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녀비형랑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민담

집필자 강은해(姜恩海)
갱신일 2018-12-28

정의

왕의 혼령이 생전에 사모한 여인 도화녀를 찾아가 낳은 아들 비형에 관한 설화.

역사

신라 제25대 진지왕과 관련된 이야기로 『삼국유사(三國遺事)』 권1에 실려 전승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경주부」에서 “신라 경주의 사람들이 비형 이후 두두리(豆豆里) 섬기기를 심히 성히 했다.”라고 말했는데, 비형랑은 도깨비이다. 경주의 풍속에서는 지금도 ‘성제(聖帝)의 혼이 아들을 낳은 비형랑의 집’이라는 가사를 문에 붙여서 귀신을 쫓는데, 이것이 ‘동경두두리’의 시초라고 한다. <도화녀비형랑>은 문헌에 기록된 최초의 도깨비 본풀이라고 할 수 있다.

줄거리

진지왕이 생전에 사량부에 사는 아름다운 도화녀를 보고 함께 있기를 청하자, 도화녀가 남편이 있는 몸이라고 하며 거부하였다. 진지왕이 폐위된 후 죽고 도화녀의 남편도 세상을 떠나자, 죽은 진지왕의 혼령이 도화녀를 찾아와 7일 동안 함께 머물다 떠났다. 그 후 달이 차서 비형이 태어났다. 진평 대왕은 비형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고 궁중에서 기르고 집사 벼슬을 주었다. 비형이 밤만 되면 서쪽 황천강 언덕 위에서 여러 귀신들을 모아서 놀자, 왕은 비형에게 다리를 놓을 것을 명한다. 비형이 무리를 부려 하룻밤 새 다리를 놓고 그 이름을 ‘귀교(鬼橋)’라고 불렀다. 비형은 그가 부리는 무리 가운데 길달을 조정에 천거하고 왕은 아들이 없는 신하로 하여금 그를 양자로 삼게 하였다. 길달은 흥륜사 남쪽에 성문을 세우고 밤마다 그 문 위에서 잠을 자 사람들이 그 문을 길달문이라 하였다. 어느 날 길달이 여우로 변해 도망가자 비형은 귀신들을 시켜 그를 죽이게 하였다. 이때 사람들이 노래를 짓고 가사를 문에 써 붙여 잡귀를 물리치게 되었다.

변이

비형랑, 즉 두두리도깨비에 관한 이야기는 문헌과 구술 전승에서 그 존재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보여주며 여러 체계로 분화된다. 『고려사(高麗史)』 이의민 조의 기록을 보면 경주 사람들이 ‘두두을(豆豆乙)’이라 부르는 목매(木魅)가 있는데, 무식하여 무격만 믿은 의민이 당을 세워 그를 집에 모시고 있다고 하였다. 비형 두두리도깨비의 신성성이 훼손되는 이와 같은 이야기는 도깨비를 트릭스터라고 규정하면서 흰 말의 피로 도깨비를 퇴치하는 이야기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나아가 도깨비가 나무빗자루 같은 허깨비로 나오는 경험담이나 도깨비방망이를 부자방망이로 삼는 민담으로 다양하게 확장된다.

분석

이 설화의 서사적 틀은 비형랑의 존재론적 근거와 그에 따른 신성 능력의 현시라는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죽은 왕의 혼령과 살아 있는 어머니의 결합은 저승과 이승의 결합이며, 그 사이에서 태어난 비형은 양쪽 공간의 경계 표지이자 매개자이다. 비형이 이승에서 맡은 과업은 귀신들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특히 두두리도깨비들을 부려 다리를 놓고, 성문을 세우는 등 건축신으로서의 직능을 보여 준 점은 구술전승에서 도깨비가 하는 대표적인 행위와 일치한다.

특징

이 설화는 밤에 오는 손님을 다룬 야래자(夜來子)설화와 이물교혼설화, 죽은 이와의 사랑을 다루는 시애(屍愛)설화와 상호 관련이 있다.

의의

도깨비는 한국인의 무의식적 심상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존재이다. 도깨비의 본풀이라고 할 수 있는 비형이야기는 도깨비의 존재론적 근거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출처

三國遺事.

참고문헌

금방울전고(성기열, 한국구비설화의 연구, 1976), 시애설화와 소설(장덕순, 숙명여자대학교, 1962), 한국난타의 원형 두두리 도깨비의 세계(강은해, 예림기획, 200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7(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9).

도화녀비형랑

도화녀비형랑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민담

집필자 강은해(姜恩海)
갱신일 2018-12-28

정의

왕의 혼령이 생전에 사모한 여인 도화녀를 찾아가 낳은 아들 비형에 관한 설화.

역사

신라 제25대 진지왕과 관련된 이야기로 『삼국유사(三國遺事)』 권1에 실려 전승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경주부」에서 “신라 경주의 사람들이 비형 이후 두두리(豆豆里) 섬기기를 심히 성히 했다.”라고 말했는데, 비형랑은 도깨비이다. 경주의 풍속에서는 지금도 ‘성제(聖帝)의 혼이 아들을 낳은 비형랑의 집’이라는 가사를 문에 붙여서 귀신을 쫓는데, 이것이 ‘동경두두리’의 시초라고 한다. 은 문헌에 기록된 최초의 도깨비 본풀이라고 할 수 있다.

줄거리

진지왕이 생전에 사량부에 사는 아름다운 도화녀를 보고 함께 있기를 청하자, 도화녀가 남편이 있는 몸이라고 하며 거부하였다. 진지왕이 폐위된 후 죽고 도화녀의 남편도 세상을 떠나자, 죽은 진지왕의 혼령이 도화녀를 찾아와 7일 동안 함께 머물다 떠났다. 그 후 달이 차서 비형이 태어났다. 진평 대왕은 비형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고 궁중에서 기르고 집사 벼슬을 주었다. 비형이 밤만 되면 서쪽 황천강 언덕 위에서 여러 귀신들을 모아서 놀자, 왕은 비형에게 다리를 놓을 것을 명한다. 비형이 무리를 부려 하룻밤 새 다리를 놓고 그 이름을 ‘귀교(鬼橋)’라고 불렀다. 비형은 그가 부리는 무리 가운데 길달을 조정에 천거하고 왕은 아들이 없는 신하로 하여금 그를 양자로 삼게 하였다. 길달은 흥륜사 남쪽에 성문을 세우고 밤마다 그 문 위에서 잠을 자 사람들이 그 문을 길달문이라 하였다. 어느 날 길달이 여우로 변해 도망가자 비형은 귀신들을 시켜 그를 죽이게 하였다. 이때 사람들이 노래를 짓고 가사를 문에 써 붙여 잡귀를 물리치게 되었다.

변이

비형랑, 즉 두두리도깨비에 관한 이야기는 문헌과 구술 전승에서 그 존재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보여주며 여러 체계로 분화된다. 『고려사(高麗史)』 이의민 조의 기록을 보면 경주 사람들이 ‘두두을(豆豆乙)’이라 부르는 목매(木魅)가 있는데, 무식하여 무격만 믿은 의민이 당을 세워 그를 집에 모시고 있다고 하였다. 비형 두두리도깨비의 신성성이 훼손되는 이와 같은 이야기는 도깨비를 트릭스터라고 규정하면서 흰 말의 피로 도깨비를 퇴치하는 이야기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나아가 도깨비가 나무빗자루 같은 허깨비로 나오는 경험담이나 도깨비방망이를 부자방망이로 삼는 민담으로 다양하게 확장된다.

분석

이 설화의 서사적 틀은 비형랑의 존재론적 근거와 그에 따른 신성 능력의 현시라는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죽은 왕의 혼령과 살아 있는 어머니의 결합은 저승과 이승의 결합이며, 그 사이에서 태어난 비형은 양쪽 공간의 경계 표지이자 매개자이다. 비형이 이승에서 맡은 과업은 귀신들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특히 두두리도깨비들을 부려 다리를 놓고, 성문을 세우는 등 건축신으로서의 직능을 보여 준 점은 구술전승에서 도깨비가 하는 대표적인 행위와 일치한다.

특징

이 설화는 밤에 오는 손님을 다룬 야래자(夜來子)설화와 이물교혼설화, 죽은 이와의 사랑을 다루는 시애(屍愛)설화와 상호 관련이 있다.

의의

도깨비는 한국인의 무의식적 심상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존재이다. 도깨비의 본풀이라고 할 수 있는 비형이야기는 도깨비의 존재론적 근거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출처

三國遺事.

참고문헌

금방울전고(성기열, 한국구비설화의 연구, 1976), 시애설화와 소설(장덕순, 숙명여자대학교, 1962), 한국난타의 원형 두두리 도깨비의 세계(강은해, 예림기획, 200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7(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