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신밟기(地神-)

한자명

地神-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정월(正月) > 1월 > 정일

집필자 박전열(朴銓烈)

정의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집터를 지켜준다는 지신(地神)에게 고사(告祀)를 올리고 풍물을 울리며 축복을 비는 세시풍속.

명칭

지신밟기는 어떤 측면을 강조하는가에 따라서 걸립·걸궁·고사반·고사풀이·마당밟기·주살맥이·매구·매귀 등 다양한 명칭을 지닌다. 지신밟기는 지신의 내력과 복을 비는 내용을 풀어내는 소리를 한다는 의미와 지신이 바라는 바대로 한바탕 풀어먹여 대접한다는 뜻에서 ‘지신풀이’라고도 한다. ‘걸립(乞粒)’이란 쌀을 얻기 위하여 다른 마을에 가서 지신밟기를 하는 경우로, 쌀알[粒]을 얻기 위한 일[乞]이라는 뜻이며, ‘걸궁(乞窮)’이란 궁핍한 형편에서 무엇인가 얻고자 나서는 일이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고사반(告祀盤)이란 제물로 차려놓은 고사상을 가리키며, 고사상을 차려놓고 지신의 내력이나 잡신을 쫓고 복을 비는 내용의 축원 덕담을 ‘고사풀이’라 하고, 이는 지신밟기의 한 과정이자 지신밟기 전반을 지칭하기도 한다. 지신밟기는 집안의 곳곳에서 하는 여러 가지 의례를 통틀어 지칭하는 말이지만, 특히 마당에서 하는 과정이 지신밟기의 절정을 이루어 가족은 물론 구경꾼에게도 가장 볼만한 대목이 되기 때문에 ‘마당밟기’라고도 한다. 지신밟기는 땅에 묻혀 있는 잡귀를 밟고 위로하여 진정시킨다는 뜻으로 매귀(埋鬼), 매귀의 발음을 매구라고 파악하거나 혹은 신을 불러 행하는 굿의 한 가지라는 뜻에서 ‘매구굿’이라고도 한다. 더러는 ‘뜰밟이’ 혹은 마당을 밟는 굿이라는 뜻으로 ‘답정굿’이라 부르기도 한다. 마을에 찾아드는 재액을 미리 막는 의례라는 뜻에서 ‘주살맥이’라고도 한다.

지신밟기패가 마을의 가가호호를 도는 이 행위를 지역에 따라서는 ‘걸립치기’라고도 하는데, 1941년의 조사자료에 의하면 농악이라는 범칭으로 보고된 사례가 많았다.

유래

마을 사람들이 지신밟기에 필요한 역할을 분담하여 자기 마을이나 이웃 마을을 방문하여 의례를 행하기 시작한 시기가 언제인지 정확한 연대를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공동체의 제사의례의 일종으로 세시풍속에 포함된 시기는 상당히 오랜 연원을 지닌다. 형식과 연희 시기는 다소 다르지만 잡귀를 쫓아내고 복을 부르기 위한 의례는 조선시대 민간에서 행하였다는 기록이 성현(成俔)의 『용재총화(慵齋叢話)』 2권에 있음을 보아 이전에 이미 원화소복(遠禍召福)을 위한 의례가 민간에도 널리 행해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1930년대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오청(吳晴)의 『조선의 연중행사(朝鮮の年中行事)』에는 지신밟기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나타나는데 이는 오늘날의 모습과 일치된다.

내용

지신은 집터와 가정을 지켜주는 신인데, 대문·마당·장독대·뒷간·부엌·대청마루·안방 등의 공간을 지켜주는 신이 따로 있다고 여긴다. 지신밟기는 땅을 밟으면서 잡신을 쫓고 복을 부르는 내용의 덕담과 노래로 하는 의례 그리고 각각의 신을 위로하려는 뜻으로 하는 풍물놀이로 구성된다. 꽹과리·북·장구·태평소 등의 민속악기로 구성된 풍물을 앞세우고, 소고패·양반·각시·포수·머슴 등의 배역이 뒤따른다. 마을신앙의 중심이 되는 신을 위한 당산굿을 비롯하여 공동우물에서 우물굿을 한 뒤에 마을 사람들 각각의 집을 방문한다. 지신밟기패는 각 가정을 방문하여 지신풀이의 고사소리를 하고, 춤과 익살로 놀이판을 벌인다. 이들을 맞이하는 가정에서는 쌀이나 술, 안주 혹은 금전 등을 제물 겸 답례로 준비하며, 일행은 이를 거두어 간다. 매년 같은 시기에 지신을 맞이하여 재앙을 물리치고 축복을 받으려는 신앙을 바탕으로 성립되었다. 다소 형태적 차이는 있지만 전국적인 분포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세시풍속이자 마을 공동체의 놀이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신밟기는 다른 세시풍속과 병행되는 일이 많은데, 봉산탈춤·양주별산대놀이· 북청사자놀음 등에서 본 과장에 앞서 벌어지는 길놀이도 지신밟기와 유사한 의미와 의례적 기능을 지니며, 마을굿에서 무당이 가가호호를 찾아다니는 걸립굿의 과정에도 유사한 원리가 작용되고 있다.

지신밟기의 진행 방식이나 축원의 내용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진행 방식은 공통적인 순서를 지닌다. 지신밟기를 하는 시기는 대개 정월 대보름 전후에 집중되어 있다. 이 시기는 전통적인 농가에는 할 일이 적고 설의 명절 기분이 남아 있는데다가 새해 들어 첫 만월을 맞이하는 대보름에는 농촌 사람들이 풍년을 고대하며 복을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지신밟기를 진행하는 지신밟기패는 지도자격인 상쇠를 비롯하여 솜씨 있는 연희자들이 있어야 하는데, 이들을 풍물패·걸립패·농악대라고도 하며, 지신밟기뿐만 아니라 마을의 다른 행사에도 동원된다.

지신밟기패는 악기나 역할에 따라서 배역 명칭이 정해지는데, 전북 임실군 강진면 필봉리 필봉마을의 경우는 편성 규모가 크다. 대개 영기·용기·농기 등의 깃발과 나팔·태평소·꽹과리·징·장구·북·소고 등의 악기, 대포수·창부·조리중·양반·농구(예비상쇠)·각시·화동 등의 잡색으로 구성되며 40여 명의 인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인원이 적으면 적은 대로 10여 명 내외의 소규모로 활동할 수도 있다.

전체적인 진행은 마을 전체를 위한 의례를 한 뒤, 각 집을 돌며 지신밟기를 하는 것이다. 먼저 마을의 주산이나 당산에서 술과 안주를 차려놓고 분향 재배한 후에 지신풀이를 한다. 부산지방의 경우, 주산에서 하는 주산지신풀이는 “지신지신 지신아 주산지신을 울리자. 천지현황 생긴 후에 일월성진이 밝았다. 산천이 개탁하고 만물이 번성할제 …… 주산성님께 발원이요. 이 동네 가가호호 나갈 때는 반짐이고 돌아올 때는 온짐지고 부귀영화 안과태평 점지하여 주옵소서, 어히여루 주산님 만대유전 누리소서.(후렴)”로 시작된다. 당산에서는 당산신을 위하여 고사를 지낸 후에 당산지신풀이를 한다. 마을 수호신에게 고사를 마친 후, 지역에 따라서 우물이나 마을 어귀에서 지신풀이를 한다. 우물에서 하는 고사소리는 고사덕담이라고도 하는데 전북 임실 지역의 경우 “아따 그 물 좋구나. 아들낳고 딸낳고 미역국에 밥 말세.” 하며, 부산 지역에서는 “어리루야 지신아 용왕지신 울리자. 동방청제 용왕님 남방적제 용왕님 서방백제 용왕님 북방흑제 용왕님 천년대한 가물음에도 물이나 철렁 실어주소. 구년홍수 가물에도 물이나 청청 맑아주소. 잡귀신은 물알로 만복은 이리로.”라고 한다.

마을 전체를 위한 지신밟기를 한 후에 가가호호를 찾아간다. 각 집을 찾아다니며 하는 지신밟기의 예로 전북 익산 지역의 경우 대문을 들어서서 마당에 이어 부엌과 장독대에서 고사소리를 하고 다시 마당에서 한바탕 놀이를 벌인다. 이때 둥그렇게 둘러서서 전체놀이를 한 뒤에 개인놀이로 설장고와 법고춤을 춘 다음 주인에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와 다음 집으로 간다. 경북 청도지방의 경우, 문굿·성주풀이·조왕굿·장독굿, 곳간굿·마구간굿·우물굿·대문굿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문굿은 지신밟기패가 대문 앞에서 “주인 양반 문여시오. 나그네 손님 들어간다.” 하고 주인을 불러 승낙을 받으면 집으로 들어가 마당을 한 바퀴 돌고 몇몇 사람은 마루로 올라가 성주풀이를 시작한다. 성주풀이는 상쇠의 선소리로 성주풀이 사설을 읊는 과정이다. 조왕굿은 부엌(정지)에 들어간 상쇠의 선소리로 고사소리를 한다. 장독굿은 장독대에 가서 상쇠의 선소리로 이 집 장맛이 좋아지게 해달라는 내용의 고사소리를 한다. 곳간굿은 곳간으로 가서 상쇠의 선소리로 곡식이 떨어지지 않고 풍요롭게 가득하도록 비는 고사소리를 한다. 마구간굿은 마구간에 가서 상쇠의 선소리로 마소가 탈이 나지 않고 일을 잘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고사소리를 한다. 우물굿은 우물에 가서 우물이 마르지 않고 맑은 물이 샘솟기를 기원하는 고사소리를 한다. 대문굿은 상쇠의 사설로, 지신밟기패가 집안을 나서기에 앞서 상쇠가 집안을 축복하는 고사소리를 하는 과정이다.

고사소리의 내용은 지역마다 다양하다. 전남 고흥 지역에서는 우선 마당에서 빙글빙글 돌며 한바탕 춤을 춘 뒤에 각 방·부엌·헛간·누에치는 방 등의 순서로 춤을 추며 돌며 “매구야, 오오 잡귀신은 물러가고 명과 복이 모여들어라, 와라, 오오.”라고 한다. 대구 지역에서는 목수가 정성껏 잘 지은 집에서 행복하게 잘 살자는 뜻으로 톱을 당기는 시늉을 하면서 “천년수로 딴겨라 만년수로 딴겨라. 잡신을 휘쫓고 만복 이리오라.”고 축원한다.

각 집을 단위로 행해지는 지신밟기 과정을 전후반으로 나누어 보면, 전반부는 상쇠를 비롯한 악사가 중심이 되어 장독대·곳간·마구간·부엌·대청마루·안방 등에서 고사소리로 축원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고, 후반부는 마당에서 풍물로 놀이판을 벌여 기량을 과시하고 잡색이 등장하여 웃음을 유발하며 구경꾼은 이를 즐기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지역이나 규모에 따라서 후반부는 전승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후반부에서는 간단한 구성의 판굿을 벌려 구경꾼이 풍물과 촌극을 즐기도록 한다. 장구놀이·상쇠놀이·법고놀이·무동놀이·열두발채상 등의 개인기를 자랑하는 대목과 여러 가지 도형으로 노는 진(陣)놀이로 기예를 자랑한다. 또한 농사풀이·도둑잽이·수박치기·콩동지기 등의 놀이를 곁들이기도 한다.

판굿에서는 풍물의 연희와 더불어 양반·각시·포수·머슴·조리중·화동 등의 잡색이 쫓고 쫓기는 즉흥적인 익살극으로 가족과 이웃집에서 온 구경꾼을 웃기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잡색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밀양지방의 경우에는 포수와 창부가 부부 사이처럼 친숙하게 재담을 하고, 양반 광대와 각시 광대가 한 쌍이 되어 요염한 춤을 추는 장면 등을 익살스럽게 연희한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지신밟기패가 대문으로 들어와서 마당·장독대·마구간 등 실외에서 의례를 행한 뒤에 부엌·마루·각 방 등의 순서로 차츰 실내의 깊은 공간으로 들어와 의례를 진행한 뒤, 다시 마당에 나가 오락적 성격이 강한 놀이판을 벌인 뒤에 주인이 내어놓은 음식으로 대접을 받은 제물을 거두어 바깥으로 나가는 형식을 지닌다.

지신밟기패의 활동 범위는 자기 마을에 한정하지 않고 이웃 마을이나 인근의 도시까지 확대하는 경우도 있다. 농한기 이웃 마을에 가서 활동하는 경우에는 일종의 마을 사이의 품앗이가 된다. 이웃 마을에 가서 지신밟기를 하면 이웃 마을의 지신밟기패를 자기 마을에서도 맞이해야 한다. 그러다가 인근의 도시로 활동 무대를 넓히고 활동 기간이 길어질 경우에는 본격적인 걸립패로 전환되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어느 절에서 시주를 걷는 명목을 내세우는데, 이는 ‘절걸립’이라고 한다. 절과 관계없이 다리를 놓기 위한 비용을 모으기 위한 것이라는 명목을 내세우는 ‘다리걸립’, 서당 건립을 위한 ‘서당걸립’, 나루터 보수 공사를 위한 ‘나루걸립’ 등이 있다. 이런 경우는 정월에 한정되지 않으며, 마을의 공터나 각 집을 찾아가서 지신밟기를 하며, 단순한 세시풍속과는 차원이 다른 유랑예인과 유사한 공연형태를 띄게 된다. 이런 걸립패는 지신밟기의 효험을 믿는 민간신앙을 바탕으로 하며, 뛰어난 기량이 있을 경우에는 활동을 지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기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이 세시풍속의 한 가지로 하는 지신밟기와 차이가 있다.

의의

지신밟기는 고사소리와 풍물놀이를 통하여 지신을 진정시킴으로써 마을과 가정의 평안을 빌며 마을과 각 집을 축제적 공간이 되게 한다는데 목적을 둔다. 지신밟기패는 공동체에 전승되는 의례와 연희를 매년 반복함으로써 마을의 연희전통을 이어간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또한 같은 내용을 마을의 가가호호에서 연희함으로써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마을 사람들 사이에 결속을 다지는 계기가 된다. 또한 각 가정에서 내어 놓은 쌀이나 돈은 공동체의 활동비를 분담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보다 많은 집을 방문하도록 순서를 짠다.

참고문헌

慵齋叢話,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慶尙南道 篇 (文化財管理局, 1972), 神대와 農旗 (李輔亨, 韓國文化人類學8, 韓國文化人類學會, 1976), 韓國民俗學論考 (李杜鉉, 學硏社, 1984), 韓國歲時風俗硏究 (任東權, 集文堂, 1985), 걸립의례의 공간구성 (박전열, 中央民俗學3, 中央大學校 韓國民俗學硏究所, 1991), 방문자의례의 종교적 성격 (박전열, 日本硏究7 中央大學校 日本硏究所, 1992), 朝鮮의 鄕土娛樂 (村山智順 著·朴銓烈 譯, 集文堂, 1992), 동제에 있어서 걸립의 문제 (박전열, 韓國民俗學34, 韓國民俗學會,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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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신밟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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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세시풍속사전 > 정월(正月) > 1월 > 정일

집필자 박전열(朴銓烈)

정의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집터를 지켜준다는 지신(地神)에게 고사(告祀)를 올리고 풍물을 울리며 축복을 비는 세시풍속.

명칭

지신밟기는 어떤 측면을 강조하는가에 따라서 걸립·걸궁·고사반·고사풀이·마당밟기·주살맥이·매구·매귀 등 다양한 명칭을 지닌다. 지신밟기는 지신의 내력과 복을 비는 내용을 풀어내는 소리를 한다는 의미와 지신이 바라는 바대로 한바탕 풀어먹여 대접한다는 뜻에서 ‘지신풀이’라고도 한다. ‘걸립(乞粒)’이란 쌀을 얻기 위하여 다른 마을에 가서 지신밟기를 하는 경우로, 쌀알[粒]을 얻기 위한 일[乞]이라는 뜻이며, ‘걸궁(乞窮)’이란 궁핍한 형편에서 무엇인가 얻고자 나서는 일이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고사반(告祀盤)이란 제물로 차려놓은 고사상을 가리키며, 고사상을 차려놓고 지신의 내력이나 잡신을 쫓고 복을 비는 내용의 축원 덕담을 ‘고사풀이’라 하고, 이는 지신밟기의 한 과정이자 지신밟기 전반을 지칭하기도 한다. 지신밟기는 집안의 곳곳에서 하는 여러 가지 의례를 통틀어 지칭하는 말이지만, 특히 마당에서 하는 과정이 지신밟기의 절정을 이루어 가족은 물론 구경꾼에게도 가장 볼만한 대목이 되기 때문에 ‘마당밟기’라고도 한다. 지신밟기는 땅에 묻혀 있는 잡귀를 밟고 위로하여 진정시킨다는 뜻으로 매귀(埋鬼), 매귀의 발음을 매구라고 파악하거나 혹은 신을 불러 행하는 굿의 한 가지라는 뜻에서 ‘매구굿’이라고도 한다. 더러는 ‘뜰밟이’ 혹은 마당을 밟는 굿이라는 뜻으로 ‘답정굿’이라 부르기도 한다. 마을에 찾아드는 재액을 미리 막는 의례라는 뜻에서 ‘주살맥이’라고도 한다. 지신밟기패가 마을의 가가호호를 도는 이 행위를 지역에 따라서는 ‘걸립치기’라고도 하는데, 1941년의 조사자료에 의하면 농악이라는 범칭으로 보고된 사례가 많았다.

유래

마을 사람들이 지신밟기에 필요한 역할을 분담하여 자기 마을이나 이웃 마을을 방문하여 의례를 행하기 시작한 시기가 언제인지 정확한 연대를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공동체의 제사의례의 일종으로 세시풍속에 포함된 시기는 상당히 오랜 연원을 지닌다. 형식과 연희 시기는 다소 다르지만 잡귀를 쫓아내고 복을 부르기 위한 의례는 조선시대 민간에서 행하였다는 기록이 성현(成俔)의 『용재총화(慵齋叢話)』 2권에 있음을 보아 이전에 이미 원화소복(遠禍召福)을 위한 의례가 민간에도 널리 행해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1930년대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오청(吳晴)의 『조선의 연중행사(朝鮮の年中行事)』에는 지신밟기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나타나는데 이는 오늘날의 모습과 일치된다.

내용

지신은 집터와 가정을 지켜주는 신인데, 대문·마당·장독대·뒷간·부엌·대청마루·안방 등의 공간을 지켜주는 신이 따로 있다고 여긴다. 지신밟기는 땅을 밟으면서 잡신을 쫓고 복을 부르는 내용의 덕담과 노래로 하는 의례 그리고 각각의 신을 위로하려는 뜻으로 하는 풍물놀이로 구성된다. 꽹과리·북·장구·태평소 등의 민속악기로 구성된 풍물을 앞세우고, 소고패·양반·각시·포수·머슴 등의 배역이 뒤따른다. 마을신앙의 중심이 되는 신을 위한 당산굿을 비롯하여 공동우물에서 우물굿을 한 뒤에 마을 사람들 각각의 집을 방문한다. 지신밟기패는 각 가정을 방문하여 지신풀이의 고사소리를 하고, 춤과 익살로 놀이판을 벌인다. 이들을 맞이하는 가정에서는 쌀이나 술, 안주 혹은 금전 등을 제물 겸 답례로 준비하며, 일행은 이를 거두어 간다. 매년 같은 시기에 지신을 맞이하여 재앙을 물리치고 축복을 받으려는 신앙을 바탕으로 성립되었다. 다소 형태적 차이는 있지만 전국적인 분포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세시풍속이자 마을 공동체의 놀이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신밟기는 다른 세시풍속과 병행되는 일이 많은데, 봉산탈춤·양주별산대놀이· 북청사자놀음 등에서 본 과장에 앞서 벌어지는 길놀이도 지신밟기와 유사한 의미와 의례적 기능을 지니며, 마을굿에서 무당이 가가호호를 찾아다니는 걸립굿의 과정에도 유사한 원리가 작용되고 있다. 지신밟기의 진행 방식이나 축원의 내용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진행 방식은 공통적인 순서를 지닌다. 지신밟기를 하는 시기는 대개 정월 대보름 전후에 집중되어 있다. 이 시기는 전통적인 농가에는 할 일이 적고 설의 명절 기분이 남아 있는데다가 새해 들어 첫 만월을 맞이하는 대보름에는 농촌 사람들이 풍년을 고대하며 복을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지신밟기를 진행하는 지신밟기패는 지도자격인 상쇠를 비롯하여 솜씨 있는 연희자들이 있어야 하는데, 이들을 풍물패·걸립패·농악대라고도 하며, 지신밟기뿐만 아니라 마을의 다른 행사에도 동원된다. 지신밟기패는 악기나 역할에 따라서 배역 명칭이 정해지는데, 전북 임실군 강진면 필봉리 필봉마을의 경우는 편성 규모가 크다. 대개 영기·용기·농기 등의 깃발과 나팔·태평소·꽹과리·징·장구·북·소고 등의 악기, 대포수·창부·조리중·양반·농구(예비상쇠)·각시·화동 등의 잡색으로 구성되며 40여 명의 인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인원이 적으면 적은 대로 10여 명 내외의 소규모로 활동할 수도 있다. 전체적인 진행은 마을 전체를 위한 의례를 한 뒤, 각 집을 돌며 지신밟기를 하는 것이다. 먼저 마을의 주산이나 당산에서 술과 안주를 차려놓고 분향 재배한 후에 지신풀이를 한다. 부산지방의 경우, 주산에서 하는 주산지신풀이는 “지신지신 지신아 주산지신을 울리자. 천지현황 생긴 후에 일월성진이 밝았다. 산천이 개탁하고 만물이 번성할제 …… 주산성님께 발원이요. 이 동네 가가호호 나갈 때는 반짐이고 돌아올 때는 온짐지고 부귀영화 안과태평 점지하여 주옵소서, 어히여루 주산님 만대유전 누리소서.(후렴)”로 시작된다. 당산에서는 당산신을 위하여 고사를 지낸 후에 당산지신풀이를 한다. 마을 수호신에게 고사를 마친 후, 지역에 따라서 우물이나 마을 어귀에서 지신풀이를 한다. 우물에서 하는 고사소리는 고사덕담이라고도 하는데 전북 임실 지역의 경우 “아따 그 물 좋구나. 아들낳고 딸낳고 미역국에 밥 말세.” 하며, 부산 지역에서는 “어리루야 지신아 용왕지신 울리자. 동방청제 용왕님 남방적제 용왕님 서방백제 용왕님 북방흑제 용왕님 천년대한 가물음에도 물이나 철렁 실어주소. 구년홍수 가물에도 물이나 청청 맑아주소. 잡귀신은 물알로 만복은 이리로.”라고 한다. 마을 전체를 위한 지신밟기를 한 후에 가가호호를 찾아간다. 각 집을 찾아다니며 하는 지신밟기의 예로 전북 익산 지역의 경우 대문을 들어서서 마당에 이어 부엌과 장독대에서 고사소리를 하고 다시 마당에서 한바탕 놀이를 벌인다. 이때 둥그렇게 둘러서서 전체놀이를 한 뒤에 개인놀이로 설장고와 법고춤을 춘 다음 주인에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와 다음 집으로 간다. 경북 청도지방의 경우, 문굿·성주풀이·조왕굿·장독굿, 곳간굿·마구간굿·우물굿·대문굿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문굿은 지신밟기패가 대문 앞에서 “주인 양반 문여시오. 나그네 손님 들어간다.” 하고 주인을 불러 승낙을 받으면 집으로 들어가 마당을 한 바퀴 돌고 몇몇 사람은 마루로 올라가 성주풀이를 시작한다. 성주풀이는 상쇠의 선소리로 성주풀이 사설을 읊는 과정이다. 조왕굿은 부엌(정지)에 들어간 상쇠의 선소리로 고사소리를 한다. 장독굿은 장독대에 가서 상쇠의 선소리로 이 집 장맛이 좋아지게 해달라는 내용의 고사소리를 한다. 곳간굿은 곳간으로 가서 상쇠의 선소리로 곡식이 떨어지지 않고 풍요롭게 가득하도록 비는 고사소리를 한다. 마구간굿은 마구간에 가서 상쇠의 선소리로 마소가 탈이 나지 않고 일을 잘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고사소리를 한다. 우물굿은 우물에 가서 우물이 마르지 않고 맑은 물이 샘솟기를 기원하는 고사소리를 한다. 대문굿은 상쇠의 사설로, 지신밟기패가 집안을 나서기에 앞서 상쇠가 집안을 축복하는 고사소리를 하는 과정이다. 고사소리의 내용은 지역마다 다양하다. 전남 고흥 지역에서는 우선 마당에서 빙글빙글 돌며 한바탕 춤을 춘 뒤에 각 방·부엌·헛간·누에치는 방 등의 순서로 춤을 추며 돌며 “매구야, 오오 잡귀신은 물러가고 명과 복이 모여들어라, 와라, 오오.”라고 한다. 대구 지역에서는 목수가 정성껏 잘 지은 집에서 행복하게 잘 살자는 뜻으로 톱을 당기는 시늉을 하면서 “천년수로 딴겨라 만년수로 딴겨라. 잡신을 휘쫓고 만복 이리오라.”고 축원한다. 각 집을 단위로 행해지는 지신밟기 과정을 전후반으로 나누어 보면, 전반부는 상쇠를 비롯한 악사가 중심이 되어 장독대·곳간·마구간·부엌·대청마루·안방 등에서 고사소리로 축원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고, 후반부는 마당에서 풍물로 놀이판을 벌여 기량을 과시하고 잡색이 등장하여 웃음을 유발하며 구경꾼은 이를 즐기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지역이나 규모에 따라서 후반부는 전승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후반부에서는 간단한 구성의 판굿을 벌려 구경꾼이 풍물과 촌극을 즐기도록 한다. 장구놀이·상쇠놀이·법고놀이·무동놀이·열두발채상 등의 개인기를 자랑하는 대목과 여러 가지 도형으로 노는 진(陣)놀이로 기예를 자랑한다. 또한 농사풀이·도둑잽이·수박치기·콩동지기 등의 놀이를 곁들이기도 한다. 판굿에서는 풍물의 연희와 더불어 양반·각시·포수·머슴·조리중·화동 등의 잡색이 쫓고 쫓기는 즉흥적인 익살극으로 가족과 이웃집에서 온 구경꾼을 웃기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잡색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밀양지방의 경우에는 포수와 창부가 부부 사이처럼 친숙하게 재담을 하고, 양반 광대와 각시 광대가 한 쌍이 되어 요염한 춤을 추는 장면 등을 익살스럽게 연희한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지신밟기패가 대문으로 들어와서 마당·장독대·마구간 등 실외에서 의례를 행한 뒤에 부엌·마루·각 방 등의 순서로 차츰 실내의 깊은 공간으로 들어와 의례를 진행한 뒤, 다시 마당에 나가 오락적 성격이 강한 놀이판을 벌인 뒤에 주인이 내어놓은 음식으로 대접을 받은 제물을 거두어 바깥으로 나가는 형식을 지닌다. 지신밟기패의 활동 범위는 자기 마을에 한정하지 않고 이웃 마을이나 인근의 도시까지 확대하는 경우도 있다. 농한기 이웃 마을에 가서 활동하는 경우에는 일종의 마을 사이의 품앗이가 된다. 이웃 마을에 가서 지신밟기를 하면 이웃 마을의 지신밟기패를 자기 마을에서도 맞이해야 한다. 그러다가 인근의 도시로 활동 무대를 넓히고 활동 기간이 길어질 경우에는 본격적인 걸립패로 전환되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어느 절에서 시주를 걷는 명목을 내세우는데, 이는 ‘절걸립’이라고 한다. 절과 관계없이 다리를 놓기 위한 비용을 모으기 위한 것이라는 명목을 내세우는 ‘다리걸립’, 서당 건립을 위한 ‘서당걸립’, 나루터 보수 공사를 위한 ‘나루걸립’ 등이 있다. 이런 경우는 정월에 한정되지 않으며, 마을의 공터나 각 집을 찾아가서 지신밟기를 하며, 단순한 세시풍속과는 차원이 다른 유랑예인과 유사한 공연형태를 띄게 된다. 이런 걸립패는 지신밟기의 효험을 믿는 민간신앙을 바탕으로 하며, 뛰어난 기량이 있을 경우에는 활동을 지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기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이 세시풍속의 한 가지로 하는 지신밟기와 차이가 있다.

의의

지신밟기는 고사소리와 풍물놀이를 통하여 지신을 진정시킴으로써 마을과 가정의 평안을 빌며 마을과 각 집을 축제적 공간이 되게 한다는데 목적을 둔다. 지신밟기패는 공동체에 전승되는 의례와 연희를 매년 반복함으로써 마을의 연희전통을 이어간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또한 같은 내용을 마을의 가가호호에서 연희함으로써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마을 사람들 사이에 결속을 다지는 계기가 된다. 또한 각 가정에서 내어 놓은 쌀이나 돈은 공동체의 활동비를 분담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보다 많은 집을 방문하도록 순서를 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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