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놀이

한자명

花煎­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봄(春) > 3월 > 정일

집필자 한양명(韓陽明)
갱신일 2019-01-28

정의

삼월 삼짇날 교외나 산 같은 경치 좋은 곳에 가서 음식을 먹고 꽃을 보며 노는 꽃놀이. 진달래꽃으로 화전(花煎)을 지져 먹고 가무를 즐기는 여성놀이이다. 화류(花柳) 또는 회취(會聚)라고도 한다.

유래

화전놀이의 전통은 이미 신라시대부터 시작하였다. 『교남지(嶠南誌)』 권4, 경주 산천조에는 화절현(花折峴)이라는 고개가 나오는데, 그 이름은 신라의 궁인(宮人)들이 봄놀이를 하면서 꽃을 꺾은 데서 비롯하였다고 한다. 한편 같은 책 고적 조에서는 재매곡(財買谷)을 소개하여, “김유신의 맏딸 재매부인을 청연(靑淵)의 위에 있는 골짜기[上谷]에 묻었으므로 이 이름을 붙였는데, 매년 봄에 같은 집안의 부녀자들이 그 골짜기의 남쪽 물가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이 시기에는 수많은 꽃들이 만발하고 송화(松花)가 골짜기에 가득하였다. 골짜기의 입구에 초막을 하나 얽었는데 그런 까닭으로 송화방(松花房)이라고 하였다.”고 했다. 물과 산이 있고 수많은 꽃이 만발한 데다 놀이를 위한 초막까지 따로 얽었으니, 꽃과 송화로 지짐을 지져먹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듯 이미 신라시대에 모습을 갖춘 화전놀이의 전통은 조선 전기에도 크게 다를 바 없이 이어진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권7, 세조 3년 4월 22일(을묘)의 기록을 보면, “이때에 금령(禁令)이 자못 간략하므로 무풍(巫風)이 성행하였으니, 도성의 남녀들이 떼 지어 술을 마시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매양 한 번 술자리를 베풀면 반드시 음악을 베풀고 해가 저물어서야 헤어져 돌아갔다. 남녀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큰 소리로 떠들면서 태평시대의 즐거운 일이라고 하였다. 귀가(貴家)의 부인들도 또한 많이 본받아서 장막을 크게 설치하고는 며느리들을 다 모아서 호세(豪勢)와 사치를 다투어 준비하는 것이 매우 극진하였다. 진달래꽃[杜鵑花]이 필 때에 더욱 자주 그러하니 전화음(煎花飮)이라고 하였다.” 한다.

집안의 여성들, 특히 시집온 며느리들이 함께 모여 놀이를 위해서 장막을 세우고 참꽃으로 지짐을 지져 먹으며, 질펀한 음주와 가무악을 즐겼으니 이때의 봄나들이는 신라의 화전놀이는 물론 후대의 화전놀이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당시의 화전놀이가 여성들의 전유물만은 아니었다. 16세기의 시인 임제(林悌)는 홍만종의 『순오지(旬五志)』 상권(上卷)에, “작은 개울가에 돌 고여 솥뚜껑 걸고, 기름 두르고 쌀가루 얹어 참꽃[杜鵑花]을 지졌네. 젓가락 집어 맛을 보니 향기가 입에 가득, 한 해 봄빛이 배속에 전해지네.”라는 맛깔스런 시 한편을 남겼다. 이 시로 보자면 남성들도 낭만적인 화전놀이를 즐겼다. 하지만 남성들의 화전놀이는 부정기적인 봄맞이 풍류의 일환이었으며, 참여 범위도 지인(知人)들로 제한되어 여성들의 화전놀이와는 구별된다. 또 남성들에게는 가벼운 여가 활동이었으나 여성들에게는 일년에 한 번밖에 없는 공식적인 집단 나들이였다는 점에서 그 문화적 의미에 차이가 있다.

한편 화전놀이와 화전가(花煎歌)의 만남은 조선 후기, 그것도 19세기 초 이후에야 이루어진다. 이 시기에 이르러 여성들은 화전놀이의 과정과 소회를 담은 전형적인 화전가를 즐기기 시작한다. 화전가의 창작과 음영이 화전놀이의 중요한 내용으로 자리를 잡음으로써 여성들의 화전놀이는 남성들의 화전놀이는 물론 그 이전 시기 여성들의 화전놀이와도 다른 면모를 보여주게 되었다.

지역사례

영남지방 여성들의 화전놀이는 춘삼월 진달래꽃이 만발할 무렵에 마을 또는 문중의 여성들이 통문을 돌리거나 해서 놀이를 가기로 뜻을 모으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뜻이 모이면 시어른들의 승낙을 얻은 뒤에 구체적인 준비를 시작한다. 참여 인원은 대략 30~60명 내외이다. 젊은이로부터 늙은이까지 두루 참여할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삶의 이력이 붙어 집안이나 마을에서 인정받는 중년 여성들이 주도하며 시어머니들은 며느리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따라가지 않는다. 음식을 비롯하여 놀이에 드는 경비는 화전계(花煎契)가 있으면 그 기금으로 충당하고 그렇지 않으면 일정하게 갹출한다.

놀이날이 정해지고 준비가 진행되는 동안, 여성들은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놀이날이 되면 미리 준비한 음식과 조리도구 그리고 지필묵(紙筆墨)을 챙긴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무의 반주를 위해서 풍물을 가져가기도 한다. 지필묵은 현지에서 화전가를 지을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여성들은 어느 때보다 용모에 정성을 들여서 곱게 단장하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선다. 놀이하는 장소는 보통 마을에서 10리 안팎의 거리에 있는, 산천경개가 수려한 곳이다.

현장에 도착하면 우선 음식을 장만한다. 이미 가져간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만발한 진달래꽃잎을 한 움큼씩 따와 화전(花煎)을 만든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3월 3일조에서는 다음과 같이 화전을 소개하였다. “참꽃을 따다가 찹쌀가루에 반죽을 하여 둥근 떡을 만들고 그것을 기름에 지진 것을 화전이라 한다. 이 것이 곧 옛날 오병(熬餠)의 한구(寒具)이다. 또 녹두가루를 반죽하여 익힌 것을 가늘게 썰어 오미자 국에 띄우고 꿀을 섞고 잣을 곁들인 것을 화면(花麵)이라고 한다. 혹 참꽃을 녹두가루에 반죽하여 만들기도 한다. 또 녹두로 국수를 만들어 혹 붉은색으로 물을 들이기도 하는데 그것을 꿀물에 띄운 것을 수면(水麵)이라 한다. 이것을 아울러 시절음식으로 제사에 쓴다.”

화전을 다 부치고 푸짐한 먹거리가 마련되면 본격적인 놀이판이 벌어진다. 판마다 한결같지는 않았지만 음주가무를 즐기고, 시댁 식구 흉보기를 비롯해서 거리낌 없는 담화가 이루어졌다. 음주가무와 자유로운 담화 말고도 신명풀이가 끊이지 않도록 다양한 놀이들이 베풀어졌다. 대표적인 놀이가 윷놀이와 꽃싸움이다. 꽃싸움은 진달래꽃의 꽃술을 서로 마주 걸고 당겨서 먼저 끊어지는 쪽이 지는 놀이인데, 때에 따라서는 편을 갈라 승패를 가르고 상주(賞酒)와 벌주(罰酒)를 나누어 마시면서 즐기기도 하였다.

화전놀이는 여성들이 평소 숨겨두었던 다양한 재주를 마음껏 드러내는 경연장이 되기도 하였으니, 놀이판은 연극과 엉덩글씨, 봉사놀음, 꼽사춤과 병신춤, 모의혼례와 닭싸움 같은 다채로운 놀이로 채워졌다.

다른 한편으로 화전놀이는 화전가의 산실이기도 하였다. 화전가는 일반적으로 서사(序詞), 신변탄식, 봄의 찬미, 놀이의 공론, 택일, 통문 돌리기, 시부모 승낙 얻기, 준비, 치장, 승지찬미, 화전굽기, 회식, 유흥소영(遊興嘯詠), 파연감회(罷宴感懷), 이별과 재회 기약, 귀가, 발문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이처럼 사실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정회를 담아내는 화전가는 화전놀이의 현장에서 또는 귀가 후에 만들어진다.

화전가를 짓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합작(合作)이다. 여러 명이 일정 부분을 분담하여 지은 뒤에 그것을 합쳐 한 편의 화전가를 완성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개인작이다. 참여한 여성들이 따로따로 화전가를 짓는 것이다. 다 지으면 작품들을 놓고 합평을 하기 때문에 창작자는 자연히 사실성과 문학성에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화전가는 비록 개인작이라고 하더라도 일정하게 공동작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풍요로운 음식을 먹고 마시며 가무악과 놀이를 즐기는 가운데 어느덧 초봄의 해는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간다. 이제 여성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걸 어찌할 수 없다. 다음의 화전가는 이때의 심정을 담고 있다. “정신없이 놀다보니 해는 어이 잘 가는고, (중략) 잘있거라 잘있거라, 산천초목 잘있거라. 꽃은꺾어 손에들고 잎은따서 입에물고, 내려오며 놀아보세. (중략) 그럭저럭 내려오니 해는지고 달이솟네. 가련하다 인생들아 몇몇천을 놀자하니, 마음대로 아니되네. 명년이때 다시만나 즐거웁게 놀아보세. 다놀고 헤어지니 섭섭하기 그지없다.”

정신없이 놀다가도 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여성들의 운명이다. 그들과 좋은 시간을 함께 했던 자연 그리고 동료들과 만남을 지속하고 싶지만 여성들에게 허용된 것은 거기까지이다. 내년의 화전놀이를 기약하며 아쉬운 발길을 돌리는 여성들의 손에는 곧잘 한 움큼의 봄꽃이 들려 있다.

참고문헌

嶠南誌, 東國歲時記, 三國遺事, 旬五志, 朝鮮王朝實錄
화전가연구 (권영철 외, 형설출판사, 1981)
閨房歌詞 各論 (權寧徹, 螢雪出版社, 1986)
화전가의 창작동인과 구조원리 (金相一, 대구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3)
화전놀이의 축제성과 문화적 의미-경북지역을 중심으로 (한양명, 韓國民俗學33, 韓國民俗學會, 2001)

음원

화전놀이

화전놀이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봄(春) > 3월 > 정일

집필자 한양명(韓陽明)
갱신일 2019-01-28

정의

삼월 삼짇날 교외나 산 같은 경치 좋은 곳에 가서 음식을 먹고 꽃을 보며 노는 꽃놀이. 진달래꽃으로 화전(花煎)을 지져 먹고 가무를 즐기는 여성놀이이다. 화류(花柳) 또는 회취(會聚)라고도 한다.

유래

화전놀이의 전통은 이미 신라시대부터 시작하였다. 『교남지(嶠南誌)』 권4, 경주 산천조에는 화절현(花折峴)이라는 고개가 나오는데, 그 이름은 신라의 궁인(宮人)들이 봄놀이를 하면서 꽃을 꺾은 데서 비롯하였다고 한다. 한편 같은 책 고적 조에서는 재매곡(財買谷)을 소개하여, “김유신의 맏딸 재매부인을 청연(靑淵)의 위에 있는 골짜기[上谷]에 묻었으므로 이 이름을 붙였는데, 매년 봄에 같은 집안의 부녀자들이 그 골짜기의 남쪽 물가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이 시기에는 수많은 꽃들이 만발하고 송화(松花)가 골짜기에 가득하였다. 골짜기의 입구에 초막을 하나 얽었는데 그런 까닭으로 송화방(松花房)이라고 하였다.”고 했다. 물과 산이 있고 수많은 꽃이 만발한 데다 놀이를 위한 초막까지 따로 얽었으니, 꽃과 송화로 지짐을 지져먹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듯 이미 신라시대에 모습을 갖춘 화전놀이의 전통은 조선 전기에도 크게 다를 바 없이 이어진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권7, 세조 3년 4월 22일(을묘)의 기록을 보면, “이때에 금령(禁令)이 자못 간략하므로 무풍(巫風)이 성행하였으니, 도성의 남녀들이 떼 지어 술을 마시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매양 한 번 술자리를 베풀면 반드시 음악을 베풀고 해가 저물어서야 헤어져 돌아갔다. 남녀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큰 소리로 떠들면서 태평시대의 즐거운 일이라고 하였다. 귀가(貴家)의 부인들도 또한 많이 본받아서 장막을 크게 설치하고는 며느리들을 다 모아서 호세(豪勢)와 사치를 다투어 준비하는 것이 매우 극진하였다. 진달래꽃[杜鵑花]이 필 때에 더욱 자주 그러하니 전화음(煎花飮)이라고 하였다.” 한다. 집안의 여성들, 특히 시집온 며느리들이 함께 모여 놀이를 위해서 장막을 세우고 참꽃으로 지짐을 지져 먹으며, 질펀한 음주와 가무악을 즐겼으니 이때의 봄나들이는 신라의 화전놀이는 물론 후대의 화전놀이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당시의 화전놀이가 여성들의 전유물만은 아니었다. 16세기의 시인 임제(林悌)는 홍만종의 『순오지(旬五志)』 상권(上卷)에, “작은 개울가에 돌 고여 솥뚜껑 걸고, 기름 두르고 쌀가루 얹어 참꽃[杜鵑花]을 지졌네. 젓가락 집어 맛을 보니 향기가 입에 가득, 한 해 봄빛이 배속에 전해지네.”라는 맛깔스런 시 한편을 남겼다. 이 시로 보자면 남성들도 낭만적인 화전놀이를 즐겼다. 하지만 남성들의 화전놀이는 부정기적인 봄맞이 풍류의 일환이었으며, 참여 범위도 지인(知人)들로 제한되어 여성들의 화전놀이와는 구별된다. 또 남성들에게는 가벼운 여가 활동이었으나 여성들에게는 일년에 한 번밖에 없는 공식적인 집단 나들이였다는 점에서 그 문화적 의미에 차이가 있다. 한편 화전놀이와 화전가(花煎歌)의 만남은 조선 후기, 그것도 19세기 초 이후에야 이루어진다. 이 시기에 이르러 여성들은 화전놀이의 과정과 소회를 담은 전형적인 화전가를 즐기기 시작한다. 화전가의 창작과 음영이 화전놀이의 중요한 내용으로 자리를 잡음으로써 여성들의 화전놀이는 남성들의 화전놀이는 물론 그 이전 시기 여성들의 화전놀이와도 다른 면모를 보여주게 되었다.

지역사례

영남지방 여성들의 화전놀이는 춘삼월 진달래꽃이 만발할 무렵에 마을 또는 문중의 여성들이 통문을 돌리거나 해서 놀이를 가기로 뜻을 모으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뜻이 모이면 시어른들의 승낙을 얻은 뒤에 구체적인 준비를 시작한다. 참여 인원은 대략 30~60명 내외이다. 젊은이로부터 늙은이까지 두루 참여할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삶의 이력이 붙어 집안이나 마을에서 인정받는 중년 여성들이 주도하며 시어머니들은 며느리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따라가지 않는다. 음식을 비롯하여 놀이에 드는 경비는 화전계(花煎契)가 있으면 그 기금으로 충당하고 그렇지 않으면 일정하게 갹출한다. 놀이날이 정해지고 준비가 진행되는 동안, 여성들은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놀이날이 되면 미리 준비한 음식과 조리도구 그리고 지필묵(紙筆墨)을 챙긴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무의 반주를 위해서 풍물을 가져가기도 한다. 지필묵은 현지에서 화전가를 지을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여성들은 어느 때보다 용모에 정성을 들여서 곱게 단장하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선다. 놀이하는 장소는 보통 마을에서 10리 안팎의 거리에 있는, 산천경개가 수려한 곳이다. 현장에 도착하면 우선 음식을 장만한다. 이미 가져간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만발한 진달래꽃잎을 한 움큼씩 따와 화전(花煎)을 만든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3월 3일조에서는 다음과 같이 화전을 소개하였다. “참꽃을 따다가 찹쌀가루에 반죽을 하여 둥근 떡을 만들고 그것을 기름에 지진 것을 화전이라 한다. 이 것이 곧 옛날 오병(熬餠)의 한구(寒具)이다. 또 녹두가루를 반죽하여 익힌 것을 가늘게 썰어 오미자 국에 띄우고 꿀을 섞고 잣을 곁들인 것을 화면(花麵)이라고 한다. 혹 참꽃을 녹두가루에 반죽하여 만들기도 한다. 또 녹두로 국수를 만들어 혹 붉은색으로 물을 들이기도 하는데 그것을 꿀물에 띄운 것을 수면(水麵)이라 한다. 이것을 아울러 시절음식으로 제사에 쓴다.” 화전을 다 부치고 푸짐한 먹거리가 마련되면 본격적인 놀이판이 벌어진다. 판마다 한결같지는 않았지만 음주가무를 즐기고, 시댁 식구 흉보기를 비롯해서 거리낌 없는 담화가 이루어졌다. 음주가무와 자유로운 담화 말고도 신명풀이가 끊이지 않도록 다양한 놀이들이 베풀어졌다. 대표적인 놀이가 윷놀이와 꽃싸움이다. 꽃싸움은 진달래꽃의 꽃술을 서로 마주 걸고 당겨서 먼저 끊어지는 쪽이 지는 놀이인데, 때에 따라서는 편을 갈라 승패를 가르고 상주(賞酒)와 벌주(罰酒)를 나누어 마시면서 즐기기도 하였다. 화전놀이는 여성들이 평소 숨겨두었던 다양한 재주를 마음껏 드러내는 경연장이 되기도 하였으니, 놀이판은 연극과 엉덩글씨, 봉사놀음, 꼽사춤과 병신춤, 모의혼례와 닭싸움 같은 다채로운 놀이로 채워졌다. 다른 한편으로 화전놀이는 화전가의 산실이기도 하였다. 화전가는 일반적으로 서사(序詞), 신변탄식, 봄의 찬미, 놀이의 공론, 택일, 통문 돌리기, 시부모 승낙 얻기, 준비, 치장, 승지찬미, 화전굽기, 회식, 유흥소영(遊興嘯詠), 파연감회(罷宴感懷), 이별과 재회 기약, 귀가, 발문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이처럼 사실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정회를 담아내는 화전가는 화전놀이의 현장에서 또는 귀가 후에 만들어진다. 화전가를 짓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합작(合作)이다. 여러 명이 일정 부분을 분담하여 지은 뒤에 그것을 합쳐 한 편의 화전가를 완성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개인작이다. 참여한 여성들이 따로따로 화전가를 짓는 것이다. 다 지으면 작품들을 놓고 합평을 하기 때문에 창작자는 자연히 사실성과 문학성에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화전가는 비록 개인작이라고 하더라도 일정하게 공동작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풍요로운 음식을 먹고 마시며 가무악과 놀이를 즐기는 가운데 어느덧 초봄의 해는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간다. 이제 여성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걸 어찌할 수 없다. 다음의 화전가는 이때의 심정을 담고 있다. “정신없이 놀다보니 해는 어이 잘 가는고, (중략) 잘있거라 잘있거라, 산천초목 잘있거라. 꽃은꺾어 손에들고 잎은따서 입에물고, 내려오며 놀아보세. (중략) 그럭저럭 내려오니 해는지고 달이솟네. 가련하다 인생들아 몇몇천을 놀자하니, 마음대로 아니되네. 명년이때 다시만나 즐거웁게 놀아보세. 다놀고 헤어지니 섭섭하기 그지없다.” 정신없이 놀다가도 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여성들의 운명이다. 그들과 좋은 시간을 함께 했던 자연 그리고 동료들과 만남을 지속하고 싶지만 여성들에게 허용된 것은 거기까지이다. 내년의 화전놀이를 기약하며 아쉬운 발길을 돌리는 여성들의 손에는 곧잘 한 움큼의 봄꽃이 들려 있다.

참고문헌

嶠南誌, 東國歲時記, 三國遺事, 旬五志, 朝鮮王朝實錄화전가연구 (권영철 외, 형설출판사, 1981)閨房歌詞 各論 (權寧徹, 螢雪出版社, 1986)화전가의 창작동인과 구조원리 (金相一, 대구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3)화전놀이의 축제성과 문화적 의미-경북지역을 중심으로 (한양명, 韓國民俗學33, 韓國民俗學會,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