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춤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무용

집필자 전경욱(田耕旭)
갱신일 2019-01-24

정의

연희자들이 사자탈을 쓰고 등장하여 사람이나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등 사자 동작을 흉내 내며 추는 춤.

내용

김일출은 1954년에서 1956년 사이에 자신이 직접 함경도와 황해도를 현지 조사한 결과와 조선총독부 조사 자료 제47집 『조선의 향토오락』을 참고하여 사자놀이 분포도를 작성하였다. 이에 따르면, 함경도의 경원·종성·회령·무산·경성·어대진·명천·풍산·북청·신창·퇴조·함흥·장진·함주·정평·영흥·고원, 평안도의 벽동·용천·순천, 강원도의 고성·양양·횡성·원주, 경기도의 광주·용인, 충청도의 아산, 경북의 울진, 경남의 통영 등에 사자놀이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함경도의 홍원, 황해도의 황주·봉산·은율·송화·재령·기린·강령, 경남의 함안·동래·마산 등에서는 가면극에 사자춤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현전하는 가면극 가운데 사자춤은 봉산탈춤, 강령탈춤, 은율탈춤, 수영야류, 통영오광대, 북청사자놀음, 하회별신굿탈놀이 등에서 발견된다. 이 가운데 북청사자놀음의 사자춤이 가장 춤사위와 연희가 풍부하고, 한국의 사자춤을 대표한다. 북청사자놀음은 연극적인 요소가 풍부할 뿐만 아니라, 나례의 매귀埋鬼(귀신쫓기)행사와 동일한 모습도 보인다. 사자놀이패는 정월 4일부터 14일까지 마을의 가가호호를 방문하면서 나례의 ‘매귀埋鬼’, 즉 지신地神밟기와 유사한 의식을 거행했다.
사자춤은 초장·중장·말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청의 사자춤은 커다랗게 튕기는 듯 탄력적이고 힘차며 역동적인 율동이 특징이다. 원래 북청 현지에서의 사자춤은 한 마리의 사자가 나와서 온갖 재간을 부리며 자유자재로 멋진 사자춤을 구사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두마리의 사자가 나와서 정해진 틀에 따라 동작을 맞추어 춤을 추기 때문에, 사자가 재간을 부릴 수 있는 폭이 좁아졌다.
원래는 사자춤 중장에서 사자에게 줄 먹이로 대여섯 살 난 아이를 내놓았지만, 현재는 토끼 인형을 사용한다. 아이는 놀이판 한가운데에 쪼그리고 앉는다. 그러면 사자가 아이에게 슬금슬금 접근한다. 아이가 놀라는 척하면서 “아이고 엄마!” 하고 소리를 지르면, 사자는 놀라서 몸을 옆으로 틀어 모걸음(옆걸음)으로 뒷걸음을 치면서 물러나오며 재롱을 떤다. 그리고 다시 아이를 잡아먹으려고 접근한다. 아이가 다시 소리를 지르면 사자는 다시 놀라는 시늉을 하며 모걸음으로 뒤로 물러난다. 이것을 대여섯 차례 반복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사자가 아이를 잡아먹는다. 아이는 앞채 사람의 가랑이 사이로 사자가면 속에 들어가, 앞채 사람과 뒤채 사람 사이에 숨어 있다가, 사자가 놀이판 주위를 돌때 구경꾼 속으로 몰래 빠져 나간다. 그러면 사자가 먹이를 먹고 체한 시늉을 하며 쓰러진다. 사자가 쓰러진 후, 먼저 중이 나와 염불을 한다. 그것이 효험이 없자 의원을 불러서 약과 침으로 사자를 살려 낸다. 다시 살아 난 사자는 중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입사자立獅子춤을 춘다. 입사자는 사자탈 속에 들어간 앞채 사람이 뒤채 사람의 어깨 위에 올라타서, 마치 사자가 똑바로 일어선 것 같은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다.
북청사자춤의 춤사위는 모래기치기와 모재비가 있다. 모래기치기는 사자가 머리를 좌·우·하·상 또는 하·상·좌·우로 힘차게 흔드는 춤으로서, 서서모래기치기와 앉아서모래기치기가 있다. 모재비는 사자춤 춤사위로 선모재비, 앉은모재비, 앉은잰걸음모재비가 있다. 선모재비는 앞채 사람이 사자 머리를 들거나 낮춘 상태로 허리를 구부리고, 사자 머리를 상하 또는 좌우로 음악에 맞춰 가볍게 흔들며 옆으로 겅중겅중 뛰거나 살짝살짝 걷는 춤사위를 말한다. 뒤채 사람은 왼팔을 쭉 뻗어 앞채의 등이나 허리에 왼손을 얹고, 팔 위나 아래로 머리가 올라가거나 내려오지 않도록 조심한다. 오른손은 꼬리를 잡고 음악에 맞춰 흔들면서, 앞채와 같이 옆으로 겅중겅중 뛰거나 살짝살짝 걷는다.
봉산탈춤의 제5과장 사자춤과장에서는 먹중 한 명이 마부가 되어 사자와 함께 등장한다. 사자는 문수보살이 타고 다니는 동물인데, 부처님이 타락한 먹중들을 징벌하기 위해 보낸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봉산탈춤의 사자는 털이 흰색인 백사자白獅子이다.
봉산탈춤에는 원래 사자춤이 없었는데, 1910~1920년경부터 사자춤을 놀게 되었다고 한다. 사자춤의 동작은 꼿꼿하게 높이 솟기도 하고, 앉아서 좌우로 몸을 돌려 이 잡는 시늉을 하기도 하거나 꼬리를 흔들면서 몸을 긁기도 한다. 타령이나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한다. 봉산탈춤에서는 마부가 채찍으로 사자를 때리면 사자는 성이 나서 날뛰기 시작한다. 마부가 겁이 나서 이리저리 쫓겨 다닌다. 그러나 마부가 사자에게 파계에 대한 용서를 빌면 함께 춤을 추기도 한다.
황해도의 강령탈춤·은율탈춤·서흥탈놀이는 봉산탈춤과 과장 구성이 비슷한데, 이들에도 사자춤이 나온다. 강령탈춤과 은율탈춤에서는 흰 사자가 나와 춤만 추고 들어간다. 서흥탈놀이에서는 봉산탈춤과 마찬가지로 마부가 사자에게 정체를 확인하는 형식으로 극이 전개된다.
수영야류의 제4과장도 사자춤인데, 갈색의 사자가 담비(범)와 서로 싸우다가 담비를 잡아먹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통영오광대의 제5과장도 사자춤인데, 이는 수영야류의 사자춤과 내용이 유사하다. 우선 두 사람이 앞채와 뒤채에 들어간 갈색의 사자가 담비와 싸우다 담비를 잡아먹는다. 그러면 포수가 총으로 사자를 쏴서 죽인다.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제1과장 주지춤은 바로 사자춤으로서, 가면극을 시작하면서 놀이판을 정화하는 벽사적辟邪的 의식무이다. 암수 한 쌍의 주지가 삼베 포대기를 뒤집어쓰고 등장하여 서로 마주보며 춤추고 싸우거나, 모의 성행위를 하기도 한다. 암수 주지가 서로 어울려 격렬한 춤을 추는 것은 잡귀와 사악한 것을 쫓아 내어 탈판을 정화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암수의 싸움에서 암컷이 이기는 것으로 끝이 나는데, 이는 다산과 풍농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가산오광대에서는 상상의 동물인 영노가 사자가면을 쓰고 나온다.

특징 및 의의

사자춤은 동아시아 공연문화의 교류를 잘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동아시아의 사자춤은 불교의 전래와 함께 서역으로부터 유래했는데, 벽사진경의 상징적 연희로서 지신밟기, 풍농 기원, 다양한 속신俗信등 보편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현재도 전국적으로 수많은 사자춤이 전승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민속예술의 70%가 사자춤이라고 할 정도이다. 한국에도 많은 사자춤이 있었으나 개화기 이후 대부분 사라졌고, 일부 가면극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에서 사자춤은 신라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나례, 궁중정재, 세시풍속 등에서 연행되었으며, 전문적인 연희로서 또는 민간의 민속놀이로서 지속적으로 전승되면서 악귀를 물리치고 경사를 가져오는 벽사진경의 기능을 수행해 왔다. 특히 북청의 사자춤은 커다랗게 튕기는 듯 탄력적이고 힘차며 역동적인 율동이 특징이다.

참고문헌

북청사자놀음(전경욱, 화산문화, 2001), 조선민간극(권택무, 조선문학예술동맹출판부, 1966), 조선민속탈놀이연구(김일출, 과학원출판사,1958), 한국의 가면극(이두현, 일지사, 1979).

사자춤

사자춤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무용

집필자 전경욱(田耕旭)
갱신일 2019-01-24

정의

연희자들이 사자탈을 쓰고 등장하여 사람이나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등 사자 동작을 흉내 내며 추는 춤.

내용

김일출은 1954년에서 1956년 사이에 자신이 직접 함경도와 황해도를 현지 조사한 결과와 조선총독부 조사 자료 제47집 『조선의 향토오락』을 참고하여 사자놀이 분포도를 작성하였다. 이에 따르면, 함경도의 경원·종성·회령·무산·경성·어대진·명천·풍산·북청·신창·퇴조·함흥·장진·함주·정평·영흥·고원, 평안도의 벽동·용천·순천, 강원도의 고성·양양·횡성·원주, 경기도의 광주·용인, 충청도의 아산, 경북의 울진, 경남의 통영 등에 사자놀이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함경도의 홍원, 황해도의 황주·봉산·은율·송화·재령·기린·강령, 경남의 함안·동래·마산 등에서는 가면극에 사자춤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현전하는 가면극 가운데 사자춤은 봉산탈춤, 강령탈춤, 은율탈춤, 수영야류, 통영오광대, 북청사자놀음, 하회별신굿탈놀이 등에서 발견된다. 이 가운데 북청사자놀음의 사자춤이 가장 춤사위와 연희가 풍부하고, 한국의 사자춤을 대표한다. 북청사자놀음은 연극적인 요소가 풍부할 뿐만 아니라, 나례의 매귀埋鬼(귀신쫓기)행사와 동일한 모습도 보인다. 사자놀이패는 정월 4일부터 14일까지 마을의 가가호호를 방문하면서 나례의 ‘매귀埋鬼’, 즉 지신地神밟기와 유사한 의식을 거행했다.사자춤은 초장·중장·말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청의 사자춤은 커다랗게 튕기는 듯 탄력적이고 힘차며 역동적인 율동이 특징이다. 원래 북청 현지에서의 사자춤은 한 마리의 사자가 나와서 온갖 재간을 부리며 자유자재로 멋진 사자춤을 구사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두마리의 사자가 나와서 정해진 틀에 따라 동작을 맞추어 춤을 추기 때문에, 사자가 재간을 부릴 수 있는 폭이 좁아졌다.원래는 사자춤 중장에서 사자에게 줄 먹이로 대여섯 살 난 아이를 내놓았지만, 현재는 토끼 인형을 사용한다. 아이는 놀이판 한가운데에 쪼그리고 앉는다. 그러면 사자가 아이에게 슬금슬금 접근한다. 아이가 놀라는 척하면서 “아이고 엄마!” 하고 소리를 지르면, 사자는 놀라서 몸을 옆으로 틀어 모걸음(옆걸음)으로 뒷걸음을 치면서 물러나오며 재롱을 떤다. 그리고 다시 아이를 잡아먹으려고 접근한다. 아이가 다시 소리를 지르면 사자는 다시 놀라는 시늉을 하며 모걸음으로 뒤로 물러난다. 이것을 대여섯 차례 반복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사자가 아이를 잡아먹는다. 아이는 앞채 사람의 가랑이 사이로 사자가면 속에 들어가, 앞채 사람과 뒤채 사람 사이에 숨어 있다가, 사자가 놀이판 주위를 돌때 구경꾼 속으로 몰래 빠져 나간다. 그러면 사자가 먹이를 먹고 체한 시늉을 하며 쓰러진다. 사자가 쓰러진 후, 먼저 중이 나와 염불을 한다. 그것이 효험이 없자 의원을 불러서 약과 침으로 사자를 살려 낸다. 다시 살아 난 사자는 중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입사자立獅子춤을 춘다. 입사자는 사자탈 속에 들어간 앞채 사람이 뒤채 사람의 어깨 위에 올라타서, 마치 사자가 똑바로 일어선 것 같은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다.북청사자춤의 춤사위는 모래기치기와 모재비가 있다. 모래기치기는 사자가 머리를 좌·우·하·상 또는 하·상·좌·우로 힘차게 흔드는 춤으로서, 서서모래기치기와 앉아서모래기치기가 있다. 모재비는 사자춤 춤사위로 선모재비, 앉은모재비, 앉은잰걸음모재비가 있다. 선모재비는 앞채 사람이 사자 머리를 들거나 낮춘 상태로 허리를 구부리고, 사자 머리를 상하 또는 좌우로 음악에 맞춰 가볍게 흔들며 옆으로 겅중겅중 뛰거나 살짝살짝 걷는 춤사위를 말한다. 뒤채 사람은 왼팔을 쭉 뻗어 앞채의 등이나 허리에 왼손을 얹고, 팔 위나 아래로 머리가 올라가거나 내려오지 않도록 조심한다. 오른손은 꼬리를 잡고 음악에 맞춰 흔들면서, 앞채와 같이 옆으로 겅중겅중 뛰거나 살짝살짝 걷는다.봉산탈춤의 제5과장 사자춤과장에서는 먹중 한 명이 마부가 되어 사자와 함께 등장한다. 사자는 문수보살이 타고 다니는 동물인데, 부처님이 타락한 먹중들을 징벌하기 위해 보낸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봉산탈춤의 사자는 털이 흰색인 백사자白獅子이다.봉산탈춤에는 원래 사자춤이 없었는데, 1910~1920년경부터 사자춤을 놀게 되었다고 한다. 사자춤의 동작은 꼿꼿하게 높이 솟기도 하고, 앉아서 좌우로 몸을 돌려 이 잡는 시늉을 하기도 하거나 꼬리를 흔들면서 몸을 긁기도 한다. 타령이나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한다. 봉산탈춤에서는 마부가 채찍으로 사자를 때리면 사자는 성이 나서 날뛰기 시작한다. 마부가 겁이 나서 이리저리 쫓겨 다닌다. 그러나 마부가 사자에게 파계에 대한 용서를 빌면 함께 춤을 추기도 한다.황해도의 강령탈춤·은율탈춤·서흥탈놀이는 봉산탈춤과 과장 구성이 비슷한데, 이들에도 사자춤이 나온다. 강령탈춤과 은율탈춤에서는 흰 사자가 나와 춤만 추고 들어간다. 서흥탈놀이에서는 봉산탈춤과 마찬가지로 마부가 사자에게 정체를 확인하는 형식으로 극이 전개된다.수영야류의 제4과장도 사자춤인데, 갈색의 사자가 담비(범)와 서로 싸우다가 담비를 잡아먹는 형식으로 진행된다.통영오광대의 제5과장도 사자춤인데, 이는 수영야류의 사자춤과 내용이 유사하다. 우선 두 사람이 앞채와 뒤채에 들어간 갈색의 사자가 담비와 싸우다 담비를 잡아먹는다. 그러면 포수가 총으로 사자를 쏴서 죽인다.하회별신굿탈놀이의 제1과장 주지춤은 바로 사자춤으로서, 가면극을 시작하면서 놀이판을 정화하는 벽사적辟邪的 의식무이다. 암수 한 쌍의 주지가 삼베 포대기를 뒤집어쓰고 등장하여 서로 마주보며 춤추고 싸우거나, 모의 성행위를 하기도 한다. 암수 주지가 서로 어울려 격렬한 춤을 추는 것은 잡귀와 사악한 것을 쫓아 내어 탈판을 정화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암수의 싸움에서 암컷이 이기는 것으로 끝이 나는데, 이는 다산과 풍농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가산오광대에서는 상상의 동물인 영노가 사자가면을 쓰고 나온다.

특징 및 의의

사자춤은 동아시아 공연문화의 교류를 잘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동아시아의 사자춤은 불교의 전래와 함께 서역으로부터 유래했는데, 벽사진경의 상징적 연희로서 지신밟기, 풍농 기원, 다양한 속신俗信등 보편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현재도 전국적으로 수많은 사자춤이 전승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민속예술의 70%가 사자춤이라고 할 정도이다. 한국에도 많은 사자춤이 있었으나 개화기 이후 대부분 사라졌고, 일부 가면극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한국에서 사자춤은 신라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나례, 궁중정재, 세시풍속 등에서 연행되었으며, 전문적인 연희로서 또는 민간의 민속놀이로서 지속적으로 전승되면서 악귀를 물리치고 경사를 가져오는 벽사진경의 기능을 수행해 왔다. 특히 북청의 사자춤은 커다랗게 튕기는 듯 탄력적이고 힘차며 역동적인 율동이 특징이다.

참고문헌

북청사자놀음(전경욱, 화산문화, 2001), 조선민간극(권택무, 조선문학예술동맹출판부, 1966), 조선민속탈놀이연구(김일출, 과학원출판사,1958), 한국의 가면극(이두현, 일지사, 1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