윷놀이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정월(正月) > 1월 > 놀이

집필자 박장영(朴長煐)
갱신일 2019-01-28

정의

정월 초하루에서 보름까지 윷이라는 놀이도구를 사용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어울려 즐기면서 노는 놀이. 사희(柶戱) 또는 척사희(擲柶戱)라고도 한다.

유래

윷놀이 유래에 대한 연구는 다각적으로 이루어졌으나 아직 그 정설은 없다. 부여의 관직명인 저가(猪加)·구가(狗加)·우가(牛加)·마가(馬加)·대사(大使)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하는 가설이 유력하다.

역사

윷놀이에 대해서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자료는 중국의 『북사(北史)』와 『태평어람(太平御覽)』인데 이 책에는 부여의 저포(樗蒲)·악삭(握槊) 등의 잡희(雜戱)가 소개되어 있다. 따라서 백제, 고구려, 신라에도 윷놀이가 전승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므로 윷놀이의 기원은 삼국시대 이전으로 소급될 수 있다.

고려말 『목은집(牧隱集)』에서 이색(李穡)은 저포를 세시풍속이라 하고 현재의 윷판과 같은 것으로 윷말을 써 가며 저포놀이를 하는데, 변화가 무궁하고 강약을 가릴 수 없는 이변도 생겨서 턱이 떨어질 지경으로 우습다고 하였다. 또 남녀노소가 어울려 윷놀이하는 광경을 그린 시(詩)도 있다.

최세진(崔世珍)의 『훈몽자회(訓蒙字會)』와 이수광(李晬光)의 『지봉유설(芝峯類說)』 에도 윷놀이에 대한 기록이 있고, 특히 김문표(金文豹)의 『중경지(中京誌)』 사도설조(柶圖說條)와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사희변증설조(柶戱辨證說條)에서는 주역과 성리학적인 견지에서 윷놀이를 논술하고 있다. 그리고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는 윷과 윷판뿐만 아니라 윷패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와 같이 윷놀이는 삼국시대 이전에 널리 전승되었고, 고려말 이전에 현행 윷판과 같은 것이 쓰이면서 시(詩)에 등장할 정도로 성행하였으며, 나아가서 조선조에는 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될 정도로 크게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내용

윷놀이는 윷과 윷판 및 윷말만 있으면 어디에서나 놀 수 있다. 이 간단한 도구가 준비되면 편을 갈라서 윷을 던져 나온 윷패에 따라 윷말을 써서 먼저 4동이 나면 승리한다. 매우 간단한 도구와 단순한 방법으로 놀이를 하지만 놀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변수들이 흥을 돋우기도 하고 탄식을 자아내기도 한다.

윷의 종류는 가락윷·밤윷·콩윷 등으로 구분된다. 가락윷은 장작윷과 싸리윷이 있다. 장작윷은 길이 20센티미터 정도에 직경 3~5센티미터 정도의 소나무 두 개를 쪼개어 만들고 싸리윷은 길이 10센티미터에 직경 2센티미터 가량의 싸리나무를 쪼개어 만든다. 가락윷은 대체로 중부지방에서 많이 가지고 논다. 밤윷은 굵기가 새끼손가락 정도, 길이는 3센티미터 정도 되는 윷을 종지에 담아 손으로 움켜쥐고 흔들어 바닥에 붓는 식으로 논다. 주로 경상도 등의 남부지방에서 많이 논다. 콩윷이나 팥윷은 콩이나 팥알의 절반을 쪼개어 만든 윷으로 주로 북부지방에서 많이 논다.

윷판이 언제 만들어져서 보편화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고려 말기 이색의 『목은집』에 현행의 윷판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고려말 이전에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김문표는 『중경지』 사도설조에서 윷판 중앙의 ‘방혀’는 북극성이고 윷판의 바깥까지 둥근 모양은 하늘을, 안의 모난 것은 땅을, 윷판을 이루는 점들은 별자리를 뜻한다고 했다. 그리고 윷판의 네 점과 중점을 오행에 견주어 설명하고 있다. 윷말이 윷판을 돌아 나오는 양상을 춘분(春分)·하지(夏至)·추분(秋分)·동지(冬至)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윷말은 일상생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하는데, 남자들은 주로 바둑알을 많이 이용하고 여자들은 숯이나 사금파리 등을 이용한다.

놀이방법

윷놀이를 할 때 편 구성은 아주 다양하게 할 수 있다. 크게는 마을 단위와 문중 단위로 편을 가르지만 개별 윷놀이는 아주 다양하게 편을 가를 수 있다. 편을 가를 때 윷을 던져서 편을 가르기도 하고 또 마을의 골목이나 도랑을 경계로 가르기도 한다. 개별 윷놀이나 문중 윷놀이를 할 때는 주로 나이순으로 윷을 던져서 편을 가르고, 마을 전체가 놀이를 할 때는 마을의 골목이나 도랑 등을 경계로 가른다. 간혹 지역에 따라 심지를 뽑아 편을 가르기도 한다.

마을 전체나 문중이 윷놀이를 할 때는 마을의 큰집이나 종가(宗家) 혹은 서원(書院) 마당에서 한다. 그러나 소수 인원이 윷놀이를 할 때에는 방이나 대청 등 적당한 공간만 있으면 놀 수 있다.

윷놀이를 할 장소가 결정되고 편을 가르면 바로 윷놀이가 시작된다. 먼저 윷을 던져서 선후의 차례를 정한다. 선후가 결정되면 상대편과 교대로 윷을 던져서 나오는 윷패에 따라 윷말을 써서 윷말 4동이 다 나면 이긴다.

윷말은 ‘참’에서 시작하여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간다. 놀이꾼이 윷을 던져서 나온 윷패에 따라 윷말을 쓰는데 윷말이 전진하다가 자기편이나 상대편의 윷말을 지나쳐 갈 수 있다. 이때 만약 자기편의 윷말이 있는 지점에 도착하면 두 윷말을 묶어서 한꺼번에 나아간다. 만약 윷말이 상대편 윷말이 있는 곳에 도달하면 그 윷말을 잡으며 윷을 한 번 더 던진다. 그러나 참에 있는 윷말을 잡았을 때는 한 번 더 던질 기회를 주지 않는다. 이와 같이 윷판에 윷말을 쓰는 데 다양한 규칙이 있어서 승부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뒤도나 자동임신, 퐁당 등의 변이 요소가 새로이 등장해서 승부에 더 큰 변수가 생긴다.

의미

윷패는 4개의 윷을 던져서 엎어지고 젖혀진 상황에 따라 도·개·걸·윷·모로 결정된다. 윷 3개가 엎어지고 1개가 젖혀진 것은 도라 하여 한 밭을 가고, 2개가 엎어지고 2개가 젖혀진 것은 개라 하여 두 밭을 가며, 1개가 엎어지고 3개가 젖혀진 것은 걸이라 하여 세 밭을 간다. 그리고 4개가 모두 젖혀진 것은 윷이라 하여 네 밭을 가고, 4개가 모두 엎어진 것은 모라 하여 다섯 밭을 간다. 윷과 모를 했을 때는 ‘사리’라 하여 한 번 더 던진다. 윷패에 따라 밭 수를 이렇게 계산하는 근거는 동물의 걸음걸이에서 찾는다. 도는 돼지, 개는 개, 걸은 양, 윷은 소, 모는 말을 상징하고 있다. 즉 가축의 크기와 빠르기에 따라 윷패의 밭 수와 윷말의 움직임이 결정된다.

윷놀이는 정월의 마을 축제로서 남녀노소 누구나 신명으로 놀이를 한다. 윷놀이는 재미로도 하지만 농경사회에서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소망이 담겨 있다. 윷판은 농토이고, 윷말은 놀이꾼이 윷을 던져 나온 윷패에 따라 움직이는 계절의 변화를 상징해 풍년을 가져오는 여겼다.

기능

윷놀이가 다른 놀이에 비해 승부의 재미가 특히 큰 것은 이 놀이가 가지는 우연성의 원리와 윷말을 쓰는 원리 때문이다. 또한 윷말을 쓰는 원리도 정해진 규칙을 따르면서 윷패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서로 잡고 잡히면서 승부를 겨룬다. 여기에는 무궁무진한 변화가 따르므로 놀이꾼과 응원꾼은 흥분과 탄식을 교차되는 가운데 놀이에 몰입되어 무아지경에 이른다. 이처럼 윷놀이는 윷패의 우연성과 윷말쓰기의 합리성이 윷판이란 한정된 공간에서 서로 작용하여 다양한 변수 속에서 승부를 가리기 때문에 독특한 재미가 있다. 이러한 재미는 승부와 직결되기 때문에 마지막 윷말이 갈 때 그 절정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민속놀이 중에서 집단놀이는 주로 지역이나 마을에 의해서 전승된다. 마을 단위로 전승되는 집단놀이는 마을 주민이 참여하여 마을의 안녕과 풍농(豊農)을 기원함으로써 마을공동체가 통합하게 된다. 윷놀이는 지연공동체와 혈연공동체를 통합시킨다.

우리 선조들은 윷판을 농토로 삼고 윷놀이를 통해 윷말을 돌려 계절을 변화시키면서 항구적인 풍년농사를 기원했다. 다시 말해서 이렇게 윷놀이를 하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윷놀이는 윷·윷판·윷말을 이용하여 흥겨운 놀이기도 하지만 윷을 가지고 하는 윷점도 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제석조(除夕條)와 『경도잡지(京都雜志)』 원일조(元日條), 『오주연문장전산고』 사희변증설조에도 새해의 길흉이나 농사에 대해서 점을 치곤했다는 기록이 있다.

변화

윷놀이는 오랜 세월 동안 전승되면서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 중의 하나가 윷패의 변화이다. 윷패는 도·개·걸·윷으로 일컬어지는 사진법 놀이에서 도·개·걸·윷·모로 일컬어지는 오진법 놀이로 바뀌었다. 그러나 지금은 뒤도가 하나 더 생겨나서 육진법의 놀이로 변화되었다.

뒤도란 윷 하나에 특정하게 표시하여 놀이를 할 때 이것 하나만 젖혀지면 도가 아니고 뒤도라 하여 윷말이 앞으로 한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뒤로 한밭 물러나게 된다. 따라서 윷패가 하나 더 생겨나고 윷말이 후진함으로 해서 많은 변수를 초래하여 더욱더 흥미를 자아낸다. 도 자리에 있던 윷말이 다음에 뒤도를 하면 한밭 후진하여 참으로 간다. 때로는 윷을 하여 마지막 동이 났지만 사리를 하면 한 번 더 노는 규칙에 따라 던져서 뒤도가 나면 참의 자리로 되돌아 와야 한다. 이로 인해서 승패가 뒤바뀌기도 한다. 이 뒤도의 등장은 산업화에 따라 나타나는 복잡한 사회상이나 가치관의 변화에 따른 투기심리가 반영된 것이다. 농경사회에 기반을 둔 윷놀이가 산업사회의 사회·문화에도 기능적으로 적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윷판의 변화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윷말이 윷판을 시계방향에서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간다. 사회·문화 변화에 따라 길이 바뀐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윷판에 자동임신·자동유산·퐁당 등이 등장했다. 윷판의 특정한 곳에 표시하여 여기에 다다르면 한 동 가던 것이 두 동이 되기도 하고, 한 동 가던 것이 죽기도 한다. 이는 윷판에 새로운 변이 요소가 등장한 것이다.

전자는 그 시대의 생활 양식과 사고 체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조선시대에 생활양식은 좌측이 우선이고 한자 문화의 영향으로 문서(文書)나 가사(歌辭) 등 모두 좌서(左書)로 썼다. 또 사고 체계도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이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뿌리 깊게 내려 있었다. 그러나 서양 문물의 도입으로 동양적 사고 체계가 서양적 사고 체계로 바뀌었다. 또한 신교육구국운동이 전개되면서 학교가 급격히 증가하여 한자기록시대에서 한글기록시대로 바뀌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회 변화가 윷말이 윷판을 돌아가는 길을 변화시킨 것이다.

자동임신은 뒤도라는 윷패의 등장과 마찬가지로 윷판에도 변화를 주어서 승부에 변수를 주고 놀이가 더욱 재미있도록 했다. 자동임신 밭에 가서 한 동이 두 동으로 횡재를 하지만 반드시 그 뒤에는 자동유산이나 퐁당 밭을 둠으로써 위험을 수반하도록 한다. 이러한 요소 등장은 뒤도의 등장과 마찬가지로 1970년대 이후 사회 병리적 현상이나 부동산 투기 심리 등이 반영된 결과이다.

윷과 윷말은 그 변화가 미약하다. 그것은 생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썼기 때문이다. 윷은 일반적으로 소나무나 싸리나무 대신에 쉽게 접할 수 있는 아카시아나무를 많이 이용하고, 또 공장에서 만든 제품도 나온다. 윷말도 마찬가지다. 생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단추나 동전 등이 많이 쓰인다.

산업화에 따라 마을공동체는 무너졌지만 강한 생명력을 지닌 윷놀이는 새로운 전승집단을 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도시문화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아파트에서 윷놀이가 행해지는 것이다. 물론 놀이꾼은 농민이 아닌 도시 근로자이다. 이들은 주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이나 계(契)모임, 동창회 등이다. 즉 특수 목적으로 모인 집단이다. 이처럼 윷놀이는 마을공동체를 중심으로 혈연·지연으로 구성되었던 풍농을 기원했던 놀이에서 이제는 특수 목적을 지닌 집단이 친목을 도모하는 놀이로 변해가고 있다.

지역사례

경북 안동에서는 윷놀이를 할 때 윷판과 윷말 없이 머리 속에 윷판을 그려 놓고 윷판의 명칭을 이용하여 윷말을 운영하는데 이를 ‘건궁윷말’이라고 한다. 따라서 마을 주민들은 윷판의 명칭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또 안동에는 저포송(摴蒲頌)과 채윷대풀이이라는 윷노래가 전승되고 있다. 이 노래는 도송(刀頌)·개송(介頌)·걸송(傑頌)·유송(由頌)·모송(毛頌)으로 이루어져 있다.

황해도 장연에서는 정월 대보름에 시절윷놀이를 한다. 대보름날 아침 ‘산패’와 ‘들패’로 나누고 각기 2~3명의 대표를 뽑아 수숫대로 만든 작은 윷을 가지고 시절윷놀이를 벌인다. 산패가 이기면 밭농사가, 들패가 이기면 논농사가 잘 되며 양쪽이 비슷한 점수를 얻으면 두 농사가 다 잘 되리라고 믿는다.

산윷(보습윷)은 평안도, 함경도에 분포되어 있는 놀이로 윷판과 윷말이 없이 노는 것이 특징이다. 산가지나 콩·팥 등을 늘어놓고 윷을 던져 나온 수대로 산가지나 콩·팥을 거두어 많이 차지하는 편이 이기는 놀이다.

의의

농경사회에 있어서 농사의 흉풍은 삶과 직결된다. 그래서 농한기인 겨울철에도 세시풍속을 통해 항구적인 풍년농사를 기원했다. 우리 조상들은 정월에 윷놀이를 통해 지연·혈연집단을 통합했을 뿐 아니라 풍년농사를 갈망했다. 윷놀이는 농경사회에 기반을 두고 전승되어 왔으나 산업사회에서도 기능적으로 적응하면서 왕성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참고문헌

東國歲時記, 牧隱先生文集, 五洲衍文長箋散稿, 訓蒙字會
윷놀이의 比較民俗的 考察 (成炳禧, 韓國民俗學23, 民俗學會, 1990)
安東民俗資料誌 (安東郡, 1981)
韓國農耕歲時의 硏究 (金宅圭, 嶺南大學校出版部, 1985)
민속문화론 (林在海, 學과 知性社, 1986)
윷놀이 俗 原形 再構를 위한 試論 (김인구, 어문논집26, 안암어문학회, 1986)
윷놀이의 이치와 민중적 세계관 (임재해, 安東文化硏究5, 安東文化硏究會, 1991)
安東地方의 윷놀이 硏究 (朴長煐,, 東大學校 碩士學位論文, 1992)

음원

윷놀이

윷놀이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정월(正月) > 1월 > 놀이

집필자 박장영(朴長煐)
갱신일 2019-01-28

정의

정월 초하루에서 보름까지 윷이라는 놀이도구를 사용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어울려 즐기면서 노는 놀이. 사희(柶戱) 또는 척사희(擲柶戱)라고도 한다.

유래

윷놀이 유래에 대한 연구는 다각적으로 이루어졌으나 아직 그 정설은 없다. 부여의 관직명인 저가(猪加)·구가(狗加)·우가(牛加)·마가(馬加)·대사(大使)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하는 가설이 유력하다.

역사

윷놀이에 대해서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자료는 중국의 『북사(北史)』와 『태평어람(太平御覽)』인데 이 책에는 부여의 저포(樗蒲)·악삭(握槊) 등의 잡희(雜戱)가 소개되어 있다. 따라서 백제, 고구려, 신라에도 윷놀이가 전승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므로 윷놀이의 기원은 삼국시대 이전으로 소급될 수 있다. 고려말 『목은집(牧隱集)』에서 이색(李穡)은 저포를 세시풍속이라 하고 현재의 윷판과 같은 것으로 윷말을 써 가며 저포놀이를 하는데, 변화가 무궁하고 강약을 가릴 수 없는 이변도 생겨서 턱이 떨어질 지경으로 우습다고 하였다. 또 남녀노소가 어울려 윷놀이하는 광경을 그린 시(詩)도 있다. 최세진(崔世珍)의 『훈몽자회(訓蒙字會)』와 이수광(李晬光)의 『지봉유설(芝峯類說)』 에도 윷놀이에 대한 기록이 있고, 특히 김문표(金文豹)의 『중경지(中京誌)』 사도설조(柶圖說條)와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사희변증설조(柶戱辨證說條)에서는 주역과 성리학적인 견지에서 윷놀이를 논술하고 있다. 그리고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는 윷과 윷판뿐만 아니라 윷패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와 같이 윷놀이는 삼국시대 이전에 널리 전승되었고, 고려말 이전에 현행 윷판과 같은 것이 쓰이면서 시(詩)에 등장할 정도로 성행하였으며, 나아가서 조선조에는 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될 정도로 크게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내용

윷놀이는 윷과 윷판 및 윷말만 있으면 어디에서나 놀 수 있다. 이 간단한 도구가 준비되면 편을 갈라서 윷을 던져 나온 윷패에 따라 윷말을 써서 먼저 4동이 나면 승리한다. 매우 간단한 도구와 단순한 방법으로 놀이를 하지만 놀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변수들이 흥을 돋우기도 하고 탄식을 자아내기도 한다. 윷의 종류는 가락윷·밤윷·콩윷 등으로 구분된다. 가락윷은 장작윷과 싸리윷이 있다. 장작윷은 길이 20센티미터 정도에 직경 3~5센티미터 정도의 소나무 두 개를 쪼개어 만들고 싸리윷은 길이 10센티미터에 직경 2센티미터 가량의 싸리나무를 쪼개어 만든다. 가락윷은 대체로 중부지방에서 많이 가지고 논다. 밤윷은 굵기가 새끼손가락 정도, 길이는 3센티미터 정도 되는 윷을 종지에 담아 손으로 움켜쥐고 흔들어 바닥에 붓는 식으로 논다. 주로 경상도 등의 남부지방에서 많이 논다. 콩윷이나 팥윷은 콩이나 팥알의 절반을 쪼개어 만든 윷으로 주로 북부지방에서 많이 논다. 윷판이 언제 만들어져서 보편화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고려 말기 이색의 『목은집』에 현행의 윷판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고려말 이전에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김문표는 『중경지』 사도설조에서 윷판 중앙의 ‘방혀’는 북극성이고 윷판의 바깥까지 둥근 모양은 하늘을, 안의 모난 것은 땅을, 윷판을 이루는 점들은 별자리를 뜻한다고 했다. 그리고 윷판의 네 점과 중점을 오행에 견주어 설명하고 있다. 윷말이 윷판을 돌아 나오는 양상을 춘분(春分)·하지(夏至)·추분(秋分)·동지(冬至)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윷말은 일상생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하는데, 남자들은 주로 바둑알을 많이 이용하고 여자들은 숯이나 사금파리 등을 이용한다.

놀이방법

윷놀이를 할 때 편 구성은 아주 다양하게 할 수 있다. 크게는 마을 단위와 문중 단위로 편을 가르지만 개별 윷놀이는 아주 다양하게 편을 가를 수 있다. 편을 가를 때 윷을 던져서 편을 가르기도 하고 또 마을의 골목이나 도랑을 경계로 가르기도 한다. 개별 윷놀이나 문중 윷놀이를 할 때는 주로 나이순으로 윷을 던져서 편을 가르고, 마을 전체가 놀이를 할 때는 마을의 골목이나 도랑 등을 경계로 가른다. 간혹 지역에 따라 심지를 뽑아 편을 가르기도 한다. 마을 전체나 문중이 윷놀이를 할 때는 마을의 큰집이나 종가(宗家) 혹은 서원(書院) 마당에서 한다. 그러나 소수 인원이 윷놀이를 할 때에는 방이나 대청 등 적당한 공간만 있으면 놀 수 있다. 윷놀이를 할 장소가 결정되고 편을 가르면 바로 윷놀이가 시작된다. 먼저 윷을 던져서 선후의 차례를 정한다. 선후가 결정되면 상대편과 교대로 윷을 던져서 나오는 윷패에 따라 윷말을 써서 윷말 4동이 다 나면 이긴다. 윷말은 ‘참’에서 시작하여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간다. 놀이꾼이 윷을 던져서 나온 윷패에 따라 윷말을 쓰는데 윷말이 전진하다가 자기편이나 상대편의 윷말을 지나쳐 갈 수 있다. 이때 만약 자기편의 윷말이 있는 지점에 도착하면 두 윷말을 묶어서 한꺼번에 나아간다. 만약 윷말이 상대편 윷말이 있는 곳에 도달하면 그 윷말을 잡으며 윷을 한 번 더 던진다. 그러나 참에 있는 윷말을 잡았을 때는 한 번 더 던질 기회를 주지 않는다. 이와 같이 윷판에 윷말을 쓰는 데 다양한 규칙이 있어서 승부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뒤도나 자동임신, 퐁당 등의 변이 요소가 새로이 등장해서 승부에 더 큰 변수가 생긴다.

의미

윷패는 4개의 윷을 던져서 엎어지고 젖혀진 상황에 따라 도·개·걸·윷·모로 결정된다. 윷 3개가 엎어지고 1개가 젖혀진 것은 도라 하여 한 밭을 가고, 2개가 엎어지고 2개가 젖혀진 것은 개라 하여 두 밭을 가며, 1개가 엎어지고 3개가 젖혀진 것은 걸이라 하여 세 밭을 간다. 그리고 4개가 모두 젖혀진 것은 윷이라 하여 네 밭을 가고, 4개가 모두 엎어진 것은 모라 하여 다섯 밭을 간다. 윷과 모를 했을 때는 ‘사리’라 하여 한 번 더 던진다. 윷패에 따라 밭 수를 이렇게 계산하는 근거는 동물의 걸음걸이에서 찾는다. 도는 돼지, 개는 개, 걸은 양, 윷은 소, 모는 말을 상징하고 있다. 즉 가축의 크기와 빠르기에 따라 윷패의 밭 수와 윷말의 움직임이 결정된다. 윷놀이는 정월의 마을 축제로서 남녀노소 누구나 신명으로 놀이를 한다. 윷놀이는 재미로도 하지만 농경사회에서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소망이 담겨 있다. 윷판은 농토이고, 윷말은 놀이꾼이 윷을 던져 나온 윷패에 따라 움직이는 계절의 변화를 상징해 풍년을 가져오는 여겼다.

기능

윷놀이가 다른 놀이에 비해 승부의 재미가 특히 큰 것은 이 놀이가 가지는 우연성의 원리와 윷말을 쓰는 원리 때문이다. 또한 윷말을 쓰는 원리도 정해진 규칙을 따르면서 윷패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서로 잡고 잡히면서 승부를 겨룬다. 여기에는 무궁무진한 변화가 따르므로 놀이꾼과 응원꾼은 흥분과 탄식을 교차되는 가운데 놀이에 몰입되어 무아지경에 이른다. 이처럼 윷놀이는 윷패의 우연성과 윷말쓰기의 합리성이 윷판이란 한정된 공간에서 서로 작용하여 다양한 변수 속에서 승부를 가리기 때문에 독특한 재미가 있다. 이러한 재미는 승부와 직결되기 때문에 마지막 윷말이 갈 때 그 절정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민속놀이 중에서 집단놀이는 주로 지역이나 마을에 의해서 전승된다. 마을 단위로 전승되는 집단놀이는 마을 주민이 참여하여 마을의 안녕과 풍농(豊農)을 기원함으로써 마을공동체가 통합하게 된다. 윷놀이는 지연공동체와 혈연공동체를 통합시킨다. 우리 선조들은 윷판을 농토로 삼고 윷놀이를 통해 윷말을 돌려 계절을 변화시키면서 항구적인 풍년농사를 기원했다. 다시 말해서 이렇게 윷놀이를 하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윷놀이는 윷·윷판·윷말을 이용하여 흥겨운 놀이기도 하지만 윷을 가지고 하는 윷점도 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제석조(除夕條)와 『경도잡지(京都雜志)』 원일조(元日條), 『오주연문장전산고』 사희변증설조에도 새해의 길흉이나 농사에 대해서 점을 치곤했다는 기록이 있다.

변화

윷놀이는 오랜 세월 동안 전승되면서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 중의 하나가 윷패의 변화이다. 윷패는 도·개·걸·윷으로 일컬어지는 사진법 놀이에서 도·개·걸·윷·모로 일컬어지는 오진법 놀이로 바뀌었다. 그러나 지금은 뒤도가 하나 더 생겨나서 육진법의 놀이로 변화되었다. 뒤도란 윷 하나에 특정하게 표시하여 놀이를 할 때 이것 하나만 젖혀지면 도가 아니고 뒤도라 하여 윷말이 앞으로 한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뒤로 한밭 물러나게 된다. 따라서 윷패가 하나 더 생겨나고 윷말이 후진함으로 해서 많은 변수를 초래하여 더욱더 흥미를 자아낸다. 도 자리에 있던 윷말이 다음에 뒤도를 하면 한밭 후진하여 참으로 간다. 때로는 윷을 하여 마지막 동이 났지만 사리를 하면 한 번 더 노는 규칙에 따라 던져서 뒤도가 나면 참의 자리로 되돌아 와야 한다. 이로 인해서 승패가 뒤바뀌기도 한다. 이 뒤도의 등장은 산업화에 따라 나타나는 복잡한 사회상이나 가치관의 변화에 따른 투기심리가 반영된 것이다. 농경사회에 기반을 둔 윷놀이가 산업사회의 사회·문화에도 기능적으로 적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윷판의 변화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윷말이 윷판을 시계방향에서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간다. 사회·문화 변화에 따라 길이 바뀐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윷판에 자동임신·자동유산·퐁당 등이 등장했다. 윷판의 특정한 곳에 표시하여 여기에 다다르면 한 동 가던 것이 두 동이 되기도 하고, 한 동 가던 것이 죽기도 한다. 이는 윷판에 새로운 변이 요소가 등장한 것이다. 전자는 그 시대의 생활 양식과 사고 체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조선시대에 생활양식은 좌측이 우선이고 한자 문화의 영향으로 문서(文書)나 가사(歌辭) 등 모두 좌서(左書)로 썼다. 또 사고 체계도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이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뿌리 깊게 내려 있었다. 그러나 서양 문물의 도입으로 동양적 사고 체계가 서양적 사고 체계로 바뀌었다. 또한 신교육구국운동이 전개되면서 학교가 급격히 증가하여 한자기록시대에서 한글기록시대로 바뀌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회 변화가 윷말이 윷판을 돌아가는 길을 변화시킨 것이다. 자동임신은 뒤도라는 윷패의 등장과 마찬가지로 윷판에도 변화를 주어서 승부에 변수를 주고 놀이가 더욱 재미있도록 했다. 자동임신 밭에 가서 한 동이 두 동으로 횡재를 하지만 반드시 그 뒤에는 자동유산이나 퐁당 밭을 둠으로써 위험을 수반하도록 한다. 이러한 요소 등장은 뒤도의 등장과 마찬가지로 1970년대 이후 사회 병리적 현상이나 부동산 투기 심리 등이 반영된 결과이다. 윷과 윷말은 그 변화가 미약하다. 그것은 생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썼기 때문이다. 윷은 일반적으로 소나무나 싸리나무 대신에 쉽게 접할 수 있는 아카시아나무를 많이 이용하고, 또 공장에서 만든 제품도 나온다. 윷말도 마찬가지다. 생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단추나 동전 등이 많이 쓰인다. 산업화에 따라 마을공동체는 무너졌지만 강한 생명력을 지닌 윷놀이는 새로운 전승집단을 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도시문화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아파트에서 윷놀이가 행해지는 것이다. 물론 놀이꾼은 농민이 아닌 도시 근로자이다. 이들은 주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이나 계(契)모임, 동창회 등이다. 즉 특수 목적으로 모인 집단이다. 이처럼 윷놀이는 마을공동체를 중심으로 혈연·지연으로 구성되었던 풍농을 기원했던 놀이에서 이제는 특수 목적을 지닌 집단이 친목을 도모하는 놀이로 변해가고 있다.

지역사례

경북 안동에서는 윷놀이를 할 때 윷판과 윷말 없이 머리 속에 윷판을 그려 놓고 윷판의 명칭을 이용하여 윷말을 운영하는데 이를 ‘건궁윷말’이라고 한다. 따라서 마을 주민들은 윷판의 명칭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또 안동에는 저포송(摴蒲頌)과 채윷대풀이이라는 윷노래가 전승되고 있다. 이 노래는 도송(刀頌)·개송(介頌)·걸송(傑頌)·유송(由頌)·모송(毛頌)으로 이루어져 있다. 황해도 장연에서는 정월 대보름에 시절윷놀이를 한다. 대보름날 아침 ‘산패’와 ‘들패’로 나누고 각기 2~3명의 대표를 뽑아 수숫대로 만든 작은 윷을 가지고 시절윷놀이를 벌인다. 산패가 이기면 밭농사가, 들패가 이기면 논농사가 잘 되며 양쪽이 비슷한 점수를 얻으면 두 농사가 다 잘 되리라고 믿는다. 산윷(보습윷)은 평안도, 함경도에 분포되어 있는 놀이로 윷판과 윷말이 없이 노는 것이 특징이다. 산가지나 콩·팥 등을 늘어놓고 윷을 던져 나온 수대로 산가지나 콩·팥을 거두어 많이 차지하는 편이 이기는 놀이다.

의의

농경사회에 있어서 농사의 흉풍은 삶과 직결된다. 그래서 농한기인 겨울철에도 세시풍속을 통해 항구적인 풍년농사를 기원했다. 우리 조상들은 정월에 윷놀이를 통해 지연·혈연집단을 통합했을 뿐 아니라 풍년농사를 갈망했다. 윷놀이는 농경사회에 기반을 두고 전승되어 왔으나 산업사회에서도 기능적으로 적응하면서 왕성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참고문헌

東國歲時記, 牧隱先生文集, 五洲衍文長箋散稿, 訓蒙字會윷놀이의 比較民俗的 考察 (成炳禧, 韓國民俗學23, 民俗學會, 1990)安東民俗資料誌 (安東郡, 1981)韓國農耕歲時의 硏究 (金宅圭, 嶺南大學校出版部, 1985)민속문화론 (林在海, 學과 知性社, 1986)윷놀이 俗 原形 再構를 위한 試論 (김인구, 어문논집26, 안암어문학회, 1986)윷놀이의 이치와 민중적 세계관 (임재해, 安東文化硏究5, 安東文化硏究會, 1991)安東地方의 윷놀이 硏究 (朴長煐,, 東大學校 碩士學位論文,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