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강술래춤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무용

집필자 나경수(羅景洙)

정의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된 민속놀이로서, 보름달이 뜬 명절날 밤에 여성들이 모여 손에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면서 추던 집단무용.

내용

거의 모든 민속무용이나 놀이가 그렇듯이 정확한 기원이나 역사를 알기 어렵다. 다만 여러 기록이나 구전을 통해서 그 형성과 전승의 일말을 살필 수 있을 뿐이다. 강강술래의 기원에 대해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마한시대의 세시풍속에서 기원했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의 승리를 위해서 창안했다는 설이다.
마한시대에는 농사가 시작되는 5월과 농사를 마친 10월에 귀신에게 제사를 모시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춤과 노래를 즐겼다고 한다. 이때 여러 사람이 서로 따르면서 손발을 맞춰 땅을 높고 낮게 밟으면서 춤을 추었는데 중국의 탁무鐸舞와 비슷하다고 하였다. 중국의 탁무가 악기를 가지고 노는 춤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농악의 기원을 탁무에서 찾기도 하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추었던 군무라는 점과 또 풍년을 기원하던 마한시대의 세시풍속을 강강술래의 고대적 형태로 보기도 한다. 또 여기에 고대에 남녀가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축제로서 부가적 성격을 가졌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명량해전을 앞두고 이순신 장군이 우리의 군사가 많고 또 사기가 충천해 있다는 것을 왜군에게 과시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동원해서 전라남도 진도를 비롯해서 목포, 해남, 강진 바닷가에서 집단적으로 강강술래를 추도록 했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여기에 착안하여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 즉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온다는 후렴이 생겼다는 주장도 함께 한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강강술래 외에도 노적봉, 쌀뜨물, 쇠사슬 등을 화소話素로 하는 전쟁 전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이들은 모두 전설의 역사화를 통해서 민중이 전쟁영웅의 이미지를 서사적으로 형상화하는 전형적 방법으로 꼽힌다. 전해 오는 전설이나 풍속을 특정한 인물에 부회하는 방식이다.
강강술래는 1966년 2월 15일 국가무형문화재(지정 당시의 명칭은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으며, 2009년도에는 유네스코UNESCO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현재는 진도와 해남에 각각 보존회가 있으며, 활발한 전승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전승 지역은 거의 호남 전역이었으며,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호남 인근의 경상남도와 충청남도 일원에서도 즐겼던 춤이었다.
강강술래를 즐기는 때는 주로 추석날 밤이었다. 그러나 특정되지는 않았으며, 적극적이고 즐거움이 많은 마을에서는 대보름, 유두, 백중과 같이 보름달이 뜨는 명절날 밤에도 여성들이 모여 강강술래를 즐겼다고 한다. 즉, 보름달이 뜬 밤, 밝은 달빛 아래에서 젊은 여성들이 즐기던 세시풍속의 하나였다. 예전에 여성들의 놀이가 많지 않았고, 또 평소에 젊은 여성들의 외부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사회적 상황에서 강강술래판은 일종의 해방 공간과 같았다. 노인들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강강술래를 즐기고 나면 다음날 문지방을 넘기 어려울 정도로 다리가 붓고 목이 쉬어 말을 할 수 없을 정도 였다고 한다. 1960년대 후반 이농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강강술래도 농촌에서 급속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강강술래는 마을 공터나 넓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놀았다. 대개 30대 이후의 연령대는 참가하지도 않았고, 또 참가하지도 못할 정도로 힘이 들었다 한다. 거의 새벽까지 지속되던 춤이었다. 놀이판이 길게 지속되기 때문에 기본적인 강강술래 외에도 여러 가지 부대놀이가 함께 섞여 들기도 했다. 현재 행해지고 있는 강강술래는 춤의 형태로 보면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집단윤무集團輪舞 형태로 원을 그리며 추는 강강술래가 있고, 다른 하나는 여러 가지 평소에 즐기던 놀이나 노동을 강강술래판에 끌어들여 춤의 형태로 만들어 노는 부대놀이이다. 부대놀이는 따로 강강술래라고 하지 않고, 술래놀이라고 불러 구별하기도 한다.
강강술래는 다시 빠르기에 따라 긴강강술래, 중강강술래, 잦은강강술래로 나눈다. 강강술래는 악기반주 없이 순전히 여성들의 노래와 함께 춘다. 한 사람이 앞소리를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뒷소리를 따라 한다. 춤은 노래에 의해서 이끌려지는데 노래의 빠르기가 곧 춤의 빠르기를 결정하게 된다. 긴강강술래는 처음 시작할 때 가장 느리게 부르는 소리에 따라 서서히 그리고 아주 작은 원을 그리면서 손을 맞추는 과정이다. 거의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서로 손을 잡고 느린 소리에 맞춰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대개 동쪽에 달이 떠오를 때 시작하기 때문에 가사도 달을 부르는 소리가 많다.

달 떠온다 달 떠온다 강강술래
동에 동천 달 떠온다 강강술래
저야 달이 뉘 달인가 강강술래

어느 정도 손발과 호흡이 맞았다싶으면 중강강술래가 이어지다가 흥이 고조되면 잦은강강술래로 넘어가 춤도 빨라지고, 그리는 원도 커지고, 노랫소리도 한껏 높아간다. 중천에 뜬 훤한 보름달을 모방하여 둥글게 원을 그리는 춤이 지상에서 한밤중까지 펼쳐진다.

딸아 딸아 막내딸아 강강술래
밥만 먹고 곱게 커라 강강술래
오동나무 밀장농에 강강술래
갖은 장석을 걸어 주마 강강술래

소리를 잘하는 한 사람이 앞소리를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강강술래라는 뒷소리를 받아서 2음보 지속형의 노래가 춤과 어우러져 계속된다. 강강술래와 함께 즐기는 부대놀이는 다양하다. 지역에 따라 여러 종류의 놀이들이 놀아졌지만, 현재 전해지고 있는 것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함께 정리되었던 춤들이며, 여기에서 몇 가지 더해지기도 하고 빠지기도 한다. 오늘날 추는 부대놀이로서 개구리타령, 남생이놀이, 대문열기, 발치기손치기, 수건돌리기, 술래잡기, 기와밟기, 고사리꺾기, 청어놀이, 덕석놀이, 바늘귀뀌기, 진쥐따기놀이, 따비질놀이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놀이도 크게 두 유형으로 다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일반적인 여성들 또는 아이들의 놀이에서 가져온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의 형태나 동작을 춤으로 바꾸어 추었던 놀이들을 강강술래판에서 노는 것 들이다. 예를 들면 개구리타령, 남생이놀이, 대문열기, 발치기손치기, 수건돌리기, 술래잡기, 기와밟기 등은 평소에도 아이들이나 여성들이 즐기는 놀이였다. 그러나 고사리꺾기, 청어엮기, 덕석놀이, 바늘귀뀌기, 진쥐따기놀이, 따비질놀이 등은 노동이나 작업 등 실제 생활과 관련이 되어 있다.
봄에 산에 올라가 고사리를 꺾고, 예전에 가장 흔한 고기로 알려진 청어를 어부들이 잡아오면 엮어서 건조하는 것은 대개 여성들의 몫이었다. 바느질은 물론이요, 곡식을 말릴 때 사용하는 짚을 엮어 만든 건조용구인 덕석을 이용하는 일 역시 여성들이 주로 하는 노동이었다. 그러나 여성의 노동으로 특정할 수는 없지만, 진쥐따기놀이는 농작물에 해를 입히는 쥐를 잡는 일과 관련되고, 따비질놀이는 따비라는 농기구를 사용해서 논밭을 일구는 형상을 본떠 춤으로 만들었다.
이들 부대놀이의 공통점은 혼자서 할 수 없는 집단으로 어우러지는 춤으로서 맺힘과 풀림을 기본으로 곡선과 원을 만들면서 논다는 특징이 있다. 강강술래는 춤이 중심이지만, 춤을 추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노래이다. 따라서 전체 판을 이끌기 위해서는 소리를 잘하는 사람이 필요하고, 또 사설도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래서 강강술래소리를 잘하는 사람들은 평소에도 마을에서 인기가 많았으며, 또 다른 마을에서 갓 시집을 온 새각시에게 기대했던 것도 새로운 가사였다고 한다.

특징 및 의의

강강술래는 여성적 특성이 잘 드러나는 집단적인 민속무용이다. 신체에서 기원한 것이겠지만 여성의 기하학적 특징은 원형으로 표현된다. 남성의 성상징이 직선으로 표현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뿐만 아니라 낮-해-남성에 대립되는 밤-달-여성의 이원적 체계로 보더라도 강강술래는 여성적 특성과 일치한다. 현재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지만, 본래 강강술래는 세시풍속으로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활발하게 즐기던 놀이였다. 보름달이 뜨는 명절날 밤에 마을의 부녀자들이 누구의 지시도 없이 한곳에 모여 놀았던 것이 강강술래였다. 특히 젊은 여성들은 평소에 사회적으로 강요받던 여러 가지 얽매임에서 해방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억압의 강도만큼 분출 강도도 높을 수밖에 없었던 세속 일탈의 현장이기도 했다. 이런 강강술래는 춤과 노래가 어우러지는 가무일체형의 집단 놀이이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세시풍속으로서의 주술적 기능이 깔려 있던 놀이였다.
우리나라에 대표적인 두 종류의 집단적인 세시놀이가 있다. 줄다리기와 강강술래가 그것이다. 줄다리기는 음양의 원리에 따라 이루어지는 경희競戱의 일종이다. 암줄과 수줄을 만들어 시합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강강술래는 여성들만 즐긴다. 또 줄다리기가 대보름의 대표적인 놀이인데 반해서, 강강술래는 추석의 대표적인 놀이이다. 줄다리기나 강강술래에 대해 농경사회에서 생산, 특히 풍요다산을 기원하던 일종의 주술적 의미를 가지고 놀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농사가 시작되는 대보름에 줄다리기를 했던 것은 음양상통 또는 부부생활과 같다. 그러나 출산은 여성만 가능하다. 자식을 낳는 출산이 여성의 몫이듯이, 역시 생산의 결실인 추수도 여성 원리를 따른다. 더구나 줄다리기를 할 때 여성편이 이겨야 그해 풍년이 든다는 속설도 믿어졌다. 자식을 낳는데 남자는 하등 쓸모가 없듯이, 추수에 있어 여성성의 생산 특권이 강강술래로 형상화되었던 것이다.
강강술래를 즐겨했던 곳은 과거 추석에 송편을 해먹었던 지역과도 일치한다. 송편이란 나락을 닮은 떡이다. 송편만큼 크게 나락이 열린다면 대풍이다. 여성들이 추는 강강술래 역시 둥근 원을 그리는데, 이 역시 추수를 앞둔 추석의 의미와 연관된다. 일 년 중 가장 크게 보인다는 추석의 달처럼 모든 오곡백과가 영근다면 역시 대풍은 말할 것도 없다. 긴강강술래에서 중강강술래로, 중강강술래에서 잦은강강술래로 갈수록 여성들이 그리는 춤의 동심원적 확장은 확연하다. 마치 임산부의 배가 시간이 흐를수록 커가는 것과 같다.
강강술래는 이렇듯이 벼농사를 위주로 했던 지역, 저 멀리로는 마한으로까지 이어지는 지정학적 배경을 가지고 전승되어 왔던 여성들 고유의 민속무용이다. 강렬한 춤을 통해서 풍요다산을 구가하고자 했던 전형적인 원시종합예술적 형태의 집단가무요, 또한 기능적으로는 풍요다산을 위한 주술종교적 세시풍속이었다.

참고문헌

강강술래놀이(지춘상, 한국의 민속예술, 한국문화예술진흥원,1978), 광주·전남의 민속연구(나경수, 민속원, 2015), 호남가단연구(정익섭, 민문고, 1989).

강강술래춤

강강술래춤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무용

집필자 나경수(羅景洙)

정의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된 민속놀이로서, 보름달이 뜬 명절날 밤에 여성들이 모여 손에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면서 추던 집단무용.

내용

거의 모든 민속무용이나 놀이가 그렇듯이 정확한 기원이나 역사를 알기 어렵다. 다만 여러 기록이나 구전을 통해서 그 형성과 전승의 일말을 살필 수 있을 뿐이다. 강강술래의 기원에 대해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마한시대의 세시풍속에서 기원했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의 승리를 위해서 창안했다는 설이다.마한시대에는 농사가 시작되는 5월과 농사를 마친 10월에 귀신에게 제사를 모시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춤과 노래를 즐겼다고 한다. 이때 여러 사람이 서로 따르면서 손발을 맞춰 땅을 높고 낮게 밟으면서 춤을 추었는데 중국의 탁무鐸舞와 비슷하다고 하였다. 중국의 탁무가 악기를 가지고 노는 춤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농악의 기원을 탁무에서 찾기도 하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추었던 군무라는 점과 또 풍년을 기원하던 마한시대의 세시풍속을 강강술래의 고대적 형태로 보기도 한다. 또 여기에 고대에 남녀가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축제로서 부가적 성격을 가졌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다른 하나는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명량해전을 앞두고 이순신 장군이 우리의 군사가 많고 또 사기가 충천해 있다는 것을 왜군에게 과시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동원해서 전라남도 진도를 비롯해서 목포, 해남, 강진 바닷가에서 집단적으로 강강술래를 추도록 했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여기에 착안하여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 즉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온다는 후렴이 생겼다는 주장도 함께 한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강강술래 외에도 노적봉, 쌀뜨물, 쇠사슬 등을 화소話素로 하는 전쟁 전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이들은 모두 전설의 역사화를 통해서 민중이 전쟁영웅의 이미지를 서사적으로 형상화하는 전형적 방법으로 꼽힌다. 전해 오는 전설이나 풍속을 특정한 인물에 부회하는 방식이다.강강술래는 1966년 2월 15일 국가무형문화재(지정 당시의 명칭은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으며, 2009년도에는 유네스코UNESCO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현재는 진도와 해남에 각각 보존회가 있으며, 활발한 전승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전승 지역은 거의 호남 전역이었으며,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호남 인근의 경상남도와 충청남도 일원에서도 즐겼던 춤이었다.강강술래를 즐기는 때는 주로 추석날 밤이었다. 그러나 특정되지는 않았으며, 적극적이고 즐거움이 많은 마을에서는 대보름, 유두, 백중과 같이 보름달이 뜨는 명절날 밤에도 여성들이 모여 강강술래를 즐겼다고 한다. 즉, 보름달이 뜬 밤, 밝은 달빛 아래에서 젊은 여성들이 즐기던 세시풍속의 하나였다. 예전에 여성들의 놀이가 많지 않았고, 또 평소에 젊은 여성들의 외부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사회적 상황에서 강강술래판은 일종의 해방 공간과 같았다. 노인들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강강술래를 즐기고 나면 다음날 문지방을 넘기 어려울 정도로 다리가 붓고 목이 쉬어 말을 할 수 없을 정도 였다고 한다. 1960년대 후반 이농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강강술래도 농촌에서 급속히 사라지기 시작했다.강강술래는 마을 공터나 넓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놀았다. 대개 30대 이후의 연령대는 참가하지도 않았고, 또 참가하지도 못할 정도로 힘이 들었다 한다. 거의 새벽까지 지속되던 춤이었다. 놀이판이 길게 지속되기 때문에 기본적인 강강술래 외에도 여러 가지 부대놀이가 함께 섞여 들기도 했다. 현재 행해지고 있는 강강술래는 춤의 형태로 보면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집단윤무集團輪舞 형태로 원을 그리며 추는 강강술래가 있고, 다른 하나는 여러 가지 평소에 즐기던 놀이나 노동을 강강술래판에 끌어들여 춤의 형태로 만들어 노는 부대놀이이다. 부대놀이는 따로 강강술래라고 하지 않고, 술래놀이라고 불러 구별하기도 한다.강강술래는 다시 빠르기에 따라 긴강강술래, 중강강술래, 잦은강강술래로 나눈다. 강강술래는 악기반주 없이 순전히 여성들의 노래와 함께 춘다. 한 사람이 앞소리를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뒷소리를 따라 한다. 춤은 노래에 의해서 이끌려지는데 노래의 빠르기가 곧 춤의 빠르기를 결정하게 된다. 긴강강술래는 처음 시작할 때 가장 느리게 부르는 소리에 따라 서서히 그리고 아주 작은 원을 그리면서 손을 맞추는 과정이다. 거의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서로 손을 잡고 느린 소리에 맞춰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대개 동쪽에 달이 떠오를 때 시작하기 때문에 가사도 달을 부르는 소리가 많다. 달 떠온다 달 떠온다 강강술래동에 동천 달 떠온다 강강술래저야 달이 뉘 달인가 강강술래 어느 정도 손발과 호흡이 맞았다싶으면 중강강술래가 이어지다가 흥이 고조되면 잦은강강술래로 넘어가 춤도 빨라지고, 그리는 원도 커지고, 노랫소리도 한껏 높아간다. 중천에 뜬 훤한 보름달을 모방하여 둥글게 원을 그리는 춤이 지상에서 한밤중까지 펼쳐진다. 딸아 딸아 막내딸아 강강술래밥만 먹고 곱게 커라 강강술래오동나무 밀장농에 강강술래갖은 장석을 걸어 주마 강강술래 소리를 잘하는 한 사람이 앞소리를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강강술래라는 뒷소리를 받아서 2음보 지속형의 노래가 춤과 어우러져 계속된다. 강강술래와 함께 즐기는 부대놀이는 다양하다. 지역에 따라 여러 종류의 놀이들이 놀아졌지만, 현재 전해지고 있는 것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함께 정리되었던 춤들이며, 여기에서 몇 가지 더해지기도 하고 빠지기도 한다. 오늘날 추는 부대놀이로서 개구리타령, 남생이놀이, 대문열기, 발치기손치기, 수건돌리기, 술래잡기, 기와밟기, 고사리꺾기, 청어놀이, 덕석놀이, 바늘귀뀌기, 진쥐따기놀이, 따비질놀이 등이 있다.그러나 이들 놀이도 크게 두 유형으로 다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일반적인 여성들 또는 아이들의 놀이에서 가져온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의 형태나 동작을 춤으로 바꾸어 추었던 놀이들을 강강술래판에서 노는 것 들이다. 예를 들면 개구리타령, 남생이놀이, 대문열기, 발치기손치기, 수건돌리기, 술래잡기, 기와밟기 등은 평소에도 아이들이나 여성들이 즐기는 놀이였다. 그러나 고사리꺾기, 청어엮기, 덕석놀이, 바늘귀뀌기, 진쥐따기놀이, 따비질놀이 등은 노동이나 작업 등 실제 생활과 관련이 되어 있다.봄에 산에 올라가 고사리를 꺾고, 예전에 가장 흔한 고기로 알려진 청어를 어부들이 잡아오면 엮어서 건조하는 것은 대개 여성들의 몫이었다. 바느질은 물론이요, 곡식을 말릴 때 사용하는 짚을 엮어 만든 건조용구인 덕석을 이용하는 일 역시 여성들이 주로 하는 노동이었다. 그러나 여성의 노동으로 특정할 수는 없지만, 진쥐따기놀이는 농작물에 해를 입히는 쥐를 잡는 일과 관련되고, 따비질놀이는 따비라는 농기구를 사용해서 논밭을 일구는 형상을 본떠 춤으로 만들었다.이들 부대놀이의 공통점은 혼자서 할 수 없는 집단으로 어우러지는 춤으로서 맺힘과 풀림을 기본으로 곡선과 원을 만들면서 논다는 특징이 있다. 강강술래는 춤이 중심이지만, 춤을 추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노래이다. 따라서 전체 판을 이끌기 위해서는 소리를 잘하는 사람이 필요하고, 또 사설도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래서 강강술래소리를 잘하는 사람들은 평소에도 마을에서 인기가 많았으며, 또 다른 마을에서 갓 시집을 온 새각시에게 기대했던 것도 새로운 가사였다고 한다.

특징 및 의의

강강술래는 여성적 특성이 잘 드러나는 집단적인 민속무용이다. 신체에서 기원한 것이겠지만 여성의 기하학적 특징은 원형으로 표현된다. 남성의 성상징이 직선으로 표현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뿐만 아니라 낮-해-남성에 대립되는 밤-달-여성의 이원적 체계로 보더라도 강강술래는 여성적 특성과 일치한다. 현재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지만, 본래 강강술래는 세시풍속으로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활발하게 즐기던 놀이였다. 보름달이 뜨는 명절날 밤에 마을의 부녀자들이 누구의 지시도 없이 한곳에 모여 놀았던 것이 강강술래였다. 특히 젊은 여성들은 평소에 사회적으로 강요받던 여러 가지 얽매임에서 해방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억압의 강도만큼 분출 강도도 높을 수밖에 없었던 세속 일탈의 현장이기도 했다. 이런 강강술래는 춤과 노래가 어우러지는 가무일체형의 집단 놀이이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세시풍속으로서의 주술적 기능이 깔려 있던 놀이였다.우리나라에 대표적인 두 종류의 집단적인 세시놀이가 있다. 줄다리기와 강강술래가 그것이다. 줄다리기는 음양의 원리에 따라 이루어지는 경희競戱의 일종이다. 암줄과 수줄을 만들어 시합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강강술래는 여성들만 즐긴다. 또 줄다리기가 대보름의 대표적인 놀이인데 반해서, 강강술래는 추석의 대표적인 놀이이다. 줄다리기나 강강술래에 대해 농경사회에서 생산, 특히 풍요다산을 기원하던 일종의 주술적 의미를 가지고 놀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농사가 시작되는 대보름에 줄다리기를 했던 것은 음양상통 또는 부부생활과 같다. 그러나 출산은 여성만 가능하다. 자식을 낳는 출산이 여성의 몫이듯이, 역시 생산의 결실인 추수도 여성 원리를 따른다. 더구나 줄다리기를 할 때 여성편이 이겨야 그해 풍년이 든다는 속설도 믿어졌다. 자식을 낳는데 남자는 하등 쓸모가 없듯이, 추수에 있어 여성성의 생산 특권이 강강술래로 형상화되었던 것이다.강강술래를 즐겨했던 곳은 과거 추석에 송편을 해먹었던 지역과도 일치한다. 송편이란 나락을 닮은 떡이다. 송편만큼 크게 나락이 열린다면 대풍이다. 여성들이 추는 강강술래 역시 둥근 원을 그리는데, 이 역시 추수를 앞둔 추석의 의미와 연관된다. 일 년 중 가장 크게 보인다는 추석의 달처럼 모든 오곡백과가 영근다면 역시 대풍은 말할 것도 없다. 긴강강술래에서 중강강술래로, 중강강술래에서 잦은강강술래로 갈수록 여성들이 그리는 춤의 동심원적 확장은 확연하다. 마치 임산부의 배가 시간이 흐를수록 커가는 것과 같다.강강술래는 이렇듯이 벼농사를 위주로 했던 지역, 저 멀리로는 마한으로까지 이어지는 지정학적 배경을 가지고 전승되어 왔던 여성들 고유의 민속무용이다. 강렬한 춤을 통해서 풍요다산을 구가하고자 했던 전형적인 원시종합예술적 형태의 집단가무요, 또한 기능적으로는 풍요다산을 위한 주술종교적 세시풍속이었다.

참고문헌

강강술래놀이(지춘상, 한국의 민속예술, 한국문화예술진흥원,1978), 광주·전남의 민속연구(나경수, 민속원, 2015), 호남가단연구(정익섭, 민문고,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