집는다)’는 표현이 연상된다. 소고춤의 특징적인 모습은 몸을 땅을 보고 앞으로 숙이고, 소고를 앞에서 한 번 치고 좌우로 몸을 틀면서 앞으로 뛰어나가며 춘다. 또한 팔자형으로 양손을 머리 위에서 올렸다가 내리는 춤, 제자리에서 뛰면서 상모를 돌리고 소고를 몸 앞에서 가슴으로 올렸다 내렸다하는 춤 등이 있다. 땅을 발로 차고 고개를 숙였다가 하늘을 우러르는 ‘답지저앙踏地低昻’이나 손발이 서로 대응하는 ‘수족상응手足相應’의 옛 춤사위와 유사하다. 강릉농악에서는 걸립을 덤불놀이, 소고를 두꺼비, 법고를 무지개, 상쇠를 상고님, 끝무동은 오동동, 무동을 청나비라는 은어를 사용한다.

판굿

판굿은 강릉농악의 주제와 예술적 형상화가 전개되는 것으로 농사일의 진행 과정과 기쁨, 두레 농경의 생활 풍습 등이 연행된다. 하나는 농사풀이 즉 농경 춤이고 다음은 풍년을 구가하는 환희 춤, 그리고 두레 조직력과 단합을 과시하는 진놀이다. 판굿은 일명 판짜기, 마당굿이라고도 한다. 강릉농악의 놀이마당과 순서는 인사굿, 두루치기, 발맞추기, 성황모시기, 칠채멍석말이, 오방지신밟기, 황덕굿, 농사풀이, 오고북놀이, 팔도진놀이, 삼동고리, 열두발상모, 굿거리, 뒤풀이 여흥 놀이까지 열두 과장이다.판굿의 특징은 외가락을 반복하면서 제자리 춤 없이 앞으로 나간다. 행진법은 정방형, 제조대형, 디귿(ㄷ)자형 멍석발이, 오방진이 있다. 과거 수렵 모습이나 논밭갈이 하는 농경의 거친 일터의 모습도 엿보인다. 판굿 전개에는 언제나 다른 과장으로 넘어갈 때 큰 원의 판에서 바뀌는 점, 가락은 판을 만들 때 사채, 놀 때는 삼채, 이채, 일채로 바뀐다. 삼채에서는 오른쪽 옆으로 한발자국씩 옮기며, 이채에서는 상모 돌리고 발을 올리며, 무동 춤사위가 빨라진다. 일체에서도 같은 춤사위가 점점 빨라진다. 농사풀이에서는 악사의 위치가 반드시 판굿 대형의 오른쪽에 위치한다. 마을 농악대 간에 다소 차이가 있으나 성황굿(사설), 멍석말이, 지신밟기, 십자놀이, 소고황덕굿, 법고황덕굿, 무동황덕굿, 황덕굿, 농사풀이, 자매놀이, 오고북놀이, 굿거리, 동고리받기, 장구통놀이, 12발상모 등이 있다.농사풀이는 12가지부터 20여 가지가 연행되는데, 풍년을 기원하는 뜻으로 다양한 모의 농경으로 진행된다. 한 해 동안의 모심기 농사의 시작부터 수확의 끝까지 과정을 보여 주며, 소고, 법고, 무동이 연희에 참여한다. 무동은 제자리에서 연주하고, 사채를 치면서 법고잽이가 놀이판으로 들어가고 무동들이 선다. 법고는 세명씩 한 조가 되어 느린 일체에 맞추어 가래질 동작을 한다. 세 명은 가래질하고 한 명은 땅을 밟아 주며, 한 사람은 땅을 고르는 동작을 한다. 논갈이와 논심기는 법고와 소고가 사채에 맞추어 두 줄로 선다. 한 패는 농부가 되어 논갈이 하는 동작, 한 패는 써레질로 땅을 고르는 동작을 한다. 법고는 소가 되면 법고의 상모꼬리를 잡고 소고가 소를 끄는 농부가 된다.못자리누르기는 무동들이 사채장단으로 들어가서 소고 앞에 한 줄로 선다. 다음 삼채에 맞추어 엎드려 뒤로 물러가면서 손으로 못자리를 누르는 동작을 보인다. 볍씨뿌리기는 소고잽이들이 소고를 씨앗망태로 삼아 볍씨를 뿌리는 동작을 한다. 모찌기와 모심기는 사채장단에 맞추어 무동과 소고, 법고가 두 줄로 선다. 소고와 법고가 앉아서 모를 양손으로 찌는 흉내를 내면서 전진한다. 모심는 동작을 율동적으로 하고, 무동들은 모를 나르는 동작을 한다. 논매기는 사채장단을 치면서 소고, 법고, 무동이 원형을 만들면 중심에 징과 상쇠가 들어간다. ‘강릉오독떼기’나 ‘자진아라리’를 부르며 논매는 시늉을 하고 원의 중심으로 들어간다. 메기고 받는 소리를 하고 논을 다 매고 나면 마지막에 일제히 손을 들어 “와” 하고 환호를 지른다.낫갈기는 벼 수확을 앞둔 준비 과정으로 소고와 법고가 한 줄로 앉아 소고를 발 사이에 끼고 낫을 간다. 벼 베기는 수확 연행으로 법고와 무동이 나란히 서면 법고가 벼를 묶어 뒷줄 무동에게 준다. 벼광이기는 볏단을 세우는 과정으로 무동 8명이 한 덩어리가 되어 상쇠의 지휘대로 엑스자로 세워 마치 볏단을 세운 것과 같은 모습을 연출한다. 벼타작은 태치기라고도 하는데, 북두 개를 태상으로 만들어 중간에 놓는다. 법고 3명이 한조가 되어 태질하고, 소고는 도리깨질을 한다. 벼 모으기는 무동, 법고, 소고들이 원형으로 둘러싸고, 나락을 끌어 모은다. 풍년가를 부르면서 무동은 벼무지기가 되고, 소고와 법고가 벼를 모으는 동작을 한다. 방아찧기는 알곡을 찧는 모습으로 법고 3명이 방아를 만든다. 두 다리는 방아다리가 되고, 머리는 방아공이가 된다. 무동들이 나와서 방아찧기와 키질을 한다. 이렇게 벼 방아찧기를 하면 농사풀이는 끝나게 된다.개인놀이는 단동고리, 삼동고리, 오동고리받기가 있으며, 법고춤, 무동춤, 열두발 상모 순으로 한다. 단동고리는 1층으로 무동타기, 삼동고리받기는 3층 무동타기다. 오동고리받기는 가장 어렵고 힘이 들지만 볼거리를 장식한다. 열두발상모는 놀이판 중앙에서 뒤에 손을 합치고 외사, 양사, 땅에 엎드려 외사 등의 묘기를 보인다. 팔진법은 쇠, 징, 장고, 북 등이 한 조가 되고 소고, 법고, 무동 등이 한 조가 된다. 이열의 원을 만들어 행진하다가 각 열이 여덟 번 각을 만들면서 팔진법을 그린다.지신밟기는 정월대보름부터 시작한다. 농악대가 질꼬내기(길군악가락)을 치면서 서낭당을 가서 서낭 굿 사채를 치고 절을 한다. 다음에 서낭기를 들고 개인 집에 들려 지신을 밟는다. 먼저 문굿을 치고, 멍석말이, 황덕굿, 진놀이, 농사풀이, 자매놀이 등을 논다. 마당굿, 문전굿, 안택굿, 용왕굿, 장독굿 등으로 고사반을 상쇠가 치면서 고축하고 집 안 구석구석을 돈다. 마지막으로 농악대가 마당에서 이르면 고사상을 차려 놓는다. 소반에는 쌀과 주과포 등을 놓고 그 위에 수명장수를 비는 실과 재복을 기원하는 돈을 올려놓는다. 상쇠는 집안 안녕과 자손 번영, 육축 번성을 기원한다. 걸립 굿은 농악대가 공금을 걷기 위해서 하는데, 영좌, 대방, 청수 등 임원을 정한다. 이들이 상공원 악사들에게 굿패 조직을 일임한다. 걸립 나가기 하루 전에 서낭을 모신다. 서낭기를 앞세우고 악기를 치면서 서낭당에 가서 서낭기를 세운다. 주과포 등 제물을 차려 제를 지내고 서낭굿을 친다.다리밟기굿은 답교踏橋농악이라고도 한다. 남대천다리의 양쪽 10개 마을 간에 또는 송정과 초당마을의 억지다리나 사천 하평 지역에서 정월대보름, 2월 초엿샛날 좀상날 다리를 밟으면서 농악 놀이를 한다. 저녁에 농악대원들이 모여서 질꼬내기를 치면서 다리를 향하면, 남녀노소가 광솔에 횃불을 붙여 든다. 달이 뜨면 다리를 먼저 밟기 위해서 다리위로 올라간다. 양 마을 간에 상쇠가 쇠절금으로 겨루기를 하면서 다리뺏기를 한다. 다리를 먼저 차지한 마을이 풍년이 든다는 믿음에서 이와 같이 행한다.강릉의 질먹기는 ‘질’을 짜서 농사일을 하고 나서 한마당 잔치를 펼치는 농군의 명절이다. ‘질’은 강릉 지역에서만 사용하는 ‘두레’와 같은 용어로서 모심기나 김맬 때 농악을 치고, 두레패를 짠다. ‘질’은 차례 ‘질秩’의 의미로서, 두레패를 짜서 일의 순서를 정하는 것을 ‘질짠다’, ‘질레짠다’ ‘들계짠다’고도 한다. 보통 25명 내외로 질을 짜는데 농군 성인식인 판례는 15세 무렵에 하였다. 영좌는 농악대의 우두머리로서 좌상이라고도 한다. “아무개는 이제 판례를 했으니, 어울려 질을 짜서 일을 하시오.”라고 일꾼이 되었음을 명하면 품회계(품앗이) 일원이 된다. 김을 매는 아이짐(초벌김매기), 두벌짐, 세벌짐(짐은 김매기의 방언)을 매는 농번기가 끝나는 7월 보름 경에 ‘질먹는다’고 하루 날을 받아서 푸짐한 음식을 차려 놓고 하루 종일 논다. 그 뒤에 ‘질헤친다’고 하여 해산한다. 이것은 일종의 세서연洗鋤宴(호미씻이)으로 농군들을 위하여 논 주인들이 베푸는 ‘일꾼잔치’다. 1930년대의 기록에 무려 40가지의 질상음식이 등장한다.

특징 및 의의

강릉농악의 특징은 첫째로 농사풀이이다. 이는 농악의 생산 연행적 근간을 말하는 사례이다. 8소고, 8법고, 8무동이 논갈이부터 벼베기, 방아찧기에 이르기까지 수십 가지의 모의 농경 연행으로 합작과 유기적 연대를 이룬다. 이는 농사 과정을 역동적이고 창의적으로 형상화한 농경문화의 차별화된 연행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둘째로 고사반告祀盤을 상쇠가 주도하여 정월대보름 걸립굿을 할 때 가정에서 농악대를 위해 쌀과 실 등을 장만하면 순례하면서 안녕을 기원하는 고사반을 친다. 강릉농악의 고사반은 다른 지역 구연내용보다 길고, 내용도 다양한 점이 특징이다. 셋째, 세시 풍속 연행으로 다양하게 진행된다. 정초 지신밟기, 정월대보름 달맞이, 횃불싸움, 다리밟기를 하고, 2월 초엿새 좀상날에는 농악대 쇠절금으로 마을에 놓인 나무다리를 서로 뺏기도 하면서 이긴 마을과 진 마을 간에 농작의 풍흉년을 점친다. 음력 3월에는 화전놀이를 가는 데 ‘꽃다림’이라 하여 여성들과 농악대도 하루 종일 음식을 차려서 먹고 즐긴다. 음력 5월 대관령국사성황제의 길놀이를 선도하고, 두레 농악이라 할 수 있는 모심기, 질먹기 농악을 하며, 이후에는 뱃놀이를 한다. 넷째, 전체적으로 빠르고 박력 있는 쇠가락과 세련된 춤사위를 구사하는데, 마치 전 과장에서 뛰어다니는 것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 악기 편성에서 소고와 법고가 확연히 구분되며, 무동까지 각 8명씩 구성된다. 오동고리받기는 강릉농악의 힘과 기량을 보여 준다. 다섯째, 조직과 운영에서 보유자 및 마을 농악대원들로 하나의 대표 농악대를 구성한다. 마을 농악대는 각자의 체계를 유지하면서 대외적으로 강릉농악의 전형성을 갖추고 기량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

참고문헌

강릉농악(천진기·이준석, 국립문화재연구소, 1997), 강릉농악(강릉농악보존회, 2012), 강릉농악논총(장정룡 외, 강릉농악보존회, 2015), 강릉농악의 문화재적 가치와 연구사적 검토(장정룡, KBS강릉방송국, 2011),강릉단오제 농악(장정룡, 월간태백 강원일보사, 1997.7), 강릉단오제 현장론탐구(장정룡, 국학자료원, 2007), 조선의 농악무(김선영, 사회과학출판사,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