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장수(娃娃将才)

한자명

娃娃将才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전설

집필자 천혜숙(千惠淑)

정의

가난하고 비천한 집안에서 비범한 능력을 지니고 태어난 탓에 그 부모 또는 관군에 의해 비극적 죽음을 당한 아기장수에 관한 전설.

역사

이 전설의 형성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겨드랑이에 깃이 달린 장수에 대한 기록이 있다. 또 『조선읍지(朝鮮邑誌)』 강릉 고적 조에는 아기장수 전설과 흡사한 이야기가 나타난다. 또한 아기장수의 모티프가 조선시대의 반체제적 인물 전설과 결부되거나 조선 후기 민란(民亂) 관련 담론인 ‘진인(眞人) 출현설’과도 닿아 있는 것을 보면, 적어도 이 전설이 조선 중기와 후기에 널리 유포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줄거리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용산 마을의 한 가난한 농가에서 아들이 태어났다. 어미가 방아품을 팔고 오니 삼칠일도 지나지 않은 아이가 날아가 천장에 붙어 있었다. 저녁에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관가에서 알면 큰 해가 미칠 것이니 아이를 죽이자고 했다. 아이를 기름틀에 넣고 호박돌과 나락 한 섬으로 눌렀는데도 아이가 죽지 않았다. 나락 두 섬을 실어도 기름틀이 끄덕끄덕했다. 나락 세 섬을 실었더니 벌벌 떨다가 마침내 죽었다. 아이가 죽고 나자 마을의 ‘용바우’ 속에서 용마가 나와 공중을 선회하다가 보탕들이란 소(沼)에 빠져 죽었다. 아직도 그 바위에 피 흔적이 남아 있다.

변이

전국적으로 광포하는 전설로 다양한 변이가 이루어졌다. 비범한 아이가 자신에게 해를 미칠까 두려운 부모가 아기를 살해하는 유형이 광포한데 아이를 죽이는 상황과 방법이 다양하다. 아이가 워낙 힘이 세서 쉬이 죽지 않아 낙심한 부모에게 아이가 지릅으로 자기 겨드랑이의 날개를 떼라고 가르쳐 주었다는 변이도 나타난다. 그 밖에 어딘가로 피신하여 큰일을 도모하던 아기장수가 어머니의 실수 또는 배신으로 관군에게 죽임을 당하는 유형도 높은 빈도를 보인다. 윗도리만으로 태어난 아기장수 ‘우투리’를 죽인 존재가 이성계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은 조선조 역성혁명에 대한 민중적 반감의 표현이다. 조상 묘를 잘못 쓴 탓에 아기장수가 출생한 것으로 보거나, 나아가서는 묘를 잘못 쓰게 된 원인을 며느리에게 돌리는 변이형들도 나타난다. 한편으로는 죽임을 당하지 않고 청장년까지 생존하는 아기장수도 있다. 날개를 잘리고 불행하게 살아가는 아기장수, 겨우 영웅의 면모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아기장수, 잠적하여 언젠가 재현할 것으로 기대되는 아기장수 등의 생존형 아기장수들이 특히 호남 지역과 제주 도서 지역에 상대적으로 풍부하게 나타나는 것은 백제권의 역사 및 도서 지역의 환경적 특수성 때문일 것으로 이해된다.

내용

<아기장수전설>은 비천한 집안에서 태어난 비범한 아이가 가족 또는 적대 세력에 의해 처절하게 죽음을 당하는 이야기이다. 비범성의 상징인 날개와 용마는 아이의 연원이 하늘에 닿아 있음을 말해 주는 요소이다.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비범한 아이는 흔히 민간에서는 역적이 될 징후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해가 돌아올 것이 두려워 하늘이 내린 영웅을 제거해 버린다. 민중 영웅이 실패하는 것은 민중의 보수안신(保守安身) 의식 때문이다. 특히 가장 가까운 혈육인 부모가 아이를 직접 살해하는 데서 이 전설의 비극성은 고조된다. 부모에 의한 아이 살해는 그 아이를 수용할 최소한의 공간도 부재함을 의미한다. 여기서 부모는 바로 민중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존재이다. 아기장수의 죽음 이후에 용마가 출현하여 따라 죽었다는 에피소드에도 아기장수의 죽음이 지극히 안타깝고 부당하다는 민중적 항변이 담겨 있다. 관군에게 죽임을 당하는 유형은 아기장수의 잠재적 가능성을 기존의 지배 세력이 차단하는 것이어서 전설 화중의 부정적 현실 인식과 좌절감이 더욱 첨예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이 유형도 결국 죽음의 다른 원인을 아기장수의 ‘가족’인 어머니에서 찾는 구조를 취하고 있어서, 전설의 주제는 결국 자신들의 영웅을 수용하지 못한 민중의 통렬한 자기반성으로 집약된다.

특징

<아기장수전설>은 비범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신분적 제약 때문에 좌절과 죽음을 맞게 되는 민중영웅담 계열에 속한다. “장수 나자 용마 난다.”라는 관용구가 있을 정도로 장수와 용마가 짝이 된 이야기는 풍부하지만, 이 전설은 장수가 아기 단계에서 죽음을 당할 뿐 아니라, 아기장수가 죽은 후에야 용마가 출현하여 따라 죽는다는 점에서 다른 장수전설보다 더 심각하고 비장하다. 또한 비범성의 표지가 날개와 용마로 나타나는 점에서 천강(天降)한 건국시조, 특히 <박혁거세신화>와도 닮아 있다. 다만 박혁거세 탄생 시의 조짐들은 성아(聖兒)로 인식된 박혁거세가 왕으로 추대되는 것으로 귀결된 반면, 아기장수의 날개는 반역의 징후로 인식되어 아기장수가 죽는 것으로 귀결된 차이가 있다. 건국시조신화의 구조가 체제 수호적인 귀족영웅담으로 계승된 것과 달리, <아기장수전설>의 모티프와 구조는 김덕령, 이몽학, 신돌석, 최제우와 같은 반체제적 영웅담에서 거듭 재현되어 온 것도 특징적이다.

의의

아기장수는 메시아, 곧 제세주(濟世主)의 속성을 지닌 존재로, 새로운 세상과 질서를 기대하는 민중적 희구의 소산이다. 전설 속의 아기장수는 비극적 종말을 맞는 미완의 영웅이지만, 조선조의 반체제적 인물 전설을 통해 계속 되살아나는 점에서 그는 ‘죽지 않는’ 영웅이다. 언젠가 나타나리라 기대되는 잠적한 아기장수의 형상도 같은 의미이다. 민중의 저항 정신은 <아기장수전설> 유형군을 통해 ‘영원히 회귀하는 영웅’을 형상화한 것이다. 여기에는 현세의 질곡을 벗어나게 해 줄 새로운 메시아를 바라는 오랜 민중적 세계관이 투영되어 있다. 조선 후기 진인(眞人) 출현설과 내용이 닿아 있는 것도 이 전설의 저항 문학적 의의를 말해 준다. 김동리의 「황토기」, 최인훈의 희곡 「옛날 옛적에 훠어이」에서 보듯이, 현대소설과 희곡에도 이 전설이 수용되었다.

출처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1988) 7-1, 545.

참고문헌

아기장수이야기의 전승력 연구(김영희, 연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9), 아기장수전설과 진인출현설의 관계(신동흔, 고전문학연구5, 1990), 아기장수전설의 신고찰(이혜화, 한국민속학16, 1983), 아기장수전설의 형성과 의미(천혜숙, 한국학논집13,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1986).

아기장수

아기장수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전설

집필자 천혜숙(千惠淑)

정의

가난하고 비천한 집안에서 비범한 능력을 지니고 태어난 탓에 그 부모 또는 관군에 의해 비극적 죽음을 당한 아기장수에 관한 전설.

역사

이 전설의 형성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겨드랑이에 깃이 달린 장수에 대한 기록이 있다. 또 『조선읍지(朝鮮邑誌)』 강릉 고적 조에는 아기장수 전설과 흡사한 이야기가 나타난다. 또한 아기장수의 모티프가 조선시대의 반체제적 인물 전설과 결부되거나 조선 후기 민란(民亂) 관련 담론인 ‘진인(眞人) 출현설’과도 닿아 있는 것을 보면, 적어도 이 전설이 조선 중기와 후기에 널리 유포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줄거리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용산 마을의 한 가난한 농가에서 아들이 태어났다. 어미가 방아품을 팔고 오니 삼칠일도 지나지 않은 아이가 날아가 천장에 붙어 있었다. 저녁에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관가에서 알면 큰 해가 미칠 것이니 아이를 죽이자고 했다. 아이를 기름틀에 넣고 호박돌과 나락 한 섬으로 눌렀는데도 아이가 죽지 않았다. 나락 두 섬을 실어도 기름틀이 끄덕끄덕했다. 나락 세 섬을 실었더니 벌벌 떨다가 마침내 죽었다. 아이가 죽고 나자 마을의 ‘용바우’ 속에서 용마가 나와 공중을 선회하다가 보탕들이란 소(沼)에 빠져 죽었다. 아직도 그 바위에 피 흔적이 남아 있다.

변이

전국적으로 광포하는 전설로 다양한 변이가 이루어졌다. 비범한 아이가 자신에게 해를 미칠까 두려운 부모가 아기를 살해하는 유형이 광포한데 아이를 죽이는 상황과 방법이 다양하다. 아이가 워낙 힘이 세서 쉬이 죽지 않아 낙심한 부모에게 아이가 지릅으로 자기 겨드랑이의 날개를 떼라고 가르쳐 주었다는 변이도 나타난다. 그 밖에 어딘가로 피신하여 큰일을 도모하던 아기장수가 어머니의 실수 또는 배신으로 관군에게 죽임을 당하는 유형도 높은 빈도를 보인다. 윗도리만으로 태어난 아기장수 ‘우투리’를 죽인 존재가 이성계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은 조선조 역성혁명에 대한 민중적 반감의 표현이다. 조상 묘를 잘못 쓴 탓에 아기장수가 출생한 것으로 보거나, 나아가서는 묘를 잘못 쓰게 된 원인을 며느리에게 돌리는 변이형들도 나타난다. 한편으로는 죽임을 당하지 않고 청장년까지 생존하는 아기장수도 있다. 날개를 잘리고 불행하게 살아가는 아기장수, 겨우 영웅의 면모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아기장수, 잠적하여 언젠가 재현할 것으로 기대되는 아기장수 등의 생존형 아기장수들이 특히 호남 지역과 제주 도서 지역에 상대적으로 풍부하게 나타나는 것은 백제권의 역사 및 도서 지역의 환경적 특수성 때문일 것으로 이해된다.

내용

은 비천한 집안에서 태어난 비범한 아이가 가족 또는 적대 세력에 의해 처절하게 죽음을 당하는 이야기이다. 비범성의 상징인 날개와 용마는 아이의 연원이 하늘에 닿아 있음을 말해 주는 요소이다.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비범한 아이는 흔히 민간에서는 역적이 될 징후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해가 돌아올 것이 두려워 하늘이 내린 영웅을 제거해 버린다. 민중 영웅이 실패하는 것은 민중의 보수안신(保守安身) 의식 때문이다. 특히 가장 가까운 혈육인 부모가 아이를 직접 살해하는 데서 이 전설의 비극성은 고조된다. 부모에 의한 아이 살해는 그 아이를 수용할 최소한의 공간도 부재함을 의미한다. 여기서 부모는 바로 민중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존재이다. 아기장수의 죽음 이후에 용마가 출현하여 따라 죽었다는 에피소드에도 아기장수의 죽음이 지극히 안타깝고 부당하다는 민중적 항변이 담겨 있다. 관군에게 죽임을 당하는 유형은 아기장수의 잠재적 가능성을 기존의 지배 세력이 차단하는 것이어서 전설 화중의 부정적 현실 인식과 좌절감이 더욱 첨예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이 유형도 결국 죽음의 다른 원인을 아기장수의 ‘가족’인 어머니에서 찾는 구조를 취하고 있어서, 전설의 주제는 결국 자신들의 영웅을 수용하지 못한 민중의 통렬한 자기반성으로 집약된다.

특징

은 비범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신분적 제약 때문에 좌절과 죽음을 맞게 되는 민중영웅담 계열에 속한다. “장수 나자 용마 난다.”라는 관용구가 있을 정도로 장수와 용마가 짝이 된 이야기는 풍부하지만, 이 전설은 장수가 아기 단계에서 죽음을 당할 뿐 아니라, 아기장수가 죽은 후에야 용마가 출현하여 따라 죽는다는 점에서 다른 장수전설보다 더 심각하고 비장하다. 또한 비범성의 표지가 날개와 용마로 나타나는 점에서 천강(天降)한 건국시조, 특히 와도 닮아 있다. 다만 박혁거세 탄생 시의 조짐들은 성아(聖兒)로 인식된 박혁거세가 왕으로 추대되는 것으로 귀결된 반면, 아기장수의 날개는 반역의 징후로 인식되어 아기장수가 죽는 것으로 귀결된 차이가 있다. 건국시조신화의 구조가 체제 수호적인 귀족영웅담으로 계승된 것과 달리, 의 모티프와 구조는 김덕령, 이몽학, 신돌석, 최제우와 같은 반체제적 영웅담에서 거듭 재현되어 온 것도 특징적이다.

의의

아기장수는 메시아, 곧 제세주(濟世主)의 속성을 지닌 존재로, 새로운 세상과 질서를 기대하는 민중적 희구의 소산이다. 전설 속의 아기장수는 비극적 종말을 맞는 미완의 영웅이지만, 조선조의 반체제적 인물 전설을 통해 계속 되살아나는 점에서 그는 ‘죽지 않는’ 영웅이다. 언젠가 나타나리라 기대되는 잠적한 아기장수의 형상도 같은 의미이다. 민중의 저항 정신은 유형군을 통해 ‘영원히 회귀하는 영웅’을 형상화한 것이다. 여기에는 현세의 질곡을 벗어나게 해 줄 새로운 메시아를 바라는 오랜 민중적 세계관이 투영되어 있다. 조선 후기 진인(眞人) 출현설과 내용이 닿아 있는 것도 이 전설의 저항 문학적 의의를 말해 준다. 김동리의 「황토기」, 최인훈의 희곡 「옛날 옛적에 훠어이」에서 보듯이, 현대소설과 희곡에도 이 전설이 수용되었다.

출처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1988) 7-1, 545.

참고문헌

아기장수이야기의 전승력 연구(김영희, 연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9), 아기장수전설과 진인출현설의 관계(신동흔, 고전문학연구5, 1990), 아기장수전설의 신고찰(이혜화, 한국민속학16, 1983), 아기장수전설의 형성과 의미(천혜숙, 한국학논집13,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