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장군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전설

집필자 강소전(姜昭全)
갱신일 2018-12-26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한라산에 있는 경승 가운데 하나인 영실(靈室)에 있는 기암괴석에 얽힌 전설.

줄거리

『제주도 전설지』와 『제주도 전설』을 중심으로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라산 서남쪽 영실이라는 곳에는 수많은 기암괴석이 늘어서 있다. 이 기암괴석을 대개 오백장군(五百將軍) 또는 오백나한(五百羅漢)이라고 한다. 이 기암괴석과 관련된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전한다. 옛날 어떤 어머니가 아들 오백 형제를 낳고 살았다. 식구는 많은데 흉년까지 들어 끼니를 잇기도 힘들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아들들에게 양식을 구해 와야 죽이라도 쑤어 먹고 살 수 있다고 하였다. 이에 오백 형제는 모두 양식을 구하러 나갔다. 한편 어머니는 큰 가마솥을 걸어 놓고 아들들이 돌아오면 먹일 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죽을 젓다가 그만 발을 잘못 디뎌 솥에 빠져 죽고 말았다. 양식을 얻으러 나갔던 오백 형제는 집에 돌아와 보니 죽이 있어 먹기 시작하였다. 막내가 죽을 먹으려고 솥을 저을 때 이상하게도 틀림없는 사람의 뼈다귀를 발견하였다. 순간 막내는 어머니가 죽을 끓이다가 솥에 빠져 죽은 사실을 알아차렸다. 막내는 어머니가 빠져 죽은 죽을 먹은 불효한 형들과 함께 있을 수 없었다. 막내는 통탄하며 멀리 떨어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차귀섬까지 달려가 끝없이 울다가 바위가 되어 버렸다. 그때야 비로소 형들도 어머니가 솥에 빠져 죽은 사실을 알고 여기저기 늘어서서 통탄하다가 모두 바위로 굳어져 버렸다. 이렇게 변한 바위가 오백장군이다. 막내는 차귀섬에 있으니 영실에는 모두 499명의 장군이 있는 셈이다. 차귀섬에 있는 막내 장군 바위는 인근 지역인 서귀포시 대정읍 바굼지오름에서 훤히 보인다.

변이

영실의 기암괴석에서 비롯된 <오백장군설화>는 제주도의 거인 설화인 <설문대할망>과도 관련하여 전승된다. 즉 오백장군이 설문대할망의 자식들이라는 내용으로, 모자관계로 설정된 것이다. 이런 변이는 진성기가 채록하여 보고한 『남국의 설화』에서 확인할 수 있고, 현재 제주도 내에 널리 퍼진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분석

<오백장군>이 민간에 전승되는 데에는 16세기에 임제(林梯)가 『남명소승(南溟小乘)』이라는 자신의 저서에 영실기암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임제는 1578년에 한라산을 등반하여 영실기암을 구경하고는 중국 전국시대의 전횡(田橫)과 그 일행 오백 명에 대하여 언급한 시를 남겼다. 이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민간에서 오백장군이라는 이름이 굳어지고 설화가 만들어진 계기가 된 것으로 여겨진다.

특징

원래 <오백장군>은 영실기암과 관련한 독립된 설화였을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근래에 들어 <설문대할망설화>와 결합되어 유포된 특징이 있다. 또한 후반부에 풍수담과 연결되기도 한다.

의의

<오백장군설화>는 가난 속에서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여 희생되고, 자식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불효를 짓게 되어 암석으로 변하였다는 내용이므로 효(孝)를 강조하는 교육적인 기능을 하고 있기도 하다.

출처

남국의 설화(진성기, 박문출판사, 1964), 제주도전설(현용준, 서문당, 1996), 제주도 전설지(제주도, 1985).

참고문헌

설문대할망설화 재고(현승환, 영주어문24, 영주어문학회, 2012), 제주도 구비설화 설문대할망과 현대 스토리텔링(정진희, 국문학연구19, 국문학회, 2009).

오백장군

오백장군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전설

집필자 강소전(姜昭全)
갱신일 2018-12-26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한라산에 있는 경승 가운데 하나인 영실(靈室)에 있는 기암괴석에 얽힌 전설.

줄거리

『제주도 전설지』와 『제주도 전설』을 중심으로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라산 서남쪽 영실이라는 곳에는 수많은 기암괴석이 늘어서 있다. 이 기암괴석을 대개 오백장군(五百將軍) 또는 오백나한(五百羅漢)이라고 한다. 이 기암괴석과 관련된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전한다. 옛날 어떤 어머니가 아들 오백 형제를 낳고 살았다. 식구는 많은데 흉년까지 들어 끼니를 잇기도 힘들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아들들에게 양식을 구해 와야 죽이라도 쑤어 먹고 살 수 있다고 하였다. 이에 오백 형제는 모두 양식을 구하러 나갔다. 한편 어머니는 큰 가마솥을 걸어 놓고 아들들이 돌아오면 먹일 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죽을 젓다가 그만 발을 잘못 디뎌 솥에 빠져 죽고 말았다. 양식을 얻으러 나갔던 오백 형제는 집에 돌아와 보니 죽이 있어 먹기 시작하였다. 막내가 죽을 먹으려고 솥을 저을 때 이상하게도 틀림없는 사람의 뼈다귀를 발견하였다. 순간 막내는 어머니가 죽을 끓이다가 솥에 빠져 죽은 사실을 알아차렸다. 막내는 어머니가 빠져 죽은 죽을 먹은 불효한 형들과 함께 있을 수 없었다. 막내는 통탄하며 멀리 떨어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차귀섬까지 달려가 끝없이 울다가 바위가 되어 버렸다. 그때야 비로소 형들도 어머니가 솥에 빠져 죽은 사실을 알고 여기저기 늘어서서 통탄하다가 모두 바위로 굳어져 버렸다. 이렇게 변한 바위가 오백장군이다. 막내는 차귀섬에 있으니 영실에는 모두 499명의 장군이 있는 셈이다. 차귀섬에 있는 막내 장군 바위는 인근 지역인 서귀포시 대정읍 바굼지오름에서 훤히 보인다.

변이

영실의 기암괴석에서 비롯된 는 제주도의 거인 설화인 과도 관련하여 전승된다. 즉 오백장군이 설문대할망의 자식들이라는 내용으로, 모자관계로 설정된 것이다. 이런 변이는 진성기가 채록하여 보고한 『남국의 설화』에서 확인할 수 있고, 현재 제주도 내에 널리 퍼진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분석

이 민간에 전승되는 데에는 16세기에 임제(林梯)가 『남명소승(南溟小乘)』이라는 자신의 저서에 영실기암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임제는 1578년에 한라산을 등반하여 영실기암을 구경하고는 중국 전국시대의 전횡(田橫)과 그 일행 오백 명에 대하여 언급한 시를 남겼다. 이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민간에서 오백장군이라는 이름이 굳어지고 설화가 만들어진 계기가 된 것으로 여겨진다.

특징

원래 은 영실기암과 관련한 독립된 설화였을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근래에 들어 와 결합되어 유포된 특징이 있다. 또한 후반부에 풍수담과 연결되기도 한다.

의의

는 가난 속에서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여 희생되고, 자식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불효를 짓게 되어 암석으로 변하였다는 내용이므로 효(孝)를 강조하는 교육적인 기능을 하고 있기도 하다.

출처

남국의 설화(진성기, 박문출판사, 1964), 제주도전설(현용준, 서문당, 1996), 제주도 전설지(제주도, 1985).

참고문헌

설문대할망설화 재고(현승환, 영주어문24, 영주어문학회, 2012), 제주도 구비설화 설문대할망과 현대 스토리텔링(정진희, 국문학연구19, 국문학회,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