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

한자명

上元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정월(正月) > 1월 > 정일

집필자 임동석(林東錫)
갱신일 2018-11-06

정의

정월 대보름의 이칭. 원소절(元宵節)·원석절(元夕節)·원야(元夜)·원석(元夕)·등절(燈節)·제등절(提燈節)이라고도 부름.

유래

음력으로 정월 대보름을 가리키며 이에 상대하여 7월 보름날을 중원(中元), 10월 보름날을 하원(下元)이라고도 한다. 『자치통감(資治通鑑)』 「당(唐) 희종기(僖宗紀) 호삼성(胡三省)」 주(注)에 “도가(道家)의 책에는 정월 15일을 상원(上元)으로 하고, 7월 15일을 중원으로 하며, 10월 15일을 하원으로 여긴다(道書以正月十五日爲上元 七月十五日爲中元 十月十五日爲下元).”고 하였다.

상원의 원류는 중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동한(東漢) 영평(永平) 연간 명제(明帝)가 불교를 제창하여 궁정 사원에 ‘괘등표불(掛燈表佛)’토록 하고 사대부와 서민들도 이에 따라 등을 걸어 습속이 되었다 하였으며, 혹은 일설에 그보다 앞서 서한(西漢) 때 시작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즉 당(唐) 서견(徐堅)의 『초학기(初學記)』에 “『사기(史記)』 「악서(樂書)」에 한나라는 태일신(太一神)을 제사 지낸다. 저녁부터 날이 밝을 때까지 이어진다고 하였는데 지금 정월 대보름 밤에 관등놀이를 하는 것은 그때의 유풍이다(史記樂書曰漢家祀太一 以昏時祠到明 今人正月望日 夜游觀燈 是其遺事).”고 하였다. 그러나 송(宋)나라 홍매(洪邁)의 『용재삼필(容齋三筆)』 「상원장등(上元張燈)」 편에는 “『태평어람(太平御覽)』에는 『사기』 「악서」에서 말하기를 ‘한나라 때는 태일신을 제사 지낸다고 하고 이는 저녁부터 날이 밝을 때까지 이어진다고 하였다. 지금 사람들은 정월 망일(대보름) 밤에 관등놀이를 하는데 이는 그때의 유풍이다’ 하였으나 지금의 『사기』에는 이러한 기록이 없다. 당나라 위술(韋述)의 『양경신기(兩京新記)』에는 “정월 십오일 밤에 금오(金吾, 의금부)의 출입금지를 풀도록 하여 전후 각 하루씩 등불을 구경할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太平御覽載史記樂書曰 漢家祀太一 以昏時祠到明 今人正月望日 夜游觀燈 是其遺事 而今史記無此文 唐韋述兩京新記曰 正月十五日 夜勑金吾弛禁 前後各一日以看燈).”고 기술되어 있다. 『구당서(舊唐書)』 「중종기(中宗紀)」에는 “경룡(景龍) 4년(709) 상원 밤에 임금이 황후와 미복(微服)으로 등불을 구경하였다(景龍四年 上元夜 帝與皇后微行觀燈).”는 기록이 있다.

참고문헌

舊唐書, 容齋三筆, 資治通鑑, 初學記, 太平御覽
中國民俗辭典 (鄭傳寅 主編, 湖北辭書出版社, 1987)
中國風俗辭典 (上海辭書出版社, 1990)

상원

상원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정월(正月) > 1월 > 정일

집필자 임동석(林東錫)
갱신일 2018-11-06

정의

정월 대보름의 이칭. 원소절(元宵節)·원석절(元夕節)·원야(元夜)·원석(元夕)·등절(燈節)·제등절(提燈節)이라고도 부름.

유래

음력으로 정월 대보름을 가리키며 이에 상대하여 7월 보름날을 중원(中元), 10월 보름날을 하원(下元)이라고도 한다. 『자치통감(資治通鑑)』 「당(唐) 희종기(僖宗紀) 호삼성(胡三省)」 주(注)에 “도가(道家)의 책에는 정월 15일을 상원(上元)으로 하고, 7월 15일을 중원으로 하며, 10월 15일을 하원으로 여긴다(道書以正月十五日爲上元 七月十五日爲中元 十月十五日爲下元).”고 하였다. 상원의 원류는 중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동한(東漢) 영평(永平) 연간 명제(明帝)가 불교를 제창하여 궁정 사원에 ‘괘등표불(掛燈表佛)’토록 하고 사대부와 서민들도 이에 따라 등을 걸어 습속이 되었다 하였으며, 혹은 일설에 그보다 앞서 서한(西漢) 때 시작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즉 당(唐) 서견(徐堅)의 『초학기(初學記)』에 “『사기(史記)』 「악서(樂書)」에 한나라는 태일신(太一神)을 제사 지낸다. 저녁부터 날이 밝을 때까지 이어진다고 하였는데 지금 정월 대보름 밤에 관등놀이를 하는 것은 그때의 유풍이다(史記樂書曰漢家祀太一 以昏時祠到明 今人正月望日 夜游觀燈 是其遺事).”고 하였다. 그러나 송(宋)나라 홍매(洪邁)의 『용재삼필(容齋三筆)』 「상원장등(上元張燈)」 편에는 “『태평어람(太平御覽)』에는 『사기』 「악서」에서 말하기를 ‘한나라 때는 태일신을 제사 지낸다고 하고 이는 저녁부터 날이 밝을 때까지 이어진다고 하였다. 지금 사람들은 정월 망일(대보름) 밤에 관등놀이를 하는데 이는 그때의 유풍이다’ 하였으나 지금의 『사기』에는 이러한 기록이 없다. 당나라 위술(韋述)의 『양경신기(兩京新記)』에는 “정월 십오일 밤에 금오(金吾, 의금부)의 출입금지를 풀도록 하여 전후 각 하루씩 등불을 구경할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太平御覽載史記樂書曰 漢家祀太一 以昏時祠到明 今人正月望日 夜游觀燈 是其遺事 而今史記無此文 唐韋述兩京新記曰 正月十五日 夜勑金吾弛禁 前後各一日以看燈).”고 기술되어 있다. 『구당서(舊唐書)』 「중종기(中宗紀)」에는 “경룡(景龍) 4년(709) 상원 밤에 임금이 황후와 미복(微服)으로 등불을 구경하였다(景龍四年 上元夜 帝與皇后微行觀燈).”는 기록이 있다.

참고문헌

舊唐書, 容齋三筆, 資治通鑑, 初學記, 太平御覽中國民俗辭典 (鄭傳寅 主編, 湖北辭書出版社, 1987)中國風俗辭典 (上海辭書出版社,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