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백음식

한자명

幣帛飮食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혼례

집필자 김상보(金尙寶)
갱신일 2019-01-15

정의

신부가 처음으로 시부모를 뵐 때 큰절을 하고 올리는 음식.

내용

폐백幣帛에서 ‘폐幣’는 ‘선물로 물건을 서로 주고받는 예물이나 돈’, ‘백帛’은 ‘비단’을 의미한다. 엄밀하게 보면, 폐백이란 선물로 돈이나 비단을 주고받는 예를 뜻한다. 친영혼親迎婚으로 치렀던 조선왕조의 가례에서는 혼약의 증거로 신랑 집에서 사자使者를 신부 집에 보내 신부 집에서 폐백을 받도록 하는 납징納徵(민가의 경우 납징을 ‘함 받는다’라고 함)이 있었는데, 이때 검은색 비단 3필, 분홍색 비단 2필, 말 2필 등을 포함하는 폐백을 사용하였다. 그래서 납징을 납폐納幣(폐를 받음)라고도 했다.

궁중 납폐 때의 폐백이 민중에게 전파되면서 증답贈答을 뜻하는 폐백이 현구고례見舅姑禮의 의미로 잘못 받아들여져, ‘폐백 음식’이라는 새로운 말이 탄생하였다. ‘현구고’의 ‘현見’은 ‘만나 뵈다’, ‘구舅’는 ‘시아버지’, ‘고姑’는 ‘시어머니’이므로,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만나 뵙고 올리는 음식’의 뜻으로 폐백 음식이라는 명칭이 생긴 것이다.

간택揀擇·납채納采·납징納徵·고기告期·친영親迎·동뢰연同牢宴·조현례朝見禮의순서로 치른 조선왕조 가례에서 조현례는 동뢰연을 치른 다음 날 아침 신부가 시부모를 뵙는 예이다. 『의례儀禮』 「사혼례士昏禮」에서는 이를 ‘현구고례’라 했다.

예기禮記』에 의하면, 고대 중국에서는 윗사람을 처음 뵐 때 부인婦人은 포脯(고기를 얇게 저며 썰어 말린 육포)와 수脩(길게 썰어 말린 육포), 대추·탱자·개암·밤을 예물로 사용하였다. 「사혼례」에서도 현구고례 때 단수포腶脩脯(쇠고기를 길고 얇게 썰어 생강가루와 계피가루를 뿌려 말린 포)와 조율棗栗이 시부모에게 올리는 예물이었다.

비록 고대 부인의 예물이 건육류乾肉類와 각색 과일이었다 하더라도 「사혼례」에서 단수포와 조율로 규정한 것은 음陰과 양陽이 화합하는 천시天時의 법칙을 따른 것이 아닌가 한다. 조棗(대추)와 율栗(밤)은 음성陰性의 식물食物, 단수포는 양성陽性의 식물로서, 시아버지舅에게는 음성의 조와 율을, 시어머니姑에게는 양성의 단수포를 적용한 것이다. 겉은 검은색, 안은 분홍색인 베[布]로 싼 대[竹], 버들[柳], 갈대[葦]를 재료로 만든 원형의 바구니에 조·율·단수포를 담아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를 처음 만나 뵙고 올린다. 그런 다음 신부는 시부모에게 효순孝順을 나타내기 위하여 특돈特豚 한 마리를 올렸는데, 시아버지에게 삶아 익힌 작은 새끼 돼지 왼쪽 반 마리, 시어머니에게 삶아 익힌 작은 새끼 돼지 오른쪽 반 마리를 드렸다.

조선왕조는 「사혼례」에 나타난 현구고례의 예법 그대로 조현례를 비교적 충실히 따랐다. 1749년(영조 25)에 제정된 『어제국혼정례御製國婚定例』 「왕세자가례」에서는 조[대추] 3되[升]와 율[밤] 3되를 왜주홍칠소소사방반倭朱紅漆小小四方盤(새빨간 붉은 칠은 한 작은 네모난 반)에 담아 왜주홍칠평안倭朱紅漆平案에 차린 다음 시아버지께 올릴 때 과반果盤 1상을 같이 차려 올렸고, 단수포 1첩(貼, 100장)을 왜주홍칠소소사방반에 담아 왜주홍칠평안에 차린 다음 시어머니께 올릴 때 과반 1상을 같이 차려 올렸다. 과반에 담아 차린 찬품饌品은 물론 고임음식으로 높게 담아 차린 것이다.

시어머니: 왜주홍칠소소사방반에 담은 단수포 100장, 아름답게 칼로 오려 담은 건치절乾雉折·전복절全鰒折·문어절文魚折, 그 밖에 소약과小藥果·석류石榴·생률生栗·생이生梨를 높게 고여 담아 차린 과반.
시아버지: 왜주홍칠소소사방반에 담은 대추 3되·밤 3되, 건치절·전복절·문어절·소약과·석류·생률·생리를 높게 고여 담아 차린 과반.

『어제국혼정례』에 의하면, 조선왕실에서는 조율과 단수포를 「사혼례」대로 비교적 충실히 적용했지만, 특돈은 적용치 않았다. 특돈 대신 고여 담아 차린 과반으로 대체하였다. 이는 부분적으로 고려왕조의 예제를 속례俗禮로서 받아들인 결과이다.

한편, 민간에서는 현구고례를 폐백이라 했다. 조선왕실이 친영혼을 한 것과 달리, 명종대(1545~1567) 이후로는 민간에 반친영혼이 광범위하게 보급되어 조선왕조 말기까지 이어졌다. 친영혼이란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신부를 맞이하여 신랑 집으로 데리고 와 동뢰연을 치르는 것이고, 반친영혼이란 신랑이 신부 집에서 동뢰연을 치른 다음 날 신랑 집으로 와 시부모에게 현구고례를 행하는 것이다. 친영혼이든 반친영혼이든 동뢰연 이후에는 향응을 베풀었다. 반친영혼에서는 신부 집에서 동뢰연을 치른 이후 향응을 베풀었고, 다음 날 신랑 집으로 와 현구고례를 한 다음에도 신랑 집에서 다시 한 차례 향응을 베풀었다. 동뢰연 이후에 베푸는 향응에는 신랑과 신부가 받는 큰상[大床], 신랑과 신부가 직접 먹도록 배려한 입매상[小床](작은 상), 그 밖에 친인척을 대접하는 주연상을 차렸다. 정조대(1776~1800)의 서민 혼례 기록인 『동상기東廂記』에는 큰상을 받고 치른 연회 모습이 다음과 같이 잘 나타나 있다.

수파련水波蓮을 꽂지 않을 수 없었으니 ……
두꺼비가 받은 큰상과 같았도다.
평생을 마시고 먹었으되 죽과 밥만을 알았거늘,
한술 뜨기도 전에 배 먼저 부르구나.
신랑의 소매엔 황률이 반 되나 가득.
수모手母가 합환주合歡酒 따른 통에는 술이 가득.
다들 사양치 마시고 드십사,
이렇듯 큰상은 다시 얻기 어려우니.

신랑과 신부에게 큰상을 차려줄 때에는 신랑에게 반 되의 황률을 준다고 하였다. 이렇게 밤을 주는 것에 대해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서 “요즘 풍속에 또한 자리 잡고 앉아 술을 마시고 나면 소년이 탁상의 밤을 집어 신랑에게 먹게 하는데, 이 또한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바로 폐지해야 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정약용은 동뢰연을 한 다음 큰상을 받을 때 신랑에게 밤을 먹게 하는 일이 어디에서 연유되었는지 모를 일이라 하였다. 그런데 신랑에게 밤을 먹이는 행위는 『동상기』의 기록으로 보아, 관행으로 내려왔을 것이다. 한편, 신응순辛應純(1572~1636)이 쓴 『성재집省齋集』에 따르면, 큰상에 올랐던 음식을 이바지음식으로 신부가 신랑 집으로 가지고 와 현구고례 때 첫 번째 상으로 차리고, 신부가 몸소 만든 밥·국·생선·고기 등으로 진지상을 두 번째 상으로 차려, 두 상 모두를 시부모에게 조·율 및 단수포와 함께 올렸다. 이 두 상은 특돈特豚 대신에 시부모에게 올린 것인데 정약용은 “지금 사람들은 성찬盛饌 두 자에만 매달려 사치와 낭비가 극에 달하여 남의 눈을 현혹하고 가난함을 업신여겨 색시의 뜻을 오만하게 하니, 이는 크게 어지러운 도이다. …… 마땅히 특돈 한 마리를 써야 하는데 어찌하여 마음대로 증감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어쨌든 지금의 폐백 음식은 「사혼례」의 현구고례 때에 시부모에게 드리는 예물인 대추와 밤, 그리고 단수포 외에 시부모를 접대하는 특돈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추와 밤·단수포는 「사혼례」대로 적용했지만 특돈은 적용되지 않았다. 이 특돈 대신 조선왕조는 과반으로 했고, 왕가 가례의 영향을 받은 민간에서는 신부가 가지고 온 이바지음식으로 했다.

특징 및 의의

오늘날에는 혼인 당일 혼례를 마치고 곧 폐백(현구고례) 의례를 하는데 과거 신부만이 현구고례에 임했던 것과는 달리 신랑과 신부 모두 폐백에 참석한다. 시부모는 반盤에 담은 대추와 밤 일부를 신랑과 신부에게 돌려주고, 신랑과 신부는 반盤에 담은 과일・약과・포 등을 술안주로 시부모에게 올린다. 대추・밤을 신랑과 신부에게 주는 것은 과거 큰상을 받았을 때 소년이 신랑에게 밤을 주던 관행의 흔적일 것이다. 또한, 집안에 따라서 시부모를 위한 술안주로 닭을 올렸는데 이를 ‘폐백닭’이라고 한다. 붉은 실에 꿰어서 그릇 위에 둥글게 쌓아 올린 폐백대추와 마찬가지로 폐백닭을 취급하여, 선물 음식과 대접 음식을 구별하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東廂記, 省齋集, 御製國婚定例, 與猶堂全書, 禮 記, 儀禮, 조선여속고(이능화, 동양서원, 1927), 조선왕조 궁중의궤 음식문화(김상보, 수학사, 1995), 조선왕조 혼례연향 음식문화(김상보, 신광출판사, 2003).

폐백음식

폐백음식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혼례

집필자 김상보(金尙寶)
갱신일 2019-01-15

정의

신부가 처음으로 시부모를 뵐 때 큰절을 하고 올리는 음식.

내용

폐백幣帛에서 ‘폐幣’는 ‘선물로 물건을 서로 주고받는 예물이나 돈’, ‘백帛’은 ‘비단’을 의미한다. 엄밀하게 보면, 폐백이란 선물로 돈이나 비단을 주고받는 예를 뜻한다. 친영혼親迎婚으로 치렀던 조선왕조의 가례에서는 혼약의 증거로 신랑 집에서 사자使者를 신부 집에 보내 신부 집에서 폐백을 받도록 하는 납징納徵(민가의 경우 납징을 ‘함 받는다’라고 함)이 있었는데, 이때 검은색 비단 3필, 분홍색 비단 2필, 말 2필 등을 포함하는 폐백을 사용하였다. 그래서 납징을 납폐納幣(폐를 받음)라고도 했다. 궁중 납폐 때의 폐백이 민중에게 전파되면서 증답贈答을 뜻하는 폐백이 현구고례見舅姑禮의 의미로 잘못 받아들여져, ‘폐백 음식’이라는 새로운 말이 탄생하였다. ‘현구고’의 ‘현見’은 ‘만나 뵈다’, ‘구舅’는 ‘시아버지’, ‘고姑’는 ‘시어머니’이므로,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만나 뵙고 올리는 음식’의 뜻으로 폐백 음식이라는 명칭이 생긴 것이다. 간택揀擇·납채納采·납징納徵·고기告期·친영親迎·동뢰연同牢宴·조현례朝見禮의순서로 치른 조선왕조 가례에서 조현례는 동뢰연을 치른 다음 날 아침 신부가 시부모를 뵙는 예이다. 『의례儀禮』 「사혼례士昏禮」에서는 이를 ‘현구고례’라 했다. 『예기禮記』에 의하면, 고대 중국에서는 윗사람을 처음 뵐 때 부인婦人은 포脯(고기를 얇게 저며 썰어 말린 육포)와 수脩(길게 썰어 말린 육포), 대추·탱자·개암·밤을 예물로 사용하였다. 「사혼례」에서도 현구고례 때 단수포腶脩脯(쇠고기를 길고 얇게 썰어 생강가루와 계피가루를 뿌려 말린 포)와 조율棗栗이 시부모에게 올리는 예물이었다. 비록 고대 부인의 예물이 건육류乾肉類와 각색 과일이었다 하더라도 「사혼례」에서 단수포와 조율로 규정한 것은 음陰과 양陽이 화합하는 천시天時의 법칙을 따른 것이 아닌가 한다. 조棗(대추)와 율栗(밤)은 음성陰性의 식물食物, 단수포는 양성陽性의 식물로서, 시아버지舅에게는 음성의 조와 율을, 시어머니姑에게는 양성의 단수포를 적용한 것이다. 겉은 검은색, 안은 분홍색인 베[布]로 싼 대[竹], 버들[柳], 갈대[葦]를 재료로 만든 원형의 바구니에 조·율·단수포를 담아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를 처음 만나 뵙고 올린다. 그런 다음 신부는 시부모에게 효순孝順을 나타내기 위하여 특돈特豚 한 마리를 올렸는데, 시아버지에게 삶아 익힌 작은 새끼 돼지 왼쪽 반 마리, 시어머니에게 삶아 익힌 작은 새끼 돼지 오른쪽 반 마리를 드렸다. 조선왕조는 「사혼례」에 나타난 현구고례의 예법 그대로 조현례를 비교적 충실히 따랐다. 1749년(영조 25)에 제정된 『어제국혼정례御製國婚定例』 「왕세자가례」에서는 조[대추] 3되[升]와 율[밤] 3되를 왜주홍칠소소사방반倭朱紅漆小小四方盤(새빨간 붉은 칠은 한 작은 네모난 반)에 담아 왜주홍칠평안倭朱紅漆平案에 차린 다음 시아버지께 올릴 때 과반果盤 1상을 같이 차려 올렸고, 단수포 1첩(貼, 100장)을 왜주홍칠소소사방반에 담아 왜주홍칠평안에 차린 다음 시어머니께 올릴 때 과반 1상을 같이 차려 올렸다. 과반에 담아 차린 찬품饌品은 물론 고임음식으로 높게 담아 차린 것이다. 시어머니: 왜주홍칠소소사방반에 담은 단수포 100장, 아름답게 칼로 오려 담은 건치절乾雉折·전복절全鰒折·문어절文魚折, 그 밖에 소약과小藥果·석류石榴·생률生栗·생이生梨를 높게 고여 담아 차린 과반.시아버지: 왜주홍칠소소사방반에 담은 대추 3되·밤 3되, 건치절·전복절·문어절·소약과·석류·생률·생리를 높게 고여 담아 차린 과반. 『어제국혼정례』에 의하면, 조선왕실에서는 조율과 단수포를 「사혼례」대로 비교적 충실히 적용했지만, 특돈은 적용치 않았다. 특돈 대신 고여 담아 차린 과반으로 대체하였다. 이는 부분적으로 고려왕조의 예제를 속례俗禮로서 받아들인 결과이다. 한편, 민간에서는 현구고례를 폐백이라 했다. 조선왕실이 친영혼을 한 것과 달리, 명종대(1545~1567) 이후로는 민간에 반친영혼이 광범위하게 보급되어 조선왕조 말기까지 이어졌다. 친영혼이란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신부를 맞이하여 신랑 집으로 데리고 와 동뢰연을 치르는 것이고, 반친영혼이란 신랑이 신부 집에서 동뢰연을 치른 다음 날 신랑 집으로 와 시부모에게 현구고례를 행하는 것이다. 친영혼이든 반친영혼이든 동뢰연 이후에는 향응을 베풀었다. 반친영혼에서는 신부 집에서 동뢰연을 치른 이후 향응을 베풀었고, 다음 날 신랑 집으로 와 현구고례를 한 다음에도 신랑 집에서 다시 한 차례 향응을 베풀었다. 동뢰연 이후에 베푸는 향응에는 신랑과 신부가 받는 큰상[大床], 신랑과 신부가 직접 먹도록 배려한 입매상[小床](작은 상), 그 밖에 친인척을 대접하는 주연상을 차렸다. 정조대(1776~1800)의 서민 혼례 기록인 『동상기東廂記』에는 큰상을 받고 치른 연회 모습이 다음과 같이 잘 나타나 있다. 수파련水波蓮을 꽂지 않을 수 없었으니 ……두꺼비가 받은 큰상과 같았도다.평생을 마시고 먹었으되 죽과 밥만을 알았거늘,한술 뜨기도 전에 배 먼저 부르구나.신랑의 소매엔 황률이 반 되나 가득.수모手母가 합환주合歡酒 따른 통에는 술이 가득.다들 사양치 마시고 드십사,이렇듯 큰상은 다시 얻기 어려우니. 신랑과 신부에게 큰상을 차려줄 때에는 신랑에게 반 되의 황률을 준다고 하였다. 이렇게 밤을 주는 것에 대해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서 “요즘 풍속에 또한 자리 잡고 앉아 술을 마시고 나면 소년이 탁상의 밤을 집어 신랑에게 먹게 하는데, 이 또한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바로 폐지해야 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정약용은 동뢰연을 한 다음 큰상을 받을 때 신랑에게 밤을 먹게 하는 일이 어디에서 연유되었는지 모를 일이라 하였다. 그런데 신랑에게 밤을 먹이는 행위는 『동상기』의 기록으로 보아, 관행으로 내려왔을 것이다. 한편, 신응순辛應純(1572~1636)이 쓴 『성재집省齋集』에 따르면, 큰상에 올랐던 음식을 이바지음식으로 신부가 신랑 집으로 가지고 와 현구고례 때 첫 번째 상으로 차리고, 신부가 몸소 만든 밥·국·생선·고기 등으로 진지상을 두 번째 상으로 차려, 두 상 모두를 시부모에게 조·율 및 단수포와 함께 올렸다. 이 두 상은 특돈特豚 대신에 시부모에게 올린 것인데 정약용은 “지금 사람들은 성찬盛饌 두 자에만 매달려 사치와 낭비가 극에 달하여 남의 눈을 현혹하고 가난함을 업신여겨 색시의 뜻을 오만하게 하니, 이는 크게 어지러운 도이다. …… 마땅히 특돈 한 마리를 써야 하는데 어찌하여 마음대로 증감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어쨌든 지금의 폐백 음식은 「사혼례」의 현구고례 때에 시부모에게 드리는 예물인 대추와 밤, 그리고 단수포 외에 시부모를 접대하는 특돈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추와 밤·단수포는 「사혼례」대로 적용했지만 특돈은 적용되지 않았다. 이 특돈 대신 조선왕조는 과반으로 했고, 왕가 가례의 영향을 받은 민간에서는 신부가 가지고 온 이바지음식으로 했다.

특징 및 의의

오늘날에는 혼인 당일 혼례를 마치고 곧 폐백(현구고례) 의례를 하는데 과거 신부만이 현구고례에 임했던 것과는 달리 신랑과 신부 모두 폐백에 참석한다. 시부모는 반盤에 담은 대추와 밤 일부를 신랑과 신부에게 돌려주고, 신랑과 신부는 반盤에 담은 과일・약과・포 등을 술안주로 시부모에게 올린다. 대추・밤을 신랑과 신부에게 주는 것은 과거 큰상을 받았을 때 소년이 신랑에게 밤을 주던 관행의 흔적일 것이다. 또한, 집안에 따라서 시부모를 위한 술안주로 닭을 올렸는데 이를 ‘폐백닭’이라고 한다. 붉은 실에 꿰어서 그릇 위에 둥글게 쌓아 올린 폐백대추와 마찬가지로 폐백닭을 취급하여, 선물 음식과 대접 음식을 구별하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東廂記, 省齋集, 御製國婚定例, 與猶堂全書, 禮 記, 儀禮, 조선여속고(이능화, 동양서원, 1927), 조선왕조 궁중의궤 음식문화(김상보, 수학사, 1995), 조선왕조 혼례연향 음식문화(김상보, 신광출판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