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굿

한자명

立春-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정월(正月) > 1월 > 절기

집필자 강권용(康權用)
갱신일 2018-11-07

정의

입춘날 제주목(濟州牧) 관아 관덕정(觀德亭) 앞에서 심방의 굿을 통해 그해 농경(農耕)의 풍요를 기원하는 굿놀이.

유래

입춘굿은 ‘춘경(春耕)’ 또는 ‘입춘춘경(立春春耕)’이라 하며 ‘춘경친다’고 한다. 입춘굿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이원조(李源祚)가 제주방어사로 부임하여 헌종 7년(1841)에 쓴 『탐라록(耽羅錄)』 ‘입춘일념운(立春日拈韻)’에 있다. “24일 입춘날 호장은 관복을 갖추고 나무로 만든 소가 끄는 쟁기를 잡고 가면 양쪽에 어린 기생이 부채를 들고 흔든다. 이를 ‘소몰이’라 한다. 심방 무리들은 활기차게 북을 치며 앞에서 인도하는데 먼저 객사로부터 차례로 관덕정 마당으로 들어와서 ‘밭을 가는 모양’을 흉내 내었다. 이날은 본 관아에서 음식을 차려 대접하였다. 이것은 탐라왕이 ‘적전’하는 풍속이 이어져 내려온 것을 말한다(二十四日 立春 戶長具官服 執耒耟以木爲牛 兩兒妓左右執扇 謂之退牛 熱群巫擊鼓前導 先自客舍次入營庭 作耕田樣 其日自本府設饌以饋 是耽羅王籍田遺俗云).”고 하였다.

이 기록을 통해 민(民)을 대표하는 호장이 앞에 서면 제의를 주관하는 심방이 연희를 통해 흥을 돋우고 관에서는 장소와 음식을 제공하는 민·관(官)·무(巫)가 하나가 된 행사임을 알 수 있다. 이 입춘굿이 고대 탐라국 이후 이어져 왔다는 것은 제주도에서도 농사가 생업의 근본이었음을 의미한다.

내용

입춘굿을 위해 관덕정으로 들어가는 심방들은 서민들의 집에 들어가 쌓아둔 보릿단을 뽑아오게 하여 보릿단을 보고 농사의 실(實)·부실(不實)을 판단하였다고 한다. 입춘일이 늦겨울이기 때문에 얼마 자라지 않은 보리를 밭에서 여러 개 뽑아 생육상태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런 보릿점은 육지에서 보리뿌리의 튼실함을 파악하여 점을 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보릿점을 보고 관덕정 앞에서는 심방들의 탈놀이가 행해진다. 입춘굿 탈놀이는 무언극(無言劇)으로 배역에는 호장, 농부, 처, 첩, 새, 사냥꾼, 남편이 등장한다. 그 중 호장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탈을 쓰거나 변장을 하였으며 새는 색이 있는 날개를 하였다.

구성

탈놀이의 구성은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앞부분은 호장이 쟁기로 밭을 갈면 붉은 가면에 긴 수염을 한 농부가 오곡을 뿌린다. 그 뒤로 새가 날아와 씨를 주워 먹고 사냥꾼이 새를 쫓는 과정이다. 이는 농사의 모의과정으로 쟁기로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농사에 방해가 되는 병해충이나 풍수해를 씨를 쪼아 먹는 새로 상징하여 사냥꾼이 이를 쫓음으로써 수확이 많기를 기원하고 있다.

다음 부분으로 처와 첩이 등장하여 다투고 있으면 남편이 나타나 싸움을 말리는 장면이다. 이는 내륙 지역 탈놀이의 할미와 새색시의 싸움과 일맥상통한다. 이 싸움은 본토 여러 탈놀이에서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다. 입춘굿의 의도와 관련지어 추정한다면 젊음과 생명을 긍정하고 예찬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으며, 굿의 성격상 풍요와 관계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이 끝나면 심방들이 나와 풍요를 기원하는 비념을 하면서 굿을 끝낸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제주도의 농사풍요 기원의례의 한 모습으로 지금은 제주도에서 사라진 탈놀이가 심방들에 의해 행해졌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리고 민·관·무가 하나가 되어서 행해지는 독특한 의례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입춘굿놀이는 1999년부터 부분적으로 복원되어 제주시 관덕정 앞마당에서 행해지고 있다.

참고문헌

濟州道民俗: 歲時風俗 (진성기, 濟州民俗硏究所, 1969)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濟州道 篇 (文化財管理局, 1974)
제주도 무가본풀이사전 (秦聖麒, 민속원, 1991)
제주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제주무속학사전 (진성기, 제주민속연구소, 2004)

입춘굿

입춘굿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정월(正月) > 1월 > 절기

집필자 강권용(康權用)
갱신일 2018-11-07

정의

입춘날 제주목(濟州牧) 관아 관덕정(觀德亭) 앞에서 심방의 굿을 통해 그해 농경(農耕)의 풍요를 기원하는 굿놀이.

유래

입춘굿은 ‘춘경(春耕)’ 또는 ‘입춘춘경(立春春耕)’이라 하며 ‘춘경친다’고 한다. 입춘굿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이원조(李源祚)가 제주방어사로 부임하여 헌종 7년(1841)에 쓴 『탐라록(耽羅錄)』 ‘입춘일념운(立春日拈韻)’에 있다. “24일 입춘날 호장은 관복을 갖추고 나무로 만든 소가 끄는 쟁기를 잡고 가면 양쪽에 어린 기생이 부채를 들고 흔든다. 이를 ‘소몰이’라 한다. 심방 무리들은 활기차게 북을 치며 앞에서 인도하는데 먼저 객사로부터 차례로 관덕정 마당으로 들어와서 ‘밭을 가는 모양’을 흉내 내었다. 이날은 본 관아에서 음식을 차려 대접하였다. 이것은 탐라왕이 ‘적전’하는 풍속이 이어져 내려온 것을 말한다(二十四日 立春 戶長具官服 執耒耟以木爲牛 兩兒妓左右執扇 謂之退牛 熱群巫擊鼓前導 先自客舍次入營庭 作耕田樣 其日自本府設饌以饋 是耽羅王籍田遺俗云).”고 하였다. 이 기록을 통해 민(民)을 대표하는 호장이 앞에 서면 제의를 주관하는 심방이 연희를 통해 흥을 돋우고 관에서는 장소와 음식을 제공하는 민·관(官)·무(巫)가 하나가 된 행사임을 알 수 있다. 이 입춘굿이 고대 탐라국 이후 이어져 왔다는 것은 제주도에서도 농사가 생업의 근본이었음을 의미한다.

내용

입춘굿을 위해 관덕정으로 들어가는 심방들은 서민들의 집에 들어가 쌓아둔 보릿단을 뽑아오게 하여 보릿단을 보고 농사의 실(實)·부실(不實)을 판단하였다고 한다. 입춘일이 늦겨울이기 때문에 얼마 자라지 않은 보리를 밭에서 여러 개 뽑아 생육상태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런 보릿점은 육지에서 보리뿌리의 튼실함을 파악하여 점을 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보릿점을 보고 관덕정 앞에서는 심방들의 탈놀이가 행해진다. 입춘굿 탈놀이는 무언극(無言劇)으로 배역에는 호장, 농부, 처, 첩, 새, 사냥꾼, 남편이 등장한다. 그 중 호장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탈을 쓰거나 변장을 하였으며 새는 색이 있는 날개를 하였다.

구성

탈놀이의 구성은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앞부분은 호장이 쟁기로 밭을 갈면 붉은 가면에 긴 수염을 한 농부가 오곡을 뿌린다. 그 뒤로 새가 날아와 씨를 주워 먹고 사냥꾼이 새를 쫓는 과정이다. 이는 농사의 모의과정으로 쟁기로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농사에 방해가 되는 병해충이나 풍수해를 씨를 쪼아 먹는 새로 상징하여 사냥꾼이 이를 쫓음으로써 수확이 많기를 기원하고 있다. 다음 부분으로 처와 첩이 등장하여 다투고 있으면 남편이 나타나 싸움을 말리는 장면이다. 이는 내륙 지역 탈놀이의 할미와 새색시의 싸움과 일맥상통한다. 이 싸움은 본토 여러 탈놀이에서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다. 입춘굿의 의도와 관련지어 추정한다면 젊음과 생명을 긍정하고 예찬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으며, 굿의 성격상 풍요와 관계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이 끝나면 심방들이 나와 풍요를 기원하는 비념을 하면서 굿을 끝낸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제주도의 농사풍요 기원의례의 한 모습으로 지금은 제주도에서 사라진 탈놀이가 심방들에 의해 행해졌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리고 민·관·무가 하나가 되어서 행해지는 독특한 의례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입춘굿놀이는 1999년부터 부분적으로 복원되어 제주시 관덕정 앞마당에서 행해지고 있다.

참고문헌

濟州道民俗: 歲時風俗 (진성기, 濟州民俗硏究所, 1969)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濟州道 篇 (文化財管理局, 1974)제주도 무가본풀이사전 (秦聖麒, 민속원, 1991)제주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제주무속학사전 (진성기, 제주민속연구소,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