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신제

한자명

山神祭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정월(正月) > 1월 > 의례

집필자 이기태(李淇泰)
갱신일 2018-11-05

정의

신을 주신으로 모시면서 공동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한 제의. 산신제·산제·산제사 등으로 불리며, 전국적인 분포를 보인다. 산신제는 고대사회에서부터 명산으로 알려진 산과 산악지대 또는 산악과 인근한 마을들에서 행해졌다. 산신제는 산악숭배의 표현이며, 산악숭배 사상은 천신신앙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산신숭배 사상은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紀異)」편 고조선조에서 “단군은 아사달로 돌아와 산신(山神)이 되었다.”는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우리 민족에게 매우 오래된 신앙이었음을 알 수 있다.

내용

고대사회에서의 산천제가 시조제(始祖祭)·농신제(農神祭)와 더불어 중요한 국가행사였던 점을 감안한다면, 신라의 삼산오악숭배나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진 산악숭배 등의 산신에 대한 의례는 오늘날까지 이어져오면서 한반도 전역에 걸쳐 공동체신앙이나 개인신앙에서 중요한 대상이 되고 있다. 태백산 산신제나 치악산 산신제와 같이 오랜 역사를 가지면서 오늘날까지 관(官)주도의 산신제가 전국에서 행해지고 있다. 이에 비해 마을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서 행하는 산신제당은 마을 주변의 산 중턱이나 정상에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산제당이나 제당·산신당·산신각 등으로 불리면서 단수 또는 복수제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산신제를 행하는 마을에서의 제당은 상당과 하당 등으로 복수제당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제당 형태는 오래된 큰 나무 또는 그 나무 밑에 돌무지가 함께 있기도 하다. 집의 형태인 산신각의 경우에도 큰 나무와 병존하는 것이 보통이다. 제당의 형태가 높은 신목으로 표현되는 것은 신목이 하늘과 교통할 수 있는 ‘우주의 기둥’을 상징하기 때문이며, 이것이 곧 산신신앙이 천신숭배와 닿아 있음을 나타낸다. 산신제의 대상신인 산신은 호랑이로 이해되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호랑이는 산신의 매개자일 뿐이다.

산신제의 진행 과정은 제관 선정, 금기와 재계의 기간, 제당 제의, 음복과 주민회의 등 동제의 일반적 절차와 유사하지만, 희생과 야외용 밥솥인 새옹에 밥짓기 등과 같은 특별한 과정이 포함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소백산맥 주변에 위치한 경북 문경시 동로면 수평리 산제의 경우, 진산(鎭山)인 미역끝산[藿端峰] 정상 바로 아랫부분에 위치한 산제당에서 행한다. 제당은 상·중·하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당은 오래되고 큰 소나무와 돌무더기로 이루어진 산제당이며, 상당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중당도 오래되고 큰 소나무이지만 솔잎흑파리의 피해로 뿌리째 뽑혀서 넘어져 있고, 하당은 중당보다 훨씬 아랫부분에 위치하며 희생을 처리할 수 있는 넓은 평지와 샘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을공동체에서 행하는 산신제는 마을마다 일정하지 않지만, 정월 초사흗날부터 보름날에 이르는 시기에 가장 많이 행한다. 산신제는 동제 형식을 취하며, 의례의 경비는 마을 공동재산이나 주민들의 공동부담이 일반적이다.

산신제는 제관(祭官)을 선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제관은 제당 제의에 참가하는 사람들 모두를 지칭하는 것인데, 제관과 축관, 화주(또는 공양주) 등이다. 제관은 부정(不淨)이 없는 이로서 생기복덕(生氣福德)한 사람으로 선정한다. 부정의 범주에는 집안의 상사(喪事)가 있거나 환자 또는 임산부 등이 있는 사람, 살생을 한 경우, 부인의 달거리 등이 해당되며, 생기복덕은 하늘의 운(運)에 거스르지 않기 위한 것이다. 이 두 기준은 산신제의 대상신인 신성한 산신(천신)과 교융(交隆)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선정하기 위한 문화적 장치이다. 수평리에서는 상당 제관·공양주·하당 제관 등 각 1인, 희생처리 과정을 도울 사람 2명을 선정하였다.

선정된 제관은 일정한 기간 동안 금기와 목욕재계를 통하여 신성화 과정을 거친다. 금기는 제당과 그 주변, 제관의 집 앞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기간 동안에 제관은 마을 밖으로의 출입이 금지되고, 주민들이 제관 집으로 출입할 수 없다. 또한 부부관계가 금지되고 식사 양을 줄이면서 일정 기간 동안에 목욕재계하고 스스로 신성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요즘은 냇물에서 행하는 목욕을 세수나 집에서 목욕하는 것으로 대체하는 등 약화되는 경향이 있다.

제당 제의에는 희생이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대상은 소[牛]가 많이 사용되었지만, 일제강점기에 도축법이 시행되면서 소가 돼지로 바뀐 곳이 많다. 제당 제의에서는 소나 돼지를 제당에서 잡아 희생의례를 치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경제적 사정 등으로 약간의 쇠고기, 곧 머리 부분과 발[足] 부분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것은 희생물의 부분을 통하여 전체를 표현하려는 일반적인 희생 대상의 변이과정과 일치한다. 희생은 산신을 모시는 상당보다도 하당에서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소백산 산신제에서와 같이 제관이 소를 산제당에 모셔 놓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급하게 내려오는 경우도 있다.

희생의례는 크게 질러대는 비명소리나 제당 주변에 흩뿌려지는 선혈들이 제당을 정화하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희생이 행해진 후에 제수로 장만하는 과정을 거친다. 즉, 희생물의 고기를 삶아서 제상에 올릴 준비도 해야 한다. 경북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에서는 희생을 행한 후에 희생물을 해체하는 순서대로 상당인 산신당에 진설한다. 머리 부분과 발 부분은 불에 구워서 진설하였다. 이것은 번제(燔祭)의 한 유형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수평리의 제당 제의는 상당과 중당이 서로 다르게 행해진다. 상당 제의는 상당 제관이 제당에 도착한 후부터 야외용 밥솥인 새옹에 밥을 지어서 올린다. 새옹에 밥을 지어 올리는 행위는 산신제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난다. 읍내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새옹의 밥을 지을 때는 솥뚜껑을 열어 보아서도 안되고 밥물이 넘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밥물이 넘치면 정성이 부족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복을 받지 못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수평리의 중심되는 제당 제의는 중당에서 유교식으로 행한다. 하당 제관이 제수로 장만한 희생물을 중당으로 가져오면 진설한 후에 상당 제관이 헌작독축을 한다. 그리고 공양주와 하당 제관이 절을 하고 소지 올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 하당 제의는 중당의 제수를 지게에 지고 옮긴 뒤 마을을 향해서 재배하는 것으로 끝난다. 제관들은 마을로 내려오기 전에 그들끼리 음복을 한다. 이때는 제수로 사용하고 남은 허드렛고기와 제주(祭酒)를 먹는 것이 전부이지만 비의(秘儀)로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주민들이 참여해서 먹는 음복과는 구별된다.

수평리와 읍내리의 주민들은 제관들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그들을 맞이한 후에 잠을 잔다. 음복은 정월 대보름날 이른 아침부터 주민들이 제관의 집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음복은 신이 드신 음식을 집단 성원들이 함께 먹으면서 그 축복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양은 집에 가져가서라도 모두 먹어야 하며, 남은 음식을 개나 짐승에게 줄 수 없다. 그 음식을 먹은 짐승을 해를 입기 때문이다. 음복을 진행하는 동안, 제관들은 경비를 계산하고 모든 주민들이 볼 수 있도록 공지한다.

음복은 신의 축복을 받는 신성한 시공간에서 주민들이 대동단결하면서 한 해를 논의하기 위해 행해진다. 일년 동안 마을에서 공동으로 추진할 행사나 품삯, 마을의 여러 가지 일들을 논의하는 자리이다. 지금은 행하지 않지만, 음복을 행하는 정월 대보름날에는 줄다리기도 대규모로 행하면서 자신의 마을뿐 아니라 주변 지역의 주민들과도 대동단결하면서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기회로 삼았다.

마을공동체 제의는 지역문화사적 배경과 함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읍내리의 경우 본래 지역민의 산신제당을 관(官)에서 수용하여 성황사로 개칭하였다가, 해방 이후 지역민이 제의의 주도권을 이양받으면서 현재의 명칭은 성황제지만 단종복위운동이라는 역사적 경험을 산신제에 투영하여 행제(行祭)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

참고문헌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京畿道 篇 (文化財管理局, 1978)
韓國農耕歲時의 硏究 (金宅圭, 嶺南大學校出版部, 1985)
산간신앙 (국립문화재연구소, 1993)
강원도 민속문화론 (김의숙, 집문당, 1995)
한국의 마을제당1~7 (국립민속박물관, 1995~2003)
읍치성황제 주제집단의 변화와 제의전통의 창출 (이기태, 민속원, 1997)
산간신앙Ⅱ (국립문화재연구소, 1999)
동제의 상징과 의미전달체계 (이기태, 민속원, 2004)

산신제

산신제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정월(正月) > 1월 > 의례

집필자 이기태(李淇泰)
갱신일 2018-11-05

정의

신을 주신으로 모시면서 공동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한 제의. 산신제·산제·산제사 등으로 불리며, 전국적인 분포를 보인다. 산신제는 고대사회에서부터 명산으로 알려진 산과 산악지대 또는 산악과 인근한 마을들에서 행해졌다. 산신제는 산악숭배의 표현이며, 산악숭배 사상은 천신신앙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산신숭배 사상은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紀異)」편 고조선조에서 “단군은 아사달로 돌아와 산신(山神)이 되었다.”는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우리 민족에게 매우 오래된 신앙이었음을 알 수 있다.

내용

고대사회에서의 산천제가 시조제(始祖祭)·농신제(農神祭)와 더불어 중요한 국가행사였던 점을 감안한다면, 신라의 삼산오악숭배나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진 산악숭배 등의 산신에 대한 의례는 오늘날까지 이어져오면서 한반도 전역에 걸쳐 공동체신앙이나 개인신앙에서 중요한 대상이 되고 있다. 태백산 산신제나 치악산 산신제와 같이 오랜 역사를 가지면서 오늘날까지 관(官)주도의 산신제가 전국에서 행해지고 있다. 이에 비해 마을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서 행하는 산신제당은 마을 주변의 산 중턱이나 정상에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산제당이나 제당·산신당·산신각 등으로 불리면서 단수 또는 복수제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산신제를 행하는 마을에서의 제당은 상당과 하당 등으로 복수제당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제당 형태는 오래된 큰 나무 또는 그 나무 밑에 돌무지가 함께 있기도 하다. 집의 형태인 산신각의 경우에도 큰 나무와 병존하는 것이 보통이다. 제당의 형태가 높은 신목으로 표현되는 것은 신목이 하늘과 교통할 수 있는 ‘우주의 기둥’을 상징하기 때문이며, 이것이 곧 산신신앙이 천신숭배와 닿아 있음을 나타낸다. 산신제의 대상신인 산신은 호랑이로 이해되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호랑이는 산신의 매개자일 뿐이다. 산신제의 진행 과정은 제관 선정, 금기와 재계의 기간, 제당 제의, 음복과 주민회의 등 동제의 일반적 절차와 유사하지만, 희생과 야외용 밥솥인 새옹에 밥짓기 등과 같은 특별한 과정이 포함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소백산맥 주변에 위치한 경북 문경시 동로면 수평리 산제의 경우, 진산(鎭山)인 미역끝산[藿端峰] 정상 바로 아랫부분에 위치한 산제당에서 행한다. 제당은 상·중·하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당은 오래되고 큰 소나무와 돌무더기로 이루어진 산제당이며, 상당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중당도 오래되고 큰 소나무이지만 솔잎흑파리의 피해로 뿌리째 뽑혀서 넘어져 있고, 하당은 중당보다 훨씬 아랫부분에 위치하며 희생을 처리할 수 있는 넓은 평지와 샘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을공동체에서 행하는 산신제는 마을마다 일정하지 않지만, 정월 초사흗날부터 보름날에 이르는 시기에 가장 많이 행한다. 산신제는 동제 형식을 취하며, 의례의 경비는 마을 공동재산이나 주민들의 공동부담이 일반적이다. 산신제는 제관(祭官)을 선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제관은 제당 제의에 참가하는 사람들 모두를 지칭하는 것인데, 제관과 축관, 화주(또는 공양주) 등이다. 제관은 부정(不淨)이 없는 이로서 생기복덕(生氣福德)한 사람으로 선정한다. 부정의 범주에는 집안의 상사(喪事)가 있거나 환자 또는 임산부 등이 있는 사람, 살생을 한 경우, 부인의 달거리 등이 해당되며, 생기복덕은 하늘의 운(運)에 거스르지 않기 위한 것이다. 이 두 기준은 산신제의 대상신인 신성한 산신(천신)과 교융(交隆)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선정하기 위한 문화적 장치이다. 수평리에서는 상당 제관·공양주·하당 제관 등 각 1인, 희생처리 과정을 도울 사람 2명을 선정하였다. 선정된 제관은 일정한 기간 동안 금기와 목욕재계를 통하여 신성화 과정을 거친다. 금기는 제당과 그 주변, 제관의 집 앞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기간 동안에 제관은 마을 밖으로의 출입이 금지되고, 주민들이 제관 집으로 출입할 수 없다. 또한 부부관계가 금지되고 식사 양을 줄이면서 일정 기간 동안에 목욕재계하고 스스로 신성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요즘은 냇물에서 행하는 목욕을 세수나 집에서 목욕하는 것으로 대체하는 등 약화되는 경향이 있다. 제당 제의에는 희생이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대상은 소[牛]가 많이 사용되었지만, 일제강점기에 도축법이 시행되면서 소가 돼지로 바뀐 곳이 많다. 제당 제의에서는 소나 돼지를 제당에서 잡아 희생의례를 치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경제적 사정 등으로 약간의 쇠고기, 곧 머리 부분과 발[足] 부분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것은 희생물의 부분을 통하여 전체를 표현하려는 일반적인 희생 대상의 변이과정과 일치한다. 희생은 산신을 모시는 상당보다도 하당에서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소백산 산신제에서와 같이 제관이 소를 산제당에 모셔 놓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급하게 내려오는 경우도 있다. 희생의례는 크게 질러대는 비명소리나 제당 주변에 흩뿌려지는 선혈들이 제당을 정화하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희생이 행해진 후에 제수로 장만하는 과정을 거친다. 즉, 희생물의 고기를 삶아서 제상에 올릴 준비도 해야 한다. 경북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에서는 희생을 행한 후에 희생물을 해체하는 순서대로 상당인 산신당에 진설한다. 머리 부분과 발 부분은 불에 구워서 진설하였다. 이것은 번제(燔祭)의 한 유형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수평리의 제당 제의는 상당과 중당이 서로 다르게 행해진다. 상당 제의는 상당 제관이 제당에 도착한 후부터 야외용 밥솥인 새옹에 밥을 지어서 올린다. 새옹에 밥을 지어 올리는 행위는 산신제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난다. 읍내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새옹의 밥을 지을 때는 솥뚜껑을 열어 보아서도 안되고 밥물이 넘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밥물이 넘치면 정성이 부족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복을 받지 못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수평리의 중심되는 제당 제의는 중당에서 유교식으로 행한다. 하당 제관이 제수로 장만한 희생물을 중당으로 가져오면 진설한 후에 상당 제관이 헌작과 독축을 한다. 그리고 공양주와 하당 제관이 절을 하고 소지 올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 하당 제의는 중당의 제수를 지게에 지고 옮긴 뒤 마을을 향해서 재배하는 것으로 끝난다. 제관들은 마을로 내려오기 전에 그들끼리 음복을 한다. 이때는 제수로 사용하고 남은 허드렛고기와 제주(祭酒)를 먹는 것이 전부이지만 비의(秘儀)로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주민들이 참여해서 먹는 음복과는 구별된다. 수평리와 읍내리의 주민들은 제관들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그들을 맞이한 후에 잠을 잔다. 음복은 정월 대보름날 이른 아침부터 주민들이 제관의 집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음복은 신이 드신 음식을 집단 성원들이 함께 먹으면서 그 축복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양은 집에 가져가서라도 모두 먹어야 하며, 남은 음식을 개나 짐승에게 줄 수 없다. 그 음식을 먹은 짐승을 해를 입기 때문이다. 음복을 진행하는 동안, 제관들은 경비를 계산하고 모든 주민들이 볼 수 있도록 공지한다. 음복은 신의 축복을 받는 신성한 시공간에서 주민들이 대동단결하면서 한 해를 논의하기 위해 행해진다. 일년 동안 마을에서 공동으로 추진할 행사나 품삯, 마을의 여러 가지 일들을 논의하는 자리이다. 지금은 행하지 않지만, 음복을 행하는 정월 대보름날에는 줄다리기도 대규모로 행하면서 자신의 마을뿐 아니라 주변 지역의 주민들과도 대동단결하면서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기회로 삼았다. 마을공동체 제의는 지역문화사적 배경과 함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읍내리의 경우 본래 지역민의 산신제당을 관(官)에서 수용하여 성황사로 개칭하였다가, 해방 이후 지역민이 제의의 주도권을 이양받으면서 현재의 명칭은 성황제지만 단종복위운동이라는 역사적 경험을 산신제에 투영하여 행제(行祭)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

참고문헌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京畿道 篇 (文化財管理局, 1978)韓國農耕歲時의 硏究 (金宅圭, 嶺南大學校出版部, 1985)산간신앙 (국립문화재연구소, 1993)강원도 민속문화론 (김의숙, 집문당, 1995)한국의 마을제당1~7 (국립민속박물관, 1995~2003)읍치성황제 주제집단의 변화와 제의전통의 창출 (이기태, 민속원, 1997)산간신앙Ⅱ (국립문화재연구소, 1999)동제의 상징과 의미전달체계 (이기태, 민속원,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