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조(散調)

한자명

散調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음악

집필자 권도희(權度希)

정의

경기 남부 및 남도 지역에서 발생한 기악 독주 음악.

역사

산조는 19세기 중후반에는 심방곡心方曲이라 불렸다. 심방곡이란 무속음악에서 합주로 연주되는 기악음악, 즉 현재의 시나위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것이 19세기 중반 무렵 지역의 풍류방에서 향유되면서 독주 음악으로 변화했고, 늦어도 19세기 후반에는 현재와 같은 산조 양식을 초기적으로 갖추었다. 19세기 중후반에 활동했던 안민영安玟英의 『금옥총부金玉叢部』(1885)에 의하면 경상도 마산포에 살던 최치학崔致學이 가야금 심방곡으로 신묘한 경지에 올랐고, 경기도 이천에 사는 김군식金君植이 퉁소 심방곡으로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이는 무속계 합주 심방곡이 19세기 후반에 산조의 원형, 즉 독주 심방곡으로 변화되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후로 독주 심방곡의 발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음악가들은 창우 집단에 속했던 고인들이었다. 창우 집단은 무속 가계와 혈연관계를 이루고 있는 공연 전문 기능 집단이다. 이 집단에서는 성악·기악·춤·연희 등을 담당했는데 이 중에서 기악을 담당한 음악가들을 특별히 고인[工人]이라고 부른다. 19세기 말 이후 산조 발달에는 경기 이남 지역의 고인들의 기여했다.
독주 심방곡은 각 지역의 음구조로 바탕으로 발달했다. 고인의 출신지의 음악어법을 중심으로 즉흥 연주로 악곡을 완성했기 때문에 초기 산조散調는 허튼가락이라고도 한다. 초기 산조는 심방곡의 양식, 즉 허튼가락의 구성법을 사용하지만 최소 두 개 이상의 서로 다른 장단, 느린 장단과 빠른 장단을 형식적으로 구별하고 그것을 연속시켜 악곡을 구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초기 산조의 경우 지역에 따라 음악 구조적 차이를 분명히 한다. 예를 들면 경기·충청도 지역에서는 굿거리·자진굿거리·평타령·당악 등과 같은 경기 지역 장단으로써 장단 연속체를 만들고, 전라 지역에서는 진양·중모리·자진모리로 장단연속체를 구성한다. 또한 초기 산조는 조성의 구현에 있어서 육자배기토리(남도계면조)를 중심에 놓지만, 경기·충청 지역에서는 남부경토리(2차경토리)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늦어도 1920년대를 전후로 경기·충청 지역 산조와 호남 산조는 교차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산조사의 중기라고 할 수 있다. 중기 산조는 늦어도 1920년대 전후로 주변 음악 갈래, 즉 굿거리·봉장취 등의 기악 갈래가 산조와 절충되기 시작할 무렵 경기·충청 지역 산조와 호남 산조도 상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광복 전까지 산조의 장단연속체는 진양·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당악 등의 악장으로 연속되는 긴 연속체를 구성하게 되었고, 평조(경토리계 음구조)와 계면조(육자배기토리계 음구조)라는 양대 조성의 음악구조적 역할이 선명해졌으며, 청의 이동이 조성과 연계되면서 형식적 일관성이 강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산조는 주변 기악 음악 갈래였던 봉장취의 음악적 요소, 즉 연희적·묘사적 표현력을 추가함으로써 더욱 섬세하고 풍요로운 음악이 되었다. 나아가 이 시기에는 음악 구조 안에 녹아있었던 지역성이 음악가 별 개성으로 받아 들여졌다. 예를들면 심상건의 산조는 그의 출신지(충남 서산)의 음악을 반영하는 동시에 그의 개성이 드러나는 음악으로 평가되었다. 이러한 중기 산조의 변화는 남도 출신 고인들이 주도했고, 늦어도 1910년대부터 1920년대 중반까지는 가야금산조 명인들이 중심이 되었다. 가야금산조가 새로운 음악으로서 자리를 잡자 여타 악기들도 산조의 발달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악기 산조는 상대적으로 가야금산조보다 늦게 발달했다. 악기별로 음악가의 출신지 및 학습 배경에 따라 그 발전 양상에 차이가 있었다. 『금옥총부』에 의하면 19세기 후반에 이미 경기도 지역에 독주 심방곡으로 퉁소 심방곡이 연주되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도 20세기 전반기에 경기·충청 출신 음악가들은 퉁소 산조를 발달시켰고 이와 함께 피리산조해금산조 등을 발전시켰음이 사료를 통해 확인된다. 광복전까지 호남 출신 음악가들이 거문고산조, 대금산조 등을 구성했던 것과는 비교되는 일이다.
20세기 후반기는 이른바 후기 산조의 시기라 할 수 있다. 산조는 즉흥미보다는 형식미를 갖춘 음악으로 변신했고, 도제식 교육 방법인 구전심수口傳心授보다는 악보로 학습되었다. 이 과정에서 산조의 음악 논리적 일관성이 강화되었으며, 악기별로 구별되는 음색이 초절의 기교로 다양하게 구현되었다. 그러는 과정 중에 후기 산조는 그 길이가 중기 산조에 비해 두세 배 이상 길어졌고, 호남 산조 중 전남제 김창조계 산조는 경기·충청 산조의 구조적 특징을 수용·재해석했다. 그 결과 이 시기에는 산조의 내적 논리가 더욱 치밀해졌다. 나아가 이 시기에는 그 전까지 주류 음악계에서 소외되었던 악기의 산조, 즉 아쟁·태평소·철현금 산조 등도 등장했다. 한편, 광복 후 무형문화재 제도가 생겨나면서 산조는 전승 계보를 통해 향유되는 음악으로 변화되었다. 이를 통해 산조의 창조적 역동성은 억제되었지만, 산조 연주의 계파적 특성이 치밀하게 표현됨으로써 산조 연주의 정교함이 강화되었다.
산조 발전의 중기까지 산조 실천 내에 내재되었던 음악적 즉흥성은 후기 산조에는 관철되기 어려운 것이 되었다. 산조 양식의 발달이 정점을 지났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조의 즉흥성은 여전히 창조적 음악활동을 자극할 수 있었다. 특히 산조 외의 음악에도 영향을 미쳤다. 산조의 즉흥성은 음악적 표현의 자유를 극대화했고, 산조의 실연 양상은 고도의 음악적 기교virtuosity를 지향했기 때문에, 하나의 음악적 이데올로기로 작동했다. 1980년대 전후로 국악기 연주자와 작곡가는 물론이고, 당대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나 록뮤지션 등도 산조와 관련해 창작곡을 만들었다. 예를들면, 국악기 연주자들은 자신의 이름을 건 산조를 만들었고, 작곡가들은 산조의 형식을 빌어 전위적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나아가 신중현, 김도균, 이정선 같은 대중음악가들은 즉흥이라는 음악제법을 활용하여 기타산조 등을 선보이기도 했다.

내용

산조는 노랫말이 없는 순기악 음악이다. 따라서 추상적인 기악 음악의 논리들, 즉 장단연속체·조성·청등을 음악의 내용으로 삼는다. 장단연속체란 산조 전악곡의 골격을 구성하는 방법으로 여러 민속악 장단을 개별 악장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산조의 장단연속체에 포함되었던 민속악 장단은 수없이 많았지만 현재는 진양·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를 중심에 놓고, 유파나 악기에 따라 이상의 악장 전후에 엇모리·단모리·휘모리·굿거리 등과 같은 장단을 배치시킨다. 장단연속체와 함께 산조의 음악적 논리를 보장하는 또 하나의 요소가 조성이다. 산조에 사용되는 조성에 대해서는 전승 계보별로 다양한 이름을 붙이기도 하지만 음악 분석적으로는 평조(우조)와 계면조, 즉 민요경토리계 음구조를 활용한 조성과 육자배기토리계 음구조를 활용한 조성으로 양분된다. 두 개의 조성은 서로 대립되는 음체계를 갖고 있지만, 실제 음악에서는 조성을 구성하는 음들을 미분음적으로 조절하여 대립되는 음들을 둔각으로 만들어 유연한 변화를 표현하기도 한다. 청이란 서로 다른 음계의 중심음을 말한다. 그런데 청은 음계의 중심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악구의 음역과 음의 전개를 주도하는 주요음으로서의 기능도 있다. 장단과 음계에 비해 청의 이동은 자유롭기 때문에 음악적 변화를 신속하게 보여준다.
현대 산조에는 순음악적 논리를 넘어서 수용자의 입장들이 반영되었다. 그것은 산조와 관련된 명인과 유파라는 개념이다. 명인은 특정 산조가 개성적인 산조로 인정되는 데 공이 있는 음악가를 지칭하고, 유파란 명인들의 음악이 창조적으로 계승되어 일가를 이룬 것을 말한다. 명인의 등장은 독주 심방곡이 연주되었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유파는 중기 산조까지는 없었던 것이었다. 독주 심방곡은 지역 풍류라는 사회문화적 배경 속에서, 또 초기 산조는 탈지역적 풍류가 되는 과정에서, 중기 산조는 도시적 공연문화계로 진입하는 도중에 성장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기 산조는 급격한 근대화의 노정 중에 단절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따라서 후기 산조는 약 한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절멸의 위기를 맞이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음악계는 산조를 개별 음악이나 음악가보다는 사회적 자원으로서, 즉 집단적으로 전승되는 소중한 자산이라는 전략으로 위기를 넘겼다. 이 과정에서 산조사에 등장하는 여러 명인들은 사승 관계를 통해 유파라는 개념으로 묶이게 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산조의 전승과 향유가 유도되었다. 그 결과 현재 산조는 악기별, 명인별로 유파로 거론되고 있다. 유파를 구체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는 ‘제’와 ‘류’라는 접미어를 사용하며, 전승의 계통도가 복잡한 경우는 ‘계’라는 접미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가야금산조의 경우, 지역에 따른 음악적 특징을 구별하기 위해 충청제·전남제·전북제 산조라 부른다. 그런데 전남제 산조의 경우 다른 지역과 달리 산조사 초기부터 거론되는 명인들이 많기 때문에 계보를 정리할 때 중시조라 인정되는 명인들의 사승 관계를 분명히 하여 전남제 김창조계 산조, 혹은 전남제 한숙구계 산조 등으로 구별해 부른다. 또한 김창조계 산조는 김창조를 중시조로 삼은 산조가 다음 세대에서 급격히 확장되기 때문에, 그 경우 정남희류 산조(김창조계 정남희류 산조) 혹은 강태홍류 산조(김창조계강태홍류 산조) 등으로 구별하여 부른다. 그러나 가야금산조를 제외한 대부분의 산조는 중시조라 지목되는 명인의 이름과 함께 유파를 구분하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 들면 대금산조의 경우 ‘한범수류 산조’ 라고 부른다.

특징 및 의의

현재 산조는 한국 전통음악을 대표하는 기악 독주곡으로 인정받고 있다. 관례적으로 산조는 고도의 기교와 예술성 중 그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균형미를 갖춘 고도의 기악 예술음악으로 평가된다. 산조는 독주 심방곡 시기부터 중기 산조에 이르기까지 즉흥을 미덕으로 삼았던 음악이었지만, 산조의 수용 및 전승 방법의 변화 때문에 즉흥은 후기 산조에서는 더 이상 구현되기 어려운 것이 되었다. 그러나 산조의 즉흥성은 순기악음악의 이상향이 됨으로써 현대 음악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참고문헌

金玉叢部, 가야금산조(이보형,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72),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7-산조(이보형,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87), 조선음악통론(함화진, 을유문화사, 1948), 지영희 민속음악자료집(성금연, 민속원, 2000), 지용구의 음악활동 및 초기 해금산조 창제의 음악사적 고찰(허시라,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논문, 2004), 초기 산조에서 장단연속체구성법의 다양성(권도희, 한국 음악연구59, 한국국악학회, 2016).

산조

산조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음악

집필자 권도희(權度希)

정의

경기 남부 및 남도 지역에서 발생한 기악 독주 음악.

역사

산조는 19세기 중후반에는 심방곡心方曲이라 불렸다. 심방곡이란 무속음악에서 합주로 연주되는 기악음악, 즉 현재의 시나위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것이 19세기 중반 무렵 지역의 풍류방에서 향유되면서 독주 음악으로 변화했고, 늦어도 19세기 후반에는 현재와 같은 산조 양식을 초기적으로 갖추었다. 19세기 중후반에 활동했던 안민영安玟英의 『금옥총부金玉叢部』(1885)에 의하면 경상도 마산포에 살던 최치학崔致學이 가야금 심방곡으로 신묘한 경지에 올랐고, 경기도 이천에 사는 김군식金君植이 퉁소 심방곡으로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이는 무속계 합주 심방곡이 19세기 후반에 산조의 원형, 즉 독주 심방곡으로 변화되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후로 독주 심방곡의 발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음악가들은 창우 집단에 속했던 고인들이었다. 창우 집단은 무속 가계와 혈연관계를 이루고 있는 공연 전문 기능 집단이다. 이 집단에서는 성악·기악·춤·연희 등을 담당했는데 이 중에서 기악을 담당한 음악가들을 특별히 고인[工人]이라고 부른다. 19세기 말 이후 산조 발달에는 경기 이남 지역의 고인들의 기여했다.독주 심방곡은 각 지역의 음구조로 바탕으로 발달했다. 고인의 출신지의 음악어법을 중심으로 즉흥 연주로 악곡을 완성했기 때문에 초기 산조散調는 허튼가락이라고도 한다. 초기 산조는 심방곡의 양식, 즉 허튼가락의 구성법을 사용하지만 최소 두 개 이상의 서로 다른 장단, 느린 장단과 빠른 장단을 형식적으로 구별하고 그것을 연속시켜 악곡을 구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초기 산조의 경우 지역에 따라 음악 구조적 차이를 분명히 한다. 예를 들면 경기·충청도 지역에서는 굿거리·자진굿거리·평타령·당악 등과 같은 경기 지역 장단으로써 장단 연속체를 만들고, 전라 지역에서는 진양·중모리·자진모리로 장단연속체를 구성한다. 또한 초기 산조는 조성의 구현에 있어서 육자배기토리(남도계면조)를 중심에 놓지만, 경기·충청 지역에서는 남부경토리(2차경토리)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늦어도 1920년대를 전후로 경기·충청 지역 산조와 호남 산조는 교차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산조사의 중기라고 할 수 있다. 중기 산조는 늦어도 1920년대 전후로 주변 음악 갈래, 즉 굿거리·봉장취 등의 기악 갈래가 산조와 절충되기 시작할 무렵 경기·충청 지역 산조와 호남 산조도 상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광복 전까지 산조의 장단연속체는 진양·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당악 등의 악장으로 연속되는 긴 연속체를 구성하게 되었고, 평조(경토리계 음구조)와 계면조(육자배기토리계 음구조)라는 양대 조성의 음악구조적 역할이 선명해졌으며, 청의 이동이 조성과 연계되면서 형식적 일관성이 강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산조는 주변 기악 음악 갈래였던 봉장취의 음악적 요소, 즉 연희적·묘사적 표현력을 추가함으로써 더욱 섬세하고 풍요로운 음악이 되었다. 나아가 이 시기에는 음악 구조 안에 녹아있었던 지역성이 음악가 별 개성으로 받아 들여졌다. 예를들면 심상건의 산조는 그의 출신지(충남 서산)의 음악을 반영하는 동시에 그의 개성이 드러나는 음악으로 평가되었다. 이러한 중기 산조의 변화는 남도 출신 고인들이 주도했고, 늦어도 1910년대부터 1920년대 중반까지는 가야금산조 명인들이 중심이 되었다. 가야금산조가 새로운 음악으로서 자리를 잡자 여타 악기들도 산조의 발달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대부분의 악기 산조는 상대적으로 가야금산조보다 늦게 발달했다. 악기별로 음악가의 출신지 및 학습 배경에 따라 그 발전 양상에 차이가 있었다. 『금옥총부』에 의하면 19세기 후반에 이미 경기도 지역에 독주 심방곡으로 퉁소 심방곡이 연주되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도 20세기 전반기에 경기·충청 출신 음악가들은 퉁소 산조를 발달시켰고 이와 함께 피리산조와 해금산조 등을 발전시켰음이 사료를 통해 확인된다. 광복전까지 호남 출신 음악가들이 거문고산조, 대금산조 등을 구성했던 것과는 비교되는 일이다.20세기 후반기는 이른바 후기 산조의 시기라 할 수 있다. 산조는 즉흥미보다는 형식미를 갖춘 음악으로 변신했고, 도제식 교육 방법인 구전심수口傳心授보다는 악보로 학습되었다. 이 과정에서 산조의 음악 논리적 일관성이 강화되었으며, 악기별로 구별되는 음색이 초절의 기교로 다양하게 구현되었다. 그러는 과정 중에 후기 산조는 그 길이가 중기 산조에 비해 두세 배 이상 길어졌고, 호남 산조 중 전남제 김창조계 산조는 경기·충청 산조의 구조적 특징을 수용·재해석했다. 그 결과 이 시기에는 산조의 내적 논리가 더욱 치밀해졌다. 나아가 이 시기에는 그 전까지 주류 음악계에서 소외되었던 악기의 산조, 즉 아쟁·태평소·철현금 산조 등도 등장했다. 한편, 광복 후 무형문화재 제도가 생겨나면서 산조는 전승 계보를 통해 향유되는 음악으로 변화되었다. 이를 통해 산조의 창조적 역동성은 억제되었지만, 산조 연주의 계파적 특성이 치밀하게 표현됨으로써 산조 연주의 정교함이 강화되었다.산조 발전의 중기까지 산조 실천 내에 내재되었던 음악적 즉흥성은 후기 산조에는 관철되기 어려운 것이 되었다. 산조 양식의 발달이 정점을 지났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조의 즉흥성은 여전히 창조적 음악활동을 자극할 수 있었다. 특히 산조 외의 음악에도 영향을 미쳤다. 산조의 즉흥성은 음악적 표현의 자유를 극대화했고, 산조의 실연 양상은 고도의 음악적 기교virtuosity를 지향했기 때문에, 하나의 음악적 이데올로기로 작동했다. 1980년대 전후로 국악기 연주자와 작곡가는 물론이고, 당대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나 록뮤지션 등도 산조와 관련해 창작곡을 만들었다. 예를들면, 국악기 연주자들은 자신의 이름을 건 산조를 만들었고, 작곡가들은 산조의 형식을 빌어 전위적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나아가 신중현, 김도균, 이정선 같은 대중음악가들은 즉흥이라는 음악제법을 활용하여 기타산조 등을 선보이기도 했다.

내용

산조는 노랫말이 없는 순기악 음악이다. 따라서 추상적인 기악 음악의 논리들, 즉 장단연속체·조성·청등을 음악의 내용으로 삼는다. 장단연속체란 산조 전악곡의 골격을 구성하는 방법으로 여러 민속악 장단을 개별 악장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산조의 장단연속체에 포함되었던 민속악 장단은 수없이 많았지만 현재는 진양·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를 중심에 놓고, 유파나 악기에 따라 이상의 악장 전후에 엇모리·단모리·휘모리·굿거리 등과 같은 장단을 배치시킨다. 장단연속체와 함께 산조의 음악적 논리를 보장하는 또 하나의 요소가 조성이다. 산조에 사용되는 조성에 대해서는 전승 계보별로 다양한 이름을 붙이기도 하지만 음악 분석적으로는 평조(우조)와 계면조, 즉 민요의 경토리계 음구조를 활용한 조성과 육자배기토리계 음구조를 활용한 조성으로 양분된다. 두 개의 조성은 서로 대립되는 음체계를 갖고 있지만, 실제 음악에서는 조성을 구성하는 음들을 미분음적으로 조절하여 대립되는 음들을 둔각으로 만들어 유연한 변화를 표현하기도 한다. 청이란 서로 다른 음계의 중심음을 말한다. 그런데 청은 음계의 중심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악구의 음역과 음의 전개를 주도하는 주요음으로서의 기능도 있다. 장단과 음계에 비해 청의 이동은 자유롭기 때문에 음악적 변화를 신속하게 보여준다.현대 산조에는 순음악적 논리를 넘어서 수용자의 입장들이 반영되었다. 그것은 산조와 관련된 명인과 유파라는 개념이다. 명인은 특정 산조가 개성적인 산조로 인정되는 데 공이 있는 음악가를 지칭하고, 유파란 명인들의 음악이 창조적으로 계승되어 일가를 이룬 것을 말한다. 명인의 등장은 독주 심방곡이 연주되었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유파는 중기 산조까지는 없었던 것이었다. 독주 심방곡은 지역 풍류라는 사회문화적 배경 속에서, 또 초기 산조는 탈지역적 풍류가 되는 과정에서, 중기 산조는 도시적 공연문화계로 진입하는 도중에 성장했을 뿐이기 때문이다.그러나 후기 산조는 급격한 근대화의 노정 중에 단절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따라서 후기 산조는 약 한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절멸의 위기를 맞이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음악계는 산조를 개별 음악이나 음악가보다는 사회적 자원으로서, 즉 집단적으로 전승되는 소중한 자산이라는 전략으로 위기를 넘겼다. 이 과정에서 산조사에 등장하는 여러 명인들은 사승 관계를 통해 유파라는 개념으로 묶이게 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산조의 전승과 향유가 유도되었다. 그 결과 현재 산조는 악기별, 명인별로 유파로 거론되고 있다. 유파를 구체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는 ‘제’와 ‘류’라는 접미어를 사용하며, 전승의 계통도가 복잡한 경우는 ‘계’라는 접미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가야금산조의 경우, 지역에 따른 음악적 특징을 구별하기 위해 충청제·전남제·전북제 산조라 부른다. 그런데 전남제 산조의 경우 다른 지역과 달리 산조사 초기부터 거론되는 명인들이 많기 때문에 계보를 정리할 때 중시조라 인정되는 명인들의 사승 관계를 분명히 하여 전남제 김창조계 산조, 혹은 전남제 한숙구계 산조 등으로 구별해 부른다. 또한 김창조계 산조는 김창조를 중시조로 삼은 산조가 다음 세대에서 급격히 확장되기 때문에, 그 경우 정남희류 산조(김창조계 정남희류 산조) 혹은 강태홍류 산조(김창조계강태홍류 산조) 등으로 구별하여 부른다. 그러나 가야금산조를 제외한 대부분의 산조는 중시조라 지목되는 명인의 이름과 함께 유파를 구분하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 들면 대금산조의 경우 ‘한범수류 산조’ 라고 부른다.

특징 및 의의

현재 산조는 한국 전통음악을 대표하는 기악 독주곡으로 인정받고 있다. 관례적으로 산조는 고도의 기교와 예술성 중 그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균형미를 갖춘 고도의 기악 예술음악으로 평가된다. 산조는 독주 심방곡 시기부터 중기 산조에 이르기까지 즉흥을 미덕으로 삼았던 음악이었지만, 산조의 수용 및 전승 방법의 변화 때문에 즉흥은 후기 산조에서는 더 이상 구현되기 어려운 것이 되었다. 그러나 산조의 즉흥성은 순기악음악의 이상향이 됨으로써 현대 음악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참고문헌

金玉叢部, 가야금산조(이보형,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72),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7-산조(이보형,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87), 조선음악통론(함화진, 을유문화사, 1948), 지영희 민속음악자료집(성금연, 민속원, 2000), 지용구의 음악활동 및 초기 해금산조 창제의 음악사적 고찰(허시라,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논문, 2004), 초기 산조에서 장단연속체구성법의 다양성(권도희, 한국 음악연구59, 한국국악학회,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