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목제(先牧祭)

한자명

先牧祭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여름(夏) > 5월 > 의례

집필자 한형주(韓亨周)

정의

음력 5월 사람에게 목방(牧放)을 가르친 신(神) 혹은 처음으로 말 기르는 법을 가르친 신에게 지내는 국가 제의. 말은 전근대에 유일한 운송수단이었고, 특히 전마(戰馬)는 안정적인 군사력의 중요 수단이었기에 국가에서는 사전에 이를 수용하여 제사하였다. 선목제는 고려시대부터 사전에 소사(小祀)로 규정되어 제사를 지냈는데, 비슷한 유형인 마조(馬祖), 마보(馬步), 마사(馬社) 같은 제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유래

선목제는 『주례(周禮)』 권4 하관사마(夏官司馬)에 “여름에 선목에 제사하고 말을 나누어 준다(夏祭先牧頒馬).”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선진(先秦)시대부터 시행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신당서(新唐書)』 「예악지(禮樂志)」에 선목은 소사로 등재되었고 송(宋)대에도 역시 소사로 취급되었지만, 명(明)대에는 제사가 소사에서 빠졌다.

내용

우리나라에서 선목제가 언제부터 시행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고려 의종 때 편찬된 『상정고금예문(詳定古今禮文)』에 이와 관련된 사항이 기재되었다. 이를 수용한 『고려사(高麗史)』 「예지(禮志)」에 따르면, 선목의 제단은 넓이가 9보, 높이가 3척으로, 사출폐(四出陛)이며, 유(壝)가 25보이며, 예감(瘞坎)이 있다. 그리고 제사의 시기는 5월이고, 희생은 돼지 한 마리이다.

고려의 선목제는 조선으로 이어졌는데, 태종 13년(1413)에 이르러 의식이 새롭게 정비되었다. 이때 제단 규모는 제후국 체제에 맞게 사방 2장 1척, 높이 2척 5촌, 유(壝)가 하나인 형태로 축소되었고, 제사 시기는 중하(仲夏) 중기 후(中氣後) 강일(剛日)로 보다 구체화되었다. 아울러 제사는 보다 유교적으로 바뀌어 사복시(司僕寺)의 관원이 향(香)을 받아 시행하였다. 이와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그 의식이 수록되었는데, 제단은 마조단, 마사단, 마보단과 같이 전관목장(箭串牧場) 안에 있었다.

선목제는 성종 이후 상당기간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현종 이전까지 연대기에 기록이 없으며, 영조 20년(1744)에 편찬된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에는 마조(馬祖), 마사(馬社), 선목(先牧) 같은 제사가 폐지되었다고 기술되었다. 물론 영조 25년(1749) 제도(諸道)에서 우역(牛疫)이 심해지자, 마단(馬壇) 가운데에 목신(牧神)을 설치해 제사하고, 기존의 선목의(先牧儀)를 수정한 경우도 보이지만, 이 역시 특별한 조처일 뿐 이후의 선목제 시행 기사는 보이지 않는다.

의의

말과 소는 교통과 농업의 중요한 수단이었고, 특히 말은 전마로서의 효용성이 컸다. 이로 인해 선목제는 고려시대 이래 국가의 사전에 포함하여 제사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이르러 말의 수효가 감소하고 전마로서의 유용성이 떨어지면서 제사의식이 줄어들게 되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國朝五禮儀, 朝鮮王朝實錄, 春官通考, 朝鮮初期 國家祭禮 硏究 (韓亨周, 一潮閣, 2002), 朝鮮時代 軍事關聯 국가제사의 정비와 그 운영 (韓亨周, 東峰申天湜敎授停年記念史學論叢, 2005)

선목제

선목제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여름(夏) > 5월 > 의례

집필자 한형주(韓亨周)

정의

음력 5월 사람에게 목방(牧放)을 가르친 신(神) 혹은 처음으로 말 기르는 법을 가르친 신에게 지내는 국가 제의. 말은 전근대에 유일한 운송수단이었고, 특히 전마(戰馬)는 안정적인 군사력의 중요 수단이었기에 국가에서는 사전에 이를 수용하여 제사하였다. 선목제는 고려시대부터 사전에 소사(小祀)로 규정되어 제사를 지냈는데, 비슷한 유형인 마조(馬祖), 마보(馬步), 마사(馬社) 같은 제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유래

선목제는 『주례(周禮)』 권4 하관사마(夏官司馬)에 “여름에 선목에 제사하고 말을 나누어 준다(夏祭先牧頒馬).”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선진(先秦)시대부터 시행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신당서(新唐書)』 「예악지(禮樂志)」에 선목은 소사로 등재되었고 송(宋)대에도 역시 소사로 취급되었지만, 명(明)대에는 제사가 소사에서 빠졌다.

내용

우리나라에서 선목제가 언제부터 시행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고려 의종 때 편찬된 『상정고금예문(詳定古今禮文)』에 이와 관련된 사항이 기재되었다. 이를 수용한 『고려사(高麗史)』 「예지(禮志)」에 따르면, 선목의 제단은 넓이가 9보, 높이가 3척으로, 사출폐(四出陛)이며, 유(壝)가 25보이며, 예감(瘞坎)이 있다. 그리고 제사의 시기는 5월이고, 희생은 돼지 한 마리이다. 고려의 선목제는 조선으로 이어졌는데, 태종 13년(1413)에 이르러 의식이 새롭게 정비되었다. 이때 제단 규모는 제후국 체제에 맞게 사방 2장 1척, 높이 2척 5촌, 유(壝)가 하나인 형태로 축소되었고, 제사 시기는 중하(仲夏) 중기 후(中氣後) 강일(剛日)로 보다 구체화되었다. 아울러 제사는 보다 유교적으로 바뀌어 사복시(司僕寺)의 관원이 향(香)을 받아 시행하였다. 이와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그 의식이 수록되었는데, 제단은 마조단, 마사단, 마보단과 같이 전관목장(箭串牧場) 안에 있었다. 선목제는 성종 이후 상당기간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현종 이전까지 연대기에 기록이 없으며, 영조 20년(1744)에 편찬된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에는 마조(馬祖), 마사(馬社), 선목(先牧) 같은 제사가 폐지되었다고 기술되었다. 물론 영조 25년(1749) 제도(諸道)에서 우역(牛疫)이 심해지자, 마단(馬壇) 가운데에 목신(牧神)을 설치해 제사하고, 기존의 선목의(先牧儀)를 수정한 경우도 보이지만, 이 역시 특별한 조처일 뿐 이후의 선목제 시행 기사는 보이지 않는다.

의의

말과 소는 교통과 농업의 중요한 수단이었고, 특히 말은 전마로서의 효용성이 컸다. 이로 인해 선목제는 고려시대 이래 국가의 사전에 포함하여 제사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이르러 말의 수효가 감소하고 전마로서의 유용성이 떨어지면서 제사의식이 줄어들게 되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國朝五禮儀, 朝鮮王朝實錄, 春官通考朝鮮初期 國家祭禮 硏究 (韓亨周, 一潮閣, 2002)朝鮮時代 軍事關聯 국가제사의 정비와 그 운영 (韓亨周, 東峰申天湜敎授停年記念史學論叢,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