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백

한자명

魂帛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상장례

집필자 김미영(金美榮)
갱신일 2019-02-14

정의

상례에서 신주神主를 만들기 전에 임시로 제작하여 영좌靈座에 봉안하는 신위神位.

역사

혼백魂帛은 나무로 만든 인형의 일종인 ‘중重’에서 비롯되었다. 『가례家禮』에 따르면 “옛날에는 나무를 깎아 중을 만들어서 신령을 주장하였다. 지금도 그 법식이 있으나 사민士民의 집에서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비단을 묶어서 신을 의탁하여 혼백이라고 하니, 이것 또한 고례古禮의 남은 뜻이다.”라고 했으며, “은殷에서는 신주를 만들면 중을 매달아두고, 주周에서는 신주를 만들면 중을 없앤다. 대부大夫로서 신주가 없는 자는 비단을 묶어 신을 의탁한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내용

혼백은 습襲과 염殮을 마친 뒤 영좌靈座에 안치하는 것으로, 죽은 사람의 영혼이 머무를 수 있도록 임시로 만들어 놓은 신위神位의 일종이다. 『가례家禮』에 따르면 신주神主를 만들어 망자亡者의 혼을 완전히 의탁시키기까지 세 단계를 거치면서 각각 다른 물체로 혼을 대신하도록 한다.

첫 번째 단계는 초혼招魂에 의해 죽은 사람의 웃옷에 망자의 혼을 실어 시신에 의탁하는 방식이다. 유교적 관념에 따르면 인간은 정신을 이루는 혼魂과 육체를 이루는 백魄으로 이루어졌고, 혼과 백이 결합해야만 생명이 유지되며, 혼백魂魄이 분리되는 것은 죽음을 뜻한다고 여겼다. 또 인간이 죽으면 정신을 이루는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육체를 이루는 백은 지상에 머무른다 . 이때 하늘로 올라가는 혼을 지상에 머무르게 하기 위해 초혼의식을 치른다. 즉, 숨을 거둔 후 체백體魄을 벗어나는 혼은 초혼의식을 통해 일차적으로 망자가 생전에 입었던 옷에 임시로 의빙依憑하는 것이다. 이때 사용하는 옷을 ‘복의復衣’라고 한다. 초혼의식이 끝나면 전奠을 차리는데, 이것 역시 체백을 떠난 망자의 혼이 의지할 수 있도록 차리는 음식상이다. 『의례儀禮』 「사상례士喪禮」에서도 “체백을 떠난 영혼은 형상이 없으므로 전을 차려서 의지하게 된다.”라고 했다. 이처럼 초혼의식의 거행과 전을 차리는 것은 망자의 혼을 지상에 머무르게 하기 위함이다. 두 번째 단계는 습을 거행하고 혼백魂帛을 만들어 망자의 혼을 의탁한 후 명정銘旌을 세우는 방식이다. 이로써 혼령은 복의에서 혼백으로 옮겨오게 된다. 세 번째 단계는 시신을 매장한 후 신주를 만들어 망자의 혼을 의탁시키는 방식이다. 신주는 발인發靷 전에 미리 만들어 혼백과 함께 장지葬地로 가져가는데, 아직 망자의 혼이 혼백에 머물러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신주는 상자에 넣어서 혼백 뒤에 안치한다. 장지에 도착하면 영좌를 설치하고 혼백에 머물러 있는 혼을 신주로 옮기기 위한 제주題主를 행하는데, 망자의 직함과 이름을 신주에 쓴 후 “공경하는 돌아가신 아버지 아무 벼슬 부군府君께 아룁니다. 형체는 무덤으로 가시고 신령만이 집으로 돌아오십시오. 신주가 이미 이루어졌으니 엎드려 바라건대 높으신 영혼은 옛것을 버리시고 새것을 따르시어 이에 의지하소서.”라는 내용의 축문을 읽는다. 이로써 혼백에 깃들어있던 망자의 혼은 신주로 옮겨오게 된다. 따라서 이때부터는 혼백과 신주의 위치를 바꾸어 놓는다. 즉, 발인 때와 달리 제주전題主奠부터는 신주를 앞에 두고 혼백을 뒤에 놓는 것이다. 제주전을 마치고 신주와 혼백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 후, 영좌에 신주와 혼백을 안치할 때도 신주를 혼백 앞에 두고 우제虞祭를 거행한다. 『가례家禮』와 『사례편람四禮便覽』에 따르면 우제를 지내고 나면 혼백을 깨끗한 곳에 묻는다고 했다. 실제 관행에서는 태우거나 빈소 옆에 묻기도 한다. 또 신주를 만들지 않는 집에서는 삼년상이 끝날 때까지 혼백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통례이다.

혼백의 종류에는 속백束帛과 결백結帛이 있다. 속백은 명주 한 필의 양 끝을 말아 서로 향하게 묶는 형태이며, 결백이란 명주를 긴 끈으로 만들어 동심결同心結로 묶되 머리 부분이 위로 나오도록 하고 옆으로 양 귀를 빼내서 그 아래로 양다리를 늘어뜨린 것으로 사람의 형상과 유사하다. 그러나 관행에서는 한지를 이용하여 사통팔달四通八達로 접기도 하며, 망자가 생전에 입었던 옷소매나 옷고름을 혼백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혼백은 삼베모시 등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는 아마도 일제강점기 때 수의의 재질이 명주에서 삼베로 바뀐 것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듯하다. 혼백을 사통팔달로 접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우선 위와 아래를 서로 관통하도록 접고, 양옆[東西]은 천으로 감싸서 막아두지만 이를 젖히면 서로 통하게끔 접어두고, 전면과 후면은 좌우로 안주름을 각각 잡아서 공간을 만들어 둔다. 이처럼 동서남북이 관통하고 있기에 ‘사통四通’이 되고, 이 동서남북의 통로와 전・후면의 좌우 통로를 합치면 ‘팔달八達’이 되는데, 이를 ‘사통팔달’이라고 한다.

혼백을 안치할 때는 시신을 가린 병풍 앞에 돗자리를 깐 다음 교의交椅를 놓고, 초혼의식에서 사용한 복의復衣를 백지에 싸서 교의 위에 놓고 그 위에 혼백상자를 봉안하고 흰 명주보자기를 덮어둔다. 교의 앞에는 제사상을 펼쳐두고 그 위에 촛대 한 쌍을 놓은 뒤 앞쪽에는 향상香床을 배치한다. 『사례편람』에서도 역시 “시신 남쪽에 횃대를 설치한 뒤 휘장으로 덮고 의자(교의)와 탁자를 그 앞에 두고 흰 비단을 묶어서 혼백으로 삼아 의자 위에 둔다.”라고 했다. 한편, 혼백을 넣어둔 상자는 항상 뚜껑을 닫아두며, 조석전朝夕奠과 상식上食 때에만 잠시 열어둔다.

특징 및 의의

혼백은 망자의 혼이 임시로 머무는 신위神位의 일종으로, 우제虞祭를 지낸 뒤에는 땅속에 묻는다. 그러나 신주를 만들지 않은 경우에는 탈상할 때까지 빈소에 안치하여 망자를 대신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참고문헌

家禮, 四禮便覽, 儀禮, 유교의례의 전통과 상징(김미영, 민속원, 2010), 조상제사 어떻게 지낼 것인가(이욱 외, 민속원, 2012).

혼백

혼백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상장례

집필자 김미영(金美榮)
갱신일 2019-02-14

정의

상례에서 신주神主를 만들기 전에 임시로 제작하여 영좌靈座에 봉안하는 신위神位.

역사

혼백魂帛은 나무로 만든 인형의 일종인 ‘중重’에서 비롯되었다. 『가례家禮』에 따르면 “옛날에는 나무를 깎아 중을 만들어서 신령을 주장하였다. 지금도 그 법식이 있으나 사민士民의 집에서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비단을 묶어서 신을 의탁하여 혼백이라고 하니, 이것 또한 고례古禮의 남은 뜻이다.”라고 했으며, “은殷에서는 신주를 만들면 중을 매달아두고, 주周에서는 신주를 만들면 중을 없앤다. 대부大夫로서 신주가 없는 자는 비단을 묶어 신을 의탁한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내용

혼백은 습襲과 염殮을 마친 뒤 영좌靈座에 안치하는 것으로, 죽은 사람의 영혼이 머무를 수 있도록 임시로 만들어 놓은 신위神位의 일종이다. 『가례家禮』에 따르면 신주神主를 만들어 망자亡者의 혼을 완전히 의탁시키기까지 세 단계를 거치면서 각각 다른 물체로 혼을 대신하도록 한다. 첫 번째 단계는 초혼招魂에 의해 죽은 사람의 웃옷에 망자의 혼을 실어 시신에 의탁하는 방식이다. 유교적 관념에 따르면 인간은 정신을 이루는 혼魂과 육체를 이루는 백魄으로 이루어졌고, 혼과 백이 결합해야만 생명이 유지되며, 혼백魂魄이 분리되는 것은 죽음을 뜻한다고 여겼다. 또 인간이 죽으면 정신을 이루는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육체를 이루는 백은 지상에 머무른다 . 이때 하늘로 올라가는 혼을 지상에 머무르게 하기 위해 초혼의식을 치른다. 즉, 숨을 거둔 후 체백體魄을 벗어나는 혼은 초혼의식을 통해 일차적으로 망자가 생전에 입었던 옷에 임시로 의빙依憑하는 것이다. 이때 사용하는 옷을 ‘복의復衣’라고 한다. 초혼의식이 끝나면 전奠을 차리는데, 이것 역시 체백을 떠난 망자의 혼이 의지할 수 있도록 차리는 음식상이다. 『의례儀禮』 「사상례士喪禮」에서도 “체백을 떠난 영혼은 형상이 없으므로 전을 차려서 의지하게 된다.”라고 했다. 이처럼 초혼의식의 거행과 전을 차리는 것은 망자의 혼을 지상에 머무르게 하기 위함이다. 두 번째 단계는 습을 거행하고 혼백魂帛을 만들어 망자의 혼을 의탁한 후 명정銘旌을 세우는 방식이다. 이로써 혼령은 복의에서 혼백으로 옮겨오게 된다. 세 번째 단계는 시신을 매장한 후 신주를 만들어 망자의 혼을 의탁시키는 방식이다. 신주는 발인發靷 전에 미리 만들어 혼백과 함께 장지葬地로 가져가는데, 아직 망자의 혼이 혼백에 머물러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신주는 상자에 넣어서 혼백 뒤에 안치한다. 장지에 도착하면 영좌를 설치하고 혼백에 머물러 있는 혼을 신주로 옮기기 위한 제주題主를 행하는데, 망자의 직함과 이름을 신주에 쓴 후 “공경하는 돌아가신 아버지 아무 벼슬 부군府君께 아룁니다. 형체는 무덤으로 가시고 신령만이 집으로 돌아오십시오. 신주가 이미 이루어졌으니 엎드려 바라건대 높으신 영혼은 옛것을 버리시고 새것을 따르시어 이에 의지하소서.”라는 내용의 축문을 읽는다. 이로써 혼백에 깃들어있던 망자의 혼은 신주로 옮겨오게 된다. 따라서 이때부터는 혼백과 신주의 위치를 바꾸어 놓는다. 즉, 발인 때와 달리 제주전題主奠부터는 신주를 앞에 두고 혼백을 뒤에 놓는 것이다. 제주전을 마치고 신주와 혼백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 후, 영좌에 신주와 혼백을 안치할 때도 신주를 혼백 앞에 두고 우제虞祭를 거행한다. 『가례家禮』와 『사례편람四禮便覽』에 따르면 우제를 지내고 나면 혼백을 깨끗한 곳에 묻는다고 했다. 실제 관행에서는 태우거나 빈소 옆에 묻기도 한다. 또 신주를 만들지 않는 집에서는 삼년상이 끝날 때까지 혼백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통례이다. 혼백의 종류에는 속백束帛과 결백結帛이 있다. 속백은 명주 한 필의 양 끝을 말아 서로 향하게 묶는 형태이며, 결백이란 명주를 긴 끈으로 만들어 동심결同心結로 묶되 머리 부분이 위로 나오도록 하고 옆으로 양 귀를 빼내서 그 아래로 양다리를 늘어뜨린 것으로 사람의 형상과 유사하다. 그러나 관행에서는 한지를 이용하여 사통팔달四通八達로 접기도 하며, 망자가 생전에 입었던 옷소매나 옷고름을 혼백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혼백은 삼베나 모시 등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는 아마도 일제강점기 때 수의의 재질이 명주에서 삼베로 바뀐 것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듯하다. 혼백을 사통팔달로 접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우선 위와 아래를 서로 관통하도록 접고, 양옆[東西]은 천으로 감싸서 막아두지만 이를 젖히면 서로 통하게끔 접어두고, 전면과 후면은 좌우로 안주름을 각각 잡아서 공간을 만들어 둔다. 이처럼 동서남북이 관통하고 있기에 ‘사통四通’이 되고, 이 동서남북의 통로와 전・후면의 좌우 통로를 합치면 ‘팔달八達’이 되는데, 이를 ‘사통팔달’이라고 한다. 혼백을 안치할 때는 시신을 가린 병풍 앞에 돗자리를 깐 다음 교의交椅를 놓고, 초혼의식에서 사용한 복의復衣를 백지에 싸서 교의 위에 놓고 그 위에 혼백상자를 봉안하고 흰 명주보자기를 덮어둔다. 교의 앞에는 제사상을 펼쳐두고 그 위에 촛대 한 쌍을 놓은 뒤 앞쪽에는 향상香床을 배치한다. 『사례편람』에서도 역시 “시신 남쪽에 횃대를 설치한 뒤 휘장으로 덮고 의자(교의)와 탁자를 그 앞에 두고 흰 비단을 묶어서 혼백으로 삼아 의자 위에 둔다.”라고 했다. 한편, 혼백을 넣어둔 상자는 항상 뚜껑을 닫아두며, 조석전朝夕奠과 상식上食 때에만 잠시 열어둔다.

특징 및 의의

혼백은 망자의 혼이 임시로 머무는 신위神位의 일종으로, 우제虞祭를 지낸 뒤에는 땅속에 묻는다. 그러나 신주를 만들지 않은 경우에는 탈상할 때까지 빈소에 안치하여 망자를 대신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참고문헌

家禮, 四禮便覽, 儀禮, 유교의례의 전통과 상징(김미영, 민속원, 2010), 조상제사 어떻게 지낼 것인가(이욱 외, 민속원,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