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례식

한자명

婚禮式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혼례

집필자 주영애(朱英愛)
갱신일 2019-01-16

정의

서로 다른 성장배경과 성姓을 가진 두 남녀가 만나, 양가 부모와 친지를 모시고 부부관계를 맺는 서약을 하는 의식과 절차.

역사

혼례식은 조선시대 이후 개화기를 거치면서 기독교와 서구문화의 유입, 일제강점기 등의 영향으로 다양하게 변모했다. 족두리원삼圓衫을 입은 신부와 사모관대紗帽冠帶를 입은 신랑이 절을 하는 유교식 전통혼례는 ‘구식’혼인, 서구종교와 신사조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형태의 경제적인 예식은 ‘신식’혼인이라 불렸다 . 신식혼인은 ‘서양식 혼례’를 말하며, 우리나라에서는 1880년대 후반부터 신식혼인을 치렀다. 1888년 3월 정동교회에서 기독교식의 혼례식이 치러졌고, 이후 1920년대 중반까지 소위 ‘예배당혼인’과 불교의 불교식화혼례佛敎式花婚禮 같은 종교적 혼례식이 뒤섞여 치러졌다. 1910~1930년대에는 예배당뿐만 아니라 공회당·학교·사찰·신문사·강당에서도 혼례식을 치렀다.

1934년 조선총독부가 반포한 「의례준칙」 이후 근대적 의례개념이 전통적인 유교 개념을 포섭하여 변형시켰다.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구식과 신식, 봉건과 근대가 대립하는 과정에서 혼례식은 과도기적인 형식을 보였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인들에게 일본식 예식을 권장하면서 일본의 신사나 사원에서 혼례식을 하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1930년대 전문예식장이 생겼고, 농촌에까지 전문예식장이 보급되어 예식장 혼례식이 보편화된 것은 1960년대 후반 이후였다.

1969년에 「가정의례준칙」, 1973년에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 1999년에 「건전가정 의례의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등이 제정되어 과다한 혼례식에 대한 계도가 이루어졌다. 1980~1990년대에는 대학생 수가 급증하면서 출신 대학교 교정이나 동문회관에서 혼례식을 올리는 사례도 많아졌으며, 혼례식을 올리지 못한 부부를 대상으로 구청에서 주관하여 ‘합동결혼식’을 진행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사학연금재단, 교직원공제회관, 교통회관, 향군회관 등 부모나 자신의 직업과 관련 있는 시설에서 혼례식을 올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1990년대 전반 호화결혼식을 규제하기 위해 불허했던 호텔 결혼식을 정부에서 허용하자, 혼례식 장소로 호텔이 이용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는 사회적으로 호화결혼식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른바 과다혼수와 예단, 수천만 원에 이르는 호화결혼식 등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여성가족부와 언론사를 중심으로 ‘작은 결혼식’을 확산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구청・구민회관・복지관・문화회관 같은 공공기관의 공간을 이용하여 실속 있는 ‘작은 결혼식’을 올리자는 계도 활동이 벌어졌다. 한편 1990년대 이후 등장한 혼례전문가, 즉 ‘웨딩플래너’의 도움을 받아 일종의 이벤트 성격의 혼례식을 진행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으며, 일반적인 예식장이 아닌 산과 바다를 비롯한 펜션, 골프장 등 다양한 장소가 혼례식 장소로 이용되기도 한다. 소규모 혼례식을 치르는 하우스 웨딩도 성행하고 있다. 전통혼례식을 치르는 신랑・신부들도 있지만, 주로 외국인이나 다문화가정에서 한국문화의 상징으로서 전통혼례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통혼례식은 집례자執禮者가 홀기笏記에 적힌 순서에 따라 예식을 진행하므로 주례를 두지 않았다. 그러나 종교기관에서 거행하는 혼례식은 목사나 사제, 법사등 성직자가 집례하며 ‘조언’을 하는 형식을 취한다. 오늘날의 일반적인 혼인식에서는 사회자가 예식의 전체순서를 진행하며, 아울러 주례가 혼인서약, 성혼선언 , 주례사 등을 주도한다. 사회자는 신랑의 친한 친구가 대부분 맡으며, 주례는 신랑이나 신부의 학교 은사, 직장 상사, 양가 부모가 평소에 존경하던 어른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 보통이다. 간혹 전문주례사에게 의뢰하여 주례를 맡기는 경우도 있다. 한편, 일반적인 예식 절차나 형식과 다르게 주례가 없이 진행하는 예도 있다.

내용

전통혼례식은 집례자의 주도로 전안례奠雁禮, 교배례交拜禮, 합근례合巹禮의 순서로 이어지며 특별히 주례 없이 진행된다. 그러나 근대화 이후 예식장에서 치르는 일반적인 혼례식은 개회식, 화촉 점화, 주례선생님 등단, 신랑 입장, 신부 입장, 신랑・신부 맞절, 혼인서약, 성혼선언, 주례사, 축하연주 또는 축가, 양가 부모님께 인사, 신랑・신부 내빈께 인사, 신랑・신부 행진, 폐회사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신부 입장은 신부 아버지가 신부의 손을 잡고 입장하여 신랑에게 신부를 인도하는 형식을 취한다. 신랑・신부가 맞절하면 혼인서약, 성혼선언, 주례사까지 주례가 주도적으로 진행한다. 혼인서약과 성혼선언문은 아래와 같은 형식을 갖추어 진행한다.

일생의례 혼례식

성혼선언까지 끝나면 주례사가 이어지며, 미리 준비된 축가나 축하연주가 진행된다. 이후 신랑・신부가 양가 부모에게 인사하고, 또 내빈에게 인사한 후에 ‘결혼행진곡’에 맞추어 행진한다. 이때 화동이 신랑・신부 앞에서 꽃을 뿌리며 두 사람을 인도하는 경우도 있다 . 축하의 의미로 행진 중간에 폭죽을 터뜨리며 축하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도 한다. 이후 폐회사와 기념 촬영이 이어진 다음 혼례식이 끝난다. 혼례식이 끝나면 폐백幣帛을 드린다. 개성 있는 혼례식을 하는 경우에는 혼례식 절차를 일부 변경하거나 추가하여 치른다. 또는 1부와 2부로 나누어 1부에서는 일반적인 혼례식 절차를 따르고 2부에서는 축하행사를 가미하여 신랑・신부만을 위한 유일한 혼례식을 연출하기도 한다. 오늘날 혼례식은 주중보다는 주로 주말, 즉 하객이 많이 모일 수 있는 때에 치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예식장 이용료도 주중보다 주말이 더 높은 편이다. 혼례식을 치르려면 수개월 전부터 예식장을 미리 예약해야만 하는 상황이 일반적이다.

한편, 종교적인 혼례식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교회나 예식장・강당 등에서 하는 기독교식, 성당에서 하는 천주교식, 사찰에서 하는 불교식 등이 있다. 기독교식에서는 목사가 주례가 되며 주례 등단, 신랑・신부입장 후에 찬송과 기도, 성경낭독이 이어진다. 그다음으로 주례사와 서약, 반지 교환, 기도 후에 성혼선포를 하고, 감사와 축가를 부른 후 양가 대표가 인사하며, 주례 목사의 축도가 끝나면 신랑・신부가 인사한 다음 행진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천주교식에서는 시작예식으로 주례사제와 신랑・신부가 입장하며, 본기도로 시작하여 말씀의 전례 후에 혼인예식이 이루어진다. 주례사제의 강론, 혼인서약(질문과 답, 합의와 수용), 반지의 축성과 교환이 있다. 이후 성찬전례로 봉헌성가, 예물기도, 혼인감사송이 이어지며 영성체예식 후 마침예식으로 강복과 파견성가 후 신랑・신부 행진으로 끝이난다. 불교식 화혼례에서는 주례법사가 등단하고 신랑・신부가 입장하면 분향과 삼귀의례가 이어지고, 신랑・신부가 불전에 경례를 한다. 주례법사의 고유문 낭독과 신랑・신부의 교배례, 헌화, 예물교환, 유고諭告 및 선서, 신랑・신부의 분향, 독령, 내빈축사, 양가 대표의 인사 후 폐식한다.

특징 및 의의

오늘날 혼례식은 일반적으로 예식장, 교회, 사찰, 성당, 야외 등 가정 외의 장소에서 치러지고 있다. 그리고 일반적인 예식절차를 따르는 경우가 많지만, 종교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혼례식도 같이 치러지고 있다. 혼례식의 시간은 하객이 많이 모일 수 있는 주말인 경우가 많으며, 주례가 있는 혼례식이 대부분이지만 주례 없는 혼례식이나 신랑・신부의 개성을 살리고 절차나 규모를 간소화한 작은 결혼식 등도 이루어지고 있다. 혼례복장으로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주로 착용하며, 그 밖에 신랑・신부의 개성을 살린 의상을 준비하여 입기도 한다. 즉, 오늘날의 혼례식은 사회변화에 따라 사회화해가는 특징이 뚜렷하며 일반예식과 종교식, 신랑・신부의 개성을 살리는 방식 등의 다양한 혼례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참고문헌

서울 사람들의 혼인, 혼례, 결혼(박혜인,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2012), 일생의례로 보는 근대 한국인의 삶(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2013), 한국가정의 의례와 세시풍속(안혜숙 외, 신정, 2002).

혼례식

혼례식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혼례

집필자 주영애(朱英愛)
갱신일 2019-01-16

정의

서로 다른 성장배경과 성姓을 가진 두 남녀가 만나, 양가 부모와 친지를 모시고 부부관계를 맺는 서약을 하는 의식과 절차.

역사

혼례식은 조선시대 이후 개화기를 거치면서 기독교와 서구문화의 유입, 일제강점기 등의 영향으로 다양하게 변모했다. 족두리에 원삼圓衫을 입은 신부와 사모관대紗帽冠帶를 입은 신랑이 절을 하는 유교식 전통혼례는 ‘구식’혼인, 서구종교와 신사조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형태의 경제적인 예식은 ‘신식’혼인이라 불렸다 . 신식혼인은 ‘서양식 혼례’를 말하며, 우리나라에서는 1880년대 후반부터 신식혼인을 치렀다. 1888년 3월 정동교회에서 기독교식의 혼례식이 치러졌고, 이후 1920년대 중반까지 소위 ‘예배당혼인’과 불교의 불교식화혼례佛敎式花婚禮 같은 종교적 혼례식이 뒤섞여 치러졌다. 1910~1930년대에는 예배당뿐만 아니라 공회당·학교·사찰·신문사·강당에서도 혼례식을 치렀다. 1934년 조선총독부가 반포한 「의례준칙」 이후 근대적 의례개념이 전통적인 유교 개념을 포섭하여 변형시켰다.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구식과 신식, 봉건과 근대가 대립하는 과정에서 혼례식은 과도기적인 형식을 보였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인들에게 일본식 예식을 권장하면서 일본의 신사나 사원에서 혼례식을 하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1930년대 전문예식장이 생겼고, 농촌에까지 전문예식장이 보급되어 예식장 혼례식이 보편화된 것은 1960년대 후반 이후였다. 1969년에 「가정의례준칙」, 1973년에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 1999년에 「건전가정 의례의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등이 제정되어 과다한 혼례식에 대한 계도가 이루어졌다. 1980~1990년대에는 대학생 수가 급증하면서 출신 대학교 교정이나 동문회관에서 혼례식을 올리는 사례도 많아졌으며, 혼례식을 올리지 못한 부부를 대상으로 구청에서 주관하여 ‘합동결혼식’을 진행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사학연금재단, 교직원공제회관, 교통회관, 향군회관 등 부모나 자신의 직업과 관련 있는 시설에서 혼례식을 올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1990년대 전반 호화결혼식을 규제하기 위해 불허했던 호텔 결혼식을 정부에서 허용하자, 혼례식 장소로 호텔이 이용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는 사회적으로 호화결혼식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른바 과다혼수와 예단, 수천만 원에 이르는 호화결혼식 등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여성가족부와 언론사를 중심으로 ‘작은 결혼식’을 확산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구청・구민회관・복지관・문화회관 같은 공공기관의 공간을 이용하여 실속 있는 ‘작은 결혼식’을 올리자는 계도 활동이 벌어졌다. 한편 1990년대 이후 등장한 혼례전문가, 즉 ‘웨딩플래너’의 도움을 받아 일종의 이벤트 성격의 혼례식을 진행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으며, 일반적인 예식장이 아닌 산과 바다를 비롯한 펜션, 골프장 등 다양한 장소가 혼례식 장소로 이용되기도 한다. 소규모 혼례식을 치르는 하우스 웨딩도 성행하고 있다. 전통혼례식을 치르는 신랑・신부들도 있지만, 주로 외국인이나 다문화가정에서 한국문화의 상징으로서 전통혼례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통혼례식은 집례자執禮者가 홀기笏記에 적힌 순서에 따라 예식을 진행하므로 주례를 두지 않았다. 그러나 종교기관에서 거행하는 혼례식은 목사나 사제, 법사등 성직자가 집례하며 ‘조언’을 하는 형식을 취한다. 오늘날의 일반적인 혼인식에서는 사회자가 예식의 전체순서를 진행하며, 아울러 주례가 혼인서약, 성혼선언 , 주례사 등을 주도한다. 사회자는 신랑의 친한 친구가 대부분 맡으며, 주례는 신랑이나 신부의 학교 은사, 직장 상사, 양가 부모가 평소에 존경하던 어른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 보통이다. 간혹 전문주례사에게 의뢰하여 주례를 맡기는 경우도 있다. 한편, 일반적인 예식 절차나 형식과 다르게 주례가 없이 진행하는 예도 있다.

내용

전통혼례식은 집례자의 주도로 전안례奠雁禮, 교배례交拜禮, 합근례合巹禮의 순서로 이어지며 특별히 주례 없이 진행된다. 그러나 근대화 이후 예식장에서 치르는 일반적인 혼례식은 개회식, 화촉 점화, 주례선생님 등단, 신랑 입장, 신부 입장, 신랑・신부 맞절, 혼인서약, 성혼선언, 주례사, 축하연주 또는 축가, 양가 부모님께 인사, 신랑・신부 내빈께 인사, 신랑・신부 행진, 폐회사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신부 입장은 신부 아버지가 신부의 손을 잡고 입장하여 신랑에게 신부를 인도하는 형식을 취한다. 신랑・신부가 맞절하면 혼인서약, 성혼선언, 주례사까지 주례가 주도적으로 진행한다. 혼인서약과 성혼선언문은 아래와 같은 형식을 갖추어 진행한다. 성혼선언까지 끝나면 주례사가 이어지며, 미리 준비된 축가나 축하연주가 진행된다. 이후 신랑・신부가 양가 부모에게 인사하고, 또 내빈에게 인사한 후에 ‘결혼행진곡’에 맞추어 행진한다. 이때 화동이 신랑・신부 앞에서 꽃을 뿌리며 두 사람을 인도하는 경우도 있다 . 축하의 의미로 행진 중간에 폭죽을 터뜨리며 축하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도 한다. 이후 폐회사와 기념 촬영이 이어진 다음 혼례식이 끝난다. 혼례식이 끝나면 폐백幣帛을 드린다. 개성 있는 혼례식을 하는 경우에는 혼례식 절차를 일부 변경하거나 추가하여 치른다. 또는 1부와 2부로 나누어 1부에서는 일반적인 혼례식 절차를 따르고 2부에서는 축하행사를 가미하여 신랑・신부만을 위한 유일한 혼례식을 연출하기도 한다. 오늘날 혼례식은 주중보다는 주로 주말, 즉 하객이 많이 모일 수 있는 때에 치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예식장 이용료도 주중보다 주말이 더 높은 편이다. 혼례식을 치르려면 수개월 전부터 예식장을 미리 예약해야만 하는 상황이 일반적이다. 한편, 종교적인 혼례식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교회나 예식장・강당 등에서 하는 기독교식, 성당에서 하는 천주교식, 사찰에서 하는 불교식 등이 있다. 기독교식에서는 목사가 주례가 되며 주례 등단, 신랑・신부입장 후에 찬송과 기도, 성경낭독이 이어진다. 그다음으로 주례사와 서약, 반지 교환, 기도 후에 성혼선포를 하고, 감사와 축가를 부른 후 양가 대표가 인사하며, 주례 목사의 축도가 끝나면 신랑・신부가 인사한 다음 행진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천주교식에서는 시작예식으로 주례사제와 신랑・신부가 입장하며, 본기도로 시작하여 말씀의 전례 후에 혼인예식이 이루어진다. 주례사제의 강론, 혼인서약(질문과 답, 합의와 수용), 반지의 축성과 교환이 있다. 이후 성찬전례로 봉헌성가, 예물기도, 혼인감사송이 이어지며 영성체예식 후 마침예식으로 강복과 파견성가 후 신랑・신부 행진으로 끝이난다. 불교식 화혼례에서는 주례법사가 등단하고 신랑・신부가 입장하면 분향과 삼귀의례가 이어지고, 신랑・신부가 불전에 경례를 한다. 주례법사의 고유문 낭독과 신랑・신부의 교배례, 헌화, 예물교환, 유고諭告 및 선서, 신랑・신부의 분향, 독령, 내빈축사, 양가 대표의 인사 후 폐식한다.

특징 및 의의

오늘날 혼례식은 일반적으로 예식장, 교회, 사찰, 성당, 야외 등 가정 외의 장소에서 치러지고 있다. 그리고 일반적인 예식절차를 따르는 경우가 많지만, 종교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혼례식도 같이 치러지고 있다. 혼례식의 시간은 하객이 많이 모일 수 있는 주말인 경우가 많으며, 주례가 있는 혼례식이 대부분이지만 주례 없는 혼례식이나 신랑・신부의 개성을 살리고 절차나 규모를 간소화한 작은 결혼식 등도 이루어지고 있다. 혼례복장으로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주로 착용하며, 그 밖에 신랑・신부의 개성을 살린 의상을 준비하여 입기도 한다. 즉, 오늘날의 혼례식은 사회변화에 따라 사회화해가는 특징이 뚜렷하며 일반예식과 종교식, 신랑・신부의 개성을 살리는 방식 등의 다양한 혼례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참고문헌

서울 사람들의 혼인, 혼례, 결혼(박혜인,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2012), 일생의례로 보는 근대 한국인의 삶(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2013), 한국가정의 의례와 세시풍속(안혜숙 외, 신정,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