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백중놀이

한자명

連山百中-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가을(秋) > 7월 > 정일

집필자 강성복(姜成福)
갱신일 2018-11-19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서 매년 음력 7월 15일 백중에 전승되는 민속놀이. 본래 논산시 두마면(계룡시) 왕대리를 중심으로 하는 열두 두레의 ‘합두레먹이’로 전승되었던 놀이인데, 1989년에 연산백중놀이로 새롭게 복원되었다. 1991년에는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되었다.

유래

연산백중(連山百中)놀이는 조선 성종 때 좌의정을 지낸 서석(瑞石) 김국광(金國光)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시작되었다. 곧, 그의 생가가 있는 왕대리와 주변 마을이 해마다 김매기를 마치고 백중날 김국광의 묘를 참배한 후에 한바탕 난장을 벌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김국광의 후예인 광산 김씨들이 이웃한 연산 일대로 이주하면서 연산 장터에 모여 백중놀이를 거행하기도 했다.

촌로들의 말에 따르면, 이 행사가 성황을 이루었던 시절에는 전국의 한량과 온갖 장사꾼들 그리고 구경꾼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이날 김국광의 묘소가 위치한 왕대리는 좌상마을이라 하여 용기(龍旗)를 갖추고 각 동리의 두레패를 통솔하여 백중놀이를 주관했다. 뿐만 아니라 광산 김씨 집안에서는 술과 안주를 푸짐하게 장만하여 잔치를 베풀었다고 하며, 그런 연유로 백중놀이를 마친 뒤에는 간장, 된장조차 바닥이 났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문화말살정책이 극에 달하면서 대규모의 백중놀이는 1942년을 끝으로 중단되었다. 이후 까마득하게 잊혀졌던 이 놀이는 마지막 행사에 참여했던 주민들의 고증을 토대로 1989년 발굴, 재연되었으며, 그해 제3회 놀뫼향토제에서 시연을 펼쳐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 제주도에서 열린 제3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충남 대표로 출연하여 종합우수상인 국무총리상을 수상했고, 1991년 7월 9일에는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되었다. 이를 계승하기 위해 충남 논산시 연산면 고양리, 표정리, 관동리, 백석리 주민들이 전승보존위원회를 결성하여 1992년부터 매년 백중절에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내용

연산백중놀이는 각 마을 간의 상견례 의식인 기세배농신제, 제액초복(除厄招福)을 기원하는 액막이굿을 비롯한 머슴놀이, 용기놀이, 오방진굿 등으로 구성된다.

백중날 아침이 되면 각 마을의 두레꾼들은 영기(令旗)와 농기(農旗), 용기(龍旗)를 앞세우고 흥겹게 길군악을 울리며 좌상기가 있는 왕대리로 향한다. 이때 주민들은 각자 호미, 삽, 낫 같은 농기구를 지참하고, 동리별로 짚 몇 단씩을 지게에 짊어지고 청황등(靑皇燈)을 준비하여 장사진을 친다. 이날 행사에는 두마면에 속한 동리는 거의 다 참석하는 것이 관례였다. 심지어 이웃한 연산면과 벌곡면 일부 마을도 10여 리 길을 마다 않고 왔기에 동참하는 농기의 수가 무려 12~16개를 헤아렸다. 이와 같이 각 마을이 풍물을 대동하고 깃발을 펄럭이며 집결하는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백중놀이가 열렸던 장소는 왕대리 재실말로 김국광의 묘역 주변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에 매우 넓은 공터가 마련되어 있었다. 또 그 언저리에는 해묵은 느티나무 두 그루가 서 있어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각 마을의 두레패들은 속속 현장에 도착해 쌍룡(雙龍)이 그려진 왕대리 좌상기 앞에 한 줄로 선다. 이윽고 공원의 지시에 따라 한 마을씩 차례로 좌상기를 향해 기세배를 올린다. 그러면 좌상기는 답례로 아우두레 농기의 꿩장목 밑에 흰색 수건을 매달아준다. 기세배는 열두 두레 사이의 서열을 확인하고 일체감을 다지는 의식으로서 백중놀이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다.

기세배를 마치면 짚단으로 기둥을 만들어 세우고 왼새끼로 묶는다. 그리고 무당의 신장대와 흡사하게 생긴 농신대에 오곡주머니 4개를 매달아서 짚기둥의 중간에 꽂는다. 농신대 앞에 제물이 진설되면 각 마을의 좌상이 제관이 되어 제를 지낸다. 농신제는 국태민안(國泰民安)과 세화연풍(歲和年豊)을 축원하는 의례인데, 그 순서는 총좌상이 헌작(獻爵), 재배(再拜)한 뒤 축문을 낭독하는 것으로 간략하게 진행된다. 곧이어 모든 액운을 소멸시킨다는 의미로 농신대에 불을 지펴 태운다. 이때 각 마을의 두레패들은 신명나게 풍물을 울리면서 고사덕담으로 액운이 없기를 축원하는 액막이굿을 한다.

액막이굿이 끝나면 상벌을 논하여 평소 부모에게 불효한 사람은 쌍룡기(雙龍旗)에 묶어서 벌을 준다. 그리고 그해 농사를 가장 잘 지은 머슴을 동리별로 한 사람씩 뽑는다. 선정된 머슴은 좌상이 백미 7말씩을 상금으로 주고 소 등에 태워 장원례(壯元禮)를 행한다. 혹 소가 없는 경우에는 농군들이 무동을 태우고 선소리꾼의 구성진 노랫가락을 따라 부르며 행진한다. 바야흐로 장단에 맞춰 농군들과 아낙네들은 호미, 삽, 낫을 들고 지게춤을 추며 머슴놀이를 시작한다. 이때 선소리꾼이 다음과 같이 소리를 메기면 주민들은 “어럴럴 상사뒤여”로 후렴을 반복한다.

계 룡 산 정기받아 왕 대 가 생겼도다
한 듬 산 정기받아 은 동 이 생겼도다
산 재 산 정기받아 선 바 위 생겼도다
우 왕 산 정기받아 팥 거 리 생겼도다
천 마 산 정기받아 구 로 실 생겼도다
하 늘 이 도왔도다 산 신 이 도왔도다
국태민안 공주개명 연산골이 복을받고
일년이라 열 두 달 과년이라 열 석 달
왕대동리 복을받고 은동거리 복을받고
선 바 위 복을받고 팥거리도 복을받고
구로실도 복을받고 너도나도 복을받고
연 년 이 풍년들고 우리동리 풍년들고
7월 이라 백중날은 우리동리 명절일세
조상님께 감사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머슴살이 슬퍼마라 부귀영화 안부럽다
우리동리 세세풍년 들판에도 황금풍년
밭골에도 오곡풍년 동리사람 인심풍년
우리동리 백중놀이 세세토록 복을받자
만세만세 만 만 세 우리동리 만 만 세

머슴놀이의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면 그때까지 구경만 하고 있던 양반들도 신바람이 나서 덩실덩실 양반춤을 추며 놀이판에 합세한다. 이어서 백중놀이의 대미를 장식하는 용기놀이, 쩍지기굿, 칠채굿, 청황등놀이, 두레굿, 오방진굿이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지고, 행사에 참석한 주민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풍물소리에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추고 환호성을 지르며 절정에 휩싸인다.

의의

연산백중놀이는 충남지방 두레먹이(호미씻이)의 특징이 잘 녹아 있는 대동놀이이자 지역축제이다. 흔히 두레먹이는 자연마을 단위로 베풀어지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여덟두레 또는 열두두레라 하여 동맹을 맺은 여러 마을이 한자리에 모여 합두레먹이를 하기도 한다. 이를 위해 논매기가 끝난 칠석이나 백중 무렵에 날을 잡고 난장을 터서 흐드러지게 하루를 놀았다. 가령 충남 논산시 노성면의 칠형제 두레먹이나, 공주시 반포면 여덟 두레 두레먹이, 계룡면 열두 대징이 풍장놀이는 좋은 예가 된다. 그 중에서도 왕대리에서 전승되었던 백중놀이는 행사의 규모나 내용으로 볼 때 이 지역 두레먹이의 대표성을 획득할 만한 역동적인 축제였다. 이를 통해 구성원들은 강한 유대감과 자긍심을 높이고 더불어 사는 훈훈한 공동체 의식을 다져왔던 것이다.

참고문헌

論山의 民俗 (論山文化院, 1992)
한국의 두레 (국립민속박물관, 1994)
論山郡誌 (論山郡誌編纂委員會, 1994)
충남의 민속예술 (한상수, 충청남도, 1995)
한국의 지역축제 (문화체육부, 1996)
공주의 두레 (이걸재, 공주문화원, 2001)
고청봉 정기받은 마을 공암리 (공암리지편찬위원회, 2005)

연산백중놀이

연산백중놀이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가을(秋) > 7월 > 정일

집필자 강성복(姜成福)
갱신일 2018-11-19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서 매년 음력 7월 15일 백중에 전승되는 민속놀이. 본래 논산시 두마면(계룡시) 왕대리를 중심으로 하는 열두 두레의 ‘합두레먹이’로 전승되었던 놀이인데, 1989년에 연산백중놀이로 새롭게 복원되었다. 1991년에는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되었다.

유래

연산백중(連山百中)놀이는 조선 성종 때 좌의정을 지낸 서석(瑞石) 김국광(金國光)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시작되었다. 곧, 그의 생가가 있는 왕대리와 주변 마을이 해마다 김매기를 마치고 백중날 김국광의 묘를 참배한 후에 한바탕 난장을 벌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김국광의 후예인 광산 김씨들이 이웃한 연산 일대로 이주하면서 연산 장터에 모여 백중놀이를 거행하기도 했다. 촌로들의 말에 따르면, 이 행사가 성황을 이루었던 시절에는 전국의 한량과 온갖 장사꾼들 그리고 구경꾼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이날 김국광의 묘소가 위치한 왕대리는 좌상마을이라 하여 용기(龍旗)를 갖추고 각 동리의 두레패를 통솔하여 백중놀이를 주관했다. 뿐만 아니라 광산 김씨 집안에서는 술과 안주를 푸짐하게 장만하여 잔치를 베풀었다고 하며, 그런 연유로 백중놀이를 마친 뒤에는 간장, 된장조차 바닥이 났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문화말살정책이 극에 달하면서 대규모의 백중놀이는 1942년을 끝으로 중단되었다. 이후 까마득하게 잊혀졌던 이 놀이는 마지막 행사에 참여했던 주민들의 고증을 토대로 1989년 발굴, 재연되었으며, 그해 제3회 놀뫼향토제에서 시연을 펼쳐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 제주도에서 열린 제3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충남 대표로 출연하여 종합우수상인 국무총리상을 수상했고, 1991년 7월 9일에는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되었다. 이를 계승하기 위해 충남 논산시 연산면 고양리, 표정리, 관동리, 백석리 주민들이 전승보존위원회를 결성하여 1992년부터 매년 백중절에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내용

연산백중놀이는 각 마을 간의 상견례 의식인 기세배와 농신제, 제액초복(除厄招福)을 기원하는 액막이굿을 비롯한 머슴놀이, 용기놀이, 오방진굿 등으로 구성된다. 백중날 아침이 되면 각 마을의 두레꾼들은 영기(令旗)와 농기(農旗), 용기(龍旗)를 앞세우고 흥겹게 길군악을 울리며 좌상기가 있는 왕대리로 향한다. 이때 주민들은 각자 호미, 삽, 낫 같은 농기구를 지참하고, 동리별로 짚 몇 단씩을 지게에 짊어지고 청황등(靑皇燈)을 준비하여 장사진을 친다. 이날 행사에는 두마면에 속한 동리는 거의 다 참석하는 것이 관례였다. 심지어 이웃한 연산면과 벌곡면 일부 마을도 10여 리 길을 마다 않고 왔기에 동참하는 농기의 수가 무려 12~16개를 헤아렸다. 이와 같이 각 마을이 풍물을 대동하고 깃발을 펄럭이며 집결하는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백중놀이가 열렸던 장소는 왕대리 재실말로 김국광의 묘역 주변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에 매우 넓은 공터가 마련되어 있었다. 또 그 언저리에는 해묵은 느티나무 두 그루가 서 있어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각 마을의 두레패들은 속속 현장에 도착해 쌍룡(雙龍)이 그려진 왕대리 좌상기 앞에 한 줄로 선다. 이윽고 공원의 지시에 따라 한 마을씩 차례로 좌상기를 향해 기세배를 올린다. 그러면 좌상기는 답례로 아우두레 농기의 꿩장목 밑에 흰색 수건을 매달아준다. 기세배는 열두 두레 사이의 서열을 확인하고 일체감을 다지는 의식으로서 백중놀이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다. 기세배를 마치면 짚단으로 기둥을 만들어 세우고 왼새끼로 묶는다. 그리고 무당의 신장대와 흡사하게 생긴 농신대에 오곡주머니 4개를 매달아서 짚기둥의 중간에 꽂는다. 농신대 앞에 제물이 진설되면 각 마을의 좌상이 제관이 되어 제를 지낸다. 농신제는 국태민안(國泰民安)과 세화연풍(歲和年豊)을 축원하는 의례인데, 그 순서는 총좌상이 헌작(獻爵), 재배(再拜)한 뒤 축문을 낭독하는 것으로 간략하게 진행된다. 곧이어 모든 액운을 소멸시킨다는 의미로 농신대에 불을 지펴 태운다. 이때 각 마을의 두레패들은 신명나게 풍물을 울리면서 고사덕담으로 액운이 없기를 축원하는 액막이굿을 한다. 액막이굿이 끝나면 상벌을 논하여 평소 부모에게 불효한 사람은 쌍룡기(雙龍旗)에 묶어서 벌을 준다. 그리고 그해 농사를 가장 잘 지은 머슴을 동리별로 한 사람씩 뽑는다. 선정된 머슴은 좌상이 백미 7말씩을 상금으로 주고 소 등에 태워 장원례(壯元禮)를 행한다. 혹 소가 없는 경우에는 농군들이 무동을 태우고 선소리꾼의 구성진 노랫가락을 따라 부르며 행진한다. 바야흐로 장단에 맞춰 농군들과 아낙네들은 호미, 삽, 낫을 들고 지게춤을 추며 머슴놀이를 시작한다. 이때 선소리꾼이 다음과 같이 소리를 메기면 주민들은 “어럴럴 상사뒤여”로 후렴을 반복한다. 계 룡 산 정기받아 왕 대 가 생겼도다한 듬 산 정기받아 은 동 이 생겼도다산 재 산 정기받아 선 바 위 생겼도다우 왕 산 정기받아 팥 거 리 생겼도다천 마 산 정기받아 구 로 실 생겼도다하 늘 이 도왔도다 산 신 이 도왔도다국태민안 공주개명 연산골이 복을받고일년이라 열 두 달 과년이라 열 석 달왕대동리 복을받고 은동거리 복을받고선 바 위 복을받고 팥거리도 복을받고구로실도 복을받고 너도나도 복을받고연 년 이 풍년들고 우리동리 풍년들고7월 이라 백중날은 우리동리 명절일세조상님께 감사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머슴살이 슬퍼마라 부귀영화 안부럽다우리동리 세세풍년 들판에도 황금풍년밭골에도 오곡풍년 동리사람 인심풍년우리동리 백중놀이 세세토록 복을받자만세만세 만 만 세 우리동리 만 만 세 머슴놀이의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면 그때까지 구경만 하고 있던 양반들도 신바람이 나서 덩실덩실 양반춤을 추며 놀이판에 합세한다. 이어서 백중놀이의 대미를 장식하는 용기놀이, 쩍지기굿, 칠채굿, 청황등놀이, 두레굿, 오방진굿이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지고, 행사에 참석한 주민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풍물소리에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추고 환호성을 지르며 절정에 휩싸인다.

의의

연산백중놀이는 충남지방 두레먹이(호미씻이)의 특징이 잘 녹아 있는 대동놀이이자 지역축제이다. 흔히 두레먹이는 자연마을 단위로 베풀어지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여덟두레 또는 열두두레라 하여 동맹을 맺은 여러 마을이 한자리에 모여 합두레먹이를 하기도 한다. 이를 위해 논매기가 끝난 칠석이나 백중 무렵에 날을 잡고 난장을 터서 흐드러지게 하루를 놀았다. 가령 충남 논산시 노성면의 칠형제 두레먹이나, 공주시 반포면 여덟 두레 두레먹이, 계룡면 열두 대징이 풍장놀이는 좋은 예가 된다. 그 중에서도 왕대리에서 전승되었던 백중놀이는 행사의 규모나 내용으로 볼 때 이 지역 두레먹이의 대표성을 획득할 만한 역동적인 축제였다. 이를 통해 구성원들은 강한 유대감과 자긍심을 높이고 더불어 사는 훈훈한 공동체 의식을 다져왔던 것이다.

참고문헌

論山의 民俗 (論山文化院, 1992)한국의 두레 (국립민속박물관, 1994)論山郡誌 (論山郡誌編纂委員會, 1994)충남의 민속예술 (한상수, 충청남도, 1995)한국의 지역축제 (문화체육부, 1996)공주의 두레 (이걸재, 공주문화원, 2001)고청봉 정기받은 마을 공암리 (공암리지편찬위원회,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