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당덧뵈기춤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무용

집필자 남성진(南聖辰)

정의

남사당패의 여섯 가지 연희 종목 중 다섯 번째 순서로 놀았던 덧뵈기(가면극)에서 추는 춤.

역사

덧뵈기의 유래에 관해서는 옛 문헌과 관련 연구가 미진하여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단편적인 자료들을 통해 조선 후기쯤 놀이가 있었다는 사실만 유추할 수 있다. 덧뵈기는 남사당패의 은어로 가면극을 일컫는 말인데, 기예능인들에 의해 재담이 입으로 계승되어 왔다. 덧뵈기는 조선 후기 여러 형태로 존재했던 유랑예인집단 가운데 남성으로 구성된 연희집단인 남사당패가 각 지방을 유랑하며 공연하던 가면극을 말한다.
1959년 무렵 생존하고 있던 여러 남사당패 연희자들에 의하면 1900년대 초 원각사에서 덧뵈기를 공연한 바 있다고 한다. 여기서 덧뵈기는 당시의 이름난 탈꾼인 이운선李雲仙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하였다. 이운선은 진위패振威牌 남사당의 곰뱅이쇠였는데, 이경화振威牌(덧뵈기쇠)가 이운선에게서 가면극을 배웠다고 한다.이후 이경화는 당시 조정까지 출입하던 사당 바우덕이[金岩德]의 힘을 입어 경기도 안성 서운면 청룡리 청룡사를 거점으로 삼아, 안성 개다리패들에게 덧뵈기를 가르쳤다고 한다.
남사당놀이는 20세기 들어 점차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차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광복 이후 남사당의 뜬쇠들인 송순갑, 양도일, 송복산, 남형우가 남사당 재건 공연을 시작했다. 이후 최은창, 이돌천, 조송자 등이 합류하였다. 1964년에 이르러 남사당패 놀이 여섯 종목 중 덜미(꼭두각시놀음)가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다. 한편, 덧뵈기에 관해서는 심우성이 1968년 조사·발굴하였다. 심우성은 1900~1950년경의 생존한 연희자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증언을 채록했고, 역사적인 부분을 정리하였다. 이후 1970년대 이래 남사당놀이 여섯 마당을 집대성하여 발표회를 갖게 되었다. 1988년에 이르러 모든 종목이 국가무형문화재에 포함되어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내용

남사당놀이는 덧뵈기(가면극), 줄타기, 꼭두각시놀음, 풍물놀이, 버나(물체를 돌리면서 재주를 부리는 것), 살판(땅재주) 등 여섯 가지로 구성된 종합 예술이다. 덧뵈기는 이 여섯 가지 연희 종목 중 다섯 번째 순서로 놀았던 것이다. 덧뵈기는 다른 연희 종목과 같이 특정 지역이 아닌 각처의 민중을 상대로 놀았기 때문에 그 격식이나 내용 면에서 중부 지방의 산대 놀이와 서해 지방의 탈춤, 남부 지방의 오광대·야류 등을 고루 원용하거나 자신들의 연희에 잘 녹여 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본거지가 주로 중부 지방이었기 때문에 대체로 서울·경기 지역의 본산대놀이의 영향을 받아 그 성격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대본의 등장 인물과 내용 면에서 양주별산대놀이의 옴중·먹중놀이, 샌님놀이, 노장춤과 같은 과장이 보인다는 점에서 유사한 지점이 많다. 그러나 남사당패유랑예인집단으로서 일정한 지역성과 관계없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각처의 민중을 대상으로 놀이판을 펼쳤기 때문에 여러 특성이 반영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덧뵈기춤도 특정 지역이 아닌 각 지역 민중들의 흥취를 모아 합치고 수용함으로써 새롭게 구성된 것이라 할수 있다.
덧뵈기의 놀이 구성은 제1과장에서 제5과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과장은 ‘마당씻이’인데, 탈판을 시작하기 전에 마당을 눌러서 정화시키는 성격을 띠고 꺾쇠·장쇠·먹쇠가 등장하여 덩덕궁이장단에 맞추어 지신밟기춤을 춘다. 제2과장은 ‘옴탈잡이’로서, 옴중과 꺾쇠가 갖은 익살로 서로 재담하면서 굿거리와 덩덕궁이에 맞추어 대무를 춘다. 제3과장은 ‘샌님잡이’인데, 영감과 노친네가 등장하여 재담을 나누다가 하인 말뚝이를 불러 수작을 한 뒤 서로 어울려 굿거리장단에 춤을 춘다. 이때 말뚝이는 양반을 희롱하며 해학적인 춤을 추다가 노친네를 꾀어 퇴장하고, 샌님은 수줍고 얌전한 행동으로 춤을 추는데, 피조리들이 등장하여 무동춤(피조리춤)을 춘다. 제4과장은 ‘먹중잡이’로서, 먹중이 타령장단으로 피조리를 데리고 춤을 추는데 취발이가 등장하여 수작한 뒤 서로 대무한다. 취발이는 먹중을 몰아내고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피조리를 유혹하며 거칠고 활달한 춤을 추는데, 피조리 둘은 같이 어울리며 요염한 춤을 추며 대무를 한 뒤 퇴장한다. 제5과장은 ‘뒤풀이’인데, 모든 잽이와 탈꾼들이 순서 없이 나와 어울려 덩덕궁이장단에 맞추어 기본 춤사위가 이루어진다. 이때 탈꾼들은 합동춤으로 난장 춤을 춘다.
남사당패의 덧뵈기는 다른 탈춤에 비해 춤의 비중이 낮고 연기적인 대사와 재담에 치중되어 있다. 춤사위는 경기형 탈춤에서 나타나는 특징과 같이 상체의 움직임은 절제되고 하체의 발 놀음 중심으로 움직이며 춤을 춘다. 나비춤, 닭이똥사위, 피조리춤 등을 추는데, 우리나라 중부 지방의 춤사위의 성격이 두드러져 나타난다. 나비춤은 나비가 날갯짓하는 모양을 흉내 낸 춤사위이다. 닭이똥사위는 몸을 감고 풀면서 펼치는 춤사위인데, 양팔을 크게 움직여 우아하면서 역동적인 율동을 하는 춤의 형태이다. 이는 남사당 덧뵈기의 합동춤에서 여러 배역이 추는 춤이다. 양다리는 제자리에 서 있으면서 오른팔을 오른쪽 어깨에 메고 양쪽으로 함께 어른다. 올렸던 오른팔을 어르면서 앞으로 내리고, 내린 양팔을 가슴 앞으로 모으는 동작이다. 양손으로 휘휘 맴을 돌리듯 또는 닭이 똥을 싸는 것처럼 원을 그리는, 성희性戱를 상징하는 춤사위이다. 피조리춤은 하체는 움직이지 않고 상체의 기본동작만 반복하며 양팔만 너울대는 것이다. 덧뵈기춤을 출 때 등장과 퇴장하는 방식은 특별히 정해진 규칙이 없다. 연희자들과 흥에 겨운 구경꾼들이 놀이판의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자연스럽게 함께 어우러지면서 한바탕 춤을 추고 들어간다.

특징 및 의의

덧뵈기는 놀이판의 현장 분위기와 상황에 맞도록 구경꾼의 취향과 흥미를 제대로 쫓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놀이의 현장성이 지역에서 전승되는 여느 탈놀이보다 우수하다. 또한 다른 지역의 탈춤과 비교해서 전체적으로 즉흥성과 오락성이 강하고 성기고 거센 편이다. 놀이의 짜임새에서도 인물의 성격을 치밀하게 추구하기보다는 놀이판의 분위기에 따른 가변성이 두드러져 판놀이 또는 촌극적 성향이 강하다. 남사당패가 전국을 무대로 공연을 펼치다 보니 덧뵈기 춤에서도 특정한 지방색을 띠지 않고 여러 지방의 특징적 춤사위가 두루 혼용되어 표현된다. 따라서 가장 재미있고 화려한 요소로 구성됨으로써 보는 사람들이 만족스러워하고 유쾌해한다. 덧뵈기에는 다른 탈춤의 벽사의식무 성격과 비슷한 마당씻이가 있는데, 다른 탈춤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특징적인 요소로서 비나리(고사소리)가 등장한다. 또한 다양한 표정의 탈과 상모를 쓴 채 악기를 연주함으로써 극의 분위기가 다채롭다. 그리고 반주악인 풍물 가락에 따른 힘찬 춤사위와 재빠르게 진행되는 극의 흐름이 돋보인다. 결국 덧뵈기는 춤보다는 재담과 연기의 비중이 우세한 풍자극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남사당패연구(심우성, 동화출판공사, 1980), 무용철학-세계무형문화유산 남사당의 덧뵈기미학(문진수, 한국체육철학회, 한국체육철학회지21, 2013), 중요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6(심우성,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1968), 한국의 민속춤(정병호, 삼성출판사, 1995).

남사당덧뵈기춤

남사당덧뵈기춤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무용

집필자 남성진(南聖辰)

정의

남사당패의 여섯 가지 연희 종목 중 다섯 번째 순서로 놀았던 덧뵈기(가면극)에서 추는 춤.

역사

덧뵈기의 유래에 관해서는 옛 문헌과 관련 연구가 미진하여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단편적인 자료들을 통해 조선 후기쯤 놀이가 있었다는 사실만 유추할 수 있다. 덧뵈기는 남사당패의 은어로 가면극을 일컫는 말인데, 기예능인들에 의해 재담이 입으로 계승되어 왔다. 덧뵈기는 조선 후기 여러 형태로 존재했던 유랑예인집단 가운데 남성으로 구성된 연희집단인 남사당패가 각 지방을 유랑하며 공연하던 가면극을 말한다.1959년 무렵 생존하고 있던 여러 남사당패 연희자들에 의하면 1900년대 초 원각사에서 덧뵈기를 공연한 바 있다고 한다. 여기서 덧뵈기는 당시의 이름난 탈꾼인 이운선李雲仙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하였다. 이운선은 진위패振威牌 남사당의 곰뱅이쇠였는데, 이경화振威牌(덧뵈기쇠)가 이운선에게서 가면극을 배웠다고 한다.이후 이경화는 당시 조정까지 출입하던 사당 바우덕이[金岩德]의 힘을 입어 경기도 안성 서운면 청룡리 청룡사를 거점으로 삼아, 안성 개다리패들에게 덧뵈기를 가르쳤다고 한다.남사당놀이는 20세기 들어 점차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차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광복 이후 남사당의 뜬쇠들인 송순갑, 양도일, 송복산, 남형우가 남사당 재건 공연을 시작했다. 이후 최은창, 이돌천, 조송자 등이 합류하였다. 1964년에 이르러 남사당패 놀이 여섯 종목 중 덜미(꼭두각시놀음)가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다. 한편, 덧뵈기에 관해서는 심우성이 1968년 조사·발굴하였다. 심우성은 1900~1950년경의 생존한 연희자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증언을 채록했고, 역사적인 부분을 정리하였다. 이후 1970년대 이래 남사당놀이 여섯 마당을 집대성하여 발표회를 갖게 되었다. 1988년에 이르러 모든 종목이 국가무형문화재에 포함되어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내용

남사당놀이는 덧뵈기(가면극), 줄타기, 꼭두각시놀음, 풍물놀이, 버나(물체를 돌리면서 재주를 부리는 것), 살판(땅재주) 등 여섯 가지로 구성된 종합 예술이다. 덧뵈기는 이 여섯 가지 연희 종목 중 다섯 번째 순서로 놀았던 것이다. 덧뵈기는 다른 연희 종목과 같이 특정 지역이 아닌 각처의 민중을 상대로 놀았기 때문에 그 격식이나 내용 면에서 중부 지방의 산대 놀이와 서해 지방의 탈춤, 남부 지방의 오광대·야류 등을 고루 원용하거나 자신들의 연희에 잘 녹여 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본거지가 주로 중부 지방이었기 때문에 대체로 서울·경기 지역의 본산대놀이의 영향을 받아 그 성격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대본의 등장 인물과 내용 면에서 양주별산대놀이의 옴중·먹중놀이, 샌님놀이, 노장춤과 같은 과장이 보인다는 점에서 유사한 지점이 많다. 그러나 남사당패는 유랑예인집단으로서 일정한 지역성과 관계없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각처의 민중을 대상으로 놀이판을 펼쳤기 때문에 여러 특성이 반영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덧뵈기춤도 특정 지역이 아닌 각 지역 민중들의 흥취를 모아 합치고 수용함으로써 새롭게 구성된 것이라 할수 있다.덧뵈기의 놀이 구성은 제1과장에서 제5과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과장은 ‘마당씻이’인데, 탈판을 시작하기 전에 마당을 눌러서 정화시키는 성격을 띠고 꺾쇠·장쇠·먹쇠가 등장하여 덩덕궁이장단에 맞추어 지신밟기춤을 춘다. 제2과장은 ‘옴탈잡이’로서, 옴중과 꺾쇠가 갖은 익살로 서로 재담하면서 굿거리와 덩덕궁이에 맞추어 대무를 춘다. 제3과장은 ‘샌님잡이’인데, 영감과 노친네가 등장하여 재담을 나누다가 하인 말뚝이를 불러 수작을 한 뒤 서로 어울려 굿거리장단에 춤을 춘다. 이때 말뚝이는 양반을 희롱하며 해학적인 춤을 추다가 노친네를 꾀어 퇴장하고, 샌님은 수줍고 얌전한 행동으로 춤을 추는데, 피조리들이 등장하여 무동춤(피조리춤)을 춘다. 제4과장은 ‘먹중잡이’로서, 먹중이 타령장단으로 피조리를 데리고 춤을 추는데 취발이가 등장하여 수작한 뒤 서로 대무한다. 취발이는 먹중을 몰아내고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피조리를 유혹하며 거칠고 활달한 춤을 추는데, 피조리 둘은 같이 어울리며 요염한 춤을 추며 대무를 한 뒤 퇴장한다. 제5과장은 ‘뒤풀이’인데, 모든 잽이와 탈꾼들이 순서 없이 나와 어울려 덩덕궁이장단에 맞추어 기본 춤사위가 이루어진다. 이때 탈꾼들은 합동춤으로 난장 춤을 춘다.남사당패의 덧뵈기는 다른 탈춤에 비해 춤의 비중이 낮고 연기적인 대사와 재담에 치중되어 있다. 춤사위는 경기형 탈춤에서 나타나는 특징과 같이 상체의 움직임은 절제되고 하체의 발 놀음 중심으로 움직이며 춤을 춘다. 나비춤, 닭이똥사위, 피조리춤 등을 추는데, 우리나라 중부 지방의 춤사위의 성격이 두드러져 나타난다. 나비춤은 나비가 날갯짓하는 모양을 흉내 낸 춤사위이다. 닭이똥사위는 몸을 감고 풀면서 펼치는 춤사위인데, 양팔을 크게 움직여 우아하면서 역동적인 율동을 하는 춤의 형태이다. 이는 남사당 덧뵈기의 합동춤에서 여러 배역이 추는 춤이다. 양다리는 제자리에 서 있으면서 오른팔을 오른쪽 어깨에 메고 양쪽으로 함께 어른다. 올렸던 오른팔을 어르면서 앞으로 내리고, 내린 양팔을 가슴 앞으로 모으는 동작이다. 양손으로 휘휘 맴을 돌리듯 또는 닭이 똥을 싸는 것처럼 원을 그리는, 성희性戱를 상징하는 춤사위이다. 피조리춤은 하체는 움직이지 않고 상체의 기본동작만 반복하며 양팔만 너울대는 것이다. 덧뵈기춤을 출 때 등장과 퇴장하는 방식은 특별히 정해진 규칙이 없다. 연희자들과 흥에 겨운 구경꾼들이 놀이판의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자연스럽게 함께 어우러지면서 한바탕 춤을 추고 들어간다.

특징 및 의의

덧뵈기는 놀이판의 현장 분위기와 상황에 맞도록 구경꾼의 취향과 흥미를 제대로 쫓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놀이의 현장성이 지역에서 전승되는 여느 탈놀이보다 우수하다. 또한 다른 지역의 탈춤과 비교해서 전체적으로 즉흥성과 오락성이 강하고 성기고 거센 편이다. 놀이의 짜임새에서도 인물의 성격을 치밀하게 추구하기보다는 놀이판의 분위기에 따른 가변성이 두드러져 판놀이 또는 촌극적 성향이 강하다. 남사당패가 전국을 무대로 공연을 펼치다 보니 덧뵈기 춤에서도 특정한 지방색을 띠지 않고 여러 지방의 특징적 춤사위가 두루 혼용되어 표현된다. 따라서 가장 재미있고 화려한 요소로 구성됨으로써 보는 사람들이 만족스러워하고 유쾌해한다. 덧뵈기에는 다른 탈춤의 벽사의식무 성격과 비슷한 마당씻이가 있는데, 다른 탈춤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특징적인 요소로서 비나리(고사소리)가 등장한다. 또한 다양한 표정의 탈과 상모를 쓴 채 악기를 연주함으로써 극의 분위기가 다채롭다. 그리고 반주악인 풍물 가락에 따른 힘찬 춤사위와 재빠르게 진행되는 극의 흐름이 돋보인다. 결국 덧뵈기는 춤보다는 재담과 연기의 비중이 우세한 풍자극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남사당패연구(심우성, 동화출판공사, 1980), 무용철학-세계무형문화유산 남사당의 덧뵈기미학(문진수, 한국체육철학회, 한국체육철학회지21, 2013), 중요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6(심우성,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1968), 한국의 민속춤(정병호, 삼성출판사,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