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중놀이

한자명

百中-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가을(秋) > 7월 > 정일

집필자 나경수(羅景洙)
갱신일 2018-11-16

정의

음력으로 7월 15일 백중날 행해지던 놀이.

개관

본래 백중놀이라는 말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으로 농촌에서는 백중(百中)을 명절로 여겨 가정에서는 차례를 모시기도 하고, 또 마을에 따라서는 동제를 모시는 곳도 있다. 또 마당밟이를 하면서 하루를 즐기는 마을도 있다. 명절이기 때문에 일하지 않고 쉬면서 여러 가지 의례를 올리고 놀이를 즐기는데, 이들을 모아 통칭하는 말로써 백중놀이라고 한다.

현재 백중놀이라는 말은 단독으로 쓰이기보다는 지명(地名)과 함께 묶어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전형적인 예는 경남의 밀양백중놀이이다.
그 밖에도 충남의 연산백중놀이, 충북의 괴산백중놀이, 서울의 송파백중놀이 등이 있으며, 전북 남원의 삼동굿놀이, 전주의 칠월백중놀이도 백중일에 하는 백중놀이이다.

내용

경남의 밀양백중놀이는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로서 1980년 11월 17일 지정되었다. 밀양에서는 꼼배기참놀이라고도 한다. 이날은 꼼배기참이라고 하는 음식을 마련하여 머슴들을 대접하고 각종 춤과 놀이를 벌인다. 놀이는 농신제(農神祭)로 시작하여 작두말타기, 춤판(양반춤·병신춤·범춤), 뒷놀이의 순서로 진행된다.

충남의 연산백중놀이는 1991년 7월 9일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되었다. 충남 연산면 일대에서는 조선 성종 때 좌의정을 지낸 김국광(金國光)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생가가 있던 왕대리와 인근 마을의 농민들이 중심이 되어 농사일이 끝나는 백중에 김국광의 묘에 참배한 뒤 두계천에 모여 축제를 벌였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그 뒤 광산 김씨들이 연산 일대로 옮겨 살면서 백중날 연산 장터에 모여 놀이를 즐겼으며, 한창 성행할 때는 전국의 한량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연산백중놀이는 쌍룡기(雙龍旗)와 용기(龍旗)를 가진 동리로 각각 나누어 놀이마당으로 들어오는 길놀이부터 시작해서 기싸움으로 이어진다. 기싸움이 끝나면 용기 집단이 쌍룡기에게 기세배(旗歲拜)를 올리고 농신제(農神祭)를 지낸다. 다음은 상벌마당이다. 마을의 효부, 효자에게 상을 주고 불효자에게는 벌을 주며, 농사를 잘 지은 머슴을 뽑아 표창한다. 상을 받은 머슴을 가마에 태워 머슴놀이를 한 다음 상쇠의 인솔로 농악이 앞장서서 기 주위를 돌며 춤을 추는 뒤풀이로 끝을 맺는다.

전북 남원의 괴양마을에서는 백중에 삼동굿놀이를 한다. 괴양리의 백중놀이에는 삼동굿놀이 이 외에도 샘굿, 당산제, 마당밟기판굿 등 여러 가지를 함께 연행한다. 이러한 굿놀이는 괴양리에서만 전승되는 고유한 놀이다. 일종의 공동체적 두레놀이로서 백중날 지네를 밟아 마을의 무사와 풍년을 기원하는 데 목적이 있다. 괴양리 동쪽에는 약산(지네)이 있고, 서쪽에는 계룡산(닭)이 남북으로 뻗쳐 있어 지네가 닭을 해친다는 설화에서 유래하였다. 괴양리의 세 마을에서 행사에 참가할 건강한 남아 셋을 선출해 출산과장, 성정(性情)과장, 입신출세과장, 지네밟기의 네 단계로 진행된다. 남아 출산과 무병장수, 입신출세를 기원하는 놀이로, 삼동들이 명당에 침범한 지네를 마을 밖으로 쫓아내면 놀이는 끝난다. 네 단계 과장이 끝나면 삼동으로 뽑힌 아이들의 집에서 농악단을 초청해 하루를 즐겁게 논다. 이 놀이는 1982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해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으며, 그 후 지금까지 매년 괴양리에서 백중을 맞이하여 열리고 있다.

서울의 송파백중놀이는 1925년 한강의 대홍수로 송파 일대가 백사장으로 변해버린 이후 단절되었다가 70여 년 만에 재현되었다. 송파는 조선 후기 전국 15대 향시(鄕市) 중의 하나로 서울, 경기 일원의 중요한 상거래가 이루어지던 지역이었다. 한때는 전국에서 각종 상품들이 송파장으로 모여들어 270여 호의 객주집이 성업성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장시가 성하다 보니 거부상이 많아 그들이 추렴하는 기부금으로 대소 명절과 장날에 큰 놀이판을 벌임으로써 송파장에 사람들을 모으는 효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전에 비해서 장꾼들이 덜 모인다 싶으면 백중 난장을 열어 놀이판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때는 상인들이 추렴을 해서 자금을 마련하고 재주가 좋기로 잘 알려진 연희자들을 불러들여 줄타기, 씨름, 소리, 산대놀이판을 벌임으로써 장꾼들이 몰려 장이 훨씬 더 성할 수 있었다. 따라서 송파백중놀이는 농민들에 의한 농촌형 백중놀이와는 달리 도시형(상업지) 놀이로서 직업적인 놀이패 즉, 사당패, 소리꾼, 탈꾼패들을 불러들여 공연 형태를 갖춘 놀이로서 놀았던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백중놀이들은 대부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나가 수상하거나 또는 관심 있는 학자나 보존회 등에서 재현한 것들이 많다. 따라서 이상의 백중놀이들은 대개 농신제와 같은 의례와 여러 가지 놀이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굳이 백중놀이로 통칭하기 어려운 개별적인 놀이들이 백중을 맞아 다양하게 농촌에서 놀아졌던 것으로 보인다. 전국적인 현상으로 백중을 ‘머슴날’이라고도 하는 바, 명절을 맞아 그간 고생했던 머슴을 특별히 대접하기도 하고, 또 마을에서는 농군들 스스로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하루를 즐기는 예도 많다.

현재까지 백중에 놀았던 구체적인 놀이로 전국에서 조사된 것을 보면 기세배, 농기싸움, 마당밟이, 장원례(만들이), 백중장 가기, 씨름, 진세내기, 들돌들기, 모래찜질, 물맞이 등이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기세배, 농기싸움, 마당밟이 등은 주로 정월대보름에 놀던 것으로 고유의 백중놀이로 보기는 어렵다. 장원례 역시 꼭 백중날에 행하는 것은 아니며, 마을의 사정에 따라 7월 중에 하는 곳도 많다. 또 모래찜질이나 물맞이 같은 것은 개인적으로 행하는 것으로 이 역시 음력 6월 15일인 유두(流頭) 때나 또는 여름철의 일정한 날을 받아 하는 경우도 있어서 백중의 고유한 놀이는 아니다.

백중 무렵이면 여름철 농사일이 거의 마무리되고 망중한의 시기를 맞는다. 전국적으로 백중이 되면 호미씻이[洗鋤宴] 또는 호미걸이를 한다. 백중 무렵이 되면 밭일이나 논일에서 이제 더 이상 호미가 필요 없게 된다. 수확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호미가 아니라 낫이 필요해지는 계절이다. 그래서 이제까지 풀을 매거나 흙을 일구면서 사용했던 호미를 씻어서 내년을 위해 걸어둔다는 뜻으로 비유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호미씻이나 호미걸이가 이렇듯 비유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호미를 가지고 특별한 행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시기에 어울리는 놀이가 백중 무렵에 마을에서 다채롭게 벌어진다.

지역에 따라서는 실제로 그동안 사용했던 농기구를 내다놓고 백중놀이를 하는 곳도 있다. 강원도 지역에서는 백중날 소위 질먹기놀이라는 것을 하는데, 각 가정에서 형편대로 음식을 장만해오고 또 쟁기, 괭이 같은 농기구를 내와서 성황당 앞에 모아 놓은 후 사람들이 모여서 하루를 즐겁게 놀면서 지낸다.

특히 백중 무렵이면 논매기가 끝난다. 김을 세벌 매는 곳도 있고, 네벌 매는 곳도 있지만, 횟수에 상관없이 백중을 앞두고 마지막 논매기를 한다. 마지막 논매기가 끝나는 시기에 맞춰 농부들은 마을에서 부유한 집을 골라 누구 집 농사가 금년에 가장 잘 되었는지 살펴보고 합의한 후 논 주인에게 미리 통보한다. 백중 무렵에 마을의 농부들은 이미 정해진 논에 가서 마지막 논매기를 한다. 논매기가 끝나면 마을사람들은 그 집 머슴의 얼굴과 몸에 진흙을 바르고 우장을 뒤집어씌운 후 소에 태운다. 소에 올라탄 머슴을 앞세우고 사람들은 흥겹게 길굿을 즐기며 주인집으로 향한다. 주인집에서는 넉넉하게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일꾼들과 마을사람들을 대접한다. 그날은 밤이 깊도록 그 집에서 먹고 마시고 놀면서 마을잔치를 벌인다.

마지막 논매기를 하고 마을잔치를 벌이는 것은 거의 전국적으로 보이는 현상이며, 강원도나 경기 지역에서처럼 이를 일반적으로 호미씻이라 부른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서 호미씻이 이외에 다양한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경북에서는 풋굿, 풋굿먹기, 푸술먹기, 꼼베기놀기, 만물매기 등으로 부르며, 경남에서는 꼼비기날, 켕말타기, 괭이자루타기, 낟알이먹기 등으로 부른다. 또 전라도에서는 만들이, 장원례, 농사장원, 술멕이 등으로 부르며, 제주도는 발씻기, 만들이라 한다.

추석이 본격적인 추수를 앞두고 풍년을 들게 해준 조상신들에게 천신하는 추수예축제(秋收豫祝祭)라면, 백중은 풍년을 일구어낸 농군들이 스스로 즐기는 날이며, 또한 농사를 도와준 일꾼들과 머슴을 대접하고 위하는 날이다. 그래서 백중을 머슴명절, 일꾼들 생일날, 일꾼들 잔칫날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백중은 농부들이 모두 일손을 놓고 하루를 푹 쉬기 때문에 전라도에서는 농군들 발뒤꿈치가 쉬는 날이라고 부르지만, 특히 남의 집에서 농사일을 돕는 머슴에게 백중은 특별한 날이다. 실제로 백중의 이칭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은 머슴날이다. 봄부터 시작된 농사일에 지친 머슴들을 휴가 겸해서 대접하는 날이 바로 백중이다. 그래서 지역에 따라서는 백중을 머슴 위하는 날, 머슴들 쉬는 날, 머슴에게 옷 해주는 날로 부르기도 있다.

백중날 농촌에서는 일손을 놓고 하루를 쉬지만, 특히 머슴에게는 음식을 장만하여 잘 대접하고, 또 새로 옷을 해주며, 돈을 주기도 한다. 이날 마을의 머슴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놀기도 하지만, 새 옷을 입고 장에 가기도 한다. 백중에 열리는 장을 백중장이라고 하는데, 장터에서는 갖가지 놀이나 씨름대회 같은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백중에 가장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놀이는 들돌들기이다. 어느 마을이나 예전에는 당산나무 밑에 들돌이 있었다. 여름철에 마을 사람들이 당산나무 밑에서 놀면 젊은 사람들이 힘자랑을 겸해서 들돌을 들어보였지만, 백중날 마을에 잔치가 벌어졌을 때 누가 들돌을 높이 드는지 시합을 벌이기도 한다. 이때 술내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또 마을에 따라서는 들돌을 어디까지 들어올리느냐에 따라 두레에 참여시킬 것인지 아닌지 결정하기도 하고 또 품삯을 정하기도 한다. 마을에 두레가 있는 곳에서는 백중에 두레패가 모인 자리에서 어깨높이까지 들돌을 들고 발걸음을 옮길 수 있으면 한 명의 상일꾼으로 간주하여 두레에 넣어주기도 한다. 또 두레가 없더라도 들돌을 들어올린 장정에게는 한 명 몫의 품삯을 주었다.

호남 지역에서는 백중날 진세내기라 하여 특별한 마을잔치를 하는 곳이 많다. 농촌에서 품삯을 결정할 때 온 품삯을 받는 사람도 있고, 반 품삯을 받는 사람도 있다. 품앗이를 할 때도 기준은 같다. 온 품삯을 받는 사람과 함께 품앗이를 할 때 반 품삯을 받는 사람은 이틀 동안 일을 해주어야 한다. 나이가 어려 아직 반 품삯을 받는 사람은 농사일을 할 때 주로 뒤에서 거드는 일을 하지만, 성장을 하면 본격적으로 한 사람 몫을 제대로 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 이제 한 사람의 몫을 하게 된 사람은 온 품삯을 받고 일하게 된다. 그런데 온 품삯을 받게 된 사람을 둔 집에서는 백중날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마을사람들을 대접한다. 일종의 입사식(入社式)과 같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두레에도 참여할 수 있으며, 온품을 팔게 되는 것을 자축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 백중날 마을사람들이 모여 놀 수 있는 또 다른 계기의 하나로서 마을에서 살림이 좀 넉넉한 사람들 중에서 자발적으로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내는 경우도 많다.

백중놀이는 여름철 농사일에 지친 농민들이 바쁜 농사일이 거의 마무리되는 시점을 맞아 그 중 하루를 자신들을 위해 마련해 놓고 여러 가지 놀이를 즐기는 성격을 지닌다. 한편 근래 백중놀이는 하나의 형식을 갖추면서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등에 출연하거나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경향을 보인다.

참고문헌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 (文化財管理局, 1969~1981)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2003)
남도민속의 세계 (김성식 외, 민속원, 2005)

백중놀이

백중놀이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가을(秋) > 7월 > 정일

집필자 나경수(羅景洙)
갱신일 2018-11-16

정의

음력으로 7월 15일 백중날 행해지던 놀이.

개관

본래 백중놀이라는 말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으로 농촌에서는 백중(百中)을 명절로 여겨 가정에서는 차례를 모시기도 하고, 또 마을에 따라서는 동제를 모시는 곳도 있다. 또 마당밟이를 하면서 하루를 즐기는 마을도 있다. 명절이기 때문에 일하지 않고 쉬면서 여러 가지 의례를 올리고 놀이를 즐기는데, 이들을 모아 통칭하는 말로써 백중놀이라고 한다. 현재 백중놀이라는 말은 단독으로 쓰이기보다는 지명(地名)과 함께 묶어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전형적인 예는 경남의 밀양백중놀이이다.그 밖에도 충남의 연산백중놀이, 충북의 괴산백중놀이, 서울의 송파백중놀이 등이 있으며, 전북 남원의 삼동굿놀이, 전주의 칠월백중놀이도 백중일에 하는 백중놀이이다.

내용

경남의 밀양백중놀이는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로서 1980년 11월 17일 지정되었다. 밀양에서는 꼼배기참놀이라고도 한다. 이날은 꼼배기참이라고 하는 음식을 마련하여 머슴들을 대접하고 각종 춤과 놀이를 벌인다. 놀이는 농신제(農神祭)로 시작하여 작두말타기, 춤판(양반춤·병신춤·범춤), 뒷놀이의 순서로 진행된다. 충남의 연산백중놀이는 1991년 7월 9일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되었다. 충남 연산면 일대에서는 조선 성종 때 좌의정을 지낸 김국광(金國光)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생가가 있던 왕대리와 인근 마을의 농민들이 중심이 되어 농사일이 끝나는 백중에 김국광의 묘에 참배한 뒤 두계천에 모여 축제를 벌였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그 뒤 광산 김씨들이 연산 일대로 옮겨 살면서 백중날 연산 장터에 모여 놀이를 즐겼으며, 한창 성행할 때는 전국의 한량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연산백중놀이는 쌍룡기(雙龍旗)와 용기(龍旗)를 가진 동리로 각각 나누어 놀이마당으로 들어오는 길놀이부터 시작해서 기싸움으로 이어진다. 기싸움이 끝나면 용기 집단이 쌍룡기에게 기세배(旗歲拜)를 올리고 농신제(農神祭)를 지낸다. 다음은 상벌마당이다. 마을의 효부, 효자에게 상을 주고 불효자에게는 벌을 주며, 농사를 잘 지은 머슴을 뽑아 표창한다. 상을 받은 머슴을 가마에 태워 머슴놀이를 한 다음 상쇠의 인솔로 농악이 앞장서서 기 주위를 돌며 춤을 추는 뒤풀이로 끝을 맺는다. 전북 남원의 괴양마을에서는 백중에 삼동굿놀이를 한다. 괴양리의 백중놀이에는 삼동굿놀이 이 외에도 샘굿, 당산제, 마당밟기 및 판굿 등 여러 가지를 함께 연행한다. 이러한 굿놀이는 괴양리에서만 전승되는 고유한 놀이다. 일종의 공동체적 두레놀이로서 백중날 지네를 밟아 마을의 무사와 풍년을 기원하는 데 목적이 있다. 괴양리 동쪽에는 약산(지네)이 있고, 서쪽에는 계룡산(닭)이 남북으로 뻗쳐 있어 지네가 닭을 해친다는 설화에서 유래하였다. 괴양리의 세 마을에서 행사에 참가할 건강한 남아 셋을 선출해 출산과장, 성정(性情)과장, 입신출세과장, 지네밟기의 네 단계로 진행된다. 남아 출산과 무병장수, 입신출세를 기원하는 놀이로, 삼동들이 명당에 침범한 지네를 마을 밖으로 쫓아내면 놀이는 끝난다. 네 단계 과장이 끝나면 삼동으로 뽑힌 아이들의 집에서 농악단을 초청해 하루를 즐겁게 논다. 이 놀이는 1982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해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으며, 그 후 지금까지 매년 괴양리에서 백중을 맞이하여 열리고 있다. 서울의 송파백중놀이는 1925년 한강의 대홍수로 송파 일대가 백사장으로 변해버린 이후 단절되었다가 70여 년 만에 재현되었다. 송파는 조선 후기 전국 15대 향시(鄕市) 중의 하나로 서울, 경기 일원의 중요한 상거래가 이루어지던 지역이었다. 한때는 전국에서 각종 상품들이 송파장으로 모여들어 270여 호의 객주집이 성업성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장시가 성하다 보니 거부상이 많아 그들이 추렴하는 기부금으로 대소 명절과 장날에 큰 놀이판을 벌임으로써 송파장에 사람들을 모으는 효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전에 비해서 장꾼들이 덜 모인다 싶으면 백중 난장을 열어 놀이판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때는 상인들이 추렴을 해서 자금을 마련하고 재주가 좋기로 잘 알려진 연희자들을 불러들여 줄타기, 씨름, 소리, 산대놀이판을 벌임으로써 장꾼들이 몰려 장이 훨씬 더 성할 수 있었다. 따라서 송파백중놀이는 농민들에 의한 농촌형 백중놀이와는 달리 도시형(상업지) 놀이로서 직업적인 놀이패 즉, 사당패, 소리꾼, 탈꾼패들을 불러들여 공연 형태를 갖춘 놀이로서 놀았던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백중놀이들은 대부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나가 수상하거나 또는 관심 있는 학자나 보존회 등에서 재현한 것들이 많다. 따라서 이상의 백중놀이들은 대개 농신제와 같은 의례와 여러 가지 놀이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굳이 백중놀이로 통칭하기 어려운 개별적인 놀이들이 백중을 맞아 다양하게 농촌에서 놀아졌던 것으로 보인다. 전국적인 현상으로 백중을 ‘머슴날’이라고도 하는 바, 명절을 맞아 그간 고생했던 머슴을 특별히 대접하기도 하고, 또 마을에서는 농군들 스스로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하루를 즐기는 예도 많다. 현재까지 백중에 놀았던 구체적인 놀이로 전국에서 조사된 것을 보면 기세배, 농기싸움, 마당밟이, 장원례(만들이), 백중장 가기, 씨름, 진세내기, 들돌들기, 모래찜질, 물맞이 등이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기세배, 농기싸움, 마당밟이 등은 주로 정월대보름에 놀던 것으로 고유의 백중놀이로 보기는 어렵다. 장원례 역시 꼭 백중날에 행하는 것은 아니며, 마을의 사정에 따라 7월 중에 하는 곳도 많다. 또 모래찜질이나 물맞이 같은 것은 개인적으로 행하는 것으로 이 역시 음력 6월 15일인 유두(流頭) 때나 또는 여름철의 일정한 날을 받아 하는 경우도 있어서 백중의 고유한 놀이는 아니다. 백중 무렵이면 여름철 농사일이 거의 마무리되고 망중한의 시기를 맞는다. 전국적으로 백중이 되면 호미씻이[洗鋤宴] 또는 호미걸이를 한다. 백중 무렵이 되면 밭일이나 논일에서 이제 더 이상 호미가 필요 없게 된다. 수확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호미가 아니라 낫이 필요해지는 계절이다. 그래서 이제까지 풀을 매거나 흙을 일구면서 사용했던 호미를 씻어서 내년을 위해 걸어둔다는 뜻으로 비유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호미씻이나 호미걸이가 이렇듯 비유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호미를 가지고 특별한 행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시기에 어울리는 놀이가 백중 무렵에 마을에서 다채롭게 벌어진다. 지역에 따라서는 실제로 그동안 사용했던 농기구를 내다놓고 백중놀이를 하는 곳도 있다. 강원도 지역에서는 백중날 소위 질먹기놀이라는 것을 하는데, 각 가정에서 형편대로 음식을 장만해오고 또 쟁기, 괭이 같은 농기구를 내와서 성황당 앞에 모아 놓은 후 사람들이 모여서 하루를 즐겁게 놀면서 지낸다. 특히 백중 무렵이면 논매기가 끝난다. 김을 세벌 매는 곳도 있고, 네벌 매는 곳도 있지만, 횟수에 상관없이 백중을 앞두고 마지막 논매기를 한다. 마지막 논매기가 끝나는 시기에 맞춰 농부들은 마을에서 부유한 집을 골라 누구 집 농사가 금년에 가장 잘 되었는지 살펴보고 합의한 후 논 주인에게 미리 통보한다. 백중 무렵에 마을의 농부들은 이미 정해진 논에 가서 마지막 논매기를 한다. 논매기가 끝나면 마을사람들은 그 집 머슴의 얼굴과 몸에 진흙을 바르고 우장을 뒤집어씌운 후 소에 태운다. 소에 올라탄 머슴을 앞세우고 사람들은 흥겹게 길굿을 즐기며 주인집으로 향한다. 주인집에서는 넉넉하게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일꾼들과 마을사람들을 대접한다. 그날은 밤이 깊도록 그 집에서 먹고 마시고 놀면서 마을잔치를 벌인다. 마지막 논매기를 하고 마을잔치를 벌이는 것은 거의 전국적으로 보이는 현상이며, 강원도나 경기 지역에서처럼 이를 일반적으로 호미씻이라 부른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서 호미씻이 이외에 다양한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경북에서는 풋굿, 풋굿먹기, 푸술먹기, 꼼베기놀기, 만물매기 등으로 부르며, 경남에서는 꼼비기날, 켕말타기, 괭이자루타기, 낟알이먹기 등으로 부른다. 또 전라도에서는 만들이, 장원례, 농사장원, 술멕이 등으로 부르며, 제주도는 발씻기, 만들이라 한다. 추석이 본격적인 추수를 앞두고 풍년을 들게 해준 조상신들에게 천신하는 추수예축제(秋收豫祝祭)라면, 백중은 풍년을 일구어낸 농군들이 스스로 즐기는 날이며, 또한 농사를 도와준 일꾼들과 머슴을 대접하고 위하는 날이다. 그래서 백중을 머슴명절, 일꾼들 생일날, 일꾼들 잔칫날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백중은 농부들이 모두 일손을 놓고 하루를 푹 쉬기 때문에 전라도에서는 농군들 발뒤꿈치가 쉬는 날이라고 부르지만, 특히 남의 집에서 농사일을 돕는 머슴에게 백중은 특별한 날이다. 실제로 백중의 이칭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은 머슴날이다. 봄부터 시작된 농사일에 지친 머슴들을 휴가 겸해서 대접하는 날이 바로 백중이다. 그래서 지역에 따라서는 백중을 머슴 위하는 날, 머슴들 쉬는 날, 머슴에게 옷 해주는 날로 부르기도 있다. 백중날 농촌에서는 일손을 놓고 하루를 쉬지만, 특히 머슴에게는 음식을 장만하여 잘 대접하고, 또 새로 옷을 해주며, 돈을 주기도 한다. 이날 마을의 머슴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놀기도 하지만, 새 옷을 입고 장에 가기도 한다. 백중에 열리는 장을 백중장이라고 하는데, 장터에서는 갖가지 놀이나 씨름대회 같은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백중에 가장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놀이는 들돌들기이다. 어느 마을이나 예전에는 당산나무 밑에 들돌이 있었다. 여름철에 마을 사람들이 당산나무 밑에서 놀면 젊은 사람들이 힘자랑을 겸해서 들돌을 들어보였지만, 백중날 마을에 잔치가 벌어졌을 때 누가 들돌을 높이 드는지 시합을 벌이기도 한다. 이때 술내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또 마을에 따라서는 들돌을 어디까지 들어올리느냐에 따라 두레에 참여시킬 것인지 아닌지 결정하기도 하고 또 품삯을 정하기도 한다. 마을에 두레가 있는 곳에서는 백중에 두레패가 모인 자리에서 어깨높이까지 들돌을 들고 발걸음을 옮길 수 있으면 한 명의 상일꾼으로 간주하여 두레에 넣어주기도 한다. 또 두레가 없더라도 들돌을 들어올린 장정에게는 한 명 몫의 품삯을 주었다. 호남 지역에서는 백중날 진세내기라 하여 특별한 마을잔치를 하는 곳이 많다. 농촌에서 품삯을 결정할 때 온 품삯을 받는 사람도 있고, 반 품삯을 받는 사람도 있다. 품앗이를 할 때도 기준은 같다. 온 품삯을 받는 사람과 함께 품앗이를 할 때 반 품삯을 받는 사람은 이틀 동안 일을 해주어야 한다. 나이가 어려 아직 반 품삯을 받는 사람은 농사일을 할 때 주로 뒤에서 거드는 일을 하지만, 성장을 하면 본격적으로 한 사람 몫을 제대로 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 이제 한 사람의 몫을 하게 된 사람은 온 품삯을 받고 일하게 된다. 그런데 온 품삯을 받게 된 사람을 둔 집에서는 백중날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마을사람들을 대접한다. 일종의 입사식(入社式)과 같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두레에도 참여할 수 있으며, 온품을 팔게 되는 것을 자축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 백중날 마을사람들이 모여 놀 수 있는 또 다른 계기의 하나로서 마을에서 살림이 좀 넉넉한 사람들 중에서 자발적으로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내는 경우도 많다. 백중놀이는 여름철 농사일에 지친 농민들이 바쁜 농사일이 거의 마무리되는 시점을 맞아 그 중 하루를 자신들을 위해 마련해 놓고 여러 가지 놀이를 즐기는 성격을 지닌다. 한편 근래 백중놀이는 하나의 형식을 갖추면서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등에 출연하거나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경향을 보인다.

참고문헌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 (文化財管理局, 1969~1981)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2003)남도민속의 세계 (김성식 외, 민속원, 2005)