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방폭포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전설

집필자 강소전(姜昭全)
갱신일 2018-12-27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귀동에 있는 정방폭포와 관련 있는 전설.

역사

정방폭포의 경관은 매우 아름다워서, 예부터 제주의 절경으로 꼽은 영주십경(瀛洲十景) 가운데 하나로 정방하폭(正房夏瀑)이라고 하였다. 18세기 초 이형상 목사의 <탐라순력도>에도 정방탐승(正方探勝)이라는 화폭이 있다. 정방폭포는 현재 국가 지정 문화재 명승 제43호이다. <정방폭포설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서불은 서복(徐福)이라고도 한다. 최근 전설을 넘어서서 중국에 실제로 존재하였던 역사적 인물이라는 측면에서 고찰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줄거리

『제주도 전설지』를 중심으로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중국의 진시황은 막강한 힘으로 세상을 자기 손아귀에 놓고 권세를 부렸다. 나아가 진시황은 끝없는 영생을 누리고자 하였으나 자기 육신이 점점 늙어가는 것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그는 고민 끝에 모든 신하를 모아 놓고 사람이 영생하는 방법을 물었다. 이때 서불이라는 신하가 나서서 동쪽 나라의 작은 섬인 영주라는 곳의 신령스러운 한라산에 있는 불로초를 먹으면 사람이 영생할 수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였다. 서불은 진시황으로부터 벗어날 궁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스스로 불로초를 구해 오겠다고 하면서 진시황에게 동남동녀 오백 명을 내어달라고 하였다. 한라산 깊은 곳에 자라는 불로초는 구하기가 쉽지 않으니 마음과 몸이 정결하고 흠이 없는 동남동녀들의 눈에만 보인다고 하더라고 둘러댔다. 진시황은 서불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동남동녀 오백 명과 여행에 필요한 여러 척의 배와 물건들을 마련해 서불을 떠나보냈다. 서불 일행은 제주에 도착한 뒤 불로초를 구하기는커녕 한라산을 비롯하여 제주의 여러 곳을 구경하러 다녔다. 그러다가 정방폭포를 구경하고 다시 동쪽으로 떠나면서 폭포의 바위에 ‘서불과차(徐市過此)’ 혹은 ‘서불과지(徐市過之)’라고 하여 자신들이 이곳을 지나갔다는 글귀를 새겨 두었다. 폭포의 상단 바위에 당시 새긴 글귀의 흔적이 있다고 전한다. 불로초를 구실로 진시황에게서 벗어난 서불 일행은 동쪽으로 가서 작은 나라를 이루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분석

서불 관련 전설들은 여러 곳에서 전승되지만, 남해 일대와 제주도 서귀포에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다. <서불설화>를 통해 서불의 이동 경로를 탐구한 최근 연구에서는 <서불 설화>가 불로초로 상징되는 영생의 환상초를 찾아가는 탐색자와 문화 전파자의 이미지를 반영하고 있다고 보았다.

특징

<서불설화>는 진시황제의 <불로초설화>와 함께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중국, 한국, 일본 등에도 전승되고 있어 동아시아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실제 이동 경로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과 연관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출처

남국의 전설(진성기, 일지사, 1968) 제주도 전설지(제주도, 1985).

참고문헌

서복집단과 제주도(홍순만, 제주문화원, 2002), 서불설화의 동아시아적 성격(이창식, 어문학 88, 한국어문학회, 2005).

정방폭포

정방폭포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전설

집필자 강소전(姜昭全)
갱신일 2018-12-27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귀동에 있는 정방폭포와 관련 있는 전설.

역사

정방폭포의 경관은 매우 아름다워서, 예부터 제주의 절경으로 꼽은 영주십경(瀛洲十景) 가운데 하나로 정방하폭(正房夏瀑)이라고 하였다. 18세기 초 이형상 목사의 에도 정방탐승(正方探勝)이라는 화폭이 있다. 정방폭포는 현재 국가 지정 문화재 명승 제43호이다. 에 등장하는 주인공 서불은 서복(徐福)이라고도 한다. 최근 전설을 넘어서서 중국에 실제로 존재하였던 역사적 인물이라는 측면에서 고찰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줄거리

『제주도 전설지』를 중심으로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중국의 진시황은 막강한 힘으로 세상을 자기 손아귀에 놓고 권세를 부렸다. 나아가 진시황은 끝없는 영생을 누리고자 하였으나 자기 육신이 점점 늙어가는 것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그는 고민 끝에 모든 신하를 모아 놓고 사람이 영생하는 방법을 물었다. 이때 서불이라는 신하가 나서서 동쪽 나라의 작은 섬인 영주라는 곳의 신령스러운 한라산에 있는 불로초를 먹으면 사람이 영생할 수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였다. 서불은 진시황으로부터 벗어날 궁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스스로 불로초를 구해 오겠다고 하면서 진시황에게 동남동녀 오백 명을 내어달라고 하였다. 한라산 깊은 곳에 자라는 불로초는 구하기가 쉽지 않으니 마음과 몸이 정결하고 흠이 없는 동남동녀들의 눈에만 보인다고 하더라고 둘러댔다. 진시황은 서불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동남동녀 오백 명과 여행에 필요한 여러 척의 배와 물건들을 마련해 서불을 떠나보냈다. 서불 일행은 제주에 도착한 뒤 불로초를 구하기는커녕 한라산을 비롯하여 제주의 여러 곳을 구경하러 다녔다. 그러다가 정방폭포를 구경하고 다시 동쪽으로 떠나면서 폭포의 바위에 ‘서불과차(徐市過此)’ 혹은 ‘서불과지(徐市過之)’라고 하여 자신들이 이곳을 지나갔다는 글귀를 새겨 두었다. 폭포의 상단 바위에 당시 새긴 글귀의 흔적이 있다고 전한다. 불로초를 구실로 진시황에게서 벗어난 서불 일행은 동쪽으로 가서 작은 나라를 이루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분석

서불 관련 전설들은 여러 곳에서 전승되지만, 남해 일대와 제주도 서귀포에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다. 를 통해 서불의 이동 경로를 탐구한 최근 연구에서는 가 불로초로 상징되는 영생의 환상초를 찾아가는 탐색자와 문화 전파자의 이미지를 반영하고 있다고 보았다.

특징

는 진시황제의 와 함께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중국, 한국, 일본 등에도 전승되고 있어 동아시아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실제 이동 경로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과 연관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출처

남국의 전설(진성기, 일지사, 1968) 제주도 전설지(제주도, 1985).

참고문헌

서복집단과 제주도(홍순만, 제주문화원, 2002), 서불설화의 동아시아적 성격(이창식, 어문학 88, 한국어문학회,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