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부암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전설

집필자 강소전(姜昭全)
갱신일 2018-12-27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龍水里)에 있는 바위에 얽힌 전설.

역사

용수리 마을에 실제로 살았던 부부의 이야기라고 한다. 이 설화와 관련하여 1866년(고종 3)에 판관 신재우가 바위에 새겼다고 하는 절부암이라는 마애명이 해당 장소에 있다. 이 부부의 사연을 기리는 절부암제도 현재까지 마을 차원에서 지내고 있다. 절부암은 제주도기념물 제9호로 지정되었다.

줄거리

『제주설화집성』과 『제주도 전설』을 중심으로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경면 용수리의 포구 옆에는 나무들로 우거진 절벽 바위가 있다. 이 바위를 마을 사람들은 절부암이라고 부른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전한다. 옛날 용수리에 강사철(康士喆)이라고 하는 총각과 고 씨 처녀가 살았다. 둘 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어렵게 자랐지만, 동네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정도로 착실했다. 십오 세가 넘어, 나중에는 둘이 혼인하게 되었다. 혼인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인 강 씨는 생계를 위하여 바다로 나갔다. 마을과 가까운 차귀섬으로 가서 대나무를 베어다가 대바구니 같은 것을 엮어 팔아 살림을 꾸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남편은 그만 불행하게도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죽고 말았다. 부인 고 씨는 미친 사람처럼 바닷가를 돌며 남편의 시체라도 떠오르기를 빌고 기다렸다. 하지만 석 달이 지나도록 시체는 찾을 수 없었다. 비탄에 빠진 부인은 체념하고 남편의 뒤를 따르기로 결심하였다. 결국 부인은 마을 포구 옆 절벽 위의 나무에 목을 매어 죽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이상하게도 남편의 시체가 바로 그 절벽 밑으로 떠올랐다. 동네 사람들은 이 애처로운 광경을 보고 당산봉의 양지 바른 곳에 부부를 묻어 주었다. 한편 그때 인근 대정 고을에 신재우라는 사람이 이 소식을 듣고 자기가 벼슬을 한다면 열녀비라도 세워 주겠다며 중얼거렸다. 그 뒤 신재우는 과거를 보았지만 낙방하고 말았다. 신재우가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어느 날 꿈에 고 씨 부인이 나타나 다시 과거를 보라고 격려하였다. 신재우는 부인 고 씨의 묘에 참배하고 다시 과거를 보아 급제하였다. 신재우는 부부의 도움으로 자신이 과거에 급제할 수 있었다고 여겼다. 신재우는 대정 현감(혹은 판관)이 되어 돌아와 매년 3월 15일에 열녀제를 지내도록 하고 열녀비를 세워 주었다. 이런 까닭으로 부인이 목을 매어 죽은 절벽 바위를 절부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분석

『제주설화집성』과 『제주도 전설』을 중심으로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경면 용수리의 포구 옆에는 나무들로 우거진 절벽 바위가 있다. 이 바위를 마을 사람들은 절부암이라고 부른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전한다. 옛날 용수리에 강사철(康士喆)이라고 하는 총각과 고 씨 처녀가 살았다. 둘 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어렵게 자랐지만, 동네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정도로 착실했다. 십오 세가 넘어, 나중에는 둘이 혼인하게 되었다. 혼인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인 강 씨는 생계를 위하여 바다로 나갔다. 마을과 가까운 차귀섬으로 가서 대나무를 베어다가 대바구니 같은 것을 엮어 팔아 살림을 꾸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남편은 그만 불행하게도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죽고 말았다. 부인 고 씨는 미친 사람처럼 바닷가를 돌며 남편의 시체라도 떠오르기를 빌고 기다렸다. 하지만 석 달이 지나도록 시체는 찾을 수 없었다. 비탄에 빠진 부인은 체념하고 남편의 뒤를 따르기로 결심하였다. 결국 부인은 마을 포구 옆 절벽 위의 나무에 목을 매어 죽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이상하게도 남편의 시체가 바로 그 절벽 밑으로 떠올랐다. 동네 사람들은 이 애처로운 광경을 보고 당산봉의 양지 바른 곳에 부부를 묻어 주었다. 한편 그때 인근 대정 고을에 신재우라는 사람이 이 소식을 듣고 자기가 벼슬을 한다면 열녀비라도 세워 주겠다며 중얼거렸다. 그 뒤 신재우는 과거를 보았지만 낙방하고 말았다. 신재우가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어느 날 꿈에 고 씨 부인이 나타나 다시 과거를 보라고 격려하였다. 신재우는 부인 고 씨의 묘에 참배하고 다시 과거를 보아 급제하였다. 신재우는 부부의 도움으로 자신이 과거에 급제할 수 있었다고 여겼다. 신재우는 대정 현감(혹은 판관)이 되어 돌아와 매년 3월 15일에 열녀제를 지내도록 하고 열녀비를 세워 주었다. 이런 까닭으로 부인이 목을 매어 죽은 절벽 바위를 절부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특징

<절부암> 이야기는 부인이 자결한 뒤 남편의 시체가 떠오르고 부인의 혼이 실제 인물의 과거 급제를 도왔다는 등 극적인 구성과 풍부한 내용이 특징적이다.

출처

국문학보15(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2001), 제주도 부락지3(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1990), 제주도 전설(현용준, 서문당, 1996), 제주도 전설지(제주도, 1985), 제주설화집성1(김영돈·현용준·현길언,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1985).

참고문헌

구비 열녀설화의 양상과 의미(김대숙, 고전문학연구, 한국고전문학회, 1994), 조선시대 제주지역 열녀 연구(김지혜, 제주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9).

절부암

절부암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전설

집필자 강소전(姜昭全)
갱신일 2018-12-27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龍水里)에 있는 바위에 얽힌 전설.

역사

용수리 마을에 실제로 살았던 부부의 이야기라고 한다. 이 설화와 관련하여 1866년(고종 3)에 판관 신재우가 바위에 새겼다고 하는 절부암이라는 마애명이 해당 장소에 있다. 이 부부의 사연을 기리는 절부암제도 현재까지 마을 차원에서 지내고 있다. 절부암은 제주도기념물 제9호로 지정되었다.

줄거리

『제주설화집성』과 『제주도 전설』을 중심으로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경면 용수리의 포구 옆에는 나무들로 우거진 절벽 바위가 있다. 이 바위를 마을 사람들은 절부암이라고 부른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전한다. 옛날 용수리에 강사철(康士喆)이라고 하는 총각과 고 씨 처녀가 살았다. 둘 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어렵게 자랐지만, 동네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정도로 착실했다. 십오 세가 넘어, 나중에는 둘이 혼인하게 되었다. 혼인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인 강 씨는 생계를 위하여 바다로 나갔다. 마을과 가까운 차귀섬으로 가서 대나무를 베어다가 대바구니 같은 것을 엮어 팔아 살림을 꾸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남편은 그만 불행하게도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죽고 말았다. 부인 고 씨는 미친 사람처럼 바닷가를 돌며 남편의 시체라도 떠오르기를 빌고 기다렸다. 하지만 석 달이 지나도록 시체는 찾을 수 없었다. 비탄에 빠진 부인은 체념하고 남편의 뒤를 따르기로 결심하였다. 결국 부인은 마을 포구 옆 절벽 위의 나무에 목을 매어 죽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이상하게도 남편의 시체가 바로 그 절벽 밑으로 떠올랐다. 동네 사람들은 이 애처로운 광경을 보고 당산봉의 양지 바른 곳에 부부를 묻어 주었다. 한편 그때 인근 대정 고을에 신재우라는 사람이 이 소식을 듣고 자기가 벼슬을 한다면 열녀비라도 세워 주겠다며 중얼거렸다. 그 뒤 신재우는 과거를 보았지만 낙방하고 말았다. 신재우가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어느 날 꿈에 고 씨 부인이 나타나 다시 과거를 보라고 격려하였다. 신재우는 부인 고 씨의 묘에 참배하고 다시 과거를 보아 급제하였다. 신재우는 부부의 도움으로 자신이 과거에 급제할 수 있었다고 여겼다. 신재우는 대정 현감(혹은 판관)이 되어 돌아와 매년 3월 15일에 열녀제를 지내도록 하고 열녀비를 세워 주었다. 이런 까닭으로 부인이 목을 매어 죽은 절벽 바위를 절부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분석

『제주설화집성』과 『제주도 전설』을 중심으로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경면 용수리의 포구 옆에는 나무들로 우거진 절벽 바위가 있다. 이 바위를 마을 사람들은 절부암이라고 부른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전한다. 옛날 용수리에 강사철(康士喆)이라고 하는 총각과 고 씨 처녀가 살았다. 둘 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어렵게 자랐지만, 동네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정도로 착실했다. 십오 세가 넘어, 나중에는 둘이 혼인하게 되었다. 혼인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인 강 씨는 생계를 위하여 바다로 나갔다. 마을과 가까운 차귀섬으로 가서 대나무를 베어다가 대바구니 같은 것을 엮어 팔아 살림을 꾸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남편은 그만 불행하게도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죽고 말았다. 부인 고 씨는 미친 사람처럼 바닷가를 돌며 남편의 시체라도 떠오르기를 빌고 기다렸다. 하지만 석 달이 지나도록 시체는 찾을 수 없었다. 비탄에 빠진 부인은 체념하고 남편의 뒤를 따르기로 결심하였다. 결국 부인은 마을 포구 옆 절벽 위의 나무에 목을 매어 죽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이상하게도 남편의 시체가 바로 그 절벽 밑으로 떠올랐다. 동네 사람들은 이 애처로운 광경을 보고 당산봉의 양지 바른 곳에 부부를 묻어 주었다. 한편 그때 인근 대정 고을에 신재우라는 사람이 이 소식을 듣고 자기가 벼슬을 한다면 열녀비라도 세워 주겠다며 중얼거렸다. 그 뒤 신재우는 과거를 보았지만 낙방하고 말았다. 신재우가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어느 날 꿈에 고 씨 부인이 나타나 다시 과거를 보라고 격려하였다. 신재우는 부인 고 씨의 묘에 참배하고 다시 과거를 보아 급제하였다. 신재우는 부부의 도움으로 자신이 과거에 급제할 수 있었다고 여겼다. 신재우는 대정 현감(혹은 판관)이 되어 돌아와 매년 3월 15일에 열녀제를 지내도록 하고 열녀비를 세워 주었다. 이런 까닭으로 부인이 목을 매어 죽은 절벽 바위를 절부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특징

이야기는 부인이 자결한 뒤 남편의 시체가 떠오르고 부인의 혼이 실제 인물의 과거 급제를 도왔다는 등 극적인 구성과 풍부한 내용이 특징적이다.

출처

국문학보15(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2001), 제주도 부락지3(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1990), 제주도 전설(현용준, 서문당, 1996), 제주도 전설지(제주도, 1985), 제주설화집성1(김영돈·현용준·현길언,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1985).

참고문헌

구비 열녀설화의 양상과 의미(김대숙, 고전문학연구, 한국고전문학회, 1994), 조선시대 제주지역 열녀 연구(김지혜, 제주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