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싸움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전설

집필자 천혜숙(千惠淑)

정의

어떤 사람이 못에 사는 용의 부탁으로 용 싸움에 끼어들어 그 용을 이기게 도와 준 보답으로 넓은 들을 얻었다는 전설.

역사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22장에 이성계의 조부인 도조(度祖)가 용 싸움에 끼어들어 백룡을 도와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것이 용 싸움 관련 설화 가운데 가장 이른 자료로, 이 설화는 적어도 조선조 이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도 도조가 흑룡을 쏘아 못의 물이 붉게 물들었다는 적지(赤池), 용 싸움에 개입한 사람이 과부가 된 암룡과 부부가 되었다는 공검지(恭儉池)에 관한 전설이 기록되었다. 또, 『조선읍지(朝鮮邑誌)』 삼등(三登) 고적 조의 <이부평(李富坪)>은 용을 알아본 보상으로 땅을 얻는 <유금이들> 유형과 흡사하다.

줄거리

옛날 황해도 장연군 용연면 용정리 마을에 활을 잘 쏘아서 활량으로 불리는 김 씨가 살았다. 어느 날 김 씨의 꿈에 마을 용소의 황룡이 나타나서는 자신이 수백 년 동안 지켜 온 소(沼)를 서해 청룡이 빼앗으려 한다면서, 김 씨더러 내일 있을 싸움에 와서 청룡을 활로 쏘아 달라고 부탁했다. 다음날 용소로 간 김 씨는 황룡과 청룡이 뒤엉켜 싸우는 것을 보고 너무 무서워 화살을 쏘지 못했다. 다음날 꿈에 또 황룡이 나타나 부탁했다. 아침에 용소에 가니 두 마리 용이 또 얽혀서 싸우고 있었다. 이번에는 김 씨가 청룡을 쏘아 죽였다. 그날 밤 꿈에 황룡이 나타나 은혜를 갚겠다며, 용소의 물을 줄 것이니 마을의 넓은 황무지를 논으로 만들라고 했다. 김 씨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개간을 시작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뇌성벽력이 치더니 용소와 황무지를 막고 있는 바위산에 큰 굴이 생겼다. 그곳으로 용소의 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넓은 황무지가 수천 정보의 논으로 바뀌었다. 그 후로 용이 나온 연못을 용소, 개간한 벌을 용정벌, 마을을 용정리, 면을 용연면이라 부르게 되었다.

변이

전국적으로 못이나 소(沼)가 있는 곳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전설로, 용 싸움에 끼어든 주인공의 행위에 따라 상이한 결말의 변이가 나타난다. 곧 용 싸움을 돕는 데 성공하여 행운을 얻는 유형과 실패하여 패망하는 유형으로 대별된다. 『용비어천가』의 <도조설화>에서는 도조가 백룡의 부탁으로 흑룡을 활로 쏘아 죽이자, 백룡이 나타나 자손이 흥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성계의 조선 건국은 그 예언의 실현이었다. 청주 한씨 시조도 용 싸움을 도와주고 들을 얻어 충청북도 청주시 방서동의 대머리마을을 개척한다. 행운형 가운데는 이렇게 들이나 농지를 얻었다는 이야기가 압도적으로 많다. 패망형은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의 <용당못전설>처럼 용 싸움에 개입한 사람이 실수로 상대 용을 이기게 한 탓에 당사자가 죽거나 집안이 망하는 이야기이다. 용을 퇴치하는 수단은 활, 칼, 고함치기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두 마리의 용이 못 지킴이의 권한을 두고서, 또는 승천을 다투며 싸움을 벌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경상북도 상주지 공검면 양정리의 공검지의 경우처럼 남편 용을 두고 처첩 사이인 두 용이 싸우기도 한다. 싸움에 끼어든 존재가 개국시조의 조부, 성씨시조, 명궁과 같은 영웅적 존재에서부터 점차 부자, 머슴 등으로 바뀌는 것은 신화적 의미가 퇴색되면서 생긴 변이이다.

분석

용 싸움은 서로 적대적 관계에 있는 용신들의 싸움이다. 황룡이 수백 년 동안 지켜 온 못을 서해 청룡이 빼앗으려고 한 데서 기인된 용들 간의 싸움은 결국 소(沼)를 중심으로 그 지역을 관장하려는 용신들의 주도권 다툼이다. 경상북도 안동시의 선어대 용과 임하 용의 싸움, 또는 경상북도 영덕군의 용당못과 오십천의 용들 간의 싸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때로 선룡과 악룡의 의미가 부여되기도 한다. 그런데 한쪽 용, 곧 선룡이 인간에게 나타나 도움을 청함으로써 용 싸움에 인간이 개입하게 되고, 인간은 선룡을 도와준 보상으로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는다. 전설의 주인공이 토지를 얻는다는 결말은 대다수가 농민이었던 전설 향유층의 소망을 대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전설에서 용신은 인간의 도움 없이는 목표에 이를 수 없는 존재이다. 용 싸움에 개입하는 인간은 안동 선어대의 마씨 총각처럼 평범하고 결핍된 존재도 있지만, 선행 유형에서는 도조나 청주 한씨 시조처럼 영웅적 존재로 나타난다. 따라서 전설의 원초적 의미는 영웅적 존재가 신들의 싸움을 해결해 준 보상으로 나라 또는 마을의 토지를 얻는다는 것이었는데, 점차 평범한 농민들의 땅에 대한 욕망을 투영하면서 지명 유래를 설명하는 지역전설로 변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징

<용 싸움 전설>은 여러 지역의 용소 전설들과 관련하여 전승된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기우제의 현장이었던 용소, 너무 깊어 명주실꾸리가 끝없이 들어간다는 용소, 악한 장자를 징치하여 생겨난 장자못 등이 용 싸움의 현장으로 이야기되기도 하는 것은 ‘용이 지키는 소(沼)’라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전설은 ‘용 싸움’이나 ‘영웅의 악룡 퇴치’와 같은 신화적 모티프가 근간이 된 점에서, 신화적 전설의 범주에 속한다. 주어진 보상이 들이나 논으로서 개인의 차원을 넘어 마을 공동체로 확산된 각편들이야말로 이 전설의 신화적 성격을 잘 말해 준다. 용신의 승천을 도와준 인간이 들을 증여받았다는 유형은 <유금이들> 유형과도 유사하지만, <유금이들> 이야기에는 <용 싸움>의 모티프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의의

토지가 용으로부터 주어졌다는 사실은 용을 농경신으로 섬겨 온 민속 신앙의 반영이다. 한편 용과 인간이 관계 맺는 양상을 통해서는 신인(神人) 관계에 대한 민중적 사고를 읽을 수도 있다. 이야기 속에서 신은 절대적 우위에 있지도 않고, 인간에게 일방적 증여를 하는 존재도 아니다. 이러한 상호증여(相互贈與) 또는 상호시혜(相互施惠)의 신인 관계는 제물을 통해 소통하는 제의의 원리와도 부합되는 것이다. 또한 <용 싸움>의 상징은 많은 신화에 나타나는 신들의 싸움, 또는 싸움의 구조를 취하는 많은 민속놀이의 구조와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우리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해명할 수 있는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출처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1988) 1-1, 262.

참고문헌

용, 그 사회와 문화(서영대․송화섭, 민속원, 2002), 한국 용설화의 역사적 전개(이동철, 민속원, 2005), 현장론적 화소체계에 따른 용싸움에 끼어든 도조(도조)유형 설화의 구조분석(김진형, 비교민속학38, 비교민속학회, 2009).

용 싸움

용 싸움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전설

집필자 천혜숙(千惠淑)

정의

어떤 사람이 못에 사는 용의 부탁으로 용 싸움에 끼어들어 그 용을 이기게 도와 준 보답으로 넓은 들을 얻었다는 전설.

역사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22장에 이성계의 조부인 도조(度祖)가 용 싸움에 끼어들어 백룡을 도와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것이 용 싸움 관련 설화 가운데 가장 이른 자료로, 이 설화는 적어도 조선조 이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도 도조가 흑룡을 쏘아 못의 물이 붉게 물들었다는 적지(赤池), 용 싸움에 개입한 사람이 과부가 된 암룡과 부부가 되었다는 공검지(恭儉池)에 관한 전설이 기록되었다. 또, 『조선읍지(朝鮮邑誌)』 삼등(三登) 고적 조의 은 용을 알아본 보상으로 땅을 얻는 유형과 흡사하다.

줄거리

옛날 황해도 장연군 용연면 용정리 마을에 활을 잘 쏘아서 활량으로 불리는 김 씨가 살았다. 어느 날 김 씨의 꿈에 마을 용소의 황룡이 나타나서는 자신이 수백 년 동안 지켜 온 소(沼)를 서해 청룡이 빼앗으려 한다면서, 김 씨더러 내일 있을 싸움에 와서 청룡을 활로 쏘아 달라고 부탁했다. 다음날 용소로 간 김 씨는 황룡과 청룡이 뒤엉켜 싸우는 것을 보고 너무 무서워 화살을 쏘지 못했다. 다음날 꿈에 또 황룡이 나타나 부탁했다. 아침에 용소에 가니 두 마리 용이 또 얽혀서 싸우고 있었다. 이번에는 김 씨가 청룡을 쏘아 죽였다. 그날 밤 꿈에 황룡이 나타나 은혜를 갚겠다며, 용소의 물을 줄 것이니 마을의 넓은 황무지를 논으로 만들라고 했다. 김 씨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개간을 시작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뇌성벽력이 치더니 용소와 황무지를 막고 있는 바위산에 큰 굴이 생겼다. 그곳으로 용소의 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넓은 황무지가 수천 정보의 논으로 바뀌었다. 그 후로 용이 나온 연못을 용소, 개간한 벌을 용정벌, 마을을 용정리, 면을 용연면이라 부르게 되었다.

변이

전국적으로 못이나 소(沼)가 있는 곳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전설로, 용 싸움에 끼어든 주인공의 행위에 따라 상이한 결말의 변이가 나타난다. 곧 용 싸움을 돕는 데 성공하여 행운을 얻는 유형과 실패하여 패망하는 유형으로 대별된다. 『용비어천가』의 에서는 도조가 백룡의 부탁으로 흑룡을 활로 쏘아 죽이자, 백룡이 나타나 자손이 흥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성계의 조선 건국은 그 예언의 실현이었다. 청주 한씨 시조도 용 싸움을 도와주고 들을 얻어 충청북도 청주시 방서동의 대머리마을을 개척한다. 행운형 가운데는 이렇게 들이나 농지를 얻었다는 이야기가 압도적으로 많다. 패망형은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의 처럼 용 싸움에 개입한 사람이 실수로 상대 용을 이기게 한 탓에 당사자가 죽거나 집안이 망하는 이야기이다. 용을 퇴치하는 수단은 활, 칼, 고함치기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두 마리의 용이 못 지킴이의 권한을 두고서, 또는 승천을 다투며 싸움을 벌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경상북도 상주지 공검면 양정리의 공검지의 경우처럼 남편 용을 두고 처첩 사이인 두 용이 싸우기도 한다. 싸움에 끼어든 존재가 개국시조의 조부, 성씨시조, 명궁과 같은 영웅적 존재에서부터 점차 부자, 머슴 등으로 바뀌는 것은 신화적 의미가 퇴색되면서 생긴 변이이다.

분석

용 싸움은 서로 적대적 관계에 있는 용신들의 싸움이다. 황룡이 수백 년 동안 지켜 온 못을 서해 청룡이 빼앗으려고 한 데서 기인된 용들 간의 싸움은 결국 소(沼)를 중심으로 그 지역을 관장하려는 용신들의 주도권 다툼이다. 경상북도 안동시의 선어대 용과 임하 용의 싸움, 또는 경상북도 영덕군의 용당못과 오십천의 용들 간의 싸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때로 선룡과 악룡의 의미가 부여되기도 한다. 그런데 한쪽 용, 곧 선룡이 인간에게 나타나 도움을 청함으로써 용 싸움에 인간이 개입하게 되고, 인간은 선룡을 도와준 보상으로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는다. 전설의 주인공이 토지를 얻는다는 결말은 대다수가 농민이었던 전설 향유층의 소망을 대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전설에서 용신은 인간의 도움 없이는 목표에 이를 수 없는 존재이다. 용 싸움에 개입하는 인간은 안동 선어대의 마씨 총각처럼 평범하고 결핍된 존재도 있지만, 선행 유형에서는 도조나 청주 한씨 시조처럼 영웅적 존재로 나타난다. 따라서 전설의 원초적 의미는 영웅적 존재가 신들의 싸움을 해결해 준 보상으로 나라 또는 마을의 토지를 얻는다는 것이었는데, 점차 평범한 농민들의 땅에 대한 욕망을 투영하면서 지명 유래를 설명하는 지역전설로 변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징

은 여러 지역의 용소 전설들과 관련하여 전승된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기우제의 현장이었던 용소, 너무 깊어 명주실꾸리가 끝없이 들어간다는 용소, 악한 장자를 징치하여 생겨난 장자못 등이 용 싸움의 현장으로 이야기되기도 하는 것은 ‘용이 지키는 소(沼)’라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전설은 ‘용 싸움’이나 ‘영웅의 악룡 퇴치’와 같은 신화적 모티프가 근간이 된 점에서, 신화적 전설의 범주에 속한다. 주어진 보상이 들이나 논으로서 개인의 차원을 넘어 마을 공동체로 확산된 각편들이야말로 이 전설의 신화적 성격을 잘 말해 준다. 용신의 승천을 도와준 인간이 들을 증여받았다는 유형은 유형과도 유사하지만, 이야기에는 의 모티프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의의

토지가 용으로부터 주어졌다는 사실은 용을 농경신으로 섬겨 온 민속 신앙의 반영이다. 한편 용과 인간이 관계 맺는 양상을 통해서는 신인(神人) 관계에 대한 민중적 사고를 읽을 수도 있다. 이야기 속에서 신은 절대적 우위에 있지도 않고, 인간에게 일방적 증여를 하는 존재도 아니다. 이러한 상호증여(相互贈與) 또는 상호시혜(相互施惠)의 신인 관계는 제물을 통해 소통하는 제의의 원리와도 부합되는 것이다. 또한 의 상징은 많은 신화에 나타나는 신들의 싸움, 또는 싸움의 구조를 취하는 많은 민속놀이의 구조와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우리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해명할 수 있는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출처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1988) 1-1, 262.

참고문헌

용, 그 사회와 문화(서영대․송화섭, 민속원, 2002), 한국 용설화의 역사적 전개(이동철, 민속원, 2005), 현장론적 화소체계에 따른 용싸움에 끼어든 도조(도조)유형 설화의 구조분석(김진형, 비교민속학38, 비교민속학회,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