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농청놀이

한자명

水營農廳-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가을(秋) > 7월 > 정일

집필자 류종목(柳鍾穆)
갱신일 2018-11-19

정의

부산광역시 수영(水營) 지역에 전승되는 농촌 자치 조직의 공동 작업 과정과 생활을 표현한 향토 예능. 농청(農廳)이란 농사철에 서로 도와 일을 하는 마을 주민들의 모임을 가리키며, 삼한시대부터 있었던 두레에서 나온 풍속이다. 수영농청놀이는 특히 논농사의 작업을 반영한 것으로 농민의 생활상을 잘 담고 있다. 1972년 10월 20일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으며, 농청원이 공동 작업을 하면서 부르던 농업 노동요를 중심으로 작업과정을 재현하고 연희화 하여 지역 주민들이 중심이 된 수영고적민속예술보존협회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유래

원시 공동사회에서는 협동 노동의 필요성에 의해 일정한 조직체를 지니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이러한 조직체로 두레를 꼽을 수 있다. 두레는 지역에 따라 농사(農社), 농기(農旗), 농계(農契), 목청(牧廳) 등으로 불러왔다. 부산광역시 수영 지역은 고려 현종 때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이 개설된 이후 1894년 갑오경장으로 폐영(廢營)이 될 때까지 수군의 요새지였던 곳이다. 수영은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바다와 면한 수영성 동문 밖의 주민들은 어업과 염업에, 남북문 밖의 주민들은 농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 생업의 형태에 따라 좌수영어방놀이와 수영농청농요 등이 형성되었다. 지금은 완전히 도시화되었지만 수영은 1945년 해방 당시만 해도 주민의 대부분이 농민이었다.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100여 년 전부터 농민을 중심으로 공동작업의 조직화와 능률화를 위해 농청이 존재했었다고 하지만 그 역사는 더 소급될 수 있을 것이다. 수영 지역은 군사적 요충지로서 넓은 경작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농업 인력을 극복하기 위해 일찍부터 두레 형식의 협동조합격인 농청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농청의 조직에는 지리적 여건으로 보아 수군(水軍)의 조직이 원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내용

수영 지역에서는 5명 이하의 인원이 서로 도와서 일할 때는 품앗이, 6~10명 정도일 때는 두레, 그 이상의 인원이 서로 도와서 일할 때는 농청에 붙여서 노동해왔다고 한다. 수영농청은 원래 붕밖(북밖) 농청과 남밖 농청, 남북 농청이 각각 있었다. 각 농청에 소속된 농청원은 노동력이 있는 성인 남녀로 구성되는데 집강(執綱), 행수(行首), 문서잡이, 집강(集講), 야장(野長), 영각수(令角手) 같은 역원들에 의해 통제되었다. 집강(執綱)은 수장 격으로 계열 농청의 대표이며 행수는 농사의 총감독격으로 전체 작업을 관장하였다. 문서잡이는 서무, 회계, 기록을 맡았고, 집강(集講)은 농사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고 지도하는 일을 처리하였는데 집강행수라고도 부른다. 또 야장은 수총각(首總角)이라고도 하는데, 부분적인 작업을 관장하고 지도하는 직책으로 들일의 책임자였다. 영각수는 영각(令角)을 불어 집합하게 하거나 작업을 지시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각 농청 산하에는 내방청(內房廳)과 모기청(模技廳)이 있다. 내방청은 성인 여자로 구성되며 행수, 집강(集講), 야장 같은 역원이 있다. 모기청은 15~16세 내외의 미성년 남자로 조직되며 농청원이 되기 위해 훈련을 하는 집단에 해당한다.

남자로 구성된 각 농청원들은 풀베기, 논갈이, 볍씨 뿌리기, 모춤 나르기, 보리타작, 논매기 같은 전문성과 노동력이 많이 드는 일을 하였다. 한편 여자로 구성된 내방청원들은 밭농사를 중심으로 하되, 모심기철에는 모찌기, 모심기 그리고 그 밖의 잔일에도 동원되었다.

수영농청놀이와 농요는 엄격한 조직과 규율 속에서 운영되던 농청의 각종 작업 과정과 그에 따르는 민요들을 정리하여 표현한 향토 예능이다. 특히 논농사의 작업들을 많이 반영하여 농민의 생활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 현재 연희되는 수영농청놀이의 전체적인 연희 과정은 풀베기소리, 가래소리, 모찌기소리, 모심기소리, 도리깨타작소리, 논매기소리 같은 농요와 소싸움 그리고 칭칭소리의 순서로 진행되는데, 그 대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영각수의 집합 신호에 따라 풍물패가 잠시 동안 흥겹게 풍물을 울린다. 이 사이에 남녀 농청원들은 놀이마당의 입구에 행렬을 지어 선다. 행렬의 맨 앞에는 농청기와 농기를 앞세우고 영각, 호적, 꽹과리, 징, 장고, 북을 각각 하나씩 든 풍물패가 뒤에 선다. 이어 정자관을 쓴 양반이 따르고 그 뒤로 검정소를 모는 소몰이, 쟁기를 지게에 진 농부, 누렁소를 모는 소몰이, 써레를 지게에 진 농부의 순으로 선다. 그 뒤로는 가래를 어깨에 짊어진 목가래꾼과 줄가래꾼들이 따른다. 농청원들의 뒤에는 내방청원인 부인들이 따른다. 이 가운데는 술동이를 이고 있는 사람과 함지박을 이고 있는 사람이 각각 한 사람씩 포함되어 있다. 행렬의 맨 끝에는 도리깨, 풍석, 자루바가지, 대빗자루, 갈쿠리, 밀개, 대소쿠리, 키 같은 여러 농기구를 짊어진 농청원 한 사람이 따른다.

정렬을 한 후 일동이 모든 동작을 멈춘 채 서 있는 동안 풍물소리가 그치면 먼저 풀베기소리를 부른다. 풀베기소리를 부를 때는 악기의 반주 따위는 없고,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고 나면 다른 사람이 또 한 편을 부르는 식으로 불러간다. 풀을 벨 때 주로 부르는 노래라 해서 풀베기소리라고 한다.

풀베기소리를 다 부르고 나면 남녀 농청원들은 행렬의 순서를 따라 춤을 추며 입장한다. 일단 놀이마당 중앙으로 들어오면 내방청원들은 모두 퇴장하고 남자 농청원들은 일을 시작한다. 소 두 마리를 가지고 한쪽은 논갈이, 한쪽은 써레질을 한다. 그 주위에는 가래꾼들이 빙 둘러서서 가래질을 하며 가래소리를 부른다. 이 노래는 선후창식으로 가창하는데, 뒷소리인 “어허가래야”를 처음 시작할 때 반드시 선창과 후창으로 주고받은 후에 본격적인 노래로 들어간다.

가래소리가 끝나면 가락에 맞추어 쟁기꾼, 써래꾼, 가래꾼이 연장과 소를 몰고 퇴장한다. 이와 거의 동시에 내방청원 10여 명과 남자 농청원 4~5명이 춤을 추며 들어온다. 남자 농청원들은 내방청원들이 모를 찌는 동안 바지게에다 모춤을 얹어 져다 나르고 이것을 논(놀이마당)의 여기저기에 적당한 간격으로 던져놓는다. 이것을 ‘모 베룬다’라고 한다. 오른손으로 모를 쪄서 한 움큼이 되면 그것을 왼손에 모으는데 반드시 ‘×자 형’으로 포개어 얹는다. 왼손에 모은 모가 5~6 움큼이 되면 옆에 끌고 다니는 짚단의 짚을 뽑아 묶는데, 이렇게 묶는 한 단을 ‘모춤’이라 한다. 한편 다른 농청원들은 논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세모리를 밟거나 쇠스랑이나 삽으로 논을 손질하여 평평하게 해준다. 세모리란 써레질을 하고 나서 흙이 고르지 않고 울퉁불퉁하게 남아 있는 부분을 말한다. 논으로 들어온 내방청원들은 모를 찌면서 모찌기소리를 부른다.

모찌기가 끝나면 내방청원들은 춤을 추며 일단 바깥쪽으로 나오고 그 사이에 남자들은 모춤을 지고 가서 모를 베룬다. 모를 찌던 여자들은 다시 논으로 들어가 모를 쥐고 심기 시작한다. 모를 심는 일은 허리도 아프고 지루한 일이므로 노동의 고통을 잊고 일의 흥을 돋우기 위해 모심기소리를 부른다. 수영 지역은 예부터 반드시 여자들이 모를 심어왔다. 그래서 남자들은 모심기소리를 부를 줄도 모른다.

내방청원들이 모심기를 하고 있는 동안 다른쪽에서는 남자 농청원들이 보릿대를 쌓아놓고 도리깨로 타작을 하며 도리깨타작소리를 부른다. 보리타작을 하는 동안 한 사람은 빗자루로 타작마당을 쓸고 한 사람은 갈퀴질을 한다. 도리깨타작소리는 목도리깨꾼이 앞소리를 메기고 종도리깨꾼들이 뒷소리를 받는 방식, 즉 선후창식으로 부른다. 처음에는 천천히 “에화” 소리를 주고받다가 본격적인 노랫말을 부르기 시작한다. 모심기와 보리타작이 끝난 뒤에 중참을 먹는다. 이때 술동이와 함지박을 이고 나와 남자들은 술동이 옆에, 여자들은 함지박 옆에 둘러앉아 중참을 먹는다.

중참을 먹은 후 논매기가 시작되면 남자들은 빈손으로, 여자들은 호미를 들고 입장한다. 남자들이 논을 매는 동안 여자들은 양 옆에서 호미를 쥐고 밭을 맨다. 남자 셋과 여자 둘은 논을 매는 옆에서 보리를 풍석질해서 담는다. 풍석질이란 타작한 보리를 풍석으로 바람을 일으켜 잡티가 없도록 손질하는 과정을 말한다.

논매기가 끝나면 농청기를 중심으로 남녀 농청원들이 입장하여 동부와 서부 양편으로 갈라서서 춤을 추며 논다. 이 사이 동서부에서 각각 소몰이꾼이 소를 몰고 중앙으로 나온다. 중앙으로 나온 소 두 마리는 소싸움을 벌이고, 남녀 농청원들은 함성을 울리며 흥을 돋운다.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밀리기 시작하다가 꼬리를 늘어뜨리고 달아나면 승패가 결정된다.

진 쪽은 억울하고 분통한 듯 주저앉아 땅을 치며 통곡한다. 한편 이긴 쪽은 신이 나서 춤을 추고 함성을 지르며 주위를 한 바퀴 돌고 와서 진 쪽을 일으켜 한 덩어리가 되어 춤추고 노래하며 논다. 이때 부르는 노래가 칭칭소리이다. 노래가 끝나면 일동은 풍물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퇴장함으로써 모든 과정을 마치게 된다.

의의

수영농청놀이는 사라진 전통문화를 지역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되살린 것으로, 공동 작업 과정과 농사노동요가 연희의 핵심이 된다. 도시화된 수영에서 농청이라는 농촌 자치 조직의 공동 작업과 놀이 과정을 재현하고, 그들이 부르던 농요를 연희화한 것은 지역의 중요한 음악적, 민속적 전통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공동 작업에 깃든 조상들의 협동, 단결, 근면 등의 정신적 유산을 전승한다는 의미도 크다.

참고문헌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慶尙南道 篇 (文化財管理局, 1972)
韓國民俗大觀3-民間信仰·宗敎 (高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1981)
水營傳統藝能 (수영고적민속보존회, 1993)
韓國 民俗文化 硏究 (康龍權, 集文堂, 1996)
鄕土의 民俗文化 (康龍權,, 亞大學校 石堂傳統文化硏究院, 1996)
수영구의 민속과 문화 (수영고적민속예술보존협회, 2005)

수영농청놀이

수영농청놀이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가을(秋) > 7월 > 정일

집필자 류종목(柳鍾穆)
갱신일 2018-11-19

정의

부산광역시 수영(水營) 지역에 전승되는 농촌 자치 조직의 공동 작업 과정과 생활을 표현한 향토 예능. 농청(農廳)이란 농사철에 서로 도와 일을 하는 마을 주민들의 모임을 가리키며, 삼한시대부터 있었던 두레에서 나온 풍속이다. 수영농청놀이는 특히 논농사의 작업을 반영한 것으로 농민의 생활상을 잘 담고 있다. 1972년 10월 20일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으며, 농청원이 공동 작업을 하면서 부르던 농업 노동요를 중심으로 작업과정을 재현하고 연희화 하여 지역 주민들이 중심이 된 수영고적민속예술보존협회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유래

원시 공동사회에서는 협동 노동의 필요성에 의해 일정한 조직체를 지니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이러한 조직체로 두레를 꼽을 수 있다. 두레는 지역에 따라 농사(農社), 농기(農旗), 농계(農契), 목청(牧廳) 등으로 불러왔다. 부산광역시 수영 지역은 고려 현종 때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이 개설된 이후 1894년 갑오경장으로 폐영(廢營)이 될 때까지 수군의 요새지였던 곳이다. 수영은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바다와 면한 수영성 동문 밖의 주민들은 어업과 염업에, 남북문 밖의 주민들은 농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 생업의 형태에 따라 좌수영어방놀이와 수영농청농요 등이 형성되었다. 지금은 완전히 도시화되었지만 수영은 1945년 해방 당시만 해도 주민의 대부분이 농민이었다.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100여 년 전부터 농민을 중심으로 공동작업의 조직화와 능률화를 위해 농청이 존재했었다고 하지만 그 역사는 더 소급될 수 있을 것이다. 수영 지역은 군사적 요충지로서 넓은 경작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농업 인력을 극복하기 위해 일찍부터 두레 형식의 협동조합격인 농청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농청의 조직에는 지리적 여건으로 보아 수군(水軍)의 조직이 원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내용

수영 지역에서는 5명 이하의 인원이 서로 도와서 일할 때는 품앗이, 6~10명 정도일 때는 두레, 그 이상의 인원이 서로 도와서 일할 때는 농청에 붙여서 노동해왔다고 한다. 수영농청은 원래 붕밖(북밖) 농청과 남밖 농청, 남북 농청이 각각 있었다. 각 농청에 소속된 농청원은 노동력이 있는 성인 남녀로 구성되는데 집강(執綱), 행수(行首), 문서잡이, 집강(集講), 야장(野長), 영각수(令角手) 같은 역원들에 의해 통제되었다. 집강(執綱)은 수장 격으로 계열 농청의 대표이며 행수는 농사의 총감독격으로 전체 작업을 관장하였다. 문서잡이는 서무, 회계, 기록을 맡았고, 집강(集講)은 농사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고 지도하는 일을 처리하였는데 집강행수라고도 부른다. 또 야장은 수총각(首總角)이라고도 하는데, 부분적인 작업을 관장하고 지도하는 직책으로 들일의 책임자였다. 영각수는 영각(令角)을 불어 집합하게 하거나 작업을 지시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각 농청 산하에는 내방청(內房廳)과 모기청(模技廳)이 있다. 내방청은 성인 여자로 구성되며 행수, 집강(集講), 야장 같은 역원이 있다. 모기청은 15~16세 내외의 미성년 남자로 조직되며 농청원이 되기 위해 훈련을 하는 집단에 해당한다. 남자로 구성된 각 농청원들은 풀베기, 논갈이, 볍씨 뿌리기, 모춤 나르기, 보리타작, 논매기 같은 전문성과 노동력이 많이 드는 일을 하였다. 한편 여자로 구성된 내방청원들은 밭농사를 중심으로 하되, 모심기철에는 모찌기, 모심기 그리고 그 밖의 잔일에도 동원되었다. 수영농청놀이와 농요는 엄격한 조직과 규율 속에서 운영되던 농청의 각종 작업 과정과 그에 따르는 민요들을 정리하여 표현한 향토 예능이다. 특히 논농사의 작업들을 많이 반영하여 농민의 생활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 현재 연희되는 수영농청놀이의 전체적인 연희 과정은 풀베기소리, 가래소리, 모찌기소리, 모심기소리, 도리깨타작소리, 논매기소리 같은 농요와 소싸움 그리고 칭칭소리의 순서로 진행되는데, 그 대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영각수의 집합 신호에 따라 풍물패가 잠시 동안 흥겹게 풍물을 울린다. 이 사이에 남녀 농청원들은 놀이마당의 입구에 행렬을 지어 선다. 행렬의 맨 앞에는 농청기와 농기를 앞세우고 영각, 호적, 꽹과리, 징, 장고, 북을 각각 하나씩 든 풍물패가 뒤에 선다. 이어 정자관을 쓴 양반이 따르고 그 뒤로 검정소를 모는 소몰이, 쟁기를 지게에 진 농부, 누렁소를 모는 소몰이, 써레를 지게에 진 농부의 순으로 선다. 그 뒤로는 가래를 어깨에 짊어진 목가래꾼과 줄가래꾼들이 따른다. 농청원들의 뒤에는 내방청원인 부인들이 따른다. 이 가운데는 술동이를 이고 있는 사람과 함지박을 이고 있는 사람이 각각 한 사람씩 포함되어 있다. 행렬의 맨 끝에는 도리깨, 풍석, 자루바가지, 대빗자루, 갈쿠리, 밀개, 대소쿠리, 키 같은 여러 농기구를 짊어진 농청원 한 사람이 따른다. 정렬을 한 후 일동이 모든 동작을 멈춘 채 서 있는 동안 풍물소리가 그치면 먼저 풀베기소리를 부른다. 풀베기소리를 부를 때는 악기의 반주 따위는 없고,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고 나면 다른 사람이 또 한 편을 부르는 식으로 불러간다. 풀을 벨 때 주로 부르는 노래라 해서 풀베기소리라고 한다. 풀베기소리를 다 부르고 나면 남녀 농청원들은 행렬의 순서를 따라 춤을 추며 입장한다. 일단 놀이마당 중앙으로 들어오면 내방청원들은 모두 퇴장하고 남자 농청원들은 일을 시작한다. 소 두 마리를 가지고 한쪽은 논갈이, 한쪽은 써레질을 한다. 그 주위에는 가래꾼들이 빙 둘러서서 가래질을 하며 가래소리를 부른다. 이 노래는 선후창식으로 가창하는데, 뒷소리인 “어허가래야”를 처음 시작할 때 반드시 선창과 후창으로 주고받은 후에 본격적인 노래로 들어간다. 가래소리가 끝나면 가락에 맞추어 쟁기꾼, 써래꾼, 가래꾼이 연장과 소를 몰고 퇴장한다. 이와 거의 동시에 내방청원 10여 명과 남자 농청원 4~5명이 춤을 추며 들어온다. 남자 농청원들은 내방청원들이 모를 찌는 동안 바지게에다 모춤을 얹어 져다 나르고 이것을 논(놀이마당)의 여기저기에 적당한 간격으로 던져놓는다. 이것을 ‘모 베룬다’라고 한다. 오른손으로 모를 쪄서 한 움큼이 되면 그것을 왼손에 모으는데 반드시 ‘×자 형’으로 포개어 얹는다. 왼손에 모은 모가 5~6 움큼이 되면 옆에 끌고 다니는 짚단의 짚을 뽑아 묶는데, 이렇게 묶는 한 단을 ‘모춤’이라 한다. 한편 다른 농청원들은 논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세모리를 밟거나 쇠스랑이나 삽으로 논을 손질하여 평평하게 해준다. 세모리란 써레질을 하고 나서 흙이 고르지 않고 울퉁불퉁하게 남아 있는 부분을 말한다. 논으로 들어온 내방청원들은 모를 찌면서 모찌기소리를 부른다. 모찌기가 끝나면 내방청원들은 춤을 추며 일단 바깥쪽으로 나오고 그 사이에 남자들은 모춤을 지고 가서 모를 베룬다. 모를 찌던 여자들은 다시 논으로 들어가 모를 쥐고 심기 시작한다. 모를 심는 일은 허리도 아프고 지루한 일이므로 노동의 고통을 잊고 일의 흥을 돋우기 위해 모심기소리를 부른다. 수영 지역은 예부터 반드시 여자들이 모를 심어왔다. 그래서 남자들은 모심기소리를 부를 줄도 모른다. 내방청원들이 모심기를 하고 있는 동안 다른쪽에서는 남자 농청원들이 보릿대를 쌓아놓고 도리깨로 타작을 하며 도리깨타작소리를 부른다. 보리타작을 하는 동안 한 사람은 빗자루로 타작마당을 쓸고 한 사람은 갈퀴질을 한다. 도리깨타작소리는 목도리깨꾼이 앞소리를 메기고 종도리깨꾼들이 뒷소리를 받는 방식, 즉 선후창식으로 부른다. 처음에는 천천히 “에화” 소리를 주고받다가 본격적인 노랫말을 부르기 시작한다. 모심기와 보리타작이 끝난 뒤에 중참을 먹는다. 이때 술동이와 함지박을 이고 나와 남자들은 술동이 옆에, 여자들은 함지박 옆에 둘러앉아 중참을 먹는다. 중참을 먹은 후 논매기가 시작되면 남자들은 빈손으로, 여자들은 호미를 들고 입장한다. 남자들이 논을 매는 동안 여자들은 양 옆에서 호미를 쥐고 밭을 맨다. 남자 셋과 여자 둘은 논을 매는 옆에서 보리를 풍석질해서 담는다. 풍석질이란 타작한 보리를 풍석으로 바람을 일으켜 잡티가 없도록 손질하는 과정을 말한다. 논매기가 끝나면 농청기를 중심으로 남녀 농청원들이 입장하여 동부와 서부 양편으로 갈라서서 춤을 추며 논다. 이 사이 동서부에서 각각 소몰이꾼이 소를 몰고 중앙으로 나온다. 중앙으로 나온 소 두 마리는 소싸움을 벌이고, 남녀 농청원들은 함성을 울리며 흥을 돋운다.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밀리기 시작하다가 꼬리를 늘어뜨리고 달아나면 승패가 결정된다. 진 쪽은 억울하고 분통한 듯 주저앉아 땅을 치며 통곡한다. 한편 이긴 쪽은 신이 나서 춤을 추고 함성을 지르며 주위를 한 바퀴 돌고 와서 진 쪽을 일으켜 한 덩어리가 되어 춤추고 노래하며 논다. 이때 부르는 노래가 칭칭소리이다. 노래가 끝나면 일동은 풍물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퇴장함으로써 모든 과정을 마치게 된다.

의의

수영농청놀이는 사라진 전통문화를 지역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되살린 것으로, 공동 작업 과정과 농사노동요가 연희의 핵심이 된다. 도시화된 수영에서 농청이라는 농촌 자치 조직의 공동 작업과 놀이 과정을 재현하고, 그들이 부르던 농요를 연희화한 것은 지역의 중요한 음악적, 민속적 전통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공동 작업에 깃든 조상들의 협동, 단결, 근면 등의 정신적 유산을 전승한다는 의미도 크다.

참고문헌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慶尙南道 篇 (文化財管理局, 1972)韓國民俗大觀3-民間信仰·宗敎 (高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1981)水營傳統藝能 (수영고적민속보존회, 1993)韓國 民俗文化 硏究 (康龍權, 集文堂, 1996)鄕土의 民俗文化 (康龍權,, 亞大學校 石堂傳統文化硏究院, 1996)수영구의 민속과 문화 (수영고적민속예술보존협회,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