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석(誌石)

한자명

誌石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상장례

집필자 배영동(裵永東)

정의

망자亡者의 이름・본관本貫・생몰년生沒年・계보系譜・행적行績 등의 인적 사항과 무덤의 좌향坐向 등을 적은 판석板石이나 도판陶板을 말하는 것으로, 무덤에 묻어두는 장례용구葬禮用具.

역사

지석은 중국에서 발생하여 삼국시대에 우리나라로 전래했다고 추정된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쳐 최근까지도 지석을 만들어 묻는 풍속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서 지석은 일반적으로 정방형의 석판에 명銘과 망자의 인적 사항 등을 새겨 뚜껑을 덮은 다음 무덤의 석 자[尺] 앞이나 무덤 안에 넣는 것을 말한다. 애초 지석은 비석의 대용물이었다.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에는 석곽이나 황사에 묘명墓銘을 새겼고, 전한시대前漢時代에는 앞선 묘명의 전통을 이어받은 관명棺銘과 청동기에 묘명을 새긴 정명鼎銘이 나타났다. 이후 독립된 판석에 망자의 벼슬과 이름만 새긴 지명誌銘의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한, 정형화된 형식의 운문체인 명문銘文과 망자의 가족 관계에 대한 자료도 묘지에 나타났다. 위진시대魏晉時代에는 지석의 형태가 본격적인 체제를 갖추기 시작했다. 망자의 일대기를 산문으로 적은 지문誌文을 사용하고, 두 개 판석이 개석蓋石과 저석底石을 구성하는 전형적인 지석의 형태가 만들어졌다이 당시의 지석문화가 삼국시대에 전래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이후 유송시대劉宋時代에는 지석에 명문과 지문이 함께 새겨지기 시작하였고, 전형적인 정방형 지석이 등장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지석은 고구려의 동수冬壽 지석(357년), 모두루牟頭婁 지석(5세기 중엽)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백제 무령왕릉武寧王陵의 매지권買地券(6세기 전반)도 지석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 밖에 7세기의 고구려 천남생泉男生 지석(679년), 백제 부여융扶餘隆 지석(682년), 8세기의 고구려 고자高慈 지석(700년), 천헌성泉獻誠 지석(701년), 천남산泉男産 지석(702년), 천비泉毖 지석(733년) 등이 중국에 남아 있다. 한편, 중국 지린성吉林省에 있는, 발해渤海의 제3대 왕인 문왕의 딸 정혜공주貞惠公主(738~777)의 비석도 지석으로 볼 수 있다. 이 비석은 대형 석실분 속에 세워두었기 때문에 초기 지석으로 간주된다. 지석이 비석의 대용물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증거이다. 고려시대의 지석은 일반적으로 가로가 긴 대형 장방형 판석에 글자를 새긴 형태이다. 조선시대가 되면 방형 판석에서 방형도판으로 바뀌어 조선 후기까지 지속된다. 조선 전기만해도 사대부층에서 지석을 만들어 묻었는데, 조선 후기로 오면서 중하층 사람들도 지석을 만들어서 묻었다 . 사대부층의 지석은 행적이 많기 때문에 자연히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반면에, 중하층 사람들의 지석은 기록내용이 간단한 편이다. 이 밖에도 신분이 낮고 재력이 없는 사람들이 옹기, 벼루, 필통 등의 형태에 글자를 새겨 묻은 것과 주발의 유약을 갈아내고 붓으로 기록한 다음 지워지지 않게 재를 담아 묻은 것도 발견된다.

내용

지석은 망자의 삶을 기록하여 남기는 수단이다 . 그리고 봉분이 유실될 경우 분묘를 찾을 수 있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돌뿐만 아니라 도기・석기・옹기・자기・토기 등 단단하거나 오래 보존할 수 있는 것이면 지석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석의 재료는 반드시 돌이어야 한다는 중국과는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도 고려시대까지 대개 돌에 새긴 지석이 많았지만, 조선시대에는 지석의 재료가 다양해져 먹으로 글을 쓴 사발을 석함이나 나무 궤에 넣기도 했다. 지석의 형태는 정방형이 기본인 중국과 달리 평면형, 입체형도 있는데, 그 안에서 각양각색의 형태로 나뉜다.

지석은 내용의 구성 방식에 따라 표제문表題文만 있는 것, 표제문과 지문이 있는 것, 표제문과 지문・명문을 함께 적은 것으로 나뉜다. 표제문은 서문의 형태로 누구의 지석인지 알 수 있도록 작성한 것이며, 지문은 망자의 일대기를 산문체로 쓴 것이고, 명문은 운문체로 망자의 공적과 인품 등을 찬양한 것이다. 지석에 실리는 문체와 내용에 따라 다음과 같이 명칭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즉, 지석에 실린 문체에 따라 묘지명墓誌銘・묘지명병서墓誌銘幷序・묘지墓誌・묘명墓銘 등으로, 장례법에 따라 권조지權厝誌・속지續誌・귀부지歸祔誌・천부지遷祔誌 등으로 나뉜다. 후대로 갈수록 지석의 내용은 망자의 이름 , 벼슬 등을 간단하게 기록하는 형태가 많아졌다.

①묘지명은 지석에 지문과 명문이 함께 실려 있는 것으로, 지문은 산문체, 명문은 운문체이다. 지문체에는 사실을 기록한 정체正體와 논의論議를 덧붙인 변체變體가 있다. 지문체에는 삼언三言・사언四言・칠언七言・잡언雜言・산문체가 있다. ②묘지명병서는 지문과 명문뿐만 아니라 표제문인 서문이 함께 있는 것을 말한다. 지문만 있고 명문이 없는 것을 별체別體라 하는데, 서문・지문 또는 서문・명문의 형태이다. ③묘지는 지석에 실린 지문을 의미하는 것으로, 간혹 지석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구분해야 한다. ④묘명은 명문銘文만 있는 것이나, 지誌라고 하고선 명銘만 있는 것, 명銘이라고 하고선 지誌만 있는 것, 명銘을 지誌 또는 지誌를 명銘이라고 표제를 부친 것 모두 별체이다. ⑤권조지는 시신을 가매장한 이후 그 사연을 적은 것이다 . ⑥속지는 이미 지석을 만들었으나 나중에 보완하거나 변경할 내용이 있을 때 다시 만드는 것이다. 대개 부부를 합장할 때나 개장할 때, 후손이 높은 벼슬에 올랐을 때 다시 만드는 경우가 있다. ⑦귀부지는 타향에서 사망하였을 경우 시신을 옮겨와 장례를 치를 때 만드는 것이다. ⑧천부지는 장례를 치렀다가 시신을 옮길 경우 만드는 지석이다. 이 경우도 합장이나 개장할 때 이루어진다. 이 밖에도 개석蓋石에 새긴 개석문, 벽돌에 새긴묘기墓記, 목판에 새긴 분판문墳版文, 불승의 지석인 탑명塔銘, 장지葬誌, 분기墳記, 분지墳誌, 광명壙銘, 곽명槨銘,매명埋銘, 장명葬銘, 석지石誌, 묘석墓石, 석명石銘, 묘지墓志등이 있다.

특징 및 의의

지석은 망자의 생애에 대한 기록을 무덤에 묻어둔 것이다. 재료와 제작 방법, 내용의 구성 방식, 문체, 내용 등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와 명칭이 있다. 지석의 내용 가운데에는 가족 또는 인척 관계가 자세한 경우가 많다. 그뿐만 아니라, 사망 후 장례를 치른 시기나 지석의 제작 및 매장 시기 같은, 비석이나 행장 등의 기록에서 발견되지 않는 내용도 있어서 주목된다. 내용의 구성 방식과 내용 및 문체는 국문학・한문학 연구에, 제작 방법과 재료 및 형태는 미술사(도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그리고 상장례 풍속과 혼인 관계, 친족 제도 등은 역사학・민속학 연구에 값진 자료이다.

참고문헌

발해묘지 양식의 형성배경과 영향(박재복, 동양고전연구34, 동양고전학회, 2009). 조선시대 묘지의 종류와 형태에 관한 연구(최호림, 고문화25, 한국대학박물관협회, 1984), 조선시대 지석의 성격과 변천(배영동, 조선시대지석의 조사연구, 온양민속박물관, 1992), 지석의 명칭과 종류에 대한 일고찰(장철수, 두산 김택규교수 화갑기념 문화인류학논총, 1989), 지석의 발생에 대한 일고찰(장철수, 의민 이두현교수 정년퇴임기념 논문집, 1989).

지석

지석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상장례

집필자 배영동(裵永東)

정의

망자亡者의 이름・본관本貫・생몰년生沒年・계보系譜・행적行績 등의 인적 사항과 무덤의 좌향坐向 등을 적은 판석板石이나 도판陶板을 말하는 것으로, 무덤에 묻어두는 장례용구葬禮用具.

역사

지석은 중국에서 발생하여 삼국시대에 우리나라로 전래했다고 추정된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쳐 최근까지도 지석을 만들어 묻는 풍속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서 지석은 일반적으로 정방형의 석판에 명銘과 망자의 인적 사항 등을 새겨 뚜껑을 덮은 다음 무덤의 석 자[尺] 앞이나 무덤 안에 넣는 것을 말한다. 애초 지석은 비석의 대용물이었다.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에는 석곽이나 황사에 묘명墓銘을 새겼고, 전한시대前漢時代에는 앞선 묘명의 전통을 이어받은 관명棺銘과 청동기에 묘명을 새긴 정명鼎銘이 나타났다. 이후 독립된 판석에 망자의 벼슬과 이름만 새긴 지명誌銘의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한, 정형화된 형식의 운문체인 명문銘文과 망자의 가족 관계에 대한 자료도 묘지에 나타났다. 위진시대魏晉時代에는 지석의 형태가 본격적인 체제를 갖추기 시작했다. 망자의 일대기를 산문으로 적은 지문誌文을 사용하고, 두 개 판석이 개석蓋石과 저석底石을 구성하는 전형적인 지석의 형태가 만들어졌다이 당시의 지석문화가 삼국시대에 전래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이후 유송시대劉宋時代에는 지석에 명문과 지문이 함께 새겨지기 시작하였고, 전형적인 정방형 지석이 등장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지석은 고구려의 동수冬壽 지석(357년), 모두루牟頭婁 지석(5세기 중엽)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백제 무령왕릉武寧王陵의 매지권買地券(6세기 전반)도 지석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 밖에 7세기의 고구려 천남생泉男生 지석(679년), 백제 부여융扶餘隆 지석(682년), 8세기의 고구려 고자高慈 지석(700년), 천헌성泉獻誠 지석(701년), 천남산泉男産 지석(702년), 천비泉毖 지석(733년) 등이 중국에 남아 있다. 한편, 중국 지린성吉林省에 있는, 발해渤海의 제3대 왕인 문왕의 딸 정혜공주貞惠公主(738~777)의 비석도 지석으로 볼 수 있다. 이 비석은 대형 석실분 속에 세워두었기 때문에 초기 지석으로 간주된다. 지석이 비석의 대용물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증거이다. 고려시대의 지석은 일반적으로 가로가 긴 대형 장방형 판석에 글자를 새긴 형태이다. 조선시대가 되면 방형 판석에서 방형도판으로 바뀌어 조선 후기까지 지속된다. 조선 전기만해도 사대부층에서 지석을 만들어 묻었는데, 조선 후기로 오면서 중하층 사람들도 지석을 만들어서 묻었다 . 사대부층의 지석은 행적이 많기 때문에 자연히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반면에, 중하층 사람들의 지석은 기록내용이 간단한 편이다. 이 밖에도 신분이 낮고 재력이 없는 사람들이 옹기, 벼루, 필통 등의 형태에 글자를 새겨 묻은 것과 주발의 유약을 갈아내고 붓으로 기록한 다음 지워지지 않게 재를 담아 묻은 것도 발견된다.

내용

지석은 망자의 삶을 기록하여 남기는 수단이다 . 그리고 봉분이 유실될 경우 분묘를 찾을 수 있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돌뿐만 아니라 도기・석기・옹기・자기・토기 등 단단하거나 오래 보존할 수 있는 것이면 지석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석의 재료는 반드시 돌이어야 한다는 중국과는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도 고려시대까지 대개 돌에 새긴 지석이 많았지만, 조선시대에는 지석의 재료가 다양해져 먹으로 글을 쓴 사발을 석함이나 나무 궤에 넣기도 했다. 지석의 형태는 정방형이 기본인 중국과 달리 평면형, 입체형도 있는데, 그 안에서 각양각색의 형태로 나뉜다. 지석은 내용의 구성 방식에 따라 표제문表題文만 있는 것, 표제문과 지문이 있는 것, 표제문과 지문・명문을 함께 적은 것으로 나뉜다. 표제문은 서문의 형태로 누구의 지석인지 알 수 있도록 작성한 것이며, 지문은 망자의 일대기를 산문체로 쓴 것이고, 명문은 운문체로 망자의 공적과 인품 등을 찬양한 것이다. 지석에 실리는 문체와 내용에 따라 다음과 같이 명칭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즉, 지석에 실린 문체에 따라 묘지명墓誌銘・묘지명병서墓誌銘幷序・묘지墓誌・묘명墓銘 등으로, 장례법에 따라 권조지權厝誌・속지續誌・귀부지歸祔誌・천부지遷祔誌 등으로 나뉜다. 후대로 갈수록 지석의 내용은 망자의 이름 , 벼슬 등을 간단하게 기록하는 형태가 많아졌다. ①묘지명은 지석에 지문과 명문이 함께 실려 있는 것으로, 지문은 산문체, 명문은 운문체이다. 지문체에는 사실을 기록한 정체正體와 논의論議를 덧붙인 변체變體가 있다. 지문체에는 삼언三言・사언四言・칠언七言・잡언雜言・산문체가 있다. ②묘지명병서는 지문과 명문뿐만 아니라 표제문인 서문이 함께 있는 것을 말한다. 지문만 있고 명문이 없는 것을 별체別體라 하는데, 서문・지문 또는 서문・명문의 형태이다. ③묘지는 지석에 실린 지문을 의미하는 것으로, 간혹 지석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구분해야 한다. ④묘명은 명문銘文만 있는 것이나, 지誌라고 하고선 명銘만 있는 것, 명銘이라고 하고선 지誌만 있는 것, 명銘을 지誌 또는 지誌를 명銘이라고 표제를 부친 것 모두 별체이다. ⑤권조지는 시신을 가매장한 이후 그 사연을 적은 것이다 . ⑥속지는 이미 지석을 만들었으나 나중에 보완하거나 변경할 내용이 있을 때 다시 만드는 것이다. 대개 부부를 합장할 때나 개장할 때, 후손이 높은 벼슬에 올랐을 때 다시 만드는 경우가 있다. ⑦귀부지는 타향에서 사망하였을 경우 시신을 옮겨와 장례를 치를 때 만드는 것이다. ⑧천부지는 장례를 치렀다가 시신을 옮길 경우 만드는 지석이다. 이 경우도 합장이나 개장할 때 이루어진다. 이 밖에도 개석蓋石에 새긴 개석문, 벽돌에 새긴묘기墓記, 목판에 새긴 분판문墳版文, 불승의 지석인 탑명塔銘, 장지葬誌, 분기墳記, 분지墳誌, 광명壙銘, 곽명槨銘,매명埋銘, 장명葬銘, 석지石誌, 묘석墓石, 석명石銘, 묘지墓志등이 있다.

특징 및 의의

지석은 망자의 생애에 대한 기록을 무덤에 묻어둔 것이다. 재료와 제작 방법, 내용의 구성 방식, 문체, 내용 등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와 명칭이 있다. 지석의 내용 가운데에는 가족 또는 인척 관계가 자세한 경우가 많다. 그뿐만 아니라, 사망 후 장례를 치른 시기나 지석의 제작 및 매장 시기 같은, 비석이나 행장 등의 기록에서 발견되지 않는 내용도 있어서 주목된다. 내용의 구성 방식과 내용 및 문체는 국문학・한문학 연구에, 제작 방법과 재료 및 형태는 미술사(도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그리고 상장례 풍속과 혼인 관계, 친족 제도 등은 역사학・민속학 연구에 값진 자료이다.

참고문헌

발해묘지 양식의 형성배경과 영향(박재복, 동양고전연구34, 동양고전학회, 2009). 조선시대 묘지의 종류와 형태에 관한 연구(최호림, 고문화25, 한국대학박물관협회, 1984), 조선시대 지석의 성격과 변천(배영동, 조선시대지석의 조사연구, 온양민속박물관, 1992), 지석의 명칭과 종류에 대한 일고찰(장철수, 두산 김택규교수 화갑기념 문화인류학논총, 1989), 지석의 발생에 대한 일고찰(장철수, 의민 이두현교수 정년퇴임기념 논문집,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