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내봉화제

한자명

­烽火祭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봄(春) > 2월 > 양력세시

집필자 강성복(姜成福)
갱신일 2018-11-09

정의

1919년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아우내 장터에서 일어났던 독립만세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해마다 2월 28일에 열리는 지역 축제. 3·1절을 기념하는 행사이므로 흔히 ‘아우내 3·1절 기념 봉화제’라고 한다.

유래

아우내 장터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 31일(음력 2월 28일) 아우내와 가까운 매봉산과 인근의 24개소에 봉화를 올려 다음날 예정된 거사를 알림으로써 시작했다. 이 운동은 4월 1일 수천 명의 군중들이 아우내 장터에 모여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하다가 현장에서 18명이 피살되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항일 의거이다.

이날 시위를 주도한 유관순(1904~1920)은 일본 헌병의 무자비한 총칼에 부모를 잃었고, 함께 시위를 이끌었던 오빠인 관옥은 공주 감옥에 투옥되었다. 유관순 역시 주동자로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으나 끝내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법정에서 일제의 조선 침략을 규탄하고 일본 법률과 그 하수인들에게 재판받는 것이 부당함을 역설하였다. 이에 법정모욕죄까지 가산되어 징역 7년을 언도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유관순은 옥중에서도 이신애, 어윤희들과 만세를 외치며 불굴의 정신으로 항일투쟁을 계속하다가 1920년 17세의 나이로 온갖 고문을 받던 끝에 순국했다. 당시 유관순의 시신은 여섯 토막으로 참살된 처참한 모습이어서 수의를 입힐 수조차 없었다고 한다.

1945년 조국이 광복을 맞이한 뒤에는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가 결성되었으며, 1969년부터 1973년까지 생가가 복원되고 제향을 위한 사우(祠宇)가 설립되었다. 또 봉화를 올렸던 매봉산 정상에는 봉화대가 설치되고, 유관순 동상이 건립되었다. 1990년 4월에는 열사의 가묘(假墓)가 봉안되어 구천에 떠돌던 영혼이 편히 잠들게 되었고, 매봉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완성됨으로써 사적지가 완비되었다.

내용

아우내봉화제는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를 비롯한 병천면 주민들의 오랜 여망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그동안 아우내 장터의 만세운동을 기리는 행사가 없음을 안타깝게 여겨오던 중, 1978년 3·1절을 맞이하여 지역 주민들이 주체가 된 제1회 아우내 봉화제가 닻을 올렸다. 2005년 2월 28일로 27회를 맞이한 이 행사는 횃불집회를 재현함으로써 열사들의 애국정신과 아우내 장터에 울려퍼졌던 그 날의 함성을 되새긴다. 행사의 주최와 주관은 아우내봉화제추진위원회와 병천청년회의소에서 맡고 있으며, 주요 내용은 횃불 점화, 횃불 시위, 봉화대 점화, 불꽃놀이, 비문 낭독, 선언문 낭독으로 구성된다. 2005년 아우내 봉화제의 경우 식전행사로 풍선아트 소공연, 퀴즈(천안 지역 고교 및 대학팀), 테마 공연으로 ‘민족의 태동 단군’, ‘강성한 조국 고구려’, ‘시련과 극복 유관순 열사’의 4부작이 선보였다. 그리고 오후 7시에는 사적관리소 광장에서 개회식을 가진 데 이어, 아우내 장터 횃불 시위와 일본 헌병대와의 충돌 그리고 헌병분소 전소 장면이 재현되었다.

참고문헌

天安市誌 (천안시지편찬위원회, 1987)
천안의 향토축제 (천안문화원, 1997)
아우내 봉화제 자료 (병천청년회의소, 2005)

아우내봉화제

아우내봉화제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봄(春) > 2월 > 양력세시

집필자 강성복(姜成福)
갱신일 2018-11-09

정의

1919년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아우내 장터에서 일어났던 독립만세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해마다 2월 28일에 열리는 지역 축제. 3·1절을 기념하는 행사이므로 흔히 ‘아우내 3·1절 기념 봉화제’라고 한다.

유래

아우내 장터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 31일(음력 2월 28일) 아우내와 가까운 매봉산과 인근의 24개소에 봉화를 올려 다음날 예정된 거사를 알림으로써 시작했다. 이 운동은 4월 1일 수천 명의 군중들이 아우내 장터에 모여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하다가 현장에서 18명이 피살되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항일 의거이다. 이날 시위를 주도한 유관순(1904~1920)은 일본 헌병의 무자비한 총칼에 부모를 잃었고, 함께 시위를 이끌었던 오빠인 관옥은 공주 감옥에 투옥되었다. 유관순 역시 주동자로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으나 끝내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법정에서 일제의 조선 침략을 규탄하고 일본 법률과 그 하수인들에게 재판받는 것이 부당함을 역설하였다. 이에 법정모욕죄까지 가산되어 징역 7년을 언도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유관순은 옥중에서도 이신애, 어윤희들과 만세를 외치며 불굴의 정신으로 항일투쟁을 계속하다가 1920년 17세의 나이로 온갖 고문을 받던 끝에 순국했다. 당시 유관순의 시신은 여섯 토막으로 참살된 처참한 모습이어서 수의를 입힐 수조차 없었다고 한다. 1945년 조국이 광복을 맞이한 뒤에는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가 결성되었으며, 1969년부터 1973년까지 생가가 복원되고 제향을 위한 사우(祠宇)가 설립되었다. 또 봉화를 올렸던 매봉산 정상에는 봉화대가 설치되고, 유관순 동상이 건립되었다. 1990년 4월에는 열사의 가묘(假墓)가 봉안되어 구천에 떠돌던 영혼이 편히 잠들게 되었고, 매봉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완성됨으로써 사적지가 완비되었다.

내용

아우내봉화제는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를 비롯한 병천면 주민들의 오랜 여망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그동안 아우내 장터의 만세운동을 기리는 행사가 없음을 안타깝게 여겨오던 중, 1978년 3·1절을 맞이하여 지역 주민들이 주체가 된 제1회 아우내 봉화제가 닻을 올렸다. 2005년 2월 28일로 27회를 맞이한 이 행사는 횃불집회를 재현함으로써 열사들의 애국정신과 아우내 장터에 울려퍼졌던 그 날의 함성을 되새긴다. 행사의 주최와 주관은 아우내봉화제추진위원회와 병천청년회의소에서 맡고 있으며, 주요 내용은 횃불 점화, 횃불 시위, 봉화대 점화, 불꽃놀이, 비문 낭독, 선언문 낭독으로 구성된다. 2005년 아우내 봉화제의 경우 식전행사로 풍선아트 소공연, 퀴즈(천안 지역 고교 및 대학팀), 테마 공연으로 ‘민족의 태동 단군’, ‘강성한 조국 고구려’, ‘시련과 극복 유관순 열사’의 4부작이 선보였다. 그리고 오후 7시에는 사적관리소 광장에서 개회식을 가진 데 이어, 아우내 장터 횃불 시위와 일본 헌병대와의 충돌 그리고 헌병분소 전소 장면이 재현되었다.

참고문헌

天安市誌 (천안시지편찬위원회, 1987)천안의 향토축제 (천안문화원, 1997)아우내 봉화제 자료 (병천청년회의소,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