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전설

집필자 신재홍(申載弘)
갱신일 2019-02-11

정의

노래로써 선화(善花)공주와 결연하여 왕위에 오르고 미륵사(彌勒寺)를 창건한 서동에 관한 설화.

역사

서동은 백제 무왕(재위 600~641)의 어릴 때 이름이고 선화공주는 진평왕(재위 579~632)의 셋째 딸이라고 하여, 시간적 배경을 6세기 말~7세기 초로 설정하였다.

줄거리

백제의 수도 남쪽 못 가에 사는 과부가 못의 용과 통정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마[薯蕷]를 캐어 팔았으므로 서동이라고 불렀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 공주 선화가 천하의 미인이라는 말을 듣고 중의 행색으로 서라벌에 가 거리의 아이들에게 마를 주어 친해졌다. 노래 <서동요(薯童謠)>를 지어 아이들에게 부르게 했는데 그 노래가 궁중에 들어가 신하들이 공주를 귀양 보내도록 간하였다. 귀양지로 가는 도중 서동이 나타나 같이 가다가 정을 통했으니 그제야 노래의 징험을 알게 되었다. 함께 백제로 간 뒤 공주가 떠나올 때 왕후가 준 금을 꺼내 놓으니 서동은 마를 캐던 곳에 쌓여 있는 게 그것이라고 하였다. 용화산(龍華山) 사자사(師子寺)의 지명(知命)법사에게 부탁해 금을 하룻밤 사이에 신라 궁중으로 옮겨 놓았다. 이로써 서동이 인심을 얻어 왕위에 올랐다. 어느 날 사자사로 가던 중 용화산의 큰 못에서 미륵삼존(彌勒三尊)이 나왔다. 부인이 그곳에 큰 절을 세우기를 발원하니 왕이 허락하여 미륵사를 창건했는데 진평왕이 기술자들을 보내어 도왔다.

변이

이와 내용이 유사한 <내 복에 산다> 설화(혹은 여인발복설화)가 전국에 분포되어 있다. 제주도 서사무가인 <삼공본풀이>도 비슷한 내용이다. 옛날 어느 부잣집 막내딸이 누구 덕에 먹고사느냐는 부친의 질문에 자기 복에 산다고 대답하여 집에서 쫓겨난다. 그 뒤 숯구이 총각을 만나 살다가 구덩이에서 금을 발견해 큰 부자가 된 후, 망해 버린 아버지를 모셔 와 잘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분석

서동을 무왕이 아니라 무령왕(武寧王), 동성왕(東城王)에 비정하기도 하였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가 중심 내용을 이루는 중에 여주인공의 진취성과 생활력이 부각되었다. 미륵사 연기설화의 성격도 지니는데,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견된 ‘사리봉안기’에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인 왕후가 발원하였다고 기록되어서 설화의 사실성에 대한 재론이 불가피해졌다.

특징

광포설화인 <내 복에 산다> 설화가 백제 무왕에 결부되어 기록되었다. 역사적으로는 신라와 백제 간의 혼인 정책이 배경이 되었다. 국적과 신분이 다른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인데, 그 속에 <서동요>가 삽입되어 있다.

의의

개성 있는 인물들이 펼치는 낭만적 사랑 이야기로 흥미를 자아낸다. 백제 최대의 절인 미륵사의 연기설화이며, 향가 <서동요>의 배경 설화로서도 의의를 지닌다.

출처

三國遺事.

참고문헌

미륵사석탑사리기를 통해 본 삼국유사 무왕조의 이해(신종원, 미륵사 사리장엄 연구의 쟁점과 전망 학술대회 요지문, 한국학중앙연구원 동아시아역사연구소, 2009), 서동설화의 신고찰(이병도, 역사학보1, 역사학회, 1953), 서동설화의 연구(사재동, 불교계 서사문학의 연구, 중앙문화사, 1996), 서동설화 형성의 설화적 논리(민찬, 한국언어문학50, 한국언어문학회, 2003), 선화공주를 중심으로 본 무왕설화의 특성과 서동요 출현의 계기(정운채, 겨레어문학19, 겨레어문학회, 1995), 여인발복설화의 연구(김대숙, 한국설화문학연구, 집문당, 1994), 쫓겨난 여인 발복설화고(최운식, 한국민속학6, 한국민속학회, 1973).

서동

서동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전설

집필자 신재홍(申載弘)
갱신일 2019-02-11

정의

노래로써 선화(善花)공주와 결연하여 왕위에 오르고 미륵사(彌勒寺)를 창건한 서동에 관한 설화.

역사

서동은 백제 무왕(재위 600~641)의 어릴 때 이름이고 선화공주는 진평왕(재위 579~632)의 셋째 딸이라고 하여, 시간적 배경을 6세기 말~7세기 초로 설정하였다.

줄거리

백제의 수도 남쪽 못 가에 사는 과부가 못의 용과 통정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마[薯蕷]를 캐어 팔았으므로 서동이라고 불렀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 공주 선화가 천하의 미인이라는 말을 듣고 중의 행색으로 서라벌에 가 거리의 아이들에게 마를 주어 친해졌다. 노래 를 지어 아이들에게 부르게 했는데 그 노래가 궁중에 들어가 신하들이 공주를 귀양 보내도록 간하였다. 귀양지로 가는 도중 서동이 나타나 같이 가다가 정을 통했으니 그제야 노래의 징험을 알게 되었다. 함께 백제로 간 뒤 공주가 떠나올 때 왕후가 준 금을 꺼내 놓으니 서동은 마를 캐던 곳에 쌓여 있는 게 그것이라고 하였다. 용화산(龍華山) 사자사(師子寺)의 지명(知命)법사에게 부탁해 금을 하룻밤 사이에 신라 궁중으로 옮겨 놓았다. 이로써 서동이 인심을 얻어 왕위에 올랐다. 어느 날 사자사로 가던 중 용화산의 큰 못에서 미륵삼존(彌勒三尊)이 나왔다. 부인이 그곳에 큰 절을 세우기를 발원하니 왕이 허락하여 미륵사를 창건했는데 진평왕이 기술자들을 보내어 도왔다.

변이

이와 내용이 유사한 설화(혹은 여인발복설화)가 전국에 분포되어 있다. 제주도 서사무가인 도 비슷한 내용이다. 옛날 어느 부잣집 막내딸이 누구 덕에 먹고사느냐는 부친의 질문에 자기 복에 산다고 대답하여 집에서 쫓겨난다. 그 뒤 숯구이 총각을 만나 살다가 구덩이에서 금을 발견해 큰 부자가 된 후, 망해 버린 아버지를 모셔 와 잘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분석

서동을 무왕이 아니라 무령왕(武寧王), 동성왕(東城王)에 비정하기도 하였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가 중심 내용을 이루는 중에 여주인공의 진취성과 생활력이 부각되었다. 미륵사 연기설화의 성격도 지니는데,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견된 ‘사리봉안기’에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인 왕후가 발원하였다고 기록되어서 설화의 사실성에 대한 재론이 불가피해졌다.

특징

광포설화인 설화가 백제 무왕에 결부되어 기록되었다. 역사적으로는 신라와 백제 간의 혼인 정책이 배경이 되었다. 국적과 신분이 다른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인데, 그 속에 가 삽입되어 있다.

의의

개성 있는 인물들이 펼치는 낭만적 사랑 이야기로 흥미를 자아낸다. 백제 최대의 절인 미륵사의 연기설화이며, 향가 의 배경 설화로서도 의의를 지닌다.

출처

三國遺事.

참고문헌

미륵사석탑사리기를 통해 본 삼국유사 무왕조의 이해(신종원, 미륵사 사리장엄 연구의 쟁점과 전망 학술대회 요지문, 한국학중앙연구원 동아시아역사연구소, 2009), 서동설화의 신고찰(이병도, 역사학보1, 역사학회, 1953), 서동설화의 연구(사재동, 불교계 서사문학의 연구, 중앙문화사, 1996), 서동설화 형성의 설화적 논리(민찬, 한국언어문학50, 한국언어문학회, 2003), 선화공주를 중심으로 본 무왕설화의 특성과 서동요 출현의 계기(정운채, 겨레어문학19, 겨레어문학회, 1995), 여인발복설화의 연구(김대숙, 한국설화문학연구, 집문당, 1994), 쫓겨난 여인 발복설화고(최운식, 한국민속학6, 한국민속학회, 1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