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룡쟁주놀이

한자명

五龍爭珠-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가을(秋) > 9월 > 놀이

집필자 강성복(姜成福)
갱신일 2018-11-19

정의

충청남도 천안에서 각 동(洞)의 지세(地勢)에 얽힌 설화를 바탕으로 구성한 축제 형식의 놀이. 이 놀이는 천안이 오룡쟁주(五龍爭珠) 형국(形局)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다섯 마리 용이 여의주를 차지하기 위하여 자웅(雌雄)을 겨루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유래

오룡쟁주놀이의 유래는 서기 936년 9월 후백제의 신검(神劍)과 용검(龍劍)설화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치기 위해 8만 7천여 명의 대군을 이끌고 천안에 주둔했을 때, 이 지역이 하나의 여의주를 놓고 다섯 마리 용이 싸우는 지세임을 알아냈다. 이후부터 천안은 오룡쟁주의 지세라고 불렸으며 오룡쟁주놀이의 기원 역시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유래담은 놀이의 역사성을 왕건과 연계시키기 위한 허구일 뿐이다. 천안이 오룡쟁주 혹은 구룡쟁주의 지세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왕건과는 무관하게 근래에 향토사가들이 명명한 풍수상의 용어인 것이다. 더군다나 이 놀이는 오랜 역사성을 지닌 전승놀이가 아니라 30여 년 전에 천안시민의 화합을 도모할 목적으로 연출된 것이다. 증언에 따르면 1970년대 후반에 천안의 향토사가였던 고(故) 오수창 선생이 천안의 지리적 특징과 왕건 설화를 배경으로 오룡쟁주놀이를 창안하여 시민의 날 행사에 선을 보인 것이 그 효시라고 한다. 당시 천안여상 학생들이 이 작품에 출연한 바 있으며, 이후 2~3년간 천안시의 문화체육 행사에서 연출되었으나 별다른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채 중단되었다.

내용

오룡쟁주놀이에 등장하는 다섯 마리 용은 동청룡, 남적룡, 서백룡, 북흑룡, 중앙황룡으로 오행(五行)의 원리에 따른 것이다. 이를 천안의 지세에 적용하면, 남산은 여의주를 뜻하고, 동청룡은 장대산, 서백룡은 일봉산, 남적룡은 청수동의 수도산, 북흑룡은 천안초등학교의 정봉을 각각 일컫는다. 그리고 중앙의 황룡은 지금의 천안시청에서 중앙초등학교로 뻗은 산맥을 지칭한다.

이러한 지세에 착안하여 남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마을이 오룡(五龍)에 비정되어 여의주를 다툰다. 경쾌한 농악에 맞춰 놀이가 시작되면 다섯 마리 용들은 붉은색 여의주를 차지하기 위해 입에서 불을 내뿜고 몸과 꼬리를 마구 흔들면서 치열하게 싸움을 벌인다. 오룡의 다툼이 점점 격해지면 구경하는 주민들도 자기 마을의 용이 여의주를 빼앗도록 응원에 열을 올리는데, 그 함성과 풍물소리가 함께 어우러져 바야흐로 오룡쟁주놀이는 절정에 이른다. 이렇게 몇 차례의 세찬 싸움 끝에 상처를 입었거나 지쳐버린 용은 모두 그 자리에 쓰러지고, 오직 쟁탈전에서 이긴 최후의 용 한 마리가 여의주를 입에 물고 당당하게 운동장을 돌며 승리를 과시한다.

참고문헌

내고장 전통가꾸기 (천안시, 1981)
한국민속대사전2 (한국민속사전편찬위원회, 민족문화사, 1991)
충남의 민속예술 (한상수, 충청남도, 1995)

오룡쟁주놀이

오룡쟁주놀이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가을(秋) > 9월 > 놀이

집필자 강성복(姜成福)
갱신일 2018-11-19

정의

충청남도 천안에서 각 동(洞)의 지세(地勢)에 얽힌 설화를 바탕으로 구성한 축제 형식의 놀이. 이 놀이는 천안이 오룡쟁주(五龍爭珠) 형국(形局)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다섯 마리 용이 여의주를 차지하기 위하여 자웅(雌雄)을 겨루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유래

오룡쟁주놀이의 유래는 서기 936년 9월 후백제의 신검(神劍)과 용검(龍劍)설화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치기 위해 8만 7천여 명의 대군을 이끌고 천안에 주둔했을 때, 이 지역이 하나의 여의주를 놓고 다섯 마리 용이 싸우는 지세임을 알아냈다. 이후부터 천안은 오룡쟁주의 지세라고 불렸으며 오룡쟁주놀이의 기원 역시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유래담은 놀이의 역사성을 왕건과 연계시키기 위한 허구일 뿐이다. 천안이 오룡쟁주 혹은 구룡쟁주의 지세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왕건과는 무관하게 근래에 향토사가들이 명명한 풍수상의 용어인 것이다. 더군다나 이 놀이는 오랜 역사성을 지닌 전승놀이가 아니라 30여 년 전에 천안시민의 화합을 도모할 목적으로 연출된 것이다. 증언에 따르면 1970년대 후반에 천안의 향토사가였던 고(故) 오수창 선생이 천안의 지리적 특징과 왕건 설화를 배경으로 오룡쟁주놀이를 창안하여 시민의 날 행사에 선을 보인 것이 그 효시라고 한다. 당시 천안여상 학생들이 이 작품에 출연한 바 있으며, 이후 2~3년간 천안시의 문화체육 행사에서 연출되었으나 별다른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채 중단되었다.

내용

오룡쟁주놀이에 등장하는 다섯 마리 용은 동청룡, 남적룡, 서백룡, 북흑룡, 중앙황룡으로 오행(五行)의 원리에 따른 것이다. 이를 천안의 지세에 적용하면, 남산은 여의주를 뜻하고, 동청룡은 장대산, 서백룡은 일봉산, 남적룡은 청수동의 수도산, 북흑룡은 천안초등학교의 정봉을 각각 일컫는다. 그리고 중앙의 황룡은 지금의 천안시청에서 중앙초등학교로 뻗은 산맥을 지칭한다. 이러한 지세에 착안하여 남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마을이 오룡(五龍)에 비정되어 여의주를 다툰다. 경쾌한 농악에 맞춰 놀이가 시작되면 다섯 마리 용들은 붉은색 여의주를 차지하기 위해 입에서 불을 내뿜고 몸과 꼬리를 마구 흔들면서 치열하게 싸움을 벌인다. 오룡의 다툼이 점점 격해지면 구경하는 주민들도 자기 마을의 용이 여의주를 빼앗도록 응원에 열을 올리는데, 그 함성과 풍물소리가 함께 어우러져 바야흐로 오룡쟁주놀이는 절정에 이른다. 이렇게 몇 차례의 세찬 싸움 끝에 상처를 입었거나 지쳐버린 용은 모두 그 자리에 쓰러지고, 오직 쟁탈전에서 이긴 최후의 용 한 마리가 여의주를 입에 물고 당당하게 운동장을 돌며 승리를 과시한다.

참고문헌

내고장 전통가꾸기 (천안시, 1981)한국민속대사전2 (한국민속사전편찬위원회, 민족문화사, 1991)충남의 민속예술 (한상수, 충청남도,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