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배례(交拜禮)

한자명

交拜禮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혼례

집필자 최운식(崔雲植)

정의

전통혼례에서 신랑과 신부가 서로 맞절을 하는 예식.

역사

고려시대에 들어 온 송나라 『주자가례朱子家禮』나 1844년(헌종 10)에 나와 널리 행해진 이재李縡의 『사례편람四禮便覽』에 친영親迎의 절차가 있다. 교배례交拜禮는 신랑이 신부를 맞는 친영의 한 절차로, 지금까지 전통혼례에서 행해지고 있다. 1428년(세종 10)에 세종은 “남자가 여자의 집에 가서 친히 아내를 맞아들이는 친영의 예禮는 예로부터 있었던 풍속이니, 갑자기 바꿀 수 없다. 그러므로 낭자나 공주의 혼인도 이 풍속을 따라야 한다.”라고 교지敎旨를 내린 바 있다.

내용

교배례는 대개 신부 집에서 하는데, 대청이 넓은 집에서는 대청에, 그렇지 않은 집에서는 마당에 차일遮日을 치고 큰상을 놓는다. 지방과 가문에 따라 다르나 , 상 위에는 대개 홍 촛대와 청 촛대・소나무와 대나무를 꽂은 화병・밤・대추・쌀・표주박잔 한 쌍・보자기에 싼 암탉과 수탉 등을 올려놓는다. 화병에 꽂은 소나무 가지에는 홍실을, 대나무 가지에는 청실을 걸친다. 이를 ‘교배상交拜床’ 또는 ‘대례상大禮床’이라고 한다. 대례상의 동쪽과 서쪽에 술 주전자와 술잔을 올려놓은 작은 상을 놓고 돗자리를 편다. 교배상의 동쪽과 서쪽에는 물대야와 수건을 준비해 둔다. 시간이 되면 홀기笏記를 부르는 사람(집례)의 진행에 따라 식을 시작한다.

ⓛ신랑 측 시자侍者는 붉은 책 초에, 신부 측 시자는 푸른 책 초에 불을 켠다. 요즈음에는 신랑・신부의 어머니가 홍초와 청초에 불을 붙인다. ②혼례복을 입은 신랑과 신부가 나와 신랑은 교배상의 동쪽에, 신부는 서쪽에 준비해 놓은 대야의 물에 손을 씻는다. ③신랑이 신부를 향하여 읍揖하고, 신부는 답례로 신랑을 향해 읍한다. ④신랑은 교배상의 동쪽에, 신부는 서쪽에 마주선다. ⑤신부가 먼저 두 번 절하면 신랑은 한 번 절한다. ⑥신부가 다시 두 번 절하고, 신랑은 한 번 절한다. 이것이 교배례의 절차인데, 신혼예식에서는 ‘신랑・신부 맞절’로 바뀌어 선 채로 맞절을 한다.

지역사례

대례상의 상차림은 지방에 따라 다른데, 강원도 원주에서는 대례상에 밤・대추・용떡・콩(메주콩)・살아 있는 닭을 놓는다. 신랑・신부가 절하는 횟수도 지방에 따라 달라서 경기도 화성에서는 신부가 세 번 절하면 신랑은 두 번 절하고 반절한다. 경상남도와 부산광역시에서는 신부가 4배를 하면 신랑은 2배를 한다 . 전라북도 순창 지방에서는 신부가 재배하면 신랑은 한 번 절하는 것을 한 차례만 한다.

특징 및 의의

신랑이 동편에 서고, 신부가 서편에 서는 것은 남동여서男東女西의 전통에 의한 것이다. 신부가 두 번 절하고, 신랑이 한 번 절하는 것은 여성은 음陰이므로 음의 수인 짝수 중 가장 작은 수로 절하고, 남성은 양陽이므로 양의 수인 홀수 중 가장 작은 수로 절하는 것이다. 초례상에 수탉과 암탉을 올려놓는 것은 ‘수탉같은 신랑’, ‘암탉 같은 신부’가 되라는 뜻을 지닌 것이다. 수탉은 암탉과 병아리를 잘 보호하며 먹이를 구해주고, 생활권生活圈을 지키기 위해서 이웃집 수탉과 용감히 싸우며, 시간의 흐름을 알아 울어준다. 신랑은 이러한 수탉을 본받아 처자식을 잘 보호하며 먹여 살리고, 생활권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용감히 싸울 줄 알며, 세상의 흐름을 잘 알아 바르게 판단하고 행동하라는 뜻일 것이다. 암탉은 수탉의 보호를 받으며 병아리를 잘 기르는데, 신부는 암탉처럼 살림 잘 하고, 자녀를 잘 기르라는 뜻이 담겨 있다. 교배례는 신랑・신부가 서로 큰절하며 백년해로百年偕老할 것을 서약하면서 삶의 교훈을 주는 의례이다.

참고문헌

우리의 생활예절(성균관, 1992), 한국민속대관1(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2), 한국민속종합보고서(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81), 한국민속학개론(최운식 외, 민속원, 2004), 한국인의 삶과 문화(최운식, 보고사, 2006), 한국인의 일생의례(국립문화재연구소, 2009~2011).

교배례

교배례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혼례

집필자 최운식(崔雲植)

정의

전통혼례에서 신랑과 신부가 서로 맞절을 하는 예식.

역사

고려시대에 들어 온 송나라 『주자가례朱子家禮』나 1844년(헌종 10)에 나와 널리 행해진 이재李縡의 『사례편람四禮便覽』에 친영親迎의 절차가 있다. 교배례交拜禮는 신랑이 신부를 맞는 친영의 한 절차로, 지금까지 전통혼례에서 행해지고 있다. 1428년(세종 10)에 세종은 “남자가 여자의 집에 가서 친히 아내를 맞아들이는 친영의 예禮는 예로부터 있었던 풍속이니, 갑자기 바꿀 수 없다. 그러므로 낭자나 공주의 혼인도 이 풍속을 따라야 한다.”라고 교지敎旨를 내린 바 있다.

내용

교배례는 대개 신부 집에서 하는데, 대청이 넓은 집에서는 대청에, 그렇지 않은 집에서는 마당에 차일遮日을 치고 큰상을 놓는다. 지방과 가문에 따라 다르나 , 상 위에는 대개 홍 촛대와 청 촛대・소나무와 대나무를 꽂은 화병・밤・대추・쌀・표주박잔 한 쌍・보자기에 싼 암탉과 수탉 등을 올려놓는다. 화병에 꽂은 소나무 가지에는 홍실을, 대나무 가지에는 청실을 걸친다. 이를 ‘교배상交拜床’ 또는 ‘대례상大禮床’이라고 한다. 대례상의 동쪽과 서쪽에 술 주전자와 술잔을 올려놓은 작은 상을 놓고 돗자리를 편다. 교배상의 동쪽과 서쪽에는 물대야와 수건을 준비해 둔다. 시간이 되면 홀기笏記를 부르는 사람(집례)의 진행에 따라 식을 시작한다. ⓛ신랑 측 시자侍者는 붉은 책 초에, 신부 측 시자는 푸른 책 초에 불을 켠다. 요즈음에는 신랑・신부의 어머니가 홍초와 청초에 불을 붙인다. ②혼례복을 입은 신랑과 신부가 나와 신랑은 교배상의 동쪽에, 신부는 서쪽에 준비해 놓은 대야의 물에 손을 씻는다. ③신랑이 신부를 향하여 읍揖하고, 신부는 답례로 신랑을 향해 읍한다. ④신랑은 교배상의 동쪽에, 신부는 서쪽에 마주선다. ⑤신부가 먼저 두 번 절하면 신랑은 한 번 절한다. ⑥신부가 다시 두 번 절하고, 신랑은 한 번 절한다. 이것이 교배례의 절차인데, 신혼예식에서는 ‘신랑・신부 맞절’로 바뀌어 선 채로 맞절을 한다.

지역사례

대례상의 상차림은 지방에 따라 다른데, 강원도 원주에서는 대례상에 밤・대추・용떡・콩(메주콩)・살아 있는 닭을 놓는다. 신랑・신부가 절하는 횟수도 지방에 따라 달라서 경기도 화성에서는 신부가 세 번 절하면 신랑은 두 번 절하고 반절한다. 경상남도와 부산광역시에서는 신부가 4배를 하면 신랑은 2배를 한다 . 전라북도 순창 지방에서는 신부가 재배하면 신랑은 한 번 절하는 것을 한 차례만 한다.

특징 및 의의

신랑이 동편에 서고, 신부가 서편에 서는 것은 남동여서男東女西의 전통에 의한 것이다. 신부가 두 번 절하고, 신랑이 한 번 절하는 것은 여성은 음陰이므로 음의 수인 짝수 중 가장 작은 수로 절하고, 남성은 양陽이므로 양의 수인 홀수 중 가장 작은 수로 절하는 것이다. 초례상에 수탉과 암탉을 올려놓는 것은 ‘수탉같은 신랑’, ‘암탉 같은 신부’가 되라는 뜻을 지닌 것이다. 수탉은 암탉과 병아리를 잘 보호하며 먹이를 구해주고, 생활권生活圈을 지키기 위해서 이웃집 수탉과 용감히 싸우며, 시간의 흐름을 알아 울어준다. 신랑은 이러한 수탉을 본받아 처자식을 잘 보호하며 먹여 살리고, 생활권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용감히 싸울 줄 알며, 세상의 흐름을 잘 알아 바르게 판단하고 행동하라는 뜻일 것이다. 암탉은 수탉의 보호를 받으며 병아리를 잘 기르는데, 신부는 암탉처럼 살림 잘 하고, 자녀를 잘 기르라는 뜻이 담겨 있다. 교배례는 신랑・신부가 서로 큰절하며 백년해로百年偕老할 것을 서약하면서 삶의 교훈을 주는 의례이다.

참고문헌

우리의 생활예절(성균관, 1992), 한국민속대관1(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2), 한국민속종합보고서(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81), 한국민속학개론(최운식 외, 민속원, 2004), 한국인의 삶과 문화(최운식, 보고사, 2006), 한국인의 일생의례(국립문화재연구소, 2009~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