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도산성모(仙桃山圣母)

한자명

仙桃山圣母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신화

집필자 천혜숙(千惠淑)

정의

박혁거세의 모신(母神)이자 경상북도 경주시 선도산의 여산신인 선도산성모에 관한 신화.

역사

선도산성모는 신라의 시조모로 알려졌으므로 신라 건국 시기에 출현한 존재로 볼 수 있다. 김부식이 송나라 사신으로 가서 접한 성모 숭봉(崇奉)의 일을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한 것이 최초의 자료이다. 일연의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그녀는 선도산의 여산신으로 신라 삼사(三祀)의 대상이었으며 신사(神祠)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사람들이 성모의 일을 익히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제왕운기(帝王韻紀)』 기록도 있다.

줄거리

진평왕 때 비구니 지혜의 꿈에 선도산성모가 나타나 자신의 신사 밑에 있는 황금으로 안흥사의 불전을 수리하라고 일렀다. 지혜는 성모가 시킨 대로 따랐다. 성모는 원래 중국 제실의 딸로 일찍이 신선의 술법을 배워 해동으로 왔다. 부황이 보낸 솔개가 선도산으로 날아가 머무르자 성모도 선도산에 머물러 지선(地仙)이 되었다. 성모가 선도산에 오래 살면서 신이한 일이 많이 있어 나라에서 이 산을 삼사의 하나로 삼았다. 성모는 사냥 중에 매를 잃어버린 경명왕의 매를 찾아 주고 ‘대왕’을 봉작받기도 했다. 그녀는 또 진한에 처음 왔을 때 두 성군인 혁거세와 알영을 낳았다. 하늘의 선녀에게 비단을 짜게 해서 남편의 조복을 만들어 주기도 했으니, 나라 사람들이 그녀의 신비한 영험을 알게 되었다.

변이

현몽을 통한 수희불사(隨喜佛事) 등의 신화적 모티프는 『삼국유사』에만 있다. 또 일연은 선도산성모가 낳은 해동의 시조가 박혁거세와 알영이라고 했지만, 김부식은 그에 대해 구체적 실증을 하지 않았다. 또한 『삼국유사』 외의 다른 기록들은 지아비 없이 잉태하여 남에게 의심을 받게 되자 해동으로 이주한 것이라고 성모를 폄하했다. 이는 신화적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변이이다. 조선조 이후에는 성모 전승 자체를 괴설시하고 그 변증을 추구하는 유학자들의 탈(脫)신화적 언술이 늘어나는 한편, 난생설을 버리고 오히려 성모 탄생을 천명으로 강조하는 새로운 신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유교적 합리주의와 함께 가문 선양의 이데올로기가 작용한 결과였다.

분석

<선도산성모신화>는 남편이 부재한 ‘불부이잉(不夫而孕)’의 출산과 모자의 이주(移住)가 중심이다. 성모가 남편 없이 혁거세와 알영을 낳았다는 내용은 천강과 난생을 부각하는 신라국조 신화와는 모순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도산성모의 실체와 아울러 신라에서 두 유형의 국조신화가 전승된 배경에 대해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특징

선도산성모는 여산신이자 시조모라는 특징을 지닌 점에서 가야산 정견모주, 지리산성모와 유사하다. 동신성모 유화는 시조모이지만 산신으로 좌정하지 않은 차이가 있다. 여산신 신앙이 국조신화와 연계되는 것은 대체로 남방계 신화의 특징이다. ‘부계(父系)’의 탐색과 계승을 강조하는 다른 국조신화들과도 대조적이다.

의의

<선도산성모신화>는 신라 시조 <혁거세신화>의 이본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불부이잉’의 모티프는 대모신(大母神)의 신화와도 닿아 있는 것으로, 일연의 자료는 그 신화적 의미를 담아낸 의의가 있다. ‘수희불사’ 등의 에피소드는 그 신화에 수반되는 영험담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출처

三國史記, 三國遺事, 帝王韻紀.

참고문헌

서술산 여신 신화와 선도산 여신 신화의 서사윤곽과 구비문학적 면모(윤혜신, 구비문학연구34, 한국구비문학회, 2012), 신라와 가야의 건국신화(박상란, 한국학술정보, 2005), 선도성모담론의 신화학적 조명(천혜숙, 구비문학연구26, 한국구비문학회, 2008).

선도산성모

선도산성모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신화

집필자 천혜숙(千惠淑)

정의

박혁거세의 모신(母神)이자 경상북도 경주시 선도산의 여산신인 선도산성모에 관한 신화.

역사

선도산성모는 신라의 시조모로 알려졌으므로 신라 건국 시기에 출현한 존재로 볼 수 있다. 김부식이 송나라 사신으로 가서 접한 성모 숭봉(崇奉)의 일을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한 것이 최초의 자료이다. 일연의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그녀는 선도산의 여산신으로 신라 삼사(三祀)의 대상이었으며 신사(神祠)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사람들이 성모의 일을 익히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제왕운기(帝王韻紀)』 기록도 있다.

줄거리

진평왕 때 비구니 지혜의 꿈에 선도산성모가 나타나 자신의 신사 밑에 있는 황금으로 안흥사의 불전을 수리하라고 일렀다. 지혜는 성모가 시킨 대로 따랐다. 성모는 원래 중국 제실의 딸로 일찍이 신선의 술법을 배워 해동으로 왔다. 부황이 보낸 솔개가 선도산으로 날아가 머무르자 성모도 선도산에 머물러 지선(地仙)이 되었다. 성모가 선도산에 오래 살면서 신이한 일이 많이 있어 나라에서 이 산을 삼사의 하나로 삼았다. 성모는 사냥 중에 매를 잃어버린 경명왕의 매를 찾아 주고 ‘대왕’을 봉작받기도 했다. 그녀는 또 진한에 처음 왔을 때 두 성군인 혁거세와 알영을 낳았다. 하늘의 선녀에게 비단을 짜게 해서 남편의 조복을 만들어 주기도 했으니, 나라 사람들이 그녀의 신비한 영험을 알게 되었다.

변이

현몽을 통한 수희불사(隨喜佛事) 등의 신화적 모티프는 『삼국유사』에만 있다. 또 일연은 선도산성모가 낳은 해동의 시조가 박혁거세와 알영이라고 했지만, 김부식은 그에 대해 구체적 실증을 하지 않았다. 또한 『삼국유사』 외의 다른 기록들은 지아비 없이 잉태하여 남에게 의심을 받게 되자 해동으로 이주한 것이라고 성모를 폄하했다. 이는 신화적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변이이다. 조선조 이후에는 성모 전승 자체를 괴설시하고 그 변증을 추구하는 유학자들의 탈(脫)신화적 언술이 늘어나는 한편, 난생설을 버리고 오히려 성모 탄생을 천명으로 강조하는 새로운 신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유교적 합리주의와 함께 가문 선양의 이데올로기가 작용한 결과였다.

분석

는 남편이 부재한 ‘불부이잉(不夫而孕)’의 출산과 모자의 이주(移住)가 중심이다. 성모가 남편 없이 혁거세와 알영을 낳았다는 내용은 천강과 난생을 부각하는 신라국조 신화와는 모순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도산성모의 실체와 아울러 신라에서 두 유형의 국조신화가 전승된 배경에 대해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특징

선도산성모는 여산신이자 시조모라는 특징을 지닌 점에서 가야산 정견모주, 지리산성모와 유사하다. 동신성모 유화는 시조모이지만 산신으로 좌정하지 않은 차이가 있다. 여산신 신앙이 국조신화와 연계되는 것은 대체로 남방계 신화의 특징이다. ‘부계(父系)’의 탐색과 계승을 강조하는 다른 국조신화들과도 대조적이다.

의의

는 신라 시조 의 이본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불부이잉’의 모티프는 대모신(大母神)의 신화와도 닿아 있는 것으로, 일연의 자료는 그 신화적 의미를 담아낸 의의가 있다. ‘수희불사’ 등의 에피소드는 그 신화에 수반되는 영험담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출처

三國史記, 三國遺事, 帝王韻紀.

참고문헌

서술산 여신 신화와 선도산 여신 신화의 서사윤곽과 구비문학적 면모(윤혜신, 구비문학연구34, 한국구비문학회, 2012), 신라와 가야의 건국신화(박상란, 한국학술정보, 2005), 선도성모담론의 신화학적 조명(천혜숙, 구비문학연구26, 한국구비문학회,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