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타기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가을(秋) > 9월 > 놀이

집필자 전경욱(田耕旭)
갱신일 2019-01-28

정의

줄광대가 줄 아래에 어릿광대와 삼현육각을 대동하고 줄 위에서 여러 가지 기예, 재담, 가요를 연행하는 전통연희. 줄타기는 답삭희(踏索戱), 이승(履繩), 주삭(走索), 보삭(步索), 주승(走繩), 사연삭(躧輭索), 무환(舞絙), 승희(繩戱), 답연삭(踏連索), 답삭(踏索), 삭상재(索上才), 긍희(絚戱), 환희(絙戱), 희승(戱繩), 고환(高絙), 고조(高組), 승기(繩伎), 승도(繩渡), 도백삭(渡白索), 주질(注叱; 줄질의 이두식 표기) 같은 한자 표현들이 있다. 줄타기는 중요무형문화제 제58호로 지정되어 있다.

유래

줄타기가 한반도에서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삼국시대에 산악(散樂), 백희(百戱)가 중국과 서역에서 전래되었을 때, 줄타기도 함께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산악, 백희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백희, 가무백희, 잡희, 산대잡극(山臺雜劇), 산대희(山臺戱), 나례(儺禮), 나희(儺戱), 나(儺) 같은 용어 아래 행해졌는데, 이때 줄타기는 반드시 포함되는 중요한 연희였다.

줄타기에 대한 이른 시기의 기록은 이규보(李奎報)가 오세문의 ‘삼백운시(三百韻詩)’에 답한 시 가운데 “놀이 줄은 높아서 은하수에 닿았고”라는 내용, 이규보가 임금의 행차를 맞이할 때 연행한 놀이를 묘사한 시 ‘진강후 저택에서 임금의 행차를 맞이하며 올린 서문과 송시(晉康侯 邸迎 聖駕次敎坊致語口號)’에 나오는 “번쩍이는 비단옷은 안개 속에 벌려 있고 산들은 울긋불긋 구름은 뭉게뭉게, 줄타기도 아슬아슬 하늘중천 건너가고 둥당둥당 풍악소리 온 거리에 울려가네.”라는 내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례, 중국 사신 영접 행사, 관아 행사, 문희연, 동제와 같은 행사에서 줄타기를 연행했다. 성현(成俔)이 나례에서 연행된 방울받기, 줄타기, 꼭두각시놀이, 솟대타기를 보고 지은 ‘관나희(觀儺戱)’에서 “줄 타는 모습은 조비연처럼 날렵하네.”라는 내용이 있고, 성현이 중국 사신 영접 행사에서 연행된 땅재주, 줄타기, 방울받기, 인형극을 보고 지은 ‘관괴뢰잡희시(觀傀儡雜戱詩)’에서 “줄타기 방울받기 기술도 많은데”라는 내용이 있고, 『문종실록(文宗實錄)』 즉위년(1450) 6월 10일조에서는 중국 사신 영접 행사에서 연행하는 곡예 종목으로 주질(줄질, 줄타기), 농령(방울받기), 근두(땅재주)를 들었다. 조선에 사신으로 왔던 아극돈(阿克敦)의 ‘봉사도(奉使圖)’ 중 제7폭에서는 모화관 마당에서 사신을 위해 공연한 연희들을 묘사하고 있는데, 예산대(소형 산대) 앞에서 연행되는 탈춤, 대접돌리기, 땅재주, 줄타기가 보인다.

유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京都雜志)』 유가조(遊街條)에서는 유가와 문희연에서 연행했던 골계희, 땅재주, 줄타기를 살펴볼 수 있다. 송만재의 ‘관우희(觀優戱)’는 문희연에서 연행한 영산회상(靈山會相), 가곡, 12가사, 어룡만연지희(魚龍曼衍之戱), 불토해내기, 포구락, 사자무, 처용무, 요요기(拗腰技), 판소리단가, 판소리, 땅재주, 검무, 솟대타기, 홍패고사와 함께 줄타기의 내용을 매우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 줄타기는 세습무계의 재인에 의한 광대줄타기, 재인촌 재인들의 재인줄타기, 유랑 예인 집단의 어름줄타기로 전승되었다.

광대줄타기는 주로 한강 이남 지역인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의 재인청(才人廳)에 소속되었던 무부(巫夫) 출신의 재인들이 나례, 중국사신 영접 행사, 관아 행사, 문희연과 같은 양반이나 부잣집의 각종 잔치와 경기도당굿 등의 동제에서 연행한 것이다. 광대줄 계열의 김상봉은 200여 년 전의 인물이다. 그에 의해 광대줄의 계보가 최상천, 김관보, 김영철 그리고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 줄타기의 예능보유자인 김대균으로 이어진다. 김관보를 통해 김봉업, 임상문, 이일문, 이정업, 오돌끈, 이동안, 김영철과 여류 줄꾼인 임명옥, 임명심, 정유색, 전봉선, 한농선이 배출되었다.

재인줄타기는 주로 한강 이북 지역인 황해도와 평안도의 재인촌에 살면서 관아의 악사청에 속해 있던 재인들이 연행한 것이다. 재인촌 사람들은 삼현육각의 악기 연주는 물론 줄타기와 땅재주 같은 기예도 연행했다. 19세기 초에 그려진 작자 미상의 ‘평안감사환영도(平安監司歡迎圖)’에 여러 연희와 함께 줄타기도 보이는데, 이는 바로 평안도 재인촌의 재인들이 연행했을 것이다.

조선 후기에는 국가의 공식 행사가 위축됨에 따라 민간을 떠돌면서 연희를 공연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유랑 예인 집단들이 속출했다. 이들 가운데 사당패, 남사당패, 솟대쟁이패, 광대패, 걸립패가 마을, 장터, 파시를 떠돌아다니면서 여러 연희 가운데 하나로 줄타기를 공연했다. 이를 어름줄타기라고 부른다. 이 가운데 남사당패의 풍물, 대접돌리기, 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 가면극, 꼭두각시놀음남사당놀이로서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다.

한편 수락산 흥국사의 ‘감로탱’에 쌍줄타기가 보이고, 남사당패 출신인 이수영 옹에 의하면 195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쌍줄타기가 있었으나 지금은 전승되지 않는다.

내용

광대줄타기와 어름줄타기는 관객층이 다르기 때문에 놀이판, 놀이 시간, 놀이 내용도 달랐다. 광대줄의 줄판은 궁궐이나 관아, 양반들의 집에서 벌어지므로 울안 마당에 차려진다. 광대줄은 대개 낮에 놀며 보통 4~5시간 이상 논다. 도중에 줄광대가 쉬는 막간에는 어릿광대가 나와서 논다. 반면에 어름의 줄판은 민간 마을의 넓은 마당에 차려지며 밤에 시작해서 밤새 논다. 따라서 놀이판에는 장작불이나 횃불을 밝힌다. 어름은 남사당패의 연희 가운데 하나로 한 시간 반 정도 논다.

줄판에 설치하는 줄은 삼 껍질로 꼰 지름 3센티미터 정도의 녹밧줄을 쓴다. 광대줄은 높이가 3미터에 길이는 10미터 정도이고, 어름줄은 높이 3미터에 길이가 5~6미터이다. 광대줄을 놀 때는 삼현육각이, 어름에는 꽹과리, 징, 북, 장구, 날라리가 음악을 반주한다.

광대줄타기와 어름줄타기 모두 줄타기에 앞서 줄고사를 지낸다. 줄고사의 고사문은 줄광대(어름산이)가 읊는데, 돌아가신 스승, 선배 또는 줄할머니, 줄할아버지에게 사고 없이 줄을 타게 해달라고 비는 내용이다. 줄고사가 끝나면 연희자들은 배례하고 나서 올렸던 술을 양쪽 줄기둥과 줄에 붓고 줄에 오른다.

줄고사에 이어서 중놀이와 왈자놀이 같은 흉내내기 연기를 한다. 중놀이는 줄광대가 줄 위에서 재주를 하다가 고깔 장삼과 다홍띠를 입고 난 뒤에 중타령을 부르며, 중이 내려오는 몸짓과 얼굴 표정, 걸음걸이, 염불하는 모습을 줄 위에서 표현하며, 뒤에 이어지는 왈자와 중의 파자놀이, 팔선녀와 희롱하다가 양반에게 몰매를 맞고 신세한탄을 하며 파계하는 모습 등 중의 모습을 희화적이고 세속적인 모습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상황의 전개와 관련하여 중타령, 오봉산타령, 풍년가, 새타령, 팔선녀 타령 같은 노래를 부르고 각종 줄타기 기예(잔놀음)를 보여준다.

광대줄의 연희자는 줄광대와 어릿광대가 있다. 어릿광대는 줄광대가 줄을 탈 때 땅 위에 서서 같이 뛰놀며 익살을 부린다. 어름 연희자는 어름산이와 매호씨가 있다. 매호씨는 앉아서 장구를 쳐주며 어름산이와 재담을 주고받는다. 줄광대와 어름산이는 줄타기를 할 때 단순히 줄만 타는 것이 아니라 재담과 노래까지 곁들인다. 이와 같이 제대로 된 줄타기를 판줄이라고 하며, 그러한 줄광대를 판줄광대라고 부른다.

전반적으로 광대줄타기는 줄을 타는 기술의 종류나 솜씨가 뛰어나다. 반면에 어름줄타기는 재담과 오락성이 더 발달했다. 광대줄타기의 줄연기는 줄 위에서 한 발이 내려왔다가 줄의 탄력에 의하여 다시 올라가 딛는 외홍잽이를 비롯해 20여 가지가 있다. 어름줄타기의 줄연기는 양반집 아들의 병신 걸음걸이 흉내내기인 참봉댁 맏아들 등 17가지가 있다.

인접국가사례

중국의 줄타기는 한대(漢代) 장형(張衡)의 ‘서경부(西京賦)’에 산악, 백희의 한 종목으로 묘사되어 있고, 약 2000년 전 축조된 한나라 무덤의 화상석(畵像石)에 매우 풍부하고 다채로운 연희 장면과 함께 줄타기가 묘사되어 있다. 중국 줄타기는 지금도 잡기단에 의해 전승되고 있는데 서커스의 줄타기처럼 묘기 위주이다.

일본의 줄타기는 12세기 말에 그려진 ‘신서고악도(信西古樂圖)’에 처음 보인다. 15세기 이후에는 구모마이(蜘舞)라고 불렸다. 에도시대에 들어서는 가부키(歌舞伎)의 한 기술로 발전했다. 18세기 무렵 줄타기는 일본 곡예술의 주류를 이루었는데 이때까지는 쌍줄타기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1737년 구메노스케라는 연희자가 한 줄 위에서 칼을 사용한 연희를 한 후에 쌍줄타기는 점차 사라졌다. 1864년에 서양의 줄타기가 일본에 들어와서 요코하마에서 흥행했고, 현재는 민속 연희의 현장이나 서커스에서 연행되고 있다.

의의

줄타기는 예부터 각종 국가 행사, 관아 행사에서는 물론 민간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대표적 전통연희의 하나이다. 한국의 줄타기는 다양하고 유연한 기예를 갖추고 있으며, 줄꾼과 어릿광대가 각 장면에 어울리는 삽입가요와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재담을 구사하는 수준 높은 공연물로서, 묘기를 위주로 하는 외국의 줄타기와 차별성을 지닌다.

참고문헌

京都雜志, 文宗實錄
줄타기 (심우성, 화산문화, 2000)
한국의 전통연희 (전경욱, 학고재, 2004)
한국 줄타기의 역사와 연행 원리 (이호승,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

줄타기

줄타기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가을(秋) > 9월 > 놀이

집필자 전경욱(田耕旭)
갱신일 2019-01-28

정의

줄광대가 줄 아래에 어릿광대와 삼현육각을 대동하고 줄 위에서 여러 가지 기예, 재담, 가요를 연행하는 전통연희. 줄타기는 답삭희(踏索戱), 이승(履繩), 주삭(走索), 보삭(步索), 주승(走繩), 사연삭(躧輭索), 무환(舞絙), 승희(繩戱), 답연삭(踏連索), 답삭(踏索), 삭상재(索上才), 긍희(絚戱), 환희(絙戱), 희승(戱繩), 고환(高絙), 고조(高組), 승기(繩伎), 승도(繩渡), 도백삭(渡白索), 주질(注叱; 줄질의 이두식 표기) 같은 한자 표현들이 있다. 줄타기는 중요무형문화제 제58호로 지정되어 있다.

유래

줄타기가 한반도에서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삼국시대에 산악(散樂), 백희(百戱)가 중국과 서역에서 전래되었을 때, 줄타기도 함께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산악, 백희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백희, 가무백희, 잡희, 산대잡극(山臺雜劇), 산대희(山臺戱), 나례(儺禮), 나희(儺戱), 나(儺) 같은 용어 아래 행해졌는데, 이때 줄타기는 반드시 포함되는 중요한 연희였다. 줄타기에 대한 이른 시기의 기록은 이규보(李奎報)가 오세문의 ‘삼백운시(三百韻詩)’에 답한 시 가운데 “놀이 줄은 높아서 은하수에 닿았고”라는 내용, 이규보가 임금의 행차를 맞이할 때 연행한 놀이를 묘사한 시 ‘진강후 저택에서 임금의 행차를 맞이하며 올린 서문과 송시(晉康侯 邸迎 聖駕次敎坊致語口號)’에 나오는 “번쩍이는 비단옷은 안개 속에 벌려 있고 산들은 울긋불긋 구름은 뭉게뭉게, 줄타기도 아슬아슬 하늘중천 건너가고 둥당둥당 풍악소리 온 거리에 울려가네.”라는 내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례, 중국 사신 영접 행사, 관아 행사, 문희연, 동제와 같은 행사에서 줄타기를 연행했다. 성현(成俔)이 나례에서 연행된 방울받기, 줄타기, 꼭두각시놀이, 솟대타기를 보고 지은 ‘관나희(觀儺戱)’에서 “줄 타는 모습은 조비연처럼 날렵하네.”라는 내용이 있고, 성현이 중국 사신 영접 행사에서 연행된 땅재주, 줄타기, 방울받기, 인형극을 보고 지은 ‘관괴뢰잡희시(觀傀儡雜戱詩)’에서 “줄타기 방울받기 기술도 많은데”라는 내용이 있고, 『문종실록(文宗實錄)』 즉위년(1450) 6월 10일조에서는 중국 사신 영접 행사에서 연행하는 곡예 종목으로 주질(줄질, 줄타기), 농령(방울받기), 근두(땅재주)를 들었다. 조선에 사신으로 왔던 아극돈(阿克敦)의 ‘봉사도(奉使圖)’ 중 제7폭에서는 모화관 마당에서 사신을 위해 공연한 연희들을 묘사하고 있는데, 예산대(소형 산대) 앞에서 연행되는 탈춤, 대접돌리기, 땅재주, 줄타기가 보인다. 유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京都雜志)』 유가조(遊街條)에서는 유가와 문희연에서 연행했던 골계희, 땅재주, 줄타기를 살펴볼 수 있다. 송만재의 ‘관우희(觀優戱)’는 문희연에서 연행한 영산회상(靈山會相), 가곡, 12가사, 어룡만연지희(魚龍曼衍之戱), 불토해내기, 포구락, 사자무, 처용무, 요요기(拗腰技), 판소리단가, 판소리, 땅재주, 검무, 솟대타기, 홍패고사와 함께 줄타기의 내용을 매우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 줄타기는 세습무계의 재인에 의한 광대줄타기, 재인촌 재인들의 재인줄타기, 유랑 예인 집단의 어름줄타기로 전승되었다. 광대줄타기는 주로 한강 이남 지역인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의 재인청(才人廳)에 소속되었던 무부(巫夫) 출신의 재인들이 나례, 중국사신 영접 행사, 관아 행사, 문희연과 같은 양반이나 부잣집의 각종 잔치와 경기도당굿 등의 동제에서 연행한 것이다. 광대줄 계열의 김상봉은 200여 년 전의 인물이다. 그에 의해 광대줄의 계보가 최상천, 김관보, 김영철 그리고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 줄타기의 예능보유자인 김대균으로 이어진다. 김관보를 통해 김봉업, 임상문, 이일문, 이정업, 오돌끈, 이동안, 김영철과 여류 줄꾼인 임명옥, 임명심, 정유색, 전봉선, 한농선이 배출되었다. 재인줄타기는 주로 한강 이북 지역인 황해도와 평안도의 재인촌에 살면서 관아의 악사청에 속해 있던 재인들이 연행한 것이다. 재인촌 사람들은 삼현육각의 악기 연주는 물론 줄타기와 땅재주 같은 기예도 연행했다. 19세기 초에 그려진 작자 미상의 ‘평안감사환영도(平安監司歡迎圖)’에 여러 연희와 함께 줄타기도 보이는데, 이는 바로 평안도 재인촌의 재인들이 연행했을 것이다. 조선 후기에는 국가의 공식 행사가 위축됨에 따라 민간을 떠돌면서 연희를 공연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유랑 예인 집단들이 속출했다. 이들 가운데 사당패, 남사당패, 솟대쟁이패, 광대패, 걸립패가 마을, 장터, 파시를 떠돌아다니면서 여러 연희 가운데 하나로 줄타기를 공연했다. 이를 어름줄타기라고 부른다. 이 가운데 남사당패의 풍물, 대접돌리기, 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 가면극, 꼭두각시놀음은 남사당놀이로서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다. 한편 수락산 흥국사의 ‘감로탱’에 쌍줄타기가 보이고, 남사당패 출신인 이수영 옹에 의하면 195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쌍줄타기가 있었으나 지금은 전승되지 않는다.

내용

광대줄타기와 어름줄타기는 관객층이 다르기 때문에 놀이판, 놀이 시간, 놀이 내용도 달랐다. 광대줄의 줄판은 궁궐이나 관아, 양반들의 집에서 벌어지므로 울안 마당에 차려진다. 광대줄은 대개 낮에 놀며 보통 4~5시간 이상 논다. 도중에 줄광대가 쉬는 막간에는 어릿광대가 나와서 논다. 반면에 어름의 줄판은 민간 마을의 넓은 마당에 차려지며 밤에 시작해서 밤새 논다. 따라서 놀이판에는 장작불이나 횃불을 밝힌다. 어름은 남사당패의 연희 가운데 하나로 한 시간 반 정도 논다. 줄판에 설치하는 줄은 삼 껍질로 꼰 지름 3센티미터 정도의 녹밧줄을 쓴다. 광대줄은 높이가 3미터에 길이는 10미터 정도이고, 어름줄은 높이 3미터에 길이가 5~6미터이다. 광대줄을 놀 때는 삼현육각이, 어름에는 꽹과리, 징, 북, 장구, 날라리가 음악을 반주한다. 광대줄타기와 어름줄타기 모두 줄타기에 앞서 줄고사를 지낸다. 줄고사의 고사문은 줄광대(어름산이)가 읊는데, 돌아가신 스승, 선배 또는 줄할머니, 줄할아버지에게 사고 없이 줄을 타게 해달라고 비는 내용이다. 줄고사가 끝나면 연희자들은 배례하고 나서 올렸던 술을 양쪽 줄기둥과 줄에 붓고 줄에 오른다. 줄고사에 이어서 중놀이와 왈자놀이 같은 흉내내기 연기를 한다. 중놀이는 줄광대가 줄 위에서 재주를 하다가 고깔 장삼과 다홍띠를 입고 난 뒤에 중타령을 부르며, 중이 내려오는 몸짓과 얼굴 표정, 걸음걸이, 염불하는 모습을 줄 위에서 표현하며, 뒤에 이어지는 왈자와 중의 파자놀이, 팔선녀와 희롱하다가 양반에게 몰매를 맞고 신세한탄을 하며 파계하는 모습 등 중의 모습을 희화적이고 세속적인 모습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상황의 전개와 관련하여 중타령, 오봉산타령, 풍년가, 새타령, 팔선녀 타령 같은 노래를 부르고 각종 줄타기 기예(잔놀음)를 보여준다. 광대줄의 연희자는 줄광대와 어릿광대가 있다. 어릿광대는 줄광대가 줄을 탈 때 땅 위에 서서 같이 뛰놀며 익살을 부린다. 어름 연희자는 어름산이와 매호씨가 있다. 매호씨는 앉아서 장구를 쳐주며 어름산이와 재담을 주고받는다. 줄광대와 어름산이는 줄타기를 할 때 단순히 줄만 타는 것이 아니라 재담과 노래까지 곁들인다. 이와 같이 제대로 된 줄타기를 판줄이라고 하며, 그러한 줄광대를 판줄광대라고 부른다. 전반적으로 광대줄타기는 줄을 타는 기술의 종류나 솜씨가 뛰어나다. 반면에 어름줄타기는 재담과 오락성이 더 발달했다. 광대줄타기의 줄연기는 줄 위에서 한 발이 내려왔다가 줄의 탄력에 의하여 다시 올라가 딛는 외홍잽이를 비롯해 20여 가지가 있다. 어름줄타기의 줄연기는 양반집 아들의 병신 걸음걸이 흉내내기인 참봉댁 맏아들 등 17가지가 있다.

인접국가사례

중국의 줄타기는 한대(漢代) 장형(張衡)의 ‘서경부(西京賦)’에 산악, 백희의 한 종목으로 묘사되어 있고, 약 2000년 전 축조된 한나라 무덤의 화상석(畵像石)에 매우 풍부하고 다채로운 연희 장면과 함께 줄타기가 묘사되어 있다. 중국 줄타기는 지금도 잡기단에 의해 전승되고 있는데 서커스의 줄타기처럼 묘기 위주이다. 일본의 줄타기는 12세기 말에 그려진 ‘신서고악도(信西古樂圖)’에 처음 보인다. 15세기 이후에는 구모마이(蜘舞)라고 불렸다. 에도시대에 들어서는 가부키(歌舞伎)의 한 기술로 발전했다. 18세기 무렵 줄타기는 일본 곡예술의 주류를 이루었는데 이때까지는 쌍줄타기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1737년 구메노스케라는 연희자가 한 줄 위에서 칼을 사용한 연희를 한 후에 쌍줄타기는 점차 사라졌다. 1864년에 서양의 줄타기가 일본에 들어와서 요코하마에서 흥행했고, 현재는 민속 연희의 현장이나 서커스에서 연행되고 있다.

의의

줄타기는 예부터 각종 국가 행사, 관아 행사에서는 물론 민간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대표적 전통연희의 하나이다. 한국의 줄타기는 다양하고 유연한 기예를 갖추고 있으며, 줄꾼과 어릿광대가 각 장면에 어울리는 삽입가요와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재담을 구사하는 수준 높은 공연물로서, 묘기를 위주로 하는 외국의 줄타기와 차별성을 지닌다.

참고문헌

京都雜志, 文宗實錄줄타기 (심우성, 화산문화, 2000)한국의 전통연희 (전경욱, 학고재, 2004)한국 줄타기의 역사와 연행 원리 (이호승,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